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 씨, 정말로 뜻밖이네요.”김서하는 자기가 준비한 걸 모두 들키자,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김예훈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현민이의 부하들이 왜 모두 실패했는지 이제 알겠네요. 머리와 무술 실력은 물론이고 인내력에 운까지 모두 최상급으로 갖추었네요. 내가 이 정도까지 유혹하고 도발해도 꼼짝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평정심으로 모든 걸 알아채다니... 인정해요. 내가 당신을 너무 과소평가했어요. 재미있네요. 당신이 충분히 강하고 능력이 있어야 나도 당신을 죽이는 일에 더 흥미를 느낄 테니까요.”말을 마치고 김서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출발하더니 순환 고속도로의 출구에서 차를 멈추고 말했다.“당장 내려요.”김예훈은 차 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김서하를 보며 말했다.“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된 이상 저도 조금 더 신경 써서 사모님을 상대할게요. 그런데 나이도 있으신 분이 저를 상대하려면 보약을 많이 드시고 몸을 잘 챙기셔야 할 거예요. 사모님께서 기력이 딸려서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쓰러질까 봐 걱정이에요.”김예훈의 나이가 많다고 한 말에 김서하의 얼굴은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했다.김예훈은 차에서 내려 서둘러 떠나지 않고 오히려 운전석 쪽으로 가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김서하를 보며 말했다.“사모님, 저 궁금한 거 있는데요. 혹시 천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걸 좋아해요? 왜 그렇게 저한테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김서하가 차갑게 말했다.“그렇다면 왜요? 아쉽게도 당신은 겁쟁이라서 기회를 줘도 때리지 못하잖아요. 김예훈 씨 당신은 겉면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겁쟁이...”“찰싹!”김서하의 말이 끝나가도 전에 김예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귀뺨을 때렸다.아주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렸고 김서하의 얼굴에는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그러고 나서 몸을 돌려 성큼성큼 떠나가는 김예훈을 바라보며 순간 멍해 있던 김서하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는데 조금은 처량하고 또 조금은 미친 사람 같았다.김예훈의 모습이 사라
김예훈은 대머리 택시 기사를 무심하게 훑어보고는 뒷좌석에 올라탔다.그는 머릿속으로 오늘 김서하의 치밀한 계획을 떠올리더니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의 계획을 눈치챘고 또 김예훈도 다른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때문에 결론적으로 오늘의 상황은 김예훈이 이긴 셈이다.특히 마지막에 날린 귀뺨은 참고 있었던 분노를 터뜨린 거였고 다른 의미에서는 박연서에게 자신의 명확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조금 전의 귀뺨은 김예훈과 김현민 사이를 보여준 것이고 김현민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그래야만 감정결벽증이 있는 박연서와 계속 협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만 이 일이 어떻게 박연서의 귀에 들어갈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는 고속도로에서 그들을 본 시각부터 박연서는 반드시 모든 상황을 파악하려고 할 거라고 믿었다.아마 김예훈이 김서하의 귀뺨을 때렸을 때도 박연서의 부하들이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만약 이 정도의 능력도 없다면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자기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잠시 생각하다가 어디엔가 전화했다.김예훈의 행동을 본 대머리 택시 기사는 라디오의 볼륨을 낮추더니 앞좌석과 뒷좌석을 가로막는 방음 유리창까지 올려 안심하게 통화할 수 있도록 했다.김예훈은 만족하는 눈빛을 보내며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좌석에 꺼내 놓았는데 그때 마침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누구세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차갑고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김예훈입니다.”김예훈은 자기소개부터 했다.“조금 전에 순한 고속도로의 상황은 오해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는데 사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박연서가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죠?”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조금 전에 화가 치밀어서 김서하 사모님의 귀뺨을 때렸거든요. 지금쯤 아마 저를 죽이려고 부하들을 보냈을 수도 있어요. 사모님께서 저를 살려주세요.”휴대폰 건너편의 박연서는
