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 네가 감히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해?”용전의 눈에는 분노가 서렸고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그 자리에 있는 신농곡 제자들은 무려 스무 명에 가까웠다.다들 오급 대종사 이상의 실력을 갖춘 무인들이었다.이토록 강력한 무인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서준이 엄마를 지켜드린다는 말을 내뱉다니, 이건 대놓고 무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또한 신농곡에 대한 적나라한 도발이었다.“넌 기껏해야 육급 대종사 정도잖아.”용전은 진서준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심지어 호국장군 정도 되는 사람들도 우리 신농곡에서는 이토록 오만하게 굴지 않아.”호국장군은 팔급 이상의 대종사인데 이런 대종사조차 신농곡에서 함부로 날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육급 대종사인 진서준이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저 녀석을 때려눕히자.”“나도 자러 가야 하니까, 그만 얘기하고 얼른 정리하자.”짜증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니, 다음 순간 신농곡 제자 세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조희선은 달려드는 세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는 널 믿어.”“눈 감고 푹 주무세요. 내일 아침이면 우리가 이곳을 떠나 밖에서 깨날 거예요.”진서준은 조희선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그러자 조희선은 서서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어릴 적에 천둥 치던 날, 저랑 서라가 얼마나 겁에 질렸든지 기억나세요? 엄마는 휴가를 내고 폭우를 뚫고 집으로 달려와 우리 둘의 등을 이렇게 토닥여주시면서 잠들게 해주셨죠. 그리고 우리가 잠들자마자 다시 빗속을 뚫고 출근하셨고요.”진서준이 한 발 앞으로 내디디자 그의 주변에는 푸른빛과 붉은빛이 섞인 기운이 서서히 피어올랐다.그 기운은 마치 방벽처럼 진서준과 조희선를 둘러싸고 있었고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이 방벽을 뚫지 못할 것 같았다.신농곡의 세 제자가 온 힘을 다해 공격했지만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이
진서준은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으며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진서준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고 입고 있던 옷도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했다.“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 같군.”모두가 진서준의 이상한 상태를 눈치챘지만 아무도 기뻐할 수 없었다.신농곡 직속 제자 7명이 신농곡 외부 제자 한 명을 둘러싸고 공격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퍼지기라도 하면 나머지 세 종문 사람이 배꼽을 잡고 웃을 게 분명했다.“출소할 때쯤이 되어서야 엄마와 서라가 떠올랐어요. 엄마와 서라가 한 번도 교도소에 면회를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죠. 그때는 제가 엄마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오지 않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엄마는 아무리 화가 나도 다음 날이면 화가 풀리시던 분이셨죠. 그래서 그때 전 나름대로 추측했어요. 엄마와 서라가 혹시 사고라도 당한 게 아닐까 하고. 엄마와 서라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 멘탈이 무너져 버렸어요. 그제야 엄마와 서라가 제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달았죠. 그래서 출소하자마자 바로 엄마를 보러 갔어요.”쿵!그 한 걸음은 묵직하고 강력해서 신농곡의 제자 7명을 단숨에 열 걸음 이상 밀어냈다.다들 얼굴엔 핏기가 없이 창백했고 진서준의 기운에 크게 다친 게 분명했다.하지만 아무도 진서준이 어떻게 공격했는지 알아챌 수 없었다.이 모습을 본 모든 사람이 숨을 깊게 들이쉬며 경악했다.“사람을 더 부를까?”“부르지 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저 청년 하나 못 막는다는 게 말이 돼?”실력이 가장 강한 중년 남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다시 공격해.”이번에는 네 명의 육급 대종사들이 나섰다.하지만 그들 또한 앞서 나섰던 다섯 명과 마찬가지로 진서준 주변의 기운에 막혔다.한편, 진서준의 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진서준의 옷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고 바위처럼 단단하고 팽팽한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진서준의 허리에 있는 ‘진’자가 새겨진 옥패가 진동하며 은은한 금빛을 내뿜고 있었다.“출소 후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신농곡 제자들이 양쪽에 서서 한결같이 진서준을 주목하고 있었다.그중에는 육급, 칠급 대종사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팔급 대종사도 세 명 있었다. 이 제자들은 마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 같았다.진서준의 시선은 앞쪽에만 고정되어 있었고 양쪽에 선 제자들에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진서준의 눈에는 돌아갈 길밖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저 자는 누구인가?”나이가 많아 보이는 팔급 대종사 한 명이 진서준을 바라보며 용전한테 물었다.팔급 대종사 앞에서는 용전도 거만할 수 없어 급히 설명했다.“저자는 진서준이라 합니다. 