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준의 요구에 권하윤은 눈앞이 깜깜했다.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민도준은 오히려 역할극에 빠져 있는 모습이라니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에 그녀는 침묵을 유지하며 항의를 표했다.“안 불러?”차 안에 앉아 있던 민도준은 선팅이 되어 있는 차 유리로 밖을 내다보여 입을 열었다.“왼쪽으로 돌아봐.”그의 차는 마침 기둥 뒤에 세워져 있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지만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권하윤은 이내 발견했다.곧이어 들려오는 차 문 여는 소리에 권하윤은 운명을 받아들인 듯 낮게 얘기했다.“가서 봐, 자기야.”“착하네.”민도준은 사실 자기야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권하윤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할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녀에게 이런 요구를 제기했지만 상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글자를 내뱉는 순간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때문에 그는 자비를 베풀 듯 다시 차 문을 닫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전화를 끊은 권하윤은 마치 뭐라도 찾는 듯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발견한 민시영은 걱정하는 듯 먼저 물어왔다.“왜 그래요?”“저 차키 레스토랑에 두고 왔나 봐요.”“네? 제가 같이 가줄까요?”“아니에요.”권하윤은 계획이 틀어질세라 두려워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먼저 가세요. 저 차키 찾는 대로 바로 집에 돌아갈 거라서.”“그래요 그럼. 도착하면 전화해요.”어렵사리 두 사람을 떼어낸 권하윤은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가더니 두 사람의 차가 주차장을 나서는 걸 보고 나서야 쪼르르 민도준 차로 달려갔다.민도준은 조수석에 앉아 그녀가 도둑고양이처럼 경계하며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자 피식 웃었다.“무슨 도둑도 아니고. 뭐 비슷한가? 도둑은 물건 훔치고 하윤 씨는 사람 훔치고.”“…….”권하윤은 말없이 안전벨트를 매더니 조수석에 앉은 민도준을 바라봤다.“우리 어디 가요?”그 말에 민도준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댔다.“밥 먹으러.”“밥은 방금 먹었잖아요
상 위에 술이 올라오자 권하윤은 손을 뻗어 그것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민도준이 그녀를 막으며 직접 그녀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었다.“마셔 봐.”은은한 술 냄새가 나는 액체가 청록색을 띤 자기 술잔에 담기자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그것을 받아 든 권하윤은 이내 액체를 홀짝였다. 그러자 순간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위까지 덥혀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어때?”마치 아까 벌어진 일을 잊은 듯 웃으며 물어오는 물음에 권하윤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조금 매운 걸 빼면 괜찮은 것 같아요. ”“이 술은 음미해야 해. 다시 마셔 봐.”민도준은 또 술 한 잔을 따라 그녀에게 밀었다.그가 식사를 하는 도중 권하윤 그렇게 한 모금 한 모금 술을 홀짝였다.역시나 민도준의 말처럼 처음 마셨을 때 느꼈던 매운맛은 점차 사라지고 짙은 과일 향이 느껴지면서 깊은 맛이 났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쓴맛도 조금 섞여 있었다.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술인지라 권하윤은 두잔 정도 홀짝이고는 잔을 내려놨다.하지만 그 두잔 만으로도 그녀의 머리는 어지러워졌다.취했다는 느낌보다는 몸에 열기가 오르는 듯한 느낌이 더욱 심했다.‘대체 몇 도인데 이렇게 강한 거야?’그사이 식사를 마친 민도준은 단추 두 개를 풀어헤치더니 권하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이리 와.”“저 여기 있잖아요.”권하윤은 취기가 돌았는지 반응이 조금 더뎠다.하지만 그녀가 반응할 새도 없이 민도준은 그녀의 팔을 확 끌어당겼고 그 힘 때문에 그녀는 민도준의 품에 안겼다.민도준은 권하윤의 허리에 팔을 두른 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문지르며 눈썹을 치켜들었다.“취했어?”권하윤은 그 말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저 조금 더워요.”“주량이 말이 아니군. 더 연습해야겠어.”민도준은 말하면서 한 손으로 술을 따라 권하윤 입가에 갖다 댔다.하지만 권하윤은 취할까 봐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았기에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민도준의 의견을 물었다.“그만 마시면 안 돼요
