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운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나지막이 말했다.“할머니, 설마 이게 그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예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 단약은 선우 마스터 님의 목숨과도 같은 약인데, 절대 데릴 사위에 지나지 않는 놈에게 넘길 리가 없어요!”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며 한마디씩 거들기 바빴다.“큰 어르신, 요즘에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절대로 그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그래요! 이건 다른 것도 아니고 약이에요! 병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큰 어르신, 이놈이 이렇게 귀한 약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임무경은 그 누구보다 심각했다.“엄마, 선우건이 마스터의 손에 있는 그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은 경기도 군대의 우두머리도 넘보지 못하는 귀한 약이에요. 그런데 그걸 남도 아닌 데릴 사위한테 줬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놈 말에 속으면 안 돼요!”그는 늙은 어머니가 데릴 사위의 말을 믿고 아무 약이나 먹었다가 괜히 몸에 탈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 앞섰다.이에 임옥희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아들을 꾸짖듯 말했다.“네가 이 단약을 구할 수 없다고 다른 사람도 못 구할 것 같아? 이 단약은 내가 선우 가문의 연회에서 열 번이나 넘게 봤어! 심지어 몇 번이고 만져도 봤어! 그 단약을 본 사람으로써 이 단약이 바로 선우건이가 목숨처럼 아끼던 단약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왜 여기에 나타난 건지 모르겠지만 이 단약은 진짜야!”큰 어르신의 말에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김예훈을 쳐다봤다.선우건이가 목숨처럼 아끼던 단약을 왜 김예훈이 갖고 있는 것인가? 도저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큰 어르신은 선물 박스를 꼭 껴안은 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이때, 임영운이 큰 어르신 가까이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선물 박스를 빼앗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큰 어르신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영운아, 뭐 하는 거야!”임무경도 깜짝 놀랐다.“야, 이게 무슨 짓이야!”다른
정민아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기의 남편이 영원히 출세하지 못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가 도적질을 하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임무경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김예훈, 지금 여기 경기도 경찰청 서장이랑 성남 경찰서 서장도 있어! 사실을 말하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줄 지도 몰라.”그는 김예훈을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임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일잔치에 뇌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면 임씨 가문은 앞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기회에 뇌물을 김예훈한테 돌려주고 선우건이의 용서를 받으려는 꿍꿍이었다. 그래야 임씨 가문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그러나 김예훈은 피식 웃기만 했다.“큰 어르신, 이 단약은 제가 정정당당하게 얻은 겁니다. 절대 뇌물이 아니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복용해도 괜찮으니까 시름 놓으세요.”“진짜야?”큰 어르신은 사실 당장이라도 단약을 복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네, 이 단약은 선우건이가 직접 저한테 준 겁니다. 그 자리에 소현이도 있었어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소현이한테 물어보세요.”“소현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정소현한테로 향했다. 그녀는 자기한테 집중된 눈길에 긴장되었지만 사건의 자초지종을 모두 말하는데 성공했다.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다시 김예훈한테로 눈길을 돌렸다.저놈이 도대체 무슨 운을 타고 난 것인가?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그러니까 정소현한테 사과한다고 이 단약을 저놈한테 준 거란 말이야? 그리고 너희들은 이 단약이 뭔지도 모르고 큰 어르신 생일 선물로 준 것이고?”임영운은 자시의 두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같은 시각, 임무경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는 이 단약을 얻으려고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가며 인간 관계를 넓혀왔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데릴 사위가 손쉽게 얻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런 거였어? 나는 또 네가 특수
