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브레이크 소리도 윤서호 등 이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건달 몇몇이 진서준을 가운데 끼고 앞뒤로도 꼼짝 못 하게 하려던 그때 골목에서 복잡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안에 있는 x끼들아, 잘 들어.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튀어나와!”굵직한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순간 윤서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인마, 너 경찰 불렀어?”그러자 진서준이 웃음을 터트렸다.“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경찰이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거 알 텐데.”윤서호는 화를 내려다가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골목 맞은편에서 검은 옷차림의 십여 명이 칼을 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어찌나 살기등등한지 딱 봐도 진짜 건달 같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도 검은 무리가 나타났다.갑자기 동시에 나타난 검은 무리를 본 윤서호의 낯빛이 잿빛이 되었다.“여보, 저 사람들은 누구야?”왕나연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마구 밀려왔다. 무척이나 여유로운 진서준의 모습을 보자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설마 진서준이 부른 사람들은 아니겠지?’이 사람들이 누구 편인지 한창 고민하던 그때 조금 전 큰소리로 외쳤던 건장한 남자가 왕나연과 윤서호의 뒤에 나타났다.퍽!한은호는 윤서호를 가차 없이 발로 차버렸다. 윤서호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왕나연도 함께 칠팔 미터 날아갔다.윤서호가 데리고 있던 건달들은 한은호를 보자마자 감히 숨소리도 내질 못했다. 그들은 한은호를 본 적이 있었고 한은호의 신분과 명성을 익히 들었다. 호스텔 그룹과 비교하면 그들은 정말 한낱 개미 새끼에 불과했다.한은호는 바닥에 널브러진 윤서호와 왕나연을 밟고 지나 진서준에게 다가가더니 허리 굽혀 공손하게 말했다.“죄송합니다, 서준 씨. 저희가 늦었어요.”그러자 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너무 늦은 건 아니야.”말을 마친 진서준은 넋을 놓은 왕나연과 윤서호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바닥에 누운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보았다. 입을 어찌나 쩍 벌렸는지 주먹이 다
“무슨 얘기?”진서준의 싸늘한 눈빛에 왕나연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서준 씨, 이년이 무슨 중요한 얘기가 있겠어요? 그냥 몸으로 서준 씨를 유혹하려는 거겠죠.”윤서호가 다급하게 말했다.“웃기고 있네. 서준 씨가 너 같은 년을 쳐다나 보겠어?”옆에 있던 한은호가 코웃음을 쳤다. 왕나연의 얼굴에 멋쩍은 기색이 스치더니 진서준을 보며 말했다.“진서준,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날 풀어줘. 어때?”“그건 네가 하려는 얘기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달렸지.”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만약 중요하지 않다면 진서준은 왕나연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은호에게 맡겼을 것이다.“예전에 대학로에서 봤던 그 여자 네 여자친구지?”왕나연이 물었다.“그래. 그런데 그건 왜?”진서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장혜윤이 네 여자친구를 납치하겠다고 사람을 찾았어.”왕나연이 말했다.“뭐?”순간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진서준의 가슴에서 활활 타올랐다. 진서준은 누가 그의 가족을 건드리면 절대 참지 않았다.허사연이 아직은 그저 진서준의 여자친구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가족이 될 것이다.지난번 진서라가 납치된 후로 진서준은 가족을 건드린다면 절대 참지 않겠다고 했었다. 상대가 누구든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으악!”진서준의 기세에 화들짝 놀란 왕나연은 소리까지 지르며 연신 뒷걸음질 쳤다. 왕나연은 자신이 진서준 앞에서는 한낱 개미 새끼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다. 진서준이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누굴 찾았는데?”진서준은 왕나연을 보며 마음속의 살기를 최대한 억눌렀다.“나도 누군지 몰라. 어제 혜윤이랑 밥 먹었는데 나에게 그 얘기 하더라고. 그때 가서 재미난 구경 같이하자고 했어...”왕나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 진서준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당장 장혜윤을 불러내.”“알았어. 전화할게. 하지만 그전에 날 풀어줘.”“넌 나와 협상할 자격도 없어.”진서준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의 살벌한 분위기에 왕나연은
