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둡고 습한 방.김지유가 멍한 상태로 깨어났는데 자신의 사지가 묶여있고 입도 막혀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납치를 당하는 것도 처음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남원 추모 공원으로 도담이를 만나러 가려고 하다가 지하 주차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납치 되었고 정신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김지유는 몸부림치다가 외부에서 미세하게 들어오는 빛의 도움을 받아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그녀의 옆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똑같이 묶여 있었다. 김지유가 안색이 변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다름 아닌 주하은이었다.‘하은이는 왜 여기에 있지?’김지유는 의아해하며 가능한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여 주하은을 깨우려 했지만, 밧줄이 몸을 어찌나 꽁꽁 잘 묶었는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급한 나머지 곧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쓰러지는 소리에 옆에 있던 주하은이 깨어났다. 주하은은 눈을 뜨고 자기를 보다가 힘겹게 소리를 내는 김지유를 보며 안색이 변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두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막혀 있어서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결국 김지유는 눈으로 바닥을 보다가 주하은 보며 땅바닥에 쓰러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김지유의 신호를 알아챈 주하은은 힘겹게 김지유의 옆에 쓰러지며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게 되었다. 김지유는 기뻐하며 몸을 움직여 주하은의 다리 사이로 가더니 또다시 웅얼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주하은은 처음에 의아해하더니 곧바로 두 다리를 꽉 쪼여서 김지유 입에 있는 천 뭉텅이를 빼내려 했는데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겨우 성공했다.김지유가 말했다.“하은아...”격동된 나머지 소리가 어쩌나 컸던지 본인도 놀라며 황급히 소리를 낮춰서 말을 이었다.“너 몸을 뒤집어서 손을 내 쪽으로 해봐. 내가 밧줄을 풀어줄게.”주하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휴식하다가 힘겹게 몸을 굴렸다. 그녀가 간신히 몸을 뒤집자, 김지유는 곧바로
“내가 얘기했었잖아. 최서준 씨가 무술이 매우 강력해서 몇 가지 가르쳐주라고 하고 있었는데 부주의로 발이 삐끗하는 바람에 최서준 씨가 나를 안고 들어간 것뿐이라고. 그때 너에게 해명하려고 했는데 네가 그냥 뒤돌아서 도망갔잖아.”주하은이 진지하게 말했다.“지유야, 내가 보기에 넌 최서준 씨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두 사람 왜 그렇게 된 거야?”“나... 난 그 사람 안 좋아해. 내 마음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김지유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누구야? 말해봐.”주하은이 관심을 보이며 묻자, 김지유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난... 난 최 대가를 좋아해.”김지유의 말이 끝나자, 주하은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의아한 눈빛으로 김지유를 바라보았다.김지유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하은아, 진작에 너한테도 얘기하고 싶었는데 나 어릴 때 보육원에서 자랐어. 그때 나 보육원에 있는 한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애 아니면 아무한테도 시집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오랜 시간 동안 계속 그를 찾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 아이가 바로 지금의 최 대가라는 걸 알았어.”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서 주하은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물었다.“왜 그렇게 봐?”“푸! 하하하!”주하은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지유야, 나 정말 너 때문에 못 산다. 너 모르고 있었어? 최서준 씨가 바로 최 대가야.”그녀의 말에 김지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너... 너 방금 뭐라고?”“최서준 씨가 바로 최 대가라고. 흑운리에서 소문 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야!”주하은이 다시 확인해줬다.“펑!”그 순간 김지유는 벼락을 맞은 듯이 머릿속에서 굉음이 울렸다. 그녀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도담이 동생이 줄곧 그녀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펑!”방문이 열리면서 강한 빛이 들어와 눈이 부셨고 이어서 음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 두 사람 그래도 능력 있네.