그러나 김예훈은 매우 진지했다.“선우건이 사부님이 줄 겁니다...”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선우건이가 그의 체면을 봐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그래, 그래. 네 효심은 알겠어.”하지만 임옥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어찌됐든 네 마음은 잘 알겠어.”이윽고 큰 어르신이 정군, 임은숙과 정민아를 가리키며 명령했다.“거기 서서 뭐하는 거야? 얼른 여기 와서 앉아!”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큰 어르신 앞에 자리를 잡았다.큰 어르신은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마침 여기 다 모였으니까 한가지만 공고하겠어. 오늘부로 나의 큰딸 임은숙과 임은숙 가족은 정식으로 다시 임씨 가문의 가족임을 고한다. 앞으로 내 체면을 봐서라도 임은숙하고 이 아이 가족한테 잘해줘!”이 말에 임은숙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임씨 가족으로 돌아오게 될 날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정군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큰 어르신 덕분에 앞으로 두발 쭉 뻗고 편히 잘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부터 임씨 가문이 그의 뒤를 지켜주니 두려울 게 없었다.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에 정민아 역시 기뻤다.“은숙아, 그리고 사위, 이 데릴 사위가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효심 하나는 충분하니까 앞으로 잘해줘.”큰 어르신은 김예훈이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녀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단약을 가지고 나타났으니 이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정군과 임은숙은 김예훈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예훈아, 네가 드디어 큰일을 해냈구나! 아까는 우리가 잘못했어!”“어머님, 아버님이 기쁘시다면 저도 좋아요.”김예훈이 웃으며 답했다.정군과 임은숙은 허리를 쭉 펴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부터 그들을 함부로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데릴 사위의 운 덕분이었지만 큰 어르신의 인정을 받았으니 더할 나위가 있겠는가?한편,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후회가 막심했다. 잘못을 만회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이라도 이 한 몸 불사를 텐데.임무경과 임은유 일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임씨 큰 어르신 역시 흠칫 놀랐다.“무경아, 경기도의 하정민 씨랑 공문철 씨도 초대한 거야? 진짜 대단해!”임씨 가족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회장님, 큰 어르신 생신을 축하해주려고 부른 거예요? 어떻게 초대한 거죠?”“임씨 가문이 정상에 오를 날이 멀지 않은 듯하네요!”두 거물을 초대한 건 체면이 서는 일이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하객들도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왔다.얼마 전, 김씨 큰 어르신의 생신잔치에 공문철이 참석했다고 들었지만 잠시 들른 거라고 했다. 그러나 임씨 큰 어르신의 잔치에 경기도의 우두머리가 왔으니 임씨 가문의 실력이 김씨 가문보다 더 대단하다는 뜻 아닌가?임옥희는 이럴 필요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눈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무경아, 도대체 어떻게 초대한 거야? 이건 간단히 언급하고 끝낼 일이 아니야!”그러나 임무경 역시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자기 체면을 깎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며칠 전에 그냥 지나가며 말했는데 두 분께서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어요.”한편, 구석에 있던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 얼마 전, 하은혜가 하정민이 급한 일로 그를 찾는다는 문자를 보내왔었다. 김예훈은 별 생각없이 임씨 큰 어르신의 생신잔치가 끝나면 만날 수 있다고 답장했다. 그러나 하정민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공문철과 함께 왔다는 건 진짜 큰일이 났다는 뜻이었다.김예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직접 하정민을 마중하러 나가기로 했다.그러나 김예훈이 몸을 일으킨 순간 정동철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모두들 앉아서 뭐하는 거야? 얼른 나가서 두 분을 마중해야지!”이 말에 임씨 가족들이 일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임옥희는 아들을 보며 말했다.“무경아, 앞으로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는 미리 말해야 해. 이런 분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큰 어르신은 단약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뻐했다. 단약은 그녀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하정민과 공문철은 임씨 가문의
