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하지 말아요.”심지안이 그를 흘겨보고는 곧바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성우주에게 말했다.“나 갈게, 안녕.”“고모, 조심히 가세요.”성연신은 멀어져 가는 심지안을 빤히 지켜봤다. 가녀린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움켜쥔 작은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말해봐, 왜 나를 못 쫓아가게 하는 거야?”“그러니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요.”“그게 무슨 말이야?”“홍지윤이라는 아줌마가 아직 우리 집에 갇혀있는 거 아니에요? 돌아가서 고모의 아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잘 물어봐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한 대답을 듣고 고모를 찾아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성연신이 흠칫했다.“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성연신은 홍지윤에 관한 일을 모두 성우주에게 숨겼었다. 그런데 아이가 이 정도로 예민할 줄이야...“아빠가 변 아저씨랑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요.”성우주가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저도 친구가 하나 더 생겼으면 좋겠어요. 동생이든 누나든 형이든 다 좋아요. 그러면 저랑 재한이랑 같이 놀 사람이 한 명 더 생기는 거잖아요.”‘무엇보다 고모와 아빠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두 사람이 화해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진유진과 심지안은 서로 목적지가 달랐기에 진유진이 먼저 택시를 타고 자리를 떴다.그리고 오지석은 경찰차로 심지안을 성씨 가문에 데려다줬다.가는 길에 그는 몇 번이고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심지안은 인내심 있게 조용히 기다렸고 오지석을 재촉하지 않았다.“연신이는 좋은 사람이에요.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지안 씨를 걱정하고 있다고요. 그때 지안 씨가 수술실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도 연신이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지안 씨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해서요.”심지안이 눈을 끔뻑거렸다.“지석 씨도 나와 연신 씨가 화해하길 바라는 거예요?”“그게 아니라.”오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혹시 지안 씨에게 연신이가
심지안의 얼굴을 쓰다듬던 손이 멈칫했다.고청민은 믿을 수 없었는지 눈이 커졌고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비몽사몽인 채로 눈을 뜬 심지안은 침대 옆에 있던 고청민을 발견하고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돌아왔어요?”고청민이 그녀를 덥석 껴안고는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체향을 마음껏 탐닉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심지안을 몸 안에 녹일 듯이 힘을 줬다.심지안이 정신을 차리자 코를 찌르는 술 냄새를 맡았다.“술을 마셨어요?”“지안 씨, 말하지 마요. 조금만 더 안고 있을게요.”심지안이 얼어붙었다.“얼른 돌아가서 자요.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그러니까 내가 지안 씨를 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뜨거운 숨결이 심지안의 목덜미 사이로 뿌려져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 불편함을 느꼈다.“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청민 씨도 술을 마셨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어야죠. 아니면... 혹시 회사에서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겼나요? 말해봐요, 같이 방법을 생각해 보면 훨씬 홀가분해질 거예요.”심지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동문서답했다.고청민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거리는 좁히고 싶지 않았다.“내가 싫어요?”고청민이 뜬금없이 물었다.그의 가련한 눈에서 따뜻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안은 마음이 찔렸는지 빠르게 대답했다.“아니에요. 청민 씨는 내 약혼자인데 왜 싫겠어요?”그녀를 안고 있던 고청민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잇따라 한껏 잠긴 그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오늘 밤 돌아가기 싫어요. 나 여기에 머물러도 될까요?”고청민은 지금 바로 심지안을 자기의 여자로 만들어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몸을 완전히 차지해 버리면 더는 성연신을 생각하지 않겠지?심지안은 몸이 굳어져 저도 모르게 그를 밀어내고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나 지안 씨를 가지고 싶어요. 지금 말이에요.”고청민이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고는 침대에 눕히려고 했다.“안... 안 돼요.”심지안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청민이 입술을 그녀의 볼에 겹쳤을 때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그를 밀어냈다.“미안해요.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심지안은 이런 자신이 답답했다. 이기적인 걸 알면서도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청민의 얼굴색이 어두워졌고 그의 눈빛은 실망과 분노로 뒤섞여 있었다.억눌렸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그는 이성을 잃고 다시 그녀를 덮치면서 그녀의 얇은 잠옷을 힘껏 찢었다.“지안 씨가 성연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어요. 지안 씨는 내가 그렇게 싫어요? 5년이나 지났는데 내가 꼭 지안 씨를 강요해야 할까요?”심지안은 눈이 커지더니 뽀얀 속살이 드러난 가슴팍을 가리고는 말했다.“안 돼요! 이러지 마세요! 나 일부러 청민 씨 거절하는 거 아니에요.”그녀조차도 왜 성연신에 관한 꿈을 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고청민이 왜 오늘에 돌변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고청민에게 상처를 준 듯하다.“일부러가 아니라고요? 그럼 도대체 왜 나를 밀어내는 거예요? 말해봐요!”벌게진 고청민의 눈에 광기가 서렸있었다. 뻔히 대답을 알고 있는 물음을 물어본 거나 다름없었다.지금 고청민은 평소 점잖은 소년미가 가득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심지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이내 자책감이 들었다.고청민이 이렇게 된 건 그녀의 책임이 없지 않았다.“나 청민 씨 밀어내지 않을게요. 청민 씨 말이 맞아요. 우린 어차피 부부가 될 거예요.”심지안은 몸부림을 멈추고는 벌게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무고하고도 불쌍한 눈빛을 본 고청민은 가슴이 아팠다. 그도 이렇게 심지안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지만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잠결에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약혼녀를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이건 고청민에게 치욕을 안겨준 거나 다름없었다.고청민은 술김에 심지안의 마지막 옷까지 찢었다. 보드라운 살결이 드러난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심지안과 눈을 마주치자 고청민은 살짝 마음