조현이 총을 쏘는 순간, 주하은은 죽을 준비를 했었는데 뒤에 있던 김지유가 외치는 소리에 황급히 눈을 뜨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글쎄 그녀의 앞에 푸른색의 보호막이 생겼는데 하나의 장벽 같았고 총알은 허공에 떠 있을 뿐 그녀에게 오지 못했다.“띵...”총알은 곧바로 바닥에 떨어졌고 주하은 앞에 나타났던 푸른색의 보호막도 사라졌다.“퍽...”그때 그녀의 손목에서 쟁쟁한 소리가 나서 고개를 숙여보니 팔찌에서 나는 소리였고 6개의 구슬 중 하나가 부서진 것을 발견했다.“최서준 씨가 준 생일 선물이었어!”주하은은 놀랍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최서준이 준 팔찌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목숨을 구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조현 역시 조금 전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일이? 아니야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펑펑...”조현은 소리를 지르며 주하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두발을 연달아 발포했다. 역시 이번에도 총알이 주하은의 가까이에 다가가려는 순간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의 구슬이 부서지면서 푸른색의 보호막이 생기더니 날아오는 총알을 막았고 심지어 두 번째 총알은 아예 튕겨 나가서 조현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조현은 곧바로 두 눈을 크게 뜨고 뒤로 쓰러졌는데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죽기 직전까지 조현은 푸른색 보호막이 어떻게 총알을 막아냈는지 몰랐으며 심지어 자기가 직접 발포한 총알에 맞아 죽었다.김지유 역시 의아해하며 주하은을 바라보았다.“하은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지유야, 최서준 씨가 준 생일 선물이 우리를 살렸어.”주하은은 세 개밖에 남지 않은 팔찌의 구슬을 가리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최서준 씨가 마법의 무기를 준 거야. 바로 이것이 위험한 순간에 나를 구해줬어.”순간 주하은은 최서준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생일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최서준의 선물이 너무 초라하다고 비웃었지만, 그녀는 최서준이 직접 만든 팔찌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바로 손목에 찼었는데 그것이
김지유는 옆에 있는 주하은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주하은은 세 개 남은 구슬을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김지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쓴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최서준 미안해... 도담아 미안해...’순간 그녀는 최서준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만나면 그에게 속죄하고 싶었다....그날 오후 5시 남양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경주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최서준은 혼자서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중얼거렸다.“드디어 경주에 도착했네...”그때 마침 휴대폰이 울렸는데 홍도의 전화였다.“최서준 씨, 제가 경주에 사촌 동생이 있어요. 이름은 오윤정이라고 하는데 지금 제3여객터미널 출구에서 최서준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 경주시에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동생에게 얘기를 해놨어요.”“네, 알았어요.”최서준은 전화를 끊고 제3여객터미널 출구 방향으로 걸어갔다. 출구 쪽에 도착하니 빨간 포르쉐 911 한 대가 도로변에 눈에 띄게 주차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아르마니를 입고 껌을 씹는 한 청년이 옆에 있는 청순한 미녀와 말하고 있었다.“당신 사촌 언니가 얘기한 사람은 왜 아직도 안 와? 조금만 더 있으면 벌금을 내야 할 것 같은데...”청년은 손목에 파텍 필립을 끼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포르쉐에 반쯤 걸쳐 앉아서는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여자는 약 스무 살쯤 되어 보였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이목구비가 선명하여 행인들을 한 번 더 고개를 돌리게 하였다.“도훈 씨, 지지치도 않아? 지금 벌써 세 번째 물어보고 있어.”오윤정은 냅킨으로 땀을 닦으며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그녀는 오늘 곽도훈과 함께 친한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러 가기로 했었는데 갑작스레 홍도의 전화를 받고 공항에 픽업하러 오게 되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먼 친척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공항에서 사람을 픽업하라고 하고 또 잘 대해주라고 부탁하니 불만이 많았다.‘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는데? 개뿔도 없는 주제에... 귀찮아!’곽도훈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곽도훈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이 새끼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단순히 최서준에게 수치심만 줄 생각이었던 곽도훈은 최서준이 더 한 말로 맞받아칠 거라곤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순식간에 자신을 자격 없는 병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모자라 오윤정에게 헤어지라는 소리까지 할 줄이야.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바보처럼 가만히 있을 곽도훈이 아니었다. 최서준의 발언은 곽도훈의 분노 버튼을 눌러버리기엔 충분했다.곽도훈의 표정을 확인한 오윤정이 재빨리 입을 열어 제지했다.“됐어, 그만해.”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최서준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저희 사촌 언니한테 들은 거로는, 경매 때문에 여기 경주까지 오셨다던데. 맞죠?”“틀린 말은 아니네요.”최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홍도 언니의 말이 맞다면 내일 경매에는 천영꽃과 백년혈삼이 올라올 것이다.“이 새끼가 어디서 주제넘게, 너 따위가 우리 경매에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곽도훈이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내가 진짜 잔인한 현실 하나 알려줄까? 내일 경매는 가고 싶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야. 초대장이 있어야 한다고, 이 멍청아.”“초대장이요?”곽도훈의 말에 최서준의 미간이 좁혀졌다. 초대장에 관한 일은 홍도 누나에게서 들은 정보가 없었으니 말이다.그런 최서준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곽도훈이 한층 더 건방진 태도로 말했다.“그 초대장, 나한텐 있거든. 지금 나한테 무릎 꿇고 절 한 번만 하면 데리고 가 줄 수도 있는데, 어때?”“절이라면 그쪽부터 해보시죠?”최서준이 곽도훈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너 이 자식….”“됐어, 도훈아. 그만해. 내 체면도 생각해야지.”오윤정이 곽도훈의 말을 끊으며 두 사람의 싸움을 말렸다.그녀는 최서준에게로 시선을 돌려 입을 열었다.“초대장은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대신 저랑 어디 좀 갔다 오시죠?”“좋죠.”최서준이 간단하게 대답했다.오윤정도 더는 말을 얹지 않고 곧바로 최서준