민도준은 권하윤이 취한 틈에 인사불성이 된 그녀를 달래며 사실을 알아내려고 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자기 행동에 부끄럽지 않은 태도였다.‘그러게 누가 이렇게 경계심이 많으랬나?’사실 그가 주문한 술은 특별히 제작된 거다. 주량이 안 좋은 권하윤이 아니라 주량 좋은 남자가 마셔도 몇 잔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강한 술.그런 술을 여러 잔 마셨으니 권하윤은 당연히 무사할 리 없었다. 이미 볼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채 나른하게 민도준의 어깨에 기대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만약 민도준이 그녀의 등을 받쳐주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을 거다.민도준은 그 자세 그대로 마치 아이 달래듯 몸을 흔들며 권하윤을 달랬다.“착하지. 말하면 이뻐해 줄게.”술에 취한 권하윤의 목소리는 마치 물복숭아처럼 말캉했다.“제가 권씨 가문 무서워하는 건…….”“응 왜 무서워?”“그건, 그건 도준 씨가 공아름 씨와 결혼할까 봐.”민도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권하윤은 무거운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묻으며 낮게 중얼거렸다.“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마요.”“제수씨?”“권하윤?”민도준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권하윤의 목덜미를 잡고 그녀를 자기 몸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가 이미 잠들었다는 걸 발견했다.“하.”‘아주 좋아. 이렇게 취했으면서 거짓말을 한다고?’그는 권하윤의 귀를 잘근잘근 씹으며 낮게 읊조렸다.“자기야, 우리 어디 천천히 놀아 봐.”이미 잠든 권하윤은 귓가로 불어오는 숨결에 간지러웠는지 몸을 움직이더니 편안한 자세를 찾아 다시 그의 품에 몸을 기댔다.-‘씁! 머리야.’겨우 눈을 뜬 권하윤은 그제야 이미 날이 밝았다는 걸 발견하고 이불을 들췄다.다행히 옷은 멀쩡히 입고 있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그녀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어젯밤의 일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민도준과 함께 식시하러 가서 술을 마신 것 같았는데…… 그래 술!’어제의 기억이 미세하게 떠오르자 등골이 오싹했고
민도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권하윤의 턱을 손가락을 문질러댔다.갓 욕실에서 나온 터라 권하윤의 피부는 더욱 촉촉하고 매끄러워 손에 힘을 줄 때마다 손끝으로 빠져나갔다.민도준은 살짝 벌어진 권하윤의 입술을 스쳐보더니 애써 불안을 감추고 있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맞춰 봐.”“저 설마 술주정 부린 건 아니죠?”“맞아. 어제 길가에서 나 꼭 끌어안고 울며불며 자기랑 자달라고 했어.”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창피하기도 했지만 실수로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해 표정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끝내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정말요?”민도준의 눈꼬리에 웃음기가 언뜻 지나가더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나를 차에 밀어 넣으며 차에서 하자며 내 위로 달려들었어.”권하윤은 들을수록 말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취해도 그렇지 제2의 인격이 나올 리는 없었으니까.그제야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거짓말.”권하윤의 반응에 민도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침대에 기대더니 나른하게 말했다.“그만 놀릴게.”하지만 농담 섞인 눈은 다음 순간 알 수 없는 빛을 뿜어냈다.“하윤 씨 입으로 공씨 가문이 무섭다고 했어.”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권하윤은 순간 호흡이 멈췄고 표정도 점차 무너졌다.하지만 애써 침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그 다음엔요?”“그건 본인한테 물어야지.”민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공씨 가문을 무서워해? 응? 제수씨?”권하윤 입만 벌린 채 아무런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현재 권씨 집안 넷째 신분인 그녀는 공씨 가문과 그렇다 할 접점도 없었다.게다가 어제 본인이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하지만 곧바로 뭔가 결심이라도 내린 듯 입을 악물더니 목욕 타월이 벗겨지는 것도 관여하지 않고 민도준 쪽으로 기어가 얼굴을 그의 가슴에 대고 그의 눈을 피했다.“민도준
