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연의 행동에 성연신의 잘생긴 얼굴에 미세한 금이 갔다. 하지만 밀어내지는 않고 대답했다.“나중에 얘기해.”마음만 급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중요한 시기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임시연이 떠난 후, 성연신은 혼자 의자에 앉았다.내일 임시연이 성연신과 함께 나서게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임시연을 보여줘 송씨 가문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 임시연에게는 위험할지도 모른다.송석훈의 그 막 나가는 성격으로는 임시연의 아이에게 손을 댈 수도 있었다.성연신은 자기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심지안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마치 어제 낙태 수술을 하면 심지안에게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같았다.심지안이 수술대 위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하면 성연신은 심장이 아파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하지만 심지안과 진현수의 아이를 남겨둘 수 있는가? 그건 아니었다.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성연신은 입꼬리를 올리고 짧게 비웃음을 흘렸다.심지안을 만난 후로, 그의 한계는 점점 낮아졌다.그러다 보니 이제는 절벽 앞에 다다라 더는 뒤로 갈 수 없게 되었다.성연신은 몸을 뒤로 젖히고 긴 다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머릿속에 수많은 일들이 엮여 거미줄처럼 되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운 그가 아침에 샤워하러 가려고 할 때, 아침을 들고 성연신을 찾아왔다.“성 대표님, 지안 아가씨가 아침을 매우 적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한약도 드시지 않고요.”성연신이 미간을 찌푸리고 얘기했다.“한약을 이리 줘요.”“네.”성연신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심지안은 책을 읽고 있을 뿐, 성연신이 들어온 것을 모르는 것처럼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무시당한 성연신은 기분이 불쾌했다. 바로 다가가 심지안이 들고 있는 책을 바닥에 버렸다.“미쳤어요?”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뱉었다.“마셔요.”한약이 담긴 그릇을 심지안의 입가에 갖다 댄 성연신은 힘조절을 못 하고 그대로 심지안의 치아를 건드렸다.“유진이한테 한 것처
“안 믿어요! 당신은 내 아이를 해치고 싶은 거잖아요!”심지안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붉은 눈시울로 반항했지만 소용은 없었다.성연신은 어쩔 수 없어 가정부에게 줄을 가져오라고 한 후 심지안을 침대에 고정시켜 버렸다.“3시간 후에 풀어줘요.”떠나기 전에 성연신이 가정부한테 얘기했다.3시간이면 약이 다 흡수될 것이다.“네, 성 대표님.”심지안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울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얼굴에 달라붙었고 침대에 묶인 손목과 발목은 피부가 벗겨져 추한 모습이었다.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는 그녀에게는 절망만이 남았다.일분일초가 지났지만 예상처럼 배에서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그러다가 가정부가 와서 줄을 풀어주자 심지안이 겨우 눈꺼풀을 움직였다.“왜 그러세요... 성 대표님은 다 아가씨를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매일 돌아와서 아가씨가 밥을 제대로 먹었는지 확인하세요. 얼마나 아가씨를 관심하시는데요. 이건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예요.”가정부가 마음 아프다는 듯 얘기했다.심지안은 실핏줄이 다 터진 눈으로 말했다.“믿지도 않고, 감금하고, 상처를 주고, 제 친구를 때리고, 짐승처럼 침대에 묶어놓고, 인권도, 자유도 없는데.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요?”“...장난하지 마세요.”가정부는 겨우 대답했다. 감정이 극에 달한 심지안이 무슨 짓을 할까 봐 줄을 풀자마자 도망치듯 떠났다.심지안은 붉어진 손목을 매만지며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화기 앞으로 걸어갔다.그 모습을 본 가정부가 막아 나섰다.“아가씨, 전화는 사용할 수 없어요.”“내가 꼭 쓰겠다고 하면요?”심지안은 고개를 까딱이고 차갑게 물었다.“성 대표님이 저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그러라고 하죠.”“...”가정부는 심지안의 손이 전화기로 향하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막으려 했다.하지만 심지안은 갑자기 힘을 끌어 모아 가정부를 멀리 밀쳐버렸다. “꺼져요!”놀란 가정부는 밖에 서 있는 보디가드들을 쳐다보며 어차피 심지안이 사람