남해시, 정진 별장.오늘은 정씨 집안 어르신의 칠순 잔칫날이다.정씨 일가의 자손들은 각각 생신 예배를 올리며 일제히 "어르신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어르신은 상석에 앉아 얼굴이 붉히며 답했다."그래, 그래. 참으로 착한 아이들이구나. 오늘 이 할아버지의 기분이 몹시 좋아 너희들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겠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보거라!""할아버지, 바닷가 인근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싶어요, 고작 2억 원 남짓해요.""할아버지, 샤넬 한정판 백을 사주세요.""할아버지, BMW 스포츠카가 가지고 싶어요.""할아버지, 롤렉스 시계를 사고 싶어요.”"그래, 다 사주마!" 어르신은 시원시원하게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입을 연 손아랫사람들은 너무 기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싶었다.그때 문득 정 씨 집안의 데릴 사위로 들어온 김예훈은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장을 볼 수 있게 전기 스쿠터 한 대 사주시면 안 될까요?"말이 끝나자 집안 분위기는 싸해졌고 모두가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김예훈을 바라보았다.혹시 저 데릴사위가 미쳐버린 건가? 오늘이 어떤 날인데 별 볼 것 없는 데릴사위가 입을 열었다니?게다가 어르신의 칠순 잔치에 김예훈은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도 선물을 달라고 하다니? 진정 원하는 것이 전기 스쿠터인지 아니면 어르신의 체면을 깎기 위함인지 의심이 들었다.3년 전, 정 씨 일가의 증조할아버지는 가난뱅이 차림을 한 김예훈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정민아를 그에게 시집보냈다.결국 결혼식 당일, 증조할아버지는 기뻐할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났고 그때부터 이 집안에서는 아무도 이 데릴사위를 존중하지 않았다.3년 동안 김예훈은 발 씻는 물을 가져오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해왔다,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살았다.김예훈이 오늘 전기 스쿠터를 사달라고 말한 것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꺼낸 말이었다.어제 장을 보는 도중 스쿠터의 배터리를 누군가가
”YE 가문에서 온 문자이다.” 김예훈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YE 가문은 경기도의 유일한 명문가문이다, 경기도의 간판이었다. 김예훈은 집안의 장손이었다.3년 전 그는 혼자의 힘으로 아무것도 아니던 YE 가문을 최정상으로 이끌기도 했었고 맨손으로 Q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가문을 전국 10대 명문가의 서열로 다가갈 즈음, YE 가문 내부의 누군가가 김예훈을 공격했다.김예훈은 족보에서 바로 제명되었고, 그의 부모님도 강원도 직접 파견되어 소위 말하는 인수 계획을 수행하게 되었지만 실상은 부모님들의 소식은 끊겨버렸고 속세와 단절되었다. 3년 전 YE 집안을 나왔을 때 김예훈은 무일푼 신세였고 중상을 입었다. 그때 정 씨의 증조할아버지가 그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그를 거두어주었고 데릴사위로 삼았다, 덕분에 김예훈은 길거리에서 죽지 않았던 것이었다.하지만 정민아와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부부라는 허울뿐인 부부였다.정씨 일가가 대외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지 않았더라면 김예훈이 서재에서 잠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시간은 이미 3년이 지났지만, 모든 것이 어제처럼 생생했다.김예훈은 자신이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다, 데릴 사위의 신분으로 정민아의 남편으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느꼈다.그리고 김예훈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정민아라는 여자가 너무 훌륭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3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김예훈은 자신이 이미 그녀를 구제불능으로 사랑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에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큰 도련님, YE 가문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면초가입니다, 도련님께서 직접 만든 Q 그룹의 자금줄이 끊어져 파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제발 도와주세요! 그때 맨손으로 Q 그룹을 만들었으니 이번에도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가문은 당신이 돌아와서 대세를 장악해야 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가문은 망합니다!"바로 그때,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낯선 국제
