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은 그녀의 뜨겁고 진지한 눈빛에 낯 간지러워 어색한 표정으로 얼굴을 돌렸다.“너무 많이 생각했네요.”“아니요. 연신 씨 마음속에는 정말 제가 있어요.”심지안은 그에게 말하는 것 같았고 또 자신에게 말하는 것도 같았다.“왜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사랑하면 대담하게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죠!”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저도 연신 씨한테 호감이 있는데!”그녀는 멍청하지 않다. 요 며칠 동안의 여러 가지 변화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다만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이때 그의 반응이 그녀를 확신시켰다.성연신은 순간적으로 불쾌했고 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심지안을 노려보았다.“그저 호감뿐이라고요?”죽도록 사랑하고 그가 아니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심지안은 코를 쓱 만지고는 자연스럽게 눈꼬리를 내려 한 줄기 스쳐 지나간 어딘가 켕기는 눈빛을 감추었다. 옆에서 보면 마치 상처받은 토끼처럼 보였다.“당연히 아니죠. 제가 연신 씨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오히려 연신 씨에게 반감을 살까 봐, 넘치는 사랑에서 빙산의 일각만 드러낸 거예요.”이 사람을 알게 된 후, 그녀의 연기는 점점 더 좋아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손색이 없었다.성연신은 턱을 살짝 치켜 올려 막힘 없고 아름다운 턱선을 드러냈다. 성연신은 하찮다는 듯 말했다.“감추려 할수록 더 드러나는 법.”앞줄의 정욱, “...”왜 정욱은 오히려 대표님이 감추려 할수록 더 드러나는 것 같을까?“헤헤.”심지안은 성신의 팔짱을 끼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연신 씨, 언제부터 절 좋아했어요? 아니면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을 느꼈나요?”“입 좀 다무시겠어요?”“물어보면 안 돼요? 인색하긴.”“연신 씨도 제 미모에 승복하는 거죠?”“참 우연이네요. 저도 그래요.”“제가 총명하니까 정말 다행이죠, 연신 씨가 잘 안 되는 남자라는 말을 믿었더라면 우리는 아마 서로를 놓쳤을 거예요.”“읍-”심지안의 입이
“경은 씨, 장난이 좀 심하네요.”경은은 입을 삐죽거렸다.“그냥 말한 건데 무슨 또 그렇게 격하게 반응해요.”“하... 경은 씨처럼 농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심지안은 옆에 있던 동료를 끌어당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요, 그냥 내버려 둬요.”어쨌든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경은은 심지안을 한 번 쳐다보고는 돌아섰다.오늘은 일이 비교적 많았는데 심지안은 오전 내내 오후 회의 때 사용될 업무 데이터와 분석을 정리해 놓았다.회의가 끝날 때까지 바삐 돌아쳤다. 경은은 거들먹거리며 다가와서는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프로젝트 전략을 실행할 기획안을 써서 내일 저한테 주세요. 비용, 일정, 사전 설정 효과까지 꼼꼼히 표시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그녀는 뻐근한 목을 돌리면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제가 이것들을 다 하면, 경은 씨는 뭐해요?”단순하게 감시하려고 하는 건가?“당연히 지안 씨가 만든 방안을 평가하고 분석해서 필요하면 수정해 주려고 그러죠. 발탁될 좋은 기회인데 구시렁구시렁 말이나 많고.”“저의 발탁을 도와줄 필요 없어요. 임무는 우리가 반반씩, 각자 해요.”경은은 잔머리를 굴렸고 마침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그래요. 근데 지안 씨 오늘 밤에 프로젝트 기획안을 써야 할 거예요. 그럼 제가 내일 아침에 비용과 일정을 표시해 놓을게요.”심지안은 받아들였다.시간이 촉박하기는 했지만 분업이 합리적인 편이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목표가 생기자 그녀는 빠르게 일에 집중하였다.퇴근하기 전에 성연신에게 오늘 야근을 해야 하니 기다릴 필요 없다고 말했다.성연신은 언제까지 야근하는지 물었고 그녀는 시간을 알려주고는 대화를 끝냈다.밤 10시.심지안은 기지개를 켜고는 컴퓨터를 끄고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일어섰는데 불빛이 갑자기 꺼졌고 사무실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심지안은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벽의 스위치를 찾으려고 더듬거렸다.기억에 따라 간신히 스위치를 찾
