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에 성연신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전와이프가 결혼하여 원망이 너무 깊어 충격을 받아 귀신이 되었나?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성연신과 심지안에게 쏠려 마치 이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듯 머릿속으로 한차례의 연극을 환상하고 있었다. “나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네. 점쟁이가 내가 양기가 적다고 했는데.”“멀리 가긴, 이 대낮에 땅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못 봤어?”“성연신의 안색이 어두워 보이지 않아? 얼굴에 혈색도 없고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 세상에 귀신은 없어.”“저리 꺼져. 우리집 녀석은 큰 재난에도 죽지 않는데, 뭘 그렇게 함부로 지껄이나?”성수광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말을 듣고 그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지만 눈에 비친 공포는 거두지 못했다. 사실 그들이 그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성연신은 줄곧 존귀하고 도도한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피로 물든 양복을 입고 이마에는 찰과상을 입었고 병적인 상태에서는 한기가 느껴져 마치 지옥에서 나온 사자 같았다. 그리고... 어르신께서 몇년전부터 많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진작 들었는데 오늘 보니 비록 휠체어에 앉아있기는 하지만 정신은 그 연세에 비해 괜찮은 편이었다. “약탈하러 왔어요?”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터져 올랐고 변혜영의 선하지 않은 눈빛이 심지안에게 떨어졌는데 그 뜻은 명백했다. “아니요. 공주님께서 헛소리를 하시네요. 명성이 한 여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자로서 잘 알 텐데,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네요. “성연신은 얇은 입술로 담담히 해석했지만 그 위협적인 뜻은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다. 심지안은 고개를 들어 성연신의 조각상 같은 옆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는 설렘이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감정을 누르며 이성이 우위를 점했다. 이런 화면을 초래한 것은 여전히 그 자신이 아닌가?능청스럽다. 변혜영은 천성적으로 당당하고 고귀하다. 누가 감히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난처
변혜영은 분노하며 말했고 눈에는 질투심으로 꽉 찼다.어머니와 오빠의 시선이 다 그년에게만 쏠려있어 그녀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임시연이 그녀의 사랑을 빼앗은 것이다.변요석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런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그만해, 이런 일들은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오늘은 심지안의 결혼식이야. 분위기를 망치려 하지 마.”“내가 망치려 하지 않아도 어차피 성연신이 망쳐버릴 거잖아요.”“내가 성연신을 단속할 수는 없어도 너 하나는 단속할 수 있어.”변혜영은 내심 분개하며 애원에 찬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버지도 왜 그렇게 편애하세요. 다들 너무 싫어요. 송준처럼 날 이뻐해 주지도 않잖아요.”변요석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어 변혜영의 투정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다. 그는 변혜영을 대충 몇 마디로 달래고 성연신을 찾으러 성씨 장원에 들어갔다.장원에서 결혼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꽃을 든 어린이, 반지, 웨딩드레스, 정장, 그리고 결혼식 하객들의 축복까지 보탠 이 장면은 꿈처럼 아름다웠다.“신랑과 신부, 반지를 교환해 주세요.”목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쳐다보았다.고청민은 앞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고 준비한 반지를 부드럽게 심지안의 약지에 끼웠다.반지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고 그 다이아몬드에서 눈부시게 뿜어나오는 황홀한 빛이 심지안의 눈에 비추자 그녀의 시선이 갑자기 흐릿해졌다.심지안은 맞은편에서 빛을 막고 서 있는 고청민을 분간할 수 없어 손으로 눈을 반복적으로 비볐다. 그러나 고청민의 얼굴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심지안은 눈앞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고 무척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마치 이 칠흑 같은 어둠이 그녀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속으로 빠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안은 이 흐리멍텅한 상황에서 문득 방언니를 떠
성연신의 냉기가 감도는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그에게 비친 빛 때문에 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성연신 특유의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던 분위기는 어느새 친근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안철수는 자기 몸에서 삐죽삐죽 돋아난 닭살을 훌훌 털어내며 사랑의 힘이 정말로 위대하다고 혀를 끌끌 찼다. 만 년 동안 얼어붙었던 빙산도 사랑의 힘으로 따뜻한 햇빛으로 변신했으니까. 심지안은 성연신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어색하게 머리를 돌렸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저녁에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러 갈 거예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웨딩드레스의 치마를 움켜쥔 채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식장은 무척이나 떠들썩했고 손님들은 너도나도 신랑과 신부에게 축복과 선물을 전달했다. 성동철은 고청민과 심지안을 데리고 식장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술을 건넸다. 대다수 손님은 눈치껏 성씨 집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독 송준만이 눈치도 없이 음침하게 웃으며 와인잔을 들고 주동적으로 다가와 술을 건넸다. “지안 씨 체면은 정말 대단하네요. 결혼식에 전남편까지 동원해서 경호하게 하다니, 진짜 기가 막히는 능력이군요.” 