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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작가: 야채전
송유주는 사실 자신의 주량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취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술집에서 나오니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고 거리는 한산했다.

차도 사람도 드문 시간 집으로 가려면 꽤 걸어야 하는데 이 길에서는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

난간을 잡고 계단을 내려서며 정신을 가다듬으려던 순간,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차가 멈춰서자 송유주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시 술집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차에서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내렸다.

“송유주 씨 맞으시죠?”

그는 몇 걸음 거리를 두고 예의 바르게 물었다.

송유주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네, 그런데요?”

남자는 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신 선생님의 운전기사입니다. 제 성은 우입니다. 신 선생님께서 저더러 송유주 씨를 모시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신 선생님? 신태호?’

송유주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역시나, 신태호가 미리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우씨 아저씨가 데리러 갈 겁니다. 조심히 들어가서 쉬십시오.]

그제야 송유주는 긴장이 풀렸다.

“늦은 시간에 피해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혀요. 언제든 불러 주세요.”

운전기사는 넉넉한 체격에 인상도 푸근했다.

그러나 차에 타고 나니 의문이 들었다.

신태호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고위직이라 해도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전속 기사를 둘 정도였나?

“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든 필요하시면 부르시라고. 운전이든 다른 일이든 도와드릴 테니 망설이지 말라고요.”

“알겠습니다.”

송유주는 의아한 마음은 들었지만 더 깊이 캐묻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 신태호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몇 분 뒤 바로 문자가 왔다.

[잘 자요. 푹 쉬십시오.]

송유주는 키득거리며 답장을 보냈다.

[잘 자요. 아니, 좋은 아침.]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침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바깥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테라스로 나가보니 저쪽 빌라 앞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최하준과 임우빈이 문을 두드리며 씨름하고 있었다.

“형, 여긴 형 집인데 왜 비밀번호를 몰라요?”

임우빈이 어이없다는 듯 최하준을 쳐다봤다.

“나는 걔가 집에 있을 때만 왔어. 그냥 초인종 누르면 문 열어줬거든.”

“그럼 지문 등록은요?”

“안 했어.”

임우빈은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그럼 방법이 없네요. 유주 누나한테 전화해 봐요. 형이 직접.”

“차단당했어!”

“그럼 할 수 없죠.”

“네가 걸어.”

“제가요?”

임우빈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형 일이랑 엮여서 제가 또 전화하면 누나가 저랑 절교한댔어요!”

“절교든 뭐든 상관없어. 걸어.”

“형은 누나랑 헤어져도 되지만 저는 절대 안 돼요!”

“임우빈, 맞고 싶냐?”

하지만 임우빈은 되려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형, 다시 생각해 봐요. 비밀번호, 혹시 두 사람과 관련된 기념일 아니에요? 사귄 날이라든가?”

잠시 고민하던 최하준이 뭔가 떠올린 듯 중얼거렸다.

“사귀기로 한 날이었던 것 같긴 한데.”

“그럼 됐네요. 입력해 봐요.”

최하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날인지 몰라.”

“형 진짜... 중요한 날 많아도 그건 기억해야죠.”

“별거 아니잖아.”

“하... 160805.”

최하준은 임우빈의 대답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떻게 알았어?”

“그날이 누나 생일이잖아요. 생일날 고백했고 누나가 받아줘서 사귄 거라면서요. 저랑 종수 형도 옆에서 보고 감동받았다고요.”

“유주 생일?”

“네. 그런데 몇 년 사귀면서 생일 한 번 챙겨준 적 없죠?”

“그게 뭐 어때서.”

“근데 세은 씨 생일에는 매년 직접 파티까지 열어주잖아요.”

최하준은 임우빈을 노려보다가 결국 알려준 대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딸깍!

예상대로 문이 열렸다.

“형, 나중에 비밀번호 바꾸세요. 세은 씨 생일로 하든가, 아니면 결혼기념일로 하든가.”

“닥쳐.”

임우빈이 따로 연락하지 않았던 걸 보면 최하준과 송유주는 헤어졌지만 두 사람은 아직 우정을 잃지 않은 것 같았다.

그날 밤, 송유주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부모님의 집은 언젠가 꼭 다시 사야 할 것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최하준이 분명 그녀를 방해할 테니까.

‘결혼을 하고 나면, 신경 쓸 여력이 없겠지.’

‘그럼 그때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

아침이 되고 송유주는 열심히 진료를 보고 있었는데 조민희가 휴대폰을 들고 왔다.

“온세은 팀에서 공식 입장을 발표했어. 이희성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그리고 악성 루머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최씨 그룹 차남과는 대학 시절부터 연애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서로를 지켜왔다고.”

“서로를 지켜왔다고?”

“응. 바람을 피운 적 없다는 거지.”

송유주는 코웃음을 쳤다.

‘오래전부터 사귄 사이라며? 서로에게 충실했다고?’

“근데 자살 시도는 부정 안 했어. 다만 최근 힘든 일이 많았지만 결국 사랑하는 약혼자를 믿기로 했다는 내용이야.”

“뭔가 이상한데?”

“말장난이지 뭐. 이희성과의 스캔들은 부정하면서 너에 대한 해명은 안 했어. 오히려 너를 언급하면서 둘의 사이를 방해한 것처럼 몰아갔어.”

정말이지 딱 예상대로였다.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보니 그 예상이 더욱 명확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네. 온세은 담당 의사가 최씨 그룹 차남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했고 그 때문에 온세은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 거야!]

