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석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상관하지 말라고 표시했다.임태현은 왕실의 명성을 훼손했기에 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를 본보기로 삼을 예정이었다.안나는 결국 고개를 돌리고 임태현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했다.임태현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려 했지만, 안철수의 힘이 너무 강했기에 그는 발버둥 칠 기회도 없이 끌려 나갔다.안철수는 왕실 경호원과 함께 명령을 집행하게 됐다. 그는 날카로운 메스를 꺼내 들고 임태현 앞에서 흔들며 얄밉게 말했다."아플 거야. 고대 내시 수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임태현은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렸다. 그는 벌벌 떨며 애원했다."아아아, 안 돼요. 제발 살려주세요.""늦었어, 넌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말이 끝나기 바쁘게 안철수는 메스를 들고 한 번에 정확하게 잘랐다."아아아아악!"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임태현은 너무 아파 소리를 질렀다.격렬한 통증은 이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범위를 벗어났다. 그는 바로 기절했다. 속으로 성연신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을 불구로 만든 이 남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맹세했다.연회는 곧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임태현은 왕실에서 제일 볼품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심지안은 계속 멍해 있다가 변요석과 인사를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변요석이 말했다."사람을 시켜 데려다줄게.""내가 데려다주면 돼요."상연신이 무심코 말했다.심지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겠어요."그녀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고청민의 약혼녀기에 전남편과 너무 가까이하다 보면 이상한 말들이 떠돌아다닐 수 있었다.변요석은 다른 뜻이 담긴 그윽한 눈빛으로 성연신을 바라보며 조롱했다."보아하니 누군가는 그녀를 보호할 수 없을 것 같군."성연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심지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목을 잡았다."나와 함께 가요.""... 싫어요."그녀의
성연신은 등의자에 기댄 채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느긋하게 운전대를 잡는 습관이 있었다.그러나 그는 심지안의 말을 듣고 손에 힘을 꽉 주며 비웃었다."지안 씨가 진실을 알게 되는 그날이 매우 기대되네요.""또 뭘 알고 있어요?""많지 않아요. 홍지윤이 깨어 있을 때 나에게 몇 가지 일을 알려줬어요."그녀는 심장이 떨렸다."그럼 우리 아이에 대해서도 말했나요?""아니요."성연신은 멈칫하다가 브레이크를 밟고 고개를 돌렸다."아이는 죽었어요.""아니에요, 아직 살아 있어요!"심지안이 흥분하며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무슨 얘기 들은 거 있어요?"심지안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요, 제 직감이에요."성연신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그녀가 충격받을까 봐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는 빠르면서도 매우 안정적으로 운전했다."아니면 내가 연신 씨 어머니를 한 번 만날 수 있게 준비해 줄 수 있어요?"오랫동안 침묵하던 심지안이 안전벨트를 꽉 잡고 말했다.성연신은 멈칫하다가 다음 골목길 신호등을 기다릴 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좋아요, 주말에 봐요. 어머니가 평일에 일이 바쁘셔서요.""네."심지안은 전방을 주시하며 가능한 평온을 유지했다."네, 그럼 시간은 연신 씨가 정해요."성씨 가문에 거의 도착했을 때 심지안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내가 연신 씨 어머니를 만나려 하는 목적이 뭔지 왜 물어보지 않아요?""지안 씨가 만나고 싶으면 만나는 거죠. 내가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지안 씨는 믿어요."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소리 없는 학대처럼 심지안을 괴롭혔다."이만 가볼게요."심지안은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차 문을 열고 황급히 도망쳤다....성연신은 그녀의 늘씬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며 리듬 탔다.'심지안, 도대체 나에게 뭘 숨기고 있는 거야.'성연신은 대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루갈 조직의 수사팀에게 연락했다."심지안이 최근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좀 알아봐요
정욱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성연신에게 말했다."대표님, 그럼 전 이만 나가 볼게요."사무실에 남은 두 사람이 남자 민채린은 외투를 벗어 가죽 소파에 던지고 하이힐을 신은 채 또각또각 성연신 곁으로 걸어갔다. 긴 머리를 일부러 앞으로 넘겼다. 허리를 굽히자 머리카락이 성연신의 볼에 닿으면서 은은한 여인의 향기가 감돌았다."나와 함께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아무것도 안 먹고 왔어요."보통 남자라면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성연신은 무심코 몸을 뒤로 젖히며 두 사람의 거리를 벌렸다."배달 음식 주문했어요.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예요."민채린은 넋을 잃은 채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입꼬리를 치켜세웠다."그렇게 급해요?""네, 조금 급해요. 당신과 나의 시간이 모두 소중하다고 믿어요.""그건 그래요."민채린은 주위를 둘러봤다."우린 처음인데 그래도 침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아요?"그녀는 이 방면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남자가 못생겨서도 안 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안 되고, 깨끗하지 않아서도 안 되고, 주동적으로 들러붙는 것도 안 되고, 환경이 나빠도 안됐다. 기분에 매우 영향을 미쳤다.성연신은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난 하려고 오라고 한 게 아니에요."그의 입에서 이 정도로 노골적인 말이 나오자 많은 것을 봐 왔던 민채린도 당황했다. 모욕감이 들었지만 억누르고 비꼬며 말했다."그럼 어젯밤에 왜 나에게 만나자고 연락했어요?""채린 씨는 의사예요. 내가 채린 씨를 불러서 뭘 하겠어요?"민채린은 표정이 싹 변하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소파에 있는 외투를 들고 사무실을 나가려 했다."가격을 불러요."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돈이 필요해 보여요?"성연신이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1억.""됐어요."민채린은 굴욕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성연신 씨와 교환한다면 모를까."세상의 많은 부자들이 꿈에서라도 그녀에게 검진을 받고
