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두 명의 준비된 의사가 달려와 임은숙에게 응급처치하고 들것에 실었다.정민아는 슬픈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며칠 동안 그녀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팰리스의 일과 집안의 일까지 걱정해야 했다.하지만 다시 어머니를 만났을 때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이건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김예훈은 심호흡을 하고 진지하게 말했다.“민아야, 내 말 좀 들어봐.”“내가 이렇게 한 건 어머님을 구하기 위해서였어. 어찌 됐든 내 장모님이잖아. 방금 그 상황은...”김예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영현이 웃으며 다가와서 말했다.“예훈 도련님은 정말 뻔뻔하군요!”“이모가 당신 때문에 납치되었는데 적극적으로 구하기는커녕 구하는 중에도 이모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우리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이모는 이미 당신 손에 죽었겠죠. 그리고 그 죄는 이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우고요.”“김예훈 씨, 정말 실망입니다! 당신이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어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니! 아내한테 미안하지도 않으세요?”찰싹.곽영현에게 돌아온 것은 한 대의 뺨이었다. 김예훈은 한 방에 그를 날려버리고 나서 차갑게 말했다.“시끄러워!”땅에 쓰러진 곽영현은 오른손으로 부풀어 오른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영현 도련님!”그의 곁에 있던 십여 명의 싸움꾼들은 즉시 나서려 했지만 곽영현이 손짓으로 제지했다.그는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며 마치 재미있는 구경을 하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은 날아간 곽영현은 신경 쓰지 않고 정민아 앞에 쪼그려 앉아 조용히 말했다.“민아야, 넌 정말 내가 네 엄마를 죽이려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게 사실 아니야?”정민아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엄마가 너에게 많은 모욕을 줬다는 걸 알아. 부산에 온 이후로 엄마는 우리의 이혼을 계속 추진해왔어! 하지만 그 사람은 내 엄마야!”“너는 엄마를 싫어하고 미워할
“그건 내 딸이 빨리 와서 그런 거지. 1초만 늦었어도 난 죽었어!”임은숙이 흉악한 모습으로 말했다.“참, 내 가방은? 내 가방 안에 이혼 서류가 있어. 어서 이 살인범더러 사인하라 해! 이게 내 유언이야. 절대로 너희들이 같이 있게 두지 않겠어! 빨리! 이혼 서류를 가져와.”임은숙이 호통을 치자 곽영현이 바로 손짓을 했다. 그의 부하들은 구석에 흩어져 있는 에르메스를 재빨리 찾아 그 안에 구겨져 있는 이혼 서류를 찾아 건넸다.이혼 서류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던 정민아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했다.이혼 서류가 김예훈에게 건네지자 정민아는 이를 갈며 말했다. “김예훈, 사인해. 이혼하면 이 일은 그냥 넘어가 줄게. 앞으로 우리는 자기 갈 길 가는 거야.”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를 그렇게 못 믿어? 이놈이 왜 하필 지금 널 데려온 건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아? 밀양에 있는 너를 데리고 와서 마침 내가 너희 엄마를 죽이고 있는 것을 보게 했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를 믿지 못하는 거야? 3년 동안 같이 하면서 너에게 나는 그래도 꽤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어. 지금 보니 내 생각이 잘못됐네.”김예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김 고문님보다도 못한 사람이었네! 내가? ”“당연하지, 곽 도련님이랑 비교할 수던 없지.”이 짧은 시간에 임은숙은 이미 곽영현의 신분을 알아차렸다.“곽 도련님은 진주 4대 도련님 중 한 분이셔. 그리고 너는 그냥 아내를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뿐이야. 이혼 서류에 사인하면 넌 개뿔도 아니야! 빨리 사인하고 꺼져!”김예훈은 임은숙을 무시하고 시선을 다시 정민아에게 돌렸다.정민아는 속이 속이 아니었지만 임은숙과 김예훈의 사이가 심각한 것을 보고 이를 꽉 물고 말했다. “사인해! 사인하면 나도 우리 엄마더러 이 일을 넘어가라고 설득할 거야. ”“맞아, 빨리 사인해. 네가 사인하지 않으면 난 병원에 가지 않고 여기서 죽을 거야. 널 살인자로 만들고 민아가 널 평생
