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청민은 입술을 꽉 깨물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 결혼식 날에 성연신 뉴스를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아니요...” 심지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조심스레 말했다.“저는 그냥 궁금해서, 다른 뜻은 없었어요.”“다른 남자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이 일은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난리인데 제가 보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잖아요.”그녀는 좀 억울했다. 고청민의 날카로운 말투가 어색했다.고청민은 밖에서 밤을 새우고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위한 신성한 의식을 치르러 돌아왔는데 정작 그가 직면한것은 이렇게 큰 ‘서프라이즈’였다. 참 아이러니했다.“그건 핑계잖아요?”심지안은 할 말이 없었다. 하나는 그녀가 확실히 봤고, 다른 하나는 팔로우도 했다.다만 마음속으로 고청민처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한거일지도 몰랐다.심지안은 고청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꼬리를 내리고 대답했다.“안 볼게요. 오늘 결혼식인데 우리 싸우지 마요, 네?”하지만 이런 그녀의 태도는 고청민이 보기에 그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그는 거칠게 심지안의 휴대전화를 빼앗고는 그 속에서 수상한 흔적을 찾으려 했다.하지만 휴대전화는 아주 깨끗했다. 어제 받지 못한 전화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아 고청민은 무시해 버렸다.“혹시 지운 거 아니예요?”그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심지안은 속상해하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뭘 지울 수 있겠어요?”“누가 알아요? 당신이랑 성연신이 몰래 연락한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성연신은 지금 생사도 불투명한데 지금 이런 얘기는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오늘은 그냥 즐겁게 보내면 안 돼요? 내가 그렇게 미덥지 않아요?”심지안은 세련된 메이크업을 했지만, 그 속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그놈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당신이 이렇게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건지. 설마 같이 따라서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야?”고청민은 소유욕이
고청민은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는데 아마도 떠난다는 세 글자가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병적인 흐릿한 눈빛에 약간의 깨끗한 기운이 서서히 돌아왔다. 그는 빨갛게 물든 심지안의 눈을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몰라 하며 사과했다. “지안 씨, 미안해요... 방금 내가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어요.”“우리는 곧 부부가 될 거잖아요. 청민 씨에게 날 끔찍하게 사랑해달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신뢰 하나만은 꼭 바랄게요.”심지안은 다른 사람에게 신뢰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고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심지안은 고청민의 평소와 사뭇 다른 비일상적인 행동은 용서할 수 있었다. 사람은 성자가 아닌 이상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청민이 요새 회사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지도 모른다.고청민의 매몰찬 말들이 심지안에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그녀는 그 말들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고청민은 머리를 푹 숙였고 후회의 빛이 눈에 반짝였다. “다 내 잘못이에요. 맹세컨대 앞으로 꼭 고칠게요.”“옆방에 옷을 갈아입으러 가세요. 패션 디자이너가 청민 씨를 쭉 기다리고 있어요.”심지안은 자발적으로 고청민에게 자리를 떠날 핑계를 줬고 거울을 향해 몸을 돌려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고청민은 심지안의 예쁜 옆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며 오늘은 자신이 극도의 분노로 충동을 참지 못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연연하는 자신이 어리석어 보였다.하지만 그가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도 고청민은 여전히 그의 존재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고청민은 심지안의 기억을 5년 전으로 멈추게 하는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고 심지어는 비밀 조직과 연합하여 성연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설계까지 짰다.하지만 과연 이 정도의 잔머리로 심지안의 마음을 진심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고청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날카로운 턱선이 굳은 선으로 뭉쳐졌다.지금 상황에서 성연신은 가장 큰 잠재적 위험 요소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진유진은 적당히 얼버무려 넘겼지만 사실 그녀는 절친을 도와보려고 고청민을 떠본 것이었다.만약 고청민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집불통인 심지안이 결혼하자마자 이혼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서로 마음이 통하는 단짝으로서 심지안이 어렵게 찾은 행복이니까 이 일을 안 이상 그냥 방치할 수 없었다. 고청민은 손가락을 비틀며 몸에 자연스럽게 늘어진 손을 꽉 쥐고 이내 놓았다. 손등의 푸른 핏줄은 뭔가를 억제하고 있는 듯 부풀어 올랐지만 말투는 더욱 부드럽고 차분해졌다. 고청민은 자연스럽게 대답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말했는데 말투에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무슨 일이든 제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아직 제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성연신과 지안이의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물론 받아들이죠.” 고청민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지안 씨의 아이는 내 아이이니까, 내 자식처럼 대해줄 거예요.”진유진은 예상외의 대답에 꽤 놀랐지만 가슴을 도닥이며 안심하는 미소를 지었다. “청민 씨 이 대답만 있으면 충분해요.”“성연신이 유진 씨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했어요?”“아니요.”“그럼 정욱 씨가 유진 씨에게 연락했겠네요.”이 말은 질문이 아니라 확신의 어조였다.그는 진유진과 정욱의 관계가 꽤 괜찮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시체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진 성연신이 심지안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하지만 정욱은 뭔가를 알아챘을 것이 분명해 보였고 그 시점은 아마도 제원 파크에 가기 직전이었을 것이다.진유진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의혹에 찬 눈빛으로 고청민을 쳐다봤다. 고청민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고 조급함이나 분노 대신 솔직함과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더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 있나요? 지안 씨와 나의 미래에 관한 얘기라면 내가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결혼식이 끝나