“백호 아저씨, 제발 도와주세요. 연신 씨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심지안은 울먹임을 겨우 참으며 억울한 말투로 얘기했다.정말 요즘 견디기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서백호는 옆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심지안의 말을 듣고 있는 성수광을 흘깃 보다가 물었다.“도련님과 화해하지 않았어요?”“아니요. 절 전혀 믿지 않아요. 이젠 믿어달라고 하는 것도 지쳐요.”두 사람의 사랑은 사막의 신기루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듯 없는 듯했다. 신기루를 쫓아 들어가 보면 두 사람은 항상 싸우고 서로 의심했다. 이제는 너무 지쳤다. 이런 사랑이라면 그냥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헤어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서백호는 어떡해야 할지 몰라 성수광에게 입 모양으로 물었다.“어떻게 할까요?”“지안이에게 그 아이가 다른 자식의 아이인지 물어봐.”서백호는 입을 딱 벌린 채 질문을 하지 못했다.성수광은 혀를 쯧, 하고 찼다. 나이가 몇 개인데 이런 질문도 부끄러워하다니.1분 정도 침묵하던 서백호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솔직하게 얘기해 줘요. 배 속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입니까.”성수광은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뭐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려고 시간을 끌었나 했더니 거기서 거기였다. “연신 씨의 애라고 하면 믿어줄 건가요.”심지안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서백호는 성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니 성연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하지만 서백호는 웃어른이니, 심지안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질문에 대답해 줬다.그리고 심지안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믿어줄 거란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랬다.서백호는 성수광을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나는 지안이를 믿는다고, 내가 그놈이랑 잘 얘기해 보겠다고 전해줘.”“지안 씨, 저는 지안 씨를 믿어요. 제가 곧 그놈... 아니, 도련님이랑 얘기해 볼 테니 곧 오해를 풀 수 있을 거예요.”“백호 아저씨, 제가 오늘 연락한 건 연신 씨와 화해하게 해달라는 말이 아니에요.”심지안은 결심한
성수광은 심지안의 목소리에서 원망을 느끼고 손을 저었다.“더 자극하지 말고 일단 알겠다고 해.”서백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기에 대고 얘기했다.“도련님을 설득해 볼게요.”심지안은 조금의 희망을 잡은 듯했다.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백호 아저씨, 고마워요. 그럼 저는 더 방해하지 않을게요.”...전화를 마친 서백호는 머리 아프다는 듯 성수광을 쳐다보았다.“어르신, 어떻게 할까요. 두 사람, 이번에는 정말 헤어질 것 같은데요.”심지안 배 속의 아이가 정말 성연신의 아이라면, 성연신이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이다.성수광도 무거운 마음으로 얘기했다.“두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지안이의 아이야. 화해를 시키려고 해도 일단은 그 애가 누구 애인지 알아봐야 해.”“지안 씨의 태도를 보면 유전자 검사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성수광은 찻잔을 들고 마시지 않은 채 어지러워진 바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성수광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안 서백호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한쪽으로 물러났다.“나랑 지안이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어르신, 만약 다른 사람한테 발각되시면... 귀신이라도 본 줄 알 겁니다. 신중하셔야죠.”성수광도 어쩔 수 없었다.“나도 알아. 하지만 그놈의 손자도 손 봐줘야지. 손자며느리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서백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몸도 성치 않으시잖아요...”얼핏 보기에는 송씨 가문의 수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사실 독이 몸 곳곳에 퍼져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매일 약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요하게는 심장이 가장 안 좋았다.“조금이면 돼. 그저 터놓고 대화 좀 하는 건데, 내가 죽기라도 하겠어?”성수광은 잔소리하는 서백호를 향해 눈을 흘겼다.“얼른 가서 기회를 잡아.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서백호는 성수광을 이길 수 없어 그의 말을 따랐다....다른 한편, 진유진은 심지안이 낙태 수술을 하지 않은게 고청민 덕분이라고 생각했다.케이크 두 개를 만들어