화면에는 홍지윤 혼자만 있었다. 그녀는 며칠 전보다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행동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지만, 도우미에게 의지해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수는 있었다.몸 상태는 좋아 보였다. 눈빛이 더 이상 허공에서 응시하지 않았다.심지안은 책상 모서리에 방매향이 놓고 간 바나나를 집어 먹으며 관찰했다.도우미가 홍지윤에게 점심을 먹인 후에 그녀는 침대에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 오늘은 다락방에 가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 때 수척하고 긴 그림자가 갑자기 화면에 나타났다.심지안은 바나나 껍질을 버리고 정신을 집중해 화면을 쳐다봤다.홍지윤은 고청민이 오는 것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침대에 웅크린 채 죽어라 그를 노려보았다."왜 이렇게 긴장해요? 성연신에게 평생 갇혀 지내야 했을 홍지윤 씨를 내가 데리고 나왔잖아요. 홍지윤 씨는 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 고청민."홍지윤은 몇 번 반복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마치 눈앞의 사람이 무슨 맹수인 것처럼 홍지윤은 계속 웅크린 상태로 뒤로 물러났다.고청민은 웃으며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래요?""너너너..."홍지윤은 어렵게 발음하며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성대가 상한 그녀는 억양도 분명하지 않았다.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그녀가 매우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성연신과 고청민 둘 다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둘 중에서 그녀는 한 사람만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틀림없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고청민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순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말을 똑똑히 할 수 없다?"'민채린 속도가 좀 느린데.'홍지윤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두 손을 모으다가 이내 손을 흔들며 애원하는 듯했다.마치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을 잘 듣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청민은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내가 지윤 씨를 믿는다고 생각해요? 성연신이 지윤 씨를 구해 줬는데 지윤 씨가 그에게 아
"아니요, 도련님은 정원에 계십니다."도우미는 머뭇거리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민채린 씨도 계십니다."심지안은 눈살을 찌푸렸다."채린 씨는 언제 왔어요?""한 시간 전쯤에 왔어요. 아까 다락방에서 나오던데 지금 아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거예요.""네, 알겠어요."심지안은 방향을 바꾸어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베란다로 걸어갔다.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뒤쪽에 있는 화원 전체를 볼 수 있었다.그러나 높은 관계로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민채린이 한약을 가득 가지고 와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주의 사항을 말했다."알았어. 내가 도우미에게 얘기할게.""하..."민채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청민은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며 물었다."왜? 제경 생활이 적응 안 돼?""내가 일 년 사계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데 적응 안 될 게 뭐 있겠어.""그럼 한숨은 왜 쉬어?""인생에서 처음으로 거절을 당했어. 성연신을 손에 넣지 못했어."민채린은 답답해하며 좌절하다가 또 금세 불복했다."그는 아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생긴 여자야? 너는 알고 있지? 나에게 보여줘."고청민은 멈칫하며 갈색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봤다."전처가 있고 아내는 없어. 성연신 혼자 쇼하는 거야.""너는 알고 있나 보네? 어떤 여자인지 보여줘.""그럴 필요 없어. 설마 진짜로 마음 준 거야?""당연히 아니지."민채린은 어이가 없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거절당한 것 때문에 달갑지 않을 뿐이었다. 마음은 정말 없었다.잘생긴 남자들을 그렇게 많이 만나고 다니던 그녀는 꽃 한 송이에 목을 매지 않을 것이다.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청포도 한 알을 집어 입에 넣고는 실눈을 뜨고 포도즙이 터져 나오는 느낌을 느꼈다."난 네가 대학 때 전공이 심리학이었던 걸 기억해.""응.""최면도 걸 줄 알아?""조금."그 당시 그는 제
