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세요, 집에 갈래요.”성연신이 착잡하고 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짜증이 난 심지안은 손을 뻗어 그를 밀쳐내고 문을 박차 나가려 했다.“진정하세요. 일단 녹음파일부터 끝까지 들으시죠.”성연신은 그녀를 말리며 그의 마음도 좋지는 않았다.“싫어요. 다 가짜야, 가짜라고...”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녹음파일 듣는 것을 거부했다.마치 녹음파일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악마와도 같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녀의 살갗을 찢고 뼛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한 공포감을 전했다.성연신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마음속으로는 고청민이 심지안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마음속 깊이 갈망하는 답을 알려주려고 했다.“힘든 거 알아요. 다 들을 때까지 조금만 참아줘요. 누가 우리 아인지까지만 듣고 그만할게요.”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거의 애원하듯이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듣고 싶지 않아요. 집에 갈래요... 절 그만 보내줘요.”성연신은 말을 뱉으려다 이내 다시 삼켜버리고 한숨만 내쉬었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싸늘하던 목소리는 그녀와 타협한 듯 이내 부드러워졌다.“그래요. 그만할게요.”그는 그녀를 어찌할 도리가 없어 저녁에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성연신의 온기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낀 심지안은 거북스러워 몸을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집에 갈래요.”“연신 씨, 제발 절 내버려둬요. 각자 제 갈 길 가요. 오늘 일은 성씨 가문에서 따지지 않도록 할게요.”그녀는 구구절절 애원하며 여전히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그 생각은 접는 게 좋겠어요.”성연신은 여전히 결연한 태도로 답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백호가 급히 문을 두드렸다.“어르신께서 오셨습니다.”심지안은 눈을 반짝이며 성연신의 반응을 살폈다.그는 덤덤하게 그녀를 흘겨봤다.“얌전하게 있어요. 금방 돌아올 테니.”그는 말을 마치고 몸을
고청민은 빤히 계단 입구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쥔 채 온몸을 다해 억제하고 있었다. 그의 무해한 얼굴은 이미 잔뜩 일그러졌다.“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 와이프만 넘겨주시면 됩니다.”“와이프? 혼인신고도 안 했고 결혼식도 올린 적이 없는데 뭔 와이프죠?”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성연신이 얼굴을 드러냈다.이런 상황에서도 얼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처음처럼 침착하기만 한 사람은 성연신을 제외하고 찾아볼 수 없었다.성수광은 한스럽게 그를 노려봤다.‘이 녀석이 척이라도 좀 하지, 그러면 체면상 넘어가기라도 할 텐데. 하지만 뭐... 당당한 게 어릴 적 내 모습이 있긴 하네.’성동철은 고개를 들어 성연신을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안색은 어두워진 채 말했다.“대낮에 사람을 뺐다니, 담이 간 밖으로 나왔구나?”“제 잘못입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때리든 욕하든 달갑게 받겠습니다.”“뻔히 알면서 한 짓이란 말인가?”“아닙니다. 다만 심지안은 고청민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성연신의 목소리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시선을 돌려 고청민을 쳐다봤다. 그는 하얀 슈트를 차려입었는데 맞춤 제작한 스타일이라 요즘 유행에 어울렸고 마치 그를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님처럼 빛내줬다.다만 그런 드라마 주인공 같은 남자가 악랄한 수단으로 말로는 심지안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녀를 다치게 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어쩌면 5년 전의 그도 고청민과 비교하면 별로 나은 게 없을지도 모른다.그녀를 사랑한다면서 무심결에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줬었다.하지만 그는 사랑을 주는 방식이 서툴렀을 뿐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이제 그는 사랑이란 소유가 아니라 배려해 주고 존중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고청민은 맑은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며 달갑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저랑 지안 씨 사이에 오해가 있다 보니 작게 다투었을 뿐이죠. 성 대표님께서는 그만 상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할아버지, 우리 성씨 가문의 일은 어찌 됐든 집에