“미약하긴요. 이건 지안이를 살린 거나 다름없어요. 지안이가 성연신한테서부터 자유로워지면 고마워할 거예요.”진유진이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고청민은 약간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집에서 휴식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직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저도 잘 모르겠어요. 성연신이 중정원으로 데려갔다고 하던데, 일단 지안이와 아이는 무사해요.”하지만 진유진은 한약의 일을 모르고 있었다. 심지안은 진유진이 걱정할까 봐 성연신이 그녀에게 한약을 먹인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고청민은 심지안의 상황이 눈에 훤했다.“그러니까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갇혀있다는 거죠? 예전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네요.”“비슷해요. 그래도 병원보다 나을 거예요. 저한테 전화도 했거든요.”“뭐로 전화한 거예요? 핸드폰이에요?”“아니요, 중정원의 집 전화기로요.”고청민은 그제야 이해하고 중정원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대화를 끝내기 위해 아무 핑계나 대었다.“고청민 씨, 지안이를 좋아하는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하지만 배 속의 아이한테 잘해줘야 해요. 편견을 가지지 말고요.”진유진은 스스로 그 말을 하면서 조금 미안하다고 생각했다.심지안은 예쁘게 생기고 본인의 회사도 있으며 애가 딸린 이혼녀다. 하지만 세움처럼 큰 기업을 가진 고청민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게 났다.그래도 감정이라는 것은 쌍방이 원하는 것이 아닌가.고청민은 잠시 굳었다가 대답했다.“오해에요. 전 지안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거짓말하지 마요! 난 알아봤다고요!”처음 고청민을 만났을 때부터, 진유진은 알 수 있었다.진유진은 고청민이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하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청민은 이미 끊겨버린 전화기에서 나는 기계음을 듣다가 시계를 쳐다보았다.오후 네 시.성연신은 아직 퇴근하지 않고 회사에 있을 것이다.고청민은 진유진이 남겨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누굴 찾으시는 거죠?”전화를 받은 사람은 중년 여성이었다.고청민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요즘 금융 업계의 한 사람이 김슬비와 썸을 타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 교류회에는 김슬비도 와있었다.김슬비는 임시연의 손을 잡고 흥분해서 얘기했다.“축하해! 곧 성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겠네!”임시연은 작게 웃고 얘기했다.“아직 일러. 심지안이 꺼지지 않았거든.”“...바람을 피우고도 성연신에게 빌붙으려고 해? 정말 낯짝도 두껍네!”김슬비는 눈을 굴리다가 임시연을 잡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심지안이 누구랑 바람피운 거래? 성연신보다 돈도 많고 잘생겼어?”“넌 모르는 사람이야.”“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면 성연신보다 돈이 많은 건 아니겠네. 조심해. 심지안이 후회라도 한다면...”임시연의 눈에 이상한 기색이 어렸다.“내가 알아서 할게.”“아, 맞다. 성연신이 심지안에게 리미티드 차량을 선물했었잖아. 유명한 연예인도 살 자격이 안 되는데. 나중에 그 차를 끌고 나와서 나 드라이브 시켜주면 안 돼?”“그건 내 차가 아니라서 연신이한테 얘기할 수 없어.”“그럼 너도 성연신한테 한정판인 차를 제작해달라고 해!”“하지만 한 사람은 한 번밖에 사지 못해.”“그래, 그러니까 비싼 거야! 만약 성연신이 네게 차를 제작해 준다면 심지안은 이미 잊고 이제는 너를 더욱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임시연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러 비즈니스 업계의 큰손 사이에서 대화 중인 성연신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조각상처럼 잘생겼고 차가웠다.“어때? 성연신 마음속에서 네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지 않아?”김슬비가 성연신을 보면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마음속으로는 자기도 제작된 스포츠카를 얻어 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이런 비싼 물건을 그대로 심지안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임시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얘기했다.“네 말을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 차를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심지안은 인터넷의 글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성연신과 임시연이 같이 교류회에 나온 모습을 보게 되었다.얼굴에 감정
