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 또한 난감한 상황이었다.그는 그저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고양시처럼 거물이 가득한 곳에서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진서준도, 한보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매니저가 진서준을 내쫓으러 온 건 아마도 누군가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조금 전 한보영이 쌀쌀맞게 쫓아낸 전해찬이었다.“제가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고요?”진서준이 물었다.“그렇습니다.”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매니저를 보더니 덤덤히 말했다.“내가 이 백화점 소유자가 된다면 블랙리스트가 될 일은 없겠죠?”아주 태연자약했다.“당... 당연하죠.”매니저는 어리둥절했다.이 백화점을 사겠다는 뜻인 걸까?백화점 매니저는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신시아 백화점은 이곳의 가장 큰 백화점으로 그 가치가 6,000억에 달했다.엄청난 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아주 대단한 재벌가 아들이라고 해도 블랙리스트가 되었다는 이유로 6,000억짜리 백화점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대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한보영 또한 놀란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드러냈다.“좋아요. 제가 기억하건대 이 백화점 대표님 이름이 왕석훈이죠?”“맞습니다. 저희... 저희 회장님이세요...”매니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그는 20년 넘게 매니저를 해오면서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배포가 이렇게 크다니!왕석훈이 팔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백화점은 항상 흑자였고 몇 년 더 지나면 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왕석훈 회장님 맞죠? 전 한보영이라고 합니다. 진서준 씨께서 신시아 백화점을 구매하고 싶어 하십니다. 진서준 씨는 지금 백화점 2층에 있습니다. 오실 때 계약서 들고 오시죠.”한보영은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왕 대표님 곧 계약서 들고 오실 겁니다.”한보영은 웃는 얼굴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전해찬을 위해 새로 온 대표님께 밉보일 생각인가요?”매니저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저 두 사람 무슨 일이지? 왜 경호원들이 와 있지?”“설마 도둑질하다가 잡힌 건 아니겠지?”“조용히 좀 해. 저 청년이 백화점 블랙리스트에 등록됐다잖아. 그런데 조금 전에 들어보니까 두 사람 이 백화점을 살 생각인 것 같던데?”사람들은 진서준이 어떻게 될지 수군대기 시작했다.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을 때 전해찬은 갑자기 아버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아버지, 무슨 일이에요?”얼른 돌아와. 너 오늘 저녁 나랑 같이 파티에 가야 해. 지각하면 안 돼!”“아직 이르잖아요.”“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얼른 돌아와!”전해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한보영이 좋아하는 남자가 어떻게 쫓겨나는지를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전해찬은 백화점을 떠날 때 왕석훈을 보았다.왕석훈은 신시아 백화점 회장으로 고양시에서 꽤 잘 나갔다. 전해찬도 그를 만나면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야 했다.하지만 전해찬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빠르게 떠났다.왕석훈은 빠르게 남성 정장 매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한보영과 매니저를 보았다.“회장님...”매니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양시 최고 백화점을 소유한 왕석훈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겨우 50세인 왕석훈은 얼굴이 초췌했고, 마른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으면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진 마스터님을 뵙습니다! 제 부하가 진 마스터님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들었는데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그 순간 다들 넋이 나가서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왕석훈을 바라보았다.왕석훈을 알아본 사람들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몸값이 엄청난 왕석훈이 젊은이를 향해 무릎을 꿇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그건 왕석훈만이 알았다.눈앞의 진서준은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서울의 진 마스터, 이 일곱 글자가 모든 걸 의미했다.어제 진서준이 인의방에 이름을 올린 두 명의 2품 선천 대종사를 죽였을 때, 왕석훈은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그는 진서
양도 계약이지 거래 계약이 아니었다.왕석훈은 6,000억 가치의 백화점을 진서준에게 그냥 주려고 했고 그 박력에 한보영은 깜짝 놀랐다.왕석훈은 아주 똑똑했다. 그는 진서준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진서준에게 왕석훈을 죽이고 그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정말로 그런다고 해도 국안부에서는 그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굽히고 들어가서 백화점을 그냥 줘버리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자기 목숨과 다른 사업들은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그는 어떻게 진서준과 왕석훈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게다가 왕석훈은 이제 더는 그의 상사가 아니었다.매니저는 진서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죄송합니다. 모든 건 전해찬 씨께서 시킨 일입니다.”전해찬이 시킨 일이라는 말에 진서준과 한보영 모두 놀라지 않았다.“그냥 날 블랙리스트에 넣으라고 한 건가요?”진서준이 물었다.“아... 아뇨. 진서준 씨를 백화점에서 내쫓은 뒤 경호원들을 시켜 흠씬 두들겨 패라고 했습니다.”매니저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경호원을 시켜 진서준을 패라고 했다는 말을 듣자 왕석훈은 전해찬이 죽도록 미웠다.