[의사라는 직업이 돈이 안 되니까 차라리 부자랑 결혼해서 놀고먹겠다는 거지.]

[역겹다. 운진 병원에서 당장 잘라야 해!]

조민희는 댓글들을 일다가 화가 나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너 가만히 있으면 얘네가 멈출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송유주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사실 송유주는 연예계 사람이 아니었으니 이런 구설수에 얽히기 싫었지만 조민희의 말 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줄 것이 뻔했다.

어떻게 일을 해결할까 고민하던 그때, 검은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생각을 정리하고 아무렇지 않게 환자를 맞이하는 송유주였다.

하지만 들어온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의아해진 송유주가 다시 말을 걸었다.

“환자분, 어디가...”

송유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가방에서 먹물을 꺼내더니 송유주를 향해 거침없이 던졌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송유주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하얀색 가운과 얼굴에 잔뜩 뿌려진 먹물은 닦아낼 래야 닦아낼 수도 없었고 조민희는 당황해하다 이내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보안팀! 보안팀 빨리 오세요.”

그러나 젊은 여자는 송유주를 보며 비꼬듯 말했다.

“저기요, 남자가 얼마나 없었으면 다른 여자의 약혼남을 뺏을 생각을 하는 거죠? 정말 부족하다면 길거리에 널린 아무 남자나 데리고 모텔 가세요. 그 남자가 당신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맘껏 즐기시던가. 그리고 안 바쁘면 거울이나 확인하시죠? 시*, 고작 그 얼굴로 우리 세은이한테 덤볐나?”

여자는 욕설을 퍼붓고는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먹물을 잔뜩 맞은 송유주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밖에는 이미 영상을 찍으며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요. 빨리 가세요! 얼른 가서 병이나 보이시라고.”

조민희는 얼른 문을 닫아버리고는 송유주의 비참은 모습에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는 젖은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며 물었다.

“유주야, 괜찮아?”

몇 번이나 닦았지만 옷은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먹물 있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송유주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송유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말했다.

“민희야, 지금 당장 먹물 하나만 찾아다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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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친구는 어때?   제10화

    30분 후, 온몸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로 송유주는 다른 병동으로 향했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힐끔거리며 수군댔지만 그녀는 곧장 8층 VIP 병실로 올라갔다.병실 문을 열자, 온세은은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언가 재미있는 걸 본 듯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송유주는 그대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제야 온세은은 그녀를 발견했는지 고개를 돌렸다.“송유주, 너 이게 무슨 꼴이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유주는 먹물 대신 잉크병을 그대로 온세은에게 던졌다.하지만 그 순간,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최하준이 몸을 틀어 막아섰고 잉크는 그의 등에 떨어졌다.그리고 최하준의 순백의 셔츠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었다.“꺅!”온세은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최하준은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너 미쳤어? 지금 뭐 하는 거야!”그제야 그의 시선이 송유주의 모습에 닿았다.그는 잉크 범벅이 된 그녀의 모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대체 네 몸은 왜 그래?”송유주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속이 터질 것 같았고 가슴이 턱 막혀 왔다.눈물이 차올랐지만 울고 싶진 않았다.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보안팀! 보안팀 빨리요!”온세은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그녀가 보고 있던 재미있는 영상은 바로 송유주가 여자에 의해 먹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었다.최하준도 그제야 핸드폰 화면을 봤고 순간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팬들이 좀 지나친 건 맞지만 세은이가 시킨 건 아니잖아. 네가 너무 감정적으로 구는 거 아니야?””뭐라고요?”결국, 그녀가 비합리적이라는 거였다.송유주는 터질 듯한 분노를 억누르며 외쳤다.“그 영상은 편집돼서 올라갔어요. 방향성도 뻔히 보이잖아. 이게 온세은 씨 팀의 짓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당신이 관심 있다고 떠들던 기사들은 왜 정정하지 않는 거죠? 왜 팬들이 절 공격하는데 가만히 있는 거냐고요!”“너는 연예인도 아니잖아. 인터넷에서 욕 좀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냐?”“내가 왜 쟤 대신

  • 네 친구는 어때?   제11화

    송유주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그 사진을 올렸다.[최하준과 나는 이번 달 초에 헤어졌다.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함께한 8년 동안 좋은 순간도 많았다.]이 짤막한 글과 함께 올라간 사진은 금세 검색어에 올랐다. 비록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조회수는 빠르게 늘어났다.조민희는 정신없이 댓글을 달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와, 너랑 최씨 그룹 차남이 진짜 사귀었구나.”송유주는 짜증 난다는 듯 조민희를 째려보며 물었다.“아니, 그럼 네 생각엔 내가 뭐였는데?”“난 네가 그냥 빚 받으러 다니는 채권자인 줄 알았지.”송유주는 피식 웃으며 조민희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녀는 미친 듯이 댓글을 달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악플이 그 위를 덮어버렸다.“하, 봐봐. 완전 팬들뿐이네. 팬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어.”“뭐?”“너 팬덤 문화 몰라서 그래. 전문어로는 공병이라고 하는데 자기들이 여론을 장악하면 모든 흑백이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거든.”조민희는 잠시 쉬며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이번 건 온세은 혼자 덮을 수 있는 수준이 아냐. 워낙 일이 커져서 그녀를 싫어하는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네 글이 검색어에 오른 것도 누군가 뒤에서 밀어줬을 가능성이 커. 기다려 봐, 점점 더 재미있어질 거야.”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사진을 훑어봤다.송유주가 올린 사진은 졸업식 사진이었다.앞줄 한가운데 학사 가운을 입은 최하준이 서 있었고 그 곁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송유주가 있었다.둘은 손을 꼭 잡고 마주 보며 웃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연인 사이가 분명했다.반면, 최하준의 반대편에 있던 온세은은 옆 친구와 함께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그때의 그들은 야망이 가득한 청춘이었다.아직 사회의 쓴맛을 알지 못했고 실망도 몰랐던 때, 눈빛은 터없이 맑았고 얼굴엔 생기가 가득했다.“야, 이 사진 보니까 확실히 네가 더 예쁘다. 온세은은 그냥 완패인데?”조민희가 혀를 끌끌 차며 계속 말했다.“그보다 이 사진 한 장이면 다 설명되지 않아?