“하지만 이번에는 진주 사람들이 나를 납치하고 이렇게 만들었어요. 내 병원비뿐만 아니라 위자료까지 배상해야 해요! 적어도 2천억이에요!”정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은숙만 괜찮으면 됐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좀 멍해져 있다. 여전히 김예훈과의 이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형사는 임은숙의 쓸데없는 말을 끊고 말했다. “여사님, 모든 것은 우리 진주의 법에 따라 처리될 것입니다. 당신을 납치한 그 강도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고, 당신도 배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예훈 씨한테도 연락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꺼져있어서 연락이 안 되네요. 혹시 어디 있는지 아세요? 정민아 씨의 남편이라고 들었어요.”“전남편!”임은숙은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질렀더라도 우리와 아무런 관계없어요. 내 딸은 이미 그 사람이랑 이혼했어요! 제다가 내가 이렇게 된 데는 그 사람의 책임이 제일 커요!”“일을 저질렀다니요?”형사가 살짝 멈칫하더니 말했다. “아니에요. 김예훈 씨한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찾는 겁니다. 김예훈 씨는 당신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도와 이 악랄한 강도들을 잡았습니다. 몇 명의 살아있는 강도들의 진술과 현장의 증거에 따라서 우리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다시 김예훈 씨를 찾아 확인하려는 것뿐입니다.”임은숙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당사자인데 이 일에 대해 모를 리 없잖아요. 나한테 물어보면 되는 것인데.”형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사님, 당신이 당국자여서 제가 이러는 거예요.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는 감정이 격해져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아닐 겁니다. 김예훈 씨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고 신고한 것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상처와 현장의 핏자국을 보면 김예훈 씨 당신한테 칼을 휘두른 것은 당신 뒤에 있는 강도를 상대하면서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산을 거친 거예요. 급소는 다치지 않고 살만 다치게 했죠. 그냥 운이라고 말하기엔 간단하지 않은 수법이에요. 당신을 구하려는 것이
임은숙도 뭔가 깨달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김예훈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체면이 세워지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줄곧 김예훈과 정민아의 이혼을 원했다. 오늘의 일 덕분에 겨우 이혼을 시켰는데 그녀는 이 오해를 풀려고 할 리가 없다. 그녀는 김예훈이 영원히 사라져 다시는 정민아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차라리 눈에 띄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 그만 해.”정민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녀는 더없이 후회했다. “예훈이를 그렇게 말하지 마.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정민아의 마음은 후회로 가득 찼다. 그녀는 김예훈이 정말 임은숙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자기는 그를 오해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까지 강요했다. 그녀는 김예훈을 다시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왜 그래? 그 자식은 나를 죽이려고 한 거야, 내 말이 틀렸어?”임은숙은 눈을 부릅떴다.“김예훈은 너랑 이혼하지 않고 너의 재산을 노려서 나를 죽이려고 한 거야. 그렇게 해서 너를 계속 가지려고 그런 거라고! 네가 없으면 걔는 무엇도 아니야. 너한테 기대는 등골남일 뿐이야! 지금 그런 사람을 잃고 후회하는 거야?”임은숙이 계속 말했다. “됐어, 내일 일단 성남시로 돌아가서 CY그룹의 지배권부터 되찾자! 그놈은 이미 너랑 이혼했으니 그룹을 계속 맡을 자격이 없어.”정민아는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엄마, 무슨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CY그룹은 예훈이 것이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그럴 리가!”임은숙이 소리를 질렀다. “CY그룹이 견씨 가문의 것이 아니었어? 그 자식 것이야? 그럴 리가 없어.”자리를 뜨지 않고 옆에서 있던 형사가 이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여사님, 최근에 상장한 CY그룹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김예훈 씨 명의가 맞습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김예훈 씨의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CY그룹의 회장이자 대표님입니다.”꽈당. 임은숙이 들고 있
