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에서 주인공으로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By:   노을  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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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만나온 남자친구랑 드디어 부부로 되던 날이었다. 결혼식 당일, 남자친구의 첫사랑이 찾아와 나 대신 신부 자리에 앉겠다고 했었다. 나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의 결혼반지를 끼꼬서 그녀는 세상 아련한 모습으로 나의 남자를 넘봤었다. “이현 언니, 저 많이 아파요.” “언니는 앞으로 평생 오빠 곁에서 행복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제발 결혼식만은 저한테 양보해주세요.” 그 소리를 들은 남자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편을 들었었다. “소이현, 욕심 좀 그만부려! 나랑 혼인신고도 하고 내 아이까지 품고 있잖아! 그 많은 걸 얻고서 결혼식 하나쯤은 양보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적나라한 하객들의 손가락짓까지 신부인 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렸었다. 하지만 난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덤덤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었다. 아이를 지우겠다고 산부인과에 예약을 하고나서 난 남친의 첫사랑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결혼식도 10년 동안 쓰다 남은 쓰레기도 너한테 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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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소이현! 너 미쳤어!”박지현의 손만 잡고 있던 나의 남자친구인 이정훈은 마침내 그 손을 놓고서 나를 잡아당기려고 했다.다가오는 정훈을 바라보면서 난 주저없이 그를 향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훈은 믿어지지 않는 듯 얼굴을 부여잡고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치맛자락을 살포시 들고서 지현은 바로 정훈에게 다가가 그를 확 끌어안았다.여린 몸이지만 자기 힘으로 자기 남자를 지키겠다는 듯한 의지를 보이면서.이윽고 지현은 연약한 모습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이현 언니, 이제 그만 화 좀 푸세요. 우리 오빠 제발 그만 때려요.”“결혼식도 웨딩드레스도 언니한테 돌려줄 테니 제발 그만 하세요. 저 그냥 홀로 외로이 죽을게요.”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으면서 지현은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를 벗으려고 했다.그러자 정훈이 그런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지현아, 이 웨딩드레스의 주인은 처음부터 너였어. 결혼식의 주인공도 오직 너 하나뿐이었고.”지현의 웨딩드레스를 꼼꼼히 정리해주면서 정훈은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전형적인 첫사랑의 이미지에 걸맞은 지현은 같은 여자가 봐도 청순하고 예뻤다.맞춤 제작이라도 한듯한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있는 지현은 ‘빛’ 그 자체였다.‘저 웨딩드레스는 내 것인데 왜 쟤한테 어울리는 걸까?’난 문득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던 그날이 생각났다.그날, 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여러 곳을 수선보려고 했으나 정훈은 맞춤제작한 웨딩드레스라 그럴 수 없다고 했었다.‘그런 거였구나... 처음부터 박지현을 위한 웨딩드레스였어...’어느새 나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모습을 정훈이 보게 되었다.“소이현, 이제 마음에 들어? 우리 지현이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워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네 뱃속에 있는 아이부터 생각해! 아빠 없이 키우고 싶지 않으면 늘 그래왔듯이 순순히 말 들어!”순간 결혼진행곡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두 화동이 꽃가루를 뿌리면서 두 사람 앞으로 꽃길을 깔아주었다.모두가 주목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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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소이현! 너 미쳤어!”박지현의 손만 잡고 있던 나의 남자친구인 이정훈은 마침내 그 손을 놓고서 나를 잡아당기려고 했다.다가오는 정훈을 바라보면서 난 주저없이 그를 향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훈은 믿어지지 않는 듯 얼굴을 부여잡고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치맛자락을 살포시 들고서 지현은 바로 정훈에게 다가가 그를 확 끌어안았다.여린 몸이지만 자기 힘으로 자기 남자를 지키겠다는 듯한 의지를 보이면서.이윽고 지현은 연약한 모습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이현 언니, 이제 그만 화 좀 푸세요. 우리 오빠 제발 그만 때려요.”“결혼식도 웨딩드레스도 언니한테 돌려줄 테니 제발 그만 하세요. 저 그냥 홀로 외로이 죽을게요.”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으면서 지현은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를 벗으려고 했다.그러자 정훈이 그런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지현아, 이 웨딩드레스의 주인은 처음부터 너였어. 결혼식의 주인공도 오직 너 하나뿐이었고.”지현의 웨딩드레스를 꼼꼼히 정리해주면서 정훈은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전형적인 첫사랑의 이미지에 걸맞은 지현은 같은 여자가 봐도 청순하고 예뻤다.맞춤 제작이라도 한듯한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있는 지현은 ‘빛’ 그 자체였다.