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철은 이내 말을 잇지 않고 고청민과 성연신을 번갈아 훑어봤다.성수광은 먼저 나서서 그를 데리고 위층으로 향했다.“자, 우린 바둑이나 한판 두시죠. 젊은이들의 일은 그들끼리 해결하도록 하죠.”“그뿐인가, 우리 성씨 가문의 체면과 손녀의 안전까지 책임져야죠.”“당연하죠.”그는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성수광은 도덕성이 높아 오늘 성씨 가문을 난처하게 한 것을 알고 말투가 특히 좋았다.성동철은 고청민이 고집하는 것을 보더니 순간 어젯밤에 그가 출장을 핑계 삼아 밤늦게 돌아온 것이 떠올랐다.성연신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성동철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성수광을 따라 떠나서 두 남자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었다.성연신은 의자에 앉더니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할말 없으세요?”“지안 씨를 넘겨주세요. 그럼 더 이상 따지진 않을게요.”“난 이미 다 알았는데요?”고청민은 안색 하나 변함없고 동요하지도 않았다.“뭘 아는데요?”“혹시 내가 당신이랑 비밀 조직 사이의 비리 따위나 말하려고 이러는 것 같아요?”그는 마치 의사 결정을 관장하는 신과 같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고청민은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또 뭘 알고 있죠?”“어제 제원파크로 가는 산길에서 당신을 봤어요.”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바닥에 바늘이 떨어져도 크게 들릴 것 같았다.고청민은 멈칫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지고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약간 뻣뻣하게 입꼬리를 치켜올렸다.“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제 저는 인주 시로 출장 갔어요.”“계속 지어내 보세요.”“지어낼 필요가 없죠. 만약 이 일로 저를 협박이라도 해서 지안 씨를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이라면 잘못짚으셨네요.”성연신은 단번에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우리 둘 사이에서 성씨 어르신께서 무조건 당신 편을 들어주고 내 말 따위는 믿지도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이렇게도 겁 없는 건가요?”고청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
고청민은 멈추지 않고 기세를 몰아 성연신이 다친 곳을 골라 주먹을 휘둘렀다.그는 보기에는 수척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힘이 셌다.고청민의 눈은 새빨갛고 휘두르는 주먹마다 힘을 실은 채 격한 분노와 그리고 켕기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성연신은 왜 죽지 않았을까, 죽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럼 그와 지안은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멀쩡하던 인생은 어쩌다 성연신에 의해 엉망이 되었는지.분명히 성연신이 먼저 지안을 버리고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인데, 그는 그저 지안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고 성우주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랐다. 어렵게 얻은 지금의 모든 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퍽-성연신은 기회를 봐서 테이블에 올려있던 컵을 잡더니 이성을 잃은 고청민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유리가 바닥에 온통 부서지자 둘은 동작을 멈췄다.피가 하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고청민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새빨간 눈으로 성연신을 빤히 쳐다보더니 옆에 있던 꽃병을 쥐고 역시 무기로 삼았다.눈을 감은 채 목구멍에서 복받쳐 오르는 피비린내를 삼키던 성연신은 몸이 극한에 달해도 온몸에서 풍기는 승자의 기운만은 여전했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감히 여기서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고?”고청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꿋꿋한 자태로 서 있었다. 평소와 달리 얼굴에 있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어졌고 또래답지 않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며 딱히 부인하지도 않았다.확실히 그는 방금 살인충동을 느꼈다.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여기는 성씨의 저택이고 성연신의 바닥이다.그러나 그는 정말로 성연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치 성연신이 살아 있는 한 줄곧 영혼이 가시지 않은 채 심지안에게 매달릴 것 같았다.“비밀 조직과 손잡아도 날 죽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더더욱 불가능하죠.”성연신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얼굴에 혈색이 일도 없는 채 고청민을 빤히 쳐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예전에 정말 당신한테 기회를 주려고 했거든요? 다만 심지안을 해치지 않
이런 말들은 매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여 고청민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꽃병을 꽉 움켜잡는 그의 눈에서 독기가 뿜겨져나왔다. 아마 자극을 받았는지 이 순간만은 성연신을 죽이고 싶었다. 두 쌍의 눈이 마주치자 기분이 날카로와져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이때 걱정스럽고 거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안철수는 건장한 몸집으로 나무 바닥을 삐걱삐걱 소리를 내 밟으며 다가왔다. 그는 잔뜩 긴장해서 급급히 성연신을 부추기며 물었다. “대표님, 괜찮으세요?”이틀 밤새 제대로 쉬지 못한 데다가 상처를 대충 처리하고 급히 성씨 가문을 찾아가야 하는데 어찌 견딜 수가 있겠는가.“괜찮아요.”눈을 돌려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고청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한 짓입니까? 대표님, 제가 대신 혼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악의를 풍기며 고청민을 향해 걸어갔다. 젠장, 대표님이 병난 틈을 타 목숨을 노리다니.