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앞으로 가자, 곧 우리 차례야.”정군과 임은숙은 체면 불고하고 제일 앞줄로 걸어 나가 반전의 순간이 다가오길 고대했다.심지어 임옥희가 그들이 준비한 선물을 보고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다음으로 500년의 역사를 지닌 청화 도자기 한 쌍입니다. 이는 송나라 후기 도요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소장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만약 한 쌍을 모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죠.”MC가 계속해서 다음 생일 선물을 소개했다.이때, 임은유와 여문성이 일어나 동시에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어르신, 복 많이 받으시고 만수무강하세요.”순간, 주름이 자글자글한 임옥희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녀는 MC한테 청화 도자기를 가져다 달라고 손짓하더니 한참을 살펴보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은유야, 애썼구나.”“별말씀을요, 엄마의 마음에만 드신다면 저희가 가진 걸 다 내놓아도 좋아요!”임은유가 웃으면서 말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는 온통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모든 선물을 통틀어 이처럼 귀한 물건은 없을 것이다.반면, 임은숙과 정군은 어안이 벙벙했다.왜냐하면 아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이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임옥희는 골동품을 가장 좋아했기에 김예훈이 준비한 선물이 골동품이라는 정소현의 말을 믿고 어르신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그러나 임은유의 귀한 청화 도자기에 비하면 그들이 준비한 선물은 축에도 못 낄 가능성이 99%였다.정소현이 설명하기를 선물 박스가 고작 손바닥만 한 크기라고 했는데, 그 안에 어찌 귀중한 물건이 들어가겠냐는 말이다.이때, 서로 눈이 마주친 정군과 임은숙은 텔레파시가 통한 듯 올라가서 선물을 다시 가져오려고 했다.하지만 그 순간, MC가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자, 그리고 다음 선물은 정군과 임은숙 가족이 준비한 선물인데... 응?”두 사람의 이름을 발견한 MC는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그러고는 무의식중으로 객석에 있는 정군과 임은숙을 힐끗 쳐다보았다.MC의
“이...!”임옥희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정민아 일가는 대체 무슨 뜻이냐는 말이다. 곰팡이가 핀 진흙 덩어리를 선물로 보내다니? 죽지도 않은 늙은이라고 비꼬는 건가?“언니, 만약 엄마한테 선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요즘 돈이 딸려요? 차라리 과일이라도 보내지, 저런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요?”임은유도 어이가 없었다.사실 그녀는 언니를 대신하여 변명해주고 싶었지만, 화가 나서 부르르 떨고 있는 임옥희 앞에서 감히 끼어들 수가 없었다.한편, 임은숙은 그냥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차라리 가까이 오지나 말 걸, 기껏 앞줄에 가서 모두의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었더니 이까짓 물건을 선물한 신세로 전락하다니.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친정뿐만 아니라 성남시, 심지어 경기도를 통틀어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참석하지도 않았을 텐데.이게 다 김예훈 탓이었다. 어쩌면 시키는 일마다 망쳐버린단 말이지? 고작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것조차 이 모양이라니!임은숙은 당장이라도 김예훈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폭소를 터뜨리는 사람들 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 씨 일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웃기 바빴다.쓰레기는 쓰레기일 뿐, 어딜 가든 변함이 없었다.임씨 가문이라는 재벌가에 빌붙으려는 욕심은 단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정지용은 이따가 정동철을 꼬드겨 손님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 정민아 일가를 쫓아낼까 하는 고민도 했다.이런 망신스러운 짓을 저지르고도 과연 성남시에 남아 고개를 쳐들고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일찌감치 꺼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이때 임영운이 벌떡 일어섰다.그를 발견한 MC는 선물을 들고 말했다.“임씨 가문의 큰 손자 임영운 씨는 본 제이드 한 개를 선물했습니다. 이는 유서 깊은 물건으로 아주 특별한 옥석인데, 나이 드신 분들이 장기간 착용하면 류머티즘과 편두통을 완화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임영운이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항상
