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은 심지안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차가웠던 눈이 부드럽게 심지안을 바라보았다. 몸을 숙인 성연신이 낮게 얘기했다.“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니에요?”공개를 하든 안 하든 상관은 없었다. 그저 모두가 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이 여자가 확신을 갖지 못하고 매일 의심만 하고 있으니 차라리 공개를 하는 편이 나았다. 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그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 예쁜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웃은 심지안이 얘기했다.“연신 씨, 너무 멋져요. 정말 사랑해요!”그제야 다른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박수갈채를 보냈다.“성 대표님, 축하드려요! 그리고 사모님도요!”“오랫동안 행복하세요!”심지어 조금 담이 큰 사람들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뽀뽀해! 뽀뽀해!”사람들은 원래 이런 걸 좋아했다. ‘뽀뽀해’를 외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많아지자 결국 모든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이 상황 속에서 얼굴이 붉어진 심지안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의 성연신을 바라보며 얘기했다.“우리 얼른 내려...”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연신의 입술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놀란 심지안은 머릿속이 새하얘져 눈만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하다니.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성연신의 키스는 그녀더러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상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조금 풀어진 동공과 거칠어진 호흡, 성연신 때문에 살짝 번들거리는 입술까지 불빛 아래에서 매우 섹시하게 보였다. 성연신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시선을 뗐다. 심지안이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넘어갈 것만 같았다.처음에는 그녀를 무시하던 성연신이였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까 그 모습, 정말 침대에서 잘 괴롭혀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두 사람이 단상에서 내려간 후, 심지안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성연신과
“오디션은 안 가도 돼요.”성연신은 말을 마치고 술기운 때문에 짐승처럼 그녀를 탐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심지안이 고개를 숙여보자 옷이 이미 찢긴 상태였다. 부끄러운 심지안이 그를 말리려 했다.“연신 씨, 잠깐만... 며칠만 기다려줘요...!”성연신의 호흡은 이미 흥분으로 거칠어진 상태였다. 그가 두툼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며 깊은 눈으로 물었다.“그렇게 날 갖고 싶어 했으면서 왜 부끄러워해요? 게다가 내 앞에서 몸을 드러낸 게 처음도 아니잖아요.”심지안은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건 그녀가 숙모가 되고 싶어서 급하게 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니 마치 그녀가 변태라도 되는 것 같았다. 성연신은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심지안은 반항을 포기하고 그에게 자신을 맡겨버렸다.하지만 항상 그들이 분위기를 잡으면 방해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갑자기 성연신의 핸드폰이 눈치 없게 울렸다.미간을 찌푸린 성연신은 차갑게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 전화를 거는 사람은 딱 질색이었다.성연신이 핸드폰을 가지는 사이, 심지안은 그의 품에서 도망쳐 나왔다.“성연신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고청민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태도도 좋고 말투도 매너 있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지금 성연신은 그의 목소리에 더욱 화가 났다.“알면서 전화를 겁니까?”고청민은 젊은 나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세움의 여러 일과 비즈니스에 참여했다. 그래서 성연신의 화가 난 말투에도 같이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더 사과를 할 뿐이었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성연신이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무슨 일입니까. 바로 말하세요.”“성연신 씨가 저녁에 얘기해준 문제를 이미 조사했습니다. 인터넷의 영상도 확인했고요. 심지안 아가씨께는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금관성의 총괄 매니저는 이미 해고되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성연신은 차갑게 웃었다.“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그럼 오디션에서 심지안
심지안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웨이터가 차를 가져왔다.성연신은 정욱에게도 휴가를 주었다. 이런 자잘한 일을 처리할 필요 없이 쉬라고 했다....노래방에서, 동료들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피커의 소리가 고막을 찌를 듯 했다. 심지안도 그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면서 같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저녁 아홉시가 되어서야 그녀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자기 방에 들어가 물건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심지안은 그제야 성연신과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라 스위트 룸의 층을 눌러서 빨리 그의 방으로 갔다.스위트 룸 카드가 없는 심지안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의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연신이 방에 없는 줄 알고 심지안이 몸을 돌려 나가려던 그 순간. 불쑥 튀어나온 뜨거운 손이 갑자기 그녀를 붙잡았다.그리고 바로 정확히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심지안은 익숙한 체향에 이게 성연신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긴장감을 늦췄다. 