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훈은 미안해하며 말했다.할아버지로서 해야 할 책임도 한 적이 없다.“괜찮아요. 오빠가 저를 지키고 보호해줬어요.”진서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네가 진서준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났어.”임훈이 사실을 알려줬다.진서라는 임훈의 손녀딸이다.그리고 진서준은 임훈 둘째 동생의 외손자다.게다가 진서라는 진서준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났다.진서준과 진서라는 이 사실을 듣고 그대로 얼었다.아직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상관없긴 해. 누나든 오빠든 둘은 한 가족이야.”임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먼저 돌아가겠습니다.”진서준이 일어서서 말했다.“준아, 얘네 좀 데려다줘라.”임훈은 나가면 임씨 가문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살까 봐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둘은 인사를 나누고 차를 타고 떠났다.“솔아, 경성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나한테 전화해라!”임준은 사랑이 듬뿍 담은 얼굴로 진서라를 보았다.임준과 임훈 두 사람 모두 진서라에게 미안함 뿐이다.“넷째 할아버지, 그냥 진서라라고 부르세요.”진서라는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서라라고 부를게.”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차가 반쯤 달리다가 앞에 롤스로이스 한 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넷째 어르신, 진씨 가문의 차입니다.”운전기사가 번호판을 보고 임준에게 말했다.임준은 그 차를 보고 나서 진서준에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오셨다.”진서준은 얼떨떨하니 그 롤스로이스 차를 바라보았다.뒷좌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진서준의 눈앞에 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진서준은 노인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서라야, 너희들 먼저 돌아가라. 내가 가서 볼게.”진서준은 차에서 내려 그 롤스로이스로 향했다.뒷좌석에 들어서자 진서준이 노인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마찬가지로 노인도 미간에 자상함과 죄책감이 가득하며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서준아...”“당신이 바로 제 할아버지입니까?”진서준이 물었다.“그래!”진혁이 힘껏 고개를
진혁의 말을 듣고 진서준은 완전히 멍해졌다.그는 원래 자신이 경성의 진씨 가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진씨 가문이 주워온 자식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진서준은 도대체 어느 가문 사람이고, 혈용체는 또 무엇인가?설마 진서준이 혈용권을 쓸 수 있는 것도 혈용체 때문인 건가?“네 아버지가 내 핏줄은 아니지만, 항상 친자식처럼 대했어!”진혁이 진서준을 보며 말했다.“서준이 너도 내 친손자로 대했고.”“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넌 벌써 진씨 가문의 도련님이 되었을 거야. 사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좋을 거고.”진혁의 말은 사실이다.진혁은 진서준의 아버지에게 늘 잘 해주고, 다섯 아이 중 진서준의 아버지를 가장 예뻐했다.게다가 진서준의 아버지도 무도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20대 초반에 벌써 대종사이다.그러고 구창욱한테 선법을 수련하고 나서 그의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당시 진서준의 아버지를 통제하기 위해 은씨 일가, 양씨 가문, 곤륜 그리고 장백이 수많은 고수를 동원했었다.그러나 그중 절반이 진서준 아버지의 손에 잡혀 희생했다.“저희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죠?”진서준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요한.”진서준은 이 이름을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 두었다. 이어서 물었다.“그해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 나 누구였어요?”“뭐 하려고?”진혁은 진서준의 눈에 살기가 가득한 걸 보고 가슴이 철렁거렸다.‘설마 진요한을 위해 복수라도 하려고 하는 건가?’“복수요.”진서준은 담담하게 복수 두 글자를 말했지만, 그 안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웠다.은씨 일가와 양씨 가문은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곤륜과 장백은 더더욱 넘사벽의 존재이다.심지어 신농과 남사 이 두 개의 은세종문도 그 당시에 참여했었다.진서준 혼자서 복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구창욱처럼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복수의 길이 곧 죽음의 길이다.“서준아, 네가 속상하고 화난 건 알지만, 그렇게 많은 상대를 혼자서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
