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현이 웃으며 대답했다.“도련님, 급해 마세요. 아가씨께서 도련님을 위해 아침 식사 준비했어요. 지금 아래층에서 도련님 기다리고 계세요.”준호는 한시름 놓았지만,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왜 저런대?”준호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은지가 죽을 그릇에 뜨고 있었다. 이번에는 밥솥으로 한 죽이 아닌, 직접 끓인 죽이었다.식탁에는 네 가지 반찬이 정교하게 놓여 있었다.준호는 의심스러운 듯 은지를 한번 보았다.‘오늘 왜 저렇게 평소답지 않지? 밥에 독 탄 거 아니야?’은지는 준호가 의심하는 것을 눈치채고 먼저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모두 한 번씩 먹었다.준호의 의심이 깊어졌다.‘독을 안 탔으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은지는 음식을 삼키고 말했다.“먼저 먹어, 다 먹고 할 얘기 있어.”준호는 은지를 한참 바라보았다.‘도우미 하는 게 힘들어서 빌려나?’준호는 시름 놓고 아침 식사를 즐겼다. 준호는 죽으로 술 때문에 힘든 속을 달랬다.그는 먹으며 은지를 바라보았다. 은지의 지금 모습은 마치 현처양모 같았다. 준호는 이런 일들이 없이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면 보통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지 생각했다.준호는 생각하다가 짜증이나 밥맛이 떨어졌다.“무슨 할 얘기 있으면 해.”은지는 입을 닦고 얘기했다.“나 자수하려고.”말이 끝나자마자, 준호가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이 그릇에 빠졌다.“뭐라고? 뭘 하러 간다고?”“자수하러 간다고.”은지는 평온하게 얘기했다.“나 생각해 봤는데, 이렇게 너랑 집에서 이런 관계로 있기보다 경찰서 가서 자수하면 네 고민을 없앨 수 있잖아.”준호는 은지의 말을 이해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네 말은, 감옥에 가더라도 내 옆에서 도우미는 하기 싫다. 이거야?”“네가 딱 이렇게 이해하겠다면 그렇게 이해해.”“너!”준호는 눌러뒀던 감정이 폭발했다.“고은지, 넌 내가 너 감옥에 못 보내서 안 보내는 줄 알아? 아버지를 죽인 여자를 불쌍하게 여길 거 같아? 꿈 깨!”“난 상관없어. 난
다라는 어제저녁에 해성시에 도착했고 오늘 아침 일찍이 곽씨 저택으로 갔다.집사는 다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다라? 너 남한성에 소현 씨랑 같이 있지 않았어?”다라는 대충 얼버무렸다.“그, 저택에 돌아오고 싶어서요. 집사님, 저 새 자리 안배해 주세요!”집사는 잠시 생각했다.‘남한성 쪽에 일도 적고 엄마랑 같이 지내는데, 지금 갑자기 돌아온 거 보면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닐 텐데.’집사가 담담히 말했다.“사모님께서 나가신 뒤, 국장님도 안 계셔서 도우미가 이렇게 많이 필요 없어. 도우미들 자르려고 해서 자리 안배는 불가능할 거 같아. 일단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어. 자리 나면 연락할게. 다른 일자리도 좀 찾아보고.”집사가 거절하자, 다라는 은지의 일에 대해 아직 알아내지 못해 가려고 하지 않았다.“집사님, 저 할 얘기 있어요!”다라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국장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요.”집사는 다라의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다라야, 국장님께서는 지병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밖에서 떠도는 소문으로 그런다면 도련님이던, 나던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아니, 제 말은 국장님께서 고...!”“그만!”집사는 엄숙하게 말했다.“주인집에서 그렇게 오래 일을 하고도 아직도 무슨 말은 해도 되고, 무슨 말은 꺼내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 입 잘못 놀려서 큰 해를 입지 않도록 해! 나가!”...다라는 욕을 한바탕 먹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다라는 가지 않고 몰래 전에 친했던 희진을 불러냈다.희진은 다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다라야, 너 왜 돌아왔어?”“그건 상관 말고, 나 물어볼 거 있어. 국장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알지, 국장님께서는 지병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셨어.”희진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다라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다라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지라고 알아?”“은지 사모님?”은지의 말이 나오자, 희진은 조금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당연하지, 전에 내가 은지 사모
