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얼굴도 점점 창백해졌다. 그녀도 지금 밖에서 왜 이런 소문이 떠도는지 알 수 없었다.임영운이 내뱉은 말에 그녀는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드디어 정신을 차린 그녀가 한 발자국 나서려는 순간 뜻밖에도 김예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형님,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김세자에요.”임씨 가문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인정해도 상관은 없는지라 이참에 그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헉!”이때, 사람들이 숨을 들이켜기 바빴다.그가 진짜 김세자라니? 당시 김씨 가문을 이끌고 무려 맨손으로 Q 그룹을 탄생시킨 위대한 인물이지 않냐는 말이다.임씨 가문은 이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물론 임영운은 별다른 생각 없이 말을 이어갔다.“역시! 앞으로 우리 집안은 매제한테 달렸으니 잘 좀 챙겨줘요.”반면, 임무경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만약 눈앞의 사람이 진짜 김세자라면 임씨 가문은 자기 입장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되 다른 3대 일류 가문과 협력해야 할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이때, 정군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말했다.“김예훈, 그만해! 여기가 어디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임은숙도 초조한 얼굴로 말을 보탰다.“어르신께서 큰소리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거 몰라? 제발 부탁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워!”정민아는 당장이라도 김예훈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유독 정소현만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형부께서 자신의 신분은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오늘 스스로 밝힌 이유는 뭐지?이때, 김예훈이 웃으면서 말했다.“임씨 가문을 챙겨주는 건 일도 아니죠. 제가 마음만 먹으면 단 한 마디로 충분해요.”그의 말을 듣자 정군과 임은숙은 기가 찰 지경이었다.허풍도 정도껏 떨어야지, 한 마디로 충분하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하하하!”이때, 현장에서 마치 불협화음 같은 폭소가 들려왔다.정지용은 배를 끌어안고 미친 듯이 웃어 댔다.“할아버지, 죄송해요. 더는 못 참겠어요. 웃음이 멈
“퍽!”이내 깜짝 놀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임옥희는 손에 든 지팡이로 김예훈의 등을 후려쳤다.그러고 나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은 모름지기 제 분수를 알라고 했다. 본인이 어느 정도인지 속으로 뻔하지 않아?”곧이어 그녀는 정군과 임은숙 앞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데릴사위 교육 똑바로 해. 아무 데서나 입을 놀려도 되는 줄 아나 본데, 만약 어떻게 가르칠지 모르겠다면 저놈을 데리고 나가! 생일은 잔칫날이지 망나니가 함부로 날뛰는 곳이 아니야!”따끔한 호통에 정군과 임은숙은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면서 고개를 떨군 채 감히 대꾸조차 못 했다.심지어 임은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다름 아닌 자기 친정집에서 그것도 성공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을 밤낮으로 그리워하지 않았냐는 말이다.다만 돌아오고 나니 이런 수모와 굴욕을 당할 줄은 몰랐다.임은숙은 당장이라도 목을 매달고 싶었다.이렇게 창피한데, 앞으로 임씨 가문 사람 앞에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이 모든 건 김예훈 저 못난 놈의 탓이다!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해서 그를 벙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한편, 정군은 화가 나서 치를 떨며 당장이라도 김예훈의 싸대기를 날리고 싶었다.하지만 임옥희의 앞에서 당사자가 가만히 있는 이상 그는 감히 손을 댈 용기조차 없었다.물론 정민아도 실망이 극에 달했다.시간이 흘러도 김예훈은 허풍 떠는 습관을 고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다.옛날부터 내내 본인이 총사령관이라는 둥, 김세자라는 둥 소리를 해서 이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재차 경고한 적이 있었다.일단 소문이 퍼지면 큰일이 날 게 분명했으니까. 심지어 이로 인해 정 씨 일가가 망할지도 모른다.그런데 자신의 충고는 귓등으로 듣고 점점 심해질 줄이야! 기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런 말을 하다니!임씨 가문을 챙겨준다고? 무려 경기도 일류 가문인 임씨 가문을? 심지어 임무경은 경기도 3인자이지 않냐는 말이다.고작 김예훈 같은 사람이 임무경을