  • 네 친구는 어때?   제12화

    이 영상은 몇 달 전, 온세은의 생일을 앞두고 촬영된 것이었다.당시 최하준은 송유주에게 연성시에서 가장 로맨틱한 프러포즈 장소가 어딘지도 물었었다.그녀는 정말 그가 자신에게 청혼하려는 줄 알았다.송유주가 좋아하는 곳은 블루스타 호텔 옥상 야외에 있는 카페였다.그곳은 야경이 아름다웠고 종종 프러포즈나 각종 연회가 열리는 곳이었다.그래서 그날, 퇴근 후 일부러 호텔에 들러 영상을 찍어 주려고 했었다.그런데 마침 온세은이 친구들과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그녀가 촬영하던 카메라에 우연히 잡혔다.“아까 매니저님이 프러포즈 가능하냐고 묻는 거 들었어요.”“하준 씨가 세은 씨한테 프러포즈라도 한대요?”“하하, 설마?”“내 생일이 며칠 안 남았어. 한번 내기할까? 과연 하준이가 네게 프러포즈할까, 아니면 너랑 만날까?”온세은의 도발은 우습기만 했다.이미 공식 연인이었던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에게 프러포즈할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만약 정말 프러포즈를 한다면 그건 너무 심한 모욕 아닌가?송유주는 온세은의 도발을 무시한 채, 다시 카메라를 돌려 풍경을 담았다.밤하늘엔 끝없는 별들이 떠 있었고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다.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사랑하는 사람이 보였다.그토록 낭만적인 순간이었다.그런데 그 순간, 온세은이 다시 카메라 앞에 나타나서 그 말을 남긴 것이다.그날은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녀는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고 오히려 바보 같은 건 자기 자신이었다.송유주는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내가 자동차 같은 존재라고?’“전 사진 한 장만 올렸어요. 이 영상을 공개하진 않았죠. 그게 너희한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겠으니까. 그러니까... 절 더 이상 우습게 보지 마세요.”최하준은 송유주의 말에 굳어버린 채, 여전히 테이블을 노려보고 있었다.마치 핸드폰 화면이 거기에 남아 있는 것처럼.그가 이세은의 눈에는 그저 조종하는 자동차일 뿐이었다는 걸 아마 최하준 자신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 네 친구는 어때?   제13화

    송유주는 문자를 확인하곤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실수를 정정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하지만 다시 보니 신태호는 이미 답장을 보낸 상태였다.[좋습니다.]딱 네 글자뿐인 답장을 송유주는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사실 방금 전 송유주는 최하준이 한마디 던진 결혼 선물이라는 말에 괜히 기분이 상한 거였다. 마치 그가 결혼하는 게 대단한 일이고 자기는 아무도 안 데려갈 사람처럼 말하는 게 짜증 났다.심지어 송유주는 자신도 곧 결혼한다고 말했었지만 최하준은 비웃으며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했었다.송유주는 술이 다 깨 이마를 툭툭 치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했다. 그때, 신태호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저희 가족들에게 결혼 날짜를 말해주니 다들 좋은 날이라고 하시네요.][그날이 좋은 날은 아닐 수도 있어요.]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왜죠?]송유주는 이를 꽉 깨물고 결심한 듯 이런 문자를 전송했다.[제 전 남자 친구도 그날 결혼하거든요.][그럼 저희가 더 성대하게 합시다. 유주 씨 전 남친이 기절할 정도로.][화 안 나세요?][왜 화를 내야 되죠?][혹시 제가 태호 씨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갑자기 저랑 결혼하겠다고 한 게 아무 이유 없을 리는 없겠죠. 만약 그 이유가 그거라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하는데 유주 씨는 분명 후회 안 할 거예요.]그 문자를 확인한 송유주는 휴대폰을 품속 깊이 넣었다. 마치 신태호라는 사람, 그리고 그가 한 말까지도 가슴속에 고이 품으려는 듯이.반쯤 먹던 죽이 식어가는 사이, 송유주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우씨 아저씨가 송유주를 깨웠을 때, 그는 이미 8동 앞이었다.“오늘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그가 돌아서는 걸 보며 송유주가 주춤거리다 입을 열었다.그러자 우씨 아저씨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무슨 귀찮기는요. 이게 제 일이죠. 송 선생님이 더 많이 불러주셔야 저도 돈을 많이 법니다.”아저씨의 말에 송유주는 웃으며 인사를