보광 중신 건물 아래.길가에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다.성연신은 얼굴을 찌푸리며 핸드폰의 부재중 전화를 노려보다가 다시 걸었다.“고객님의 전원이 꺼져있습니다...”비록 오늘은 회사에서지만, 매번 이 바보 같은 여자의 핸드폰이 꺼질 때마다 좋은 일은 없었다.“여기서 기다려, 내가 한번 올라가 볼게.”그는 정욱에게 한 마디 내던지고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정욱은 입을 벌려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의 시선은 단아하고도 아름다운 그림자에 놓였다.“뭐야, 왜 또 마주친 거지.”‘이 여자는 대표님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왜 또 나타난 거지?’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차에서 임시연의 움직임을 살폈다.마치 모든 것이 잘 짜인 것처럼, 임시연과 성연신은 건널목에서 만났다.분홍색 브이넥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가녀린 허리에 곧게 뻗은 종아리를 드러냈다. 밤바람이 불자 머리칼이 하늘하늘 날렸고 지적이고 우아한 분위를 풍겨 마치 만화 속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것 같았다.임시연은 성연신을 바라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 입을 벌려 말하기도 전에 기침부터 났다.“콜록콜록-”그녀는 계속해서 기침을 해댔고 마치 오장육부를 토해낼 것 같았다.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아볼 수 있었다. 보통 장티푸스가 아니라는 것을.성연신은 그녀가 병원의 봉투를 손에 들고 있고 병원 라벨이 보광 옆에 세워진 공립병원인 것을 보았다.“어디 아파?”“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보통 감기.”임시연은 기침을 멈추고는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회사는 어쩐 일이야?”“사람 데리러.”성연신을 직접 데리러 가게 하는 사람은 오직 그가 말한 그 사람뿐일 것이다.임시연은 시무룩했고 애써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얼른 가봐.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응.”성연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빤히 보았다. 소매 속에 감춰진 손은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뼈마디가 파래졌다.갑자기 그녀는 입을 열었다.“연신아.”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얘기해요. 지금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네.”“연신 씨, 갔던 거 아니었어요? 왜 다시 온 거예요?”심지안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물었다.성연신은 눈썹을 치켜들었다.“누가 간다고 했어요.”“그럼 안 가고, 계속 사무실에 있었어요?”“조금 더 업무를 처리했더니 곧 10시가 되더라고요.”그 뜻인즉, 이참에 너를 기다렸다는 것이다.심지안은 눈을 굴리며 능글맞게 웃었다.“알았어요, 알았어요.”이 남잔 입으로만 시비를 건다.엘리베이터에서 8등신 황금비율에 허리가 좁고 어깨가 넓은 몸매를 가진 성연신은 나른하게 한쪽 벽에 기대어 그녀를 새침하게 쳐다보고는 상대하기 귀찮다는 모습을 보였다.심지안은 그의 아름다운 용모와 완벽한 몸매에 홀려 2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참, 그녀는 처음부터 성연신의 이 외모로는 아무리 보아도 강우석의 삼촌 같지가 않다고 생각했다.분명히 의심했는데 흐리멍덩하게 믿어버렸다니. 이건 벌 받을 짓이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심지안은 어수선한 마음을 접기도 전에 머리를 들자 임시연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인터넷상의 사진과 다름이 없었는데 단정하고 우아하며 그야말로 동양 미인의 정석이었다.나이는 성연신과 비슷해 보였는데 사진 속보다 한층 더 성숙해 보였다.심지안은 머리가 띵해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어제 귀국해서 오늘 만나다니.하지만 그녀는 우연한 만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그리고 보광 중신, 즉 성연신의 구역에 나타났다는 것은 분명 그의 허락을 받았을 것이다.심지안은 손톱으로 손바닥을 꼬집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등을 꼿꼿이 세웠다.임시연이 심지안을 본 첫 반응은 홍교은과 조금 비슷했다.이것은 얼마나 젊고 밝으며 생기발랄한 모습인가, 마치 껍질을 벗긴 싱싱한 여지와도 같았고 깨물면 과즙이 터질 것만 같았다.몸매와 외모가 일품이다.그러나 성연신은 얼굴만 보는 사람이 아니다.그는 그녀의 눈에서 보이는 단단하고 완강한 기질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
