늦은 밤, 주서예는 재발한 암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남편에게 간절히 애원했다. “제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그러나 남편은 그녀를 외면한 채 서슴없이 첫사랑에게로 향했고, 차가운 한마디를 남겼다. “네 연기가 점점 더 실감나는데?” 그녀가 바쳐온 지난 10년의 사랑은, 결국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첫사랑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생명을 구하려면 긴급한 심장 이식이 필요했다. 서예는 주저 없이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그녀. 그러나 서예가 사라지자, 한때 그녀를 철저히 외면하던 남편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미쳐가기 시작했다.
View More직원이 음식을 내오며 말했다. “손님, 저희 가게에서 이번에 무료로 망고빙수를 드리고 있습니다. 두 분 식사 후에 가져다 드릴까요?” 유서련이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아주 맛있습니다.” “아, 제가 망고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구현은 깜짝 놀랐다. ‘서예도 망고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처음 구현이 서예와 사귀었을 때 망고빙수를 먹으러 갔었는데, 그녀는 가려움을 참으며 두 그릇이나 먹어서 온몸에 붉은 발진이 났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좋은 분위기를 깨기 싫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현은 눈을 감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이번에 구현의 회사에서 서스펜스 영화의 저작권을 새로 샀다. 캐스팅 감독이 염두에 둔 남자 주인공은 소현우였고, 여자 주인공은 성신엔터테인먼트의 신인이었다. 구현 역시 대본을 살펴보았다. 그는 역할을 보고 사실 유서련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유서련은 자신이 의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며 자기도 모르게 구현을 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 그는 약간 어리둥절했는데, 마치 지금 자신을 안고 있는 사람이 소녀 시절의 서예인 것 같았다. 며칠 후가 서예의 기일이었다. 구현은 매년 서예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그녀와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구현은 요즘 계속 꿈을 꿨는데 서예와 예전에 있었던 일이 꿈에 나왔다. 꿈이 너무 아름다워서 매번 깨어날 때마다 아쉬움을 남겼다. 때때로 그는 차라리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때때로 그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꿈속에서 구현은 서예와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구현은 잠에서 깨어나서도 무의식적으로 꿈속의 설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텅 빈 방과 가사도우미의 의아한 눈빛을 보고 구현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다. 서예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구현이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1년 후.M그룹 산하에 M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새로 생겼다.구현이 가끔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쁠 때면 최여진이 집에 와서 그를 살폈다.하지만 사실 구현은 최여진이 자신과 친구의 딸을 이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구현이 집에 들어가니 최여진이 국을 식탁에 놓고 있었다.구현은 자신을 뚤어지게 보는 최여진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최여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와 핸드폰 앨범을 열어 건네주었다.“여기 얘가 엄마 친구 현희 딸이야. 올해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대. 예쁘지? 엄마가 만나봤는데 성격도 괜찮더라고.”구현은 최여진의 손을 잡고 말했다.“엄마, 앞으로 선자리 좀 알아보지 마세요. 전 다시 결혼할 생각 없어요.”‘서예는 내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인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하지만 난 결혼하고 싶지 않아.’최여진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구현은 운전기사에게 최여진를 본가에 모셔다 드리라고 했고, 곧 큰 집에는 그 혼자 남게 되었다.그는 소파에 기대 거실 위에 매달린 큰 샹들리에를 바라보았다.샹들리에는 서예가 고른 것이었다.‘그때 서예의 눈이 반짝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해. 말도 안 되게 예뻤는데.’구현은 수면제 두 알을 먹었다.요즘 불면증이 심해서인지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서예를 꿈에서 본 적이 없었다.‘서예가 너무 보고 싶어.’‘서예와 얘기하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어.’구현은 서예의 침실로 가 침대에 엎드렸다.늦은 밤, 어둠이 온 도시를 뒤덮었다.“구현 씨.”누군가가 구현의 얼굴을 찌르는 거 같았다.그가 눈을 뜨니 옆에 앉아 있는 서예가 보였다.구현은 순간 멍해 있다가 벌떡 일어나 그녀를 안았다.그녀 목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냄새를 맡으려고 했다.“서예야.”눈물을 흘렸다. “너무 보고 싶었어.”서예 목의 온기가 느껴진 구현은 그녀를 꼭 껴안고 놓지 않으려 했다.“구현 씨는 왜 이렇게 어린애