그런 김예훈을 보자 옆에 있던 정민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경고했다.“김예훈, 또 뭐 하려고? 그걸 뚫어지라 쳐다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갑자기 꽃으로 변하기라도 한대?”김예훈이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뭘 알아? 이건 선우건이 사부님께서 준 물건이라고, 분명 가치가 어마어마할 텐데...”그의 말에 정민아는 피식 웃었다. 선우건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김예훈이 아무리 감정에 능해서 그분의 눈에 들었다고 해도 무려 선우건이가 준 물건이라고? 대체 누굴 속이려고 드는 거지?한편, 생일 선물은 여전히 홀 안으로 계속 전달되고 있었다.문준남 일행도 선물을 준비했다. 물론 그렇게 비싼 물건들은 아니었고, 대부분 흔하게 볼 수 있는 서예나 그림 같은 것이었다.다만 어디까지나 기관에 속하는 사람들인지라 생신연에 참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선물과 다름없기에 임옥희는 좋은 물건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버렸다.MC도 눈치 빠르게 그들이 준비한 선물을 한껏 과장해서 추켜세웠다.마지막으로 임무경이 손에 선물 박스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엄마가 꿈속에도 그리는 물건이 있다는 걸 알고 미리 준비했어요.”임옥희는 선물 박스를 건네받아 열어보았고, 안에는 은은한 향을 풍기는 거무스름한 단약이 들어 있었다.“이건... 설마 선우 가문의 폐 회복 단약이니?!”임옥희는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맞아요. 이게 바로 선우 가문의 폐 회복 단약이죠.”임무경이 설명을 보탰다.“모두가 알다시피 선우 가문은 수십 년 전에 우연히 고대 유물을 입수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를 통해 처방전과 오래된 알약 몇 개를 얻었는데, 다름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폐 회복 단약이죠. 많은 연구 끝에 이 알약을 복용하면 폐를 맑게 하고 습기를 제거하며 간을 해독해주고 시력을 회복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죠. 게다가 약효가 기가 막혀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직빵이죠. 하지만 폐 회복 단약에 필요한 원재료가 너무 귀한 탓에 선우 가문에서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쏠렸고, 김예훈은 또다시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대상이 되었다.이때 그는 MC가 바닥에 버린 진흙 덩어리를 가리키며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혐오스럽다는 티를 팍팍 냈다.데릴사위 주제에 어찌 이처럼 뻔뻔하단 말인가? 이 타이밍에서 감히 무슨 소리를 내뱉는 거지?분명 쓸데없는 물건을 선물이랍시고 줬으면서 임무경이 폐 회복 단약을 언급하자 저 진흙 덩어리가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라고 우겨대다니?이는 무려 경기도 일류 가문인 선우 가문 회장 선우건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었다!당시 경기도 국방부 1인자가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도 결국은 손에 넣지 못했다.그런 분이 김예훈 같은 데릴사위에게 줬다고? 대체 왜? 김예훈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서?“김예훈! 지금 뭐 하는 거야? 제발 가만히 있어!”정민아는 다급한 나머지 발만 동동 굴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소란을 피우냐는 말이다.자신들이 아직 덜 비참한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건가?더 이상 망신당하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다들 입 다물어!”이때, 임옥희가 버럭 화를 냈다.정민아는 깜짝 놀라 입맛 벙긋했고, 정군과 임은숙마저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엄마, 설마 저 데릴사위의 말을 믿는 건 아니시죠?”임무경은 불쾌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한정판 폐 회복 단약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김예훈이 감히 본인이 준비한 진흙 덩어리가 오리지널이라고 우기다니! 어찌 체면이 서겠냐는 말이다.임옥희는 순간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김예훈을 바라보았다.“본인이 선물한 쓰레기가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라고 하잖아. 그렇다면 기회를 줄 테니까 어디 한번 증명해 보던가?”“맞습니다! 저 데릴사위가 어떻게 증명하는지 두고 봅시다.”손님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사실 임옥희는 김예훈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속셈이었다.지금 이 타이밍에서 김예훈이 해야 할 일은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녀의 용서를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은 하나같이 김예훈의 싸대기를 후려갈기고 싶었다.여기가 어디라고 이런 역겨운 짓을 한단 말인가? 다분히 고의적인 게 확실했다.반면, 정군과 임은숙은 테이블 밑으로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이렇게 창피할 수가! 이미 지나간 일이라 그나마 기억 속에 잊힐 뻔했는데, 저 원수 같은 놈이 글쎄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바로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라고 떠벌리지 않겠는가!지나친 허풍 때문에 화를 부르는 게 두렵지도 않나?