“그럼 어떡해?”김예훈과 얘기를 나누러 온 것이라 아무런 선물도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임씨 큰 어르신도 마중 나왔으니 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두 사람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은 후 쓴웃음을 짓고 차에서 내렸다.하정민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임옥희한테 다가갔다.“큰 어르신,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생신 축하드려요!”이윽고 공문철도 축하해줬다.“생신 축하드립니다!”임옥희는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임씨 가문에 관리직 인재가 많았지만 그 누구도 이 두 사람과 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큰 어르신은 체면이 우뚝 서는 듯했다. 두 사람이 아무런 선물을 내놓지 못해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유독 임무경만이 뻘쭘했다.“얼마 전에 그냥 지나가면서 한 말을 기억하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히 말한 탓에 초대장도 드리지 못했네요. 부디 너그럽게 봐주세요.”하정민은 공문철을 힐끗 쳐다봤다. 공문철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대꾸했다.“지나가는 길에 번뜩 생각나서 들른 거야. 그럼 들어가서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얼른 잔치를 이어가...”이때 임옥희가 물었다.“혹시 급한 일이라도 있으세요?”“네, 우리는 그냥 사람 찾으러 온 겁니다.”공문철이 답했다.그의 말에 모두들 궁금함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경기도의 우두머리를 움직이게 했단 말인가?이때, 공문철은 김예훈을 발견하고 그와 인사를 나누려 했지만 하정민이 그를 말렸다. 두 사람은 결국 다시 차에 올라타 주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하정민과 공문철이 떠난 후 잔치는 계속 이어졌다.두 사람이 다녀간 후 임옥희의 주의는 정민아로부터 임무경한테로 옮겨졌다.같은 시각, 하은혜가 김예훈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밖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급한 일이라 얼른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김예훈은 두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 얼른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먹는 그
차 뒷좌석엔 경기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김예훈이 문뜩 나타나자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켰지지만 김예훈이 바로 말렸다.“아무데나 가죠.”김예훈이 손을 휘 저으며 아무 곳에 간다고 했지만 하정민은 기사한테 얘기 나누기 좋은 기관으로 가자고 했다. 비록 호화로운 곳은 아니었지만 고풍스러움이 넘쳤고 직원이 가져다주는 차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김예훈은 차 한모금을 마시고 말했다.“근데 무슨 일로 절 찾은 거예요?”그는 공문철한테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하정민은 웃으며 말했다.“김예훈 씨, 이일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경기도를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김씨 가문의 모든 재산이 CY그룹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김씨 가문을 거느리는 사람은 김연철 씨인가요?”이에 김예훈이 간단하게 답했다.“네, 맞아요.”하정민이 말을 이어갔다.“그럼 김예훈 씨는 이제 어떻게 할 계획이세요? 혹시 성남시 5대 가문부터 손 댈 예정입니까?”김예훈이 차 한모금을 마셨다.“저랑 선우 사부님은 친한 사이입니다.”“그럼 나머지 네 가문입니까?”하정민의 표정이 어두웠다.“맞으면 어떡할 거고 아니면 어떡할 건데요?”김예훈이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하정민도 3년 전 있었던 일과 연관이 있단 말인가?“맞다면 살수는 두지 말아주세요.”하정민은 한숨을 푹 내쉬고 공문철을 쳐다봤다. 이에 공문철이 불안한 눈길과 함께 서류 보따리를 꺼내 김예훈 앞으로 밀었다.김예훈은 서류들을 대충 훑어보고 말했다.“3년 동안 여기 있는 가문들이 많이 커졌네요. 그런데 이건 왜 보여주는 거죠?”공문철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김예훈 씨, 임씨 가문은 김예훈 씨 아내의 친정이지 않습니까? 임무경도 경기도에선 중요한 인물입니다. 임씨 가문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많은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리고 나씨 가문은 경기도의 은행업을 책임지고 있고 손씨 가문은 건축업, 윤씨 가문은 경기도의 경매업과 쇼핑몰 사업을 독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하정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뱉었다.“저 사람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내가 들은 바론 우리 나라의 우두머리도 저분을 탐내고 있어. 말로는 저분을 서울로 파견해 국방부 총사령관으로 위임시킬 거래. 그러니까 저분이 뭘 하든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임무는 우리 분수를 잘 지키고 저 사람 눈엣가시가 되지 않는 거야.”