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훈은 미안해하며 말했다.할아버지로서 해야 할 책임도 한 적이 없다.“괜찮아요. 오빠가 저를 지키고 보호해줬어요.”진서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네가 진서준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났어.”임훈이 사실을 알려줬다.진서라는 임훈의 손녀딸이다.그리고 진서준은 임훈 둘째 동생의 외손자다.게다가 진서라는 진서준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났다.진서준과 진서라는 이 사실을 듣고 그대로 얼었다.아직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상관없긴 해. 누나든 오빠든 둘은 한 가족이야.”임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먼저 돌아가겠습니다.”진서준이 일어서서 말했다.“준아, 얘네 좀 데려다줘라.”임훈은 나가면 임씨 가문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살까 봐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둘은 인사를 나누고 차를 타고 떠났다.“솔아, 경성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나한테 전화해라!”임준은 사랑이 듬뿍 담은 얼굴로 진서라를 보았다.임준과 임훈 두 사람 모두 진서라에게 미안함 뿐이다.“넷째 할아버지, 그냥 진서라라고 부르세요.”진서라는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서라라고 부를게.”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차가 반쯤 달리다가 앞에 롤스로이스 한 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넷째 어르신, 진씨 가문의 차입니다.”운전기사가 번호판을 보고 임준에게 말했다.임준은 그 차를 보고 나서 진서준에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오셨다.”진서준은 얼떨떨하니 그 롤스로이스 차를 바라보았다.뒷좌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진서준의 눈앞에 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진서준은 노인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서라야, 너희들 먼저 돌아가라. 내가 가서 볼게.”진서준은 차에서 내려 그 롤스로이스로 향했다.뒷좌석에 들어서자 진서준이 노인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마찬가지로 노인도 미간에 자상함과 죄책감이 가득하며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서준아...”“당신이 바로 제 할아버지입니까?”진서준이 물었다.“그래!”진혁이 힘껏 고개를
진혁의 말을 듣고 진서준은 완전히 멍해졌다.그는 원래 자신이 경성의 진씨 가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진씨 가문이 주워온 자식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진서준은 도대체 어느 가문 사람이고, 혈용체는 또 무엇인가?설마 진서준이 혈용권을 쓸 수 있는 것도 혈용체 때문인 건가?“네 아버지가 내 핏줄은 아니지만, 항상 친자식처럼 대했어!”진혁이 진서준을 보며 말했다.“서준이 너도 내 친손자로 대했고.”“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넌 벌써 진씨 가문의 도련님이 되었을 거야. 사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좋을 거고.”진혁의 말은 사실이다.진혁은 진서준의 아버지에게 늘 잘 해주고, 다섯 아이 중 진서준의 아버지를 가장 예뻐했다.게다가 진서준의 아버지도 무도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20대 초반에 벌써 대종사이다.그러고 구창욱한테 선법을 수련하고 나서 그의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당시 진서준의 아버지를 통제하기 위해 은씨 일가, 양씨 가문, 곤륜 그리고 장백이 수많은 고수를 동원했었다.그러나 그중 절반이 진서준 아버지의 손에 잡혀 희생했다.“저희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죠?”진서준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요한.”진서준은 이 이름을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 두었다. 이어서 물었다.“그해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 나 누구였어요?”“뭐 하려고?”진혁은 진서준의 눈에 살기가 가득한 걸 보고 가슴이 철렁거렸다.‘설마 진요한을 위해 복수라도 하려고 하는 건가?’“복수요.”진서준은 담담하게 복수 두 글자를 말했지만, 그 안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웠다.은씨 일가와 양씨 가문은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곤륜과 장백은 더더욱 넘사벽의 존재이다.심지어 신농과 남사 이 두 개의 은세종문도 그 당시에 참여했었다.진서준 혼자서 복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구창욱처럼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복수의 길이 곧 죽음의 길이다.“서준아, 네가 속상하고 화난 건 알지만, 그렇게 많은 상대를 혼자서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