심지안은 고청민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봤다. 지난날 그가 자신의 곁에 있던 화면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마음이 아파왔다. 그가 비밀 조직과 관계가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5년 전에 당한 모든 일에 그도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방안은 따뜻했지만 심지안은 여전히 몸에 소름이 돋았다."지안 씨, 왜 그래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고청민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떠보고 있었다."확실히 좀 불편한 것 같아요."심지안은 손바닥을 힘껏 꼬집었다. 통증이 그녀를 침착하고 정신을 차리게 했다."청포도는 나중에 먹을게요.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네요.""신상 출시하는 업무 스트레스가 심한가 봐요. 지안 씨는 며칠 집에서 쉬어요. 판매부는 내가 지안 씨를 도와 지켜볼게요.""괜찮아요. 오늘 일찍 자고 내일 오전 휴식하고 오후에 나가면 돼요."고청민은 몸을 숙이고 그녀와 눈을 맞췄다.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그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지안 씨 정말 훌륭한데요? 다음 분기의 우수 직원은 꼭 지안 씨겠네요."심지안은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말할 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감사해요. 보너스 많이 주세요."고청민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보았지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좋아요. 지안 씨가 원하는 만큼 줄게요. 내 것도 지안 씨가 가져요. 내일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기로 약속했으니 같이 가요."심지안은 그는 돌아 보아보며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무기력함이 온몸에 퍼졌다.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청민 씨는 볼일 봐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나도 턱시도를 입어 볼 필요가 있어요."심지안은 시선을 거두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다음에 가요. 우리 부서가 바빠서 어쩔 수 없네요. 할아버지께는 내가 말씀드릴게요."그녀는 고청민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
심지안은 고청민이 진짜 사진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자신을 좋아한다면 왜 비밀 조직과 연관되어 있는지,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 궁금했다.'설마 무슨 말 하지 못할 어려움이 있는 건가?'하지만 세움 주얼리는 항상 떳떳했다. 비밀 조직과 같은 사람들과 엮일 필요가 없었다.그렇다면 개인적인 일이었다.그녀는 종잡을 수도 없었고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심지안은 피곤한 듯 눈을 비볐다."내일 다시 말해요. 피곤해요."고청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네, 만약 몸이 불편하다면 나 불러요."고청민은 방에서 나온 뒤 바로 다락방으로 향했다."심지안이 요 두 날 동안 이곳에 온 적이 있어요?"홍지윤을 돌봐 주고 있던 도우미가 깍듯이 대답했다."어제 왔었습니다."고청민의 표정이 변했다. 평소에는 부드럽기만 했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요?"도우미는 깜짝 놀라며 우물쭈물 말했다."물어보지 않으셔서...""얼마나 있었어요?""아주 짧아요. 10분 정도 있었습니다. 지안 씨가 왔었을 때는 홍지윤이 금방 약 먹고 자고 있을 때라 아무 말도 안 한 것 같습니다."고청민의 표정이 풀렸다."확실해요?"도우미가 대답했다."도련님 확실합니다. 그때 제가 2층에서 유리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방음이 안 되잖아요. 전 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다음에 지안 씨가 또 찾아온다면 나에게 보고하세요.""네. 도련님."고청민은 3층을 바라봤지만 올라가지는 않았다. 홍지윤이 아무리 담이 크다고 해도 자신의 구역에서 아무 말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락방에서 나온 그는 주방에서 홍지윤의 약을 달이고 있는 도우미에게 말했다."점심에 줬던 약 처방이 잘못됐어요. 하루 양을 반으로 줄이세요."...심지안도 잠을 잘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잠결에 악몽을 꾸었다.꿈속에서 그녀는 다시 병원에 불이 난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아이를 안고 절망적으로 울부짖으며 구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오
성연신은 심지안의 눈 아래 있는 다크써클을 보고는 그녀가 밤새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침울하게 말했다."내가 아는 것도 많지 않아요. 그러나 5년 전 병원의 그 화재는 고청민과 비밀 조직이 손을 잡고 벌린 일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어요."심지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도 내 아이를 죽인 범인 중 하나란 말인가요?""네.""그런데... 왜 그랬을까요..."고청민은 분명히 그녀에게 잘해 줬다. 그녀를 외국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성장하고 그녀를 성씨 가문으로 데려가서 그녀가 꿈에 그리던 집을 만들어줬다.성연신은 그날 일을 조사한 것에 대해 그녀에게 말했다."화재가 발생한 날, 누군가 악의적으로 소방대를 20여 분간 움직이지 못하게 했어요. 그 때문에 통제되지 않을 만큼 불길이 더욱 치솟았고요. 하지만 고청민은 화재가 발생한 후 10분 이내에 도착했죠. 그가 병원의 건물 구조를 미리 알고 있든 아니든 그가 근처에 있었고, 병원에서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지 않은한 지안 씨를 구할 수 없었을 거예요.""세움 그룹도 병원에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성씨 가문은 더 말할 것도 없죠. 둘 다 이 근처에 있지 않아요."그가 일찍이 계획했고 시간을 잘 계산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심지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예전에 그녀는 진심으로 그를 믿었기 때문에 자연히 의심하지 않았다.믿음이 무너지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눈에 보였다.성연신의 큰 손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어요.""고청민이 비밀 조직에게 협박을 당한 건 아닐까요?"심지안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우정이라고 해도 좋고 사랑이라고 해도 좋았다.한 사람에게 5년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이 말을 들은 성연신은 그녀를 위로하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