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배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들처럼 오디션을 통해 신농곡에 들어온 무인들이 신농곡의 제자가 되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었다.내실 제자가 되려면 시간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했었다.신농곡의 장로가 제자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내실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전에 진서준이 신농곡 입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신농곡에 들어온 지 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외실 제자에 불과했다.“그럼 힘내세요.”진서준은 싱긋 웃으며 임배의 어깨를 두드렸다.“평안 씨는 왜 이렇게 덤덤합니까? 당신은 내실 제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임배는 진서준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담담, 평온, 내실 제자의 신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만약 그들이 내실 제자가 되었다면, 용전은 감히 그들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나는 강해지고 싶을 뿐이지, 내실 제자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진서준은 싱긋 웃었다.“쯧쯧, 과연 당신 각오가 나보다 높긴 높네.”라고 임배는 감탄했다.진서준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이는 진서준의 솔직한 생각이기 때문이었다.만약 실력이 충분했다면, 그는 바로 장로 다락방 뒤편의 작은 집으로 쳐들어가 어머니를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진서준이 신농곡에 들어온 지 어느덧 보름이 되었다. 이제 보름만 더 지나면 4월이다.4월은 해외 무인들이 대거 대한민국 무도를 포위 공격하는 시기다.진서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바로 진서준이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날 낮, 장로 다락방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곧이어 다섯 명의 장로들이 동시에 나타났다.진서준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다섯 장로가 내실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잠시 후, 다섯 명의 장로들은 신농곡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그들은 다락방을 떠났다!진서준은 눈앞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이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인 것 같았다.다섯 명의 장로가 모두 사라졌으니, 지금이 바로 몰래 어머니를 만
“어머니, 진짜 접니다, 전 서준입니다!”진서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준아, 내 아들아!”조희선은 즉시 몸을 숙여 진서준을 단번에 덥석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하지만 조희선은 금방 눈물을 거두고 수심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서준아, 넌 어떻게 들어왔니? 신농곡은 철옹성이야. 게다가 내 앞에 있는 다락방은 신농곡의 다섯 장로의 거처야.”“만약 네가 그들에게 잡히면, 네 아버지의 고된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진서준은 조희선의 손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 즉시 설명했다.“괜찮습니다. 어머니, 전 그 다섯 장로가 오늘 신농곡을 떠나는 것을 보고 기회를 타서 몰래 들어온 것입니다.”조희선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이 없으면 됐다…”“어머니, 물어볼 게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누구고, 왜 여기에 갇혔으며, 엄마는 애초에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습니까?”진서준은 이미 많은 내막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일은 여전히 자신의 어머니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조희선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이제는 너도 진실을 알아야 할 때다.”“네 아버지의 이름은 진요한인데, 경성 진씨 집안 사람이고, 나의 본명은 임수련이며, 임씨 집안 사람이다.”“처음에 네 아버지와 나는 첫눈에 반했었고, 진씨 가문과 임씨 가문도 혼인을 맺을 뜻이 있어서, 나는 네 아버지에게 시집갔단다.”“그 후 네 아버지는 한 사람을 따라 선법을 수련하셨는데,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단다. 나도 그때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기뻐했지만, 네 아버지는 또한 그로 인해 재화를 초래했다.”“대한민국 무도계가 나와 네 아버지를 살해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이도들, 심지어 4대 은세종문까지 네 아버지를 찾아다니며 살해하려 했단다.”“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너를 회임했고, 네 아버지는 우리 두 모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신농을 따라 신농 금지 구역에 들어가 자신을 숨기기로 했다.”“내가 너를 낳은 후, 네 할아버지 진혁은 우리 두 모자에게 무
“얼씨구? 모자지간의 정이 너무 깊어 눈물이 날 것 같네.”이때, 밖에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를 듣자마자 진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용전!”조금 전까지 진서준의 관심은 온통 조희선에게 쏠려 있어서 밖에 누가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제야 용전의 목소리를 들은 진서준은 용전이 이미 밖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진서준은 용전이 자기를 방금 알아챈 건지, 아니면 이미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건지 헷갈렸다.용전은 방으로 들어와 조롱이 섞인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널 진서준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김평안이라고 불러야 하나?”용전이 진서준의 또 다른 이름을 말하자 진서준의 마음은 깊은 절망으로 가라앉았다.오늘 다섯 장로가 떠난 게 아무리 생각해도 진서준에게 보여주기 위한 술책이었을 것 같았다.그 목적은 바로 진서준을 이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신농곡 다섯 장로도 사실 안 떠난 거지? 오늘 장로들이 떠난 건 연기였어?”진서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용전을 바라보며 물었다.신농곡의 다섯 장로가 아직 남아있다면 오늘은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 있었다.“너 하나 때문에 연극을 한다고? 네가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용전은 가차 없이 진서준을 비웃었다.“우리 신농곡 다섯 장로는 진짜 볼일이 있어 나간 거야, 네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극을 한 게 아니야. 너 같은 단역 배우 때문에 그분들이 연극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용전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신농곡의 다섯 장로는 그야말로 절정의 고수들이었다.그들 앞에서는 호국장군조차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춰야 할 정도였다.게다가 다섯 장로는 이런 일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다들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조희선이 스스로 덫에 걸려들었을 때 다섯 장로는 조희선을 이용해 진서준을 유인하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어서 도망쳐!”조희선은 곧장 진서준을 향해 외쳤다.“저 사람들은 나에게 감히 손대지 못해!
