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성연신에게 말했다."대표님, 그럼 전 이만 나가 볼게요."사무실에 남은 두 사람이 남자 민채린은 외투를 벗어 가죽 소파에 던지고 하이힐을 신은 채 또각또각 성연신 곁으로 걸어갔다. 긴 머리를 일부러 앞으로 넘겼다. 허리를 굽히자 머리카락이 성연신의 볼에 닿으면서 은은한 여인의 향기가 감돌았다."나와 함께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아무것도 안 먹고 왔어요."보통 남자라면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성연신은 무심코 몸을 뒤로 젖히며 두 사람의 거리를 벌렸다."배달 음식 주문했어요.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예요."민채린은 넋을 잃은 채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입꼬리를 치켜세웠다."그렇게 급해요?""네, 조금 급해요. 당신과 나의 시간이 모두 소중하다고 믿어요.""그건 그래요."민채린은 주위를 둘러봤다."우린 처음인데 그래도 침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아요?"그녀는 이 방면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남자가 못생겨서도 안 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안 되고, 깨끗하지 않아서도 안 되고, 주동적으로 들러붙는 것도 안 되고, 환경이 나빠도 안됐다. 기분에 매우 영향을 미쳤다.성연신은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난 하려고 오라고 한 게 아니에요."그의 입에서 이 정도로 노골적인 말이 나오자 많은 것을 봐 왔던 민채린도 당황했다. 모욕감이 들었지만 억누르고 비꼬며 말했다."그럼 어젯밤에 왜 나에게 만나자고 연락했어요?""채린 씨는 의사예요. 내가 채린 씨를 불러서 뭘 하겠어요?"민채린은 표정이 싹 변하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소파에 있는 외투를 들고 사무실을 나가려 했다."가격을 불러요."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돈이 필요해 보여요?"성연신이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1억.""됐어요."민채린은 굴욕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성연신 씨와 교환한다면 모를까."세상의 많은 부자들이 꿈에서라도 그녀에게 검진을 받고
화면에는 홍지윤 혼자만 있었다. 그녀는 며칠 전보다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행동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지만, 도우미에게 의지해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수는 있었다.몸 상태는 좋아 보였다. 눈빛이 더 이상 허공에서 응시하지 않았다.심지안은 책상 모서리에 방매향이 놓고 간 바나나를 집어 먹으며 관찰했다.도우미가 홍지윤에게 점심을 먹인 후에 그녀는 침대에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 오늘은 다락방에 가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 때 수척하고 긴 그림자가 갑자기 화면에 나타났다.심지안은 바나나 껍질을 버리고 정신을 집중해 화면을 쳐다봤다.홍지윤은 고청민이 오는 것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침대에 웅크린 채 죽어라 그를 노려보았다."왜 이렇게 긴장해요? 성연신에게 평생 갇혀 지내야 했을 홍지윤 씨를 내가 데리고 나왔잖아요. 홍지윤 씨는 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 고청민."홍지윤은 몇 번 반복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마치 눈앞의 사람이 무슨 맹수인 것처럼 홍지윤은 계속 웅크린 상태로 뒤로 물러났다.고청민은 웃으며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래요?""너너너..."홍지윤은 어렵게 발음하며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성대가 상한 그녀는 억양도 분명하지 않았다.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그녀가 매우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성연신과 고청민 둘 다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둘 중에서 그녀는 한 사람만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틀림없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고청민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순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말을 똑똑히 할 수 없다?"'민채린 속도가 좀 느린데.'홍지윤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두 손을 모으다가 이내 손을 흔들며 애원하는 듯했다.마치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을 잘 듣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청민은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내가 지윤 씨를 믿는다고 생각해요? 성연신이 지윤 씨를 구해 줬는데 지윤 씨가 그에게 아
"아니요, 도련님은 정원에 계십니다."도우미는 머뭇거리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민채린 씨도 계십니다."심지안은 눈살을 찌푸렸다."채린 씨는 언제 왔어요?""한 시간 전쯤에 왔어요. 아까 다락방에서 나오던데 지금 아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거예요.""네, 알겠어요."심지안은 방향을 바꾸어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베란다로 걸어갔다.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뒤쪽에 있는 화원 전체를 볼 수 있었다.그러나 높은 관계로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민채린이 한약을 가득 가지고 와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주의 사항을 말했다."알았어. 내가 도우미에게 얘기할게.""하..."민채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청민은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며 물었다."왜? 제경 생활이 적응 안 돼?""내가 일 년 사계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데 적응 안 될 게 뭐 있겠어.""그럼 한숨은 왜 쉬어?""