심지어 당시 해외의 용의 안식 계획도 특별히 진요한을 위해 세워졌다.“그래, 먼저 돌아가. 이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면 돼.”진혁은 진서준에 전화번호 하나를 주었다.아는 사람이 불과 5명뿐인 진혁의 개인 번호이다.진서준은 번호를 메모한 후 바로 영화로 태웠다.“할아버지, 꼭 진씨 가문의 스파이를 찾아내야 합니다.”진서준이 떠나기 전에 정중하게 말했다.“20년 넘게 찾았는데도 코빼기도 안보여.”“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 낼거야. 어떻게 된 건지 꼭 알아내야지.”진씨 가문 안의 스파이에 대해 진혁은 항상 신경이 쓰였다.20여 년 동안 진혁은 스파이의 단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았다.그러나 마치 증발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진혁이 여러 방법을 통해 스파이를 찾아내려고 했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차에서 내린 진서준은 망연자실한 듯 혼자 천천히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내 신분이 이미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주워 온 자식이라니...’‘혈용체는 또 뭐고...’빵빵...진서준이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을 때, 한 대의 슈퍼카가 진서준을 향해 미친 듯이 빵빵거렸다.진서준이 뒤를 돌아보는데 패셔너블하게 차려입고 잘생긴 한 젊은이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눈멀었어?”젊은이는 진서준에 욕설을 퍼부었다.“됐어요. 이런 촌놈이랑 따져서 뭐해요.”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진서준은 정신을 딴 데 팔았지만, 길 한가운데가 아닌 길가에서 걷고 있었다.옆에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말 똑바로 해!”진서준이 정색하며 말했다.젊은이는 어리둥절하더니 스포츠카에서 그대로 튀어나왔다.“야! 너나 똑바로 말해. 한 방에 천국 가게 할 수 있어!”그러고 주먹을 들어 진서준의 가슴에 대고 한 대 쳤다.진서준은 아까 들은 얘기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 젊은이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을 보고, 진서준도 참지 않고 주먹으로 상대했다.진서준이 감히 자기와 맞싸우려고 하는 것을
은범은 마치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고 있었다.“감히 나를 때려? 네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야!”은범은 큰 소리로 소리쳤다.“이 촌놈은 아마 경성의 4대 가문도 모를 거예요.”옆에 있는 여자는 도도하게 서 있으면서 진서준을 얕보았다.“은범 도련님이 죽이려는 자가 하루를 버틴 걸 본 적이 없어.”“어서 와서 은범 도련님께 사과해!”진서준은 그냥 은범을 혼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은범도 은씨 일가의 사람이지만 보아하니 겨우 20대 초반이다.진서준은 은씨 일가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은범의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그러나 은범이 방금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말을 듣고 아주 불쾌했다.“우리 집안을 어떻게 망하게 만드는지 보고 싶네.”진서준은 은범을 보고 차가운 눈빛을 날렸다.은범은 진서준의 눈빛을 마주친 후 몸에 소름이 돋았다.마치 독사에게 찍힌 것처럼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은범은 정신을 차린 후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래도 은씨 가문의 직계 도련님인데 뭐도 안 되는 놈의 눈빛에 쫄아서 말을 잊지 못하다니!정말 아이러니하다.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무슨 면목으로 살아가겠는가.“야, 어디 네 이름을 불러봐봐. 하루 안에 널 죽일 수 있는지 두고 봐!”진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방금까지 지 잘나간다고 까불지 않았나?”“인제 와서 이름을 물어보냐.”“왜, 이름이 뭔지 모르면 못 찾아낼까 봐?”진서준의 말에 은범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경성에서 다른 세 가문의 후배라도 감히 그와 이렇게 말할 엄두가 안 난다.“그래, 너 딱 기다려.”은범은 이를 갈며 말했다.“다음에 너를 찾을 때, 내가 죽이고 만다.”진서준은 은범에게 다가가서 그를 내려다보았다.“확실해?”“그래!”은범은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는 진서준이 감히 그에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자신의 신분을 얘기했다.은범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진서준이 그의 다른 쪽 손을 땅에 밟고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