30분 후, 김예훈은 정민아의 회사 정문 앞에 도착했다.그가 막 정문을 들어서려 할 때 경비원이 갑자기 삼단봉으로 김예훈을 막으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특히 몰골이 거지 같은 사람은 안됩니다.”라고 차갑게 말했다.김예훈은 일어나자마자 씻지 않고 구멍이 몇 개 뚫린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정말 거지와 비슷해 보였다.김예훈은 오히려 익숙한지 "경비원 형님, 제 아내에게 서류를 가져다주러 왔습니다."라고 웃기만 했다.경비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한테 마누라가 있다고요? 청소부 아주머니, 주방일 하는 이 아주머니?”“제 아내는 정민아입니다.”그 경비원은 흠칫거리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이었군요, 정 씨 일가의 데릴 사위가. 하하하하.”김예훈은 자신의 명성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자, 서류 저한테 주세요, 정 대표님이 서류는 제가 대신 받으라고 하셨습니다.""안됩니다." 김예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처제가 이 서류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직접 아내에게 넘겨야 할 거 같아요. 죄송하지만,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너!" 경비원은 김예훈을 가리키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가? 정 씨 일가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르는 건가? 게다가 이런 모습으로 회사에 출입을 한다면 회사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 뻔했다.두 사람이 말을 하는 동안 뒤에서 갑자기 엔진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BMW 5시리즈 한 대가 김예훈의 스쿠터 옆에 멈추더니 박동훈이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안녕하세요! 박대표님." 경비원은 급히 허리를 숙이며 박동훈에게 인사를 건넸다.박동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박 대표님, 이쪽으로 드시죠, 정 대표님께서 사무실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박동훈은 김예훈을 쳐다보지도 않고 회사 로비로 들어갔다.김예훈이 막 따라 들어가려 하자 경비원은 삼단봉을 들어
"해명? 내가 왜 해명을 해야 하죠?"김예훈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민아는 내 아내입니다. 민아한테서 떨어지세요, 썸은 다른 사람이랑 타세요!”"내 아내가 장미를 좋아하면 내가 사주면 됩니다, 당신이 나설 이유 없습니다.”"민아가 이렇게 예쁜데, 당신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오늘 밤 프라하의 장미를 선물하면 됩니다.”"그 장미가 얼마인 줄 알고 하는 소리입니까? 프라하 장미는 한 송이에 천만 원인데,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어젯밤에 어르신한테 전기 스쿠터 한 대 사달라고 했다면서요? 너 같은 버러지의 장기를 팔아도 한 송이 못 살 겁니다, 허세 부리지 마세요.”박동훈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 그는 YE 투자회사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 그런데 데릴사위 주제에 자기에게 훈계질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김예훈이 감히 꽃을 짓밟고 자신의 여신을 엘리베이터로 끌고 들어갔다는 것이다.박동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민아 씨, 9억 원 투자를 원하셨죠?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고 말했다."뭐라고요?" 정민아가 의아해했다.박동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민아 씨, 회사에 9억의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마침 내 손에 프로젝트 자금이 있어서 투자할 수 있어요. 당신이 저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해준다면 회사에 투자해 드리죠.” "진심이세요?" 정민아는 무의식으로 김예훈의 손을 놓았다, 그녀의 회사는 정말 이 자금이 필요했다."약속드리죠.”"그래요." 정민아는 잠시 고민을 하다 답했다.어쨌든 이 자금이 없다면 그녀의 회사는 아마 파산할 것이다."민아 씨, 가시죠. 프로젝트도 토론해 보고 점심도 어디서 먹을지…" 박동훈은 매너 있게 입을 열었다."여보! 당신은 저 자와 함께 갈 수 없어!" 정민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예훈은 박동훈을 노려보며 얼굴을 굳혔다. “박동훈 씨, 경고하는데 내 아내한테서 떨어지세요!”"허, 이 일을 데릴 사위가 왈가불가 할수 있다고 보는 겁니까?”"내가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만으
"큰 도련님, 제가 어르신께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도련님은…""나랑 흥정할 생각하지 말아요, 안 그러면 내가 나서서 YE 가문을 완전히 끝내버릴 거니까.”상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김예훈은 '뚝' 하고 전화를 끊었다.골드코스트 별장 지역에 있는 모든 별장들은 모두 국제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직접 디자인했다, 타일 하나부터 풀 한 포기까지 모두 신중하게 골랐다, 이곳은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지금 김예훈은 발코니 소파에 정갈하게 갖춰 입은 다소 초췌해 보이는 노인과 마주 보고 앉았다.김연철은 현재 경기도를 이끄는 YE 가문의 회장이다.그와 대면을 한적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 경기도의 YE 가문에서 가장 권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김연철의 뒤에는 담담하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보호하는 경호원 두 명이 있었다."역시 한때 우리 YE 가문의 실세답구나, 3년이나 보지 못했는데 여전하구나!" 김연철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구원을 청하는 태도가 고작 이겁니까?" 김예훈이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김연철의 뒤에 있던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다.