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농곡은 몹시 클 뿐만 아니라, 또한 밤에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진서준은 섣불리 멀리 갈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주위의 몇 개의 다락방과 집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4월까지는 아직 한 달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기에, 진서준은 신농곡을 더듬을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며칠 동안의 세밀한 관찰을 통하여, 진서준은 신농곡에 대한 비교적 포괄적인 정보를 얻게 되었다.가장 북쪽에 있는 20여 미터 높이의 다락방은 신농곡 장로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장로 다락방 뒤에는 작은 오두막집이 있었는데, 주위에는 어떠한 방어력도 없었지만, 진서준은 단 한 번도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누구든지 이 오두막집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필연코 다락방에 있는 장로들의 주의를 일으키기 때문이었다.진서준과 같이 들어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신농곡에는 모두 다섯 명의 장로가 있는데, 그중에서 세 분의 장로는 10품 대종사, 큰장로와 둘째 장로는 지선이라고 했다.만약 이 다섯 사람을 건드린다면, 설사 진서훈이 오더라도,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그래서 진서준은 자신의 어머니가 이 오두막집에 갇혔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진서준이 한참 오두막집에 어떻게 들어갈까를 고민하던 참에 진서준은 맞은편에 앉은 한 남자가 말을 건네 왔다.“평안 씨, 자네의 진보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이제 겨우 사흘짼데, 당신은 벌써 힘든 줄 모르는 경지에 달했네요.” 정신을 차린 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검술을 익히기 전에 먼저 몸을 단련했습니다.”진서준과 얘기를 나누는 이 사람은 임배라고 하는데, 경성 임씨 가문의 방계에 속하며, 올해 서른여덟 살인 일품 대종사이었다.임씨 가문의 직계가 그들의 방계를 무시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임배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직계의 안중에서의 방계의 지위를 바꿔보려고 필사적으로 수련해왔다.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진서준과 임배는 곧 친해졌다.“몸만 단련한 게 아니죠? 저는 당신이 횡련 종사처럼 느껴지는데요.”임배
하지만 모두는 진서준이 용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진서준 자체도 웃으면서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용전의 실력은 확실히 약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서준이 아직 용전이 어떤 비장의 카드를 가졌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만일 경솔하게 손을 쓴다면, 진서준은 정말 용전의 상대가 못 될 수도 있었다.오후 3시, 진서준 일행은 서쪽 링에서 모였다.용전은 진서준을 비롯한 10명을 훑어보면서 말했다.“지금은 그 어떤 룰도 없다. 오직 전력으로 나를 물리치면 된다!”“그 누가 날 건드릴 수만 있다면 내일은 쉴 수 있다!”“그 누가 날 다치게 할 수 있다면 일주일 동안 쉴 수 있다! ”용전이 이렇게 유혹적인 조건을 제출하자, 그들은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듯했다.“하지만 너희들이 나한테 다치면 훈련 강도를 3배로 높인다!”“지금 시작한다!”말이 끝나자, 용전의 모습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뭇사람은 가슴이 덜컥하여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그랬더니 1초 후에 곧 비명이 터져 나왔다.보니 동료 한 명이 용전이 날리는 다리에 차여서 갈비뼈 세 개나 부러진 채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이... 이 변태 같은 놈! 너무 강한 거 아니야?”“헛소리 말고 훈련 세 배로 하지 않으려면 같이 덤벼! 그를 다치게는 못할지라도, 만지기라도 해야 해!”은범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며칠간의 훈련을 거쳐 은범은 이미 천지개벽할 정도의 변신을 했다.원래 내공 무인에서 무도 종사가 되었다.이렇게 빨리 수련할 수 있었던 건, 은범 자체에 타고난 재능이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 신농곡 아래에 영맥이 있기 때문이다.신농곡의 영기가 운대산의 영기보다도 몇 배나 더 풍부하다.하지만 진서준은 지금 수련할 마음이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갇힌 곳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펑! 펑!’또 두 번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또 두 명의 대종사가 쓰러졌다.불과 10초 만에 진서준을 비롯한 7명만 남게 되었다.임배는 이를 악물었다