다음날, 집 구현은 CCTV를 통해 서예의 방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이수가 화장대의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서랍 속의 액세서리를 주머니에 숨겼다. 구현은 바로 차를 몰고 이수를 따라갔다. 그리고는 그녀가 중고 명품 가게로 가서 훔친 장신구를 파는 모습을 보았다. 다시 계속 그녀를 따라 도시 가장자리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수의 집이 있었는데, 잠시 임대한 것으로 원래 집은 그녀의 의붓아버지가 도박으로 날렸다. 이수가 오자, 건달처럼 보이는 그녀의 의붓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가느다란 눈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가방을 빼앗으려 했다. 이수는 인상을 쓰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가방을 그에게 던졌다. 구현은 담배를 피우며 조용히 112에 전화를 걸었다. 이수가 집을 나설 때 경찰이 그녀를 막아섰다. “심이수 씨 되시죠? 절도 혐의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이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많은 이웃들이 인기척을 듣고 모두 나와 무슨 일인지 구경했다. 구현은 이수가 경찰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음 날이 밝았다. 경찰서, 유치장. 어젯밤 조사를 마친 후, 이수는 이미 정신적으로 혼란스워하며,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무슨 상황인지 의아해했다. 구현은 안 보이게 그늘에 서서 이수를 가증스럽게 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왔다는 걸 알아차린 이수가 구현을 발견하자 눈빛을 빛내며 가장 가까운 철창으로 달려들어 큰 소리로 외쳤다. “구현 씨!’ “구현 씨, 나 데리러 왔어?” 구현은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수야.” 구현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물건을 훔쳤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해.”이수는 다급하게 변명했다. “구현 씨, 내 말 좀 들어봐. 다 우리 의붓아버지가 시킨 거야. 내가 구현 씨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어머니를 때리며 내게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했어. 구현 씨, 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나뭇잎 하나가 구현의 발 옆에 떨어졌는데, 서예가 좋아하는 단풍잎이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단풍잎을 주웠다. “문 대표님.” 누군가가 구현을 불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 선생님이 치료실로 오라고 하셨어요.” 구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미 다양한 치료에 대해 무감각해진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배테랑 전문가가 구현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소리로 구현에게 속삭였다. 구현의 귓가에 규칙적으로 울리는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구현은 왠지 모르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서 천천히 눈이 감겼다. 구현에게 어렴풋이 서예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오래전 서예는 소녀의 얼굴에 아직 젖살이 있었고, 청순하고 귀여웠으며, 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구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구현 씨, 내가 스무 살이 되면 우리 결혼할까?” “구현 씨, 사랑해.” “구현 씨, 우리 헤어져.” “우리 이혼하자.” “아파. 나 배가 아파.” ... 똑딱거리는 소리가 사라지며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구현을 현실로 끌어당기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몸은 사시나무 떨듯 움츠러들어 있었고 주먹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마디는 하얗게 변했다. 차가운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니 온통 눈물로 가득했다. 구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서예야, 잘못했어. 제발 돌아와, 서예야, 내가 잘못했어.” 억누를 수 없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참 동안, 구현은 눈을 감은 채 일어나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얼굴빛은 사색이 되었다.베테랑 전문가가 구현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축하합니다. 퇴원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구현은 손이 계속 떨려서 하마터면 물을 쏟을 뻔했다. “고맙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기승연이 요양원 입구에 서서 구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 대표님, 먼저 호텔에 가서 좀 쉬시겠어요? 이모님이 방금
저녁 무렵, 다행히 이수는 구급치료를 받고 몸 상태가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구현은 피곤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문에 들어서자 뜻밖에 구현의 부모가 거실에 앉아 있었다. 구현은 너무 의외라 좀 놀랐다. “아빠, 엄마, 여긴 어쩐 일이세요?” 구현의 어머니 최여진이 구현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쩐 일이긴, 아들이 보고 싶어서 왔지.” 문태규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잘 아는 정신과 선생님께 연락해 놨어. 지금 같이 가보자.” 구현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문태규는 일어서서 와인잔, 그릇, 젓가락 등 각각 두 개씩 놓여있고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집에서 이렇게 해놓고 뭐 하는 거야?” 또 꽃과 풍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거는 또 뭐고?” 구현은 조용히 대답했다. “어제가 서예 생일이었어요.” “죽은 사람이 무슨 생일이야?” 문태규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최여진은 구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문태규를 밀치며 말렸다. 구현이 반항하듯 말했다. “서예는 늘 건강하게 잘 있어요.” 문태규는 너무 화가 나 몸을 떨었다. “너 아주 미쳤어?” 이어서 전화를 걸었다. “모두 들어와. 와서 구현이를 차에 태워.” 하지만 아무도 구현을 데려갈 수 없었다.구현의 주먹에 사람들의 피가 맺혔고, 문태규의 사람들은 감히 구현을 다치게 할 수 없어서 그에게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문태규는 손에 든 지팡이로 구현의 뒷덜미를 세게 내리쳤다. 구현은 신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구현이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묶여 있었고 좌우에는 각각 문씨 집안의 경호원들이 보호하고 있었다. 차창 밖에 스쳐 지나가는 경치를 보며 그는 머릿속에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서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향해 웃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차는 천천히 시내를 떠나 교외의 설악산 기슭에 멈춰 섰다. 희미하게나마 ‘안심요