  • 네 친구는 어때?   제14화

    “송 선생님, 전 온세은 씨 매니저인 안은주라고 합니다. 절 안씨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온세은의 매니저는 연한 파란색의 정장 차림이었고 안경까지 끼고 있어 누가 봐도 커리어 우먼 같았다.안은주는 침대맡에서 송유주에게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했지만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받아주지 않았다.그러자 안은주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아직 서른도 안 되셨죠? 역시 너무 젊으시네. 일을 할 때는 충동적으로 하시면 안 돼요. 잘 생각해 보셔야죠.”송유주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제가 뭘 잘 생각해야 하는 거죠?”“예를 들어 인터넷에 올린 그 사진, 저희랑 먼저 상의를 나누고 올리셨어야죠. 그럼 저희 측에서도 사진에 대한 값을 매길 텐데요. 2억이나 3억은 작은 액수죠. 아, 맞다! 송 선생님, 한 달 월급이 어떻게 되시죠?”“사진 한 장이 그렇게 높은 가격에 팔리는군요?”송유주가 아쉽다는 듯 혀를 끌끌 차자 안은주가 계속 말했다.“사실 지금도 안 늦었습니다. 사람들한텐 일부러 그렇게 사진을 찍었다고 하시면 돼요. 진짜 상황은 송 선생께서 최하준 씨를 짝사랑해 억지로 그 사람 옆에 다가간 거라고 하시고.”“일부러 최하준 씨 손을 잡고 일부러 그 사람이 당신을 향해 웃게 만들었다고 하세요. 그럼 너무 가짜 같나요?”안은주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갔다.“송 선생님께서는 그냥 이렇게 말만 하시면 돼요. 사람들은 그저 유행을 따라가는 것뿐이고 진실은 중요치 않죠. 바람잡이만 잘해주시면 아무리 가짜 같은 일도 진짜가 되는 거예요.”송유주는 안은주의 말을 ‘경청’하다 너무 안타깝다는 듯 입을 열었다.“참... 안 됐네요.”“네?”“전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거든요.”안은주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돌려 온세은을 쳐다봤는데 마치 눈으로 이 사람은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들어보니까 송 선생님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다고요? 연성시에도 다른 친척은 없고... 맞으시죠?”안은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송유

  • 네 친구는 어때?   제15화

    “네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 알아. 하준이가 나랑 결혼하려고 해서 그렇지?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 그러니까 제발 인터넷에 그 사진에 대한 해명을 올려줘. 악플러들이 날 공격하지 않게 도와줘. 나 정말 못 버티겠어.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무서워.”온세은의 말에 꾹 참고 있던 송유주의 화가 폭발했다.“그러니까 넌 악플이 무섭고 네 커리어가 망가질까 봐 두려우니까 내가 대신 당해야 한다는 거야? 왜? 네가 잘못한 일은 네가 책임져야지.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너 대신 벌을 받아야 해?”“그럼 내가 너한테 무릎이라도 꿇어야 돼?”말하던 온세은이 실제로 무릎을 꿇으려는 듯 몸을 낮추려 했지만 최하준이 급히 그녀를 붙잡았다.“하준아, 송유주한테 부탁 좀 해줘. 송유주는 지금 내가 널 빼앗아서 날 미워하는 거잖아? 괜찮아, 우리 결혼하고 나서도 쟤가 널 계속 만나고 싶다면 난 못 본 척할게. 모른 척해 줄 테니까 제발!”그 말을 듣는 순간, 송유주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순간적으로 손을 올려 온세은의 뺨을 후려치려 했지만 최하준이 막아섰다. 그러자 그녀는 방향을 틀어 최하준의 뺨을 내리쳤다.“네가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날 이렇게 모욕하는 거야?”뺨을 맞은 최하준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날카로운 시선으로 송유주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순간, 입이 떼지지 않았다.“큰일 났습니다. 지금도 누가 정보를 풀고 있어요.”안은주는 휴대폰을 보다가 점점 안색이 어두워졌다.“세은아, 너랑 이희성 그 사람이 찍은 사진들이 온라인에 유출됐어. 그래서 지금 또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가고 있고.”그 말에 온세은은 침대 위로 힘없이 주저앉았다.“누가... 누가 저를 모함하는 거죠?”안은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직은 알 수 없어.”그때, 그녀의 휴대폰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10분 안에 송 선생님에 대한 모든 루머를 해명해. 그렇지 않으면 더 강력한 폭로를 하겠다.]문자를 확인한 안은주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최하

  • 네 친구는 어때?   제16화

    송유주는 다섯 글자를 입력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지워버렸다.신태호가 연예계 사람이 아닌 이상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최씨 집안의 거대한 자본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아마도 내가 온세은 팀에게 이렇게까지 당하는 걸 보고 못 참은 거겠지. 그래서 마침 손에 그 사진들이 있었던 사람이 공개한 거겠지.”송유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조민희는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걸?”최하준이 해명 글을 올린 뒤, 온세은 팀도 바로 대응에 나섰다. 먼저 송유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동시에 그녀와 이희성이 찍힌 친밀한 사진들도 신속히 정리했다.그리고 그날 오후, 온세은은 병원에서 도망가듯 퇴원했다.그렇게 잠시나마 평온해진 일상을 되찾은 송유주였다.퇴근 후 병원을 나섰을 때, 병원 앞에서 그녀를 향해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던 팬들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지하철에서 내린 후, 송유주는 꽃 한 다발을 사서 품에 안았고 금세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분이 들어 행복해졌다.그녀는 꽃을 찍어 자신의 인스타에 올리며 짧은 문구를 덧붙였다.[오늘 참 좋다. 난 오늘이 마음에 들어.]제일 먼저 송유주의 인스타에 ‘좋아요’를 누른 것도, 댓글을 단 사람도 육효은이었다.[오늘 네 눈빛이 빛나네. 드디어 쓰레기 본질을 제대로 봤구나. 최하준, 보고 있지? 지금 너 말하는 거야.]송유주는 육효은의 댓글에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이미 차단했어. 네 댓글 못 볼걸.]육효은은 선글라스를 낀 익살스러운 이모티콘을 보내더니 이런 글을 남겼다.[그럼 그 쓰레기의 친구들이 대신 전달해 주겠지.]그리고 밑에 달린 임우빈과 허종수의 답글.[뭔 말이에요? 전 이해 안 되는데.][나도 모르겠네.]그러자 육효은이 화난 이모티콘을 띄우며 말했다.“나 곧 연성시로 돌아갈 거야. 너희 둘 다 각오해!]송유주의 기분 좋은 감정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최하준이 사는 별장 앞을 지나가는 순간, 문

