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친구는 어때?

네 친구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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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준은 이미 소문 난 온세은의 ‘충신’이었다. 그리고 송유주는 그런 최하준의 뒤를 따라는 ‘하인’ 같았다. 사람들은 최하준이 온세은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가 온세은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도 알았다. 매년 온세은이 생일을 쇨 때마다 최하준은 그녀에게 청혼을 했었지만 온세은은 거절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 애매한 태도만 보였다. 하지만 사실 최하준의 여자 친구로 알려진 건 온세은이 아닌 송유주였다.  그러나 송유주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한테 매달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봤다. 나중에 최하준이 다시 한번 온세은에게 청혼하자 그녀는 허락했고 그 소식을 안 송유주는 망설이지도 않고 최하준과 결별을 선언했다. 드디어 자유를 되찾은 송유주지만 최하준은 매일 찾아와 매달리며 온세은과는 가짜 결혼이라는 핑계를 댔다. 가짜든 진짜든 이제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송유주는 이미 신태호에게 시집을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말이다. 최하준은 도통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온세은과의 결혼 당일, 송유주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다른 남자한테 걸어가는 걸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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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신태호 씨, 저 당신한테 시집갈게요.”송유주는 그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소주 반병을 다 마셔버린 상태였다.수화기 너머에서 한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잔뜩 잠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몇 시인 줄 아십니까?”남자의 목소리에는 자다 깬 티가 역력했는데 짜증이 많이 난 것 같았다.미처 시간을 보지 못했던 송유주는 얼른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고 그때는 이미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죄송해요. 내일 다시 전화드릴 게요.”“네.”“아, 맞다!”“하지만 전 내일 해외 출장 스케줄이 있어요. 한 달 후에 제가 돌아오면 그때 혼인신고부터 해요.”“알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나서도 송유주는 멍한 상태였다.보름 전, 시골에 있는 숙모가 전화를 걸어와 남자를 한 명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숙모 말로는 그 남자가 이웃집 영숙 할머니의 손자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 강성시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그리고 지금은 복지가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자랑이 끊이지 않았는데 5대 보험은 물론 명절마다 회사에서 각종 선물도 챙겨준다고 알려줬다.그때는 대충 얼버무리고 넘길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날 밤 바로 소개받은 그 남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사실 전 연애할 시간도 맞선을 볼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괜찮으시다면 연애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결혼부터 하고 싶습니다.”‘제정신인가?’남자의 말을 들은 송유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였다.하지만 상대는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잘 생각해 보라는 말만 남긴 채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리고 그 후로 보름 동안, 송유주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 결국 남자의 제안에 승낙했다.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려고 검색창을 열자 여전히 떠들썩했다.[유명 여배우 온세은, 임신?]더 놀라운 건 상대가 이미 유부남이자 영화계의 ‘황제’라는 소문이었다.온세은이 불륜녀라는 오명을 쓰고 실검 1위에 오르자마자 최씨 그룹의 둘째 아들이 나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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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챕터
제1화
“신태호 씨, 저 당신한테 시집갈게요.”송유주는 그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소주 반병을 다 마셔버린 상태였다.수화기 너머에서 한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잔뜩 잠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몇 시인 줄 아십니까?”남자의 목소리에는 자다 깬 티가 역력했는데 짜증이 많이 난 것 같았다.미처 시간을 보지 못했던 송유주는 얼른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고 그때는 이미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죄송해요. 내일 다시 전화드릴 게요.”“네.”“아, 맞다!”“하지만 전 내일 해외 출장 스케줄이 있어요. 한 달 후에 제가 돌아오면 그때 혼인신고부터 해요.”“알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나서도 송유주는 멍한 상태였다.보름 전, 시골에 있는 숙모가 전화를 걸어와 남자를 한 명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숙모 말로는 그 남자가 이웃집 영숙 할머니의 손자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 강성시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그리고 지금은 복지가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자랑이 끊이지 않았는데 5대 보험은 물론 명절마다 회사에서 각종 선물도 챙겨준다고 알려줬다.