남한성에서 정소현이 주방에 들어서자, 은지를 잡아당기고 있는 준호를 보고 준호가 은지를 때리려는 줄 알고 급히 말렸다.“도련님, 아가씨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했는데, 마음속으로는 도련님 많이 생각하고 계세요. 근데 왜 이렇게 화를 내세요?”준호는 은지를 팽개쳤다.“날 생각한다고? 난 쟤가 나 빨리 죽었으면 하는 것 같아!”은지는 의자에 내팽개졌고 아픈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소현 씨, 먼저 나가 계세요.”정소현은 은지를 보고 또 준호를 보고 걱정이 됐지만, 자신이 그저 도우미라고 생각되어 먼저 나가 있기로 했다.준호는 짜증이 나는 듯이 몇 바퀴 돌더니 담담한 은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끓어오르던 화에 차가운 물이 끼얹어진 것 같았다.은지의 눈에 현재의 준호가 몹시 우스울 것 같았다. 은지가 곽씨 집안을 휘둘러 놓고 곽도원까지 죽였는데, 지금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준호다.‘고은지가 저렇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내가 지금 뭘 고민하는 거야?’은지가 말한 것처럼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총살을 당하던 감옥에 있던 그것은 다 은지가 받아야 할 죗값이다.은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준호는 아직도 아쉬운 모양이었다.준호가 진정하고 식탁을 사이에 두고 은지를 바라보았다.“자수하겠다는 걸로 내 손에 빠져나가고 싶은 거라면, 네 생각이 틀렸어. 내가 널 집에 도우미로 남긴 게 너에 대한 최대의 존중이야. 우리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가 편하게 살게 놔둘 거 같아? 네가 날 떠나고 싶다면 그러면 넌 감옥 밖에 갈 수 없어.”준호는 몸을 옆으로 돌려 주먹을 쥐었다.“고은지, 너 정말 자수할 거야?”“응.”은지의 간결한 대답을 들은 준호는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준호가 먼저 차에 탔고 그는 백미러로 은지를 봤다. 은지는 별장에서 나와 좌, 우로 둘러보지도 않았고 바로 차에 탔다.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준호는 내비게이션에 경찰서를 치고 목적지로 운전했다.멀지
빵!뒤차의 경적이 준호를 정신 차리게 했다.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찰서로 운전했다.경찰서가 눈에 점차 들어오자, 준호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웠다.은지는 준호를 바라보았지만, 준호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힘차게 한 글자를 뱉었다.“가!”“멀리 갈수록 좋아!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마!”차 문이 열리더니 곧바로 닫혔다.은지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준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이미 이렇게 될 줄 예상한 사람 같았다.준호는 세게 핸들을 치고 위에 엎드렸다. 그는 눈을 세게 감았다.준호가 중얼거렸다.“아버지, 혹시 이 세상에 원한이 남아 있어 아직 저승으로 가지 않으셨다면 저도 속시원히 데려가 주세요.”준호는 차에서 저녁까지 있었다. 중간에 핸드폰이 여러 번 울렸지만, 준호는 못 들은척했다.저녁에 헤드라이트가 지나갈 때, 준호는 차라리 와서 자기를 박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준호는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희미한 정신으로 차에서 내렸다.그러자 신옥영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준호야! 너, 꼴이 이게 뭐야?”준호는 설명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더니 기절하고 말았다.더운 여름이어서 준호가 차에서 두 날 동안 있었기에 산소도 부족했고 더위를 먹은 것이다. 준호는 한참을 기절해 있었다.신체가 건강했기에 견뎌냈지, 아니었으면 찐 만두가 됐을 것이다.병실 침대 옆에서 신옥영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준호야, 이게 무슨 고생이냐.”준호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어머니, 제가 불효자입니다. 제가 고은지를 그냥 보냈어요.”“엄마 알아, 엄마 다 알아.”두 날 전, 다라가 신옥영을 찾아와 고발한 것을 들은 신옥영은 은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조금 편했지만, 표정 관리를 했다.“다라야, 준호도 이젠 성인이야. 내가 너랑 소현 씨 보낸 건 가서 일하라고 보냈지, 준호 감시하라고 보낸 거 아니야. 너희가 저택에 들어왔을 때, 주인장에 관한 모든 것을 밖에 소문내지 않겠다는 계약서도 썼