진서준은 속전속결로 용전을 쓰러뜨리고 조희선을 데리고 신농곡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좋아, 나가서 한 판 붙자.”용전은 곧바로 몸을 돌려 작은 오두막을 나서더니 근처의 아무도 없는 수련 장소로 이동했다.“엄마, 여기서 절 기다려요.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진서준은 조희선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전의 뒤를 바짝 따랐다.밤이 되면 신농곡의 링에서 교전을 벌이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용전은 자기와 진서준의 싸움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거라 염려하지 않았다.평소 용전은 매우 거만하고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지만 사실 그의 생각은 상당히 치밀했다.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용전은 신농곡의 대장로에게 제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진서준과 용전은 링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신중하게 주시했다.용전이 먼저 천천히 입을 열었다.“진서준, 정말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이 모든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을 거야.”용전의 말을 들은 진서준은 잠시 멍해졌다.“내 정체를 조금 전 알게 되었단 말이야?”“그래!”용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인피면구는 정말 대단하더라. 우리 장로들조차 속일 수 있을 줄은 몰랐어.”그날 오장로가 진서준의 가면을 알아차렸다면 오늘 밤의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이제 진서준은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용전만 처리할 수 있다면 엄마와 함께 신농산을 몰래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장로들은 속였지만 널 속이진 못했구나...”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네겐 아직 기회가 있어, 날 이기기만 하면 돼.”용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근데 날 이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거야.”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전의 모습이 사라졌다.용전의 속도는 번개와도 같아 짙은 밤의 어둠과 하나가 된 듯했다.그 모습에 강렬한 위기감이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솟아올랐다.여러 차례 생사가 오간 경험이 진서준에게 눈앞의 용전은 문호동보다도 훨씬 강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진서준은 반드시 엄마
용전이 지원을 부르자 진서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정말 비겁하구나!”분노가 치밀어 오른 진서준이 욕설을 퍼부었다.싸움에서 밀리자 지원을 부르다니, 자칭 천재라는 용전이 그야말로 천재라는 타이틀에 먹칠하는 어이없는 행동이었다.하지만 용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냉소하며 말했다.“그래, 내가 비겁하면 어쩔 건데? 날 죽이기라도 할 거야? 명심해, 체면 같은 건 아무 쓸모도 없어. 진짜 중요한 건 실력이야!”그 말을 끝으로 용전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 진서준과 더 이상 정면으로 맞붙지 않았다.곧 지원이 도착할 테니 용전은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진서준도 더 이상 용전을 쫓지 않고 몸을 돌려 작은 오두막으로 돌아갔다.“엄마, 우리 빨리 나가요!”진서준은 조희선의 손을 잡고 급히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서준아, 너 혼자 도망쳐. 엄마까지 데리고 가면 도망치기 힘들잖아.”조희선은 다급하게 진서준을 설득했다.결혼 전에 무도를 몇 년 배운 조희선이었지만 진서준과 진서라를 데리고 서울시로 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수련한 적이 없었다.지금의 조희선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 어지간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진서준이 그런 조희선을 데리고 도망치는 건 무거운 짐을 지고 뛰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아니에요, 죽어도 절대 혼자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진서준은 이를 악물고 조희선을 등에 업었다.신농곡에서 전투 중 크게 다쳐 죽을 수는 있어도 진서준은 어머니를 두고 혼자 도망칠 수는 없었다.진서준은 쌀쌀한 표정으로 자기를 겹겹이 둘러싼 신농곡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이들 대부분은 육급 대종사 경지에 있었고 그 중 몇몇은 칠급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서준아...”진서준의 결의에 찬 눈빛을 바라보며 조희선의 마음은 복잡하고 심란했다.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조희선은 절대 진서준이 이렇게 험난한 길을 걷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조희선은 단지 진서준이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했을
진서준은 천천히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용전은 진서준을 내려다보며 귀를 파다가 비웃듯 말했다.“야, 너 유언은 다 했냐? 아직 할 말 있으면 좀 더 시간을 줄게.”그때 신농곡의 다른 제자들이 물었다.“용전아, 저 녀석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완전 낯설어.”“설마 우리 신농곡에 몰래 들어온 건 아니겠지?”“용전아, 이 녀석은 어떻게 만난 거야?”제자들의 질문에 용전이 차근차근 설명했다.“이 녀석은 김평안이라는 가명을 쓰고 이번 선발대에 끼어들었어. 며칠 전부터 저 녀석이 수상하더니 오늘 밤 몰래 따라가 보니까 여기까지 침입해 있더구나.”제자들의 목소리가 진서준과 조희선의 귀에 들려왔지만 두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조희선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 근데 네가 그때 신나서 어쩔 바를 모르던 모습 보면서 엄마는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느꼈어.”진서준은 조용히 되뇌었다.