이전에는 인피면구를 쓰고 김평안이라는 가명으로 우리 신농곡에 잠입한 자입니다. 오늘 밤, 진서준은 신농곡 다섯 장로가 부재한 틈을 타 뒤쪽 오두막으로 몰래 들어갔습니다. 마침 제가 장로각을 순찰하다가 진서준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진서준이 업고 있는 여자는 그의 어머니인데 예전부터 쭉 오두막에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진서준의 어머니가 작은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다들 장로각 뒤편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누구인지, 어떤 신분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진서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로군... 하지만 이 청년은 진씨 성을 가졌으니 진씨 가문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팔급 대종사는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저 청년의 목숨을 해치지 마라.”방금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던 육급 대종사 중 한 명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준용 형님, 아까 저희 셋이 함께 덤볐는데도 저 녀석의 선천강기를 뚫지 못했습니다.”“뭐라고?”모두가 그 말에 깜짝 놀랐다.육급 대종사 세 명이 전력을 다했는데도 이 청년의 선천강기를 깨뜨리지 못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혹시 이 녀석의 실력이 팔급을 초과하는 건가?이렇게 어린 나이에 팔급 대종사 경지에 이르렀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심지어 종주님도 60세에 들어서야 팔급 경지에 이르렀다.고준용은
이 옥패는 폭원단처럼 짧은 시간 동안 자기 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보물이었다.하지만 옥패 속의 힘은 최대 두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제한이 있었다.“내가 장담하건대 이 녀석은 절대 팔급 대종사의 실력이 아니야.이 녀석의 힘은 저 옥패에서 나오는 게 분명해. 우리는 그냥 시간을 끌기만 하면 돼. 이 녀석이 옥패에서 흡수한 힘이 사라지면 아무런 저항도 못 할 테니까.”용전은 시간을 끌기만 하면 진서준을 무조건 붙잡을 수 있다는 추측을 사람들에게 털어놨다.이 추측이 근거 없는 망상은 아니었다. 용전은 저 옥패 속의 힘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고준용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렇게 하자.”진서준도 용전과 제자들의 대화를 들었지만 얼굴에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시간을 끌겠다는 건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했다.오늘 진서준이 떠나겠다고 했으면 그 누구도 감히 진서준을 막을 수 없었다.“내가 너희들에게 꺼지라고 했는데, 귀가 먹었나?”진서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모든 이의 귀에 뚜렷하게 들려왔다.몇몇은 그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일그러졌다.“저 녀석이 뭘 믿고 저렇게 건방지게 구는 거야? 옥패의 힘이 사라지면 네 꼴이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그깟 빌린 힘으로 뭘 잘났다고 떠들어? 그 외부의 힘이 없었다면 넌 벌써 산산조각 났을 거야.”“조심해, 저 녀석이 목숨을 걸고 덮쳐들 수도 있어.”누군가 슬그머니 경고했다.“꺼지지 않겠다면 여기서 끝장을 내주지.”목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진서준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사람들이 진서준의 그림자를 보기도 전에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아악!”육급 대종사 한 명이 포탄처럼 멀리 날아가 수십 그루의 나무를 쓰러뜨리며 바닥에 무서운 기세로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바닥에 1미터 넘는 깊이의 구덩이까지 생겼다.순식간에 육급 대종사를 제압하다니, 이 실력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했다.이건 모두의 대사형 고준용조차도 이뤄낼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신농곡을 나선 진서준은 즉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달빛을 따라 세 시간을 걸어 끝내 깊은 산에서 벗어났다.장릉 마을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진서준과 조민영이 이전에 묵었던 호텔 방은 진서준이 떠날 때 체크아웃하지 않았고 대신 한 달을 예약해 두었다.그 목적은 어머니를 구한 후에 잠시 머물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진서준은 창문을 통해 자기가 묵었던 방으로 훌쩍 뛰어올랐다.어머니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진서준은 즉시 화장실로 가서 샤워했다.등을 제외하고 진서준의 온몸에 피가 묻어 있었다.이 피는 전부 진서준의 근육 사이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진서준이 예전에 운대산에서 피나는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렇게 무사하게 신농곡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온몸의 피를 깨끗이 씻어낸 후, 극도로 피곤한 진서준은 침대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다.옥패는 진서준에게 강력한 힘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몸에 대한 어마어마한 부담도 선사했다.이런 막중한 부담이 바로 진서준이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이유이기도 했다....진서준이 조희선을 데리고 신농곡을 떠난 후, 고준용은 즉시 신농곡의 대장로에게 그날 밤 상황을 알렸다.