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말에 황종섭은 뭔가 번쩍 떠올랐다. 진서준과 권해철의 신분이 하도 범상치 않은 바람에 저도 모르게 이승재의 존재를 무시해버렸다.다른 건 몰라도 서울시에서 이승재에게 예의 없게 구는 사람이 없었다. 권해철의 제자인 이승재도 어느 정도 실력을 지녔다.“마스터님이 시간이 되신다면 그럼 마스터님께 부탁 좀 할게요.”황종섭이 말했다.“지금 어디 있어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이승재가 덤덤하게 말했다.“제 별장에 있어요.”전화를 끊은 후 황종섭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거실로 나왔다.“형님, 얘기됐나요?”우쭐거리며 웃는 황종섭을 본 주혁구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역시 종섭 형님이 나선다면 권해철 마스터님을 모실 수 있을 줄 알았어요.”그러자 황종섭이 손사래 쳤다.“권해철 마스터님이 아니라 그분의 제자인 이승재 마스터님을 모셨어.”주혁구의 얼굴에 지어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이승재 마스터님이요?”주혁구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황종섭이 설명했다.“그래, 황보식 어르신과 오래 알고 지낸 이승재 마스터님 말이야.”황보식이 이승재에게 사기당한 일을 진서준과 그들 두 사람만 알고 있었고 대외적으로 공개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황보식에게는 엄청나게 창피한 일이니 말이다.“이승재 마스터님이 권해철 마스터님의 제자이긴 하지만 그분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황종섭은 주혁구를 안심하게 하려고 이승재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거푸 쏟아진 칭찬에 주혁구도 드디어 시름을 놓았다.“형님이 찾은 분이니 당연히 믿을 만 하겠죠.”두 사람은 십여 분 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이승재 마스터님이 오셨나 봐.”황종섭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주혁구도 이승재의 얼굴을 보려고 그의 뒤를 따랐다.이승재는 검은 한복을 입고 있었고 오만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마치 재야의 고수 같은 느낌도 들었다.“마스터님.”황종섭은 이승재를 보자마자 깍듯하게 인사했다. 굽신거리는 황종섭의 모습에
차가 공사 현장에 멈췄고 세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리자마자 황종섭과 주혁구는 발밑에서부터 엄청난 냉기가 전해져오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들어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았다.햇볕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강했지만 이곳만큼은 북극처럼 추웠다.“뭔가 이상하죠?”주혁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황종섭도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승재를 쳐다보았다.“마스터님, 여기... 진짜 귀신 있는 거 아니에요?”이승재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체내에 진기가 있어 주변의 음기를 막을 수는 있지만 아무 도구도 챙기지 않아 귀신이 있어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이 심상치 않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먼저 가요. 제가 도구를 준비해서 저녁에 다시 올게요.”이승재가 먼저 차에 올라탔다. 황종섭과 주혁구도 감히 더 있지 못하고 부랴부랴 차에 올라탔다.공사 현장을 벗어난 후 이승재가 말했다.“두 분 먼저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필요한 물건 좀 사고 저녁에 다시 올게요.”이승재가 떠난 후 황종섭이 주혁구에게 말했다.“혁구야, 저녁에는 네가 승재 마스터님과 같이 와. 난 끼지 않는 게 좋겠어.”주혁구는 황종섭이 겁에 질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까발리지는 않았다.“형님은 다른 일 보세요, 그럼. 저와 마스터님이 가볼게요.”...진서준은 허사연과 허윤진 자매를 데려다준 후 바로 떠나지 않고 허씨 가문 별장에 온 오후 머물다가 저녁까지 먹은 다음에 떠났다.“오빠, 나 운전면허 기능 시험 넘었어.”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실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진서라가 진서준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서라 대단한데? 도로 주행 시험도 한 번에 넘으면 바로 차 사줄게.”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갖고 싶은 차 있어? 오빠에게 말해봐.”“비싼 거 말고 싼 거면 돼요.”진서라가 말했다. 그런데 아침에 당한 교통사고가 문득 떠오른 진서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안 돼. 싼 차는 질이 안 좋아. 혹시라도 교통사고 나면 어떡해?”