“그러다 제가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야 엄마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어요. 대학 때 알바해서 돈을 벌어 엄마의 부담을 줄여드리려고 했지만 결국 유지수에게 빠져버렸죠.”진서준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전 어렵게 번 돈을 모두 유지수에게 썼고 정작 나를 낳아 힘들게 키운 엄마에게는 무심했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한 번도 저를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생활비를 덜어 절반이나 제게 줬어요. 저와 유지수가 굶지 않고 추운 겨울을 지내지 않게 하려고요.”진서준의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그는 유지수를 미워하면서도 한심한 자기가 더 증오스러웠다.진서준은 어른이 되면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성인이 되고 보니 오히려 어머니의 짐이 더 무거워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졸업을 앞둔 해에 제가 예물로 줄 3000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을 때, 엄마가 한동안 멍하니 계셨던 게 기억나요. 엄마가 대답을 안 하시자 제가 화를 내며 다른 사람 엄마 같으면 망설임 없이 줬을 거라며 화냈죠. 그 말이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 생각도 못 했어요. 당
“진서준, 네가 감히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해?”용전의 눈에는 분노가 서렸고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그 자리에 있는 신농곡 제자들은 무려 스무 명에 가까웠다.다들 오급 대종사 이상의 실력을 갖춘 무인들이었다.이토록 강력한 무인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서준이 엄마를 지켜드린다는 말을 내뱉다니, 이건 대놓고 무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또한 신농곡에 대한 적나라한 도발이었다.“넌 기껏해야 육급 대종사 정도잖아.”용전은 진서준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심지어 호국장군 정도 되는 사람들도 우리 신농곡에서는 이토록 오만하게 굴지 않아.”호국장군은 팔급 이상의 대종사인데 이런 대종사조차 신농곡에서 함부로 날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육급 대종사인 진서준이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저 녀석을 때려눕히자.”“나도 자러 가야 하니까, 그만 얘기하고 얼른 정리하자.”짜증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니, 다음 순간 신농곡 제자 세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조희선은 달려드는 세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는 널 믿어.”“눈 감고 푹 주무세요. 내일 아침이면 우리가 이곳을 떠나 밖에서 깨날 거예요.”진서준은 조희선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그러자 조희선은 서서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어릴 적에 천둥 치던 날, 저랑 서라가 얼마나 겁에 질렸든지 기억나세요? 엄마는 휴가를 내고 폭우를 뚫고 집으로 달려와 우리 둘의 등을 이렇게 토닥여주시면서 잠들게 해주셨죠. 그리고 우리가 잠들자마자 다시 빗속을 뚫고 출근하셨고요.”진서준이 한 발 앞으로 내디디자 그의 주변에는 푸른빛과 붉은빛이 섞인 기운이 서서히 피어올랐다.그 기운은 마치 방벽처럼 진서준과 조희선를 둘러싸고 있었고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이 방벽을 뚫지 못할 것 같았다.신농곡의 세 제자가 온 힘을 다해 공격했지만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이
진서준은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으며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진서준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고 입고 있던 옷도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했다.“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 같군.”모두가 진서준의 이상한 상태를 눈치챘지만 아무도 기뻐할 수 없었다.신농곡 직속 제자 7명이 신농곡 외부 제자 한 명을 둘러싸고 공격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퍼지기라도 하면 나머지 세 종문 사람이 배꼽을 잡고 웃을 게 분명했다.“출소할 때쯤이 되어서야 엄마와 서라가 떠올랐어요. 엄마와 서라가 한 번도 교도소에 면회를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죠. 그때는 제가 엄마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오지 않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엄마는 아무리 화가 나도 다음 날이면 화가 풀리시던 분이셨죠. 그래서 그때 전 나름대로 추측했어요. 엄마와 서라가 혹시 사고라도 당한 게 아닐까 하고. 엄마와 서라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 멘탈이 무너져 버렸어요. 그제야 엄마와 서라가 제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달았죠. 그래서 출소하자마자 바로 엄마를 보러 갔어요.”쿵!그 한 걸음은 묵직하고 강력해서 신농곡의 제자 7명을 단숨에 열 걸음 이상 밀어냈다.다들 얼굴엔 핏기가 없이 창백했고 진서준의 기운에 크게 다친 게 분명했다.하지만 아무도 진서준이 어떻게 공격했는지 알아챌 수 없었다.이 모습을 본 모든 사람이 숨을 깊게 들이쉬며 경악했다.“사람을 더 부를까?”“부르지 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저 청년 하나 못 막는다는 게 말이 돼?”실력이 가장 강한 중년 남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다시 공격해.”이번에는 네 명의 육급 대종사들이 나섰다.하지만 그들 또한 앞서 나섰던 다섯 명과 마찬가지로 진서준 주변의 기운에 막혔다.한편, 진서준의 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진서준의 옷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고 바위처럼 단단하고 팽팽한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진서준의 허리에 있는 ‘진’자가 새겨진 옥패가 진동하며 은은한 금빛을 내뿜고 있었다.“출소 후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