그들은 김연철과 오랫동안 함께 일했고, 보고 들은 것도 많았지만 회장님에게 이런 태도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 같았다.이 두 경호원은 김예훈을 노려보며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나 김연철은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너희들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예전, 우리 가문을 일으키고 이끌던 사람이다. 예전 같았으면 너희들은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회장님, 하지만 이 자는 회장님에게 매우 무례합니다."김연철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만약 이자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까짓 무례함은 고사하고 내 뺨을 때린다 해도 난 상관없다.”"네?"이 두 경호원은 깜짝 놀라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이렇게 보잘것없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
”박동훈?”김예훈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 녀석은 YE 투자회사가 키우는 개일뿐,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박동훈을 회사에서 자를 수도 있다."장모님, 저 이혼 안 해요, 진짜 이혼을 한다고 해도 이건 우리 부부의 일이니 장모님께서 관여하지 말아 주세요."김예훈은 웃으며 이 말을 하고 스쿠터를 타고 떠났다."김예훈, 네가 뭔데!" 임은숙은 화가 나서 바들바들 떨다가 차로 밀어버릴 작정을 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임은숙은 이를 악물고 서둘러 떠났다.퇴근 시간이 되자, 정민아는 회사 안내 데스크로 걸어갔다.데스크에는 두 여자가 웃으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주위에 많은 직원들이 둘러서 있었다."정 대표님의 그 못난 남편이 자신도 프라하 장미를 선물한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처지도 모르고 작은 전기 스쿠터나 타고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슬리퍼도 구멍 났는데 길에서 동냥을 해도 될 거 같았어요.”"맞아요, 정 대표님은 어떻게 저런 인간이랑 결혼을 하셨는지 모르겠어요!"“어쩌면 저런 버러지가 데릴 사위가 되다니!”"나 같으면 진작에 저런 남편과 이혼했을 거예요."“정 대표님을 따르는 자가 밖에 줄을 늘어섰다고요.”"여러분은…" 정민아는 그런 토론을 듣고 붉은 입술을 깨물며 얼굴을 찌푸렸다. "정 대표님..." 안내 데스크의 두 여자는 정민아를 확인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 대표님, 저희가 헛소리를 한 겁니다. 제발 화내지 말아 주세요.”"닥쳐!" 정민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쓸모없는 남편을 둔 자신의 너무 비참했다.다른 사람의 남편은 모두 엘리트이고 명문가의 자제인데 자신의 남편은 볼 것 하나 없는 천한 사람이었다. 풍파 속에서 자신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을 망신 시킬 뿐이다.이때 안내 데스크의 전화가 울렸고 바들바들 떨던 여자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정 대표님, 물류 회사에서 당신
김예훈은 대머리 택시 기사를 무심하게 훑어보고는 뒷좌석에 올라탔다.그는 머릿속으로 오늘 김서하의 치밀한 계획을 떠올리더니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의 계획을 눈치챘고 또 김예훈도 다른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때문에 결론적으로 오늘의 상황은 김예훈이 이긴 셈이다.특히 마지막에 날린 귀뺨은 참고 있었던 분노를 터뜨린 거였고 다른 의미에서는 박연서에게 자신의 명확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조금 전의 귀뺨은 김예훈과 김현민 사이를 보여준 것이고 김현민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그래야만 감정결벽증이 있는 박연서와 계속 협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만 이 일이 어떻게 박연서의 귀에 들어갈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는 고속도로에서 그들을 본 시각부터 박연서는 반드시 모든 상황을 파악하려고 할 거라고 믿었다.아마 김예훈이 김서하의 귀뺨을 때렸을 때도 박연서의 부하들이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만약 이 정도의 능력도 없다면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자기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잠시 생각하다가 어디엔가 전화했다.김예훈의 행동을 본 대머리 택시 기사는 라디오의 볼륨을 낮추더니 앞좌석과 뒷좌석을 가로막는 방음 유리창까지 올려 안심하게 통화할 수 있도록 했다.김예훈은 만족하는 눈빛을 보내며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좌석에 꺼내 놓았는데 그때 마침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누구세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차갑고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김예훈입니다.”김예훈은 자기소개부터 했다.“조금 전에 순한 고속도로의 상황은 오해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는데 사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박연서가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죠?”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조금 전에 화가 치밀어서 김서하 사모님의 귀뺨을 때렸거든요. 지금쯤 아마 저를 죽이려고 부하들을 보냈을 수도 있어요. 사모님께서 저를 살려주세요.”휴대폰 건너편의 박연서는