‘저 웨딩드레스는 내 것인데 왜 쟤한테 어울리는 걸까?’난 문득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던 그날이 생각났다.그날, 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여러 곳을 수선보려고 했으나 정훈은 맞춤제작한 웨딩드레스라 그럴 수 없다고 했었다.‘그런 거였구나... 처음부터 박지현을 위한 웨딩드레스였어...’어느새 나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모습을 정훈이 보게 되었다.“소이현, 이제 마음에 들어? 우리 지현이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워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네 뱃속에 있는 아이부터 생각해! 아빠 없이 키우고 싶지 않으면 늘 그래왔듯이 순순히 말 들어!”순간 결혼진행곡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두 화동이 꽃가루를 뿌리면서 두 사람 앞으로 꽃길을 깔아주었다.모두가 주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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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한참 발버둥치고 나서야 난 겨우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계단을 내릴 때 그만 발목까지 삐긋하고 말았다.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미어지는 가슴에 이어 온몸으로 통증이 파고 들어왔다.‘웨딩 드레스뿐만 아니라 웨딩슈즈도 내 것이 아니었구나...’난 그전까지 이 모든 것을 정훈의 세심하지 못한 성격 때문이라고 여겼었다.고개를 들어 보니 정원에는 온통 하얀 장미와 스톡뿐이었다.그렇다, 그 역시 지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들이었다.‘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위한 결혼이 아니었어...’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서 정원을 지나 예식장으로 향했을 때 나의 발은 이미 다친대로 다쳐있었다.이제 발목까지 삐끗한 상황에서 다시 자갈로 가득 깔린 길을 걸어야 하니 가시밭이 따로 없었다.내 앞을 지나가던 도우미들은 나에게 시선 한번조차 주지 않고서 쟁반을 들고 연회장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그 누구도 날 부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예식장을 박차고 나왔을 때 내가 뒤돌아서자마자 그 누구도 나한테 관심을 보이지 말라면서 도와주지 말라면서 정훈이가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난 차라리 맞지도 않은 신발을 확 벗어버렸다.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신발을.따라서 맨발로 자갈 길을 걷게 되었고 서서히 반상출혈 현상이 나타날 때쯤 난 겨우 출구에 이르게 되었다.콜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은행 카드 잔액 부족으로 그럴 수 없었다.순간 먹구름이 우르르 밀려오면서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내릴 것만 같았다.‘잔액 부족? 그럴 리가... 매달 600만 원씩 월급이 들어올 것인데...’믿어지지 않은 상황에 난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잔액은 여전히 0원이었다.콜을 받고 온 택시 기사는 돈이 없어서 쭈뼛거리고 있는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돈 없으면 걸어서 다녀! 괜히 시간만 낭비하게 하고 말이야!”‘돈이 어디로 갔을까?’난 한참이나 생각했고 그 끝에는 뱀파이어와 같은 가족들이 서 있었다.가족의 지지와 사랑이 가장 필요할 시기인데 그들은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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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부상 입은 발목에 비까지 쫄딱 맞은 난 결국 고열에 시달리고 말았다.의사 선생님은 열이 내리고 난 뒤 수술을 해주겠다고 하셨다.갈 곳도 없고 하여 난 차리라 입원을 하고 말았다.그날 밤 정훈은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고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캐묻기 시작했었다.정훈의 옆에 있던 지현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으로 덧붙었다.[오빠, 이현 언니는? 아직도 밖이래? 동료 집에라도 간 거야? 그 회사에 남자들 엄청 많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오빠는 걱정도 안 돼?]그 말을 듣고서 정훈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넌 이현이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지? 개처럼 나한테만 달라붙고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야. 바람은 무슨...]그 말을 듣게 된 순간 이미 무너진 줄 알았던 내 가슴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예전에 정훈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난 그때 최선을 다해 정훈을 붙잡았었다.나의 진심에 마음이 흔들린 줄 알았건만 나를 떼어낼 수 없는 ‘개’로 보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훈의 말에 지현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웃기 시작했다.[오빠도 참! 두 사람 헤어졌을 때가 내가 방금 귀국했을 때 아니야? 혹시 나 때문에 헤어진 거였어?]그 말에 정훈은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그때 정훈은 나에게 깊이 생각하지 말라면서 넘어갔었다.“헤어지자고 말했던 거 진심이 아니었어. 난 너만 사랑해. 그렇지 않고서야 너랑 혼인신고할 일도 없잖아.”이러한 멘트를 순진한 나한테 날리면서 말이다.난 소리 없는 비웃음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다.마침 병실로 들어왔었던 간호사는 통화 내용을 대충 듣고서 동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같은 여자로서 내가 안쓰러워였을까 목소리도 한껏 부드러워졌었다.