공문철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씨 어르신이 우리 집 몇 놈이 너무 나댄다고 했어. 지금 당장 가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혼을 내야지!”...같은 시각, 김예훈은 성남대호텔로 돌아왔다. 잔치는 이미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경기도의 두 우두머리가 직접 와서 축하를 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나 할 것 없이 잔치가 벌어지는 호텔로 모여들어 축하를 전하기 바빴다.성남시의 형사 반장인 이도운은 당장 임영운을 형사 부반장으로 승진시켰다. 이 소식에 임무경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직위에 연연할 가문이 아니었지만 형사 반장의 파격 승진에 체면이 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임옥희도 흥분하긴 마찬가지였다.“우리 가문에서 진짜 용이 나는구나!”임무경은 어깨를 으쓱거렸다.“내가 임영운 나이일 땐 이런 힘을 가지지 못했어. 순조로우면 영운이가 성남시의 우두머리가 될 지도 몰라!”임영운 본인도 기뻤다.“아버지, 이게 모두 아버지 덕분이에요. 아버지의 초대가 아니었다면 그 두 분께서 여기로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하하하...”임무경은 호탕하게 웃었다. 비록 하정민과 공문철이 누굴 만나러 왔는지 궁금했지만 어찌됐든 가문에 보탬이 되었으니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이때, 임씨 큰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영운아, 앞으로 열심히 해. 앞으로 널 위해 가문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을 거야!”이 말에 임은유 가족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부럽기는 정민아 가족도 마찬가지였다.김예훈이 선물한 단약은 벌써 잊은 것인가? 왜 임영운한테만 잘해준단 말인가?운과 실력은 결국 차이나는 법이다!정군과 임은숙은 서
말을 마친 임옥희는 정군과 임은숙을 보며 말했다.“사위 교육 좀 제대로 시켜. 민아 앞날이 창창한데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면 안 되지! 결정해야 할 건 일찍이 결정하는 게 좋아.”임옥희는 가문이 곧 상류에 진입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김예훈 같은 데릴 사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가 귀한 단약을 선물로 줬더라도 별 소용은 없었다. 큰 어르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젊은이들의 잠재력과 능력이었으니 말이다.정군과 임은숙은 큰 어르신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네, 알겠습니다. 어머니!”잠시 후, 정민아 가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제야 큰 어르신이 임무경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무경아, 넌 쟤네 가족을 어떻게 생각해?”임무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정군과 은숙이는 사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죠. 하지만 민아는 꽤나 괜찮은 아이예요. 하지만 왜 저런 사람과 결혼했는지 모르겠네요. 참 아쉬워요.”큰 어르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우리 가문이 상승세를 탄 건 맞지만 우리는 비즈니스 쪽에 많이 약해. 민아가 자원을 가문으로 끌어들이면 우리도 곧 1류 가문이 될 수 있을 거야.”이에 임무경이 대꾸했다.“알겠어요, 엄마. 괜찮은 놈 골라 정민아 짝으로 만들어 줄게요. 민아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저 데릴사위를 내쫓는 건 식은 죽 먹기죠.”“신중하게 움직여. 민아가 이혼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대. 우리 가문은 민아를 필요로 하니까 괜히 사단 만들지 마.”큰 어르신이 귀띔했다.임무경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정씨 가족들을 쳐다봤다.“엄마, 정씨 가족이 필요하다면 정씨 증조할아버지한테 부탁하면 되지 않습니까?”“뭐? 임씨 가문 사람도 아닌 그 자를 어떻게 믿어? 임은숙이 여태까지 정씨 가문을 휘어잡지 못했는데 민아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지금으로써 가장 좋은 방법은 정민아를 우리 편으로 만들고 정씨 가문을 거덜내는 거야! 그러면 우리 가문도 1류 가문이 될 수 있을 거고 김씨 가문을 초
세이이치로의 말은 섬뜩하기만 했다.그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김예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든 반드시 설명을 요구할 거예요. 김예훈은 반드시 죽어야겠어요! 타케이 가문이든 야마구치파든 절대로 목숨을 이대로 낭비할 수 없어요.”세이이치로한테는 타케이가 일본의 영웅인 것 같았다.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던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살기가 가득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복수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는 두건이 묶여있었다.김예훈을 찾아내 산산조각 내지 않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김예훈을 증오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본 진세은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속으로 깨 고소했다.