정군은 당장이라도 김예훈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이때, 정지용이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제가 정 씨 일가를 대신하여 말씀드리자면 김예훈이 우리 정 씨 일가의 데릴사위는 맞지만, 그가 저지른 만행은 저희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정 씨 일가 사람마저 이런 소리를 하자 다른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역겨운 알약이 절대로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이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회장님, 이런 사람을 아직도 봐주시는 겁니까? 얼른 쫓아내세요.”“맞아요, 마음먹고 엿 먹이려는 게 분명해요!”“이런 사람은 수준 높은 자리에 참석할 자격조차 없어요.”임영운은 참다못해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다.“할머니, 제가 대신 화장실에 버려줄게요. 괜히 악취 때문에 식사하는 사람만 불쾌하지 않게.”“잠깐!”이때 임옥희가 불쑥 끼어들었다.곧이어 그녀는 더러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알약을 집어 들고는 코에 댄 채 한동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그러고 나서 노안 안경을 쓰더니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현재 임옥희의 모습은 마치 손안의 알약을 실수로 망가뜨릴까 봐 신중하기 그지없었다.그녀의 입가에 차츰 미소가 번졌고, 심지어 이는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웃음이었다.순간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설마 이 알약은 보통 물건이 아니란 말인가?족히 몇 분 동안 들여다본 임옥희는 벌떡 일어나 부들부들 떨며 땅바닥에 버려진 선물 박스를 집어 들고 마치 보물을 다루듯 알약을 원래 위치에 놓았다.
임영운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나지막이 말했다.“할머니, 설마 이게 그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이예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 단약은 선우 마스터 님의 목숨과도 같은 약인데, 절대 데릴 사위에 지나지 않는 놈에게 넘길 리가 없어요!”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며 한마디씩 거들기 바빴다.“큰 어르신, 요즘에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절대로 그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그래요! 이건 다른 것도 아니고 약이에요! 병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큰 어르신, 이놈이 이렇게 귀한 약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임무경은 그 누구보다 심각했다.“엄마, 선우건이 마스터의 손에 있는 그 오리지널 폐 회복 단약은 경기도 군대의 우두머리도 넘보지 못하는 귀한 약이에요. 그런데 그걸 남도 아닌 데릴 사위한테 줬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놈 말에 속으면 안 돼요!”그는 늙은 어머니가 데릴 사위의 말을 믿고 아무 약이나 먹었다가 괜히 몸에 탈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 앞섰다.이에 임옥희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아들을 꾸짖듯 말했다.“네가 이 단약을 구할 수 없다고 다른 사람도 못 구할 것 같아? 이 단약은 내가 선우 가문의 연회에서 열 번이나 넘게 봤어! 심지어 몇 번이고 만져도 봤어! 그 단약을 본 사람으로써 이 단약이 바로 선우건이가 목숨처럼 아끼던 단약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왜 여기에 나타난 건지 모르겠지만 이 단약은 진짜야!”큰 어르신의 말에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김예훈을 쳐다봤다.선우건이가 목숨처럼 아끼던 단약을 왜 김예훈이 갖고 있는 것인가? 도저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큰 어르신은 선물 박스를 꼭 껴안은 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이때, 임영운이 큰 어르신 가까이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선물 박스를 빼앗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큰 어르신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영운아, 뭐 하는 거야!”임무경도 깜짝 놀랐다.“야, 이게 무슨 짓이야!”다른
정민아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기의 남편이 영원히 출세하지 못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가 도적질을 하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임무경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김예훈, 지금 여기 경기도 경찰청 서장이랑 성남 경찰서 서장도 있어! 사실을 말하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줄 지도 몰라.”그는 김예훈을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임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일잔치에 뇌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면 임씨 가문은 앞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기회에 뇌물을 김예훈한테 돌려주고 선우건이의 용서를 받으려는 꿍꿍이었다. 