“수술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 한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발목만 괜찮으시면 내일 당장 수술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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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다음날, 난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수술실로 향했다.산부인과 병동이라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수술실에서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아이가 나오는 순간 가족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르르 다가가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살피면서 걱정해 마지 못했다.그 모습을 보고서 난 자기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고 고개를 숙인 채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간호사는 나의 그러한 모습에 내가 긴장이라도 한 줄 알고 핸드폰을 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난 영혼 없이 핸드폰을 손에 들고서 멍하니 넋을 놓기 시작했다.손가락은 어느새 SNS 스토리를 향해 누르고 있었고 마침 지현이가 정성껏 올린 스토리를 보게 되었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한 여행.]이러한 문구와 함께 손깍지를 하고서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두 사람이 보였다.비록 결혼식날에 난 이미 이 감정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었지만, 지현의 스토리를 보게 된 순간 어느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았다.평소 정훈은 사업으로 눈 코 뜰 새가 없었고 우린 결혼식을 한없이 뒤로 미뤄야만 했었다.따라서 결혼식도 신혼 여행도 난 미뤄지는 시간 동안 이내 기대하고 기다려왔었던 것이었다.그러나 수많은 기대의 끝에 이러한 실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었다.난 눈물을 닦고난 뒤 어느새 화면까지 적셔버린 눈물 방울을 닦으려고 했으나 그만 ‘좋아요’를 누르고 말았다.‘취소’버튼을 누르기도 무섭게 바로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소이현, 이번 신혼 여행은 원래 너랑 가려고 했었어. 근데 네가 고집부리면서 싫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이미 예약해놓은 코스를 취소할 수도 없잖아.]난 정훈의 연락처를 바로 차단해 버렸다.‘차라리 보지 않은 게 편해.’그러자 정훈은 계속 전화를 걸러왔고 엉겹결에 간호사가 나를 부르고 있는 걸 듣게 되었다.정훈은 그제야 내가 병원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관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소이현, 너 아파? 얼마나? 지금 갈까?]그러자 옆에서 말리고 있는 지현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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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정훈의 말을 끝으로 난 톡에 이어 그의 전화번호까지 차단해버렸다.내 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 길만큼은 조용하길 바랬으니 말이다.차갑기 그지없는 수술대에 누운 난,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순간 두 눈이 아플 정도로 조명이 켜졌다.지현은 계속 스토리를 올렸고 올리면 오릴수록 첨부된 사진은 점점 더 자극적이었다.내 아이가 나와 한걸음 더 멀어졌을 때, 지현은 최고가로 낙찰한 다이아몬드를 스토리에 올려 자랑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경매장에서 뜨겁게 키스를 나누었고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와 축하의 물결이 가득 넘치는 댓글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더 크게 노래했다.병상에 누워 있는 난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겨버린 것처럼 피가 멈추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병원에서 회복하고 있는 동안 정훈은 수없이 나한테 연락을 시도했었다.그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한 상황이라 정훈은 끝끝내 내 가족을 통해 나랑 연락이 되고 말았다.가족들은 병실까지 찾아와서 나를 귀찮게 몰아세웠다.내가 무슨 이유로 병원에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이현아, 너 애까지 달고 이혼할 거야? 정훈이랑 이혼한다고 한들 누가 널 받아줄 것 같아?”난 바로 반박해버렸다.“이혼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요. 전 그렇다 치고 아쉬운 건 아빠랑 엄마 아니에요? 돈줄이 뚝 끊어져서 불안해요?”“그게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내 사위 돈을 마음대로 쓰고 있는 것뿐이야! 너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아빠는 어이없게도 아주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그래요? 그래서 내 돈을 한 푼도 남겨주지 않고 모두 빼간 거예요? 비 오는 날 그깟 택시비 하나 없어서 비까지 쫄딱 맞게 하고! 당신들이 그러고도 내 부모야!”이내 쌓아두었던 서러움이 터지면서 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질렀다.아빠는 금세 뜨끔해하셨지만 동생은 여전히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그건 엄마랑 아빠가 응당 받아야 할 돈이야! 널 지금껏 키워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된다고.”엄마 역시 바닥에 주저앉고서 막무가내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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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정훈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소이현! 