망신도 이런 망신이 어디 있을까?그동안 정 씨 일가에서 충분히 굴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한평생 가장 굴욕적인 순간을 맞닥뜨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심지어 정군마저 이를 악물었다.그들은 오늘 임씨 가문에게 빌붙으려고 연회장까지 찾아왔다. 비록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성과는 내야 하지 않겠는가.하지만 지금은 웃음거리가 된 신세를 제외하고 한 게 뭐가 있냐는 말이다.“얼른 들어가지 않고 뭐해요? 집안 망신을 다 시켰는데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이때, 임영운이 불쑥 말했다.“본인들이 쪽팔리는 건 그렇다 쳐도, 설마 우리 아빠와 할머니까지 망신당하게 놔두실 생각인가요? 고모와 고모부가 아무렇지 않다고 해서 저희마저 체면을 잃을 이유는 없잖아요.”임영운은 한스러운 마음에 거듭 충고했다.정군과 임은숙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라 결국 고개를 떨군 채 빠른 걸음으로 홀 안으로 들어섰다.정민아와 정소현이 따라 서려는 순간 임씨 가문 사람이 그들을 막아섰다.“너희 둘은 남아서 저놈을 쫓아내!”임씨 가문 사람이 김예훈을 가리키며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김예훈이 대답하려는 찰나 정민아가 곧 울음을 터뜨릴 표정으로 애원했다.“제발 부탁인데 그 입 좀 다물면 안 될까? 그냥 따라와, 아니면 당장 폭발할 것 같으니까!”김예훈은 어쩔 수 없이 홀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이내 손님들이 착석하기 시작했다.원래 정민아 일가의 자리는 임옥희가 앉은 테이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이런 사달이 난 이후로 제일 뒤편에 임시로 마련한 공간으로 옮겨졌다.그들에게 앞자리를 내어주느니 차라리 비워두려는 것이었다.갑자기 자리를 옮겼다는 건 임옥희가 원래 정민아 일가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으나 이제 완전히 단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왜냐하면 신분이 중요한 사람만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법이니까.좌석만 놓고 보면 정군 일가족은 별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했다.오직 정소현만 임은유에게 끌려가서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얼른 앞으로 가자, 곧 우리 차례야.”정군과 임은숙은 체면 불고하고 제일 앞줄로 걸어 나가 반전의 순간이 다가오길 고대했다.심지어 임옥희가 그들이 준비한 선물을 보고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다음으로 500년의 역사를 지닌 청화 도자기 한 쌍입니다. 이는 송나라 후기 도요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소장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만약 한 쌍을 모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죠.”MC가 계속해서 다음 생일 선물을 소개했다.이때, 임은유와 여문성이 일어나 동시에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어르신, 복 많이 받으시고 만수무강하세요.”순간, 주름이 자글자글한 임옥희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녀는 MC한테 청화 도자기를 가져다 달라고 손짓하더니 한참을 살펴보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은유야, 애썼구나.”“별말씀을요, 엄마의 마음에만 드신다면 저희가 가진 걸 다 내놓아도 좋아요!”임은유가 웃으면서 말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는 온통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모든 선물을 통틀어 이처럼 귀한 물건은 없을 것이다.반면, 임은숙과 정군은 어안이 벙벙했다.왜냐하면 아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이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임옥희는 골동품을 가장 좋아했기에 김예훈이 준비한 선물이 골동품이라는 정소현의 말을 믿고 어르신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그러나 임은유의 귀한 청화 도자기에 비하면 그들이 준비한 선물은 축에도 못 낄 가능성이 99%였다.정소현이 설명하기를 선물 박스가 고작 손바닥만 한 크기라고 했는데, 그 안에 어찌 귀중한 물건이 들어가겠냐는 말이다.이때, 서로 눈이 마주친 정군과 임은숙은 텔레파시가 통한 듯 올라가서 선물을 다시 가져오려고 했다.하지만 그 순간, MC가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자, 그리고 다음 선물은 정군과 임은숙 가족이 준비한 선물인데... 응?”두 사람의 이름을 발견한 MC는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그러고는 무의식중으로 객석에 있는 정군과 임은숙을 힐끗 쳐다보았다.MC의