심지어 당시 해외의 용의 안식 계획도 특별히 진요한을 위해 세워졌다.“그래, 먼저 돌아가. 이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면 돼.”진혁은 진서준에 전화번호 하나를 주었다.아는 사람이 불과 5명뿐인 진혁의 개인 번호이다.진서준은 번호를 메모한 후 바로 영화로 태웠다.“할아버지, 꼭 진씨 가문의 스파이를 찾아내야 합니다.”진서준이 떠나기 전에 정중하게 말했다.“20년 넘게 찾았는데도 코빼기도 안보여.”“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 낼거야. 어떻게 된 건지 꼭 알아내야지.”진씨 가문 안의 스파이에 대해 진혁은 항상 신경이 쓰였다.20여 년 동안 진혁은 스파이의 단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았다.그러나 마치 증발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진혁이 여러 방법을 통해 스파이를 찾아내려고 했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차에서 내린 진서준은 망연자실한 듯 혼자 천천히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내 신분이 이미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주워 온 자식이라니...’‘혈용체는 또 뭐고...’빵빵...진서준이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을 때, 한 대의 슈퍼카가 진서준을 향해 미친 듯이 빵빵거렸다.진서준이 뒤를 돌아보는데 패셔너블하게 차려입고 잘생긴 한 젊은이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눈멀었어?”젊은이는 진서준에 욕설을 퍼부었다.“됐어요. 이런 촌놈이랑 따져서 뭐해요.”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진서준은 정신을 딴 데 팔았지만, 길 한가운데가 아닌 길가에서 걷고 있었다.옆에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말 똑바로 해!”진서준이 정색하며 말했다.젊은이는 어리둥절하더니 스포츠카에서 그대로 튀어나왔다.“야! 너나 똑바로 말해. 한 방에 천국 가게 할 수 있어!”그러고 주먹을 들어 진서준의 가슴에 대고 한 대 쳤다.진서준은 아까 들은 얘기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 젊은이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을 보고, 진서준도 참지 않고 주먹으로 상대했다.진서준이 감히 자기와 맞싸우려고 하는 것을
은범은 마치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고 있었다.“감히 나를 때려? 네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야!”은범은 큰 소리로 소리쳤다.“이 촌놈은 아마 경성의 4대 가문도 모를 거예요.”옆에 있는 여자는 도도하게 서 있으면서 진서준을 얕보았다.“은범 도련님이 죽이려는 자가 하루를 버틴 걸 본 적이 없어.”“어서 와서 은범 도련님께 사과해!”진서준은 그냥 은범을 혼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은범도 은씨 일가의 사람이지만 보아하니 겨우 20대 초반이다.진서준은 은씨 일가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은범의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그러나 은범이 방금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말을 듣고 아주 불쾌했다.“우리 집안을 어떻게 망하게 만드는지 보고 싶네.”진서준은 은범을 보고 차가운 눈빛을 날렸다.은범은 진서준의 눈빛을 마주친 후 몸에 소름이 돋았다.마치 독사에게 찍힌 것처럼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은범은 정신을 차린 후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래도 은씨 가문의 직계 도련님인데 뭐도 안 되는 놈의 눈빛에 쫄아서 말을 잊지 못하다니!정말 아이러니하다.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무슨 면목으로 살아가겠는가.“야, 어디 네 이름을 불러봐봐. 하루 안에 널 죽일 수 있는지 두고 봐!”진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방금까지 지 잘나간다고 까불지 않았나?”“인제 와서 이름을 물어보냐.”“왜, 이름이 뭔지 모르면 못 찾아낼까 봐?”진서준의 말에 은범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경성에서 다른 세 가문의 후배라도 감히 그와 이렇게 말할 엄두가 안 난다.“그래, 너 딱 기다려.”은범은 이를 갈며 말했다.“다음에 너를 찾을 때, 내가 죽이고 만다.”진서준은 은범에게 다가가서 그를 내려다보았다.“확실해?”“그래!”은범은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는 진서준이 감히 그에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자신의 신분을 얘기했다.은범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진서준이 그의 다른 쪽 손을 땅에 밟고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