신농곡의 다섯 장로는 그때 이미 경성에 있었다.조희선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뜻밖에도 다섯 장로는 경악할 정도로 놀라지 않았다.다섯 장로는 사실 진서준이 사람을 구하러 갈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정확하게 언제 구하러 갈지는 몰랐다.게다가 다섯 장로는 조희선으로 진서준을 협박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조희선은 장로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조희선을 신농산으로 데려간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진요한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였다.다섯 장로의 목표는 단지 진요한과 그의 아들이었다.“이 사건에 진씨 가문이 관여했을 것 같나요?”대장로가 나머지 장로들에게 질문을 던졌다.“분명히 관여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진서준이 자기 아버지가 신농산에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죠.”“관여했다고 해도 어쩌겠어요? 우리 실력으로는 진
“제 실력이 지금보다 더 강력해지면 아버지도 구출해서 우리 셋이 다시 함께할 거예요.”조희선은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서준아, 엄마는 널 믿어. 자, 밥 식기 전에 얼른 먹자.”식사를 마친 후, 진서준은 조희선을 데리고 마을의 버스터미널로 갔다.조희선은 신분증이 없어서 고속철도나 기차를 탈 수 없었고 장거리 버스를 타야만 했다.진서준은 서울시로 가는 버스가 오후에 한 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어머니와 함께 그 버스를 기다렸다.두 사람은 약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버스에 올라탈 수 있게 되었다.버스 내부는 절반 이상 자리가 비어 있었고 진서준과 조희선은 중간쯤 자리 잡고 앉았다.하지만 버스 맨 뒤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커플이 진서준의 시선을 끌었다.그 커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무인이었다.남자는 종사 경지의 실력이었고 여자는 조금 약한 내공 경지의 무인이었다.신농곡의 입문 기간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장릉 마을은 번화한 편이지만 결국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보통 이런 지역에서는 무인을 보기 어려운 법이다.무인이 있다고 해도 종사급 강자를 만나는 건 더욱 드문 일인데 지금 버스 안에 공교롭게도 종사급 강자가 버젓이 있었다.하지만 진서준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진서준의 목표는 단지 어머니를 무사히 집까지 데려가는 것뿐이었다.버스가 출발한 후, 진서준과 조희선은 둘 다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버스가 마을을 막 벗어나려 할 때, 새로운 승객이 한 명 탑승했다.이 승객이 버스에 오르자마자 은은한 향수 냄새가 버스 안을 채우며 온갖 잡내들을 깔끔하게 덮어버렸다.진서준은 새로 탑승한 여자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여자는 보온성 좋은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었고 백설처럼 하얗고 매끈한 피부, 복숭아처럼 화사한 얼굴에 검은 생머리가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었다.진서준이 놀란 이유는 여자의 화려한 외모 때문이 아니라 이 여성 또한 무인과 가까운 실력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비록 무인은 아니었
안수지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이 도시에서 그녀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는 넘쳐났기에 임무 수행만 아니었다면 남자를 못 찾을 리가 없는 그녀가 마을버스까지 올라타서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어젯밤, 경찰서에는 현지 갑부의 아들이 신농산에서 여행하다가 중년 남녀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갑부의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경찰들은 즉시 모든 인력을 동원해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이 버스에 범인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안수지는 그 중년 남녀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버스에 파견된 것이었고 그들이 차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연스럽게 돌아보면서 주시하기 위해 진서준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그러나 그녀는 상황이 자기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토라진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흥!”그리고 곧장 다시 몸을 돌리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서에 메시지를 보냈다.경찰서에 남아 있던 경찰들은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곧장 고속도로 길목에 방어진을 치면서 군중을 대피시켰다!한편, 버스 안에서는 얼굴에 뾰루지가 잔뜩 난 청년이 결심한 듯 그녀를 향해 걸어오면서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예쁜 아가씨, 내가 생긴 것과 달리 돈은 엄청 많거든요!”안수지는 곧장 휴대전화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냉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당신이 돈이 많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그 청년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금시계를 뽐내려고 일부러 소매를 걷어 올렸다.“아니에요, 저는 그냥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청년은 자연스럽게 안수지의 옆자리에 앉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저는 여러 채의 집과 차, 억대의 자산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아내만 부족하거든요.”요즘 대부분의 여자는 비교적 현실적이라 돈을 위해서라면 자기보다 열 살이나 그보다 더 많은 중년 남자를 만나기도 했다!그 청년은 얼굴에 뾰루지가 잔뜩 나서 외모는 별로였지만, 젊은 데다가 엄청난 자산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물질녀한테는 비교적 인기가 많