흰 옷차림의 남자는 김씨 가문 사걸 중 우두머리이자 진주 4대 도련님 중 하나인 김병욱이었다.그는 곽영현의 말에 기뻐하는 대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김예훈이 어쩔 수 없어서 이혼 서류에 사인한 게 확실해요?”“확실해요! 그리고 정민아의 태도로 볼 때, 지금부터 부산 견씨 가문의 아홉 번째 방에 있는 에너지는 다시는 김예훈에게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예상했던 대로에요.”김병욱은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곽 도련님, 김예훈을 얕보지 마세요. 전에 성남시에 있었을 때, 우리 김씨 가문이 그 사람을 얕봐서 부산으로 떠밀려 온 거예요. 지난번에도 그 사람을 우습게 보는 바람에 크게 손해 봤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요. 그 사람이 다루기 쉬운 상대였다면 우리도 번거롭게 그 사람을 부산으로 데려올 필요가 없었잖아요.”곽영현은 입을 헤벌렸다. “김세자는 확실히 다루기 쉬운 상대가 아니죠. 제 얼굴에 있는 손바닥 자국이 그 증거죠. 우리 둘이 그 사람을 죽일 수 없으면 밀양 허씨 가문과 진주의 다른 두 가문도 불러야죠. 그래도 죽지 않을 수는 없어요.”김예훈을 죽이기 위해, 전에 성남시에서 맺은 원수한테 복수하기 위해 곽영현은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이것 때문에 김예훈에게 뺨을 몇 대 맞더라도 그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김병욱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김병욱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왜요,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곽영현은 김병욱을 쳐다보았다. 김병욱은 평상시에 표정을 거의 짓지 않는데 지금은 너무 이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네요.”김병욱이 웃었다.“방금 김예훈이 사람을 시켜 배첩을 보내 밀양 최강자 추양주에게 전달했어요.”“뭘 하려는 거죠? 이 와중에 최씨 가문에 가다니, 허씨 가문이 딴생각할까 봐 두렵지도 않은 건가요?”곽영현은 김예훈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 “허씨 가문을 칠 준비를 하고 있나 봐요.”김병욱은 덤덤
붓놀림은 평범했지만 뭔가 독특한 느낌이 사려져 있어 분위기를 자아냈다. 밀양 최강자 추양주는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인 게 확실했다.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그 당당한 기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붓놀림을 했을 때, 산수화는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다만 이 붓이 종이에 닿으려는 순간 추양주는 김예훈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추양주는 김예훈을 보고 멍해졌다. 그는 김예훈의 카리스마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마지막 붓놀림으로 그림을 완성하고 싶었을 때, 그는 어떻게 해도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추양주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붓을 문질러 부시고는 뒤돌아 김예훈을 바라보았다.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시선으로 김예훈을 잠시 훑은 추양주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추양주입니다.”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추하린과 추문성 두 사람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추양주가 젊은이를 이렇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김예훈도 잠시 어리둥절했다. 밀양 최강자를 처음으로 만났는데 이렇게 열정적일 줄은 몰랐다.김예훈은 아주 잠시 어리둥절했을 뿐이다.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손을 뻗어 추양주의 손을 살짝 부닥치며 말했다. “김예훈이에요.”“이름은 평범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네요.”추양주는 활짝 웃으며 칭찬하는 표정을 지었다.“며칠 전 하린이가 저한테 당신에 대해 말할 때, 당신은 문성이의 나쁜 친구이고 우리 추씨 집안에게 들러붙으려고 한다고 했어요. 요 며칠 동안 이 못난 아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까 봐 당신을 좀 조사했어요. 일부 사연으로 보았을 때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보낸 배첩을 받지 않았을 겁니다.”추양주는 담백하게 말했는데 추씨 집안의 에너지가 묻어났다.밀양에 있으면서 단 이틀 만에 김예훈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고 김예훈의 신분과 지위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그만큼 추양주가 만만치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추문성은 속으로 비웃으며 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 말을 들은 추하린과 추문성은 놀라서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밀양에서 도박패는 권력, 에너지, 돈, 인맥, 심지어 모든 것을 의미한다.밀양 허씨 가문이 밀양의 왕이라고 불리는 것은 허씨 가문 네 방이 모두 도박패를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김예훈이 지금 허씨 가문의 도박패를 가지려고 하는 것은 네 방을 없애려는 것이다.