“누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든 거야!”은기훈이 은범과 함께 온 여자를 노려보며 물었다.그 여자가 벌벌 떨며 조심스럽게 답했다.“저희도 그 청년을 모릅니다.”“모른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험하게 은범이한테 손댄 거야!”은기훈은 상대방이 이유 없이 손을 썼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자초지종을 대강 말했다.사소한 일로 아들의 두 손이 부러졌다는 것을 안 은기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며칠 전에도 경성에 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말썽 피우지 말라고 당부했건만!”은기훈이 한심하다는 듯이 은범을 바라보았다.곧 봉호대전이 시작하는 시기라 대한민국의 천교들이 모두 경성으로 모이고 있었다.이렇듯 중요한 때에는 되도록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게 이로웠다.“됐어요! 아들이 이렇게 다쳤는데 왜 아직 애 탓을 해요!”은범의 어머니가 아니꼬워하며 말했다.“아들 두 손이 부러졌으니 얼른 복수할 생각이나 해요!”은기훈도 복수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가해자를 모르니 어디로 가서 복수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말이 쉽지. 누가 손댔는지도 모르잖아!”은기훈이 차갑게 대꾸했다.“일단 상처를 잘 치료하게 하고 봉호전이 시작할 때 다시 데리고 와. 내 생각에는 범이한테 손댄 그 청년도 봉호전에 참가할 것 같아.”은기훈은 생각이 또렷하고 머리도 매우 총명했다.은범이 은씨 일가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심하게 다치게 했다는 것은 상대방이 틀림없이 당대의 천교여서 은씨 일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혹은 은씨 일가가 그에게 어떠한 보복도 못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었다.이런 사람은 무조건 봉호전에 참가할 것이다.진서준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임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허사연이 얼른 다가가 물었다.“서준 씨, 임씨 가문에서 왜 온 거예요?”“서라가 말 안 했어?”진서준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아니요. 서라는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요.”허사연이 답했다.허사연
진서준이 제자리에서 멈칫하자 허사연이 물었다.“서준 씨, 왜 그래요?”진서준이 낯익은 사람을 가리키고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성격파탄자 연예인 기억해?”진서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본 허사연이 사람들 틈에 있는 오인혁을 발견했다.지금의 오인혁에게는 오만방자한 표정이 없었다.오히려 얼굴에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의 몇몇 청년들을 향해 끊임없이 굽신거리고 있었다.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스타 오인혁을 굽신거리게 할 수 있는 청년들의 신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특히 맨 앞에 서 있는 그 청년은 세상을 발아래 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저 사람이 진광인가?’진서준이 추측했다.허윤진이 물었다.“서준 씨, 지난번에 어떻게 혼내준 거예요?”“그건 말 못 해줄 것 같네.”진서준이 고개를 젓더니 웃으며 답했다.일행에게 어떻게 오인혁을 혼내줬는지 알려주면 그들이 변태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볼까 봐 두려웠다.진서준 스스로도 좀 변태 같다고 느꼈지만 오인혁과 같은 사람에게는 딱 맞는 수단이었다.“됐어. 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밥 먹으러 가자.”진서준이 허사연 일행을 데리고 들어갔다.오인혁은 진서준 일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옆에 있던 도련님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그래서 그 여스타는 언제 온다고?”그중 한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금방 온대요!”오인혁이 얼른 대답했다.“배수정도 온다면서?”“맞습니다. 이번에 저희 대표님이 배수정 회사에 배수정이 무조건 오게끔 압력을 넣었습니다.”오인혁이 웃으며 답했다.“좋아. 오늘 연예계의 백련화가 얼마나 순수한지 확인해 봐야겠네.”청년이 싸늘하게 웃었다.비교적 일찍 온 진서준 일행이었기에 가게에 룸이 남아 있었다.그들은 룸을 달라고 하고는 바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했다.“권 마스터님은요? 왜 같이 안 왔어요?”허사연이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권 마스터님은 저녁에 오랜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안 오신대.”진서준이 답했다.전에 이곳저곳