안수지는 진서준이 계속 말이 없자, 마음속으로 그를 경멸하기 시작했다.‘남자도 아니야!’경찰서의 젊은 남자 경찰들은 그녀를 빼앗으려고 자기들끼리 머리가 깨질 정도로 다퉜지만, 진서준은 잘생긴 얼굴과 달리 맞서 싸울 용기조차 없는 것 같았다.얼마 후, 시끄러운 상황에 언짢았던 진서준은 짜증을 내면서 차갑게 한마디 했다.“닥쳐!”얼굴에 뾰루지투성인 청년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여태껏 아무 말도 안 해서 말 못 하는 바보인 줄 알았지. 그런데 나한테 무례하게 말해? 내가 전화 한 통만 치면 당신을 장릉 마을에서 못 나가게 할 수도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새까만 눈동자로 청년을 차갑게 쳐다봤다.“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버스는 왜 타지?”사실 다른 승객들도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그가 왜 버스를 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청년은 얼굴이 붉어진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고함을 질렀다.“난 그냥 버스를 타는 게 좋을 뿐이야. 당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나한테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전화해서 죽여버릴 수도 있어.”조희선은 진서준이 화를 참지 못해 청년을 때리느라고 귀가 시간이 지체될까 봐 그를 잡아끌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서준아, 됐어. 조금만 참아...”두 사람은 청년이 두려워서 피한 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겁에 질린 것 같았다.조희선의 태도에 청년은 더욱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들었어? 당신 엄마가 참으라잖아! 역시 오래 살았다고 세상 물정을 잘 아네! 내가 화나면 팔 하나쯤은 쉽게 부러뜨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안수지는 이 정도의 모욕에도 참고 넘어가는 진서준을 보고 기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곧이어 그 청년은 계속 안수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무시할 뿐이었다.얼마 후, 버스가 고속도로 길목에 도착했고 운전기사는 길목에 서 있는 많은 경찰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때 한 경찰관이 차에 올라타면서 운전기사와 승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
묘왕의 허락을 받은 후, 두 명의 오스프리 전투기 조종사는 망설이지 않고 진서준을 조준 후 즉시 발포 버튼을 눌렀다.요란한 소리와 함께 끔찍한 불빛 두 개가 오스프리 전투기의 하단에서 솟아올랐고 미사일은 직선으로 진서준을 향해 날아갔다.“정말 목숨을 버리겠다는 거야?”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묘왕을 쳐다보았다.“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겠지!”묘왕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처럼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모두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이 시점에서 물러나면 상대방이 이 기회를 틈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미사일에 맞아 죽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주먹에 죽게 될 것이다.미사일이 당장 떨어져 폭발할 것 같은 시점에서도 두 사람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스승님!”유문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묘왕을 불렀다.“도망쳐! 멍하니 뭐 하고 있어?”유기철은 유문기를 끌고 급히 먼 곳으로 도망쳤다.쾅!미사일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무시무시한 힘이 주위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덮쳤다.유기철과 유문기는 이미 가장자리까지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력한 기폭에 휘말려 바닥에 사정없이 쓰러졌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며 처참한 모습을 보였다.유문기가 폭발 중심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 있는 걸 확인했다.유문기 부자가 가장자리에서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폭발 중심에 있던 진서준과 묘왕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저놈이 죽었어, 드디어 죽었어!”유문기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유문기가 입에 담은 저놈은 묘왕을 가리키는 건지, 진서준을 가리키는 건지 유기철은 분간할 수 없었다.“문기야, 얼른 떠나자.”유기철은 정신을 차리고 유문기를 잡아끌며 떠나려고 했다.“안 돼요. 난 이날을 정말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유문기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에 끔찍한 미소를 떠올렸다.“늙다리가 오늘에 와서야 끝내 죽었네! 내가 널 이렇게 오래 모신 이유가 바로 네가 죽는 오늘을 위해서였어!”유문기는 거리낌 없이 호탕하