심지안은 성연신을 흔들어 깨웠다.“가면을 쓴 여자예요!”성연신은 진작에 발견했다. 담담하게 얘기했다.“진정해요.”그들의 보디가드들은 뒤의 차량에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그들은 바로 차에서 내려 비밀 조직의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했다.홍지윤은 팔짱을 끼고 차갑게 웃었다.이윽고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까보다 두 배는 많은 사람들이었다.성연신의 보디가드들은 일당백은 하는 사람들이지만 무기를 든 사람들을, 그것도 세 배나 많은 인원을 상대해야 했으니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미간을 찌푸린 성연신이 과감하게 운전석에 앉았다.“안전벨트 매요.”“알아요.”성연신은 빠르게 도로 위를 질주했다. 홍지윤도 그 뒤를 바싹 쫓았다.케이크 점에서 나온 정욱은 멍을 때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안철수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홍지윤을 떨쳐내기 위해 성연신은 차를 몰고 산길을 올랐다.안전벨트를 꽉 쥔 심지안은 긴장해서 손에 땀이 가득했다.홍지윤은 시야에서 두 사람이 점점 사라지자 운전 중인 부하를 욕했다. 그리고 봉고차 창문으로 상반신을 꺼내 성연신의 차를 향해 표창을 던져 타이어를 망가뜨리려고 했다.그들의 목표는 성연신이 아니라 심지안이었다.임시연에게 후환이 없게, 임시연이 성씨 가문 안주인이 되려면 심지안이 없어야 한다.임시연의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성연신이 임시연에 대한 태도가 점점 변하고 있으니 나중에 성연신과 다시 하나 낳아도 괜찮았다.지금 상황에서 심지안 배 속의 아이를 남겨두는 것은 후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이 아이를 없애서 유전자 검사를 할 기회도 없게 해야 한다.다행인 것은, 성연신의 차는 개조된 차여서 표창도 뚫을 수 없다는 것이다.심지안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두 사람 앞에 절벽이 나타났다.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심지안의 심장은 거세게 뛰었다.“그럼 우리는 어떡해요?”성연신은 차가운 표정으로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물러날 길이 없다면 맞서야 한다.핸들
성연신은 차가 조금씩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동공이 살짝 떨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심지안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려움에 질려 여린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잊지 않고 배를 그러안고 보호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성연신은 마음이 아팠다. 그 순간, 심장이 아팠다.죽을 위기에도 그 아이를 지키고 있다니.성연신은 핸들을 꽉 잡았다. 손가락부터 점점 손이 하얗게 질려갔다. 머릿속에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면이 떠올랐다. “저기요, 혹시 전화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핸드폰이 배터리가 없어서...”“저도 솔로거든요.”“그렇게 자신만만해하지 말아요. 당신이 먼저 나를 사랑할 수도 있잖아요!”“유혹하는 거라고요!”끝이다. 그는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처럼 핸들을 놓고 좌석에 기댔다.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성연신은 단지 심지안이 무사하길 바랐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었다.심지안은 아이를 지키고, 성연신은 그런 심지안을 지키고.성연신은 결심을 내리고 명령하듯 얘기했다.“내려요, 당장.”“싫어요. 내가 내리면 연신 씨가 죽을지도 몰라요.”생각이 복잡해진 심지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움직이지 말고 구조대가 오길 기다려요. 차가 이대로 움직이지만 않으면 우리 둘 다 괜찮을 거예요.”“순진하네요. 차가 나간 정도는 우리가 위험할 정도가 아니에요.”심지안의 동공이 바르르 떨렸다. 더 심각한 결과가 떠올랐다. “길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길이 끊어졌어요.”성연신이 길게 숨을 들이쉬고 어두운 눈으로 얘기했다.“더 시간 끌면 둘 다 같이 죽는 거예요.”심지안은 굳어버렸다. 예쁜 얼굴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 드러났다.“내가 차에서 내리면 연신 씨는요?”“나도 뛰어내릴 거예요.”“그럴 시간이 돼요?”“해봐야 알죠.”차가 중심을 잃고 떨어지기 전에 뛰어내려야 한다. 하지만 심지안이 내리면 차는 바로 중심을 잃을 것이다.심지안은 커다란 돌덩이가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성연신의 말은 확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