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끄덕이던 안철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심지안을 향해 다가갔다.“저... 지안 씨, 오늘 저 봤다는 얘기는 대표님한테 하지 말아 주세요. 비밀로 해주세요.”“비밀 지켜달라는 뜻이에요?”“네!”“그럼 저는 뭐가 좋은데요?”눈을 깜빡이며 묻는 심지안에 안철수는 잠시 벙쪄있다가 입을 열었다.“뭘 바라시는데요?”“장난이에요, 연신 씨가 안 물어보면 나도 아무 말 안 할게요.”제 남편을 굳이 속이고 싶진 않았던 심지안이 묻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마워요, 지안 씨.”“근데 민채린 씨랑은 어떻게 됐어요?”연애 좀 해봤다 하는 절세미녀 민채린과 지고지순한 안철수가 만나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 같아 심지안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심지안의 질문에 안철수는 머리를 만지며 바보처럼 웃어 보였다.“좀 더 만나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전에 제가 말실수 한 거에 대해서도 사과했어요. 채린 씨도 제가 제대로 된 고백을 하면 만나주겠다 했고요.”안철수의 말에 심지안은 잠시 멈칫했다. 이렇게 되는 게 맞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소민정 씨는 이렇게 빨리 잊은 거예요?”소민정을 언급하는 심지안에 안철수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소민정 씨한테는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냥 동생 챙겨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소민정이 죽고 난 뒤 안철수는 며칠 동안 그 무덤 앞을 지키며 술로 정신을 마비시켰다.소민정을 말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임시연의 그 헛소리에 넘어가게 내버려 뒀다는 죄책감에 안철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제가 잡아만 줬어도 이런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어떻게 죽을 때까지도 성 대표님만 구하다 죽나, 어떻게 그 정도 바보 같을 수 있나 싶었다.안철수는 소민정의 마음에는 어릴 때부터 줄곧 성연신뿐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거에 대해 안철수는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질투를 해본 적이 없었다.보통의 남자라면 제가 좋아하는 여자
고청민은 옅은 미소를 띠며 담담히 말했다.“그냥 추억할 만한 사진들 좀 넣어서 줬어요. 지안 씨도 지난 5년간 우주랑 같이 시간 보내고 싶었을 것 같아서 지안 씨 해외에 있을 때 사진 우주한테 선물해 준 거에요.”성우주도 큰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고는 말했다.“형이 준 앨범 엄청 맘에 들어요.”성우주는 고청민 사진은 없고 전부 심지안뿐인 앨범이라 고청민이 엄마 아빠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일부러 준 게 아니라 정말 추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했다.성우주를 데리러 갈 때 심지안도 앨범을 본 적은 있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아 안에 몇 장의 사진이 들어있고 사진 속에 저는 뭘 하는지 어떤 배경으로 찍힌 건지는 굳이 보지 않았다.고청민의 빛이 사라진 눈을 보던 심지안 제가 너무 속 좁은 짓을 했나 싶었다.그때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성동철이 성우주를 부르며 말했다.“우리 손자, 할아버지한테도 사진 좀 보여줄래?”“네, 할아버지.”성우주가 예쁘게 대답하며 앨범을 성동철의 손에 넘겨주자 그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에 안에 어떤 사진이 있는지 궁금했던 심지안도 사진이 보일만 한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갔다.첫 번째는 심지안이 금방 해외에 가서 혼자 창가에 앉아 외로워할 때의 사진이었고 두 번째 장은 고청민과 기분전환 하려고 간 쇼핑몰에서 고청민이 심지안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여주는 사진이었다.그리고 세 번째 장에는 심지안이 컴퓨터 앞에 앉아 시장 동향을 살피며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담겨있었고 네 번째 장은 밤에 일을 다 끝내고 같이 야시장에서 밥을 먹으며 심지안이 꼬치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사진 속의 심지안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한 손엔 꼬치를 들고 얼굴에는 기름을 잔뜩 묻힌 채 웃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하고 아름다워 보였다.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사진들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성우주도 한 장씩 넘겨보며 흥미로운 사진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짚어가