진서준 그들은 아직 신농의 제자가 아니었기에, 용전이 정말로 그들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었다.그리고 원래부터 용전은 진서준를 비롯한 사람들의 신분이 자신보다 훨씬 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방금 진서준과 임배가 손을 잡고 그를 다치게 했으니 용전의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졌다.용전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그를 엄청나게 경멸했다.아까는 전력을 다해서 덤비라고 했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진서준과 임배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화를 내고 있다니, 정말 염치가 없었다.하지만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거니와, 심지어 나서서 돕지도 못했다.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낯선 사람 하나 때문에 자신의 앞길을 망칠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난 당신이 그를 죽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진서준은 임배의 앞을 가로막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용전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웃기 시작했다.“하하하하...”미친 듯한 웃음을 마친 용전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두 눈에 살기가 거의 넘쳐흘렀다.“당신이 뭔데 감히 내 앞을 막아? 누군가 호송해주지 않았다면 네놈은 우리 신농의 대문도 못 들어왔을 거야!”조기강이 진서준을 호송하는 장면을 용전은 모두 눈여겨보았었다.이 일로 용전은 진서준을 매우 업신여기었고, 진서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미친 듯한 너털웃음을 마친 용전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두 눈에는 살기가 거의 넘쳐흘렀다.“오늘은 이 사람만 죽는 게 아니라 당신도 죽어야 해!”용전이 매섭게 말했다.“이건 김평안과 무관하니 풀어주세요...”바닥에 쓰러져있는 임배가 허약하고 무기력하게 사정했다.“풀어주라고? 그럼 저승에 혼자 내려가면 외롭지 않아?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떻게 당신 혼자 저승에 가게 할 수 있겠어!”용전은 말을 마치자, 갑자기 진서준에게 주먹을 날렸다.그의 주먹은 매우 맵고 지독하다. 게다가 뜻밖에 공격하여 속도가 더욱 극에 달했다.공기 중에 귀를 진동하
“좋아요, 당신이 사정을 봐주지 않는 이상, 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진서준은 손바닥을 쫙 펴서 흔들었다.검이 공기를 베는 소리와 함께 천문검이 진서준의 손에 떨어졌다.진서준의 손에 든 천문검을 보고 용전은 빈정거리며 말했다.“이 검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진짜 순진하네.”“당신이 검을 다루니, 내가 먼저 검을 부숴버린 후 네놈들을 죽일 것이다!”말을 마친 용전의 모습은 제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또한, 그 속도는 아까보다 더 빨랐다.진서준은 눈동자가 급히 수축함에 따라, 앞을 향해 다섯 개의 검을 연속적으로 베었다.다만 모든 검이 허영에 베였을 뿐, 용전의 털도 한 가닥 건드리지 못했다.“속도가 너무 느려...”용전의 빈정대는 목소리가 진서준의 귓가에서 울렸다.‘펑!’또 한 방!긴박한 상황에서 진서준은 천문검으로 용전의 주먹을 막았다.‘찰칵...’손에 잡힌 검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이 검은 진서준에 의해 담금질 되었기에 강인함이 뛰어났다.지금 용전의 한 주먹에 천문검이 작은 균열을 내고 있으니 용전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용전의 수련 시간은 진서준보다 훨씬 길고도 남음이 있었다.그는 어릴 때부터 신농산 안에서 자랐고, 또 신농 대장로가 직접 가르쳤으니, 실력이 자연히 속되지 않을 것이었다.고수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신농곡이라 할지라도, 또래 중 누구도 용전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심지어 같은 단계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게다가 그 두 사람은 모두 40대 중년 남자였다.“이것이 바로 네놈의 검이냐, 내 주먹보다도 약하네!”용전의 얼굴에는 흉악한 웃음이 가득했고,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것과 같았다. 진서준의 마음은 지금 초조하기 그지없었다.이대로 가다간 천문검마저 지킬 수 없었다.정말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펑펑펑...’용전은 천수관음처럼 수많은 권영이 대중의 시야에 나타나 끊임없이 천문검을 폭격했다.불