심지안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성연신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심지안은 헛것인 줄 알고 저도 모르게 눈을 연신 깜박였다.눈을 다시 동그랗게 떴을 때, 성연신은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엄청난 기쁨이 순식간에 밀물처럼 몰려와 심지안의 가슴을 채웠고 흥분으로 인해 창백했던 얼굴이 빨갛게 타올랐다. 빨간 얼굴은 야들야들한 블러셔를 바른 것처럼 자연스러운 피부톤으로 빛났다.심지안은 자기가 왜 이 정도로 희열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속 썩이던 남자가 살아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것이었다.‘우주의 아빠가 아직 살아있다.’성연신은 앞으로 다가와 심지안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깊은 호수처럼 그윽한 봉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안 씨, 오는 길에 좀 볼 일이 있어 이렇게 늦었어요. 어제 성씨 집안에 가 제 아버지 편을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연신 씨, 죽은 게 아니었군요!” 심지안은 놀라움에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그녀의 흑백이 선명한 눈동자에서 보석 같은 눈물이 반짝였다.그녀는 너무 기뻐서 울음을 터뜨렸지만 눈물이 흐르는 사실을 알아챌 겨를이 없었다.“운이 좋았어요. 마침 잘 아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성연신은 가벼운 말투로 이틀 동안에 몸소 겪었던 위험한 여정을 살짝 언급했고 심지안의 부드럽고 하얀 어깨를 꽉 잡았다. “홍지윤이 저에게 진실을 털어놨지만 지금은 지안 씨 협조가 필요해요. 이제 우리 아이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거예요.”그는 성우주의 신분을 갑작스럽게 공개하지 않고 비교적 보수적으로 말했다.성연신은 정욱이 바친 녹음 펜에 담긴 녹음을 다 들었고 논리적인 문제는 없지만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심지안을 바라보는 성연신의 눈빛에 깊은 사랑이 짙게 묻어나왔다.성연신이 심지안에게 느끼는 감정이 이 정도로 짙은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리조트에서 보낸 그 밤, 그의 영혼까지 뽑아갈 정도로 오매불망 그리웠던 실루엣은 너무나 익숙하고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그 밤이 지난
성연신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심지안에게서 받은 상처가 이내 잘생긴 얼굴에 번졌다. 그는 그윽한 눈동자를 심지안의 눈에 고정하며 그녀의 영혼을 파헤치려는 듯 말했다. “맞아요, 저는 뻔뻔하고 구질구질한 사람이에요. 뭐라 해도 좋으니까 오늘 지안 씨를 꼭 데려갈 거예요. 지안 씨도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지안 씨는 고청민을 아예 좋아하지 않잖아요. 전 지안 씨가 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강제로 결혼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건 저 성연신이 그 누구보다도 지안 씨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거예요. 만약... 고청민이 신뢰할 만한 남자라면 전 당연히 결혼식을 방해하지 않고 단지 예쁜 신부도 구경할 겸 두 분을 축복하러 왔을 거예요.”하지만 고청민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실수로 불타는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두손놓고 구경만 할 수 없었다.심지안은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살며시 벌렸지만 성연신의 진심 어린 시선을 마주치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통제된 감정이 풀려 정지된 것처럼 두 사람의 두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흘러나왔다.심지안의 머릿 속에 짜릿한 전류가 스쳐 지나는 것 같았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엄청난 무게의 망치가 머리를 내려쳤고 격렬한 고통이 순식간에 밀물처럼 몰려왔다.심지안은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팠고 한순간에 짜증이 그녀를 확 덮쳤다. 심지안은 성연신을 거칠게 밀치며 혐오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당장 꺼지세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성연신의 마음은 너무 아팠지만 얼굴에는 티 내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강제로 밖으로 데려가려 했다.“저랑 갑시다.”“미쳤어요? 이 손 놓으세요!”지금 이 시각 장원에 모여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당당하게 나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성연신은 모든 걸 내려놓고 나갈 수 있지만 그녀는 성씨 가문의 체면을 지켜야 했다.게다가 지금 나가면 그들 사이
심지안은 조바심이 나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깊이 살에 파고들어 따끔한 아픔이 밀려와서야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어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즉시 성연신에게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지금 바로 절 내려주시면 이 혼란스러운 사태를 바꿀 기회가 있어요. 우리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이잖아요. 뭔가 생각나면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겨야 할 게 아닌가요?”심지안과 고청민은 지금의 관계를 구축하는데 5년이란 시간을 썼다.5년 동안 고청민은 그녀에게 신경을 쓰며 모든 걸 다 내줬기에 고청민이 이렇게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게 방치할 수 없었다.성연신은 창문을 닫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제가 한 행동은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라 신중한 계획을 토대로 한 거예요. 