덤덤한 표정의 성연신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안 왔어요.”홍지윤이 멈칫하더니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왜 안 왔어요? 아이의 행방을 알고 싶지 않은 건가요?”“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말문이 막힌 홍지윤은 한참 지나 코웃음을 치고는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당연히 상관있죠. 만약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으면 내가 당신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고 해도 당신은 약속을 안 지킬 수도 있잖아요.”성연신보다 홍지윤은 심지안을 더 믿었다.그녀를 루갈에 5년이나 가둔 걸로 봐선 성연신이 얼마나 매정하고 모진 마음을 먹은 사람인지 잘 보아낼 수 있었다.성연신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테이블 서랍에서 박스 하나 꺼내고는 말했다.“이 안에 출국할 수 있는 비자, 현금, 신분증 다 있어요. 당신에게 10분밖에 안 주어졌으니 말할지 안 할지는 당신 마음대로 해요.”홍지윤은 멈칫하더니 그 박스를 열어보려고 다급하게 앞으로 걸어갔다.중심을 잃어서인지 그녀는 걸음을 비틀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해 겨우 똑바로 섰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박스를 열어 꿈에서도 그리던 신분증을 들어 올렸다. 그 위에는 새로운 이름이 쓰여 있었다.그녀만의 이름이었다. 앞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과거와 완전히 작별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녀에게는 실로 사치스러운 것들이었다.눈시울이 붉어진 홍지윤은 설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성연신에게 물었다.“사실대로 말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출국하는 비행기를 먼저 준비해 줘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알려줄게요.”솔직히 그녀는 성연신이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거란 확신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비밀 조직에 몸을 담갔던 그녀가 이 비밀을 알지 못했더라면 성연신은 그녀를 지금까지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그러죠.”의외로 성연신은 빠르게 동의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고 거의 무관심하다 싶을 정도로 덤덤했다.지금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
성연신이 눈썹을 치켜들었다.“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죠.”“지금 나랑 장난해?”성수광은 분노가 끓어올랐다.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지금까지 끌고 있단 말인가?“지안 씨도 임시연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요. 계획은 반쯤 진행됐어요.”“아, 그러니까 임시연을 혼내기 위해 지금 줄 서고 있다는 거야?”‘지안이도 제대로 화풀이를 해야지. 임시연 그 나쁜 년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 돼.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지.’성수광은 나이를 좀 먹었을 뿐이지 노망이 든 건 아니었기에 이 일을 순순히 넘길 수 없었다.성연신이 그의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갈게요.”“자식아, 조심해서 가. 산길이 가파르니 차를 이상한 구덩이에 몰지 말고.”성연신은 손에 든 차 키를 흔들고는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뒤도 안 돌아보고 알겠다며 대답했다.성수광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더니 이상하게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해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서백호가 이 상황을 빠르게 눈치채고는 다급하게 그에게 산소통을 건넸다.“어르신, 괜찮으세요? 지금 바로 의사를 불러올게요.”성수광은 산소를 몇 모금 들이마시더니 희끗희끗한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괜찮아. 사람이 나이가 드니까 걱정거리도 많아진 모양이야.”성연신은 워낙 일도 똑 부러지게 하고 운전면허도 성인이 된 후로 한 번에 땄다. 지금까지 운전 경력만 10년이 넘었으니 그 대신 제사 지내는 것쯤이야 분명 별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오늘은 토요일이라 본가 저택에서 시내를 벗어나는 데 40분이 걸렸다.톨게이트를 지나니 차가 점점 줄어들어 성연신은 속도를 높였다.마디가 뚜렷한 손을 핸들 위에 걸친 성연신은 여유가 철철 흘러넘쳤다.그는 무심코 사이드미러를 통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속도로 그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SUV 한 대를 발견했다.운전석에는 어떤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차 안에 세 명쯤 더 있어 운전자까지 포함해 모두 네 명이 타고 있었다.이 길에는 그들 외에 다른