잠시 넋을 잃고 있던 민도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욕망의 굴레에 깊이 빠져있었다.분명 연약한 여인이었지만 그녀를 꼼짝 없이 옭아매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그런 느낌은 이상하리만치 좋으면서도 불쾌했다.그는 모든 것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상대의 가식적인 연기에 일말의 감정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그런데 상대는 오히려 교활하게 무방비한 상태의 그를 완전히 혼미하게 만들었고 저도 모르게 진짜인지도 모르는 상대의 연기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그 흔들림은 그의 욕망을 불태웠고 그는 분풀이라도 하듯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에게 모든 걸 쏟아냈다.민도준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이유를 알지 못한 권하윤은 그저 낮은 소리로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정신을 잃었다.하지만 정신을 잃기 1초 전 그의 귓가에 정서를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하윤 씨는 지금 가장 현명하지 못한 길을 선택했어.”권하윤은 묻고 싶었다. 이게 왜 현명하지 못하냐고.하지만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아가씨, 분부대로 권하윤 씨에 대해 조사해 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케빈의 말에 민시영은 눈살을 찌푸렸다.“확실해?”“네. 권씨 집안은 엄격한 집안인 데다 권하윤 씨는 계속 집안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게다가 학교도 가문에서 설립한 여고와 여대를 나와 줄곧 규칙을 따르며 자라 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케빈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잘못 기억한 건가?’한참 동안 생각하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마침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케빈과 눈이 마주쳤다.집착과 갈망이 섞여 있고 개처럼 충성스러웠지만 개만큼 순수하지는 않았다.그녀는 이내 귀찮은 듯 고개를 돌리며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런 역겨운 눈으로 나 쳐다보지 마.”“죄송합니다.”케빈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꺼져.”케빈을 마주할 때만 민
다음 날 점심.권하윤은 문태훈과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다.그 카페는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칸막이로 모두 막혀 있어 다른 사람에게 발각될 위험이 없었다. 권하윤이 약속한 자리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캡모자와 마스크를 쓴 문태훈이 들어왔다.그녀는 이내 가방을 자리에 벗어 놓으며 입을 열었다.“문태훈 씨 설마 요즘 파파라치로 전향했어요?”문태훈은 그녀의 말에 마스크를 조금 내리더니 분노를 머금은 채 잇새로 말을 토해냈다.“내 말 들으면 웃고 싶은 생각 다 사라질걸요?”그 말에 권하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취했다.“설마 그 사람이 경성 온다는 얘기 하려는 거예요?”“어떻게 알았어요? 민 사장님이 알려줬나 보죠?”권하윤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문태훈과 한배를 탄 사이라지만 모든 것을 말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경각심을 늦추지 않는다면 문태훈에게 끌려다니기 십상이었으니.때문에 권하윤은 일부러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되물었다.“언제 온다는 말 있었어요?”역시나 권하윤의 담담한 모습은 이 소식으로 그녀에게 겁을 주려던 문태훈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두렵지 않아요?”권하윤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문태훈 씨가 돕고 있는데 제가 무서울 게 뭐 있어요?”“제가 어떻게 도와요!”문태훈이 화가 났는지 마스크를 확 벗어 던지자 오랜 시간 마스크에 싸여 있어서인지 빨갛게 된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가주님이 당신 발견하는 날에 우리 둘 다 죽어요!”권하윤은 커피잔을 움켜쥔 손끝에 힘을 주었다.“그 사람 민 사장님과 합작 건에 대해 협상하러 온 거잖아요. 그러니 꼭 저와 마주치진 않을 거예요.”“알고 있었어요?”또 한 번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뜬 문태훈을 보자 권하윤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당연한 거 아니에요?”“문태훈 씨,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한배를 탄 사이예요. 그쪽 말대로 내가 그 사람한테 존재를 들키는 날엔 우리 둘 다 빠져나가지 못한다고요. 그러니 자꾸만 머리 굴릴 생각하지