성동철은 이내 말을 잇지 않고 고청민과 성연신을 번갈아 훑어봤다.성수광은 먼저 나서서 그를 데리고 위층으로 향했다.“자, 우린 바둑이나 한판 두시죠. 젊은이들의 일은 그들끼리 해결하도록 하죠.”“그뿐인가, 우리 성씨 가문의 체면과 손녀의 안전까지 책임져야죠.”“당연하죠.”그는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성수광은 도덕성이 높아 오늘 성씨 가문을 난처하게 한 것을 알고 말투가 특히 좋았다.성동철은 고청민이 고집하는 것을 보더니 순간 어젯밤에 그가 출장을 핑계 삼아 밤늦게 돌아온 것이 떠올랐다.성연신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성동철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성수광을 따라 떠나서 두 남자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었다.성연신은 의자에 앉더니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할말 없으세요?”“지안 씨를 넘겨주세요. 그럼 더 이상 따지진 않을게요.”“난 이미 다 알았는데요?”고청민은 안색 하나 변함없고 동요하지도 않았다.“뭘 아는데요?”“혹시 내가 당신이랑 비밀 조직 사이의 비리 따위나 말하려고 이러는 것 같아요?”그는 마치 의사 결정을 관장하는 신과 같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고청민은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또 뭘 알고 있죠?”“어제 제원파크로 가는 산길에서 당신을 봤어요.”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바닥에 바늘이 떨어져도 크게 들릴 것 같았다.고청민은 멈칫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지고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약간 뻣뻣하게 입꼬리를 치켜올렸다.“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제 저는 인주 시로 출장 갔어요.”“계속 지어내 보세요.”“지어낼 필요가 없죠. 만약 이 일로 저를 협박이라도 해서 지안 씨를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이라면 잘못짚으셨네요.”성연신은 단번에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우리 둘 사이에서 성씨 어르신께서 무조건 당신 편을 들어주고 내 말 따위는 믿지도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이렇게도 겁 없는 건가요?”고청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
고청민은 멈추지 않고 기세를 몰아 성연신이 다친 곳을 골라 주먹을 휘둘렀다.그는 보기에는 수척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힘이 셌다.고청민의 눈은 새빨갛고 휘두르는 주먹마다 힘을 실은 채 격한 분노와 그리고 켕기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성연신은 왜 죽지 않았을까, 죽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럼 그와 지안은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멀쩡하던 인생은 어쩌다 성연신에 의해 엉망이 되었는지.분명히 성연신이 먼저 지안을 버리고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인데, 그는 그저 지안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고 성우주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랐다. 어렵게 얻은 지금의 모든 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퍽-성연신은 기회를 봐서 테이블에 올려있던 컵을 잡더니 이성을 잃은 고청민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유리가 바닥에 온통 부서지자 둘은 동작을 멈췄다.피가 하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고청민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새빨간 눈으로 성연신을 빤히 쳐다보더니 옆에 있던 꽃병을 쥐고 역시 무기로 삼았다.눈을 감은 채 목구멍에서 복받쳐 오르는 피비린내를 삼키던 성연신은 몸이 극한에 달해도 온몸에서 풍기는 승자의 기운만은 여전했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감히 여기서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고?”고청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꿋꿋한 자태로 서 있었다. 평소와 달리 얼굴에 있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어졌고 또래답지 않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며 딱히 부인하지도 않았다.확실히 그는 방금 살인충동을 느꼈다.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여기는 성씨의 저택이고 성연신의 바닥이다.그러나 그는 정말로 성연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치 성연신이 살아 있는 한 줄곧 영혼이 가시지 않은 채 심지안에게 매달릴 것 같았다.“비밀 조직과 손잡아도 날 죽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더더욱 불가능하죠.”성연신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얼굴에 혈색이 일도 없는 채 고청민을 빤히 쳐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예전에 정말 당신한테 기회를 주려고 했거든요? 다만 심지안을 해치지 않