이번 사건으로 홍성파는 체면이 말이 아닌 데다 라이언 킹까지 죽게 되어 손실이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아직 내세울 만한 고수가 없어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진세은은 사실 화를 꾹 참아보려 하기도 했다.그런데 일본인이 직접 나선다는데 김예훈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진세은은 직접 나서진 못해도 김예훈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보고 싶었다.이는 타케이 가문, 일본 야마구치파, 그리고 양국 외교와 관련된 문제였다.진세은은 김예훈이 어젯밤처럼 작은 수단을 이용해서 전화 몇 통으로 미디어의 힘을 빌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로 믿지 않았다.‘김예훈, 곧 죽을 날이 올 거야!’진세은은 이런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깊게 한숨을 들이마시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진세은은 세이이치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타케이 가문의 너그러움에 죄송할 따름이네요. 저희 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타케이 도련님이 김예훈 그놈한테 살해당하긴 했지만, 저희 홍성파에서 보호해 드리지 못했던 것도 책임 있다고 하셨어요. 저희 성의를 보여드리기 위해 오늘부터 외곽에 있는 땅은 야마구치파에 드리려고 해요. 이 중에 여러분이 눈여겨본 땅도 포함되어 있고요. 앞으로 건설회사를 찾기
저녁 무렵 진주 호텔.이름은 호텔이라고 해도 사실 진주에서 유일한 숙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례식장이었다.독채 별장도 있어 전문 고위층들이 사용하고 있었다.타케이는 부검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곳 어딘가 구석에 옮겨졌다.한적한 이곳 환경은 너무나도 쾌적했다.타케이 시신이 옮겨지고 나서 타케이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나오키와 그의 아들딸 외에도 타케이 가문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다.타케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저녁 7시.검은색 벤츠 마이바흐 차량이 소리 없이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차 문이 열리고, 홍성파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뒤이어 얼굴이 다소 수척해 보이는 젊은 여성이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하루 종일 취조받긴 했지만, 진주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보증 서준 덕분에 바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여전히 예쁜 그녀는 바로 홍성파 우두머리의 큰 따님인 진세은이였다.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타케이에게 향을 올리는 것이다.전체 장례식장에 은은한 향이 퍼지고, 진세은은 영정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앞으로 다가가 90도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개를 숙이는데 가슴골이 훤히 보였다.본능적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본 세이이치로는 눈빛이 흔들렸다.진세은의 신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그저 가볍게 눈인사할 뿐이다.“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진세은은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저의 아버지께서 직접 타케이 도련님께 향을 올리려고 했는데 범인을 찾기 전까지는 차마 찾아뵐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진주 경찰서 서열 1위 님 찾으러 가셨어요. 어떻게든 제대로 된 설명을 해드릴 거예요. 저희 진주에도 법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려야죠. 그리고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일본 손님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은 저희 홍성파의 책
“그래서 바로 총독님께 문자를 보냈죠. 총독님 같은 분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의사 선생님인 척 문을 두드릴 때부터 살인범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죠.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다 아시잖아요.”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당신을 어떻게 해보려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어리석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알았어요?”“너...”루미코는 직접 짠 계획이 처음부터 김예훈에게 간파당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까 했던 모든 일은 그저 미친 광대나 다름없었다.“이런 제기랄!”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무시당해도 고개 숙일 생각이 없었다.이때 그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나까지 죽이려고? 