추하린을 비롯한 사람들이 추양주가 제정신을 잃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는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 “김 대표님, 김세자, 김 회장님, 당신 같은 신분과 지위를 가지신 분이 그 도박패가 마음에 드십니까? 그것은 밀양에서 신비롭기 그지없지만,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큰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당연히 가치가 있죠.”김예훈은 차분하게 말했다. “하나의 도박패는 한국 땅에서의 발언권을 의미하고, 밀양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더욱이 연간 매출 20조가 있는걸요? 제가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게다가 허씨 가문 넷째 도련님이 이 도박패 하나로 부산 견씨 가문 아홉 번째 방을 위협할 수 있어요. 제가 허씨 가문의 기세를 꺾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 아내에게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에 추양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께서도 참, 제가 들은 바로는 정민아 씨는 지금 전처이지 않나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누가 뭐래도 내 여자인데 명분이란 게 의미가 있나요?”추양주는 잠시 망해 하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그까짓 명분은 확실히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신분으로 보았을 때, 허씨 가문은 확실히 도박패로 당신을 압박하려는 것이에요. 그들은 손해 봐도 싸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르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김예훈은 추양주더러 직접 도박패를 자기한테 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오늘 그가 여기에 온 목적은 그의 태도가 필요해서일 뿐이다.추양주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가 손뼉을 치며 하인더러
바닥에 넘어진 사람은 호흡이 가빴고 얼굴이 빨갰는데 몸이 계속 떨려 일어설 힘조차 없어진 듯했다.옷이 너덜너덜해졌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차를 마시던 김예훈이 옆을 보더니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방수아였다. 그가 알기로 방수아는 이미 서울로 돌아갔다. 근데 이렇게 자기 앞에 나타났다. “충고하는데 오지랖 떨지 마.”김예훈이 일어서기도 전에 정원 밖에서 악랄함이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여자는 홍성 태자 진두준이 보아둔 여자야.”“수아 씨!”김예훈은 찻잔을 버리고 쏜살같이 달려가 방수아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왜 그래요?”김예훈은 말을 하면서 그녀의 맥을 짚어주었다. 그리고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누가 방수아한테 약을 먹였다. 독약이 아니라 에스트로겐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온몸이 뜨거워 났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김예훈의 팔에 안긴 방수아는 몸을 떨며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치려 했는데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오빠.”방수아는 숨을 크게 쉬고 있었는데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말하지 말고 물 좀 마셔요.”김예훈은 방수아를 부축하여 정자 안의 소파에 앉혔다.“걱정 마요, 제가 여기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방수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방금 긴장한 기색은 이미 사라졌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김예훈이 또 물었다.방수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갔어야 했는데 허도겸이 갑자기 전화 와서 자기 동생 허준서가 저와 또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사업만 잘되면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는 셈이죠.”여기까지 말한 방수아는 자신의 순진함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방수아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돈 때문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너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은 당장 물러가서 자리를 내놓아라! 우리 진 태자