그래야 임씨 가문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그러나 김예훈은 피식 웃기만 했다.“큰 어르신, 이 단약은 제가 정정당당하게 얻은 겁니다. 절대 뇌물이 아니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복용해도 괜찮으니까 시름 놓으세요.”“진짜야?”큰 어르신은 사실 당장이라도 단약을 복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네, 이 단약은 선우건이가 직접 저한테 준 겁니다. 그 자리에 소현이도 있었어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소현이한테 물어보세요.”“소현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정소현한테로 향했다. 그녀는 자기한테 집중된 눈길에 긴장되었지만 사건의 자초지종을 모두 말하는데 성공했다.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다시 김예훈한테로 눈길을 돌렸다.저놈이 도대체 무슨 운을 타고 난 것인가?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그러니까 정소현한테 사과한다고 이 단약을 저놈한테 준 거란 말이야? 그리고 너희들은 이 단약이 뭔지도 모르고 큰 어르신 생일 선물로 준 것이고?”임영운은 자시의 두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같은 시각, 임무경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는 이 단약을 얻으려고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가며 인간 관계를 넓혀왔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데릴 사위가 손쉽게 얻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런 거였어? 나는 또 네가 특수
그러나 김예훈은 매우 진지했다.“선우건이 사부님이 줄 겁니다...”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선우건이가 그의 체면을 봐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그래, 그래. 네 효심은 알겠어.”하지만 임옥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어찌됐든 네 마음은 잘 알겠어.”이윽고 큰 어르신이 정군, 임은숙과 정민아를 가리키며 명령했다.“거기 서서 뭐하는 거야? 얼른 여기 와서 앉아!”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큰 어르신 앞에 자리를 잡았다.큰 어르신은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마침 여기 다 모였으니까 한가지만 공고하겠어. 오늘부로 나의 큰딸 임은숙과 임은숙 가족은 정식으로 다시 임씨 가문의 가족임을 고한다. 앞으로 내 체면을 봐서라도 임은숙하고 이 아이 가족한테 잘해줘!”이 말에 임은숙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임씨 가족으로 돌아오게 될 날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정군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큰 어르신 덕분에 앞으로 두발 쭉 뻗고 편히 잘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부터 임씨 가문이 그의 뒤를 지켜주니 두려울 게 없었다.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에 정민아 역시 기뻤다.“은숙아, 그리고 사위, 이 데릴 사위가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효심 하나는 충분하니까 앞으로 잘해줘.”큰 어르신은 김예훈이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녀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단약을 가지고 나타났으니 이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정군과 임은숙은 김예훈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예훈아, 네가 드디어 큰일을 해냈구나! 아까는 우리가 잘못했어!”“어머님, 아버님이 기쁘시다면 저도 좋아요.”김예훈이 웃으며 답했다.정군과 임은숙은 허리를 쭉 펴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부터 그들을 함부로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데릴 사위의 운 덕분이었지만 큰 어르신의 인정을 받았으니 더할 나위가 있겠는가?한편,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후회가 막심했다. 잘못을 만회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이라도 이 한 몸 불사를 텐데.임무경과 임은유 일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세이이치로의 말은 섬뜩하기만 했다.그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김예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든 반드시 설명을 요구할 거예요. 김예훈은 반드시 죽어야겠어요! 타케이 가문이든 야마구치파든 절대로 목숨을 이대로 낭비할 수 없어요.”세이이치로한테는 타케이가 일본의 영웅인 것 같았다.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던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살기가 가득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복수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는 두건이 묶여있었다.