그에 뒤따르는 모든 책임은 제가 다 질 거고요. 지안 씨는 그저 저에게 강제로 끌려온 거라고 주장하면 돼요.” 성연신은 그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이렇게 오늘의 행동에 대해 해명했다.이런 행동이 극단적이라는 것을 그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복잡하기만 해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을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었다. 그것도 심지어 겉과 속이 다른 개자식에게 시집간다고 하니까 더욱 참을 수 없었다.그는 자기가 그녀에게 오해를 받거나 앞으로 명예롭지 못한 명성을 받는다 해도 좋으니까 단지 심지안이 티끌만 한 상처도 받지 않기만을 원했다.그녀의 나머지 삶이 불행해지고 그녀가 고통받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것을 상상하면...심지어 성연신의 어머니처럼 우울하고 마비된 상태로 삶에서 가장 빛나는 아까운 세월을 허비할 것을 생각하면 그는 도저히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 없었다.차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성씨 가문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자 심지안은 더욱 초조하고 불안해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성연신의 옷자락을 잡고 목이멘 목소리로 구걸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해주세요. 제발 저를 보내줘요!” 성연신은 심지안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데리고 들어와.”그의 말이 떨어지자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소매를 걷어 올려요. 혈액 표본을 채취해서 검사하게요.” 심지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 팔을 껴안고 경계심을 높이며 물었다. “무슨 검사를 하는 거예요?” 성연신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비쳤다. “우리 아이를 찾았어요. 그러니까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해요.” “정말요?”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를 치며 기뻐서 어쩔 바를 몰랐다. 하지만 다음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이는 어디에 있죠? 아이를 얼른 데려와요.” 눈으로 봐야만 진실을 확인할 수 있지 귀로 듣는 것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았다. 성연신의 한마디 말로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이를 찾았으면 왜 직접 여기로 데려오지 않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이를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 유전자 검사를 해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아이는... 지금 당장은 지안 씨를 만나기 어려워요.” 그는 성우주를 그녀 앞으로 데려와 이 아이가 우리의 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신기하고 믿기 어려운 상황일 것 같아서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유전자 검사 결과였다. 솔직히 말해서 성연신도 매우 설레고 기대되며 한편으로는 긴장되기도 했다... “왜 만나기 어려운데요?” 심지안은 반신반의 하며 물었고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성연신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지아 씨 혈액을 채취해야 해요. 모든 것은 그 혈액 표본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니까 허위적인 결과를 조작할 수 없어요.” 그녀는 잠깐 생각해 보고 성연신의 말이 그럴듯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어쨌든 한동안은 여기서 도망칠 수 없으니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이 말도 안 되는 사태를 일찍 끝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그녀는 팔을 내밀어 의사가 혈액을 채취하도록 협조했다.“결과는 오늘 밤에 나올 것 같으니까 나오는 즉시 제가
심지안은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며 자연스럽게 반사적인 긴장감을 느꼈다.“홍지윤의 녹음이요?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죠?”홍지윤에 대한 그녀의 인상은 5년 전 기이한 여우 가면을 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그 모습 외에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매우 희미했다.“해외로 갔어요.” 성연신은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안 씨가 홍지윤에게 약속했던 건데 벌써 까먹었나요?”심지안은 멍하니 성연신의 얘기를 듣더니 맑고 깨끗한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었다. “제가 언제 그녀에게 약속했던 거죠?”성연신의 미간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우리가 함께 홍지윤을 성씨 집안에서 데리고 나왔잖아요.”“기억이 안 나요. 녹음이나 들어봐요.”심지안은 더 이상 과거를 회상하고 싶지 않았고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그 모습을 보자 성연신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녹음 펜의 스위치를 눌러 볼륨을 최대치로 조절한 후 책상 위에 놓았다.처음에 심지안은 진지하게 들으려 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떨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녀는 일어나 녹음을 끄려고 했지만 성연신에게 제지당했다.“왜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죠?”“어떠한 현실적 근거도 없는 엉망진창인 내용을 왜 계속 들어야 하죠? 이건 시간 낭비일 뿐이잖아요.” 심지안은 차가운 표정으로 화를 버럭 냈다. “이게 지안 씨가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게 아니었나요?” 성연신은 궁금한 표정과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기억력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나빠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건 다 가짜잖아요. 제가 연신 씨를 믿을 거라고 생각했어요?”“지안 씨, 이건 홍지윤이 직접 자기 목소리로 녹음한 것이에요. 못 믿겠으면 이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서 검증해봐도 돼요.”“됐어요. 전 연신 씨를 맞춰가며 연기를 할 생각이 없어요.”성연신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이내 그녀에게 해명하려고 애썼다. “오늘 아침 제 행동이 싫었던 건가요? 그 일은 제가 진심으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