정재의 얼굴에 약간의 희색이 감돌았다. “닥쳐!” 구현은 충혈된 눈을 하고 다섯 손가락으로 정재의 목을 잡아 조였다. 그의 얼굴에 핏줄이 서고 얼굴빛이 파랗게 질렸다. 거의 기절할 듯한 정재가 힘겹게 웃으며 입을 열어 말을 했다. “당신이... 직접 봐... 병원에 가서 그 사람의... 입원기록, 병원... 거짓을 꾸미지 않을 테니.” 사실 구현도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저 그는 어떻게든 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문 대표님, 무슨 일이신가요?” “이 선생님, 이수에게 심장을 기증한 사람이 대체 누군가요?” 이익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기증자 분이 자신이 심장을 기증한 걸 다른 사람이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미리 말했기 때문에...” 구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기증자 이름이... 주서예인가요?” 이익규는 구현이 어떻게 이름을 아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익규의 표정으로 구현은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현은 갑자기 힘이 빠졌다. “기증 계약서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기증자가...” “제 아내거든요.” 이익규는 놀란 표정으로 이제 알겠다는 듯 돌아서서 기증 계약서를 꺼냈다. 기증 계약서 말미에 “주서예”, 분명한 세 글자의 서명이 있었다. 구현은 갑자기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빙빙 돌았고, 그의 주변의 모든 것이 “쾅”하며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는 충격으로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이익규가 말했다. “문 대표님, 이건 서예 씨의 개인 소지품입니다. 어제 어머니께서 재수 없다고 처리해 달라고 하셨는데, 최 선생이 누가 찾으러 올 거라고 해서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왕 오셨으니 같이 가져가세요.” 이익규는 몸을 돌려 밀봉된 봉투 하나를 꺼냈는데, 그 안에는 휴대폰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그날 밤. 구현은 서예와 함께 있는 꿈을 꾸었는데, 심장 박동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녀가 생생했다. 서예가 가슴 아파할 때, 구현이 말했다. “왜 아픈 게 네가 아니야? 왜 죽
비행기가 착륙하고 기승연이 구현의 캐리어를 찾아 차에 실었다. “병원으로 가주세요.” 구현이 밖을 내다보니 태양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에서 익숙한 벨소리가 들리며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서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어디 갔는데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구현은 서예와 통화하는 걸 포기하고 이수의 수술 경과에 대해 물었다. “이수 씨의 수술은 현재 몇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어요. 대표님이 병원에 도착하시면 거의 끝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의 수술 과정은 매우 순조롭다고 들었어요.” 기승연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구현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차는 금방 S병원에 도착했고, 구현은 외래 진료동을 지나 입원실로 향했다. 막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할 때, 옆쪽 계단 문이 열리며 의료진이 이동 병상을 밀고 나왔다. 구현은 무심코 그 병상을 한 번 훑어보았다. 위에는 흰 천이 덮여 있었고 흰 천 밖으로 여자의 손이 늘어져 있었다. 가냘프고 크지 않은 손에 손가락은 길고, 손 옆에는 작은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 순간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려서 구현은 걸음을 멈추고, 도대체 병상의 여자가 누구인지 생각했다. “선생님, 타실 건가요?”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순간 구현은 갑자기 멍해졌다. ‘내가 미쳐서 헛것이 보였나? 왜 방금 전 그 손의 주인이 서예라는 생각이 들었지?’ ‘서예의 손 옆에도 검은 점이 하나 있었지만 서예는 왼손에 일 년 내내 결혼반지를 끼었고 한 번도 뺀 적이 없었어.’ ‘아까 그 손에 반지는 없었잖아? 그럼 서예일 수 가 없지.’ 구현은 엘리베이터에 타서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이수는 막 수술을 마친 상태였는데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수술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수의 각종 신체 지표도 매우 안정적이어서 구현은 병실 밖에서 서성거리며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휴대폰으로 서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
‘이수에게 내 심장을 이식할 수 있다고?’ 서예는 고개를 들고 감격스러움을 감추며 가고 있는 구현에게 소리쳤다. “잠깐만.” 구현이 고개를 돌리자 서예는 그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기다려.” 말을 마친 후, 서예는 그대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조그만 선물 상자를 들고 쏜살같이 다시 내려왔다. “이건 당신 선물인데, 넥타이야.” 서예의 장이 순간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지만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구현이 넥타이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 “내가 오늘 입은 정장과 이 넥타이는 어울리지 않아.” 서예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중에 매 봐, 나중에. 아마 난 이제 당신에게 이런 물건을 줄 기회가 없을 테니까.” 구현은 잠깐 멍하니 있었다. 예전이라면 망설임 없이 서예가 준 물건을 버렸지만 오늘 그는 천천히 선물 상자를 받아 들더니 그윽한 눈으로 서예의 눈을 바라보았다. 서예가 고개를 숙이고 구현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구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 S병원. 서예는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불과 보름 만에 살이 무섭게 빠져버렸다. 