심지안의 얼굴이 굳어지며 왠지 모를 씁쓸함이 몰려왔다.맞다... 그들은 단지 계약 관계일 뿐이다.아침에 잠깐의 달콤함이 있었지만 여전히 갑을관계인 건 어쩔 수가 없다.“네. 다 저의 잘못이에요. 더는 말하지 않을게요.”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성연신은 즐거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심란했다.정욱은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였고 차를 줄곧 중정원까지 몰았다.심지안은 먼저 차에서 내려 마당으로 들어가 원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갈 준비를 했다.원이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했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듯 귀를 쫑긋 세운 채, 쭈뼛쭈뼛 엎드려만 있었고 새까만 눈동자에는 불안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원이한테 화풀이하지 마요.”심지안은 웃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제가 이런 모습으로 우리 애견한테 봉사해도 되겠습니까?”성연신이 말했다.“아니요. 좀 더 크게 웃어야 할 것 같아요.”심지안, “...”그녀는 당연히 화풀이하지 않았다. 원이는 죄가 없으니까.물론 원이를 산책시킨 후에도 성연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이튿날의 이른 아침.심지안은 일어나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쌌고 성연신이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녀가 오피스룩을 입은 것을 보았는데 직장여성의 성숙한 매력을 물씬 풍겼다.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차려입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밥해주고 있다니.강렬한 갭차이에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성연신은 가볍게 웃었다.심지안은 이 웃음소리를 듣고는 주걱을 든 손이 움찔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뭘 만들고 있어요?”“애호박 달걀 볶음, 당근 차돌박이랑 대하찜이요.”성연신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썹을 실룩 실그러뜨렸다. 그의 방금 득의양양했던 모습은 순식간에 반쯤 사라졌다.그가 주동적으로 말을 걸었던 것은 어제 그녀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표시했다.왜 기회를 줬는데 안 잡는 거지?성연신의 얼굴빛이
4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냉철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점잖은 명품을 입고 있었는데 목에 건 마노 비취는 한눈에 봐도 쉬이 구할 수 없는 진귀한 보석이었다.단번에 눈앞에 나타난 남자의 신분을 알아챈 심연아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는 연예계 가장 큰 자본을 움켜쥐고 있는 거장이었는데 그의 아래에 몇 개나 되는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사랑을 받고 있는 수많은 인기스타들은 모두 그가 발굴하고 데뷔시킨 사람들이었다.저런 대단한 사람이 대체 왜 이런 누추한 곳에 나타났단 말인가.남진영은 심연아를 본 순간 실망감에 휩싸였다.성유진의 딸인데 왜 그녀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단 말인가.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에게 성유진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그의 차갑던 눈동자에 자애로움이 자리 잡았다.“이름이 뭐예요?”“조금 전엔 제가 잘못했어요. 차 수리 비용은 제가 꼭 드리겠습니다.”심연아는 덜컥 겁이 나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괜찮아요. 아가씨한테 돈을 받으려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제가 아는 분이랑 너무 닮아서요.”“제 이름은 심연아입니다...”남진영의 얼굴에 환희가 스쳐 지나갔다. 눈앞의 이 여자아이는 틀림없이 성유진의 딸이다. 당시 성유진은 심씨 가문 망나니 놈에게 시집을 갔으니 말이다.그는 성유진이 살아있을 때 그녀를 보살필 기회를 저버렸으니, 남은 반평생 동안엔 반드시 성유진을 대신해 그녀의 딸을 지켜줄 거라고 다짐했다.남진영은 첫 만남에 하기엔 황당한 말이라는 걸 알지만 자꾸만 피어오르는 성유진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결국 입 밖으로 내뱉었다.“연아 씨, 내가 보기엔 우리 두 사람은 인연인 것 같아요. 내 양딸이 되어줄래요?”...심지안은 어젯밤 크게 놀란 데다 성연신과 냉전까지 벌인 탓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오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그 모습을 본 경은은 승전이라도 거둔 듯 득의양양한 얼굴로 심
