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아 아이는 지켰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몸이 허약하므로 조산할 확률과 유산의 위험이 있습니다. 앞으로 환자를 잘 보살펴 주셔야 합니다.”“아이가 유산되지 않았나요?”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당장 낙태 수술을 준비해 주세요.”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 그 짓거리를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싫었다.의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아... 지금 환자의 몸이 너무 허약해서 바로 수술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언제쯤 가능하죠?”“글쎄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아마 가능할 겁니다.”성연신은 눈을 감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는 멋쩍어하며 자리를 떠났다. 사실 내일 낙태 수술을 할 수도 있었지만 심지안이 응급실에서 첫 아이이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이라고 말하며 의사에게 아이를 지켜줄 것을 빌었다. 그녀는 아이가 없으면 안 됐다.남편을 제외하고 이 아이는 그녀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었다.환자가 이번 주 내로 남편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아이를 낳길 바랐다. 그래서 환자 남편의 공격적인 태도에 의사는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깨어난 심지안은 병실 안의 남자를 보고 긴장하며 배를 만졌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다.그녀는 힘겹게 일어나 조심스럽게 남자의 손을 잡았다.“진현수 씨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배 속의 아이도 그와 상관없어요. 맹세해요.”“그래요?”성연신은 관자놀이를 질끈 누르며 빨개진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진현수가 사실을 다 말했는데도 발뺌할 생각이에요?”심지안은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그가 뭘 말했다는 거예요?”성연신의 손의 핏줄이 심하게 뛰었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다.“둘이 어떻게 붙어먹었는지 모두 말했어요. 그것도 아주 자세히. 계속 나를 속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나를 더 역겹게 만들 뿐이죠.”심지안이 깨어나지 30분 전에 진현수가 전화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말했다. 그는 심지안의 배 속의 아이가
”“이러고도 연신 씨가 사람이에요? 만약 연신 씨가 계속 나에게 사인하라고 강요를 한다면 나는 평생 연신 씨를 원망할 거예요.”심지안의 가슴 미어지는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원망도 뒤섞여 있었다.성연신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그는 강제로 그녀의 손을 잡고 펜을 들어 서명란에 비뚤비뚤 이름을 적었다.마지막 한자를 남기고 심지안은 온 힘을 다해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있는 힘껏 볼펜 촉으로 그의 손을 찔렀다. 그러나 성연신은 꿈쩍도 안 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마지막 한자를 완성했다.심지안은 팔을 늘어뜨리고 쓸쓸하게 웃었다.“성연신 씨,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정말 나를 못 믿는 거예요?”그들은 임시연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어렵게 다시 사이가 좋아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하게 된 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심지안의 말을 들은 성연신은 목이 메오며 마음이 약해졌지만 한 마디만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진현수가 모두 인정했어요. 그러니 지안 씨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요.”심지안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가슴에 큰 구멍이라도 뚫린 듯 숨 쉬는 것조차 아팠다.그녀는 성연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를 버리고 간 그는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성연신은 정말 모질게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여위고 허약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절망한 채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몹시 불쌍해 보였다.심지안은 지금 너무 허약했다. 그녀는 울다가 잠이 들었다.잠에서 깨어나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 있었다.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본 신현아는 다가가며 물었다.“심지안 씨, 성연신 씨께서 저 보고 지안 씨를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불편한 곳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이 말을 들은 심지안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진현수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중정원에 있습니다.”진현수가 중정원에 있다는 소식을 그녀는 어제 얼핏 들었다.“저 중정원에 갈래요.”심지안은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반드시 그에게 똑똑히 물어보고 싶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전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네요.”“우리는 본인의 결정을 존중해요.”이 말을 들은 심지안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녀는 문밖에 있는 신현아를 의식하며 낮은 목소리로 구걸했다.“저는 지금 감금당하고 있어요. 저를 내보내 줄 수 있을까요?”의사가 그녀에게 말했다.“병원은 환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아요. 정말 방법이 없다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보세요.”진유진이 성연신을 당해 낼 수 없는 걸 잘 알았기에 심지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성연신은 고청민과 그녀가 만나는 것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이 반짝였다.진유진이 성연신을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고청민에게 알릴 수는 있었다.‘고청민이 과연 나를 도와줄까…’그가 일단 심지안을 도와준다면 그와 성연신은 정식으로 틀어지게 된다.의사가 가자마자 신현아가 들어왔다.“혼자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친구를 만나고 싶어요.”심지안이 신현아에게 말했다.“진유진에게 연락해 주세요.”휴대폰은 이미 성연신에게 뺏긴 터라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신현아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성연신 씨가 어떤 친구도 지안 씨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왜 날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거예요?”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물건들을 집어 던졌고 병실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다.그녀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자 신현아는 그녀를 위로했다.“잠시만요. 제가 지금 성연신 씨에게 말씀드려 볼게요.”성연신은 이번엔 진짜 바쁜 듯했다. 정욱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그는 심지안의 부탁을 듣고 망설이다가 결국 동의했다.이렇게 큰일은 확실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진유진은 어젯밤에 정욱에게 끌려나간 뒤로 심지안이 걱정되어 병원 근처의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심지안은 진유진을 만나자마자 성연신이 낙태를 강요한 일을 말했다.진유진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뭐?