“김예훈 씨, 정말로 뜻밖이네요.”김서하는 자기가 준비한 걸 모두 들키자,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김예훈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현민이의 부하들이 왜 모두 실패했는지 이제 알겠네요. 머리와 무술 실력은 물론이고 인내력에 운까지 모두 최상급으로 갖추었네요. 내가 이 정도까지 유혹하고 도발해도 꼼짝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평정심으로 모든 걸 알아채다니... 인정해요. 내가 당신을 너무 과소평가했어요. 재미있네요. 당신이 충분히 강하고 능력이 있어야 나도 당신을 죽이는 일에 더 흥미를 느낄 테니까요.”말을 마치고 김서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출발하더니 순환 고속도로의 출구에서 차를 멈추고 말했다.“당장 내려요.”김예훈은 차 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김서하를 보며 말했다.“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된 이상 저도 조금 더 신경 써서 사모님을 상대할게요. 그런데 나이도 있으신 분이 저를 상대하려면 보약을 많이 드시고 몸을 잘 챙기셔야 할 거예요. 사모님께서 기력이 딸려서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쓰러질까 봐 걱정이에요.”김예훈의 나이가 많다고 한 말에 김서하의 얼굴은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했다.김예훈은 차에서 내려 서둘러 떠나지 않고 오히려 운전석 쪽으로 가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김서하를 보며 말했다.“사모님, 저 궁금한 거 있는데요. 혹시 천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걸 좋아해요? 왜 그렇게 저한테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김서하가 차갑게 말했다.“그렇다면 왜요? 아쉽게도 당신은 겁쟁이라서 기회를 줘도 때리지 못하잖아요. 김예훈 씨 당신은 겉면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겁쟁이...”“찰싹!”김서하의 말이 끝나가도 전에 김예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귀뺨을 때렸다.아주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렸고 김서하의 얼굴에는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그러고 나서 몸을 돌려 성큼성큼 떠나가는 김예훈을 바라보며 순간 멍해 있던 김서하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는데 조금은 처량하고 또 조금은 미친 사람 같았다.김예훈의 모습이 사라
“증거는요?”김예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이 차에 탄 것이 무슨 증거라도 된다는 거예요? 진주·밀양의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가 설마 그렇게 순진할까 봐요?”“아니요. 믿을 거예요. 넷째 오빠는 비록 나를 미워하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안동 김씨 가문의 명예거든요. 내가 오빠 앞에 가서 어느 겁 없는 자식이 나한테 나쁜 짓을 하고 또 언니에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하면 분명 당신을 죽여버릴 거예요. 그리고 증거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고요. 지금 무릎 꿇고 우리 현민이의 개가 될 건지 아니면 죽을 건지 선택해 봐요.”김예훈은 자기가 홧김에 치켜든 손을 보고 또 김서하를 바라보다가 손을 다시 내리고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혹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사모님 성격에 제 앞에서 모든 걸 얘기하고 화를 도발하게 했다는 것은 당신을 때리게 하려는 거죠? 설마 뒷좌석에 있는 카메라를 제가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신과 김현민 씨의 윤리 도덕을 넘어선 관계를 모를 줄 알아요?”이어서 김예훈은 김서하가 반응하기 전에 손을 뻗어 뒷좌석에 놓인 쿠션을 가져다 찢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초소형 카메라와 녹음기가 나왔다.“어린 애인을 위해 정말 못 하는 짓이 없네요. 저와 박연서 사모님의 협력을 방해하려고 또 저를 도발시켜 때리게 하려고 하다니... 제가 당신을 때리기만 하면 당신은 영상을 앞뒤로 편집해서 인터넷이나 다른 방법으로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 손에 들어가게 하려는 거겠죠. 제가 당신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못된 짓을 했다는 증거를 보면 안동 김씨 가문의 어르신과 당주는 물론이고 가문 전체에서 저를 죽이려 할 거예요. 어떻게 보면 너무 완벽한 계획이긴 했어요. 당신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저는 죽든가 아니면 진주·밀양에서 쫓겨나겠죠. 그리고 김현민 씨는 어쩌면 특별한 시기에 정당하게 권력을 잡게 되고요?”김예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김서하의 계략을 하나하나