정신 차려! 주제 파악 좀 하란 말이야! 10년 동안 나한테 놀아난 네가 나 말고 널 원하는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아?”“너 아직 내 아이까지 품고 있어!”이윽고 그는 바로 쐐기를 박듯이 덧붙였다.“이혼해도 좋은데 그 전에 아이부터 지워.”한번 아이를 지우면 다시 아이를 품기 어려운 몸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물론 내가 아이를 좋아하고 단란한 가정을 그리워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정훈이다.따라서 내가 절대 어렵게 찾아온 이 아이를 포기할 리는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지현과 끝이 보이지 않은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서로 기대고 있을 때, 로망스 다리에 사랑의 자물쇠를 걸고 있을 때, 신혼 여행을 만끽하고 있을 때...우리 아이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승권을 손에 쥐고 있는 듯 자신만만해하는 정훈의 모습을 보고서 난 다소 가소롭기만 했다.“그냥 이혼해서 쟤한테 명분이라도 주는 게 좋지 않겠어?”“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더니... 소이현! 내가 몇 번이나 말해! 지현이 지금 엄청 아파서 죽기 전에 소원 성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때 지현은 가장에서 작은 선물 박스를 꺼내들면서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이현 언니, 저 진짜 정훈 오빠를 오빠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이것도 좀 받으세요. 언니한테 선물 주려고 챙겨온 거예요.”정훈은 흐뭇한 모습으로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현아, 지현이 좀 봐. 얼마나 착한지.”이내 짐을 챙기고 있던 난 그만 멈추었고 그런 나를 본 정훈은 내가 아이를 위해서 전처럼 타협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말하는 본세가 점점 기고만장해졌으니 말이다.“다시 한번 말해 줘? 아이 지워서 이혼하지 않을 거면 얌전히 이씨 가문 사모님으로 살아.”정훈은 매번 아이를 핑계로 삼아 날 협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난 이미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나 대신 지현이를 신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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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순간 정훈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떨리는 손가락으로 진단서를 꽉 쥐고서 여러 번 훑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은 표정이었다.심지어 지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붉어진 눈시울로 지시하듯 말했다.“읽어!”정훈의 그러한 모습에 지현은 잔뜩 겁에 질린 모습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3개월 된... 아이를... 유... 유산...”정훈은 진단서를 산산조각내면서 울분을 참으면서 나한테 소리를 질렀다.“사실 아니지? 거짓말이지? 그렇지?”“3개월 된 아이를! 소이현! 너 진짜!”윽박지르던 정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러한 정훈의 모습이 난 그냥 가소롭기만 하여 바로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바로 그때 정훈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나를 확 끌어안아버렸다.흩으러진 호흡은 불안하고 초조한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이현아, 가지마.”“이혼도 절대 안 돼.”“아이 지우지 않았지? 그렇지?”정훈의 목소리가 메우리 치기 시작했고 분노에서 서서히 두려움으로 두려움에서 애원으로 변해버렸다.“이현아, 제발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더 이상 할 말이 뭐가 있는지...난 다만 정훈의 요구대로 했을 뿐이고 양자택일에서 선택을 했을 뿐인데, 정작 출제자는 나의 답이 싫다고 한다.이제 와서 세상 다감한 척, 나를 위하는 척, 아이를 원하는 척 하고 있으니 가소로울 지경이다.난 그의 품에서 발버둥치면서 벗어났고 캐리어를 끌고서 나가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정훈은 경비에게 별장 전체의 비밀번호를 고치라고 지시를 내렸다.거의 미친 사람처럼 집안의 모든 도우미에게 지시를 내렸다.내가 떠날 수 없도록.“이현아, 넌 평생 내 곁에 있어야 할 거야. 아니, 꼭 그래야만 해.”“이정훈, 너 지금 나 감금이라도 하겠다는 거야?”난 두 눈을 부릅뜨고 그에게 물었다.정훈은 입술을 사리물고서 묵인했다.“이현아, 여긴 우리 집이야. 우리 둘만의 집이라고 그러니 여기에 있어. 그러면 안 돼?”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지현은 화가 잔뜩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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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 일이 있은 뒤로 정훈은 집으로 의사를 불러온 뒤로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난 그동안 아픈 척 연기를 하면서 도망갈 기회를 찾고 있었다.지현은 또 다른 계정번호로 나를 추가하였고 보란듯이 스토리에 두 사람의 다정한 사진을 끊임없이 올렸었다.물론 사진과 함께 올라온 문구에는 사랑이 가득 넘쳤다.난 그 어떠한 감정 기복도 없이 한장씩 넘겨보았고 한 장씩 저장했다.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주권을 선사하는 듯한 지현에게 난 댓글을 남겼다.[그동안 그 많은 수작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훈이한테 청혼 받지 못한 거야?]나의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진 지현은 바로 메시지 폭탄을 날리기 시작했다.별의별 욕으로 자기가 당한 모욕을 갚아주려는 모습으로.[네티즌도 그러잖아. 사랑받지 않은 쪽이 제삼자라고. 역시 대중의 시선이라 아주 정확하지?]지현은 득의양양했고 내가 오랫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자 곧바로 덧붙였다.