여러 사람은 즉시 신농곡의 오장로에게 고개를 돌렸다.오장로를 본 여러 사람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그들의 인상 속에는 신농곡의 장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선풍도골의 늙은이들이다.그러나 눈앞의 이 오장로는 전혀 늙어 보이지 않았을고, 오히려 매우 젊고, 멋있었다.긴 검은 머리에 연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선협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용전이 그를 오장로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를 신농산의 장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살짝 혼내주기만 하면 돼, 죽이지는 마.”“시월 초열에 사문회전이 남아 있다. 이번 회전은 모두 젊은이들의 몫이니,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나설일이 없지.”오장로가 담담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용전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명심하겠습니다.”오장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뒤돌아 떠났다. 심지어 진서준 일행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진서준도 안도의 한순을 내쉬었다.그는 이 오장로가 귀찮게 할까 봐 내심 두려웠다.오장로가 떠난 후, 용전은 진서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네놈은 운이 좋은 셈이야. 하지만 도망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마!”“다른 사람들은 한 세트씩 훈련하면 되지만, 너는 세 세트를 해야만 쉴 수 있다!”용전의 말에 따르면 진서준은 세 세트를 해야만 휴식이 허락되었다. 이를 듣고 많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진서준을 동정했다.지금 그들은 훈련을 한 세트씩 하는 것도 미칠 정도로 힘들었으니, 연속 세 세트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은 개의치 않았다. 세 세트는 그를 조금 피곤하게 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진서준도 감히 건방지게 행동하지 못했다.용전이 떠난 후, 진서준은 임배를 등에 업고 약국으로 데려갔다.신농곡에는 좋은 약재가 아주 많다. 이전의 성약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진서준과 같은 사람들은 선농곡의 약재를 전혀 만질 기회조차 없다.가령 임배가 심하게 다치지
바로 몇 년 전, 한 무리의 골드러시가 난사 부근에서 고대 문물을 발굴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었다.심지어 국가 차원에서도 탐사대를 수없이 보냈지만, 왕모묘가 워낙 바다 밑에 있는지라시공 난도가 너무 커서 포기했었다.진서준은 임배가 그곳까지 찾아가서 보물을 구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진서준의 얼굴에 나타난 놀란 표정을 본 임배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내가 말한 절세보검은 바로 그 왕모묘에서 나온 것입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쓴웃음을 지었다.“하산할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임배는 진서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위로했다.“반드시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내가 미리 물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려줄 테니, 언젠가내려갈 수 있으면 바로 가요!”이내 임배는 보검을 숨긴 곳을 진서준에게 알려주었다.진서준은 듣고 몹시 놀랐다.“묘지에 숨기셨다고요?”“목소리 낮춰요!”임배는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아무도 두 사람을 주목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그곳에 숨겨야 아무도 찾지 못하니깐, 밤에 쉴 때 자세한 위치를 그려줄게요.”밤에 휴식할 때, 임배는 검을 숨긴 곳을 그려서 진서준에게 주었다.진서준은 약간 감동은 되지만 또한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임배 씨, 왜 나한테 잘해줘요?”“당신만이 내가 가진 임씨 방계의 신분을 멸시하지 않으니까요.”임배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은범을 비롯한 8명은 모두 대가족의 직계다.그들의 눈에는 방계가 바로 직계의 종이기에 저희가 방계에게 시키는 일은 방계 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임배가 임가의 방계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무도 그에게 좋은 내색을 보이지안았다.오직 진서준만이 예전과 다름없이 임배를 대했다. 아무런 멸시도, 조롱도 없었다.진서준은 임배의 설명을 듣고 감개무량했다.혈연으로 사람들을 등급으로 나누어 차별 취급하다니, 정말 가엾은 사람들이었다.“간계를 부리는 사람만 아니라면 전 차별하지 않습니다.”그 후 며칠