이런 말들은 매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여 고청민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꽃병을 꽉 움켜잡는 그의 눈에서 독기가 뿜겨져나왔다. 아마 자극을 받았는지 이 순간만은 성연신을 죽이고 싶었다. 두 쌍의 눈이 마주치자 기분이 날카로와져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이때 걱정스럽고 거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안철수는 건장한 몸집으로 나무 바닥을 삐걱삐걱 소리를 내 밟으며 다가왔다. 그는 잔뜩 긴장해서 급급히 성연신을 부추기며 물었다. “대표님, 괜찮으세요?”이틀 밤새 제대로 쉬지 못한 데다가 상처를 대충 처리하고 급히 성씨 가문을 찾아가야 하는데 어찌 견딜 수가 있겠는가.“괜찮아요.”눈을 돌려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고청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한 짓입니까? 대표님, 제가 대신 혼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악의를 풍기며 고청민을 향해 걸어갔다. 젠장, 대표님이 병난 틈을 타 목숨을 노리다니.이 녀석은 기본적인 예의가 없구나!성연신은 소파에 반쯤 누워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리지 않았다. 그는 고청민이 얼마쯤은 몸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안철수를 이길 수 있을지 몰랐다. 고청민은 가까이 다가오는 안철수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몸을 풀었다.아침부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는지라 그도 기회 삼아 분풀이하고 싶었다.“내보내 주세요! 나 좀 내보내 줘요!”위층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고청민은 안색이 변했다. 심지안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값진 골동품 꽃병을 마음대로 던지더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성연신은 내색하지 않았다. 성씨네 저택은 안팎을 모두 개조하였는데 단단한 정도가 방탄집에 비견되었다. 열쇠가 없다면 한사람 외부의 힘만으로는 절대 열 수가 없다. “할아버지께서 아직 안 나오셨어요?”안철수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그냥 차 좀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하지만 주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고청민이 대표님께 주먹질하려는 소리
“그래요, 그러나 지안이 우리와 함께 돌아간다고 해도 당신네 집안은 마찬가지로 성씨 가문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합니다.”성동철은 심지안의 팔꿈치가 밖으로 꺾일 것이라고 얼마간 자신했다. 만약 그녀가 아직도 성연신을 선택한다면 정말 그녀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요즘 말로 금사빠인것이다. 성수광은 기침 소리를 내며 호의적으로 주의를 주었다. “때때로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너무 서두르며 급히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천천히 조사해야 하죠. 자신을 제외하고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인심을 헤아리기 어렵네요.”성동철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청민이 전날 밤 인주 시에 간 것을 가리킨다고 의심했지만 증거는 없었다. ...고청민은 성동철이 오는 것을 보고 문을 걷어차려다 멈추고 얼굴에 절박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할아버지, 지안 씨 여기 있어요.”성수광은 성연신을 노려보며 말했다. “문 열지 않고 뭐 하는 거냐?”성연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몸을 일으켜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침실문을 열었다. 심지안은 온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그것은 생리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마은은 텅 비여서 주체할 수 없이 멍해 있었으며 눈물만 흘렸다. 고청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처음에는 기뻤지만 홍지윤이 했던 말을 생각하니 참지 못하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우주가 정말 그녀의 아이일까… “지안 씨, 괜찮아요? 저와 할아버지가 지안 씨를 데리고 집에 갈 거예요.”고청민은 격동되어 심지안을 품에 안았다. 마치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보물처럼 말이다. 심지안은 눈앞의 고청민을 보면서 마치 인형처럼 그가 안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그리고 성동철을 향해 눈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그래... 할아버지가 늦었구나.”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결혼식도 마저 올려야지. 그리고 자네 가문에서는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오랫동안 기다리신 하객 여러분께 사과를 해주십시오.”성연신