우리 타케이 가문에서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능력 있으면 나를 죽여보든가! 아니면 천군만마를 이끌고 너를 죽이러 다시 올 거야. 타케이 가문은 죽을지언정 절대 모욕당할 순 없어! 와봐! 나를 죽여보라고!”김예훈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나를 자극해서 너를 없애게 하려는 거야? 아쉽게도 난 너를 죽일 생각 없어. 타케이 가문에서 이유없이 나를 죽이겠다고 소리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이때 김예훈의 손짓 하나에 동하임이 수갑을 꺼내 루미코의 손발에 직접 채웠다.그러고는 루미코가 출혈 과다로 사망할까 봐 개인 의사를 불러 그녀의 상처를 봉합시켰다.“아무 이유없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루미코는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였으면서 왜 억울한 척이야.”“누가 그래? 타케이가 내 손을 더럽힐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한껏 싫증난 얼굴이었다.“그리고 난 진주의 ‘착한 시민’이라고. 모욕죄로 배상해야 한다는 거 몰라?”루미코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때 동하임이 담담하게 말했다.“부검 결과에 의하면 당신 동생은 아침 7시에 살해되었어요. 그 시각 김 도련님은 저랑 함께 동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난처하게 하지 않을거니까요. 김현민 도련님께서 이미 경고했거든요. 비록 김예훈이 동씨 가문과 손잡았다고 해도 김현민 도련님을 봐서라도 인질로만 삼았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니면 그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를 낼지도 모르겠거든요.”루미코는 검을 꺼내 동하임을 먼저 제압한 후 김예훈을 협박하려고 했다.슉!바로 이때, 갑자기 타케이 시체 밑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칼로 루미코 복부를 찔렀다.“풉!”미처 예상하지 못한 루미코는 피를 뿜어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영안실에 동하임 외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결국 그녀는 후회할 시간도, 질문할 시간도 없이 뒤돌아 영안실을 떠나려 했다.쨕!루미코가 영안실을 벗어난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녀의 뺨을 때렸다.순간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루미코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속에 어마어마한 힘이 휘몰아쳐 힘없이 무너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문밖에서 김예훈이 무표정으로 걸어들어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루미코 씨? 쯧쯧. 타케이 가문에 그렇게 인력이 부족해요? 사람을 죽이려고 해도 직접 나서야 하는 거예요? 돈 없으면 말씀하시지. 제가 대신 돈을 들여서 킬러 몇 명을 고용해 드릴 수 있었는데. 타케이 가문이 돈이 아까워서 킬러도 고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을까요?”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상대방의 마스크를 벗겨내자, 타케이와 닮은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내가 하임 씨를 인질로 삼을 줄 어떻게 알았던 거야?”루미코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루미코는 자신이 왜 노출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특히 아까 그 칼 한 방에 전투력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은 그녀의 원망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일할
동하임이 본능적으로 말했다.“의사 선생님, 이분은 제 친구인데 좀 양해해주시면 안 될까요?”“양해요? 양해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의사 선생님은 동하임의 명찰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동하임 씨였네요. 그런데 아무리 동하임 씨라고 해도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분을 들이는 거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밖에 나가서 먼저 등록하고 기록을 남겨야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먼저 등록하러 다녀올게요. 등록실이 어디죠?”의사 선생님은 직접 밖으로 나가 등록실 방향으로 안내했다..“저쪽에 보시면 등록실이 있을 거예요. 송학민이라고 등록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감사해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텅 빈 복도를 걸어갔다.의사 선생님은 김예훈의 모습이 사라져서야 두 명의 경찰한테 시선을 돌렸다.“어머!”그녀는 갑자기 발목을 접질렸는지 비명을 질렀다.경찰들은 본능적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을 쳐다보게 되었다.샤샤샥!두 명의 경찰이 시선을 돌린 순간, 그녀가 휘두른 소매에서 하얀 연기가 퍼져 나왔다.두 경찰은 그대로 휘청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다시 시체를 확인하려던 동하임은 이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결국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신 누구야. 