그때는 대충 얼버무리고 넘길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날 밤 바로 소개받은 그 남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사실 전 연애할 시간도 맞선을 볼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괜찮으시다면 연애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결혼부터 하고 싶습니다.”‘제정신인가?’남자의 말을 들은 송유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였다.하지만 상대는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잘 생각해 보라는 말만 남긴 채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리고 그 후로 보름 동안, 송유주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 결국 남자의 제안에 승낙했다.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려고 검색창을 열자 여전히 떠들썩했다.[유명 여배우 온세은, 임신?]더 놀라운 건 상대가 이미 유부남이자 영화계의 ‘황제’라는 소문이었다.온세은이 불륜녀라는 오명을 쓰고 실검 1위에 오르자마자 최씨 그룹의 둘째 아들이 나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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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운천에 병원이 이렇게 많은데 꼭 저희 병원에 와야 돼요? 그것도 하필 저한테?”송유주는 그 말에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다음 날 아침, 온세은은 결국 병원에 왔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생 기자들에게 둘러싸였지만 병원에서 미리 보안팀을 배치한 덕분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거기에다 최하준이 옆에서 보호해 준 덕에 가까스로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사실 송유주는 이미 다른 산부인과 의사에게 환자를 넘긴 상태였다.그런데 온세은이 갑자기 송유주와 자기가 친구 사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맡기라고 했다.그렇게 각종 검사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다행히도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임신 주수는 10주 정도로 추정됩니다. 첫 번째 검사이니 검진 수첩을 발급받아야 합니다.”송유주는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최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발급 절차는 뒤쪽 벽에 붙어 있으니 절차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최하준은 한 번 힐끗 보더니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네가 좀 대신해 줘. 난 여기서 세은이를 지킬 거니까.”송유주는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대꾸했다.“죄송하지만 이 수첩은 임산부나 보호자가 직접 발급받아야 합니다. 저는 의사니까 그런 의무는 없어요.”“송유주, 지금 세은이 상태 안 보여? 네가 좀 이해해 주면 안 돼?”“모든 환자 보호자가 저한테 이해를 바라면 전 그냥 심부름꾼이겠네요.”그 말에 최하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너 진짜!”“다음 환자 들어오세요!”최하준이 뭐라고 더 말하려 하자 온세은이 나서서 그를 막았다.“송유주, 난 하준이을 너무 귀찮게 하고 싶진 않아. 그러니 너무 화내지 마.”송유주는 온세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온세은은 친구라는 명분으로 15년 동안 최하준을 옆에 두었다. 가까워지는 것은 거부하면서도 그가 멀어지려고 하면 다시 붙잡았다.최하준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마음과 헌신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세상엔 우리 그냥 친구라고 말했다.송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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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수많은 카메라와 생방송 중인 화면 속, 수천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최하준은 온세은에게 부드럽지만 애틋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키스했다.그리고 뒤에 서 있던 송유주는 그저 그들을 위한 배경이 되어버렸다.그 순간, 자신이 너무도 우스꽝스럽고 불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졌다.“이제 봤죠? 이래도 의심하겠습니까?”최하준이 눈을 번뜩이며 안으로 밀고 들어온 기자들과 사생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저희 연애사가 궁금하다고요? 좋습니다. 오늘 제대로 보여주죠!”“전 중학교 때부터 세은이를 짝사랑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고백했고 저희는 8년 동안 연애했습니다!”“그 8년 동안 전 오직 세은이만 사랑했고 앞으로도 평생 세은이만 사랑할 겁니다!”“세상에서 단 한 사람, 세은이만이 나 최하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그럴 자격 없고요.”열정적인 고백과 수많은 사람들의 실시간 목격.짝짝짝!이 순간, 유난히 선명하게 들리는 박수 소리.현장에 있던 모두가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하얀 가운을 걸친 송유주.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단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얼굴, 그리고 맑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송유주였다.그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기자들과 사생팬들, 그리고 주변의 구경꾼들까지 덩달아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그제야 최하준이 송유주를 바라보았는데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또 평소와는 다릴 어딘가 불안한 기색도 스쳤다.“최하준 씨 사랑이 정말 감동적이네요. 두 분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송유주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최하준의 얼굴이 굳어졌다.