김예훈은 대머리 택시 기사를 무심하게 훑어보고는 뒷좌석에 올라탔다.그는 머릿속으로 오늘 김서하의 치밀한 계획을 떠올리더니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의 계획을 눈치챘고 또 김예훈도 다른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때문에 결론적으로 오늘의 상황은 김예훈이 이긴 셈이다.특히 마지막에 날린 귀뺨은 참고 있었던 분노를 터뜨린 거였고 다른 의미에서는 박연서에게 자신의 명확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조금 전의 귀뺨은 김예훈과 김현민 사이를 보여준 것이고 김현민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그래야만 감정결벽증이 있는 박연서와 계속 협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만 이 일이 어떻게 박연서의 귀에 들어갈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는 고속도로에서 그들을 본 시각부터 박연서는 반드시 모든 상황을 파악하려고 할 거라고 믿었다.아마 김예훈이 김서하의 귀뺨을 때렸을 때도 박연서의 부하들이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만약 이 정도의 능력도 없다면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자기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잠시 생각하다가 어디엔가 전화했다.김예훈의 행동을 본 대머리 택시 기사는 라디오의 볼륨을 낮추더니 앞좌석과 뒷좌석을 가로막는 방음 유리창까지 올려 안심하게 통화할 수 있도록 했다.김예훈은 만족하는 눈빛을 보내며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좌석에 꺼내 놓았는데 그때 마침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누구세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차갑고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김예훈입니다.”김예훈은 자기소개부터 했다.“조금 전에 순한 고속도로의 상황은 오해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는데 사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박연서가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죠?”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조금 전에 화가 치밀어서 김서하 사모님의 귀뺨을 때렸거든요. 지금쯤 아마 저를 죽이려고 부하들을 보냈을 수도 있어요. 사모님께서 저를 살려주세요.”휴대폰 건너편의 박연서는
“김예훈 씨, 정말로 뜻밖이네요.”김서하는 자기가 준비한 걸 모두 들키자,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김예훈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현민이의 부하들이 왜 모두 실패했는지 이제 알겠네요. 머리와 무술 실력은 물론이고 인내력에 운까지 모두 최상급으로 갖추었네요. 내가 이 정도까지 유혹하고 도발해도 꼼짝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평정심으로 모든 걸 알아채다니... 인정해요. 내가 당신을 너무 과소평가했어요. 재미있네요. 당신이 충분히 강하고 능력이 있어야 나도 당신을 죽이는 일에 더 흥미를 느낄 테니까요.”말을 마치고 김서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출발하더니 순환 고속도로의 출구에서 차를 멈추고 말했다.“당장 내려요.”김예훈은 차 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김서하를 보며 말했다.“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된 이상 저도 조금 더 신경 써서 사모님을 상대할게요. 그런데 나이도 있으신 분이 저를 상대하려면 보약을 많이 드시고 몸을 잘 챙기셔야 할 거예요. 사모님께서 기력이 딸려서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쓰러질까 봐 걱정이에요.”김예훈의 나이가 많다고 한 말에 김서하의 얼굴은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했다.김예훈은 차에서 내려 서둘러 떠나지 않고 오히려 운전석 쪽으로 가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김서하를 보며 말했다.“사모님, 저 궁금한 거 있는데요. 혹시 천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걸 좋아해요? 왜 그렇게 저한테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김서하가 차갑게 말했다.“그렇다면 왜요? 아쉽게도 당신은 겁쟁이라서 기회를 줘도 때리지 못하잖아요. 김예훈 씨 당신은 겉면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겁쟁이...”“찰싹!”김서하의 말이 끝나가도 전에 김예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귀뺨을 때렸다.아주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렸고 김서하의 얼굴에는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그러고 나서 몸을 돌려 성큼성큼 떠나가는 김예훈을 바라보며 순간 멍해 있던 김서하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는데 조금은 처량하고 또 조금은 미친 사람 같았다.김예훈의 모습이 사라