아무런 원한도 없는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뭐 하려는 거야. 누가 보냈어.”동하임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총을 꺼내려 했지만 방호복을 입고있는 관계로 재빨리 빼낼 수 없었다.그러자 정체 모를 그녀가 문을 잠그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총독님 딸을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저도 곤란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잘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에요. 원망하려면 제 동생을 죽인 김예훈을 원망하세요.”“동생?”멈칫한 동하임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시체를 한번 쳐다보았다.“타케이 누나라고?”상대방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맞아요. 타케이
뚜뚜뚜.김예훈은 걸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복도 끝에 있는 영안실 입구에는 경찰 두명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들은 김예훈을 보자마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안으로 모셨다.동하임은 흰색 의료용 장갑을 끼고 짧은 머리를 묶어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목을 드러냈다.김예훈이 서서히 다가갔을 때, 그녀는 타케이 목에 나 있는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하얀 가슴골이 드러난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고 해도 날씬한 몸매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김예훈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가 말했다.“하임 씨, 검시관 일까지 해버리면 그분들이 뭐 해 먹고 살겠어요?”동작을 멈춘 동하임은 눈빛 하나로 무한한 매력을 발산했다.“검시관 결과는 이미 나왔어요. 현장 증거도 모두 수집 완료한 상태고요. 그 증거들 모두 김 도련님이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있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그런데 저는 살인을 저지를 시간이 없었잖아요. 어젯밤 내내 구룡성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었잖아요. CCTV가 증거로 될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동씨 가문 별장에 같이 있었잖아요. 하임 씨가 증인이 될수 있는 거잖아요. 범죄를 저지를 시간이 없는데 저를 살인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거 아니에요?”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타케이의 창백한 얼굴과 아직 가시지 않은 놀라운 표정을 발견했다.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아마도 타케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동하임은 경직된 어깨를 움켜잡으면서 김예훈의 생각을 읽었는지 말했다.“사실 누가 범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증거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것으로 김 도련님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문제는 이 쓸모없는 증거들이 일본인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사카모토 류이치마저 죽였잖아요. 여러 가지 관계로 경찰이 죄를 묻지 않았지만, 일본인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해도 배시시 웃으면서 일어나 말할 뿐이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특별 경로를 통해 일본 야마구치파에 소식을 전했거든요. 야마구치파 장로님인 나오키가 오늘 저녁 진주에 도착한다고 해요. 아들딸 세이이치로와 루미코도 동행한다고 하네요. 가족인 타케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김현민이 가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 하다뇨. 정말 일본인 친구들한테 미안하네요. 지훈 씨, 저를 대신해 일본 손님들을 잘 대접해 주세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드리고요. 물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거 아시죠?”남지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남씨 가문은 밀수로 일어난 가문이잖아요. 아무도 추적할 수 없을 거예요.”김현민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병욱을 힐끔 쳐다보았다.“병욱아, 정말 김예훈이 타케이 도련님을 죽인 게 확실해?”김병욱이 피식 웃었다.“그럼요. 병원 CCTV에 김예훈 모습이 찍혔고, 현장에 남겨진 당도 위에 그의 반쪽 지문이 남아있거든요. 비록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평생 콩밥을 먹일 순 없겠지만 일본인이 복수할 만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김현민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증거는 증거야. 확실한 증거든 아니든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야. 그들이 어떻게 선택할지는 그들의 문제라고. 아, 또 한 가지 일이 있어.”김현민이 곽영현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곽씨 가문에 믿을만한 변호사가 몇 명 있잖아요. 진세은 씨를 구해내죠? 일본 손님을 대접하는데 진세은 씨가 없어서 되겠어요?”곽영현은 반짝이는 두눈으로 말했다.“네.”김현민은 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저희는 진주·밀양의 고위층을 대표하기도 하고 공평 공정을 대표하기도 하는 거예요. 기관에서 공평 공정하게 처리 못 하는데