“아무것도 아니에요.”심지안은 말을 바꾸고 창백한 얼굴로 그를 향해 머리를 저었다. 고청민의 눈길은 그녀의 얼굴에 몇 초 동안 머물렀는데 왠지 불안했다. 도대체 무슨 녹음인지...성연신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심지안에게 과거의 진실을 알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며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는 가장 먼저 홍지윤을 떠올렸다. 이때 고청민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문자 한 통이 왔다.[홍지윤이 죽었어요. 제 아버지가 죽였어요.]발신자는 송준이었다. 고청민은 화면을 터치하던 손을 멈칫하더니 물음표 하나를 보냈다. [그냥 추측하건대 성연신이 그녀를 출국시켰다가 마침 아버지의 해외에 있는 부하들한테 들킨 것같아요. 성연신이 그녀에게 그렇게 인자할 줄은 몰랐어요.]고청민은 핸드폰을 거두고 백미러를 통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바라보며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디 성연신의 선량함이겠는가. 심지안이 최면에 걸리기 전에 홍지윤에게 주었던 약속일 뿐이었다. 성수광의 입에서 나온 녹음은 아무래도 홍지윤이 남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심지안은 이미 모든 것을 알았을 텐데 여전히 그와 성씨 가문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성연신보다 그를 믿는 것임을 말해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청민은 강한 불안을 느꼈다. 성연신의 존재는 시한폭탄과도 같아 어쩌면 그가 따라 가게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이미 고청민이 비밀 조직의 암살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자신을 가리킬 증거가 없는 것은 확실하지만 일단 그가 결혼식에서 함부로 무슨 말이라도 하면...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가 일지 않겠지만 혹시 영향을 미칠까 봐 불안했다...“할아버지, 오늘 성씨네 가문에서 사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저와 지안 씨 결혼식에 전남편 가문이 나서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요.”고청민은 성동철에게 말했다. “안돼. 공개적으로 사과를 받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우리 가문을 함부로 업신여김이나 당한다고 생각할 거야.”성동철은 질책하며 거절했다.
헤드라인에 성연신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전와이프가 결혼하여 원망이 너무 깊어 충격을 받아 귀신이 되었나?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성연신과 심지안에게 쏠려 마치 이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듯 머릿속으로 한차례의 연극을 환상하고 있었다. “나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네. 점쟁이가 내가 양기가 적다고 했는데.”“멀리 가긴, 이 대낮에 땅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못 봤어?”“성연신의 안색이 어두워 보이지 않아? 얼굴에 혈색도 없고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 세상에 귀신은 없어.”“저리 꺼져. 우리집 녀석은 큰 재난에도 죽지 않는데, 뭘 그렇게 함부로 지껄이나?”성수광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말을 듣고 그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지만 눈에 비친 공포는 거두지 못했다. 사실 그들이 그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성연신은 줄곧 존귀하고 도도한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피로 물든 양복을 입고 이마에는 찰과상을 입었고 병적인 상태에서는 한기가 느껴져 마치 지옥에서 나온 사자 같았다. 그리고... 어르신께서 몇년전부터 많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진작 들었는데 오늘 보니 비록 휠체어에 앉아있기는 하지만 정신은 그 연세에 비해 괜찮은 편이었다. “약탈하러 왔어요?”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터져 올랐고 변혜영의 선하지 않은 눈빛이 심지안에게 떨어졌는데 그 뜻은 명백했다. “아니요. 공주님께서 헛소리를 하시네요. 명성이 한 여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자로서 잘 알 텐데,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네요. “성연신은 얇은 입술로 담담히 해석했지만 그 위협적인 뜻은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다. 심지안은 고개를 들어 성연신의 조각상 같은 옆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는 설렘이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감정을 누르며 이성이 우위를 점했다. 이런 화면을 초래한 것은 여전히 그 자신이 아닌가?능청스럽다. 변혜영은 천성적으로 당당하고 고귀하다. 누가 감히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