김예훈을 찾아내 산산조각 내지 않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김예훈을 증오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본 진세은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속으로 깨 고소했다.이번 사건으로 홍성파는 체면이 말이 아닌 데다 라이언 킹까지 죽게 되어 손실이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아직 내세울 만한 고수가 없어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진세은은 사실 화를 꾹 참아보려 하기도 했다.그런데 일본인이 직접 나선다는데 김예훈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진세은은 직접 나서진 못해도 김예훈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보고 싶었다.이는 타케이 가문, 일본 야마구치파, 그리고 양국 외교와 관련된 문제였다.진세은은 김예훈이 어젯밤처럼 작은 수단을 이용해서 전화 몇 통으로 미디어의 힘을 빌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로 믿지 않았다.‘김예훈, 곧 죽을 날이 올 거야!’진세은은 이런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깊게 한숨을 들이마시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진세은은 세이이치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타케이 가문의 너그러움에 죄송할 따름이네요. 저희 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타케이 도련님이 김예훈 그놈한테 살해당하긴 했지만, 저희 홍성파에서 보호해 드리지 못했던 것도 책임 있다고 하셨어요. 저희 성의를 보여드리기 위해 오늘부터 외곽에 있는 땅은 야마구치파에 드리려고 해요. 이 중에 여러분이 눈여겨본 땅도 포함되어 있고요. 앞으로 건설회사를 찾기
저녁 무렵 진주 호텔.이름은 호텔이라고 해도 사실 진주에서 유일한 숙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례식장이었다.독채 별장도 있어 전문 고위층들이 사용하고 있었다.타케이는 부검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곳 어딘가 구석에 옮겨졌다.한적한 이곳 환경은 너무나도 쾌적했다.타케이 시신이 옮겨지고 나서 타케이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나오키와 그의 아들딸 외에도 타케이 가문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다.타케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저녁 7시.검은색 벤츠 마이바흐 차량이 소리 없이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차 문이 열리고, 홍성파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뒤이어 얼굴이 다소 수척해 보이는 젊은 여성이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하루 종일 취조받긴 했지만, 진주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보증 서준 덕분에 바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여전히 예쁜 그녀는 바로 홍성파 우두머리의 큰 따님인 진세은이였다.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타케이에게 향을 올리는 것이다.전체 장례식장에 은은한 향이 퍼지고, 진세은은 영정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앞으로 다가가 90도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개를 숙이는데 가슴골이 훤히 보였다.본능적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본 세이이치로는 눈빛이 흔들렸다.진세은의 신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그저 가볍게 눈인사할 뿐이다.“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진세은은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저의 아버지께서 직접 타케이 도련님께 향을 올리려고 했는데 범인을 찾기 전까지는 차마 찾아뵐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진주 경찰서 서열 1위 님 찾으러 가셨어요. 어떻게든 제대로 된 설명을 해드릴 거예요. 저희 진주에도 법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려야죠. 그리고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일본 손님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은 저희 홍성파의 책
“그래서 바로 총독님께 문자를 보냈죠. 총독님 같은 분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의사 선생님인 척 문을 두드릴 때부터 살인범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죠.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다 아시잖아요.”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당신을 어떻게 해보려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어리석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알았어요?”“너...”루미코는 직접 짠 계획이 처음부터 김예훈에게 간파당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까 했던 모든 일은 그저 미친 광대나 다름없었다.“이런 제기랄!”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무시당해도 고개 숙일 생각이 없었다.