“증거는요?”김예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이 차에 탄 것이 무슨 증거라도 된다는 거예요? 진주·밀양의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가 설마 그렇게 순진할까 봐요?”“아니요. 믿을 거예요. 넷째 오빠는 비록 나를 미워하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안동 김씨 가문의 명예거든요. 내가 오빠 앞에 가서 어느 겁 없는 자식이 나한테 나쁜 짓을 하고 또 언니에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하면 분명 당신을 죽여버릴 거예요. 그리고 증거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고요. 지금 무릎 꿇고 우리 현민이의 개가 될 건지 아니면 죽을 건지 선택해 봐요.”김예훈은 자기가 홧김에 치켜든 손을 보고 또 김서하를 바라보다가 손을 다시 내리고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혹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사모님 성격에 제 앞에서 모든 걸 얘기하고 화를 도발하게 했다는 것은 당신을 때리게 하려는 거죠? 설마 뒷좌석에 있는 카메라를 제가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신과 김현민 씨의 윤리 도덕을 넘어선 관계를 모를 줄 알아요?”이어서 김예훈은 김서하가 반응하기 전에 손을 뻗어 뒷좌석에 놓인 쿠션을 가져다 찢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초소형 카메라와 녹음기가 나왔다.“어린 애인을 위해 정말 못 하는 짓이 없네요. 저와 박연서 사모님의 협력을 방해하려고 또 저를 도발시켜 때리게 하려고 하다니... 제가 당신을 때리기만 하면 당신은 영상을 앞뒤로 편집해서 인터넷이나 다른 방법으로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 손에 들어가게 하려는 거겠죠. 제가 당신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못된 짓을 했다는 증거를 보면 안동 김씨 가문의 어르신과 당주는 물론이고 가문 전체에서 저를 죽이려 할 거예요. 어떻게 보면 너무 완벽한 계획이긴 했어요. 당신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저는 죽든가 아니면 진주·밀양에서 쫓겨나겠죠. 그리고 김현민 씨는 어쩌면 특별한 시기에 정당하게 권력을 잡게 되고요?”김예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김서하의 계략을 하나하나
김예훈은 사라지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김서하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사모님, 조금 전까지는 박연서 사모님께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나요? 쇼 타임은 이미 끝난 것 같은데 왜 문은 잠그는 거죠? 내가 여기에서 당신을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김예훈은 말하면서 눈앞에 있는 김서하를 훑어보았다.그는 오늘 김서하와 김현민 사이에 분쟁을 만들려고 김서하의 차에 탄 거였는데 김서하 역시 그를 골탕 먹이려는 계획으로 두텁지 않은 김예훈과 박연서와의 동맹을 깨려고 꾸민 짓이었다.김예훈은 김서하가 정말로 재미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여자로서 조카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흥미로웠다.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건 김예훈의 눈에 어린이들의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박연서는 이미 멀리 떠나 쫓아갈 수도 없을 텐데 지금 제 차에서 내리면 비를 맞아야 하는데요?”김서하는 자기 자리로 돌아앉았는데 조금 전의 애교가 듬뿍 담겼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는 도도한 얼굴로 김예훈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글쎄요? 과연 사모님이 원하는 대로 될까요? 저와 박연서 사모님은 처음부터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이이고 그분이 저의 조건은 받아들인 이유는 병을 고쳐주는 것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원인은 그분도 10년 전의 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조금 전의 상황 때문에 박연서 사모님이 10년 전의 일을 조사하는 것을 포기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안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김서하가 담담하게 웃었다.“우리 넷째 언니는 진주·밀양의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고 서울 박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당연히 나의 꼼수를 모를 리가 없고 또 10년 전의 일에 대한 조사도 그만두지 않겠지만 당신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감정결벽증이 있는 사람인지라 자기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는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간단하게 말하면 조금 전의 상황 이후로 당신은 이제 우리 넷째 언니를 만날 자격을 잃었다는 뜻이에요.