낮에 왔을 때 주혁구는 이상하리만큼 추운 것 외에는 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해가 진 지금 공사 현장에 어둠이 잔뜩 깔렸다. 주혁구는 갑자기 이 웨스트 팰리스가 공동묘지 같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단지 문 앞에 서 있을 뿐인데도 짙은 냉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이승재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아무래도 이곳의 음산한 기운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스터님, 혼자 들어가실래요?”겁이 덜컥 난 주혁구는 경호원과 동행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경호원이 귀신을 상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옆에 사람이 더 있으면 덜 무서울 테니까.“안 돼요. 이따가 이 도구들을 쓸 때 혁구 씨의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에요.”이승재가 주혁구를 보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있는 한 혁구 씨는 무사해요.”자신만만한 이승재의 모습에 주혁구는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낮에 대문을 지키던 두 경비원은 진작 사라지고 없었고 공사 현장에 주혁구와 이승재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공사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이승재는 뭔가가 자신을 덮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승재가 앞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주혁구가 앞에 있었더라면 진작 기절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이승재는 가져온 주사와 황지를 꺼내 손으로 황지 위에 몰 구자를 썼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에 붙였다.뭐가 뭔지 도통 알 리가 없었던 주혁구는 의아한 얼굴로 이승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곧이어 주혁구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이승재의 몸에서 귀신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었다. 누구든지 그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머리가 쭈뼛 설 것이다.“마... 마스터님, 진... 진짜 귀신이 있어요?”주혁구는 말까지 더듬었다.“조용해요!”이승재가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아무 말 하지 말고 제 뒤에 바짝 붙어요.”안으로 들어갈수록 음산한 기운이 점점 짙어졌고 날아다니는 것들도 훨씬 많아졌다.다행히 이승재가 두 사람의 몸에 부적을 미리 붙였기에 감히
멀지 않은 곳에 하얀 허영이 나타났는데 마치 안개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이건 살귀예요!”이승재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안색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음기가 오랫동안 있은 곳에는 살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음산한 기운이 짙은 곳에 살귀라는 귀신이 존재하는데 사람을 보면 바로 죽여버린다고 했다.이승재의 실력으로 살귀를 만난다면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었다.살귀인지 뭔지 주혁구는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이승재의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바로 눈치챘다.“빨리 도망쳐요!”이승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사 현장 밖으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주혁구도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이승재와 함께 미친 듯이 도망쳤다.살귀의 두 눈에 시뻘건 피가 가득했고 검은 눈동자가 핏속에 담겨 있었다. 살귀가 내는 울부짖음은 마치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것처럼 귀청이 째질 듯한 그런 소리였다.두 사람은 혹시라도 살귀의 얼굴을 봤다가 잠을 못 잘까 두려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냅다 도망쳤다.그런데 살귀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이승재를 거의 따라잡았다.살귀의 무서운 모습을 본 이승재는 도목검을 들고 살귀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하지만 살귀는 피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이승재가 도목검으로 머리를 내려쳐도 전혀 끄떡없었다.퍽!이승재가 들고 있던 도목검이 마치 산이 쪼개지듯 두 동강 나고 말았다. 그러자 살귀는 마치 사람처럼 그들을 비웃었다.“이 살귀가 사람이 다 됐네?”이승재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옷 주머니에서 엽전으로 만든 검 한 자루를 꺼냈다.이 엽전검은 권해철이 준 것이었는데 일반 원귀라면 일격에 바로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살귀에게 통할지는 이승재도 알지 못했다.