동하임은 남윤지의 도발을 무시한 채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여유작작 차를 마시고 있는 김현민을 쳐다보았다.“김현민 도련님한테서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찾아왔어요.”“하임 씨, 저를 다시 경찰서에 데려가서 조사할 예정이에요? 어젯밤 이미 충분히 잘 답변해 드린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고요. 그리고 저는 진주의 치안을 생각해서 쌍방의 모순을 중재했을 뿐인데 ‘착한 시민’ 상을 안 줄지언정 정한테 누명을 씌울 건 아니죠?”김현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한 말투였다.동하임은 평소였다면 이런 분노가 섞인 말투를 들었을 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깊이 숨을 마시고는 천천히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왜 타케이를 죽이고 김예훈한테 누명을 씌웠느냐예요.”“타케이가 죽었어요?”놀란 표정을 보면 전혀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어젯밤 안동 김씨 가문의 명의를 에드워드 병원으로 보내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죽어요?”동하임은 김현민을 자세히 쳐다보면서 잠시 후 입을 열었다.“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살해당했다고요. 죽은 사람은 그 어떤 의사도 살릴 수 없어요.”퍽!“이럴 수가!”김현민은 갑자기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졌다.“내가 타케이 도련님을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게 의사와 간호사를 동원했는데. 그런데 죽었다고요? 하임 씨,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서 일본대사관에 알려야 해요. 아니면 위에 항의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분노로 가득찬 김현민은 결코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보였다.동하임은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사건은 제가 직접 범인을 찾아낼 것입니다. 나쁜 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겠지만 절대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결과가 나오자마자 알려드릴게요. 도련님께서는 결과를 기다리고 계시면 돼요.
동씨 가문 자제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말했다.“네. 살해된 것도 모자라 목구멍에 칼자국이 있었어요. 초보적으로는 당도로 인해 생긴 상처라고 보고요. 다른 단서는 추가적인 수색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단서와 어젯밤 사건을 놓고 보면 알게모르게 김예훈 씨를 범인으로 몰고 있어요.”동태원은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 나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이제 막 ‘착한 시민’ 상은 수여하려던 찰나에 안동 김씨 가문이 김예훈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울 줄 몰랐다.안동 김씨 가문과 김현민에 대해 잘 알고있는 동태원은 이들이 나서는 순간 절대적인 치명타를 입게 될 거일 것도 잘 알고 있었다.타에이의 죽음은 김예훈이 진범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동태원이 직접 나서서 해명한다고 해도 범인임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충분할 것이 틀림없었다.동태원은 태양혈을 문지르며 동하임에게 시선을 돌렸다.“김현민한테 가봐.”“왜요?”동하임은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동씨 가문의 입장을 알려줘야지.”동태원은 한숨을 내쉬며 별장 밖에 있는 남태평양 바다를 쳐다보았다.지평선 끝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이 곧 폭풍우가 진주를 휘몰아칠 것만 같았다.그런데 이 폭풍우가 지나면 진주에 남게 될 자가 과연 누구일지 아무도 몰랐다....퍽!오후 3시. 동하임은 비를 뚫고 빅토리아 항구에 있는 고급 사무실 문을 열었다.동하림은 프론트 데스크 여직원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넓은 회의실로 향했다.이곳은 안동 김씨 가문의 건물이자 김현민의 사무실이기도 했다.이 순간 사무실 안에는 김현민 외에도 진주·밀양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층이 앉아있었다.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김병욱, 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곽영현 및 나머지 두 명, 진주 잡지사 아들, 일본의 귀족 등등...이들은 저마다 진주·밀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어느 누가 밖에 나가서 발을 구른다고 해도 진주가 휘청거릴 정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