휴대폰 벨이 울리자 간호사가 휴대폰을 그녀 앞으로 건넸다. 발신자의 이름을 본 그녀의 눈에 웃음기가 돌았다. ‘3년여 만에 처음으로 구현 씨가 먼저 내게 전화를 했네.’ 구현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던 서예는 부르르 떨며 산소마스크를 벗고 전화를 받았다....통화가 끝나고 휴대폰이 서예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간호사가 허둥지둥 다시 산소마스크를 해주었지만 서예는 눈앞이 아찔했다. 병상 옆에서 그녀의 손을 힘껏 잡고 눈물을 참는 정주에게 서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배, 내일 뜨는 해도 보고 싶고, 이렇게 전화도 다시 받고 싶고, 나...” 하지만 서예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서예는 이어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뜻밖에도 영혼이 몸에서 나와 천장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정주가 뼈만 남은 자신의 몸을 안고 큰소리
한 남자가 서예가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몸집이 크며 잘 웃었지만 그의 웃음은 서예로 하여금 볼 때마다 소름 끼치게 했다. 그녀는 상대의 목에 거친 흉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육정재.” 서예는 눈을 감고 힘없이 그의 이름을 말했다. 육정재는 서예를 향해 웃으며 목에 난 흉터를 가리켰다. “문구현이 한 짓이야. 내가 이걸 어떻게 복수해야 할까?” 문득 3년 전 육정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만약 네가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난 문구현을 죽일 수 도 있어.” 만약 문씨 집안에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서예는 육정재의 말이 전혀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육씨 집안의 사업은 그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문씨 집안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육씨 집안의 말 한마디로 구현은 실의에 빠질 수 있었고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서예는 가볍게 웃었다. “육정재, 넌 당해도 싸.” 육정재는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지? 문구현을 믿고 이러는 건가? 내가 알기로 문구현은 네 친구인 심이수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는데?” 서예는 육정재와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몸을 돌려 가려고 했을 때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집, 정문 앞. 서예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녀의 복부는 여전히 은근하게 아팠다. 너무 피곤해서 눈을 뜨고 싶지 않았지만 구현과 정재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구현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육 대표님, 용기 아주 대단하시군요. 무슨 일로 감히 직접 여기까지 온 거죠?” “서예를 데려다주려고요. 잠들었거든요.” 정재가 건들거리며 대답했다. “네? 잠이 들었으면 대표님 집에나 데려가지 뭐 하러 제가 있는 곳으로 왔어요? 대표님은 서예가 내 뭐라도 되는 줄 아시나 봐요? 전 지금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요. 함께 있어 주든 알아서 하세요.” 구현의 무관심한 목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자
깊은 밤, 주서예는 손으로 은근히 아파오는 배를 문지르며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고통으로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간헐적인 통증으로 인해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서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 밖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는데 문구현 같았다. 그녀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문고리를 꽉 잡고 문을 열었다. “구현 씨.” 구현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예의 마음이 아팠다. 구현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냉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오는 거야? 밥은 먹었어?” 서예는 구현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말투로 물었다. 그러나 구현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그대로 다시 돌아서 갔다. 남자의 반응에 서예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서예는 비틀거리며 구현을 따라잡아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입술을 물어 피가 날 지경으로 복부의 통증이 심해져 거의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이거 놔!” 구현의 눈빛에 사나운 기색이 짙게 보였다. 서예는 그 순간 소매를 잡은 손의 힘을 빼며 그의 옷자락 끝을 조금 잡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구현 씨, 나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너무 늦었지만, 병원에 좀 데려다 줄 수 있을까?” 만약 낮이었다면 서예는 구현을 절대 귀찮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현은 돌아서서 고개를 숙여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서예, 너 연기실력이 점점 느네? 나한테 보여주려고 연습 많이 했나 봐?” 구현은 소매를 잡아당겨 서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 “네가 나를 배신한 그날부터 난 너를 평생 용서하지 않기로 맹세했어. 그러니...” 구현은 잔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죽어 버려.” 서예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춘 듯 온몸을 떨었다. 그러나 구현은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바로 방으로 들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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