문태훈은 그 물음에 약간 깨고소해하는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공씨 가문에서 두 사람 약혼한 사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었거든요.”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은 무릎 위에 놓여있던 손을 꽉 그러쥐었다.“두 사람 혹시 애틋한 관계였어요?”“저는 제삼자라서 그런 것까지는 몰라요. 그런데 민 사장님이 매년 겨울마다 해원에 한 달씩 놀러 오곤 했어요. 무슨 일이 있든 미루거나 취소한 적이 없거든요.”‘한 달.’솔직히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인 것 같지만 모든 사업이 경성에 있는 민도준이 해원에 한 달씩이나 머물러 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불편함을 고사하면서까지 계속 그 일을 견지했다는 건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애틋했는지 간접적으로 증명했다.끝내 답을 얻었지만 권하윤의 마음은 조금도 편안해지지 않았다.문태훈은 그런 권하윤의 표정을 보면서 악랄하게 비웃어댔다.“그러니까 민 사장님이 만약 당신이 이성호의 딸이라는 걸 알면 그 결과는 우리 가주님한테 발각되는 것보다 좋지는 않을 거예요.”권하윤은 목구멍을 막고 있는 감정을 꾹꾹 눌러 삼킨 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민 사장님이 알게 되면 공씨 가문 가주도 알게 될 테니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비밀 꼭 지켜 주길 바라요.”“…….”-커피숍을 나선 권하윤은 이내 차에 올라탔지만 한참 동안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민도준과 채팅했던 화면을 켰다. 마지막 메시지는 그녀가 그저께 보낸 거였다. 별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는 문자. 하지만 민도준은 답장하지 않았다.그저께가 아니라 어제, 그리고 오늘까지도 그는 여전히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이런 상황은 예전에 없었던 거라 권하윤은 무척 불안했다.‘설마 내가 다른 속셈이 있다는 의심이 들어 이젠 나랑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나?’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금은 안도했다. 만약 이대로 두 사람의 연락이 끊긴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으니.마음속에서 자꾸만 솟아나는 괴로움을 그녀는 무시해 버리고 자리를 떴다.하지만 그녀의 차가
“나와!”놈들의 팔이 깨진 차창으로 들어와 권하윤이 미처 피하지도 못한 사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밖으로 끌었다.유일하게 놈들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차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 권하윤은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씨발, 나오라면 재깍재깍 나올 것이지.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권하윤은 바닥을 짚고 일어났지만 팔꿈치는 이미 까져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그녀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은 딱 봐도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맨 앞에 있는 남자가 바로 그녀더러 돌아가라고 하던 그 사람이었다.그는 이미 안전모를 버려 던지고 대머리를 드러냈다.권하윤은 애써 냉정함을 찾으며 그들과 대화를 시도했다.“당신들 얼마나 필요해요? 달라는 대로 다 줄게요.”대머리는 그녀의 말이 우습다는 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권하윤 씨, 지금 우리를 강도 취급하는 거예요?”‘권하윤 씨?’놈의 호칭을 듣자 권하윤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그녀를 알고 있다면 당분간은 그녀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으니.마음을 진정한 그녀는 상대를 설득하려고 입을 열었다.“저를 알고 있다면 반은 친구라는 건데 원하는 거 있으면 직접 말하지 그래요?”“우리가 그 쪽한테 뭘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형님이 뭘 하려는 거야.”“그쪽들 형님이…….”갑자기 어디선가 이름이 나오려고 할 때 그녀가 시간을 일부러 지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누군가가 말을 잘랐다.“묶어!”“잠깐만요. 당신들 형님이 누군데…… 이거 놔…….”그들은 모두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사람들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권하윤을 포박했다.“덕구 형님, 이 여자가 아까 핸드폰을 만지작댔는데 설마 신고한 건 아니겠죠?”“권하윤 씨, 핸드폰 좀 봅시다.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몸수색 들어갑니다.”예의 따위 이미 오래전 바닥에 처박아 둔 것 같은 몇몇은 몸수색이라는 단어를 듣자 이내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그들을 상대로 권하윤은 감히 불만을 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핸드폰의 위치를 알려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