설사 성연신에게 혼나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경은이 노력도 없이 이득을 보게 할 수는 없다!심지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단호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경은은 그녀를 막는 척 쫓아나갔지만, 가만히 서서 엘리베이터가 위층으로 올라가 멈춰 서는 것을 지켜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계획팀으로 돌아왔다.동료 몇 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경은 씨, 지안 씨는 정말 대표님을 뵈러 올라갔어요?”“네. 맞아요. 막지 못하겠더라고요. 절반을 나눠주겠다고까지 했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400만 원 모두 독차지하려나 봐요.”“하... 욕심이 너무 많네요...”...심지안은 성연신의 사무실 앞에 도착한 뒤 문을 두드렸다. 몇 분이 지나도 응답이 없자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성연신에게 업무 보고를 하던 임원들이 그 소리에 모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심지안은 등등하던 기세가 한풀 꺾여버렸다. 그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쭈뼛거리며 말했다.“계속하세요. 전 밖에서 줄 서 있다가 잠시 뒤에 다시 들어올게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쿵’ 소리와 함께 굳게 문을 닫았다.임원들이 난처한 듯 서로 눈을 마주치다가 고개를 돌려 몰래 성연신의 표정을 살폈다.남자는 몸에 맞춰 재단한 깔끔한 화이트 셔츠와 긴 다리를 돋보이게 해주는 맞춤 정장 바지를 입고 넓은 가죽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은 웬만한 의류 모델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 아무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자극법이 통한 것이다.몇 분 뒤.임원들이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다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심지안에게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냈다.심지안은 최대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곧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 뒤에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가슴을 쭉 내민 채 성연신의 앞으로 걸어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경은 씨가 제출한 프로젝트는 제가 작성한 거예요.”성연신이 나른한
심지안이 난처한 얼굴로 정욱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괜찮아요. 난 서서 보면 돼요.”그 말은 즉 이곳은 사무실이고 보는 눈도 있으니 자제하라는 뜻이었다.성연신이 정욱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자 정욱은 곧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전 이만 나가볼게요.”“...”심지안은 어이가 없었다.‘됐어. 그냥 앉지 뭐. 어차피 처음도 아니잖아. 무료로 제공되는 푹신한 의자라 생각하면 되지.”그녀는 성연신의 다리에 자리 잡고 앉자마자 돌연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이번엔 벨트로 날 괴롭히지 말아요.”성연신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입 다물어요.”심지안이 입을 삐죽거렸다. 불리하기만 하면 다짜고짜 입을 다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그가 마우스를 누르자 화면에 어젯밤 계획팀 외부를 찍은 CCTV 화면이 나타났다.10시 쯤, 경은은 몰래 계획팀 밖으로 나가 자신이 갖고 온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경비원들이 순찰을 나간 사이 회사의 모든 전원을 끊어버렸다.어둠 속에서 그녀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핸드폰으로 음악을 재생시켰다. 이어 겁에 질려 소리치는 심지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소한 듯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모든 과정을 확인한 심지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어젯밤 문밖에 사람이 있다고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두 사람은 그저 옅은 경쟁 관계일 뿐, 어떠한 원한도 없다. 심지안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경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성연신이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난 지안 씨를 믿었어요.”이 어리석은 여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사람에게 당한다. 자신은 종래로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면서 말이다.난 지안 씨를 믿었어요...심지안은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가슴 속 어딘가에서 이름 모를 파동이 일었다.누군가가 믿어준다는 건 참 뿌듯한 일이다.이렇게 때로는 예쁜 말도 할 줄 안다니까.“이제 경은 씨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에요?”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