[내가 그때 해외로 떠나지만 않았어도 너 같은 게 감히 오빠 옆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난 바로 답장을 보냈다.[그래? 그럼, 우리 자리 좀 바꿀래?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네가 도와주면 이 자리... 너 가져!]지현은 잠시 망설이더니 나의 제안을 거절해버렸다.[난 그냥 오빠가 널 이씨 가문에서 쫓아낼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 좋은 구경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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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며칠이 지나도 지현이가 원하던 장면은 일어나지 않았다.이씨 가문 도우미들은 국가 보물을 챙기듯이 매일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챙겨왔다.살이 조금이라도 빠지기라도 할까 봐 내가 조금이라도 다쳐서 정훈에게 욕먹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난 나를 향한 정훈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지현에게 그토록 부드럽고 자상한 모습을 보이면서 나에게는 귀찮고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그러나 그러한 모습과 달리 날 놓아주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전혀 반대되는 말을 하니 알 수가 없었다.심지어 지금은 날 카나리아처럼 별장에 가두어 놓고서 나랑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도무지 도망갈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아 난 아빠랑 엄마한테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상대로부터 전화가 먼저 왔었다.전화를 받자마자 정훈이랑 그냥 잘 살아라는 말뿐이었고 앞으로 재혼하기도 힘들다는 익숙한 소리였다.엄마는 울부짖으면서 나에게 자기 손자를 돌려달라고 책망하기까지 했었다.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았던 희망마저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그리고 난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정훈이랑 잘 살아볼게요.”듣고자 하는 대답을 들은 그들은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고 잘 생각했다면서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실은 또 다른 계획이 움틀거리고 있는 나였다.난 그날 밤 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 나랑 좀 있어주면 안 돼?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래.”그 말에 정훈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꾹꾹 누르는 모습을 보였다.그렇다, 실은 나의 가족에게 연락했었던 사람은 정훈이었다.그들이 나서서 나를 말리게끔 수를 썼던 정훈.이번에도 다를 바 없이 싸움의 끝에는 항상 내가 먼저 사과했었다.[알았어. 일 마무리하는 대로 바로 갈게.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수화기 너머 지현의 목소리로 어렴풋이 들려왔다.전복죽 맛이 어떠냐고 하는 지현의 물음이.난 문득 나에게 구애를 했었던 정훈의 예전 모습이 떠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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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화가 난 지현은 나에게 욕설로 가득 찬 메시지를 수없이 보냈다.미쳐서 날뛰는 지현과 달리 난 피식 웃었다.‘여하튼 내 목적은 달성했어.’난 바로 해외로 나갈 수 있게끔 도와만 준다면 지현과 합작할 의향이 있다고 제안했다.비록 욕설은 끊이지 않았지만 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부랴부랴 달려온 정훈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하얀 원피스를 입고서 세상 참한 모습으로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정훈은 간만에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이현아, 네가 그동안 억울하고 힘들었던 거 잘 알고 있어. 내가 앞으로 천천히 보상해줄게.”‘미친놈...’난 속으로 그를 욕했지만 바로 억울한 연기를 하면서 대사를 이어갔다.“여보, 나도 그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난 그래도 여보를 사랑하는 것 같아. 여보도 나 사랑하지?”정훈은 입꼬리를 씩 하고 올리면서 역시나 떼어낼 수 없는 개라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것만 같았다.그러나 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을 때, 그는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바로 나를 품에 안고서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으니 말이다.“이현아, 우리 다시 한번 아이 가져보는 건 어때?”말하면서 그는 나의 치마 속으로 손을 뻗었고 난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그때 마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거의 죽어가는 지현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나 너무 아파... 아파서 죽을 것 같아...]그동안 수없이 써왔던 핑계였고 쓰는 족족 걸려든 정훈이었다.내가 아무리 애원하고 붙잡아도 정훈은 늘 주저 없이 자리를 박차고 지현을 향해 달려갔었다.차갑기 그지없는 뒷모습만 남기고서 멘트는 매번 똑같았다.“아픈 사람이잖아.”“얼른 가봐.”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정훈이가 갔으면 했다.더는 그와 남녀 사이의 일을 파고들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특히 지난번 그 일 뒤로 난 피부가 망가질 정도로 샤워를 했었지만, 역겨움은 사라지지 않았었다.그러나 정훈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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