어느 어둡고 습한 방.허사연의 두 눈이 얇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 움직이고 있는 몇 사람만 어렴풋이 보였다.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누구인지 허사연은 알 리가 없었다. 비록 지금 허씨 가문이 많이 발전하여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 같지만 사실 적지 않은 경쟁자가 숨어있었다.2년 전 허사연이 허성태의 손에서 사해 그룹을 물려받을 당시 일주일에 다섯 번의 교통사고와 여섯 번의 납치를 당했었다. 그리고 독을 타는 등 파렴치한 수단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이번에 상대가 납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허사연이 너무 방심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기에 죽을 위험까지 무릅쓰고 그녀를 건드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지금 그녀는 진서준의 여자친구이다. 신분이 사해 그룹 회장보다도 더 고귀했다. 남주성에서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동철 형님, 이 여자 생긴 게...”방 안, 동철 형님이라 불리는 중년 남자가 부하를 싸늘하게 째려보았다.“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마동철이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이곳에 오기 전 유지수는 그에게 허사연의 신분을 얘기해줬었다. 서울시 사해 그룹의 현 회장이자 허씨 가문의 큰아가씨라고 했다.그들이 비록 나쁜 짓을 일삼는 강도들이긴 하지만 생각이라는 게 있긴 있었다. 만약 진짜로 허사연을 건드렸다간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유지수가 그들에게 허사연을 거의 반 죽여놓으라고 분부하긴 했지만 마동철은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돈에 눈이 멀진 않았다.마동철에게 한 소리 들은 남자는 주눅이 들어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허사연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욕망이 가득했다.“허사연 씨, 사연 씨를 뭐 어쩌려고 데려온 게 아니야.”마동철은 실실 웃으면서 허사연의 앞으로 걸어갔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할 얘기 있으면 그냥 해.”허사연은 그들과 쓸데없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납치됐다는 사실을 경호원이 무조건 진서준과 그녀의 아버지에게 보고
“알았어. 지금 당장 알아보라고 할게.”분부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성태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된 번호였다.“받으세요. 다 들리니까 스피커폰으로 할 필요 없어요.”진서준이 말했다.“알았어.”전화를 받자 마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허성태 씨, 그쪽 딸이 지금 내 손에 있어. 딸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이틀 내로 현금 천억을 준비해. 룰은 당연히 알겠지? 경찰에 신고한다면 다신 딸을 볼 수 없을 거야.”그러자 허성태가 바로 큰소리로 말했다.“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까 내 딸만 다치게 하지 말아요.”“그래. 이틀 후에 연락해.”허성태는 전화를 끊고 진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진서준의 표정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상대가 왜 돈을 요구하는지 진서준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장혜윤은 분명 진서준과 허사연에게 복수하려고 사람을 찾았을 텐데.“장혜윤이 사람을 찾아서 사연 씨를 납치하게 한 거니까 지금 납치범을 만나러 가는 길일 거예요. 장혜윤의 위치만 알아낸다면 사연 씨를 구할 수 있어요.”진서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장혜윤이 누구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허성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사해 그룹의 경쟁자가 많고도 많았지만 장혜윤이라는 여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찮은 여자일 뿐이에요.”냉랭하게 말하는 진서준의 두 눈에 살기가 드러났다. 이번 일로 장혜윤은 진서준의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장혜윤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아주 가차 없이 죽여버릴 것이다.‘감히 내 가족을 건드려? 그럼 죽음뿐이야!’...장혜윤은 마동철이 보낸 주소를 받고 허사연이 납치된 곳에 도착했다.머리가 나름 똑똑한 마동철은 허사연을 교외로 데려가지 않고 서울시 노성동의 옛 골목거리로 데려왔다.오래된 골목이라 공간이 협소했고 쉽게 쳐들어올 수 없었다. 허성태가 그들의 위치를 찾아낸다고 해도 짧은 시간 내에는 그들의 방어선을 뚫기 어려울 것이다.노크 소리가 들리고 암호를 주고받고 나서야 방문이 열렸다