하지만 성연신은 이걸로는 부족한지 뜨거운 가슴으로 그녀를 밀어붙이더니 참지 못하고 그녀의 옷을 찢어버렸다.고작 3초. 그 짧은 3초 안에 심지안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서 있게 되었다.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연신이 이러는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조급하고 거친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안의 입이 무슨 말을 뱉기도 전에 성연신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키고 피부를 만지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얼마나 지났을까.성연신은 침대에서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잠에 들었다.심지안은 바닥에 흩어진 자기의 옷을 주섬주섬 주웠다. 온몸이 자동차에 짓눌린 것처럼 아팠다.이번에는 진짜 화가 났다. 억울한 그녀의 눈가는 빨갛게 되었다가 이내 눈물을 흘렸다. 오디션을 다녀와서 하기로 했으면서 약속을 어기다니, 너무했다.....심지안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경으로 가는 차에 탔다. 비록 몸과 마음이 다 힘들지만 이번 오디션 기회를 놓치고
심지안은 그의 변명에 기분이 상했다.“술에 취한 게 대수인가요?”술에 취했으면 무슨 일이든지 저질러 되는가? 도덕이 없는 것인지. 선이 없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성이 문제인지. 고청민은 하얀색 정장을 입고 앉아있었는데 마치 대나무처럼 푸르고 올곧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심지안을 보며 웃더니 명령을 내렸다.“끌어내요.”심지안은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다른 일이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금관성으로요?”“네.”“아까 그 금관성 구역의 총괄 매니저는 본부의 이사장 아들입니다.”심지안은 그제야 알았다. 이사장 아버지의 힘으로 들어간 것이다. 어쩐지 생긴 건 갓 탈옥한 범죄자처럼 생겼는데 세움의 금관성 구역의 총괄 매니저라니. 고청민은 선물함을 건네며 가볍게 웃었다.“지안 씨, 이건 우리 회사의 이번 시즌 신상입니다. 선물로 드릴게요. 세움을 대표해서 사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세요.”심지안은 선물함 안에 있는 고가의 목걸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청민 씨가 바로 일을 해결해 주셔서 이미 만족합니다. 목걸이는 예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너무 귀중한 물건이라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고청민의 갈색 눈동자에 웃음이 비췄다. 그리고 다시 얘기했다.“받으세요. 받지 않으면 제가 불안합니다. 그리고 곧 세움의 엠베서더가 될 텐데, 액세사리 하나 없이 어떻게 엠베서더가 됩니까.”그렇게 말하자 심지안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저 건네받고 열심히 감사 인사를 올렸다.세움에서 나오니 이미 점심이었다.원래 워크숍 계획대로 오늘 오후 금관성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제경에서 금관성까지는 두 시간이 걸리니 이미 늦은 것이었다. 심지안은 차라리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그리고 택시를 잡으려다가 먼저 성연신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러다가 무의식 간에 진유진의 상태 메시지를 확인했다. 진유진은 지금 제경에 있었다....남해 별장.씻고 나온 성연신은 아직 떠나지 않은 임시연을 발견했다. 그녀는 성연신의 커다란 셔츠를 걸친 채 부드럽게
전화를 받고 잠시 놀란 정욱은 왜 성연신이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빠르게 그의 명령대로 움직였다.“네, 알겠습니다.”30분 후, 성연신의 방에 도착한 정욱은 재떨이가 꽉 찰 정도로 쌓인 담뱃재를 보고 또 놀랐다.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때만 줄담배를 피는 성연신인데, 설마 회사에 문제가 생겼나? 곧 파산 위기인가?“CCTV는?”정욱은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호텔 매니저의 말로는 5층의 CCTV가 한 달 전에 이미 고장 나서 수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성연신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얘기했다.“나가.”그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다.어떻게 임시연을 대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심지안에게 얘기해야 하는지....심지안은 진유진이 세움 근처에 출장을 나왔다는 것을 듣고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약속 시간을 정했다.식당에서 진유진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회사에 잘생긴 남자가 들어왔는데, 금방 졸업한 애라서 엄청 어려!”심지안은 고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물었다.“왜, 이제는 연하남이 좋아?”“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난 그저 잘생기면 다 좋아. 게다가 얘가 남동생인 데다가 엄청 순진해. 잘생겼는데 모자란 남자라니, 너무 대박이지 않니?”“풉.”심지안은 하마터면 먹고 있는 것을 뿜어버릴 뻔했다. 웃음을 참느라고 배가 아팠다.“잘생겼는데 모자라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그래도 너무 교활한 플레이보이보다는 조금 모자란 애들이 낫지 않아? 적어도 널 속이지는 않잖아.”진유진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흠... 그렇게 말하니까 맞는 것 같네.”강우석이나 진유진의 전 남자친구나 다 교활한 놈들이었다. 능력은 별로 없으면서 지름길만 있으면 빨리 그 길로 가려고 한다. 조금 모자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훤히 모인다. 그래서 연애를 할때 주동권을 잡을 수 있다. “그래, 같은 곳에서 실수하지 말자. 어떻게 남자를 꼬셔야 하는지부터 알려줘!”“나도 몰라! 내가 연신 씨를 얼마나 쫓아다녔는데 결국 안 넘어왔잖아. 내가 뭘 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연신 씨는 정말 쉽지 않아.”“전에는 성연신이 강우석의 삼촌이 아니더라도 조건이 좋으니까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네 고생을 알겠어.”심지안은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말도 마. 내가 노동계약서를 쓰지만 않았더라면 어떨 때는 바로 이혼해 버리고 싶다니까.”그 시간 동안 심지안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그 남자 때문에 힘들어했으니. 하지만 지금은 고진감래라고 할 수 있다.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성연신이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고 심지안은 코웃음을 쳤다. 