“누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든 거야!”은기훈이 은범과 함께 온 여자를 노려보며 물었다.그 여자가 벌벌 떨며 조심스럽게 답했다.“저희도 그 청년을 모릅니다.”“모른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험하게 은범이한테 손댄 거야!”은기훈은 상대방이 이유 없이 손을 썼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자초지종을 대강 말했다.사소한 일로 아들의 두 손이 부러졌다는 것을 안 은기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며칠 전에도 경성에 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말썽 피우지 말라고 당부했건만!”은기훈이 한심하다는 듯이 은범을 바라보았다.곧 봉호대전이 시작하는 시기라 대한민국의 천교들이 모두 경성으로 모이고 있었다.이렇듯 중요한 때에는 되도록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게 이로웠다.“됐어요! 아들이 이렇게 다쳤는데 왜 아직 애 탓을 해요!”은범의 어머니가 아니꼬워하며 말했다.“아들 두 손이 부러졌으니 얼른 복수할 생각이나 해요!”은기훈도 복수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가해자를 모르니 어디로 가서 복수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말이 쉽지. 누가 손댔는지도 모르잖아!”은기훈이 차갑게 대꾸했다.“일단 상처를 잘 치료하게 하고 봉호전이 시작할 때 다시 데리고 와. 내 생각에는 범이한테 손댄 그 청년도 봉호전에 참가할 것 같아.”은기훈은 생각이 또렷하고 머리도 매우 총명했다.은범이 은씨 일가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심하게 다치게 했다는 것은 상대방이 틀림없이 당대의 천교여서 은씨 일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혹은 은씨 일가가 그에게 어떠한 보복도 못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었다.이런 사람은 무조건 봉호전에 참가할 것이다.진서준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임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허사연이 얼른 다가가 물었다.“서준 씨, 임씨 가문에서 왜 온 거예요?”“서라가 말 안 했어?”진서준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아니요. 서라는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요.”허사연이 답했다.허사연
진서준이 제자리에서 멈칫하자 허사연이 물었다.“서준 씨, 왜 그래요?”진서준이 낯익은 사람을 가리키고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성격파탄자 연예인 기억해?”진서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본 허사연이 사람들 틈에 있는 오인혁을 발견했다.지금의 오인혁에게는 오만방자한 표정이 없었다.오히려 얼굴에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의 몇몇 청년들을 향해 끊임없이 굽신거리고 있었다.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스타 오인혁을 굽신거리게 할 수 있는 청년들의 신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특히 맨 앞에 서 있는 그 청년은 세상을 발아래 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저 사람이 진광인가?’진서준이 추측했다.허윤진이 물었다.“서준 씨, 지난번에 어떻게 혼내준 거예요?”“그건 말 못 해줄 것 같네.”진서준이 고개를 젓더니 웃으며 답했다.일행에게 어떻게 오인혁을 혼내줬는지 알려주면 그들이 변태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볼까 봐 두려웠다.진서준 스스로도 좀 변태 같다고 느꼈지만 오인혁과 같은 사람에게는 딱 맞는 수단이었다.“됐어. 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밥 먹으러 가자.”진서준이 허사연 일행을 데리고 들어갔다.오인혁은 진서준 일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옆에 있던 도련님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그래서 그 여스타는 언제 온다고?”그중 한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금방 온대요!”오인혁이 얼른 대답했다.“배수정도 온다면서?”“맞습니다. 이번에 저희 대표님이 배수정 회사에 배수정이 무조건 오게끔 압력을 넣었습니다.”오인혁이 웃으며 답했다.“좋아. 오늘 연예계의 백련화가 얼마나 순수한지 확인해 봐야겠네.”청년이 싸늘하게 웃었다.비교적 일찍 온 진서준 일행이었기에 가게에 룸이 남아 있었다.그들은 룸을 달라고 하고는 바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했다.“권 마스터님은요? 왜 같이 안 왔어요?”허사연이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권 마스터님은 저녁에 오랜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안 오신대.”진서준이 답했다.전에 이곳저곳