  • 네 친구는 어때?   제17화

    송유주는 바닥에 흩어진 햄과 육포를 바라보았다.이건 이모가 1년 동안 정성껏 준비해 보내준 것들이었다.하지만 다 쏟아져 버린 물건을 보자 송유주는 오서영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햄과 육포는 더럽지도 않고 냄새나지도 않아요. 더러운 건, 그리고 악취 나는 건 사람의 마음이죠.”“뭐라고? 네가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오서영이 손가락으로 송유주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나를 건드리는 건 곧 최씨 집안을 적으로 돌리는 거야. 네가 감히 연성시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운진 병원에서 나가! 연성시에서도 당장 꺼지고.”시원하게 고함을 지른 후, 오서영는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양연화에게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여긴 연성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빌라 단지야.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전에야 우리 아들 덕을 봐서 살았겠지만 이제는 네 수준에 맞는 곳에서 살아야지!”송유주는 더 이상 최씨 집안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육포와 햄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그리고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오서영을 무사하고는 성큼성큼 8동으로 걸어갔다.그 모습을 본 오서영은 비웃음을 터뜨렸다.“저거 봐. 결국 우리 아들 돈으로 산 집에서 사는 거잖아. 정말 자존심이 있긴 한 건지 원!”집으로 돌아온 송유주는 꽃을 화병에 꽂아 정리했고 꽃을 바라보니 마음속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았다.‘쓸데없는 사람들에게 화를 낼 필요가 있나.’바닥에 떨어졌던 육포와 햄은 깨끗이 씻은 후 베란다에 걸어두었다.그리고 택배 상자를 완전히 열어보니 안에는 말린 해산물도 함께 들어 있었다.그 해산물 포장지 위에는 짧은 메모 한 장이 붙어 있었다.[유주야, 나는 신태호의 할머니란다. 네 숙모한테 네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 우리가 아직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난 너를 참 좋아한단다. 태호가 그러길 네가 결혼을 승낙했다고 하더구나. 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너희가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내가 직접 해산물을 준비해 보냈단다. 태호가 요리를 잘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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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친구는 어때?   제70화

    신태호의 말에 따르면 송준수는 시도 때도 없이 버럭하는 게 습관이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한다.진미선도 행여나 그녀가 오해할까 봐 재빨리 말을 덧붙였고 송준수가 노총각이어서 결혼 얘기만 들으면 흥분한다고 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게 결론이었다.유민욱의 식당을 나서며 신태호는 그가 따온 대추를 전부 챙겼다.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햇볕이 잘 드는 방에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책을 읽으며 해가 지기 전 마지막 햇살을 즐겼다.원래는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으나 신태호에게 갑작스러운 약속이 잡혔다.“프로젝트 협력에 관한 일인데, 기회를 줄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송유주는 업무에 관련된 일이라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신태호가 집을 나서자 육효은이 허종수 가게에 술 마시러 가자며 전화를 걸어왔다.“지난번에 날 버리고 갔잖아.”송유주는 서운한 티를 냈다.“그때는 너무 많이 마셔서 정신이 없었어. 너한테 연락한다는 걸 깜빡하고 혼자 가버렸지 뭐야.”육효은은 차분하게 설명했다.“나 오늘 힘들어.”“네가 너무 보고 싶어.”“알았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그들이 술집에 도착했을 때 아직 영업을 시작한 상태는 아니었다. 가게 전체가 어두운 와중에 룸 하나에 이상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유주야, 여기.”육효은은 바에 앉아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송유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갔다.“오늘 영업 안 하는 날이야?”육효은은 유일하게 불이 켜진 룸을 가리키며 말했다.“종수가 그러는데 오늘 밤에 엄청 중요한 손님이 온대. 그래서 오픈을 안 했나 봐.”송유주는 육효은의 옆에 앉았다.“그럼 종수 씨도 저 안에 있는 거야?”“종수뿐만 아니라 임우빈도 있어.”육효은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최하준도 있고.”그 이름을 듣는 순간 송유주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나도 몰랐어. 그 인간이 여기에 있는 줄은.”육효은은 다급하게 말했다.“됐어. 신경 쓰고 싶지 않아.”송유주는 얼굴이 빨