“네 축하 따위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그렇게 말하던 최하준은 온세은을 감싸안은 채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러자 곧 기자들과 사생팬들, 구경꾼들도 그들을 따라 나갔다.북적이던 사무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자 송유주는 허리를 짚고 의자에 앉았다.아까 부딪힌 곳이 여전히 쑤셔 셔츠를 들어 올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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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송유주는 그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최하준은 그녀를 뒤에서 단단히 끌어안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의 팔을 깨물었지만 이번에 최하준은 송유주의 턱을 움켜잡혔다.순식간에 송유주가 차 안으로 밀어 넣어진 뒤, 그는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명령했다.운전기사는 최하준의 전담 기사였다. 송유주를 알아봤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슬쩍 눈치를 살폈다.“이영결 아저씨, 저 사람 미쳤어요! 빨리 내려 주세요!”송유주가 다급하게 외쳤다.“도련님, 송유주 씨가...”“당신 월급 누가 주는지 까먹었어?”운전기사는 곤란한 듯 송유주를 힐끗 보더니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차를 출발시켰다.송유주는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러다 포기한 듯 점차 차분해졌다.“최하준 씨, 전 당신이랑 싸우고 싶지도 않아요. 저흰 이미 끝났어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요.”그러나 그는 코웃음을 쳤다.“끝났다고? 웃기지 마. 난 동의 안 해.”“최하준 씨는 이미 이세은이랑 결혼을 약속한 상태잖아요. 제발 저 좀 놔주면 안 돼요?”“안 돼.”“저기요!”최하준은 더욱 강하게 송유주를 끌어안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예전에 네가 내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었지? 좋아, 오늘 밤 바로 임신시켜 줄게.”“미쳤어요?”분노한 송유주는 손을 뻗어 있는 힘껏 그의 뺨을 내려쳤다.그러자 차 안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고 최하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송유주는 이미 눈가가 붉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울지 않으려 했다.그녀가 8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내뱉고 있다.최하준이 송유주에게 가졌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소유욕이었던 걸까?“전 당신한테 뭐였는데요? 그냥 공짜 가정부? 아니면 더러운 장난감?”송유주의 악에 바친 말에 그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네가 알아서 그렇게 해 준 거잖아. 누가 시켰냐? 스스로 싼 값에 굴러다닌 거지.”그녀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그래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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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송유주는 캐리어를 끌고 별장의 대문을 나섰다.도로 위로 쉴 새 없이 차량이 오갔지만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멍하게 그 풍경을 바라봤다.이곳은 8년 동안 그녀가 살던 곳이었고 평생의 안식처로 여겼던 공간이었다.이별을 결심하고 짐을 싸긴 했지만 아직 새로운 거처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그때, 휴대폰이 짧게 두 번 울렸다.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니 신태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지금 시애틀입니다. 오늘 날씨가 좋긴 한데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네요.][아침은 빵 한 조각 먹었는데 역시 입맛에 안 맞습니다. 전 중식을 좋아하는데 말이죠.][점심은 너무 바빠서 거르고 저녁엔 접대 자리라 아마 술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술자리 싫어하는데...]그가 보낸 문자는 다 별 의미 없는 일상 보고처럼 보였다.그녀는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의아해했지만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아, 그리고 전 그린 파워 8동에 삽니다. 그러니 유주 씨가 언제든 이사 와도 된다는 말이죠.거기가 앞으로 저희가 살 집이 될 겁니다.][만약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되고요.]그린 파워?그는 송유주와 같은 별장 단지에 살고 있었다.게다가 가까운 거리였다.송유주는 곧장 8동 앞에 도착해 신태호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문이 열리자 이내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집 안은 그녀가 있던 별장과 구조가 비슷했지만 인테리어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그녀가 살던 곳은 따뜻한 색감과 소품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반면, 이곳은 검은색과 흰색이 주를 이루는 단조로운 공간이었다.심지어 거실에는 소파조차 없었다.‘정말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송유주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봤지만 위층도 마찬가지였다.세 개의 침실 중 오직 안방에만 침대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옷장도 없고 다른 가구도 없었다.그녀는 신태호가 이곳에서 거의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했다.대충 기본적인 인테리어만 해 두고 생활용품조차 마련하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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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최하준은 그녀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다른 사람한테 시집간다고?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네가 누군데? 