심지안은 눈앞이 빙빙 돌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돌아가셨어?”진유진은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어젯밤, 정확히 말하면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어.”어제 월요일에 그녀는 회사에 휴가를 냈다.대리는 줄곧 그녀에게 전화를 걸며 밖에 있는 그녀한테 야근을 시켰다.일을 마치고 보니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그녀는 동영상을 보다가 잠을 자려고 했다.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성수광이 장기부전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결국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았다.심지안은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신현아를 쳐다보며 물었다.“이 말이 사실이에요?”신현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본가 저택으로 가서 할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을 봐야겠어요.”그녀는 확고한 말투로 신발을 신고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자세히 보니 그녀는 몸을 떨고 있었다.“심지안 씨, 성연신 씨께서 지안 씨를 부르지 않았습니다.”신현아는 다시 심지안을 막았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성연신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심지안을 설득하기가 곤란했다.심지안을 가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감정에 문제가 생겼다면 서로 갈 길을 가면 된다.진유진은 가방에서 2만 원을 꺼내 심지안에게 건네주고는 신현아를 덥석 끌어안았다.“빨리 가봐. 내가 잡고 있을게.”신현아는 진유진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지만 같은 여자에게 손을 쓰기가 껄끄러웠다.게다가 그녀는 심지안을 동정하고 있었기에 몸에 착 달라붙은 낙지 같은 진유진을 밀치지 않았다.심지안은 달려 나갔다.병실을 나가기 전에 심지안은 쪽지 한 장을 가만히 진유진에게 건넸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곧장 본가 저택으로 향했다.본가 저택.그녀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본가 저택으로 들어갔다.성수광의 영정사진이 관 앞에 놓여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애잔한 표정으로 추모하고 있었다. 막내 오정연도 슬픈 분위기를 느끼고 성수련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심지안도 눈시울이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솟구쳤다. 연이은 충격으로 그녀는 지금 거의 멘붕 상
성연신은 심지안을 내려다봤다. 그는 오정연의 체면을 봐주었는지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심지안은 얼마나 오래 무릎을 꿇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모두 가고 나서도 그녀는 저려오는 다리를 만지며 계속 꿇고 앉아 있었다.이 층.성수광은 창문으로 아래층에 있는 심지안을 보고는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아휴, 빨리 재더러 들어가서 쉬라고 해. 저렇게 오래 꿇고 앉아 있었는데 몸이 얼마나 힘들까.”서백호는 바로 심지안에게로 달려가서 말했다.“심지안 씨, 날도 이미 어두워졌으니 빨리 돌아가세요. 밤이 되면 추워요.”서백호가 자상하게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주려 했으나 심지안은 고집스럽게 말했다.“저는 여기서 할아버지와 좀 더 있을게요.”“이러지 마세요. 아직 볼 날이 많은... 아니, 아니. 내 말은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말이에요. 앞으로 매년 추석에 할아버지를 보러 오면 매우 만족해하실 거예요.”“백호 아저씨 저 그냥 내버려두세요. 저 여기에 조금만 더 있을게요.”그는 심지안의 확고한 모습을 보고는 눈에 기쁨과 위안이 스쳐 지나갔다. 심지안이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할아버지.”슬픈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서백호는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더니 이내 눈빛이 변했다.“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어요?”임시연은 검은색의 긴 치마를 입고 목에는 흰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우아하면서도 차가웠다.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지 얼굴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찢어진 곳이 빨개져 있는 것을 아직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연신 씨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요.”서백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혐오하는 표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오레오를 데려와요.”뒤에서 따라오던 성연신이 분부하면서 임시연을 보고 말했다.“오레오를 다 보면 정욱이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난 남아서 할아버지 옆을 지키고 싶어.”성연신은 한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자를 흘겨보며 일부러 부드럽게 말했다.