  • 네 친구는 어때?   제69화

    “태호가 집안일 안 해요?”“아니요. 자주 도와줘요.”송유주가 말한 건 예전이었다. 최하준과 만나고 있을 때 모든 집안일은 그녀의 몫이었다.“남자는 버릇을 들이면 안 돼요.”진미선은 테이블을 깔끔하게 치우고선 송유주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태호가 요리를 엄청 잘해요. 앞으로 밥해달라고 해요.”“짬뽕을 해줬는데 너무 맛있었어요.”“그렇죠? 예전에 여기서 요리사로 일했거든요.”이때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송유주는 대뜸 물었다.“만두 빚을 줄도 알아요?”“당연하죠.”진미선은 신태호가 방학에 외국에서 돌아오면 늘 식당에 와서 일손을 도왔다고 한다. 만두가 히트 메뉴였는데 유민욱은 줄곧 그 맛을 내지 못했기에 신태호가 개학할 때마다 연성대 학생들에게 욕을 먹었다고 한다.“정말 태호 씨가 빚었던 만두였네요.”송유주는 정말 인연이라는 게 있는 건가 싶었다.“아참, 가게에서 일한 사람 중에 단발머리가 있었어요?”무심코 꺼낸 말이었지만 진미선은 곧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안소희를 알아요?”“이름 소희였어요? 아는 사이는 아니고, 예전에 만두를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배달을 왔거든요.”“그랬군요. 저는 태호가 유주 씨에게 얘기한 줄 알았어요.”말을 이어가던 진미선은 대뜸 한숨을 내쉬었다.“그 애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진미선은 안소희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듯했고, 송유주도 더 묻지 않았다.얼마 후, 신태호와 유민욱이 돌아왔고 그들의 뒤에는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한 명 더 있었다. 세 사람은 얼굴에 상처가 있었지만 모두 웃고 있었다.신태호는 주머니에 뭔가를 넣고 있었는데 송유주를 보자마자 달려왔다.“유주 씨 주려고 대추를 따왔어요. 엄청 달아요.”송유주는 앞으로 다가가 그의 주머니에 잔뜩 들어있는 대추를 보았다. 하나하나 호두만큼 컸고 빨갛게 익은 게 탐스러웠다.유민욱은 손에 들고 있던 철판을 옆으로 던지더니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신태호를 가리켰다.“이 자식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알아요? 사람을 때려

  • 네 친구는 어때?   제68화

    송유주는 신태호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까지 따라갔다. 유민욱이 앞치마도 벗지 않고 철판은 손에 든 채 돌진하는 모습에 그녀는 더욱 걱정이 밀려왔다.반면 진미선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듯 수빈이를 품에 안고 목청껏 소리쳤다.“민욱 씨, 싸우고 나면 얼른 돌아와요. 나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바빠요.”송유주는 자연스레 수빈이를 안더니 진미선에게 얼른 가서 일 보라고 했다.“준수가 운송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이 별로 없을 때는 다른 화물 차량과 서로 다투기도 해요. 심각한 일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진미선의 말에 송유주는 오히려 더 걱정되었다.“민욱 씨가 혼자 갔다면 저도 걱정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은 태호가 있어서 마음이 놓여요. 태호는 선을 지키는 사람이라서 일을 크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송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때 수빈이가 지루한지 그녀의 품에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수빈이랑 밖에서 놀고 있을게요.”진미선은 손님의 부르자 재빨리 대답하고선 송유주를 보며 물었다.“음식 준비 다 했어요.”“태호 씨가 돌아오면 같이 먹을게요.”“알겠어요.”그 말을 끝으로 진미선은 서둘러 손님맞이를 했다.송유주는 수빈이를 안고 산책했는데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 골목에는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팔리고 있었다.끝까지 쭉 걸어서 올라가자 연성대가 나왔다. 곧이어 연성대의 축구장과 도서관이 보였고 도서관 바로 왼쪽에 의대가 있었다.“야야.”수빈은 축구장에서 누군가 공 차는 걸 보고선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었다.송유주는 아이가 더 잘 볼 수 있게 번쩍 안아 올렸다.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배달 음식을 가지러 나오는 학생이 많았다.송유주는 만두를 좋아했던 기숙사 룸메이트가 떠올랐다. 그 집은 전화로 주문하면 불과 10분 만에 도착했다.배달을 시키고 갑자기 약속이 잡힐 때면 룸메이트에게 처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송유주는 최하준이 배달 음식을 안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독학하여 요리를 배웠고 매일 그의 자취방을 오가며 음식을 해줬다.의대생이라 학

  • 네 친구는 어때?   제67화

    다른 두 의사는 감당할 용기가 없다고 하여 마지못해 송유주가 집도했다.수술은 6, 7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정말 기적적으로 산모와 아이 모두 지켜냈다.진미선은 수빈과 함께 종종 병원을 방문했기에 아이는 송유주를 잘 따르는 편이었다. 수빈은 송유주를 알아본 듯 안아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팔을 뻗었다.“진짜 너무하네. 내가 누군지 잊었어?”신태호는 수빈이의 작은 얼굴을 비틀었지만 녀석은 집요하게 송유주의 품으로 달려들었다.아이를 안은 송유주는 자연스레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태호 씨도 아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그런 편이죠.”송유주는 흐뭇하게 웃었다.“우리도 낳을까요?”“언젠가는 낳겠죠?”두 사람은 아이와 함께 놀다가 식당으로 향했다.주방에서 요리하던 유민욱은 시간을 내어 그들에게 다가와 축하 인사를 전했다.“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오늘은 형이 쏠게.”신태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그럴 줄 알고 돈 안 챙겨왔어.”“하여튼 누굴 닮았는지 입만 살았다니까.”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돈독해 보였다. 다만 수염이 덥수룩한 식당 사장과 신태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교집합이 없었기에 어떻게 친해진 건지 궁금했다.신태호는 수빈을 진미선에게 넘겨주고선 송유주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어수선한 아래층과 달리 2층은 훨씬 깔끔했다.“형네 가족이 사는 곳이야. 여기에 내 방도 있어.”신태호는 송유주를 데리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깨끗하게 정돈된 방이 모습을 드러냈고 싱글 침대 하나와 큰 책장 하나가 전부일 정도로 작았다. 책장에는 책이 가득 쌓여있었다.벽에는 농구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선반에는 다양한 레이싱 카 모델이 놓여 있어 한눈에 봐도 남자아이의 방이었다.“중학교 때 가출한 나를 민욱이 형이 키워줬어요. 그때부터 형을 따랐죠.”그 시절을 떠올린 신태호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나, 민욱이 형, 송준수, 그리고 규만이 형까지. 우리 넷은 열몇 살에 만나서 하루 멀다시피 사고를 치는 나날을 보냈어요. 배가 고픈 것 외에