심지안은 그의 뒤에서 의기양양해하는 변혜영을 발견했고 그제야 눈앞의 사람이 변혜영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 임시연이 정말로 임신한 걸까? 변석환이 이 정도로 오금이 쑤시는가... 임신 초기 3개월은 뱃속의 태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성생활이 허락되지 않는다.성동철은 송준의 낯선 얼굴을 노려보다가 정색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우리 성씨 가문에서 당신을 초대한 적이 없는 것 같거든요.”“성동철 씨, 안녕하세요. 이건 제 명함입니다. 저는 보잘것없이 작은 그룹의 이사장입니다. 우린 예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제가 명망 높은 성동철 씨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기회만 된다면 귀사와 협력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변혜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럼 지금 나랑 돌아가서 우리 오빠에게 말해. 임시연은 비밀 조직의 사람이니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장 폭로해.”송준의 입가에 눈에 띄지 않는 미묘한 교활함이 미소를 타고 번졌다.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변혜영에게 말했다. “혜영아, 임시연은 비밀 조직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예전에 비밀 조직이 그녀를 성연신 곁에 보낸 건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변석환을 따르는 건 순전히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서야. 그녀가 이기적인 목적을 갖고 네 오빠에게 접근할 수는 있어. 근데 요즘 세상에 현실적이지 않은 여자가 어디에 있어? 결혼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경제력이 따라줘야 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모아둔 돈도 있어야 앞으로 근심 걱정 없이 평범한 삶을 즐길 수 있지, 안 그래?” “게다가 네 오빠도 임시연을 진심으로 좋아하잖아.” 이 말에 변혜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여자들이 돈과 권력을 탐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여자들은 기댈 곳을 찾게 된다. “임시연과 함께 심지안을 상대하기로 생각해 본 적은 있어?”변혜영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심지안도 우리 아버지의 딸이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그녀를 지나치게 편애하고 있잖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심지안이 네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 온다면 두렵지 않겠어?” 송준은 유혹적인 말투로 목소리를 길게 내뺐고 변혜영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난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어. 단지 황궁에서의 네 자리가 심히 걱정될 뿐이야...”“그만해!” 변혜영이 큰 소리로 고함을 쳤고 그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을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를 그렇게 대할 수 없을 거야... 송준의 눈가에 목적을 달성한 희열이 반짝였지만 그는 이내 변혜영의 말대로 고분고분 입을 다물고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이 세상 누구도 널 원하지 않더라도 난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변석환이 제때 변
고청민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냉큼 선물을 받았다. “고마워.”하지만 심지안은 너무 창피해 구멍이라도 파서 들어가고 싶었다. 그녀는 이 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때, 반대편에서 케이크를 먹으며 허기를 채우던 진유진이 심지안을 향해 소리쳤다.“지안아, 술 다 마셨어? 네게 할 얘기가 있어.”결혼식도 끝났으니 정욱에게서 들은 얘기를 심지안에게 전해줘야 했다.심지안은 마치 지푸라기도 잡은 듯 고청민의 손을 뿌리치고 진유진을 향해 대답했다. “알았어, 지금 갈게.”고청민은 그녀가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진유진에게 돌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카로운 표정을 지은 채 발걸음을 돌려 심지안을 따라가려 했다.그러자 민채린이 슬쩍 그를 막아 나섰다. “기다려봐, 네게 물어볼 게 있어.”“뭔데.” 고청민은 동작을 멈추지 않고 여전히 심지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심지안의 상태가 좀 이상하지 않아?” 이 말에 고청민은 멈칫하더니 시선을 심지안에게서 거두고 민채린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이상한데?”“전체적으로 정신상태가 몽롱해 보여... 간단한 화장으로는 음침한 얼굴색을 가릴 수 없어.”“요 며칠 동안 정말 많은 일이 발생하긴 했어.” 고청민은 무심코 심지안의 상태에 대해 해명했다. “그게 다야?”“그럼 뭐가 더 있어?”“지난번에 네가 나에게 최면을 걸어준 건 기억나?”고청민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기억나. 무슨 일이라도 있어?”“내가 최면을 받은 그 며칠 동안 지금의 심지안과 비슷한 상태였다고 생각해.”민채린은 물러서지 않고 그의 눈길을 받아들이며 뜸 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가 심지안에게 최면을 걸었지? 내 말이 틀려?”지난번 황궁에서 심지안과 성연신을 목격했을 때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애매해 보였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에서 심지안이 누구에게 호감을 더 느끼는지는 여자인 민채린이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고청민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더니 그는 내심 평온한 목