장혜윤의 외모가 허사연과 비교하면 많이 딸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예쁜 편이었다. 허사연을 건드리지 못하니까 적지 않은 부하들이 장혜윤에게 흑심을 품었다.납치범의 한마디에 장혜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비록 그녀는 몸을 팔면서 돈을 벌지만 항상 돈 많은 남자들만 상대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방 안에 있는 남자들은 전부 강도들이었다. 돈 많은 남자들과는 아예 비교도 되질 않았다.“웅웅...”입을 막고 있어 장혜윤이 뭐라 소리쳐도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그 모습에 마동철이 싸늘하게 웃었다.“인제 겁먹었어? 아까도 나대지 말았어야지.”겁에 질린 장혜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면 풀어줄게.”마동철의 말에 장혜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동철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젠 아무 일 없겠지 하고 생각하던 그때 마동철의 이어지는 한마디에 장혜윤은 절망에 빠졌다.“내가 널 풀어준다고는 했지만 우리 동생들이 널 가만히 둘지 모르겠네? 우리 동생들도 널 기꺼이 풀어주겠다고 한다면 그때 풀어줄게.”마동철은 부하들에게 시선을 옮겼다.“얼마 만에 여자를 만났는데 이대로 풀어줘서는 안 되죠. 아깝잖아요.”몇몇 부하들은 욕구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장혜윤에게 다가갔다. 장혜윤의 낯빛이 잿빛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세 명의 납치범들에게 끌려 다른 안방으로 옮겨졌다....허씨 가문 별장.“서준 씨가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밖에서 걸어오는 진서준을 본 허윤진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아까 허성태는 진서준에게 허사연이 납치된 사실을 허윤진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었다.“밥 얻어먹으러 왔어요.”진서준이 맥 빠진 얼굴로 말했다.“밥이요? 오후 두 시가 넘었는데 지금 밥 차려달라고요?”허윤진은 진서준을 아니꼽게 째려보았다. 그런데 곧바로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평소 허윤진이 진서준과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허성태가 꼭 그녀에게 뭐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
이런 일을 당한 게 한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허윤진도 예전에 납치당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상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우리 언니 납치됐어요?”허윤진이 앞으로 다가가 진서준의 팔을 잡고 물었다.“네. 그러니까 이거 놔요. 사연 씨 구하러 가야 하니까.”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같이 가요.”허윤진이 확고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며 말했다.“도움은 못 주겠지만 절대 성가시게 굴지 않을게요. 그냥 언니가 무사한지만 알고 싶어서 그래요.”진서준이 허성태의 눈치를 살폈다.“데려가. 윤진이도 이젠 애가 아니야.”허성태가 말했다.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진서준과 허윤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소형차를 타고 노성동의 옛 골목거리로 달려갔다.허성태는 허씨 가문의 경호원을 붙이지 않았다. 하나는 혹시라도 들킬 위험이 있을까 봐, 다른 하나는 진서준을 믿어서였다. 진서준이라면 천군만마보다도 더 믿음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노성동 옛 골목거리 근처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기 전 진서준은 체내의 영기로 자신의 얼굴을 바꾸었다. 이게 다 허사연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상대가 장혜윤이 찾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진서준의 얼굴을 알 것이다.“서준 씨 맞아요?”얼굴이 확 달라진 진서준을 보며 허윤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네.”진서준의 목소리마저 굵어졌다. 진서준과 계속 한 차에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착각할 정도였다.“대박. 역용술도 할 줄 알았어요?”허윤진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가서 사연 씨 구하고 올게요.”진서준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옛 골목거리를 훑어보았다.장혜윤의 휴대 전화 위치가 대략 이쯤으로 잡혔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진서준이 직접 찾아야 했다.진서준이 건물을 일일이 뒤지며 찾아다니던 그때 작은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 두 남자의 모습이 진서준의 눈에 들어왔다.“그 여자 너무 맥이 없는 거 아니야? 애들이 별로 데리고 놀지도 못했는데 바로 기절
