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지금 당장 알아보라고 할게.”분부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성태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된 번호였다.“받으세요. 다 들리니까 스피커폰으로 할 필요 없어요.”진서준이 말했다.“알았어.”전화를 받자 마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허성태 씨, 그쪽 딸이 지금 내 손에 있어. 딸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이틀 내로 현금 천억을 준비해. 룰은 당연히 알겠지? 경찰에 신고한다면 다신 딸을 볼 수 없을 거야.”그러자 허성태가 바로 큰소리로 말했다.“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까 내 딸만 다치게 하지 말아요.”“그래. 이틀 후에 연락해.”허성태는 전화를 끊고 진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진서준의 표정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상대가 왜 돈을 요구하는지 진서준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장혜윤은 분명 진서준과 허사연에게 복수하려고 사람을 찾았을 텐데.“장혜윤이 사람을 찾아서 사연 씨를 납치하게 한 거니까 지금 납치범을 만나러 가는 길일 거예요. 장혜윤의 위치만 알아낸다면 사연 씨를 구할 수 있어요.”진서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장혜윤이 누구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허성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사해 그룹의 경쟁자가 많고도 많았지만 장혜윤이라는 여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찮은 여자일 뿐이에요.”냉랭하게 말하는 진서준의 두 눈에 살기가 드러났다. 이번 일로 장혜윤은 진서준의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장혜윤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아주 가차 없이 죽여버릴 것이다.‘감히 내 가족을 건드려? 그럼 죽음뿐이야!’...장혜윤은 마동철이 보낸 주소를 받고 허사연이 납치된 곳에 도착했다.머리가 나름 똑똑한 마동철은 허사연을 교외로 데려가지 않고 서울시 노성동의 옛 골목거리로 데려왔다.오래된 골목이라 공간이 협소했고 쉽게 쳐들어올 수 없었다. 허성태가 그들의 위치를 찾아낸다고 해도 짧은 시간 내에는 그들의 방어선을 뚫기 어려울 것이다.노크 소리가 들리고 암호를 주고받고 나서야 방문이 열렸다
장혜윤의 외모가 허사연과 비교하면 많이 딸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예쁜 편이었다. 허사연을 건드리지 못하니까 적지 않은 부하들이 장혜윤에게 흑심을 품었다.납치범의 한마디에 장혜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비록 그녀는 몸을 팔면서 돈을 벌지만 항상 돈 많은 남자들만 상대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방 안에 있는 남자들은 전부 강도들이었다. 돈 많은 남자들과는 아예 비교도 되질 않았다.“웅웅...”입을 막고 있어 장혜윤이 뭐라 소리쳐도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그 모습에 마동철이 싸늘하게 웃었다.“인제 겁먹었어? 아까도 나대지 말았어야지.”겁에 질린 장혜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면 풀어줄게.”마동철의 말에 장혜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동철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젠 아무 일 없겠지 하고 생각하던 그때 마동철의 이어지는 한마디에 장혜윤은 절망에 빠졌다.“내가 널 풀어준다고는 했지만 우리 동생들이 널 가만히 둘지 모르겠네? 우리 동생들도 널 기꺼이 풀어주겠다고 한다면 그때 풀어줄게.”마동철은 부하들에게 시선을 옮겼다.“얼마 만에 여자를 만났는데 이대로 풀어줘서는 안 되죠. 아깝잖아요.”몇몇 부하들은 욕구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장혜윤에게 다가갔다. 장혜윤의 낯빛이 잿빛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세 명의 납치범들에게 끌려 다른 안방으로 옮겨졌다....허씨 가문 별장.“서준 씨가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밖에서 걸어오는 진서준을 본 허윤진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아까 허성태는 진서준에게 허사연이 납치된 사실을 허윤진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었다.“밥 얻어먹으러 왔어요.”진서준이 맥 빠진 얼굴로 말했다.“밥이요? 오후 두 시가 넘었는데 지금 밥 차려달라고요?”허윤진은 진서준을 아니꼽게 째려보았다. 그런데 곧바로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평소 허윤진이 진서준과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허성태가 꼭 그녀에게 뭐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