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재빨리 핸들을 돌려 후진했다.칼을 든 사람들은 성연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눈치채자 휘파람을 불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그들은 각자 다르게 배치된 위치에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은 성연신 앞에, 어떤 사람은 성연신 뒤에 서 있었는데 성연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은 불과 그와 5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손에 수리검을 든 그들은 성연신의 타이어를 찌른 후 그를 죽이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다행히 성연신은 오늘 산길을 오를 줄 알고 평소와는 달리 타이어를 개조하며 더 신경을 썼었다.첫 번째 수리검이 날아오자 타이어를 뚫기는커녕 밖으로 튕겨 나갔다.두 번째, 세 번째까지도 겨우 버틸 수는 있었다.그들이 더 날카로운 수리검을 사용하자 성연신은 미간을 구겼다.펑!김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타이어가 하나 펑크 났다.성연신은 핸들을 꼭 잡은 채 휴대폰으로 안철수에게 연락했다.“성연신, 빨리 항복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우리가 널 괴롭히지 않고 바로 죽여줄게.”앞장선 사람은 입에 담배를 물면서 오만방자하게 말했다.오늘 출동한 사람들 중에는 비밀 조직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엘리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고청민이 특별히 고용한 외국인 고용병도 있었다.성연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그들은 성연신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찾아온 듯했다.성연신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겨우 당신들로?”“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그는 휴대폰을 든 성연신을 보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여기는 신호가 없거든. 전화가 안 나갈 거야. 구원병을 부르는 허튼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그들은 특별히 이곳을 골라 손을 썼으니 분명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이 구역의 신호는 터지지 않아 절대 전화를 걸 수 없었다.제원 파크에 도착하거나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선택지 둘뿐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어떤 선택도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그래?”성연신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안철수는 또 한 번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같은 상황이었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감히 더 생각할 수도 없었다.‘대표님은 단지 전화를 받을 시간이 없으실 뿐이야... 그래, 그런 거야...’안철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클락션을 몇 번이나 눌렀다.그리고 창문을 열어 앞길을 막은 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신호가 바뀌었잖아요. 눈이 멀었어요? 왜 아직도 안 가는 거예요? 내가 그 망할 차를 끌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X발.”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민채린이 얼굴을 내밀고는 목소리를 높였다.“눈이 먼 건 당신 아니에요? 내가 앞으로 안 가려는 게 아니라 앞에 길이 막혔잖아요.”“당신이었어요?”안철수는 바로 여우 같은 교활한 민채린을 알아봤다.민채린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난 또 누구라고.”안철수는 마음이 다급해 그녀와 얘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한사코 앞만 바라봤다.민채린은 긴장된 그의 얼굴을 보며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진지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아무것도 아니에요.”성연신이 혼자 싸우다 보면 부상을 면치 못할 것이니 안철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의사 한 명 있는 것이 좋을 거로 생각했다.“저 좀 도와주시겠어요?”“뭐요?”안철수는 지난번 클럽에서 그녀를 지켜준 적이 있기 때문에 민채린이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대표님에게 사고가 나신 모양이에요. 지금 어느 정도 부상을 입었는지 몰라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요.”안철수는 소식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 일부러 진실을 고하지 않았다.그 얘기를 들은 민채린은 갑자기 이틀 전에 고청민과 성연신이 심지안 때문에 싸웠던 일이 생각 났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무심한 척 물었다.“네, 그러죠. 대표님은 어디서 사고가 났대요? 내가 같이 따라가서 보죠.”성연신의 신분이나 지위로 봤을 때 그는 운전기사가 분명 있을 것이다. 운전기사는 전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날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러니 상황은
전혀 인상이 없었다.심지어 민채린이라는 사람도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되었고 첫 만남이 어땠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네? 지금 나랑 장난해요?”‘겨우 이틀 만나지 못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구는 거지?’“장난 아니에요. 이제 출근해야 해서. 그럼, 이만.”심지안은 기본 예의만 지키는 진지한 얼굴로 차갑게 대답했다.오늘 아침에 회의가 있었기에 그녀는 제시간에 도착해야 했다.민채린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떠보았다.“성연신 씨가 사고를 당한 것 같던데, 그것도 꽤 심각하게요.”심지안이 멈칫하더니 덤덤한 얼굴을 보이고는 낯선 사람 얘기를 듣는 것처럼 대답했다.“그럼 빨리 쾌차하시길 바랄게요.”민채린은 가슴이 답답했다.‘뭔가 이상한데?’그렇다고 심지안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녀를 잊었을뿐더러 성연신에게도 이렇게 차갑게 굴다니.그래도 전남편이 되는 사람인데 이런 미지근한 태도보다는 야유 몇 마디 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가?...심지안은 민채린의 말이 그저 뜬금없다고 생각했을 뿐, 별다른 느낌은 받지 않았다.그녀는 회사 일 때문에 바빴다.최근 며칠간 판매량 데이터를 보고 부서원들을 만나 회의를 했다.점심에 음식을 사 들고 고청민을 찾아갔더니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대표님께서 출근 안 하셨는데, 모르셨어요?”심지안의 얼굴색이 조금 바뀌었다.“몰랐어요.”비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저도 대표님이 어디 계시는지 잘 몰라서요. 직접 대표님께 전화로 확인을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네, 그러죠.”심지안이 조용한 곳을 찾아 음식을 내려놓고는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안 씨, 무슨 일이에요?”부드러운 고청민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는 밖에 있는지 바람이 세게 부는 소리도 들려왔다.“어디 있어요?”고청민이 잠깐 침묵을 지키고는 대답했다.“나 공항에 있어요. 방금 비행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