선천 2품 대종사마저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 일개 경호원들이라면 진서준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전부 목숨을 잃을 것이다.“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도, 멍청한 사람도 있는 법이죠.”진서준은 피식 웃었다.“일어나요. 이 백화점은 이제부터 제 겁니다. 계속 매니저 하세요.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매니저는 그 말을 듣더니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진서준에게 고마워했다.먼저 매를 든 뒤 당근을 준다면 상대방은 더욱 고마워할 것이다.진서준은 이제 더 이상 무턱대고 앞으로 돌진하던 단순한 청년이 아니었다.왕석훈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진서준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제 딸은 진 마스터님을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진 마스터님을 한 번 뵙고 싶어 하는데 혹시...”“전 여자 친구가 있으니 그
게다가 진 마스터는 최근에 고양시의 가장 강한 대종사를 죽였다.하지만 전해찬은 진 마스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 진 마스터에게 돈을 줘서 절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면 안 돼요?”전해찬이 흥분해서 물었다.“겨우 그까짓 돈을 진 마스터님께서 원하겠어?”전홍석이 차갑게 말했다.진서준에게 소멸당한 세 가문의 자산을 더해도 전시 일가와 비슷할 것이다.진서준에게 부족한 건 돈 따위가 아니었다.“그렇다면 뭘 줘야 할까요? 미녀? 아니면 골동품?”전해찬은 떠오르는 걸 다 얘기했다.“너는 머리 좀 쓰면 안 되겠니?”전홍석은 본인은 똑똑한데 아들이 너무 멍청해서 무척 화가 났다.갑자기 전홍석은 호흡이 가빠지더니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약... 약...”전해찬은 서둘러 전홍석의 약을 가지러 갔다.약을 먹은 뒤 전홍석은 숨 쉬는 게 한결 쉬워졌다.그는 잠깐 숨을 돌린 뒤 말했다.“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라면 부족한 게 없을 거야. 부족한 게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앞다투어 선물로 주겠지. 우리는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걸 줘야 해.”전홍석이 말했다.“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거라면 어떤 거예요?”전해찬은 서둘러 물었다.“바로 이거야!”전홍석은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예쁘게 꾸며진 박스를 본 전해찬은 궁금한 듯 물었다.“아버지,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거죠?”“영약!”전홍석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영약이요? 그게 뭔데요? 영성이 있는 약은 아니겠죠?”“맞아.”“설마 다리가 달려서 도망치는 건 아니에요?”전홍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멍청한 것, 그런 영약이 어디 있어? 내가 말한 영약이란 풍수 좋은 곳에서 수백 년간 자라서 대량의 영기를 띤 약이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거라고!”전홍석의 말을 들은 전해찬은 무척 흥분했다.“아버지, 이 약이 있다면 진 마스터님께서 절 제자로 받아주시겠죠?”“몰라. 제자로 받아주지는 않더라도 몇 수 가르쳐주기는 할 거야.”전홍석은 미소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거물이었다.세 도시의 모든 거물이 오늘 저녁 레이 호텔에 모였다.그들 중에 진서준을 본 적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지만 다들 진 마스터는 익히 알고 있었다.호텔 입구에는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몸매를 소유한 여자가 서 있었다.그 여자는 분위기만 봐도 신분이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호텔 안으로 들어가던 거물들도 여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초조해 보이던 여자는 진서준과 한보영을 보자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저 두 사람은 누구지? 허씨 집안의 아가씨가 직접 마중 나가다니!”“저 여자... 한씨 일가의 딸 같은데. 그 옆에 있는 남자는 나도 모르겠어.”“설마 소문으로만 들었던 진 마스터님은 아니겠지?”“그럴 리가! 진 마스터님이 저렇게 젊을 리가 없잖아.”다들 진서준의 정체를 궁금해하면서 쑥덕댔다.“진 마스터님!”허수아는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면서 고개를 숙였다.“아버지께서 여기서 진 마스터님을 맞이하라고 하셨어요.”허수아는 허준희의 딸로 아직 미혼이었다.어제 진서준이 이씨 일가를 처단한 뒤 허준희는 곧바로 허수아에게 연락해 고양시로 오라고 했다.진 마스터를 극진히 보살피기 위해서 말이다.“고마워요.”진서준은 허수아를 보면서 덤덤히 말했다.“이쪽으로 오세요!”허수아는 한쪽 손을 내밀면서 제스처를 취했고 곧 두 사람의 앞에 서서 직접 그들을 안내했다.허수아의 깍듯한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젊은이는 대체 누구길래 동성 최고 가문 허씨 일가의 딸까지 그를 깍듯이 대하는 걸까?“저 사람은 진 마스터님이 맞아. 어제 나도 현장에 있었거든.”한 재벌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는 어제 진서준이 홀로 두 사람과 싸우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세상에, 진 마스터님 너무 젊은 거 아냐?”“저렇게 젊은 나이에 선천 대종사를 이기다니, 정말 앞날이 창창하네!”“하지만 진 마스터님은 두 대종사가 한참 싸운 뒤에 나선 걸로 알고 있는데. 기회를 잘 잡아
그러나 진서준은 그녀를 보고도 표정 변호가 전혀 없었다.마치 허수아의 외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이다.“알겠습니다, 진 마스터님.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올게요.”허수아는 감히 진서준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떠났다.허준희는 허수아에게 진서준을 빈틈없이 섬겨야 하며 절대 그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었다.진서준이 오늘 밤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고 해도 허수아는 승낙해야 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럴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허수아가 떠난 뒤 한보영은 장난스레 말했다.“진서준 씨, 허수아 씨는 엄청난 미인인데 설레지 않아요? 허수아 씨를 보니 진서준 씨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바로 진서준 씨 침대에 오를 것 같던데요. 그리고 진서준 씨를 귀찮게 하지도 않을 것 같네요. 전 진서준 씨가 다른 여자랑 잤다고 사연 씨에게 고자질할 생각이 없어요.”진서준은 눈을 흘겼다.