인생에서 처음으로 거절을 당했어. 성연신을 손에 넣지 못했어."민채린은 답답해하며 좌절하다가 또 금세 불복했다."그는 아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생긴 여자야? 너는 알고 있지? 나에게 보여줘."고청민은 멈칫하며 갈색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봤다."전처가 있고 아내는 없어. 성연신 혼자 쇼하는 거야.""너는 알고 있나 보네? 어떤 여자인지 보여줘.""그럴 필요 없어. 설마 진짜로 마음 준 거야?""당연히 아니지."민채린은 어이가 없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거절당한 것 때문에 달갑지 않을 뿐이었다. 마음은 정말 없었다.잘생긴 남자들을 그렇게 많이 만나고 다니던 그녀는 꽃 한 송이에 목을 매지 않을 것이다.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청포도 한 알을 집어 입에 넣고는 실눈을 뜨고 포도즙이 터져 나오는 느낌을 느꼈다."난 네가 대학 때 전공이 심리학이었던 걸 기억해.""응.""최면도 걸 줄 알아?""조금."그 당시 그는 제
심지안은 고청민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봤다. 지난날 그가 자신의 곁에 있던 화면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마음이 아파왔다. 그가 비밀 조직과 관계가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5년 전에 당한 모든 일에 그도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방안은 따뜻했지만 심지안은 여전히 몸에 소름이 돋았다."지안 씨, 왜 그래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고청민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떠보고 있었다."확실히 좀 불편한 것 같아요."심지안은 손바닥을 힘껏 꼬집었다. 통증이 그녀를 침착하고 정신을 차리게 했다."청포도는 나중에 먹을게요.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네요.""신상 출시하는 업무 스트레스가 심한가 봐요. 지안 씨는 며칠 집에서 쉬어요. 판매부는 내가 지안 씨를 도와 지켜볼게요.""괜찮아요. 오늘 일찍 자고 내일 오전 휴식하고 오후에 나가면 돼요."고청민은 몸을 숙이고 그녀와 눈을 맞췄다.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그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지안 씨 정말 훌륭한데요? 다음 분기의 우수 직원은 꼭 지안 씨겠네요."심지안은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말할 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감사해요. 보너스 많이 주세요."고청민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보았지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좋아요. 지안 씨가 원하는 만큼 줄게요. 내 것도 지안 씨가 가져요. 내일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기로 약속했으니 같이 가요."심지안은 그는 돌아 보아보며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무기력함이 온몸에 퍼졌다.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청민 씨는 볼일 봐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나도 턱시도를 입어 볼 필요가 있어요."심지안은 시선을 거두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다음에 가요. 우리 부서가 바빠서 어쩔 수 없네요. 할아버지께는 내가 말씀드릴게요."그녀는 고청민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
심지안은 고청민이 진짜 사진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자신을 좋아한다면 왜 비밀 조직과 연관되어 있는지,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 궁금했다.'설마 무슨 말 하지 못할 어려움이 있는 건가?'하지만 세움 주얼리는 항상 떳떳했다. 비밀 조직과 같은 사람들과 엮일 필요가 없었다.그렇다면 개인적인 일이었다.그녀는 종잡을 수도 없었고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심지안은 피곤한 듯 눈을 비볐다."내일 다시 말해요. 피곤해요."고청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네, 만약 몸이 불편하다면 나 불러요."고청민은 방에서 나온 뒤 바로 다락방으로 향했다."심지안이 요 두 날 동안 이곳에 온 적이 있어요?"홍지윤을 돌봐 주고 있던 도우미가 깍듯이 대답했다."어제 왔었습니다."고청민의 표정이 변했다. 평소에는 부드럽기만 했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요?"도우미는 깜짝 놀라며 우물쭈물 말했다."물어보지 않으셔서...""얼마나 있었어요?""아주 짧아요. 10분 정도 있었습니다. 지안 씨가 왔었을 때는 홍지윤이 금방 약 먹고 자고 있을 때라 아무 말도 안 한 것 같습니다."고청민의 표정이 풀렸다."확실해요?"도우미가 대답했다."도련님 확실합니다. 그때 제가 2층에서 유리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방음이 안 되잖아요. 전 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다음에 지안 씨가 또 찾아온다면 나에게 보고하세요.""네. 도련님."고청민은 3층을 바라봤지만 올라가지는 않았다. 홍지윤이 아무리 담이 크다고 해도 자신의 구역에서 아무 말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락방에서 나온 그는 주방에서 홍지윤의 약을 달이고 있는 도우미에게 말했다."점심에 줬던 약 처방이 잘못됐어요. 하루 양을 반으로 줄이세요."...심지안도 잠을 잘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잠결에 악몽을 꾸었다.꿈속에서 그녀는 다시 병원에 불이 난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아이를 안고 절망적으로 울부짖으며 구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오