  • 네 친구는 어때?   제66화

    이때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한 손에 생후 6, 7개월 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선 주방을 향해 목청껏 외쳤다.“4번 테이블 골뱅이 무침 하나.”그녀는 손님에게 맥주를 건네고선 병따개를 챙겨줬다.“오래 기다리셨을 텐데 죄송해요. 너무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이따가 서비스 많이 챙겨드릴게요.”이곳의 손님들은 대부분 학생이거나 근처 주민이었기에 다들 서로 아는 사이였다. 학생들로 가득 찬 테이블은 주방 이모를 언니라고 부르며 너스레를 떨었고 덕분에 식당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아이를 안고 있던 여성은 학생들과 얘기하다가 고개를 돌렸고 송유주와 눈이 마주친 순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어머, 송 의사님. 여긴 웬일이에요.”여성은 아이를 안은 채로 달려왔다.“오기 전에 미리 연락이라도 하시지 그랬어요. 그럼 골목 입구까지 마중 나갔을 텐데.”손을 내밀던 그녀는 아차 싶은 듯 서둘러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그러자 송유주는 재빨리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얼른 이쪽으로 앉아요. 우리 남편이 끝내주게 잘하는 음식이 있는데, 오늘 제대로 대접할게요.”진미선은 신태호를 보지 못한 듯 송유주의 손을 잡고선 안으로 들어갔다.“형수,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신태호는 어이가 없었다.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진미선은 그제야 신태호를 발견했다.“어머, 언제 귀국했어?”“어제 왔어요. 그리고...”신태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미선은 자연스레 아이를 건네줬다.“난 송 의사님 대접해야 하니까 수빈이 좀 보고 있어. 아참, 두 사람 소개해 줄게.”그녀는 신태호를 가리키며 송유주에게 소개했다.“이름은 신태호. 대기업 다녀서 돈 엄청 많이 벌어요. 잘생겼죠? TV에 나오는 연예인 뺨치는 얼굴이라니까.”그 후 송유주를 가리키며 신태호에게 소개했다.“이분은 해진 병원 의사 선생님이자 나랑 수빈이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야. 송 의사님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거야. 정

  • 네 친구는 어때?   제65화

    “다른 사람한테 지는 건 싫단 말이야. 정 안되면 섬으로...”송유주를 발견한 온세은은 곧바로 분노를 가라앉히더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유주야, 공교롭게 여기서 만나네. 아참, 나랑 하준이 결혼식장 관련해서 논의 중인데 네가 의견 좀 줄래?”송유주는 피식 웃었다.“좋아요.”“혹시 해운 성당이라고 들어봤어?”송유주는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당연히 들어봤죠. 그쪽 약혼자가 제 남자 친구였을 때 성당에서 결혼식 올리는 게 로망이라고 제가 수십차례 얘기했거든요. 그런 곳에서 결혼하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잖아요.”그러고선 부러워하며 말을 이었다.“설마 그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려고요? 예약하기 엄청 힘든 곳이라던데...”온세은은 송유주의 부러움을 한껏 즐겼다.“맞아. 우린 해운 성당에서 식을 올릴 거야. 너도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그럴게요.”송유주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온세은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최하준을 바라봤다.“그럼 해운 성당으로 결정하자.”최하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송유주를 바라봤다. 곧이어 그녀의 목에 난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왔고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설마 남자 친구 생겼어?”송유주는 어이가 없었다.“생기든 말든 참견할 바가 아니잖아요.”“난 네가 양아치 같은 놈을 만날까 봐 걱정돼서 그래.”“걱정할 만도 하죠. 지훈 씨 같은 쓰레기를 8년이나 만났으니.”그 말을 끝으로 송유주는 차갑게 돌아서서 집으로 걸어갔다.집에 돌아오니 마침 신태호가 위층에서 내려왔다. 청바지에 회색 후드를 입고 나오자 고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이제 막 캠퍼스에서 나온 대학생처럼 풋풋했다.그는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전부 매력적이었다.“오늘은 우리 둘 다 대학생 같네요.”신태호는 그녀의 옷차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대학생이요?”송유주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대학생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볼까요?”신태호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려 신발장에 앉혔다. 송유주가 놀라서 어깨에 손을 얹자