전화를 받은 후 기분이 상한 듯 입을 비죽 내밀고 말했다.“이제야 연락해요?”성연신은 잠시 침묵하다가 쉰 목소리로 얘기했다.“어젯밤에는 일이 있어서요. 지금 어디예요?”심지안은 업무가 바빠서 그런 줄 알고 대답했다.“제경에 있어요. 오디션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요. 진유진이랑 같이 밥도 먹었어요.”“주소 보내줘요.”“여기로 오게요?”“네.”“알았어요. 그럼 지금 보낼게요.”전화를 끊자 진유진이 심지안에게 물었다.“성연신이 데리러 온대?”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그럼 지금 잠시 나랑 같이 술자리에 가줄래? 어차피 남해 별장에서 여기까지 두 시간은 걸리잖아. 너 혼자 있는 것도 재미없지 않아? 오늘의 고객이 좀 까탈스러워 보여서 그래.”“그래. 그럴 줄 알았으면 나와서 밥 먹지 말걸.”배불리 먹고 나서 또 일을 해야 한다니. 진유진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심지안을 보며 얘기했다.“성연신이 이렇게 다정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멀리 있어도 데리러 오고.”심지안은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그가 데리러 오는 것을 봐서라도 어젯밤의 일은 따지고 들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안은 진유진과 함께 식당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성연신에게 위치를 보내주며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유진의 고객이 얼마나 진상이던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계약서를 쓰지 않겠다는 것
성연신은 그녀의 핸드폰을 가져와 바닥에 확 던졌다. 진유진은 그 소리에 깨서 눈을 떠 성연신을 발견하고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삼촌... 삼촌이 여길 왜 왔지...”성연신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나왔다. 이를 꽉 깨물고 웃는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왜 삼촌이지?”“그야... 강우석 삼촌이니까!”“심지안은 왜 그 삼촌이랑 사귀는 거야?”“바보! 당연히 강우석한테 복수하려는 거지!”비참함이 성연신의 눈에 비췄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분노가 속에서 들끓었다. 원래의 목표는 진현수였다. 어쩐지 진현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다르더라니.결국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그를 선택한 것이었다.성연신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화를 제어하지 못해 과격한 행동을 할 것만 같아서 문을 박차고 떠나버렸다.심지안은 그를 만질 자격도 없다. 이미 성연신에게 있어 심지안은 더러운 여자로 낙인찍혔다.정욱이 급히 달려가 전전긍긍하며 말했다.“심지안 아가씨와 친구분은 저대로 둬도 되는 겁니까? 술 취한 여자 두 명을 저렇게 두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성연신은 발걸음을 멈추고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심지안이 죽든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 왜, 심지안이 걱정돼?”정욱은 그대로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중정원으로.”성연신은 차에 앉아 그 말 한마디만 한 후 다른 말은 더하지 않았다.중정원에 돌아온 그는 서재에서 계약서를 꺼내 읽어보지도 않고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심지안은 종업원이 깨워준 덕분에 깨어났다.“손님, 우리 곧 문을 닫을 때가 되어서요. 손님과 친구분 혹시 택시라도 불러 드릴까요?”심지안은 어두워진 창밖을 보며 왜 성연신이 아직도 오지 않았는가 보고 있었다.“알겠어요. 곧 떠날게요.”겨우 테이블에서 머리를 떼니 머리가 윙윙 울리는 것같이 아팠다. 심지안은 옆의 진유진을 불러일으켰다.진유진은 핸드폰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찾았다. 원
심지안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기사님, 근처에 있는 호텔로 가주세요.”...하룻밤이 지나고, 심지안은 호텔에서 깨어났다.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는데 판다와 같은 다크서클이 눈 밑에 생긴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하룻밤의 고민 끝에 드디어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 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자기 잘못이라고 말이다.잘못을 저질렀으면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성연신이 어떻게 자기를 대하든 그녀는 똑똑히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심지안은 세수를 하고 중정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뜻밖에도 거기에는 임시연도 있었다.심지안은 잠깐 흠칫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임시연에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임시연은 눈을 피하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성연신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끔 보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오후 동사무소에 가서 이혼 절차를 밟죠. 저녁 전에 지안 씨는 짐을 모두 챙기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줘요.”심지안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입을 열기도 전에 임시연은 그녀보다 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연신아, 나 책임질 필요 없어. 두 사람 괜히 나 때문에 싸우지 마.”심지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뭘 책임져야 하는데요?”임시연은 저도 모르게 능청을 떨며 해명하기 시작했다.“목요일 밤에 나랑 연신이가 관계를 가져서 두 사람 싸우고 있는 거 아니에요?”심지안은 몸을 흠칫 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성연신을 바라보며 물었다.“시연 씨 말이 사실이에요?”성연신은 넋을 잃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그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더니 덤덤한 말투로 가장 야속한 말을 꺼냈다.“사실이에요.”확실한 대답을 들은 후, 심지안은 놀란 마음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내가 떠난 후에 있은 일인가요?”“그래요, 디테일을 더 알고 싶다면 다 알려줄게요.”옆에 있던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