고청민의 눈빛이 그의 의아함을 대변해주고 있었지만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네.”둘만 남은 바둑실이라 지나치게 조용했지만 고청민은 무슨 일인지 바로 묻지 않고 테이블에 기대어 가만히 기다렸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심지안이 차분한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민채린 씨가 고청민 씨 줄 거라고 나한테 약을 줬어요. 가정부한테 줬으니까 잘 챙겨 먹어요.”의외의 말에 고청민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처럼 고분고분하게 머리를 끄덕였다.“네, 그럴게요.”“그리고 세움 그룹으로 돌아와요. 주식은 내가 넘겨줄게요.”심지안은 고청민의 눈을 보며 평온하게 말했다.고청민이 잘못한 것도 맞고 아주 큰 피해를 입힌 것도 맞지만 그 주식의 액수가 너무 컸고 할아버지도 고청민의 복귀를 바라실 것 같아 심지안은 고청민을 불러들이기로 했다.성씨 가문이 제경에서 한 자리 차지하며 귀족 중의 귀족이 될 수 있었던 건 다 할아버지가 젊을 때부터 세움 주얼리를 경영하며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것들이었다.할아버지 세대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자식들도 물론 아무것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고청민은 그 세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움과 함께 커왔으니 세움 주얼리의 번창에 공이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힘든 시간을 함께하는 게 그 성과를 함께 누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심지안은 혼자 모든 걸 차지하고 만끽할 수 없었다.심지안의 말에 고청민은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아... 아니에요. 나는 지안 씨를 세움에서 쫓아내고 싶은 게 아니에요. 세움 주얼리는 성씨 가문과 저의 공동 자산이죠.”“괜찮아요. 해외에서 고청민 씨가 나 도와줘서 창업도 했잖아요. 돈 있어요. 그리고 나도 조건 있어요.”“고청민 씨와 할아버지가 나한테 사업 자금을 주는 게 조건이에요. 제경에서 창업할 만한 돈이면 되요.”심지안은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라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 양보를 할 순 있어도 너무 많이 잃을 순 없었다.고청민은 심지안이 충동적이라고 생각
심지안은 애써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며 “네”라는 짤막한 대답을 남기고 식사를 하러 내려가려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멀어지는 심지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고청민의 눈에 섬뜩한 소유욕이 비치는 듯했다.심지안이 문을 열려고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문 너머에서 강한 힘이 전해져오며 문이 안으로 밀렸다.다행히 순발력 강한 심지안이었기에 코만 살짝 스치고 별문제 없었지만 정말 큰 사고가 날 뻔했기에 심지안은 짜증 난 듯 문을 연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누구야! 문 열기 전에 노크하는 법도 몰라요?!”“지안 씨, 나예요.”그때 성연신이 문 뒤에서 걸어 나오며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 그렇게 갑자기 문을 열줄 몰랐어요.”심지안은 갑자기 등장한 성연신이 의아했지만 아직 재결합 전이기에 남자친구로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생각해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문 열기 전에 노크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미안해요. 많이 아파요? 병원 갈까요?”성연신은 심지안을 살피며 이것저것 물어왔는데 뒤에 서 있는 고청민을 정말 못 본 건지 아니면 못 본 척을 하는 건지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이렇게 큰 사람이 뒤에 서 있는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들어오자마자 봤을 텐데.심지안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성연신을 한번 흘기고는 말했다.“그 정도는 아니고요. 밥 먹으러 가요. 나 배고파요.”“그래요.”심지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내려가려 하던 성연신이 그제야 뒤에 있던 고청민의 존재를 인지한 건지 그를 보며 물었다.“같이 밥 먹어요.”고청민을 손님 취급하는 그 말에 고청민의 눈에 살짝 언짢음이 감돌았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은 배가 안 고파서요. 나중에 배고프면 주방에 말하면 돼요.”이 집의 주인은 본인이라는 걸 어필하는 듯한 말에 성연신은 더는 말하지 않고 냉소를 흘리며 방을 나갔다.---밥을 다 먹은 성연신이 심지안의 방에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않자 심지안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성연신 씨, 오늘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은
“누가 새벽 두 시에 아침을 먹어요?”“그런 사람 많거든요. 그냥 성연신 씨가 나이가 들어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뿐이에요.”가만있다 한 소리 들은 성연신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내가 나이가 들었다고요? 아까는 지안 씨가 먼저 못 버티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그 말에 심지안은 얼굴이 빨개지며 발끈해서 소리 질렀다.“조용히 해요! 변태!”본인이 먼저 하자고 하자고 졸라서 그렇게 몇 번이나 해줬더니 인제 와서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로 나오는 성연신에 심지안은 어이가 없었다.“아침 먹자면서요?”성연신이 심지안을 침대에서 일으키며 말했다.“가요, 내가 아는 곳 있어요.”“어디요?”“아침 먹는데요.”심지안의 질문에 성연신은 당연한 대답을 하며 웃었다.---그렇게 성연신이 30분이나 운전해서 도착한 가게는 마침 문이 열려있었다. 그 가게는 거리에 유일한 이 시간에 불이 켜진 가게였다.차에서 내린 심지안은 놀란 듯 성연신을 보며 말했다.“여기 와서 밥 먹은 적 있어요?”가게는 3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 전부여서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아침을 사서 나가는 손님들이었다.“창업할 때는 자주 왔죠. 여기 튀김빵 엄청 맛있어요.”심지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말을 듣고 혼자 중얼거렸다.