넌 시* 내 여자 친구야. 그런 네가 누구한테 시집간다는 거야? 내가 아까 분명히 말했지? 내가 너랑 결혼해 준다고! 그럼 넌 시* 로또 맞은 거라니까?”최하준은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바닥에 굴러다니던 맥주를 집어 들었다.그리고는 태연하게 캔 뚜껑을 따더니 고리를 힐끗 내려다봤다.그는 웃긴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송유주의 손을 거칠게 잡아 그녀의 중지에 그 맥주 캔의 고리를 끼워 넣었다.“자, 이제 믿겠어?”송유주는 자신의 손가락에 강제로 끼워진 고리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었다.그가 대체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고작 캔 뚜껑 하나를 결혼반지 대신이라며 내밀 수 있단 말인가.송유주는 손을 들어 끼워진 고리를 빼내고는 가볍게 던져버렸다.“온세은 씨한테 줘요. 전 그럴 자격 없으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뒤돌아섰다.“내일 아침 9시, 구청 앞에서 기다릴 거야! 시*, 안 온다면 두고 보라고. 내가 뭔 짓을 하는지.”최하준은 떠나가려는 그녀의 뒤에 대고 고함을 질렀지만 송유주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송유주!”급히 뒤따라 나오는 허종수의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했다.“하준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래. 너도 알잖아. 그냥...”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사실 허종수도 알고 있었다. 최하준이 이번엔 정말 선을 넘었다는 것을.“온세은한테 걔가 아니라도 된다는 걸 보여줄 거야! 걔가 날 거절해도 상관없어! 나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최하준의 고함이 안에서 울려 퍼졌고 그걸 들은 송유주는 피식 웃었다.“보세요. 하준 씨는 저와 결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단순히 온세은 씨에게 분풀이하려는 것뿐이에요.”“그렇지만 하준이랑 온세은 씨는 잘 안 맞아.”“그건 제 알 바 아니에요. 다만 정말 절 친구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를 존중해주세요. 저랑 최하준 씨는 끝났으니까.”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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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병실에서 나온 송유주는 이미 웅크리고 앉아 있는 최하준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어젯밤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아 피를 꽤 흘렸고 화까지 잔뜩 났었다. 간신히 병원에서 나와 쉬려고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바로 병실까지 달려왔다.속도 상하고 화도 나면서도 밤새 곁을 지킨 걸 보면 참 지독하게도 사랑한다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그런데 예전엔 왜 몰랐을까? 어리석게도 송유주는 이런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세은이는 좀 어때?”최하준은 그녀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헝클어진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손목 상처는 깊지 않더라. 죽을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송유주가 담담하게 말했다.“너 말투가 왜 그래?”최하준이 얼굴을 찌푸렸다.“사실을 말했을 뿐이야.”최하준은 온세은을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어제 내가 너랑 결혼하겠다고 했으니 너도 엄청 기뻤겠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신분증이랑 가족관계증명서 챙겨서 구청까지 갔는데 내가 안 오니까 화가 나서 지금 말투가 이런 거고.”송유주는 가만히 최하준을 바라봤다.‘정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네.’“조금만 기다려. 세은이 일이 먼저 정리되면 그때 우리 얘기를 하자.”송유주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어젯밤 당신이 저한테 프러포즈한 일, 이미 온세은 씨한테 말해 줬어요.”“뭐?”최하준이 인상을 찌푸렸다.“그걸 왜 말해? 지금 세은이한테는 내가 필요하잖아!”“왜요? 저랑 결혼할 거면서 숨길 생각이었나요?”“그... 그래도 내가 직접 말해야지.”“그래요. 어디 한번 잘 설명해 보세요.”그렇게 말하곤 송유주는 뒤돌아서 떠나갔다.한쪽은 결혼하겠다고 하고 다른 쪽은 보상해 주겠다고 한다.‘웃기네. 나를 개처럼 갖고 노는 건가?’‘좋아, 어디 끝까지 한번 지켜보지. 대체 어떤 수작을 부리려고 저러는지.’오전 진료를 끝낸 송유주는 조민희와 함께 병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어젯밤 온세은 씨 자살 소동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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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바로 이랬다.[최씨 그룹 차남의 불륜! 온세은, 사랑을 위해 자살 시도?][의사도 불륜 저지르네, 진짜 대단하다.][딱 봐도 남자 유혹하는 얼굴이잖아.][하얀 가운 입으면 의사 벗으면 걸레지.][뭐야, 온세은 발 씻겨줄 자격도 없는 여자잖아.][온세은이 저 여자 때문에 자살 시도 한 거였어?][최씨 그룹 차남이 저 여자한테 홀렸다가 이제 정신 차리고 돈으로 떼어내려고 했는데 저 여자가 덤벼든 거네? 대체 얼마나 뻔뻔하면!][나 저 여자 알아. 운진 병원 의사잖아. 성은 송 씨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운진 병원이 최씨 그룹 계열사라던데? 설마 침대에서의 기술로 의사 자리 얻은 거 아니야?][이런 인간이 무슨 의사야. 운진 병원은 당장 저런 인간 말종 해고해라!]댓글들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온세은의 팬들이 대부분이었고 사실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송유주를 불륜녀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었기에 송유주는 몇 개만 읽고 바로 창을 닫아버렸다.처음 검색어 13위였던 기사가 순식간에 1위로 올랐다. 그것도 폭발태그가 붙어 있을 정도로.“이거 온세은 팀이 직접 나선 거네. 돈 주고 검색어 상위권에 올린 거야.”조민희가 냉정하게 분석했다.“그런데 이게 뭐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돈까지 써서 검색어를 올려?”송유주는 이해가 안 갔다.