담배 연기가 작은 방 안에 자욱했고 짙은 비린내까지 섞여 있었다.“형님, 들어가서 해소하지 않으실래요?”한 부하가 장혜윤이 누워있는 방을 가리키며 헤벌쭉 웃으면서 물었다.“저 여자 맥이 없긴 하지만 기분은 죽여줘요.”마동철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돈만 손에 넣으면 더 예쁜 여자도 마음껏 데리고 놀 수 있어.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야. 절대 방심해선 안 돼. 누구 하나 방심하면 내가 가만 안 둬!”진지한 마동철의 모습에 부하 다섯 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의자에 앉아있는 허사연은 놀란 가슴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그들이 장혜윤의 입을 틀어막긴 했지만 처참한 비명이 정확히 들렸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옆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허사연은 알 것 같았다.다만 대체 어떤 여자가 제 발로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했다.“사연 씨, 옆방에서 나는 소리 다 들었지?”마동철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허사연은 대답하지 않고 눈앞의 검은 그림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만약 마동철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 한다면 당장 혀 깨물고 죽을 생각이었다.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양아치들의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무서워하지 마. 우린 돈이 가장 중요해. 사연 씨 아버지가 무사히 돈을 우리에게 넘긴다면 사연 씨는 절대 아무 일이 없을 거야. 이건 내가 장담할게.”조금 전 마동철이 부하의 제안을 허락한 것도 허사연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다.마동철이 허사연에게 알아듣게 설명하던 그때 진서준은 이미 문 앞까지 도착했다. 노크 소리에 마동철의 한 부하가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 했다.“잠깐. 아직 암호를 얘기 안 했어.”다른 한 부하가 나서서 문을 열려는 부하를 막아섰다.“암호는 무슨. 인제 고작 한 시간이 지났어. 벌써 찾았을 리가 없어.”부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를 맞이하는 건 진서준의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진서준의 주먹 한 방에 문을 연 부하는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공격해!”
진서준이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한줄기의 파란 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마동철의 몸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마동철이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온몸에 전해졌다. 총상보다도 더 힘든 고통이었는데 마치 누군가 칼로 그의 살을 베는 것만 같았다.“으악!”마동철의 처참한 비명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바닥에서 뒹굴던 마동철은 1초도 채 안 되어 거품 물고 경련을 일으켰다.진서준은 쏜살같이 허사연의 앞으로 달려가 그녀를 묶고 있던 끈을 풀고 눈을 가린 검은 천을 벗겨냈다.“미안해요, 사연 씨. 내가 늦었어요.”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허사연을 본 진서준은 살짝 의아했다.‘아까 죽은 두 놈 사연 씨 말하는 거 아니었어? 사연 씨가 아니면 누구야?”“다시는 서준 씨를 못 보는 줄 알았어요.”허사연은 진서준을 꼭 끌어안았다. 어찌나 꽉 안았는지 그의 몸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진서준을 사랑하기 전까지 허사연은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언장 작성까지 마친 그녀였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허성태와 허윤진을 해외로 보내려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에게 뼛속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눈물을 비 오듯 흘리는 허사연을 보고 있자니 진서준은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인제 괜찮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진서준은 허사연의 등을 토닥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마동철은 아직도 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이러다가 아파서 죽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신이 흐릿해졌다 또렷해졌다 자꾸만 반복했다.조금 전 진서준이 쏜 파란 빛은 장철결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술법이었다. 그 술법을 맞은 사람은 누군가 몸을 칼로 쿡쿡 쑤시는 환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어디도 다치지 않았는데 말이다.진서준은 허사연을 납치한 이놈을 쭉 고통의 환각 속에 살게 할 생각이었다.허사연은 울음을 멈추고 옆방을 가리켰다.“아까 어떤 여자가 왔는데 그 짐승보다도 못한 놈들에게 강간당했어요.”진서준은 그제야 아까 두 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