“이...!”임옥희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정민아 일가는 대체 무슨 뜻이냐는 말이다. 곰팡이가 핀 진흙 덩어리를 선물로 보내다니? 죽지도 않은 늙은이라고 비꼬는 건가?“언니, 만약 엄마한테 선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요즘 돈이 딸려요? 차라리 과일이라도 보내지, 저런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요?”임은유도 어이가 없었다.사실 그녀는 언니를 대신하여 변명해주고 싶었지만, 화가 나서 부르르 떨고 있는 임옥희 앞에서 감히 끼어들 수가 없었다.한편, 임은숙은 그냥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차라리 가까이 오지나 말 걸, 기껏 앞줄에 가서 모두의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었더니 이까짓 물건을 선물한 신세로 전락하다니.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친정뿐만 아니라 성남시, 심지어 경기도를 통틀어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참석하지도 않았을 텐데.이게 다 김예훈 탓이었다. 어쩌면 시키는 일마다 망쳐버린단 말이지? 고작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것조차 이 모양이라니!임은숙은 당장이라도 김예훈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폭소를 터뜨리는 사람들 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 씨 일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웃기 바빴다.쓰레기는 쓰레기일 뿐, 어딜 가든 변함이 없었다.임씨 가문이라는 재벌가에 빌붙으려는 욕심은 단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정지용은 이따가 정동철을 꼬드겨 손님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 정민아 일가를 쫓아낼까 하는 고민도 했다.이런 망신스러운 짓을 저지르고도 과연 성남시에 남아 고개를 쳐들고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일찌감치 꺼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이때 임영운이 벌떡 일어섰다.그를 발견한 MC는 선물을 들고 말했다.“임씨 가문의 큰 손자 임영운 씨는 본 제이드 한 개를 선물했습니다. 이는 유서 깊은 물건으로 아주 특별한 옥석인데, 나이 드신 분들이 장기간 착용하면 류머티즘과 편두통을 완화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임영운이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항상
그런 김예훈을 보자 옆에 있던 정민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경고했다.“김예훈, 또 뭐 하려고? 그걸 뚫어지라 쳐다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갑자기 꽃으로 변하기라도 한대?”김예훈이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뭘 알아? 이건 선우건이 사부님께서 준 물건이라고, 분명 가치가 어마어마할 텐데...”그의 말에 정민아는 피식 웃었다. 선우건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김예훈이 아무리 감정에 능해서 그분의 눈에 들었다고 해도 무려 선우건이가 준 물건이라고? 대체 누굴 속이려고 드는 거지?한편, 생일 선물은 여전히 홀 안으로 계속 전달되고 있었다.문준남 일행도 선물을 준비했다. 물론 그렇게 비싼 물건들은 아니었고, 대부분 흔하게 볼 수 있는 서예나 그림 같은 것이었다.다만 어디까지나 기관에 속하는 사람들인지라 생신연에 참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선물과 다름없기에 임옥희는 좋은 물건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버렸다.MC도 눈치 빠르게 그들이 준비한 선물을 한껏 과장해서 추켜세웠다.마지막으로 임무경이 손에 선물 박스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엄마가 꿈속에도 그리는 물건이 있다는 걸 알고 미리 준비했어요.”임옥희는 선물 박스를 건네받아 열어보았고, 안에는 은은한 향을 풍기는 거무스름한 단약이 들어 있었다.“이건... 설마 선우 가문의 폐 회복 단약이니?!”임옥희는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맞아요. 이게 바로 선우 가문의 폐 회복 단약이죠.”임무경이 설명을 보탰다.“모두가 알다시피 선우 가문은 수십 년 전에 우연히 고대 유물을 입수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를 통해 처방전과 오래된 알약 몇 개를 얻었는데, 다름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폐 회복 단약이죠. 많은 연구 끝에 이 알약을 복용하면 폐를 맑게 하고 습기를 제거하며 간을 해독해주고 시력을 회복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죠. 게다가 약효가 기가 막혀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직빵이죠. 하지만 폐 회복 단약에 필요한 원재료가 너무 귀한 탓에 선우 가문에서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쏠렸고, 김예훈은 또다시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대상이 되었다.이때 그는 MC가 바닥에 버린 진흙 덩어리를 가리키며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혐오스럽다는 티를 팍팍 냈다.