“당신...”김예훈의 말에 김서하는 잠시 멍해졌다.그녀의 눈에는 누구보다도 완벽한 안동 김씨 가문의 후계자가 김예훈의 눈에는 사람조차 아니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김서하는 심호흡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에 김예훈을 바라보며 약간의 애교를 담아 말했다.“김예훈 씨, 당신이 얘기한 것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옛말에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현민이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현민이가 성공적으로 당주 자리를 이어받으면 한국을 위해 노력할 거예요. 만약 현민이가 그런 애국심과 포부가 없다면 제가 왜 밀어주겠어요? 현민이를 믿지 못하겠다면 저를 믿어주시고 그것도 안 된다면 저희 용전을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용전은 나라가 외부에 대항하는 기본 조직이고 또한 우리 나라에 제일 충성하는 조직이에요. 용전은 절대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아요.”김서하는 말하면서도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김예훈의 가까이로 다가가더니 어찌나 가까웠는지 서로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달콤한 향기는 그녀의 숨결을 타고 김예훈의 얼굴에 닿았는데 고귀한 기품과 아름다운 미모의 조합은 남자라면 누구나 영혼을 빼앗길만했다.“김예훈 씨, 만약 내가 제시한 조건이 부족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걸 얘기해 봐요. 오늘 일이 해결되어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고 현민이가 안동 김씨 가문의 일인자가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요.”김예훈은 위아래로 눈앞의 김서하를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 김현민의 고모가 맞는 거야? 그런데 고모가 왜 조카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하는 거지? 천하의 용전 사모님이 왜 하찮은 조카를 위해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굴며 미인계까지 사용하는 거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설마 두 사람...’순간적으로 터무니없는 생각이 김예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만약 김서하와 김현민의 관계가 정말로 그런거라면 김현민은 정말로 인간도
“김예훈 씨, 제 생각에는 현민이 옆에 잠입해 있는 놈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일은 저희가 철저히 조사해서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드릴게요.”김예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어서 김서하는 조금 전의 도도한 표정을 거두고 부드러운 얼굴로 김예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김예훈 씨, 제가 지금 어떤 말을 하든 믿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 부탁해요. 우리 넷째 언니에게 가서 얘기했던 조건을 취소해 주세요. 부디 현민이가 지금처럼 착한 아들로 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면 그 뒷일은 제가 다 해결할게요.”김예훈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사모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고 있어요? 사모님은 자신의 매력에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제가 여자라면 꼼짝 못 하는 줄 아시나 봐요. 아무렴 향수를 뿌리고 바다 구경을 좀 시켜줬다고 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아니죠. 뭔가 그에 상당한 대가를 치르지도 않고 말로만 모든 것을 얻으시려는 거예요?”김예훈의 말에 김서하는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김예훈 씨, 우리 언니에게 가서 얘기했던 조건을 취소하고 다시는 현민이와 대립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주시면 우리 사이의 원한을 깨끗이 없던 일로 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당신은 우리 김씨 가문의 귀빈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에게 별장과 20조를 줄 것이고 또 용전에 잠입해 있는 부하들을 모두 철수시켜 당신이 용전을 완전히 장악하도록 할게요. 돈과 지위, 그리고 권력을 모두 줄 것이니 한 번만 도와줘요. 이 외에도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요.”김서하는 안전벨트까지 풀고 자신의 아리따운 얼굴을 김예훈 눈앞에 들이댔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 사이로 깊게 파인 가슴골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어떤 남자라도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김예훈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아가씨이고 한국 용전의 사모님이 이깟 일에 자신을 희생할 거라고 상상
“쓰레기”라는 세 글자에 김서하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김예훈 씨, 당신 말 대로 우리 모두 사업하는 사람들끼리 당신이 반격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확실하게 현민이 잘못이 맞으니 제가 돌아가면 반드시 단단히 교육시켜서 직접 사과하게 할게요. 그러니 김예훈 씨도 성의를 보여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우리 모두 오해를 풀고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필경 현민이도 그렇고 김예훈 씨도 모두 큰 일을 할 사람인데 이렇게 싸우면 다른 경쟁자들에게만 좋은 일이 되는 거잖아요.”김예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성의를 보여달라고요? 그럼 먼저 멀리도 말고 바로 어제 용문도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야밤에 오륜 사찰의 선재 스님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말로는 오해를 풀자고 하면서 매번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요? 심지어 저를 박연서 사모님 댁으로 가게 만든 것도 당신들이 꾸민 거잖아요.”김예훈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꺼내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삑!”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김서하는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고 김예훈을 노려보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이 메시지는 누가 보낸 건가요?”