“제겐 여자 친구가 있어요. 허수아 씨가 아무리 예뻐도 저랑은 상관없어요.”진서준은 허사연에게 미안할 짓을 할 생각이 없었다.일부일처제는 진서준의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다.“전 아직 바람 피지 않는 남자는 본 적이 없는걸요. 저희 아버지도 다른 여자랑 잔 적이 있어요.”한보영은 계속해 말했다.“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나는 나예요.”진서준의 말을 들은 한보영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그러나 한보영은 그것을 아주 잘 감췄다. 그녀의 눈빛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먼 곳, 전해찬은 구석에 앉아 있는 진서준과 한보영을 보았다.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자 전해찬은 무척 화가 났다.“저 자식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온 거야? 아침에 백화점에서 쫓겨났으면서 수치심 따위는 전혀 없는 건가?”전해찬은 차갑게 웃었다.“반성할 줄 모르네. 그렇다면 내가 여기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켜주겠어!”말을 마친 뒤 전해찬은 레이 호텔의 매니저를 찾았다.매니저는 당연히 전해찬을 알아보았다. 전해찬의 분부를 들은 매니저는 곧바로 진서준과 한보영에게 다가갔다.“고객님
“진 마스터님, 전 고양시의 전홍석이라고 합니다. 뒤에는 제 아들 전해찬입니다.”전홍석은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진서준의 앞에서 고양시 갑부인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반드시 진서준에게 깍듯해야 했다.진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로 전홍석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의 시선에 전홍석은 심장이 철렁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해찬아, 뭘 넋 놓고 있는 거야? 얼른 진 마스터님께 인사해야지!”아들이 가만히 있자 전홍석은 조금 화가 나서 아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전해찬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놀라움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그는 자신이 시비를 걸었던 사람이 진 마스터일 줄은 몰랐다.그래서 진서준이 무사히 이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도 태연자약했던 이유가 있었다.전해찬은 겁을 먹어서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그는 자신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호텔 매니저 또한 넋이 나갔다.사장님은 오늘 대단한 분을 위해서 파티를 주최하는 거라고 했었다.그리고 그 대단한 분이 바로 진 마스터였다.털썩...매니저는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 근육까지 경련했다.전홍석은 호텔 매니저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조 매니저, 뭐 하는 거야?”전홍석은 당황해서 서둘러 물었다.“진 마스터님, 이 사람이 시킨 겁니다. 이 사람이 지시한 거예요...”조 매니저는 진서준을 향해 미친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잠시 뒤 조 매니저의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곧 전해찬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 무릎을 꿇었다.그는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전홍석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너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전홍석은 전해찬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저... 저는...”전해찬이 겁을 먹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전홍석은 곧바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 마스터님,
“아버지, 그만 때리세요. 잘못했어요...”전해찬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서 그 모습이 아주 섬뜩했다.이때 허씨 일가의 사람들이 다가왔다.“무슨 일이죠?”허준희는 그 광경을 보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진 마스터를 위해 주최한 파티인데 이런 자리에서 진 마스터가 피를 보게 하다니, 간덩이가 부은 건가?’“허준희 씨, 사실은 이렇습니다...”전홍석이 앞으로 나서서 허준희에게 설명했다.전해찬이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린 사실을 알게 된 허준희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당장이라도 전홍석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진서준이 그 자리에 있어서 멋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진 마스터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허준희는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전해찬은 덜덜 떨면서 애원하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 마스터님, 제가 영약을 준비했습니다!”이때 전홍석이 서둘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진서준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전홍석이 들고 있는 박스에서 아주 짙은 영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열어봐요.”전홍석은 박스를 열었다.안에 들어있는 영약을 본 진서준은 흥분했다.“은영과!”이것이 있다면 허사연도 수련을 할 수 있었다.“이걸 어디서 찾은 거죠?”진서준은 서둘러 물었다.“다른 사람에게서 사들인 겁니다.”전홍석은 정중하게 대답했다.“그 사람과 연락이 닿나요? 이걸 어디서 구했는지 알아봐 줄래요?”진서준은 매우 흥분했다.“네, 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전홍석은 안도했다.진서준의 표정을 보니 적어도 아들의 목숨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진서준 씨, 제 아들놈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전홍석이 물었다.그래도 받은 게 있기 때문에 진서준은 전해찬을 힐끗 본 뒤 말했다.“반성하라는 의미로 팔을 부러뜨리죠.”팔을 부러뜨리겠다는 말에 전해찬은 당황했다.전해찬은 아버지가 아주 귀중한 선물을 줬으니 자신을 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전홍석은 전해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그의 어깨를 누르며 진서준에게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