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렇게 하세요. 할아버지가 심지안에게 어떤 이상한 놈들을 붙여주는지 두고 보죠.”성수광은 성연신을 욕했다. 서로 이런 식으로 대화를 많이 주고받기에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임시연이 출산을 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도와 애를 돌봐 주마.”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정말 그저 일이 아니었다.성연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때 가서 다시 말해요.”“됐어.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 너희 젊은 사람들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알아서 해.”“할아버지, 요즘 몸은 어때요?”“걱정하지 마. 안 죽어.”성수광이 멈칫하며 말했다.“장의사가 오늘 다음 주 약을 보내왔어. 송씨 가문에서 내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모양이야. 우리 계획을 앞당겨야겠어.”그는 더 이상 인내심이 없었다. 더 기다리다 가는 성씨 가문에게 불리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30여 년간 군인으로 살아왔는데 한 번 싸우는 것뿐이야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성연신의 차가운 표정에 날카로움이 스쳐 지나갔다.“다음 주 화요일에 시작하죠.”“좋아.”성연신은 전화를 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심지안과 함께 지냈었던 방에는 그녀의 향기가 잔잔하게 남아있었다.성연신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꼭 덮으며 잠을 청하려 애썼다.그녀가 그렇게 자신을 떠나고 싶어 하는데 그녀를 생각하는 건 못 할 짓이었다.성연신은 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밤을 지새우며 심지안이 가지 않고 자신의 옆에 누워서 자는 착각을 했다.그러나 눈을 뜰 때마다 텅 비어 있는 자리는 그를 철저히 깨닫게 했다.심지안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다.그녀는 심씨 가문의 별장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봤지만 아무런 소식도 온 게 없었다.온 세상에 버림받은 것처럼 주위는 아주 고요했다. 그녀의 숨소리만 들렸다.답답해진 심지안은 머리를 흔들며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오늘 오전 그녀는 태아 검사받으러 병원에 가야 했다.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며칠 전에 만 4개월이 지났다.그녀가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고 할
심지안은 병원에서 나와 차를 타고 폰으로 근처에 있는 수영장을 검색하고 그쪽에 가서 고청민의 연락을 기다렸다.반경 7킬로 안에 고급 수영장이 하나 있었다.가격은 보통 수영장의 열 배였다.그녀는 시간을 예약하고 한번 가보기로 했다.차 안에서 반 시간 정도 기다렸지만 고청민은 소식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바쁜 일이 있으면 우리 다음에 만나요.」10분쯤 지났을 가 휴대폰이 울렸다.「죄송해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지안 씨 먼저 점심 드세요. 우리 저녁 다섯 시에 만나면 어떨까요?」심지안은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승낙했다.「좋아요.」그녀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회사로 갔다.실적을 보니 전보다 많이 좋아진 게 보였다.절반은 프랑스에 가서 따낸 실적들이었다.그리고 절반은 성연신이 그녀에게 소개해 준 고객들이었고 업계 내 평균 이윤을 초과했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프로젝트팀 직원들에게 분부했다.“앞으로 성연신이 소개한 고객들은 우리는 받지 않습니다.”“왜죠? 성연신이 소개한 고객들은 아주 질이 높은 사람들로서 받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받게 될 텐데 그러면 우리에게 큰 손해가 있을 것입니다.”“고객이 다른 곳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그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말이겠죠. 관계에만 얽혀서 일한다면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네…”아래 직원들은 아는 듯 모르는 듯했다. 왜 찾아오는 고객들을 받지 않는지 의문이었다.‘설마 사장님이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절로 하려고 그러나?’“제 말 대로 하세요.”“네. 알겠습니다.”심지안은 일에 열중했다. 오후가 되니 수영장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녀는 그제야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일어나서 수영장으로 향했다.수영관.심지안이 옷을 갈아입은 뒤 직원은 그녀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가서 열심히 소개했다.“이쪽은 우리가 전문적으로 어린아이와 임산부, 초보자를 위해 만든 수영장입니다. 우리는 10명 이상의 코치를 배치하여 수시로