그러자 조민희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내가 이런 팬카페에서 오래 굴러서 아는데 온세은 쪽에서 이 영상으로 자기 스캔들을 덮으려는 거야. 아까 내가 말했잖아? 온세은이 자살했다는 게 밝혀지자마자 네티즌들이 배 속 아이의 아버지가 이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의심했잖아. 이희성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자살을 시도한 거라고.”“그러니까 나를 총알받이로 세운 거야?”“딱 들어맞잖아. 지금 여론이 확 바뀌었어. 다들 온세은을 욕하다가 이제 너를 욕하기 시작했으니까.”“난 연예인도 아닌데?”“바로 그거야. 네가 연예인이 아니니까 방어막이 없어. 아무도 너를 변호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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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송유주는 사실 자신의 주량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취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었다.하지만 술집에서 나오니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고 거리는 한산했다. 차도 사람도 드문 시간 집으로 가려면 꽤 걸어야 하는데 이 길에서는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난간을 잡고 계단을 내려서며 정신을 가다듬으려던 순간,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차가 멈춰서자 송유주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시 술집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차에서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내렸다.“송유주 씨 맞으시죠?”그는 몇 걸음 거리를 두고 예의 바르게 물었다.송유주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네, 그런데요?”남자는 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신 선생님의 운전기사입니다. 제 성은 우입니다. 신 선생님께서 저더러 송유주 씨를 모시고 가라고 하셨습니다.”‘신 선생님? 신태호?’송유주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역시나, 신태호가 미리 메시지를 남겨두었다.[우씨 아저씨가 데리러 갈 겁니다. 조심히 들어가서 쉬십시오.]그제야 송유주는 긴장이 풀렸다.“늦은 시간에 피해를 끼쳐 죄송합니다.”“아닙니다. 전혀요. 언제든 불러 주세요.”운전기사는 넉넉한 체격에 인상도 푸근했다.그러나 차에 타고 나니 의문이 들었다.신태호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고위직이라 해도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전속 기사를 둘 정도였나?“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든 필요하시면 부르시라고. 운전이든 다른 일이든 도와드릴 테니 망설이지 말라고요.”“알겠습니다.”송유주는 의아한 마음은 들었지만 더 깊이 캐묻지는 않았다.집에 도착한 후, 신태호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솔직히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몇 분 뒤 바로 문자가 왔다.[잘 자요. 푹 쉬십시오.]송유주는 키득거리며 답장을 보냈다.[잘 자요. 아니, 좋은 아침.]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침실 창문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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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30분 후, 온몸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로 송유주는 다른 병동으로 향했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힐끔거리며 수군댔지만 그녀는 곧장 8층 VIP 병실로 올라갔다.병실 문을 열자, 온세은은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언가 재미있는 걸 본 듯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송유주는 그대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제야 온세은은 그녀를 발견했는지 고개를 돌렸다.“송유주, 너 이게 무슨 꼴이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유주는 먹물 대신 잉크병을 그대로 온세은에게 던졌다.하지만 그 순간,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최하준이 몸을 틀어 막아섰고 잉크는 그의 등에 떨어졌다.그리고 최하준의 순백의 셔츠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었다.“꺅!”온세은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최하준은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너 미쳤어? 지금 뭐 하는 거야!”그제야 그의 시선이 송유주의 모습에 닿았다.그는 잉크 범벅이 된 그녀의 모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대체 네 몸은 왜 그래?”송유주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속이 터질 것 같았고 가슴이 턱 막혀 왔다.눈물이 차올랐지만 울고 싶진 않았다.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보안팀! 보안팀 빨리요!”온세은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그녀가 보고 있던 재미있는 영상은 바로 송유주가 여자에 의해 먹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었다.최하준도 그제야 핸드폰 화면을 봤고 순간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팬들이 좀 지나친 건 맞지만 세은이가 시킨 건 아니잖아. 네가 너무 감정적으로 구는 거 아니야?””뭐라고요?”결국, 그녀가 비합리적이라는 거였다.송유주는 터질 듯한 분노를 억누르며 외쳤다.“그 영상은 편집돼서 올라갔어요. 방향성도 뻔히 보이잖아. 이게 온세은 씨 팀의 짓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당신이 관심 있다고 떠들던 기사들은 왜 정정하지 않는 거죠? 왜 팬들이 절 공격하는데 가만히 있는 거냐고요!”“너는 연예인도 아니잖아. 인터넷에서 욕 좀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냐?”“내가 왜 쟤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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