김예훈은 사라지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김서하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사모님, 조금 전까지는 박연서 사모님께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나요? 쇼 타임은 이미 끝난 것 같은데 왜 문은 잠그는 거죠? 내가 여기에서 당신을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김예훈은 말하면서 눈앞에 있는 김서하를 훑어보았다.그는 오늘 김서하와 김현민 사이에 분쟁을 만들려고 김서하의 차에 탄 거였는데 김서하 역시 그를 골탕 먹이려는 계획으로 두텁지 않은 김예훈과 박연서와의 동맹을 깨려고 꾸민 짓이었다.김예훈은 김서하가 정말로 재미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여자로서 조카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흥미로웠다.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건 김예훈의 눈에 어린이들의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박연서는 이미 멀리 떠나 쫓아갈 수도 없을 텐데 지금 제 차에서 내리면 비를 맞아야 하는데요?”김서하는 자기 자리로 돌아앉았는데 조금 전의 애교가 듬뿍 담겼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는 도도한 얼굴로 김예훈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글쎄요? 과연 사모님이 원하는 대로 될까요? 저와 박연서 사모님은 처음부터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이이고 그분이 저의 조건은 받아들인 이유는 병을 고쳐주는 것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원인은 그분도 10년 전의 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조금 전의 상황 때문에 박연서 사모님이 10년 전의 일을 조사하는 것을 포기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안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김서하가 담담하게 웃었다.“우리 넷째 언니는 진주·밀양의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고 서울 박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당연히 나의 꼼수를 모를 리가 없고 또 10년 전의 일에 대한 조사도 그만두지 않겠지만 당신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감정결벽증이 있는 사람인지라 자기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는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간단하게 말하면 조금 전의 상황 이후로 당신은 이제 우리 넷째 언니를 만날 자격을 잃었다는 뜻이에요.
“당신...”김예훈의 말에 김서하는 잠시 멍해졌다.그녀의 눈에는 누구보다도 완벽한 안동 김씨 가문의 후계자가 김예훈의 눈에는 사람조차 아니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김서하는 심호흡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에 김예훈을 바라보며 약간의 애교를 담아 말했다.“김예훈 씨, 당신이 얘기한 것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옛말에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현민이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현민이가 성공적으로 당주 자리를 이어받으면 한국을 위해 노력할 거예요. 만약 현민이가 그런 애국심과 포부가 없다면 제가 왜 밀어주겠어요? 현민이를 믿지 못하겠다면 저를 믿어주시고 그것도 안 된다면 저희 용전을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용전은 나라가 외부에 대항하는 기본 조직이고 또한 우리 나라에 제일 충성하는 조직이에요. 용전은 절대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아요.”김서하는 말하면서도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김예훈의 가까이로 다가가더니 어찌나 가까웠는지 서로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달콤한 향기는 그녀의 숨결을 타고 김예훈의 얼굴에 닿았는데 고귀한 기품과 아름다운 미모의 조합은 남자라면 누구나 영혼을 빼앗길만했다.“김예훈 씨, 만약 내가 제시한 조건이 부족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걸 얘기해 봐요. 오늘 일이 해결되어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고 현민이가 안동 김씨 가문의 일인자가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요.”김예훈은 위아래로 눈앞의 김서하를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 김현민의 고모가 맞는 거야? 그런데 고모가 왜 조카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하는 거지? 천하의 용전 사모님이 왜 하찮은 조카를 위해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굴며 미인계까지 사용하는 거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설마 두 사람...’순간적으로 터무니없는 생각이 김예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만약 김서하와 김현민의 관계가 정말로 그런거라면 김현민은 정말로 인간도