묘왕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체내의 선천강기를 돌려 방어 태세를 취했다.동시에 묘왕은 자기 몸에 숨겨둔 독충들을 풀어 진서준의 얼굴로 날려 보냈다.이 독충들이 가진 독은 전부 강력한 부식성을 지니고 있어 육급 이하의 선천 대종사 강기조차 이 독충들의 독성을 막아낼 수 없었다.독충과 진서준 사이의 거리가 반 미터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진서준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그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며 독충 무리를 덮쳤다.치지직...순간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독충들은 진서준이 내보낸 영화에 의해 몰살당했다.순식간에 가루로 변한 독충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이를 본 묘왕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그러나 묘왕은 지금 독충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진서준의 양주먹이 이미 묘왕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묘왕 역시 자기 양 주먹을 내밀어 진서준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발밑의 지면이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으로 갈라져 퍼져 나갔다.무시무시한 충격파에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빗물조차 접근하지 못했다.이를 꽉 악물고 있는 묘왕의 얼굴이 철판처럼 굳어졌다.묘왕은 산을 뒤엎는 듯한 공포스러운 힘이 주먹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게다가 묘왕의 주먹 끝 강기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의 상태도 묘왕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 않았다.백 년 가까이 살아온 묘왕의 내공과 실력은 역시나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우르릉!하늘에서 갑작스러운 천둥소리가 울렸다.번개의 섬광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찢어 잠깐의 백광을 드러냈다.곧이어 하늘에서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묘왕과 정면으로 겨루고 있던 진서준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헬리콥터 두 대가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묘왕과 속
비는 점점 거세졌고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빗물로 흠뻑 젖은 바닥에 쓰러진 유문기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단 한 방에 자기가 완전히 폐인이 되다니, 이 녀석의 실력이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진서준은 유문기를 멍청이를 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비겁한 수작질이나 하는 녀석이 감히 나랑 정면으로 겨룬다고? 널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아서 봐주는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너도 방금 그 탱크처럼 새까만 시체로 변했을 거야.”탱크조차 진서준의 일격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하물며 겨우 종사 경지에 불과한 유문기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지금 진서준에게 유문기를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는 일과도 같았다.하지만 그냥 죽이는 건 유문기에게 너무 가벼운 벌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진서준은 유문기의 뼈를 하나하나 산산이 부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왜 굳이 짐승이 되려고 해?”짐승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너... 너 대체 누구야?”유문기의 눈알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같은 20대 청년인데 왜 이 녀석의 실력은 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는 거지?“너희 집 큰 짐승이 안 알려줬어?”진서준이 유기철을 가리켰다.“누굴 짐승이라는 거야? 너야말로 짐승이야!”유기철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분노에 차 욕을 내뱉었다.“유기명 삼촌이 네 목숨을 살려줬을 때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사람을 시켜 유정을 독살하려고 시도해? 네가 짐승이 아니면 뭔데? 짐승조차도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알아. 넌 인간의 뇌를 가진 고등 동물인 주제에 자각도 없는 거야?”진서준은 유기철을 바라보며 섬뜩한 살기를 내뿜었다.“그건 그 여자가 죽어 마땅했기 때문이야!”유기철은 일말의 자책도 없이 계속 헛소리를 지껄였다.“다들 입 다물어!”묘왕이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더니 곧이어 원한에 가득 찬 시선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이봐, 오늘 네가 무슨 이