이런 일을 당한 게 한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허윤진도 예전에 납치당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상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우리 언니 납치됐어요?”허윤진이 앞으로 다가가 진서준의 팔을 잡고 물었다.“네. 그러니까 이거 놔요. 사연 씨 구하러 가야 하니까.”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같이 가요.”허윤진이 확고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며 말했다.“도움은 못 주겠지만 절대 성가시게 굴지 않을게요. 그냥 언니가 무사한지만 알고 싶어서 그래요.”진서준이 허성태의 눈치를 살폈다.“데려가. 윤진이도 이젠 애가 아니야.”허성태가 말했다.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진서준과 허윤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소형차를 타고 노성동의 옛 골목거리로 달려갔다.허성태는 허씨 가문의 경호원을 붙이지 않았다. 하나는 혹시라도 들킬 위험이 있을까 봐, 다른 하나는 진서준을 믿어서였다. 진서준이라면 천군만마보다도 더 믿음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노성동 옛 골목거리 근처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기 전 진서준은 체내의 영기로 자신의 얼굴을 바꾸었다. 이게 다 허사연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상대가 장혜윤이 찾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진서준의 얼굴을 알 것이다.“서준 씨 맞아요?”얼굴이 확 달라진 진서준을 보며 허윤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네.”진서준의 목소리마저 굵어졌다. 진서준과 계속 한 차에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착각할 정도였다.“대박. 역용술도 할 줄 알았어요?”허윤진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가서 사연 씨 구하고 올게요.”진서준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옛 골목거리를 훑어보았다.장혜윤의 휴대 전화 위치가 대략 이쯤으로 잡혔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진서준이 직접 찾아야 했다.진서준이 건물을 일일이 뒤지며 찾아다니던 그때 작은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 두 남자의 모습이 진서준의 눈에 들어왔다.“그 여자 너무 맥이 없는 거 아니야? 애들이 별로 데리고 놀지도 못했는데 바로 기절
담배 연기가 작은 방 안에 자욱했고 짙은 비린내까지 섞여 있었다.“형님, 들어가서 해소하지 않으실래요?”한 부하가 장혜윤이 누워있는 방을 가리키며 헤벌쭉 웃으면서 물었다.“저 여자 맥이 없긴 하지만 기분은 죽여줘요.”마동철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돈만 손에 넣으면 더 예쁜 여자도 마음껏 데리고 놀 수 있어.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야. 절대 방심해선 안 돼. 누구 하나 방심하면 내가 가만 안 둬!”진지한 마동철의 모습에 부하 다섯 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의자에 앉아있는 허사연은 놀란 가슴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그들이 장혜윤의 입을 틀어막긴 했지만 처참한 비명이 정확히 들렸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옆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허사연은 알 것 같았다.다만 대체 어떤 여자가 제 발로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했다.“사연 씨, 옆방에서 나는 소리 다 들었지?”마동철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허사연은 대답하지 않고 눈앞의 검은 그림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만약 마동철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 한다면 당장 혀 깨물고 죽을 생각이었다.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양아치들의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무서워하지 마. 우린 돈이 가장 중요해. 사연 씨 아버지가 무사히 돈을 우리에게 넘긴다면 사연 씨는 절대 아무 일이 없을 거야. 이건 내가 장담할게.”조금 전 마동철이 부하의 제안을 허락한 것도 허사연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다.마동철이 허사연에게 알아듣게 설명하던 그때 진서준은 이미 문 앞까지 도착했다. 노크 소리에 마동철의 한 부하가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 했다.“잠깐. 아직 암호를 얘기 안 했어.”다른 한 부하가 나서서 문을 열려는 부하를 막아섰다.“암호는 무슨. 인제 고작 한 시간이 지났어. 벌써 찾았을 리가 없어.”부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를 맞이하는 건 진서준의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진서준의 주먹 한 방에 문을 연 부하는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공격해!”