성연신은 심지안의 눈 아래 있는 다크써클을 보고는 그녀가 밤새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침울하게 말했다."내가 아는 것도 많지 않아요. 그러나 5년 전 병원의 그 화재는 고청민과 비밀 조직이 손을 잡고 벌린 일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어요."심지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도 내 아이를 죽인 범인 중 하나란 말인가요?""네.""그런데... 왜 그랬을까요..."고청민은 분명히 그녀에게 잘해 줬다. 그녀를 외국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성장하고 그녀를 성씨 가문으로 데려가서 그녀가 꿈에 그리던 집을 만들어줬다.성연신은 그날 일을 조사한 것에 대해 그녀에게 말했다."화재가 발생한 날, 누군가 악의적으로 소방대를 20여 분간 움직이지 못하게 했어요. 그 때문에 통제되지 않을 만큼 불길이 더욱 치솟았고요. 하지만 고청민은 화재가 발생한 후 10분 이내에 도착했죠. 그가 병원의 건물 구조를 미리 알고 있든 아니든 그가 근처에 있었고, 병원에서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지 않은한 지안 씨를 구할 수 없었을 거예요.""세움 그룹도 병원에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성씨 가문은 더 말할 것도 없죠. 둘 다 이 근처에 있지 않아요."그가 일찍이 계획했고 시간을 잘 계산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심지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예전에 그녀는 진심으로 그를 믿었기 때문에 자연히 의심하지 않았다.믿음이 무너지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눈에 보였다.성연신의 큰 손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어요.""고청민이 비밀 조직에게 협박을 당한 건 아닐까요?"심지안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우정이라고 해도 좋고 사랑이라고 해도 좋았다.한 사람에게 5년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이 말을 들은 성연신은 그녀를 위로하
심지안은 성연신 입에서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같은 말을 아이가 말하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게다가 이 아이는 원래부터 순진한 편이라 거짓말을 할 리도 없었다.고청민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이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성우주는 영특해서 성연신과 심지안의 관계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심지안이 보광 중신으로 왔다는 것은 심지안의 마음이 성연신 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다.성우주는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허벅지를 꼬집어서 억지로 눈물 몇 방울을 끄집어 냈다. 그러고는 가엾기 짝이 없는 모양새로 고자질했다.“고모 약혼자가 저 보고 앞으로 고모 찾아오지 말래요. 혹시 저 싫어해요? 만약에 제가 싫은 거면 앞으로 귀찮게 안 할게요.”정욱은 눈이 커지고 놀라서 턱이 빠질 뻔 했다. 눈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사람이 그가 알던 그 작은 악마가 맞다는 말인가?왜 심지안을 만나고는 순한 양이 됐단 말인가?“울지 마. 내가 어떻게 너를 안 좋아하겠니.”심지안은 마음이 약해져서 쪼그려 앉아 허둥지둥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성우주는 울먹울먹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모가 저를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고모 약혼자네요.”심지안이 흠칫 해서 고개를 들자, 성연신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저 보지 마요. 우주의 진심 어린 말이에요.”“당신을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우리는 이제 어쩌죠? 홍지윤이 계속 성씨 가문에 있으면... 십중팔구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무서워요.”“아직은 가서 고청민을 거스르면 안 돼요.”“그럼 저는 앉아서 죽기만을 가만히 기다리라는 뜻인가요?”“아뇨.”성연신은 진지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솔직하게 말하면 당신은 우리 아이가 안 죽었다고 의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당신이 뭘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심지안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패를 다 까면 안 된다는 거죠?”“그렇죠. 첫째로는 증거가
“할아버지, 오시기 전에 미리 연락하지 그러셨어요.”심지안은 놀라지 않았다. 아침에 메모를 남겼으니 성동철이 와서 따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근데 성동철은 화도 내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말해보렴.”심지안은 의자를 찾아서 앉았다.“청민 씨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어느 방면에서?”“인품이요.”성동철은 그녀를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만약에 청민이 인품에 문제가 있었다면 세움 주얼리 경영권을 그 애한테 온전히 넘기지 않았겠지. 지안이 너도 알다시피 난 걔를 친손자처럼 키웠어. 그쪽으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사람은 변해요.”“나한테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핵심만 말하렴.”“알고 지낸 지 그렇게 오래됐는데 고청민이라는 사람을 모르겠어요. 겉모습만 보이는 것 같다고요. 다정하고 매너 있고 젠틀하죠. 말도 안 되게 완벽해요. 하지만 단점은 없나요?”성동철은 별안간 깨닫고 가볍게 웃었다.“사람은 당연히 단점이 있지.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내보려고 노력하기 마련이지.”심지안은 고개를 저었다. 고청민을 그가 키웠으니 고청민에게 있는 콩깍지가 자신보다 심해서 말이 통하지를 않았다.게다가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말을 믿을 리도 없었다.그녀는 바로 요구사항을 말했다.“할아버지, 결혼을 뒤로 미룰 수 있을까요?”“안 돼. 청첩장은 이미 내보냈어. 지안아, 말 들어.”성동철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렴. 청민이가 너한테 잘해주는 건 내 눈에도 보인다.”성동철이 봤을 때, 고청민의 교우관계가 성연신보다 깨끗했다. 적어도 주변에 임시연 같은 여자는 없었다.여자가 시집가는 건 손에 물 묻히지 않기 위해서인데 고청민은 그런 점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심지안은 어이가 없어서 이마를 짚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저한테 시간을 주세요. 저희 엄마가 왜 가출했는지 아시죠? 다른 사람이 자기 인생 통제하는 게 싫어서잖아요. 할아버지 뜻은 알아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