임시연이 담담하게 웃으며 손목에 하고 있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다.“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저도 악의는 없어요.”심지안은 참을 수 없어 눈을 부릅떴다.“악의가 없다고요? 아무렇지 않게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 대단하네요.”언제 어디서나 고상한 척에 착한 척하는 그녀의 모습에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녀가 진짜 그런 줄 알 것이다.임시연은 심지안이 걸려들지 않자 바로 화제를 바꿨다.그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심지안을 쳐다봤다. 눈에 한 가닥 도발이 스쳐 지나갔다.“제 아이가 곧 태어나네요. 앞으로 제 아이와 연신 씨 잘 부탁드려요.”심지안은 눈썹을 찡그리며 차갑게 말했다.“연신 씨와 저 헤어졌어요. 그러니 둘이 알아서 키우세요.”임시연은 깜짝 놀랐다. 너무 빨리 닥친 행복에 임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헤어졌다고요?”“네, 시연 씨 뜻대로 됐네요.”그녀는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없을 때 연신 씨가 시연 씨를 몇 번 쳐다봤겠죠. 아... 지금은 아니죠. 지금 시연 씨는 그에게 있어서 감정에 충실하지 않은 바람둥이 이미지죠.”심지안은 특별히 ‘바람둥이’를 높은 소리로 말했다. 주위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임시연을 쳐다봤다.임시연의 표정이 푸르딩딩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심지안이 성연신과 헤어졌으니 기회가 많았다.하지만 진짜로 헤어지는 것과 둘이서 싸우는 것은 본질 자체가 달랐다.진짜로 헤어진 것인지 아니면 사랑 싸움을 하는지는 조금 뒤 성연신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임시연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팔짱을 끼고 물속에 있는 심지안을 쳐다봤다.“안 올라가요? 계속 물에서 뭐 하세요? 힘들지 않으세요?”“수영을 좀 더 하려고요.”심지안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반대 방향으로 헤엄쳐갔고 임시연은 너무 짜증이 났다. 신경전에서 이미 진 것 같았다.심지안은 자신이 한 바퀴 헤엄치고 돌아오면 임시연이 가고 없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임시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타이트한 수영복 때문
심지안은 짜증을 내며 그녀를 구하러 물속으로 내려갔다.임시연을 미워하지만, 그녀가 죽는 것을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선과 악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선은 나쁜 마음속의 마귀를 통제할 수 있고 악은 탐욕을 방종 하는 것이다.심지안은 임시연의 팔을 잡고 힘껏 그녀를 끌어 올리려 했지만,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심지안은 가까스로 물속에서 몸을 안정시켰다. 눈을 뜨는 순간 임시연이 다가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흩날리고 있었고 창백한 얼굴로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너무 무서웠다. 공포영화의 귀신 같았다.심지안은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속은 거였다.임시연은 수영을 할 줄 알았고 아주 잘하는 편이었다.그녀는 멍청하게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됐었다.이 사실을 깨닫고 심지안은 물속을 빠져나가려고 했다.하지만 임시연은 심지안의 발목을 꽉 잡고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했다.‘내 아이에게 지적 장애가 있는데 너도 잘살 생각 하지 마!’심지안은 조급해 났다. 몸에 힘이 다 빠졌기에 계속 이렇게 대치하고 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것 같았다.‘임시연이 날 죽이려 해.’심지안은 더 이상 아무것도 관계하지 않고 있는 힘껏 임시연을 걷어찼다.그녀의 힘은 아주 셌고 임시연도 맞은 곳이 아픈지 그녀를 풀어줬다.심지안은 물 위로 올라가서 크게 외쳤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힘이 없어요. 살려주세요.”인명구조 요원이 재빨리 물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향해 헤엄쳐 왔다.또 한 명이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긴 형체는 빠르게 수영했다.수영장의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다. 정말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모두 숨을 죽이고 이쪽을 쳐다봤다.“어떻게 된 겁니까? 초보자예요?”“아닌 것 같은데 저 여자가 간 곳은 결코 얕은 물이 아니잖아요.”“한 명이 물에 빠진 게 아니라 두 명이에요.”“네? 두 명이 동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요? 말도 안 돼.”“아까 저 둘이 싸우는 거 들었어요. 무슨 바람둥이니 어찌하니