권력자들이 누구를 띄우고 싶으면 누가 핫해질 것이었다.반대로 그들이 누구를 매장하고 싶으면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스타더라도 조용히 자취를 감출 것이었다.비록 접대하는 여배우들도 이 상황을 내켜 하지 않지만 지금 그들은 숨도 크게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진광 일행이 뭐라고 하면 그녀들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해야 했다.“진광 형, 배수정은요? 왜 아직도 안 와요?”“설마 형체면 안 세워주는 거 아니죠?”“배수정이 오늘 안 와서 체면 구겨지면 형이 아예 그 회사를 없애버릴 수도 있어.”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배수정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들에게 배수정은 그저 딴따라일 뿐이었다.배수정이 예쁘게 생기고, 다른 사람의 손을 탄 적이 없어서 진광 일행이 이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었다.잠시 후, 노크 소리가 났다.“들어와.”예쁘게 꾸민 배수정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강한 혐오감이 어렴풋이 드러났다.연예계에 오랫동안 몸담은 그녀는 이런 모임이 어떤 모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광이 조직한 모임이고 그녀를 지명해서 오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참석한 것이었다.배수정 회사의 대표도 감히 진광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는데 소속 연예인인 그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아이고, 이거 우리 천후 아니신가?”배수정이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그녀의 등장은 순식간에 다른 여자 스타들을 무색하게 했다.수많은 미녀를 만나본 진광조차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늦었네요.”배수정이 진광을 보며 말했다.“지각은 미녀의 특권이죠. 후래자 3배이지만, 한 잔만 마셔요.”진광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이어 누군가가 양주를 들어 잔을 가득 채웠다.배수정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양주를 마시는 일은 더 드물었다.하지만 바로 한 잔 마시게 되면 정말 정신을 잃을지도 몰랐다.“저... 진광 님...한 잔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조금만 마시면
진광이 답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내켜 하지 않으며 하나둘 입을 열었다.“배수정 씨, 진광 님께서 먼저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일은 드물어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죠.”“진광 님께서 먼저 술을 청하는 일은 수정 씨 체면을 세워주는 거예요. 그러니 무조건 받아야죠.”“정말 자신을 천후로 아는 거예요? 진광 님 말 한마디에 당신의 그 명예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어요.”진광의 일행이 잇달아 나서며 배수정을 비난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진광이 냉정한 얼굴로 동생들을 꾸짖었다.“수정 씨, 못 마시겠으면 천천히 마셔요. 아직 밤이 긴 데 천천히 가자고요.”진광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 배수정은 한숨을 돌렸다.만약 정말 한 잔 더 마셨다면 틀림없이 인사불성이 될 것이었다.그때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배수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비록 진광 일행이 단정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척만 하는 짐승 떼였다.하지만 진광의 권세가 드높다 보니 밉보이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온 것이었다.그때 배수정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진서준 씨가 있었으면 좋겠네.”지난번 진서준과 헤어지고 나서 배수정의 머릿속에는 진서준의 모습과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심지어 몇 번이나 진서준의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배수정은 매우 능동적으로 행동하여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옷도 흠뻑 젖어있었다.배수정이 딴생각하며 음식을 먹을 때 진광 일행은 부어라 마셔라 하며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얼마 되지 않아 자리에 있던 여자 스타들은 모두 인사불성이 되었다.권력자들은 거리낌 없이 여자 스타들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간드러진 목소리가 룸 안에 계속 울려 퍼졌다.배수정은 음란한 장면들을 지켜보며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그때 진광이 배수정을 보며 말했다.“수정 씨, 이렇게 오래됐는데 아까 그 술은 드셔야 하지 않겠어요?”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배수정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응했다.“네, 지금 마셔요!”한입에 술을 들이켠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