“창업...”이런 구멍가게에 와서 밥을 먹었다니, 다른 건 먹을 돈이 없었나...심지안의 생각을 보아낸 성연신이 그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일이 늦게 끝나는데 여기 밖에 문 여는 데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몇 번 먹어보니까 맛있기도 하고, 가게가 작은 거만 빼면 여기가 최고예요.”“아, 놀랐잖아요. 성원 그룹 후계자가 이런 구멍가게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정도로 힘들었나 했어요.”“가요, 지안 씨도 먹어봐요.”성연신은 5개의 튀김빵과 순두부를 두 그릇 시켰다.심지안은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튀김빵을 보니 자연스레 손이 갔다.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
“다빈 씨는 아는 얘기가 참 많은 것 같아요.”연다빈은 잠시 흠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쳐들고는 말했다.“제가 아는 게 많은 게 아니라 임시연 씨가 워낙 유명한 거예요.”“음... 그렇긴 하죠. 피아노 잘 치던데.”“전에 나는 임시연 씨 연주회에도 갔었는데 요새는 통 안 보이네요.”“그게 무슨 일이 있었다나 봐. 들리는 말로는 뭐 범죄를 저질렀다던데.”“진짜요? 자세히 좀 말해봐요.”제 얘기를 떠드는 동료들에 “연다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에이, 다른 사람 얘기 그만하고 얼른 일이나 해요. 그러다 또 전처럼 이유도 없이 잘리면 어떡해요.”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동료들은 다들 각자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십분 뒤, 전체 직원회의가 있어 회의실로 들어온 직원들은 성연신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심지안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그 모습에 몇몇 상황파악이 빠른 직원들은 연다빈에게 조롱의 눈길을 보내며 얼른 심지안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오늘은 사모님이 회의 여시는 거예요? 너무 영광이에요.”심지안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연다빈을 보더니 일부러 웃으며 말했다.“저희 곧 하거든요. 시간 있으면 다들 오셔서 식사하고 가세요.”그 말에 다들 깜짝 놀라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어머, 너무 축하드려요!”아이가 이렇게 큰데 게다가 재혼인데도 상관없다는 듯이 결혼식을 하는 걸 보면 성연신이 심지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리고 결혼이라는 말에 얼굴을 굳어져 있던 연다빈도 제 존재감을 과시하려 입을 열었다.“지안 씨와 대표님이 재결합하신다니 정말 축하드려요. 좋은 날에 제가 꼭 참석해서 축하해 드릴게요.”그 말에 심지안이 담담하게 대답을 해왔다.“나는 연다빈 씨를 초대할 생각이 없는데요.”심지안의 말을 끝으로 회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연다빈은 이게 바로 원하던 결과라는 듯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하지만 이내 불쌍한 척을 하며 말했다.“지안 씨, 혹시 내가 말실수했어요?”“아니요.”심지안
제 옛날 이름을 불러오는 심지안에 얼어붙은 연다빈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눈을 피한 채 뒷걸음질을 쳤다.“임시연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연기 그만해, 다 알아들었잖아. 성형까지 해가면서 성연신 씨 옆에 남으려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심지안은 더 이상 임시연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목소리는 높진 않았지만 힘이 들어가 있어 주위 사람들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성형 안 했어요! 저 모함하지 마세요.”연다빈은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괜찮은 척하며 소리 질렀다.“지안 씨가 나 싫어하는 거 아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 나를 못 보겠으면 내가 회사 그만둘게요.”말을 마친 임시연이 사원증을 테이블 위로 집어 던지고 나가려 하자 심지안이 소리를 치며 막았다.“경비, 임시연 잡아요. 도망 못 가게.”이런 상황이 일어날 줄 알고 심지안은 미리 문 앞에 배치해 두었던 경비에게 명령해 임시연을 잡았다.임시연은 원망 어린 눈으로 심지안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공포도 서려 있었다.도대체 어디에서 들통이 난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그래서 심지안이 일부러 저의 반응을 보려고 증거도 없으면서 자극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그런 거라면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그때 심지안이 빠르게 임시연 앞으로 다가와 눈썹을 꿈틀거렸다.“도망가려고?”“저는 정말 지안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무리 직원이라고 해도 이런 수모를 겪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부터는 성원 그룹 직원 안 할 테니까 놔주세요. 이건 너무 하시잖아요!”심지안은 최대한 불쌍한 척하는 임시연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매정하게 말했다.“그렇겐 못 하지. 좀 있다 경찰 오는데, 법의 심판은 받아야 하잖아.”경찰과 법이 등장한 문장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진짜 연다빈이 임시연이야? 이게 무슨 판타지도 아니고...”“경찰까지 오는 거면 진짜 아니야?”“연다빈 씨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