이때 그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나까지 죽이려고? 우리 타케이 가문에서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능력 있으면 나를 죽여보든가! 아니면 천군만마를 이끌고 너를 죽이러 다시 올 거야. 타케이 가문은 죽을지언정 절대 모욕당할 순 없어! 와봐! 나를 죽여보라고!”김예훈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나를 자극해서 너를 없애게 하려는 거야? 아쉽게도 난 너를 죽일 생각 없어. 타케이 가문에서 이유없이 나를 죽이겠다고 소리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이때 김예훈의 손짓 하나에 동하임이 수갑을 꺼내 루미코의 손발에 직접 채웠다.그러고는 루미코가 출혈 과다로 사망할까 봐 개인 의사를 불러 그녀의 상처를 봉합시켰다.“아무 이유없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루미코는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였으면서 왜 억울한 척이야.”“누가 그래? 타케이가 내 손을 더럽힐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한껏 싫증난 얼굴이었다.“그리고 난 진주의 ‘착한 시민’이라고. 모욕죄로 배상해야 한다는 거 몰라?”루미코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때 동하임이 담담하게 말했다.“부검 결과에 의하면 당신 동생은 아침 7시에 살해되었어요. 그 시각 김 도련님은 저랑 함께 동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난처하게 하지 않을거니까요. 김현민 도련님께서 이미 경고했거든요. 비록 김예훈이 동씨 가문과 손잡았다고 해도 김현민 도련님을 봐서라도 인질로만 삼았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니면 그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를 낼지도 모르겠거든요.”루미코는 검을 꺼내 동하임을 먼저 제압한 후 김예훈을 협박하려고 했다.슉!바로 이때, 갑자기 타케이 시체 밑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칼로 루미코 복부를 찔렀다.“풉!”미처 예상하지 못한 루미코는 피를 뿜어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영안실에 동하임 외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결국 그녀는 후회할 시간도, 질문할 시간도 없이 뒤돌아 영안실을 떠나려 했다.쨕!루미코가 영안실을 벗어난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녀의 뺨을 때렸다.순간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루미코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속에 어마어마한 힘이 휘몰아쳐 힘없이 무너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문밖에서 김예훈이 무표정으로 걸어들어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루미코 씨? 쯧쯧. 타케이 가문에 그렇게 인력이 부족해요? 사람을 죽이려고 해도 직접 나서야 하는 거예요? 돈 없으면 말씀하시지. 제가 대신 돈을 들여서 킬러 몇 명을 고용해 드릴 수 있었는데. 타케이 가문이 돈이 아까워서 킬러도 고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을까요?”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상대방의 마스크를 벗겨내자, 타케이와 닮은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내가 하임 씨를 인질로 삼을 줄 어떻게 알았던 거야?”루미코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루미코는 자신이 왜 노출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특히 아까 그 칼 한 방에 전투력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은 그녀의 원망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일할
동하임이 본능적으로 말했다.“의사 선생님, 이분은 제 친구인데 좀 양해해주시면 안 될까요?”“양해요? 양해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의사 선생님은 동하임의 명찰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동하임 씨였네요. 그런데 아무리 동하임 씨라고 해도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분을 들이는 거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밖에 나가서 먼저 등록하고 기록을 남겨야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먼저 등록하러 다녀올게요. 등록실이 어디죠?”의사 선생님은 직접 밖으로 나가 등록실 방향으로 안내했다..“저쪽에 보시면 등록실이 있을 거예요. 송학민이라고 등록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감사해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텅 빈 복도를 걸어갔다.의사 선생님은 김예훈의 모습이 사라져서야 두 명의 경찰한테 시선을 돌렸다.“어머!”그녀는 갑자기 발목을 접질렸는지 비명을 질렀다.경찰들은 본능적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을 쳐다보게 되었다.샤샤샥!두 명의 경찰이 시선을 돌린 순간, 그녀가 휘두른 소매에서 하얀 연기가 퍼져 나왔다.두 경찰은 그대로 휘청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다시 시체를 확인하려던 동하임은 이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결국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신 누구야. 