홍기준은 자신에게 안겨 오는 여자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실눈으로 최서준을 흘겨보며 물었다.“이쪽은… 누구?”홍기준은 최서준에게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보고도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리지 않는 게 영 거슬렸을 뿐이었다.“도련님, 이쪽은 최서준이라고 제 사촌 언니의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긴히 부탁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오윤정은 다급하게 해명하며 최서준에게 필사적으로 눈치를 주었다. 상황파악 좀 하고 처신 똑바로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담긴 눈빛이었다.그럼에도 최서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바라보는 홍기준을 향해 무미건조하게 고개만 까딱할 뿐이었다.이런 미친!이 자식 진짜 미친 게 분명하다.최서준의 그런 태도에 주위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곧바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홍기준이 최서준을 어떻게 손 볼지 기대하고 있었다.최대한 눈치를 주던 오윤정은 최서준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곽도훈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고소한 마음에 박장대소 중이었다.멍청한 놈!‘넌 홍기준이 나처럼 만만해 보이지? 두고 봐, 큰코다치는 게 누굴지.’역시나, 홍기준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더니 가볍게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부탁할 게 있다 그랬나? 뭔데, 말해봐.”“도련님, 이분이 내일 있을 경매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초대장 한 장만… 주실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오윤정은 자신이 내뱉고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후회 중이었다.최서준이 이 정도로 눈치가 없고 사회성이 떨어질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더라면 죽어도 최서준을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지금 상황으로 봐선 초대장은 고사하고 홍기준의 손에 죽지만 않아도 감지덕지해야 했다.홍기준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재밌어서 웃음이 나오는 건지, 아니면 처음 보는 건방진 태도에 짜증이 난 건지는 홍기준 본인도 알 수 없었다.“초대장을
뒤이어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걸친 중년의 남자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몇십 명의 건장한 남자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경주시에서 제일 큰 권력을 가진 사람, 로얄 노래방 사장 홍만세였다.홍만세의 등장에 모두가 헛숨을 들이쉬었다.잔뜩 흥분한 채 들어온 아버지를 발견한 홍기준은 구세주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최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버지, 저놈이에요. 저놈이 감히 겁도 없이 저한테 손찌검을 했다고요...”홍만세는 실눈을 가늘게 뜬 채 아들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려 보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최서준의 모습에 홍만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귀하께선 누구신지요? 왜 제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신 겁니까?”“맞을 짓을 했으니까요.”최서준은 고고하게 자리에 앉아 덤덤하게 답했다.홍만세가 성격 좋은 대인배였어도 최서준의 대답이었다면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그래, 그래. 좋아. 정말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구나. 네가 못 받은 가정교육, 그거 내가 오늘 제대로 해주지.”이해한다는 듯 긍정적인 감탄사만 세 번을 뱉은 홍만세는 순식간에 목소리를 차갑게 내리깔더니 입을 열었다.“타잔, 이 X끼 팔 한쪽만 잘라서 쫓아내!”“쿵!”곧이어 홍만세의 등 뒤에서 키만 2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장정 한 명이 등장했다. 철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이 울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낯빛이 하나둘 굳기 시작했다.장정의 이름이 타잔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듯싶었다.누가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고 그랬던가. 장정은 영화에서 보던 타잔처럼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그 밖에도, 타잔에 대해 더 말하자면 그는 홍만세의 부하 중 가장 강한 수하였다. 그의 손에 죽은 목숨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홍기준은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팔 한쪽이 잘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최서준의
하지만 노인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 생기는 변화를 발견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는 1㎝ 정도 되어 보이는 깊은 발자국이 찍혔다.세상에!이건 딱딱하기 그지없는 대리석 바닥이거늘!노인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홍만세가 다급히 앞으로 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손 대가님, 수고 많으십니다.”손 대가라고 하는 사람은 오랜 세월 무인으로 지내온 사람으로서 젊은 시절 누군가에게 쫓기다 우연히 홍만세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부지했던 사람이었다. 그 보답으로 손 대가는 상처가 아문 뒤에도 홍만세의 곁에 머물며 조용히 그들을 지켜주는 뒷배가 되었다.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홍만세는 손 대가의 실력을 단 한 번도 어딘가에 노출 시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서준을 상대하기 위해 오랜 세월 꽁꽁 숨겨왔던 손 대가의 정체를 노출 시킨 것이다.손 대가는 홍만세의 인사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최서준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모두가 측은한 눈빛으로 최서준을 바라보았다.진짜 고수가 등장했다.최서준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바닥을 가볍게 내딛는 것만으로도 저런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이니, 바닥이 아닌 인간의 몸 위로 올라서는 순간 피로 토네이도를 만들 게 분명했다.상상만으로도 도파민이 돌아 흥분이 된 홍기준은 당장이라도 환호성을 내뱉고 싶었다.홍만세 역시 옆에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 대가가 최서준을 손 봐줄 때가 왔다.그 순간이었다. 최서준과 눈이 마주친 손 대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혹… 혹시 남양시에서 온 최 씨 되십니까?”“네, 그렇습니다.”태연하게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최서준이 대답했다.최서준의 대답을 들은 손 대가의 몸이 심하게 흠칫 떨리더니 고개를 돌려 홍만세를 바라보며 말했다.“홍 선생님, 미안하지만 이 일에선 손 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자세히 들어보면 손 대가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심하게 떨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