이 녀석은 기본적인 예의가 없구나!성연신은 소파에 반쯤 누워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리지 않았다. 그는 고청민이 얼마쯤은 몸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안철수를 이길 수 있을지 몰랐다. 고청민은 가까이 다가오는 안철수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몸을 풀었다.아침부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는지라 그도 기회 삼아 분풀이하고 싶었다.“내보내 주세요! 나 좀 내보내 줘요!”위층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고청민은 안색이 변했다. 심지안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값진 골동품 꽃병을 마음대로 던지더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성연신은 내색하지 않았다. 성씨네 저택은 안팎을 모두 개조하였는데 단단한 정도가 방탄집에 비견되었다. 열쇠가 없다면 한사람 외부의 힘만으로는 절대 열 수가 없다. “할아버지께서 아직 안 나오셨어요?”안철수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그냥 차 좀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하지만 주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고청민이 대표님께 주먹질하려는 소리
“그래요, 그러나 지안이 우리와 함께 돌아간다고 해도 당신네 집안은 마찬가지로 성씨 가문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합니다.”성동철은 심지안의 팔꿈치가 밖으로 꺾일 것이라고 얼마간 자신했다. 만약 그녀가 아직도 성연신을 선택한다면 정말 그녀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요즘 말로 금사빠인것이다. 성수광은 기침 소리를 내며 호의적으로 주의를 주었다. “때때로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너무 서두르며 급히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천천히 조사해야 하죠. 자신을 제외하고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인심을 헤아리기 어렵네요.”성동철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청민이 전날 밤 인주 시에 간 것을 가리킨다고 의심했지만 증거는 없었다. ...고청민은 성동철이 오는 것을 보고 문을 걷어차려다 멈추고 얼굴에 절박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할아버지, 지안 씨 여기 있어요.”성수광은 성연신을 노려보며 말했다. “문 열지 않고 뭐 하는 거냐?”성연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몸을 일으켜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침실문을 열었다. 심지안은 온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그것은 생리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마은은 텅 비여서 주체할 수 없이 멍해 있었으며 눈물만 흘렸다. 고청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처음에는 기뻤지만 홍지윤이 했던 말을 생각하니 참지 못하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우주가 정말 그녀의 아이일까… “지안 씨, 괜찮아요? 저와 할아버지가 지안 씨를 데리고 집에 갈 거예요.”고청민은 격동되어 심지안을 품에 안았다. 마치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보물처럼 말이다. 심지안은 눈앞의 고청민을 보면서 마치 인형처럼 그가 안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그리고 성동철을 향해 눈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그래... 할아버지가 늦었구나.”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결혼식도 마저 올려야지. 그리고 자네 가문에서는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오랫동안 기다리신 하객 여러분께 사과를 해주십시오.”성연신
“아무것도 아니에요.”심지안은 말을 바꾸고 창백한 얼굴로 그를 향해 머리를 저었다. 고청민의 눈길은 그녀의 얼굴에 몇 초 동안 머물렀는데 왠지 불안했다. 도대체 무슨 녹음인지...성연신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심지안에게 과거의 진실을 알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며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는 가장 먼저 홍지윤을 떠올렸다. 이때 고청민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문자 한 통이 왔다.[홍지윤이 죽었어요. 제 아버지가 죽였어요.]발신자는 송준이었다. 고청민은 화면을 터치하던 손을 멈칫하더니 물음표 하나를 보냈다. [그냥 추측하건대 성연신이 그녀를 출국시켰다가 마침 아버지의 해외에 있는 부하들한테 들킨 것같아요. 성연신이 그녀에게 그렇게 인자할 줄은 몰랐어요.]고청민은 핸드폰을 거두고 백미러를 통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바라보며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디 성연신의 선량함이겠는가. 심지안이 최면에 걸리기 전에 홍지윤에게 주었던 약속일 뿐이었다. 성수광의 입에서 나온 녹음은 아무래도 홍지윤이 남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심지안은 이미 모든 것을 알았을 텐데 여전히 그와 성씨 가문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성연신보다 그를 믿는 것임을 말해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청민은 강한 불안을 느꼈다. 성연신의 존재는 시한폭탄과도 같아 어쩌면 그가 따라 가게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이미 고청민이 비밀 조직의 암살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자신을 가리킬 증거가 없는 것은 확실하지만 일단 그가 결혼식에서 함부로 무슨 말이라도 하면...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가 일지 않겠지만 혹시 영향을 미칠까 봐 불안했다...“할아버지, 오늘 성씨네 가문에서 사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저와 지안 씨 결혼식에 전남편 가문이 나서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요.”고청민은 성동철에게 말했다. “안돼. 공개적으로 사과를 받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우리 가문을 함부로 업신여김이나 당한다고 생각할 거야.”성동철은 질책하며 거절했다.