아무런 원한도 없는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뭐 하려는 거야. 누가 보냈어.”동하임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총을 꺼내려 했지만 방호복을 입고있는 관계로 재빨리 빼낼 수 없었다.그러자 정체 모를 그녀가 문을 잠그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총독님 딸을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저도 곤란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잘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에요. 원망하려면 제 동생을 죽인 김예훈을 원망하세요.”“동생?”멈칫한 동하임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시체를 한번 쳐다보았다.“타케이 누나라고?”상대방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맞아요. 타케이
뚜뚜뚜.김예훈은 걸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복도 끝에 있는 영안실 입구에는 경찰 두명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들은 김예훈을 보자마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안으로 모셨다.동하임은 흰색 의료용 장갑을 끼고 짧은 머리를 묶어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목을 드러냈다.김예훈이 서서히 다가갔을 때, 그녀는 타케이 목에 나 있는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하얀 가슴골이 드러난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고 해도 날씬한 몸매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김예훈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가 말했다.“하임 씨, 검시관 일까지 해버리면 그분들이 뭐 해 먹고 살겠어요?”동작을 멈춘 동하임은 눈빛 하나로 무한한 매력을 발산했다.“검시관 결과는 이미 나왔어요. 현장 증거도 모두 수집 완료한 상태고요. 그 증거들 모두 김 도련님이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있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그런데 저는 살인을 저지를 시간이 없었잖아요. 어젯밤 내내 구룡성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었잖아요. CCTV가 증거로 될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동씨 가문 별장에 같이 있었잖아요. 하임 씨가 증인이 될수 있는 거잖아요. 범죄를 저지를 시간이 없는데 저를 살인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거 아니에요?”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타케이의 창백한 얼굴과 아직 가시지 않은 놀라운 표정을 발견했다.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아마도 타케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동하임은 경직된 어깨를 움켜잡으면서 김예훈의 생각을 읽었는지 말했다.“사실 누가 범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증거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것으로 김 도련님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문제는 이 쓸모없는 증거들이 일본인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사카모토 류이치마저 죽였잖아요. 여러 가지 관계로 경찰이 죄를 묻지 않았지만, 일본인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해도 배시시 웃으면서 일어나 말할 뿐이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특별 경로를 통해 일본 야마구치파에 소식을 전했거든요. 야마구치파 장로님인 나오키가 오늘 저녁 진주에 도착한다고 해요. 아들딸 세이이치로와 루미코도 동행한다고 하네요. 가족인 타케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김현민이 가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 하다뇨. 정말 일본인 친구들한테 미안하네요. 지훈 씨, 저를 대신해 일본 손님들을 잘 대접해 주세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드리고요. 물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거 아시죠?”남지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남씨 가문은 밀수로 일어난 가문이잖아요. 아무도 추적할 수 없을 거예요.”김현민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병욱을 힐끔 쳐다보았다.“병욱아, 정말 김예훈이 타케이 도련님을 죽인 게 확실해?”김병욱이 피식 웃었다.“그럼요. 병원 CCTV에 김예훈 모습이 찍혔고, 현장에 남겨진 당도 위에 그의 반쪽 지문이 남아있거든요. 비록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평생 콩밥을 먹일 순 없겠지만 일본인이 복수할 만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김현민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증거는 증거야. 확실한 증거든 아니든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야. 그들이 어떻게 선택할지는 그들의 문제라고. 아, 또 한 가지 일이 있어.”김현민이 곽영현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곽씨 가문에 믿을만한 변호사가 몇 명 있잖아요. 진세은 씨를 구해내죠? 일본 손님을 대접하는데 진세은 씨가 없어서 되겠어요?”곽영현은 반짝이는 두눈으로 말했다.“네.”김현민은 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저희는 진주·밀양의 고위층을 대표하기도 하고 공평 공정을 대표하기도 하는 거예요. 기관에서 공평 공정하게 처리 못 하는데