진서준이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한줄기의 파란 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마동철의 몸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마동철이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온몸에 전해졌다. 총상보다도 더 힘든 고통이었는데 마치 누군가 칼로 그의 살을 베는 것만 같았다.“으악!”마동철의 처참한 비명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바닥에서 뒹굴던 마동철은 1초도 채 안 되어 거품 물고 경련을 일으켰다.진서준은 쏜살같이 허사연의 앞으로 달려가 그녀를 묶고 있던 끈을 풀고 눈을 가린 검은 천을 벗겨냈다.“미안해요, 사연 씨. 내가 늦었어요.”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허사연을 본 진서준은 살짝 의아했다.‘아까 죽은 두 놈 사연 씨 말하는 거 아니었어? 사연 씨가 아니면 누구야?”“다시는 서준 씨를 못 보는 줄 알았어요.”허사연은 진서준을 꼭 끌어안았다. 어찌나 꽉 안았는지 그의 몸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진서준을 사랑하기 전까지 허사연은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언장 작성까지 마친 그녀였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허성태와 허윤진을 해외로 보내려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에게 뼛속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눈물을 비 오듯 흘리는 허사연을 보고 있자니 진서준은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인제 괜찮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진서준은 허사연의 등을 토닥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마동철은 아직도 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이러다가 아파서 죽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신이 흐릿해졌다 또렷해졌다 자꾸만 반복했다.조금 전 진서준이 쏜 파란 빛은 장철결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술법이었다. 그 술법을 맞은 사람은 누군가 몸을 칼로 쿡쿡 쑤시는 환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어디도 다치지 않았는데 말이다.진서준은 허사연을 납치한 이놈을 쭉 고통의 환각 속에 살게 할 생각이었다.허사연은 울음을 멈추고 옆방을 가리켰다.“아까 어떤 여자가 왔는데 그 짐승보다도 못한 놈들에게 강간당했어요.”진서준은 그제야 아까 두 남자가
며칠 후면 진서준은 권해철과 함께 길을 떠나야 했기에 중요한 시기라 절대 소란스러운 일이 생겨선 안 되었다. 전라도 고양시는 돌아온 후에 가볼 계획이었다. 지금은 어머니의 다리를 고치는 게 급선무였다.“서준 씨, 방에 있던 그 여자 누구예요?”진서준이 나오자 허사연은 그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진서준의 손을 잡으니 마음속의 두려움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우리가 대학로 먹거리에서 만났던 두 여자 기억나요?”진서준의 질문에 허사연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기억도 하지 못했다.“까먹었어요.”허사연은 한참을 생각해도 장혜윤과 왕나연을 떠올리지 못했다.“옆방에 있던 여자 장혜윤이에요. 유지수의 절친.”유지수 얘기를 꺼내던 진서준의 두 눈에 냉기가 스쳤다.지난번 이씨 가문에 갔을 때 유지수는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아까 마동철이 얘기한 황씨 가문 사모님이 유지수일 가능성이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유지수 말고 다른 여자와 이토록 큰 원한이 없으니까.“아 참, 깜빡할 뻔했네요. 서준 씨 전 여자친구는 지금 어디 있어요?”진서준이 유지수 얘기를 꺼내자 허사연도 조금 궁금해졌다.“나도 몰라요. 아까 그 납치범에게 물었더니 전라도 황씨 가문의 사모님이 시킨 거라고 하더라고요.”진서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황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사람, 아무래도 유지수 같아요.”허사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씨 가문의 며느리 아니에요?”허사연은 유지수와 이씨 가문 사이의 일을 알지 못했다. 유지수가 이씨 가문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이씨 가문이 유지수의 손에 아주 제대로 놀아났거든요. 이지성이 그 집 친아들이 아니라 유지수가 어떤 의사와 낳은 아들이었어요.”진서준이 싸늘하게 웃었다. 진서준의 설명을 듣자 허사연도 그녀를 납치하라고 시킨 배후가 유지수일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유지수는 속셈이 많았고 뒤끝도 길었다. 더 잘난 남자를 만난다면 무조