  • 네 친구는 어때?   제64화

    신태호는 자신의 복근을 가리킨 다음 얼굴을 가리켰다.“입구에 앉아서 동상인 척 연기만 해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걸요?”송유주는 상상만 해도 그 장면이 웃긴지 입을 가리고 웃었다.“웃어서 미안해요. 예전에 고생을 많이 했나 봐요?”송유주는 애써 웃음을 참고 안쓰러운 척 연기했다.그러자 신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많이 힘들었어요.”“다행히 지금은 이겨냈네요?”“그런 셈이죠.”송유주는 고개를 숙여 짬뽕을 한 입 더 먹었다.“양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아요.”“많이 먹어요.”그녀는 끝내 다 먹지 못하고 잔뜩 남겼다. 부엌으로 가서 버리려던 찰나 신태호가 다가와 한입에 먹어 치웠다.“우리 오늘 뭐 해요?”송유주는 신태호를 도와 주방을 정리했다.예전에는 요리하고 주방 치우고 설거지하는 것까지 전부 혼자 했는데 이제는 신태호가 대부분의 일을 하고 있었다.“오늘은 혼인 신고하러 갈 거예요.”송유주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오늘요?”신태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웃음을 지었다.“결혼하기로 동의한 순간부터 유주 씨는 평생 나랑 함께해야 할 운명이었어요.”주방을 정리한 후 두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신태호는 흰 셔츠로 갈아입고 옷방에서 나왔다.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그 모습은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검은색 정장까지 입으니 순식간에 진중함과 카리스마가 더해졌다.송유주가 넋을 잃은 채로 바라보자 그는 또다시 키스를 퍼부었고 어느새 두 사람은 침대로 향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송유주는 재빨리 발을 뺐고 한참이 지나서야 신태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곧이어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온 송유주는 거울 앞으로 걸어가 화장하기 시작했다. 평소 화장하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신태호의 옆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좀 더 화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신태호가 미리 예약한 덕분에 두 사람은 도착하자마자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혼인신고서가 나온 순간 송유주의 마음도 안정되었다.오늘부로 그녀는 신태호와 법적인

  • 네 친구는 어때?   제63화

    정신을 잃은 채로 잠이 든 송유주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신태호는 이미 일어난 듯 옆에 없었다. 온몸이 산산조각 난 것처럼 아팠던 그녀는 애써 팔을 지탱하여 일어났고 순간 이불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 몸에는 어젯밤의 흔적이 빨갛게 남아있었고 송유주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신태호는 그녀의 잠옷과 속옷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여전히 어색한 이런 상황을 적응하며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신태호가 스피커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제이슨 씨, 우리가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지 알잖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인수 계획을 여러 번 수정하는 데 협조했을까요?”송유주가 내려왔을 때 그는 상의 탈의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었다.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는 매혹적이었고 등에는 잔근육이 가득해 탄탄했다.그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한 신태호라는 사람과 많이 달랐다. 정장 차림에 점잖고 우아한 이미지인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녀의 상상과 정반대였다.이때 핸드폰 너머로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심이라고요? 그럼 이렇게 관건적인 순간에 귀국하지 않았겠죠. 협상은 없었던 일로 하죠.”“저 결혼해요.”“결혼이 수백억에 달하는 인수 건보다 더 중요한가요?”“당연하죠.”“태호 씨,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걸 잘 아시잖아요.”“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려요. 그 일은 결혼하고 나서 다시 얘기합시다.”“그럴 시간이 없다니까요?”“죄송하게 됐네요. 그럼 다음에 다시 협력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솔직히 이러는 건 깡패짓이나 다름없잖아요.”“제이슨 씨, 말이 지나치네요.”상대방은 숨을 가다듬으며 화를 억눌렀다.“지난번 회의에서 내놓은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면 상황이 달라질까요?”“좋아요. 그럼 지금 당장 시애틀에 있는 지사로 가서 계약서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제 비서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거든요.”“이봐요.”상대방은 분노에 이를 갈았지만 결국 무기력하게 꼬리를 낮췄다.“참... 어이가 없어서 할

  • 네 친구는 어때?   제62화

    별장 입구가 코앞에 있는 걸 확인한 송유주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느새 그녀의 뒤에 그 남자가 나타났다.송유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남자는 쫓아왔다.“원하는 게 뭐예요?”송유주는 돌아서서 그에게 물었다.별장 지역의 가로등은 매우 밝았고 이번에는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무서운 상황인 건 맞지만 그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눈앞에 나타난 남자의 얼굴은 환상적이었다.잘생겼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더 적절했다.그윽한 눈빛과 오똑한 콧날, 붉은 입술에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가 더해지니 아름다움은 배가 되었다. 화려한 외모보다 더욱 숨 막히는 건 그의 아우라였다. 입꼬리를 올린채 뚫어져라 쳐다보는 행동이 경박해 보였지만 이마저도 포스에 압도되어 고귀해 보였다.다만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스토커라니 조금 아쉬울 뿐이다.“여긴 우리 집이에요. 아까 도와준 걸 생각해서 신고는 안 할 테니까 얼른 가요.”송유주가 경계하듯 뒤로 물러서자 남자는 한 발 더 가까이 갔다.“이봐요.”남자는 순식간에 그녀를 안았다.그러고선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송유주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마주 보며 검지를 들어 올렸고 곧이어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열렸다.송유주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넋을 잃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그러자 남자는 몸을 숙여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내가 누군지 알겠어요?”“신... 태호 씨?”송유주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그러자 남자는 피식 웃었다.“유주 씨, 저예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송유주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시애틀에 있다면서요? 어떻게...”“일이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됐어요. 유주 씨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고 싶었어요.”“그게...”‘이 사람이 신태호라고? 내가 생각하는 신태호는 온화하고 우아한 신사였는데?’신태호는 웃으며 그녀를 껴안고 집으로 들어갔다.“집에 있는 줄 알고 바로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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