동하임은 남윤지의 도발을 무시한 채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여유작작 차를 마시고 있는 김현민을 쳐다보았다.“김현민 도련님한테서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찾아왔어요.”“하임 씨, 저를 다시 경찰서에 데려가서 조사할 예정이에요? 어젯밤 이미 충분히 잘 답변해 드린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고요. 그리고 저는 진주의 치안을 생각해서 쌍방의 모순을 중재했을 뿐인데 ‘착한 시민’ 상을 안 줄지언정 정한테 누명을 씌울 건 아니죠?”김현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한 말투였다.동하임은 평소였다면 이런 분노가 섞인 말투를 들었을 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깊이 숨을 마시고는 천천히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왜 타케이를 죽이고 김예훈한테 누명을 씌웠느냐예요.”“타케이가 죽었어요?”놀란 표정을 보면 전혀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어젯밤 안동 김씨 가문의 명의를 에드워드 병원으로 보내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죽어요?”동하임은 김현민을 자세히 쳐다보면서 잠시 후 입을 열었다.“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살해당했다고요. 죽은 사람은 그 어떤 의사도 살릴 수 없어요.”퍽!“이럴 수가!”김현민은 갑자기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졌다.“내가 타케이 도련님을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게 의사와 간호사를 동원했는데. 그런데 죽었다고요? 하임 씨,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서 일본대사관에 알려야 해요. 아니면 위에 항의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분노로 가득찬 김현민은 결코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보였다.동하임은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사건은 제가 직접 범인을 찾아낼 것입니다. 나쁜 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겠지만 절대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결과가 나오자마자 알려드릴게요. 도련님께서는 결과를 기다리고 계시면 돼요.
동씨 가문 자제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말했다.“네. 살해된 것도 모자라 목구멍에 칼자국이 있었어요. 초보적으로는 당도로 인해 생긴 상처라고 보고요. 다른 단서는 추가적인 수색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단서와 어젯밤 사건을 놓고 보면 알게모르게 김예훈 씨를 범인으로 몰고 있어요.”동태원은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 나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이제 막 ‘착한 시민’ 상은 수여하려던 찰나에 안동 김씨 가문이 김예훈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울 줄 몰랐다.안동 김씨 가문과 김현민에 대해 잘 알고있는 동태원은 이들이 나서는 순간 절대적인 치명타를 입게 될 거일 것도 잘 알고 있었다.타에이의 죽음은 김예훈이 진범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동태원이 직접 나서서 해명한다고 해도 범인임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충분할 것이 틀림없었다.동태원은 태양혈을 문지르며 동하임에게 시선을 돌렸다.“김현민한테 가봐.”“왜요?”동하임은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동씨 가문의 입장을 알려줘야지.”동태원은 한숨을 내쉬며 별장 밖에 있는 남태평양 바다를 쳐다보았다.지평선 끝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이 곧 폭풍우가 진주를 휘몰아칠 것만 같았다.그런데 이 폭풍우가 지나면 진주에 남게 될 자가 과연 누구일지 아무도 몰랐다....퍽!오후 3시. 동하임은 비를 뚫고 빅토리아 항구에 있는 고급 사무실 문을 열었다.동하림은 프론트 데스크 여직원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넓은 회의실로 향했다.이곳은 안동 김씨 가문의 건물이자 김현민의 사무실이기도 했다.이 순간 사무실 안에는 김현민 외에도 진주·밀양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층이 앉아있었다.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김병욱, 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곽영현 및 나머지 두 명, 진주 잡지사 아들, 일본의 귀족 등등...이들은 저마다 진주·밀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어느 누가 밖에 나가서 발을 구른다고 해도 진주가 휘청거릴 정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