심지안은 임시연의 옆으로 걸어갔다.임시연은 조금도 거짓이 없이 부드럽게 사과했다.“미안해요, 제가 수영할 줄 몰라서. 너무 흥분해서 물속에서 실수로 잡아당겼는데 괜찮죠?”“안 괜찮아요.”“네… 그럼 심지안 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한 대 때리면 괜찮을 것 같아요.”임시연이 분노를 억누르며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심지안은 팔을 들어 그녀를 내리쳤다.“짝!”뺨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내리쳤고 임시연은 맞은 볼이 빨갛게 부어올랐다.“심지안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성연신이 화를 내며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공공장소에서 다른 남자와 가까이 지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사람까지 때리다니.’심지안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보고는 차갑게 말했다.“시연 씨를 때렸어요. 못 봤어요? 다시 한번 더 때려서 보여줄까요?”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렸다.“말 똑바로 해요.”“지안 씨가 말을 잘하길 원한다면 성연신 씨도 태도를 바꿔 말을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고청민이 적당한 타이밍에 입을 여는 모습이 신사적이었다.성연신은 방금 도착하여 고청민을 보지 못했었다. 그는 고청민을 보고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이건 우리 일이에요. 청민 씨와는 상관이 없어요.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말을 해요? 심지안 씨를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연이어 세 가지 문제를 내던지면 보통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들지 몰라도 고청민은 부드럽게 웃으며 귀여운 덧니를 드러냈다.“우리 일이라고요? 헤어진 거 아니에요?”성연신은 너무 화가 났다. 그는 손을 뻗어 심지안의 귀를 잡고 말했다.“벌써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네?”헤어진 지 3일도 되지 않았는데 고청민이 그들이 헤어진 걸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둘이 약속도 잡은 것 같았다.‘이 여자 진짜 빠르네.’심지안은 잡힌 귀가 아파 남자의 큰 손을 때렸다.“이거 놔요!”성연신은 그녀의 하얀 귀가 빨개진 것을 보고는 가슴 아파 그녀를 놓아줬다.“연신아, 심지안 씨에게 너무 뭐라 하
고청민은 성연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지안을 쫓아갔다.가기 전에 그는 임시연을 보며 눈빛으로 경고했다.임시연은 눈빛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성연신은 고청민과 심지안이 나란히 떠나는 모습을 쳐다보면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옆에 있는 손잡이를 몇 번 거세게 내리쳤고 손바닥이 모두 까졌다.임시연은 그의 옆으로 다가가 일부러 자상한 척 말했다.“빨리 심지안 씨를 쫓아가 봐. 난 괜찮아.”“괜찮다고?”성연신은 그녀의 속셈을 눈치채고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말했다.“나에게 이 연극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연기한 거 아니야?”“어떻게 그렇게 나를 생각할 수 있어… 나도 고청민이 올 줄 몰랐어.”임시연은 너무 억울했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맺혔다.그녀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이번 만남은 정말 의외였다.“됐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연신아, 나 병원에 가보고 싶어. 내가 차를 몰고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연신이 네가 날 데려다줄 수 있을까?”그녀는 그가 동의하지 않을까 봐 한 마디 덧붙였다.“아주 가까워. 근처에 바로 병원이 있어.”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렸다.“불편한 거야?”“응.”임시연은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머뭇거렸다.“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너에게 말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무슨 일인데?”“심지안 씨에 관한 일이야. 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나도 확실하지 않아.”“따라와.”차 안. 성연신은 아주 빨리 차를 몰았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 15분 정도에 병원에 도착했다.그는 곁눈질로 임시연을 쳐다보며 마치 낯선 사람을 쳐다보듯이 쳐다봤다.“말해봐. 무슨 일이야?”임시연이 입을 열었다.“오늘 수영장에서 심지안 씨를 봤을 때 조금 이상했어.”그는 의심하는 눈초리로 물었다.“어디가 이상했어?”“나도 내가 잘 못 봤는지 모르겠어…”임시연은 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말끝을 흐렸다.“빨리 말해. 뜸 들이지 말고.”“알았어.”그녀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머리를