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에요? 무슨 비밀이 있는데요?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하세요?”신옥영은 손에 들고 있던 약을 준호에게 건네주었다.“준호야, 너 몸이 아직 회복이 덜 됐으니까, 먼저 회복하고 그건 이제 얘기해 줄게.”준호는 마음이 급해 침대에서 일어났다.“도대체 무슨 비밀인데요? 저한테 뭘 숨기신 거냐고요! 어머니, 빨리 알려주세요!”너무 큰 일이라 신옥영은 준호가 아직 회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충격을 받을까 봐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준호에게 퇴원하는 날에 알려준다고 했다.준호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기다리기로 했다.다행히 준호가 원래 몸이 좋고 어려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퇴원하는 날, 신옥영은 정소현에게 휴가를 하루 주었고 직접 준호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 상 차렸다.준호가 자리에 앉자, 그날 은지가 한 상 차림을 해놓고 자수하겠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준호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신옥영이 자기를 항상 예뻐해 줬기에 나쁜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해 시름을 놓고 식사를 했다.신옥영은 준호의 그릇에 반찬을 놓아주었고 준호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신옥영은 준호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너 어렸을 때, 엄마가 다른 애 많이 먹는다고 칭찬했더니 네가 걔를 이기겠다고 단숨에 세 그릇이나 먹어서 토할 뻔했었잖아.”준호는 부끄러웠다.“엄마, 그건 다 어렸을 때 일이에요. 그거 말해서 뭐 해요?”“맞아, 언제 이렇게 컸지? 뭐든 다 잘하고, 훌륭해.”신옥영은 애정이 어린 눈으로 준호를 바라보았다.“너 어릴 때, 엄마는 널 교육 잘 못 할까 봐, 네 아버지처럼 정이 없을까 봐 무서웠어. 그리고 다른 애들처럼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을까 봐 두려웠는데, 넌 뭘 하던 다 잘 해냈지.”“제가 말을 안 들어서 어머니의 기대에 저버렸어요. 고은지가 살인자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보내고, 전 아버지보다도 못해요.”신옥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준호야, 너 은지 씨
“제 친엄마요?”준호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어머니잖아요.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못 알아듣겠어요.”신옥영은 준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이 비밀 내가 무덤까지 갖고 가려고 했는데, 네가 이렇게 자책하는 걸 보니까 얘기해야 할 거 같아.”신옥영은 잠시 머뭇거렸다.“사실 난 네 친엄마가 아니야.”준호는 깜짝 놀랐다.“네?”신옥영은 그때 일어났던 일을 준호에게 얘기해 주었다.자신의 친엄마가 신옥영을, 자식을 잃게 했고, 자신이 어떻게 신옥영의 곁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조금 지나 준호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어머니, 지금 장난치는 거죠? 제가 어떻게 어머니 자식이 아니에요?”“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네가 내 자식이길 바란다. 그러나 네 친엄마는 내가 아니야.”신옥영의 표정을 보고 준호는 누군가에 의해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몸이 산산조각 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준호가 물었다.“제 친엄마는요?”“돌아가셨어.”준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아버지가 그런 거예요?”“응.” 여기까지 말하자, 신옥영의 눈에 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나랑도 상관있어. 네 아버지가 아이를 나한테 주기 위해 네 친엄마를 죽게 만든 거야. 내가 알았을 때, 네 친엄마는 이미 돌아간 상태라, 내가 사람 시켜 해성시에 묻었어. 가서 보고 싶으면, 집사한테 물어봐.”이 말까지 듣자, 준호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준호는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준호는 마치 자신이 단단한 토양 속에서 자란 풀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해면에서 자란 관상용 풀이었다. 준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신옥영은 준호가 충격을 받은 모습에 그의 손을 꼭 잡았다.“준호야, 네가 날 탓해도 엄마는 네 탓을 하지 않아. 이게 다 네 아버지가 저지른 죄야. 엄마가 너한테 이걸 얘기한 이유는 네가 죄책감을 느끼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런 거야. 사실 우리가 모두 가장 미안해하는 사람은 너야.”곽도원은 아무 죄 없는 아이로 자신의 죄를 막았다