‘우리 동생 예뻐한 보람이 있네.’허사연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허윤진은 진서준을 보며 물었다.“서준 씨는 괜찮아요? 그 사람들과 싸울 때 다치진 않았죠?”진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난 괜찮아요.”허윤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진서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허윤진이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진서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허씨 가문의 이기적인 아가씨가 먼저 고맙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사연 씨를 구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진서준이 허사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허윤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렸다.“애정행각 그만하고 얼른 집에 가요. 아빠가 기다리고 계신단 말이에요.”허윤진은 두 사람을 제쳐두고 홀로 차에 올라탔다. 그때 허사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준 씨, 요즘 윤진이가 많이 변한 것 같아요.”“나도 그렇게 느꼈어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허윤진은 손승호의 본색을 알게 된 이후로 전보다 많이 점잖아졌다.“변했다는 건 좋은 거죠. 앞으로 사연 씨도 걱정 덜 할 수 있고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이 차에 올라탄 후 차는 허씨 가문 별장으로 곧장 달려갔다....교외의 어느 한 별장.주혁구의 찌그러진 허머가 문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별장 거실 안, 주혁구의 오만방자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를 쳐다보았다.이 중년 남자가 바로 주혁구가 전에 찾았던 남자였다. 이름은 황종섭, 황정식의 아들이자 서울시 황씨 가문의 차세대 가주였다.주혁구도 돈이 많긴 했지만 황씨 가문에 비교하면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형님, 전화해서 물어봐 주시겠어요? 권해철 마스터님이 다친 데는 다 회복하셨는지?”어제 만월호 전투에서 권해철은 꽤 심한 내상을 입었다. 하여 어제부터 권해철은 두문불출하면서 회복에 전념하느라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황종섭은 초조해하는 주혁구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승재의 말에 황종섭은 뭔가 번쩍 떠올랐다. 진서준과 권해철의 신분이 하도 범상치 않은 바람에 저도 모르게 이승재의 존재를 무시해버렸다.다른 건 몰라도 서울시에서 이승재에게 예의 없게 구는 사람이 없었다. 권해철의 제자인 이승재도 어느 정도 실력을 지녔다.“마스터님이 시간이 되신다면 그럼 마스터님께 부탁 좀 할게요.”황종섭이 말했다.“지금 어디 있어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이승재가 덤덤하게 말했다.“제 별장에 있어요.”전화를 끊은 후 황종섭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거실로 나왔다.“형님, 얘기됐나요?”우쭐거리며 웃는 황종섭을 본 주혁구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역시 종섭 형님이 나선다면 권해철 마스터님을 모실 수 있을 줄 알았어요.”그러자 황종섭이 손사래 쳤다.“권해철 마스터님이 아니라 그분의 제자인 이승재 마스터님을 모셨어.”주혁구의 얼굴에 지어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이승재 마스터님이요?”주혁구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황종섭이 설명했다.“그래, 황보식 어르신과 오래 알고 지낸 이승재 마스터님 말이야.”황보식이 이승재에게 사기당한 일을 진서준과 그들 두 사람만 알고 있었고 대외적으로 공개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황보식에게는 엄청나게 창피한 일이니 말이다.“이승재 마스터님이 권해철 마스터님의 제자이긴 하지만 그분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황종섭은 주혁구를 안심하게 하려고 이승재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거푸 쏟아진 칭찬에 주혁구도 드디어 시름을 놓았다.“형님이 찾은 분이니 당연히 믿을 만 하겠죠.”두 사람은 십여 분 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이승재 마스터님이 오셨나 봐.”황종섭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주혁구도 이승재의 얼굴을 보려고 그의 뒤를 따랐다.이승재는 검은 한복을 입고 있었고 오만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마치 재야의 고수 같은 느낌도 들었다.“마스터님.”황종섭은 이승재를 보자마자 깍듯하게 인사했다. 굽신거리는 황종섭의 모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