이승재가 들고 있는 엽전검을 본 살귀의 얼굴에 두려움이 살짝 스쳤다.바로 그때 이승재와 살귀가 동시에 손을 들어 서로의 요해를 찌르려 했다.찌직!이승재의 옷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졌고 살가죽도 함께 벗겨졌다. 그리고 이승재의 엽전검은 정확히 살귀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오후 마연정이 가태윤을 만났을 때 가태윤은 진서준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여 마연정도 진서준에게 많은 관심이 생겼다.그런데 진서준이 택시를 타고 마그레라에 온 걸 보고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택시를 타고 온 사람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어?’이젠 진서준이 서울 병원에 들어갔다는 것조차 진짜인지 의심이 갔다.가태윤의 얼굴에도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쨌거나 오후에 진서준의 자랑을 하도 많이 했으니까. 다행히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었고 그와 마연정 둘뿐이었다.만약 진서준이 택시를 타고 온 걸 다른 친구들이 봤더라면 엄청나게 창피했을 것이다.“태윤아, 나한테 거짓말했어?”마연정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거짓말 아니야. 차가 고장 나서 택시 타고 왔겠지.”가태윤이 진서준을 대신하여 변명했다.“차가 고장 났다고?”그러자 되레 마연정의 비웃음만 샀다.“정말 돈이 많다면 집에 차 한 대뿐이겠어?”마연정은 그대로 마그레라 안으로 휙 들어갔다. 가태윤의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진서준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권력 있는 사람에게만 아부하고 빌붙는 마연정의 모습에 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미안해, 서준아. 연정이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대.”가태윤이 재빨리 다가와 대충 둘러댔다. 진서준은 뭐라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태윤아, 여기 엄청 비싼 곳인데 너 오늘 이러다 거덜 나겠어.”진서준이 가태윤에게 말했다.“연정이 친구들도 온다잖아. 연정이가 체면을 좀 중시하거든...”가태윤도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사실 가태윤도 처음에는 마그레라로 오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너무 비싼 건 사실이니까.가장 저렴한 룸도 200만 원 이상이었다. 다른 술집은 술 한 병에 몇천 원이지만 여긴 가장 싼 맥주도 몇만 원 정도 했다. 그리고 양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가장 싼 것도 몇십만 원을 호가했다.평소였더라면 가태윤은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연정의 애교에
“연정아, 너 왜 혼자 돌아와? 남친은?”“폐물 친구 뒤에 있어.”마연정은 빈정대면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궁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폐물 친구? 전에는 엄청 대단한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민머리 청년은 약간 비웃음 담긴 눈빛이었다.“가태윤한테 속았다, 왜!”마연정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그러자 김원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지. 걔는 대단한 사람과 알고 지낼 레벨이 아니라니까.”마연정의 자랑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김원 등은 속이 말이 아니었다. 마연정이 자신들보다 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때 김원의 무릎에 앉아 있던 여자도 함께 비웃었다.“연정아, 사치스럽게 살고 싶으면 믿을 만한 남자를 만나야 해. 가태윤 같은 졸부는 그럴 능력 없어. 다른 건 몰라도 오늘 저녁 식사만 해도 두 사람 일 년 생활비가 나올걸.”“됐어, 수진아. 연정이도 속상할 텐데 그만해.”제일 먼저 마연정과 얘기했던 송예은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수진은 송예은을 힐끗 보면서 말했다.“연기 그만하지. 너도 속으로 고소해 하는 거 다 알거든!”송예은은 말문이 막혔다. 속으로 고소해 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그녀의 인성이 대놓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마연정의 얼굴은 아주 어두웠다.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세 사람은 평소 같이 술이나 마시는 친구들이었다. 오늘은 한 번 제대로 자랑하려고 불러 모은 것인데, 자랑은커녕 체면이나 깎이고 말았다.이때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고개를 들었다. 진서준과 가태윤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가태윤이 마연정 등에게 소개해 줬다.“이쪽은 내 친구 진서준이야. 서준이가 아니었더라면 난 오늘 무조건 병원에서 까였을걸.”조금 전 마연정이 진서준은 폐물이라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그들은 진서준에게 아주 공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구경꾼의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너한테 그런 친구가 있었어? 널 서울 병원에 들어가게 해줄 친구?”김