서백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임시연을 쳐다보다가 심지안을 쳐다봤다.“무슨 일 있었어요?”임시연이 심지안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할아버지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했는데 심지안 씨가 못 보게 하면서 나를 밀었어요... 백호 아저씨, 나는 지안 씨를 탓하지 않아요. 지안 씨가 지금 성연이와 다투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기에 나는 다 이해해요.”심지안은 심신이 너무 피곤했다. 그녀는 임시연과 말다툼을 할 힘도 없어 묵묵히 화로에 종이돈을 태웠다.그녀는 서백호가 자신을 도와 말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많은 사람의 눈에 그녀의 뱃속 아이는 성연신의 애가 아니었을 테니까.“틀린 말은 아니네요.”서백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한가지 잘 못 한 게 있어요.”임시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뭘요?”“심지안 씨가 도련님과 다툰 것을 아는 사람이 왜 그들 사이를 방해해요? 이 기회에 둘 사이에 끼어들어 어떻게 해보려고요?”“난...”임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재빨리 해명하려 하였으나 서백호는 들어주지 않았다.“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런 생각하지도 마세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 전에 유언을 남기셨어요. 그중 하나가 임시연 씨를 성씨 가문에 들이지 않는 거예요. 알아서 하세요.”말을 마친 그는 오레오의 목줄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여기 이 강아지만이 시연 씨와 관계가 있어요. 다 보시고 나면 가세요.”임시연은 화가 났다. ‘늙은 영감 옆에 있는 사람도 영감 못지않게 얄밉네.’그녀는 배를 만지며 나중에 성연신과 결혼하면 서백호를 당장 내쫓으리라 마음먹었다.지금, 이 상황에 아직도 자신의 편에 서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심지안은 감동한 채 서백호를 바라봤다.임시연이 오레오를 보러 왔다는 말은 사실 핑계였다. 그녀는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아 돌아가려고 했다.이때, 이 층에서 연기를 보고 있던 성연신이 임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밥 먹고 가.”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방음도 잘 되는 창문이었다
심지안은 임시연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보면 욕을 하고 싶었다.“아니에요. 백호 아저씨, 전 배고프지 않아요.”“함께 먹어요. 밤에도 계속 할아버지 옆을 지켜야죠.”성연신이 차갑게 말했다.“연신아, 나도 할아버지 옆을 지키고 싶어. 효도하고 싶어.”임시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가 동의해 주기를 바랐다.“내가 말했지. 넌 그냥 배속 아기나 잘 돌봐.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이런 일은 지안 씨가 하면 돼.”임시연의 얼굴에 기쁨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알았어. 그럼 난 네 말 들을게.”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는 여자를 쳐다보며 명령했다.“백호 아저씨, 지안 씨를 데리고 올라가세요.”“저 안 먹을래요. 저들의 구역질 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어요?”심지안은 고개를 들고 주먹을 꽉 쥐면서 혐오하는 눈빛으로 성연신을 쳐다봤다.‘구역질 나는 얼굴이라고?’성연신은 비웃으며 몸을 숙여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지안 씨가 무슨 자격으로 날 더러워하죠? 지안 씨야말로 더러운 사람이에요. 음탕하게 바람이나 피는 여자 주제에!”심지안은 멍하니 눈앞의 잘생긴 남자를 쳐다봤다. 문득 그 남자가 낯설게 느껴졌다.이렇게 막무가내인 적이 몇 번이나 되었다.그녀는 그가 고칠 거라고 믿고 있었고 자신을 믿어 주길 바랐다.하지만 그녀가 틀렸다.‘내가 그를 잘 못 본 건가? 최근 나에게 부드럽게 대하며 고개를 숙인 것도 다 아이 때문인 건가? 그래서 나와 헤어지려 했던 사람이 다시 나를 붙잡은 건가?’성연신은 그런 그녀의 눈빛이 못마땅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말했다.“왜 나를 쳐다봐요?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사실... 사실이라?”심지안은 너무 괴롭고 웃겼다. 그녀의 하얀 얼굴에 실망이 감돌았다.그녀와 진현수는 따로 만난 적도 몇 번밖에 없었다. 연락도 몇 번밖에 주고받지 않았다. 연락을 제일 많이 주고받았을 때는 부용 그룹
“이제 가. 정욱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난 너와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어.”“그럴 필요 없어.”임시연은 이를 꽉 깨물며 성연신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불러온 배에 올려놓았다.성연신은 무의식중에 재빨리 손을 빼내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쫓았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리고 정욱은 네 운전기사가 아니야. 널 기다려 줄 시간 없어.”임시연이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난 그냥 너와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게 하고 싶어서 그랬어. 화내지 마. 난 그럼 가볼게.”그녀가 가고 성연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다가 커튼을 열었다. 아래층에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그는 슬리퍼를 신고 창문에 서서 1층에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꿇고 있는 게 힘들었는지 의자를 가져와 앉아 있었다.밤이 깊어 날씨도 쌀쌀해졌다. 그녀는 걸상에 앉은 채 관을 쳐다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그녀의 빨갛고 윤기 나던 입술이 지금은 말라서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추위를 막기에는 부족해 보였다.성연신의 굳은 얼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 아파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젠장.”성수광도 이 장면을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백호가 심지안에게 담요와 작은 난로를 가져다줬다.담요와 난로가 있으니 심지안의 몸은 어느새 온기를 되찾았다.기나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성연신은 심지안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그녀의 출입을 금지했다.어제 신현아가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제지하지 않아서인지 오늘 그녀를 지키는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다.“성연신 씨 저에게 낙태를 강요하는 것은 제가 연신 씨 옆에 남길 바라서인가요?”심지안은 남자가 병실을 나서기 직전에 물음을 던졌다.성연신은 멈칫하더니 가볍게 웃었다.“얼굴이 정말 두껍네요.”“그럼 왜 저에게 낙태를 강요하죠?”“난 그냥 애새끼가 태어나는 게 싫어요. 무슨 문제 있어요?”심지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