권력자들이 누구를 띄우고 싶으면 누가 핫해질 것이었다.반대로 그들이 누구를 매장하고 싶으면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스타더라도 조용히 자취를 감출 것이었다.비록 접대하는 여배우들도 이 상황을 내켜 하지 않지만 지금 그들은 숨도 크게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진광 일행이 뭐라고 하면 그녀들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해야 했다.“진광 형, 배수정은요? 왜 아직도 안 와요?”“설마 형체면 안 세워주는 거 아니죠?”“배수정이 오늘 안 와서 체면 구겨지면 형이 아예 그 회사를 없애버릴 수도 있어.”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배수정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들에게 배수정은 그저 딴따라일 뿐이었다.배수정이 예쁘게 생기고, 다른 사람의 손을 탄 적이 없어서 진광 일행이 이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었다.잠시 후, 노크 소리가 났다.“들어와.”예쁘게 꾸민 배수정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강한 혐오감이 어렴풋이 드러났다.연예계에 오랫동안 몸담은 그녀는 이런 모임이 어떤 모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광이 조직한 모임이고 그녀를 지명해서 오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참석한 것이었다.배수정 회사의 대표도 감히 진광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는데 소속 연예인인 그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아이고, 이거 우리 천후 아니신가?”배수정이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그녀의 등장은 순식간에 다른 여자 스타들을 무색하게 했다.수많은 미녀를 만나본 진광조차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늦었네요.”배수정이 진광을 보며 말했다.“지각은 미녀의 특권이죠. 후래자 3배이지만, 한 잔만 마셔요.”진광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이어 누군가가 양주를 들어 잔을 가득 채웠다.배수정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양주를 마시는 일은 더 드물었다.하지만 바로 한 잔 마시게 되면 정말 정신을 잃을지도 몰랐다.“저... 진광 님...한 잔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조금만 마시면
진광이 답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내켜 하지 않으며 하나둘 입을 열었다.“배수정 씨, 진광 님께서 먼저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일은 드물어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죠.”“진광 님께서 먼저 술을 청하는 일은 수정 씨 체면을 세워주는 거예요. 그러니 무조건 받아야죠.”“정말 자신을 천후로 아는 거예요? 진광 님 말 한마디에 당신의 그 명예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어요.”진광의 일행이 잇달아 나서며 배수정을 비난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진광이 냉정한 얼굴로 동생들을 꾸짖었다.“수정 씨, 못 마시겠으면 천천히 마셔요. 아직 밤이 긴 데 천천히 가자고요.”진광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 배수정은 한숨을 돌렸다.만약 정말 한 잔 더 마셨다면 틀림없이 인사불성이 될 것이었다.그때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배수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비록 진광 일행이 단정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척만 하는 짐승 떼였다.하지만 진광의 권세가 드높다 보니 밉보이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온 것이었다.그때 배수정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진서준 씨가 있었으면 좋겠네.”지난번 진서준과 헤어지고 나서 배수정의 머릿속에는 진서준의 모습과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심지어 몇 번이나 진서준의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배수정은 매우 능동적으로 행동하여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옷도 흠뻑 젖어있었다.배수정이 딴생각하며 음식을 먹을 때 진광 일행은 부어라 마셔라 하며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얼마 되지 않아 자리에 있던 여자 스타들은 모두 인사불성이 되었다.권력자들은 거리낌 없이 여자 스타들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간드러진 목소리가 룸 안에 계속 울려 퍼졌다.배수정은 음란한 장면들을 지켜보며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그때 진광이 배수정을 보며 말했다.“수정 씨, 이렇게 오래됐는데 아까 그 술은 드셔야 하지 않겠어요?”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배수정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응했다.“네, 지금 마셔요!”한입에 술을 들이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