심씨 가문의 저택.심지안은 세탁 완료된 옷을 세탁기에서 꺼내 베란다에 하나하나 널어놓고 있었다.따뜻한 빛이 그녀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심지안은 현모양처처럼 집안일을 하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무엇보다 매우 아름답고 화목했다.성연신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었다. 이런 장면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그는 얼른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사과를 씻어 먹으려던 심지안은 성연신이 나타난 것을 보고 놀란 마음에 바로 사과를 버리고 2층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지금 입은 이 잠옷은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이다.“멈춰요.”성연신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심지안은 그런 성연신의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하지만 다리가 긴 성연신은 몇 걸음 만에 심지안의 손목을 잡고 바로 그녀의 배에 자기의 손을 갖다 댔다. 어두워진 그의 눈 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러더니 기뻐하면서 확신에 찬 어투로 얘기했다.“정말 임신했어요?”심지안은 성연신이 어떻게 눈치챘는지 몰랐다. 속으로는 매우 놀랐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써 부인했다.“아니요. 그저 어젯밤에 많이 먹었을 뿐이에요!”“언제의 일이에요? 몇 개월인데요? 왜 일부러 나한테 숨겼어요?”성연신은 아니라고 잡아떼는 심지안을 믿지 않고 바로 물었다.대답하고 싶지 않았던 심지안은 고개를 숙여 발만 쳐다보았다.“말 좀 해요.”성연신은 심지안의 턱을 잡아 올려 눈을 맞추었다.힘은 딱 좋은 정도였다. 아프지도 않지만 벗어날 수도 없을 만큼의 힘이다.“우린 이미 헤어졌어요. 내가 왜 알려줘야 해요?”심지안은 심통이 나서 짜증을 내면서 얘기했다.“게다가 연신 씨 아이라는 보장도 없잖아요.”“지안 씨, 우리 제대로 얘기해요, 네?”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리고 힘주어 얘기했다.그 어떤 남자도 이런 모욕적인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말이 애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더욱 원하지 않는다. “연신 씨나 제대로 얘기해
“일단 그 얘기는 나중에 해요.”성연신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토론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니 아예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심지안의 손을 끌어서 소파에 앉혔다.“아까 한 말, 진심이에요?”“뭐요?”“임시연의 아이와 지안 씨 중에 하나만 고르라는 거요.”심지안은 검은 성연신의 눈을 마주 보고 힘주어 대답했다.“네.”“왜요?”“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돼요.”적어도 시도는 해봤지만 정말 참을 수 없었다.성연신과 심지안이 사귀기 전에 있었던 아이라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메스껍지 않을 것이다.하필이면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 성연신의 실수로 생긴 아이라니.그날 밤이 실수였다면, 실수로 임신한 아이를 왜 책임져야 하는가.심지안은 이해되지 않았다. 성연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예수가 와도 참지 못할 것 같았다.성연신은 심지안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로 나올 줄 몰랐기에 심장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내 조금 화를 내며 물었다.“나를 떠나는 게 그렇게 쉬워요?”“어쩔 수 없어요. 연신 씨가 이기적으로 자기 생각만 하니까요. 내가 내 생각을 해야죠.”성연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얻게 할 수는 없다.눈을 지그시 감은 성연신은 화제를 돌렸다.“내일 같이 병원으로 가서 검사받아요.”“필요 없어요.”“무조건 검사 받아요. 나는 아직 아이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잖아요.”심지안은 성연신의 고집을 이길 수 없었다.“난 자러 들어갈래요. 이만 가요.”“난 아이의 아빠예요. 같이 갈 거예요!”“연신 씨, 정말 창피한 줄도 모르겠어요?!”“아내랑 아이를 다 잃게 생겼는데 창피한 게 중요해요?”성연신은 담담하게 얘기했다. 우아한 얼굴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뻔뻔하기 짝이 없다.심지안의 입가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나를 놓아주겠다고 했잖아요. 이제 며칠이 지났다고 후회하는 거예요?”“놓아준다고 했지 다신 찾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어요.”“...마음대로 해요. 난 이만 자러 갈 거니까 따라오지 말아요. 내 침대에는 두 사람이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