임배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들처럼 오디션을 통해 신농곡에 들어온 무인들이 신농곡의 제자가 되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었다.내실 제자가 되려면 시간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했었다.신농곡의 장로가 제자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내실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전에 진서준이 신농곡 입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신농곡에 들어온 지 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외실 제자에 불과했다.“그럼 힘내세요.”진서준은 싱긋 웃으며 임배의 어깨를 두드렸다.“평안 씨는 왜 이렇게 덤덤합니까? 당신은 내실 제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임배는 진서준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담담, 평온, 내실 제자의 신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만약 그들이 내실 제자가 되었다면, 용전은 감히 그들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나는 강해지고 싶을 뿐이지, 내실 제자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진서준은 싱긋 웃었다.“쯧쯧, 과연 당신 각오가 나보다 높긴 높네.”라고 임배는 감탄했다.진서준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이는 진서준의 솔직한 생각이기 때문이었다.만약 실력이 충분했다면, 그는 바로 장로 다락방 뒤편의 작은 집으로 쳐들어가 어머니를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진서준이 신농곡에 들어온 지 어느덧 보름이 되었다. 이제 보름만 더 지나면 4월이다.4월은 해외 무인들이 대거 대한민국 무도를 포위 공격하는 시기다.진서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바로 진서준이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날 낮, 장로 다락방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곧이어 다섯 명의 장로들이 동시에 나타났다.진서준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다섯 장로가 내실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잠시 후, 다섯 명의 장로들은 신농곡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그들은 다락방을 떠났다!진서준은 눈앞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이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인 것 같았다.다섯 명의 장로가 모두 사라졌으니, 지금이 바로 몰래 어머니를 만
“어머니, 진짜 접니다, 전 서준입니다!”진서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준아, 내 아들아!”조희선은 즉시 몸을 숙여 진서준을 단번에 덥석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하지만 조희선은 금방 눈물을 거두고 수심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서준아, 넌 어떻게 들어왔니? 신농곡은 철옹성이야. 게다가 내 앞에 있는 다락방은 신농곡의 다섯 장로의 거처야.”“만약 네가 그들에게 잡히면, 네 아버지의 고된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진서준은 조희선의 손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 즉시 설명했다.“괜찮습니다. 어머니, 전 그 다섯 장로가 오늘 신농곡을 떠나는 것을 보고 기회를 타서 몰래 들어온 것입니다.”조희선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이 없으면 됐다…”“어머니, 물어볼 게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누구고, 왜 여기에 갇혔으며, 엄마는 애초에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습니까?”진서준은 이미 많은 내막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일은 여전히 자신의 어머니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조희선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이제는 너도 진실을 알아야 할 때다.”“네 아버지의 이름은 진요한인데, 경성 진씨 집안 사람이고, 나의 본명은 임수련이며, 임씨 집안 사람이다.”“처음에 네 아버지와 나는 첫눈에 반했었고, 진씨 가문과 임씨 가문도 혼인을 맺을 뜻이 있어서, 나는 네 아버지에게 시집갔단다.”“그 후 네 아버지는 한 사람을 따라 선법을 수련하셨는데,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단다. 나도 그때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기뻐했지만, 네 아버지는 또한 그로 인해 재화를 초래했다.”“대한민국 무도계가 나와 네 아버지를 살해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이도들, 심지어 4대 은세종문까지 네 아버지를 찾아다니며 살해하려 했단다.”“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너를 회임했고, 네 아버지는 우리 두 모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신농을 따라 신농 금지 구역에 들어가 자신을 숨기기로 했다.”“내가 너를 낳은 후, 네 할아버지 진혁은 우리 두 모자에게 무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