데릴사위 주제에 어찌 이처럼 뻔뻔하단 말인가? 이 타이밍에서 감히 무슨 소리를 내뱉는 거지?분명 쓸데없는 물건을 선물이랍시고 줬으면서 임무경이 폐 회복 단약을 언급하자 저 진흙 덩어리가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라고 우겨대다니?이는 무려 경기도 일류 가문인 선우 가문 회장 선우건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었다!당시 경기도 국방부 1인자가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도 결국은 손에 넣지 못했다.그런 분이 김예훈 같은 데릴사위에게 줬다고? 대체 왜? 김예훈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서?“김예훈! 지금 뭐 하는 거야? 제발 가만히 있어!”정민아는 다급한 나머지 발만 동동 굴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소란을 피우냐는 말이다.자신들이 아직 덜 비참한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건가?더 이상 망신당하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다들 입 다물어!”이때, 임옥희가 버럭 화를 냈다.정민아는 깜짝 놀라 입맛 벙긋했고, 정군과 임은숙마저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엄마, 설마 저 데릴사위의 말을 믿는 건 아니시죠?”임무경은 불쾌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한정판 폐 회복 단약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김예훈이 감히 본인이 준비한 진흙 덩어리가 오리지널이라고 우기다니! 어찌 체면이 서겠냐는 말이다.임옥희는 순간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김예훈을 바라보았다.“본인이 선물한 쓰레기가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라고 하잖아. 그렇다면 기회를 줄 테니까 어디 한번 증명해 보던가?”“맞습니다! 저 데릴사위가 어떻게 증명하는지 두고 봅시다.”손님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사실 임옥희는 김예훈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속셈이었다.지금 이 타이밍에서 김예훈이 해야 할 일은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녀의 용서를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은 하나같이 김예훈의 싸대기를 후려갈기고 싶었다.여기가 어디라고 이런 역겨운 짓을 한단 말인가? 다분히 고의적인 게 확실했다.반면, 정군과 임은숙은 테이블 밑으로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이렇게 창피할 수가! 이미 지나간 일이라 그나마 기억 속에 잊힐 뻔했는데, 저 원수 같은 놈이 글쎄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바로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라고 떠벌리지 않겠는가!지나친 허풍 때문에 화를 부르는 게 두렵지도 않나?정군은 당장이라도 김예훈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이때, 정지용이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제가 정 씨 일가를 대신하여 말씀드리자면 김예훈이 우리 정 씨 일가의 데릴사위는 맞지만, 그가 저지른 만행은 저희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정 씨 일가 사람마저 이런 소리를 하자 다른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역겨운 알약이 절대로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이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회장님, 이런 사람을 아직도 봐주시는 겁니까? 얼른 쫓아내세요.”“맞아요, 마음먹고 엿 먹이려는 게 분명해요!”“이런 사람은 수준 높은 자리에 참석할 자격조차 없어요.”임영운은 참다못해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다.“할머니, 제가 대신 화장실에 버려줄게요. 괜히 악취 때문에 식사하는 사람만 불쾌하지 않게.”“잠깐!”이때 임옥희가 불쑥 끼어들었다.곧이어 그녀는 더러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알약을 집어 들고는 코에 댄 채 한동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그러고 나서 노안 안경을 쓰더니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현재 임옥희의 모습은 마치 손안의 알약을 실수로 망가뜨릴까 봐 신중하기 그지없었다.그녀의 입가에 차츰 미소가 번졌고, 심지어 이는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웃음이었다.순간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설마 이 알약은 보통 물건이 아니란 말인가?족히 몇 분 동안 들여다본 임옥희는 벌떡 일어나 부들부들 떨며 땅바닥에 버려진 선물 박스를 집어 들고 마치 보물을 다루듯 알약을 원래 위치에 놓았다.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