오직 가태윤만 알았다. 진서준의 말 중에는 허풍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역시 진서준의 도움이 없었다면 서울 병원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가태윤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마연정 등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두 사람이 짜고 치고 거짓말한다고만 생각했다.그들이 아무리 차가운 반응을 보여도 아랑곳 하지 않은 진서준은 나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탕두가결을 외울 줄 아나요?”나수진은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탕두가결이 뭔데요?”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서울 병원은 쓰레기장이 아니에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죠.”“지금 날 욕한 거예요?”나수진은 김원의 무릎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노 서린 눈빛은 진서준에게 단단히 고정되었다.“제가요? 그쪽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고요?”진서준은 바보를 보는 눈빛으로 나수진을 바라봤다. 나수진과 김원의 안색은 동시에 어두워졌다.“가태윤 씨, 당신 친구 미친 거 아니에요?”김원은 가태윤에게 화풀이했다. 시비를 건 쪽은 분명히 그들이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있기에 가태윤은 어쩔 수 없이 먼저 사과했다.“제 친구가 성격이 조금 불같아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마요.”“하, 불같다고요? 그 지랄맞은 성격을 감당할 능력은 있고요? 능력 없이 지랄만 할 줄 알면 그게 미친놈이지, 뭐에요!”“이 좋은 술도 네 입은 막지 못하는구나.”마연정은 자신의 만든 자리를 김원이 망치는 것을 마냥 보기만 할 수 없었다. 행여 소문이라도 난다면 체면이 깎일 것이기 때문이다.진서준을 힐끗 노려본 김원은 씩씩대며 양주 뚜껑을 땄다. 그대로 한 모금 마시고는 사레에 걸려 한참이나 기침했다.“연정아, 남친이 서울 병원에 들어갔으면 더 좋은 술을 사야 할 거 아니야. 이런 건 거지도 안 마셔!”김원의 말을 듣고 마연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테이블에 놓은 10병의 양주는 개당 16만 원이나 하는 고가였기 때문이다. 10병이면 무려 160만 원이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술을
진서준이 정말 따라 주문한 것을 보고 김원은 피식 웃었다.“그만두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예요. 이따가 계산할 때 잔액이 부족하다고 해도 대신 내주지 않을 거니까요.”“그쪽이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은데요.”이때 마연정이 말을 보탰다.“걱정하지 마, 서준아. 돈이 모자라면 나랑 태윤이 보태줄게.”가태윤의 카드에는 몇억 원 정도 있었다. 그저 술값에 팔 수 있는 돈이 아닐 뿐이다.직원은 금방 진서준과 김원이 주문한 양주를 가져왔다. 김원은 그중 한 병을 나수진에게 밀어줬다.“자기야,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나수진은 김원을 껴안으며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그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토록 비싼 술을 처음 받아봤다.마연정과 송예은은 잔뜩 부러운 눈치였다.“이쪽에는 두 병 더 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 비록 그는 마연정과 송예은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태윤의 친구들이기에 소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두 사람은 그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서준아, 너 미쳤어?”가태윤은 이미 진서준 대신 술값을 내 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늘 도움 받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진서준이 마그레라의 사장에게 혼나는 모습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윈스턴을 두 병 더 주문한다면 그도 감당할 수 없었다.“둘이 한 병을 마실 수는 없잖아? 난 남이랑 같은 술 안 마셔.”진서준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에 김원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술을 더 주문하는데 김원이 따르지 않는 건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경쟁이 불붙었고 김원은 절대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이쪽도 두 병 더 줘요!”김원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곧이어 직원이 술을 더 가져오고 진서준은 단호하게 외쳤다.“전부 열어줘요!”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네 개의 술 뚜껑이 전부 열렸다.진서준은 김원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이름이 김원 씨라고 했죠? 술을 좋아하시나 본데 주량은 어때요?”“그쪽보다는 좋을 거예요!”김원은 눈이 새빨개졌다. 윈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