김서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김현민의 부하일 거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만약 정말로 그녀의 추측이 맞는다면 안동 김씨 내부에 김현민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순간 김서하는 오늘 자기가 직접 김예훈을 찾아온 것은 뜻밖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김예훈은 비웃는 표정을 전혀 숨기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이쯤 되면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이 메시지는 당연히 김현민이 보낸 것이고 저를 임수민 구하러 가게 해서 박연서 사모님을 만나게 하려는 계획이었잖아요. 당신들이 박연서 사모님의 손을 빌려 저를 죽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저의 손을 빌려 박연서 사모님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됐든 당신들의 계
“사모님이 초대하시는데 제가 왜 거절하겠어요?”김예훈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김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김서하가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고 싶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했다.김예훈이 차에 타자 김서하는 가볍게 웃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페라리 488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맹수와 같이 순환고속도로를 향해 질주했다.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김예훈이 고개를 돌려 김서하에게 물었다.“사모님, 정말로 저와 함께 비를 구경하면서 드라이브하려고 오신 건 아니죠? 저는 사모님과 함께 비 구경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그러니 이제 솔직하게 말씀하시죠.”김서하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김예훈 씨가 우리 넷째 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서요. 그리고 그 대가로 조건을 걸었다고 들었어요.”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모님, 역시 소식이 빠르시네요. 저의 조건이 무엇인지 아시는 것 같은데요. 그건 바로 김현민을 양자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거였어요.”김예훈의 말에 들은 김서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아주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실제로 그 조건 때문에 김현민은 정정당당하게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가 될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그야말로 사람을 죽이고 마음마저 짓밟는 격이다.“김예훈 씨, 잘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안동 김씨 가문의 일에 간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김서하가 계속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현재 권력 교체의 중요한 시기예요. 외부 사람들에게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내부적으로 엄청 치열하거든요. 아무리 진주·밀양 두 도시의 거물이라 할지언정 안동 김씨 가문의 싸움에 끼어들면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혼자서 거기에 끼어들겠다는 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김서하는 말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았다.그녀의 오른쪽 다리의 치맛자락이 살짝 흩날리더니 보는 사람이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김서하의 적나라한 유혹
“내가 김예훈을 설득해 볼게. 그런데 계속해서 제멋대로 행동하면 죽여버릴 수밖에.”김서하는 어떻게든 김현민을 수장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비록 큰 피해를 준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양보하기만 한다면 진주·밀양 용전을 내놓을 마음도 있었다....시즌 호텔.하늘에서는 가랑비가 쏟아졌고, 호텔 전체가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토요타 프라도에서 내려 호텔 로비로 들어가려던 김예훈 뒤로 갑자기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곧이어 그의 앞에 페라리 488 한대가 멈춰 섰다.창문이 내려가면서 백옥과도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샤넬 드레스를 입고 구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요정 같은 얼굴이 보이자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상대는 바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서하였다.갑작스러운 등장이 놀랍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김병욱이 이 큰일을 꾸민 걸 보면 무조건 박연서가 10년 전 사건을 재조사하려는 것을 김현민에게 알려줬을 것이고, 이 타이밍에 김서하가 찾아온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것은 싸우러 총이나 칼을 들고 온 것이 아니라 홀몸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김예훈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의외였다.김서하도 의문스러운 그의 표정을 감지했는지 핸들을 잡고 창가에 기대어 김예훈을 향해 피식 웃었다.“김예훈 씨, 저랑 대화 좀 나눌까요? 비 오는 날 고속도로 풍경이 꽤 볼만한데 한번 보실래요?”침착하고 여유로운 표정, 무심하면서도 약간의 유혹이 담겨있는 말투였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이 둘이 꽤 괜찮은 사이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이순간 김예훈은 두 손을 창문에 갖다 대면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사모님,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저희 둘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가요? 그것도 깊은 원한이 있는 그런 관계 말이에요. 언제부터 저희가 비 오는 날 같이 드라이브하는 사이가 된 거죠? 말도 안 되잖아요.”김예훈은 그녀의 손에서 진주·밀양 용전을 빼앗아 왔는데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