심지안은 큰 충격에 빠졌고 이내 깊은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왔다.고청민이 이 정도로 심지안을 잘 대해주는데 그녀는 그를 의심이나 하고 있었다...만약 그가 정말로 비밀 조직과 연합해 아이를 다치게 한 것이라면 왜 지금 도리어 아이를 받아들이려 하는 걸까?설마 고청민이 지금 그녀 앞에서 연기를 하는 걸까?연기를 하는 거라...심지안은 눈앞에 서 있는 해맑은 남자를 올려다보며 혼란스럽고 의심스러운 감정이 마음속에서 요동쳤다.바로 그때, 갑자기 뭔가가 번개처럼 번쩍이며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한순간의 일이라 미처 잡지 못했다.하지만 그녀에게는 매우 익숙한 느낌이었고 지금 눈앞의 장면과 겹치면서 강렬한 데자뷔를 느꼈다...심지안은 이쁜 눈썹을 찡그리며 이 새로운 발견에 속수무책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더군다나 그녀가 이런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지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진유진이 타고난 사랑꾼처럼 말하는 고청민을 흘깃 쳐다보고는 심지안의 생각을 끊어버리고 입장을 물었다.그녀는 고청민이 심지안을 끔찍하게 대해주는 걸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고청민이 성우주의 존재를 완전히 신경 쓰지 않고 심지안과 함께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태도는 그녀의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갔다. 이런 말이 있는 것 같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 세상에 백기를 들고 그녀에게 완전히 투항한다고 공포한다고. 하지만 심지안은 고청민과 달리 우물쭈물하며 쉽게 진심을 내놓지 않았다. 외부인들에게는 심지안이 지나친 사랑을 받아 징징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심지안이 어떤 판단을 하든 무조건 심지안의 편을 들 생각이었다. 사랑은 이익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동등한 헌신만으로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심지안은 주먹을 꽉 쥐고 고청민의 사랑으로 가득 찬 눈길 속에서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오늘밤 아이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릴
안철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군말 없이 급히 민채린을 찾으러 갔다.성씨 가문의 장원은 규모가 엄청났다. 장원이라고 부를 뿐이지 사실 궁전과 별반 다른 점이 없다고 볼 수 있었다.결혼식 구역은 아름다운 동화 세계로 꾸며져 있었다. 휴식 공간, 체스실, 야외 마장, 수영장 파티... 심지어는 어린이 놀이터까지 마련되어 있었다.하지만 안철수는 이렇게 큰 규모의 장원에서 이내 민채린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그녀의 성격으로 추측해 보면 분명 수영장 파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안철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하얀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검은 비키니로 갈아입어 수영장 의자에 누워 있었고 오른쪽 다리를 약간 구부려 섹시한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었다.여러 남자가 다가와 그녀에게 작업을 걸었지만 민채린의 기준과 거리가 멀어 단호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안철수는 그녀를 흘깃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여자 탈의실 쪽으로 걸어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여시 같은 년...”만약 그런 약이 더 있다면 무조건 그녀의 옷이나 가방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그녀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녀를 찾아도 주지 않을 테니까. 안철수는 우람진 체형 때문에 여자 탈의실에 들어갈 때 꽤 애를 먹었다. 잠입에 성공한 후 그는 금방 민채린의 가방을 찾아냈다.안철수는 가방 안의 물건들을 모두 빼내어 뒤적이다가 운이 좋게도 두 개의 알약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알약은 아주 작았고 크기가 참깨와 비슷했다.안철수는 이 알약들이 해독제가 맞는지 확인할 수 없어 손바닥에 놓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아마도 너무 집중해 살펴본 탓인지 그는 밖에서 들리는 가벼운 발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다.갑자기 탈의실의 문이 와락 열렸다.민채린과 안철수의 눈빛이 정면으로 부딪쳤고 그녀는 눈앞의 장면을 보고 순식간에 쌍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X발, 이 변태 새끼야. 여자 탈의실에 들어와 무슨 파렴치한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그녀
“그만둬, 우리끼리 먼저 가자.” 성연신은 쌀쌀한 말투로 말했다.안철수가 정욱에게 비해 세상 물정에 덜 밝은 편이긴 하지만 임무 수행 능력은 뛰어나 그에게 맡긴 대다수 임무는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다.민채린은 상대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기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였다.“여기까지 마중할게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고청민은 어두운 표정으로 성연신의 체면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축객령을 내렸다.성연신은 읏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 두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오늘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 성연신이 심지안을 부를 것이다.민채린 이 빌어먹을 년이 준비한 음란한 약을 마시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그 말에 고청민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성연신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눈에서 분노의 화산이 폭발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요. 연신 씨가 우리의 감정에 이렇게 반복적으로 끼어드는 게 얼마나 비열한 일인지 모르는 겁니까?”“오, 그래요?” 성연신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일침을 날렸다. “누가 누구의 감정에 먼저 끼어들었는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여자가 육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남자도 직감이라는 걸 갖고 있다.오래전에 고청민이 처음으로 심지안을 접근할 때부터 성연신은 이 사람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런데 하필 심지안은 성연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고지식한 남자가 꼬리 치는 여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그 남자의 여자친구가 얼마나 화가 나는지 성연신은 이 기회를 빌려 그 느낌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다.“그건 연신 씨가 지안 씨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죠.”성연신은 조롱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빠개며 말했다. “사실 청민 씨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아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