준호도 그동안 못 완성했던 임무를 마저 수행해야 했다.전에는 은지를 찾는 데만 집중해서 임무는 뒷전이었다. 이번에는 각 지역을 하나씩 제대로 돌아봐야 했다.돌아본 곳이 많아질수록 준호의 마음도 점차 평온해졌다.마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자연과 마주하니 준호의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3개월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준호는 남한성에 돌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팀장은 준호가 전과 달라진 모습에 칭찬했다.“이런 일 많이 하니까 좋은 점이 있네.”...그 후로 준호는 예전처럼 훈련하고 임무를 수행했다.이곳에 있으면 외계의 간섭을 덜 받기에 사람들이 준호의 집안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개의치 않았다.그저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준호는 신옥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은지 씨가 정말 차가운 사람이라면 날 위해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을 거야.’신옥영도 이 비밀을 준호가 알게 되면 많은 것을 바꾸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은지처럼 작은 일도 따지는 사람은 무조건 알았을 것이다.준호는 전에 은지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잘 알 수 없었다.‘고은지 나한테 정은 있었나?’준호는 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뜨겁기도 했다.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에 쉽게 들 수 없었다.‘만약 고은지가 나한테 마음이 없다면 이미 놔줬으니까 다시 가서 방해하면 안 돼. 근데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었다면?’...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되어 길거리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준호는 신옥영이 머무는 저택으로 갔는데, 집안이 시끄러웠다.하나가 장원수를 지휘하며 집을 꾸몄고 하나는 신옥영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신옥영에게 애교를 부렸다.올해에 준호는 신옥영의 저택에서 이 부녀를 자주 봤는데, 처음에 그들을 만났을 때,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장원수를 쏘아보며 일자리며 가족 관계까지 다 물어봤었다. 나쁘지 않았다.그러나 신옥영은 재혼할 마음이 없어 보였고 준호는 신옥영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자기는 신옥영
‘설마 고은지?’곧이어 여자가 목도리를 벗자, 얼굴이 보였다.은지가 아니라, 전에 은지와 함께 준호를 속였던 배우 희현이었다.연말이 되자, 밖에서 일하던 자녀들이 다 무진으로 돌아왔기에 마을에 못 보던 차가 많이 세워져 있어 희현은 준호의 차를 의심하지 않고 차 주변을 돌며 통화를 했다.“여보세요? 언니, 저 도착했는데, 어디 계세요?”“호텔 쪽에 있어요? 아, 그럴 줄 알았으면 택시 타고 호텔로 갔죠.”준호는 희현의 통화를 듣고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다.‘언니? 고은지인가? 고은지도 여기 있나?’...무진에 호텔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항상 손님이 별로 없었다. 연말이라 손님이 더 없어서 주인장은 일 층에 탁자를 다 붙여서 음식을 해놓았다. 아이들이 모여 있어 희현이 왔을 때 아이들이 희현에게 달려왔다.“희현 언니!”희현은 통쾌하게 용돈을 나눠줬다.“이리와, 언니 돈 많이 벌어서 너희 용돈 줄게!”아이들을 보내고 희현은 창 옆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언니, 저 왔어요!”은지가 처음에 무진에 왔을 때는 준호를 피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없어져 사탕 가게를 책방으로 바꾸고 알바생을 찾았다. 이 책방에서 책을 보면 사탕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했다.이 반년 동안 은지는 여행을 다니면서 지냈다.며칠 전, 호텔 주인이 은지보고 무진에 와서 연말을 보내라고 했고 아이들이 은지를 보고 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희현은 옆 마을에서 드라마를 찍다가 같이 식사하러 왔다.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고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둘러앉았다.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준호만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차가워진 도시락을 들고 화를 냈다.준호는 은지가 외롭게 연말을 보낼 줄 알고 도시락까지 싸서 왔는데, 이렇게 화목하게 모여서 보낼 줄 몰랐다.준호는 몇 시간을 운전해서 여기까지 온 자신이 참 바보 같았다.이렇게 도시락을 건네주기는 좀 그렇고, 아무 말도 안 건네고 가자니 아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