헤드라인에 성연신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전와이프가 결혼하여 원망이 너무 깊어 충격을 받아 귀신이 되었나?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성연신과 심지안에게 쏠려 마치 이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듯 머릿속으로 한차례의 연극을 환상하고 있었다. “나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네. 점쟁이가 내가 양기가 적다고 했는데.”“멀리 가긴, 이 대낮에 땅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못 봤어?”“성연신의 안색이 어두워 보이지 않아? 얼굴에 혈색도 없고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 세상에 귀신은 없어.”“저리 꺼져. 우리집 녀석은 큰 재난에도 죽지 않는데, 뭘 그렇게 함부로 지껄이나?”성수광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말을 듣고 그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지만 눈에 비친 공포는 거두지 못했다. 사실 그들이 그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성연신은 줄곧 존귀하고 도도한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피로 물든 양복을 입고 이마에는 찰과상을 입었고 병적인 상태에서는 한기가 느껴져 마치 지옥에서 나온 사자 같았다. 그리고... 어르신께서 몇년전부터 많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진작 들었는데 오늘 보니 비록 휠체어에 앉아있기는 하지만 정신은 그 연세에 비해 괜찮은 편이었다. “약탈하러 왔어요?”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터져 올랐고 변혜영의 선하지 않은 눈빛이 심지안에게 떨어졌는데 그 뜻은 명백했다. “아니요. 공주님께서 헛소리를 하시네요. 명성이 한 여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자로서 잘 알 텐데,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네요. “성연신은 얇은 입술로 담담히 해석했지만 그 위협적인 뜻은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다. 심지안은 고개를 들어 성연신의 조각상 같은 옆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는 설렘이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감정을 누르며 이성이 우위를 점했다. 이런 화면을 초래한 것은 여전히 그 자신이 아닌가?능청스럽다. 변혜영은 천성적으로 당당하고 고귀하다. 누가 감히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난처
변혜영은 분노하며 말했고 눈에는 질투심으로 꽉 찼다.어머니와 오빠의 시선이 다 그년에게만 쏠려있어 그녀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임시연이 그녀의 사랑을 빼앗은 것이다.변요석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런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그만해, 이런 일들은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오늘은 심지안의 결혼식이야. 분위기를 망치려 하지 마.”“내가 망치려 하지 않아도 어차피 성연신이 망쳐버릴 거잖아요.”“내가 성연신을 단속할 수는 없어도 너 하나는 단속할 수 있어.”변혜영은 내심 분개하며 애원에 찬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버지도 왜 그렇게 편애하세요. 다들 너무 싫어요. 송준처럼 날 이뻐해 주지도 않잖아요.”변요석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어 변혜영의 투정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다. 그는 변혜영을 대충 몇 마디로 달래고 성연신을 찾으러 성씨 장원에 들어갔다.장원에서 결혼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꽃을 든 어린이, 반지, 웨딩드레스, 정장, 그리고 결혼식 하객들의 축복까지 보탠 이 장면은 꿈처럼 아름다웠다.“신랑과 신부, 반지를 교환해 주세요.”목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쳐다보았다.고청민은 앞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고 준비한 반지를 부드럽게 심지안의 약지에 끼웠다.반지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고 그 다이아몬드에서 눈부시게 뿜어나오는 황홀한 빛이 심지안의 눈에 비추자 그녀의 시선이 갑자기 흐릿해졌다.심지안은 맞은편에서 빛을 막고 서 있는 고청민을 분간할 수 없어 손으로 눈을 반복적으로 비볐다. 그러나 고청민의 얼굴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심지안은 눈앞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고 무척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마치 이 칠흑 같은 어둠이 그녀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속으로 빠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안은 이 흐리멍텅한 상황에서 문득 방언니를 떠
성연신의 냉기가 감도는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그에게 비친 빛 때문에 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성연신 특유의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던 분위기는 어느새 친근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안철수는 자기 몸에서 삐죽삐죽 돋아난 닭살을 훌훌 털어내며 사랑의 힘이 정말로 위대하다고 혀를 끌끌 찼다. 만 년 동안 얼어붙었던 빙산도 사랑의 힘으로 따뜻한 햇빛으로 변신했으니까. 심지안은 성연신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어색하게 머리를 돌렸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저녁에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러 갈 거예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웨딩드레스의 치마를 움켜쥔 채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식장은 무척이나 떠들썩했고 손님들은 너도나도 신랑과 신부에게 축복과 선물을 전달했다. 성동철은 고청민과 심지안을 데리고 식장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술을 건넸다. 대다수 손님은 눈치껏 성씨 집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독 송준만이 눈치도 없이 음침하게 웃으며 와인잔을 들고 주동적으로 다가와 술을 건넸다. “지안 씨 체면은 정말 대단하네요. 결혼식에 전남편까지 동원해서 경호하게 하다니, 진짜 기가 막히는 능력이군요.” 심지안은 그의 뒤에서 의기양양해하는 변혜영을 발견했고 그제야 눈앞의 사람이 변혜영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 임시연이 정말로 임신한 걸까? 변석환이 이 정도로 오금이 쑤시는가... 임신 초기 3개월은 뱃속의 태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성생활이 허락되지 않는다.성동철은 송준의 낯선 얼굴을 노려보다가 정색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우리 성씨 가문에서 당신을 초대한 적이 없는 것 같거든요.”“성동철 씨, 안녕하세요. 이건 제 명함입니다. 저는 보잘것없이 작은 그룹의 이사장입니다. 우린 예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제가 명망 높은 성동철 씨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기회만 된다면 귀사와 협력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변혜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