“스승님, 지금 어떡해야 하죠?”유문기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묘왕은 곧 평정심을 되찾으며 말했다.“당황하지 마. 우리에게는 아직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있어. 오늘 저 녀석이 설령 지선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여기서 끝장날 거야. 게다가 방금 그 일격으로 꽤 체력을 소모했을 게 분명해. 오늘은 묘강의 모든 주민을 동원해서라도 저놈을 기어이 지치게 만들어야 해.”묘강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었고 그중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남자만 10만 명이 넘었다.이런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상대하려면 지선도 버거울 게 뻔했다.죽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쳐서 움직일 수 없게 할 수는 있었다.이게 바로 묘왕이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그러나 진서준은 묘왕 일행에게 비장의 카드를 꺼낼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방금 참선검을 휘두르며 진서준은 곁눈질로 유기철을 발견했다.진서준이 발끝에 힘을 주고 허공에 뛰어오르자 그의 모습이 귀신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묘왕 일행 앞에 나타나 있었다.“너였구나!”유기철은 진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저 녀석을 알아?”묘왕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묘왕님, 이 사람이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진서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녀석이 예전에 우리의 계획을 망쳤습니다.”유기철이 서둘러 진서준을 소개했다.눈앞의 청년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묘왕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네놈이 내 오랜 계획을 그렇게 망쳐놓고 감히 혼자서 우리 묘강에 쳐들어와? 우리 묘강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묘왕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버럭 화를 냈다.하지만 진서준은 묘왕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유기철을 차갑게 바라보며 은은한 살기를 드러냈다.유기철은 그 시선에 수만 마리 개미가 자기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유기철, 자기 친조카에게 독을 퍼뜨리는 네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짐승이야.”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탱크는 현대 전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 중 하나였고 말 그대로 전쟁 기계라 불릴 만했다.완전히 무장한 병사들이 대전차 무기가 없이 탱크를 마주하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무도를 익힌 무인이라 해도 이런 존재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지금의 올기는 체내의 영기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묘강에 들어왔을 때 탱크를 만났다면 한 번 싸워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모든 희망을 진서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아래를 쓱 훑어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제 넌 그만 물러나.”“알겠습니다!”올기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곧바로 몸을 줄여 진서준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진서준은 몸을 천천히 놀려 기러기처럼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왔다.지면에 있는 사람들이 진서준의 움직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세상에, 저 용 머리 위에 사람이 서 있었어!”“어머나, 그럼 아까 그 괴수가 주인이 있었단 말이야? 그럼 그 주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일까?”“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겠어? 우리에겐 탱크가 있잖아. 게다가 전투기들도 곧 도착할 거라고.”놀라 두려워하는 사람도, 오만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한편, 묘왕과 유문기 두 사람은 여전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보아하니 저 녀석이 바로 그 짐승의 주인인가 보구나.”묘왕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저놈을 당장 죽여! 묘강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줘!”진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손바닥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참선검이 허공에 떠올라 진서준의 손으로 들어왔다.낯선 대한민국 청년을 보자 탱크 안에 있던 병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그들을 전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자가 겨우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라고?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노인이라면 차라리 납득이라도 했을 것이다.“포격! 포격해!”지휘관의 목소리가 작전 통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펑! 펑! 펑!포탄 세 발이 진서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동시에 발사되었다.포탄이 터지며 대지가 흔들리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