“김예훈 씨, 제 생각에는 현민이 옆에 잠입해 있는 놈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일은 저희가 철저히 조사해서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드릴게요.”김예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어서 김서하는 조금 전의 도도한 표정을 거두고 부드러운 얼굴로 김예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김예훈 씨, 제가 지금 어떤 말을 하든 믿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 부탁해요. 우리 넷째 언니에게 가서 얘기했던 조건을 취소해 주세요. 부디 현민이가 지금처럼 착한 아들로 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면 그 뒷일은 제가 다 해결할게요.”김예훈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사모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고 있어요? 사모님은 자신의 매력에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제가 여자라면 꼼짝 못 하는 줄 아시나 봐요. 아무렴 향수를 뿌리고 바다 구경을 좀 시켜줬다고 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아니죠. 뭔가 그에 상당한 대가를 치르지도 않고 말로만 모든 것을 얻으시려는 거예요?”김예훈의 말에 김서하는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김예훈 씨, 우리 언니에게 가서 얘기했던 조건을 취소하고 다시는 현민이와 대립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주시면 우리 사이의 원한을 깨끗이 없던 일로 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당신은 우리 김씨 가문의 귀빈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에게 별장과 20조를 줄 것이고 또 용전에 잠입해 있는 부하들을 모두 철수시켜 당신이 용전을 완전히 장악하도록 할게요. 돈과 지위, 그리고 권력을 모두 줄 것이니 한 번만 도와줘요. 이 외에도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요.”김서하는 안전벨트까지 풀고 자신의 아리따운 얼굴을 김예훈 눈앞에 들이댔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 사이로 깊게 파인 가슴골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어떤 남자라도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김예훈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아가씨이고 한국 용전의 사모님이 이깟 일에 자신을 희생할 거라고 상상
“쓰레기”라는 세 글자에 김서하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김예훈 씨, 당신 말 대로 우리 모두 사업하는 사람들끼리 당신이 반격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확실하게 현민이 잘못이 맞으니 제가 돌아가면 반드시 단단히 교육시켜서 직접 사과하게 할게요. 그러니 김예훈 씨도 성의를 보여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우리 모두 오해를 풀고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필경 현민이도 그렇고 김예훈 씨도 모두 큰 일을 할 사람인데 이렇게 싸우면 다른 경쟁자들에게만 좋은 일이 되는 거잖아요.”김예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성의를 보여달라고요? 그럼 먼저 멀리도 말고 바로 어제 용문도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야밤에 오륜 사찰의 선재 스님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말로는 오해를 풀자고 하면서 매번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요? 심지어 저를 박연서 사모님 댁으로 가게 만든 것도 당신들이 꾸민 거잖아요.”김예훈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꺼내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삑!”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김서하는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고 김예훈을 노려보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이 메시지는 누가 보낸 건가요?”김서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김현민의 부하일 거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만약 정말로 그녀의 추측이 맞는다면 안동 김씨 내부에 김현민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순간 김서하는 오늘 자기가 직접 김예훈을 찾아온 것은 뜻밖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김예훈은 비웃는 표정을 전혀 숨기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이쯤 되면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이 메시지는 당연히 김현민이 보낸 것이고 저를 임수민 구하러 가게 해서 박연서 사모님을 만나게 하려는 계획이었잖아요. 당신들이 박연서 사모님의 손을 빌려 저를 죽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저의 손을 빌려 박연서 사모님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됐든 당신들의 계
“사모님이 초대하시는데 제가 왜 거절하겠어요?”김예훈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김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김서하가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고 싶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했다.김예훈이 차에 타자 김서하는 가볍게 웃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페라리 488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맹수와 같이 순환고속도로를 향해 질주했다.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김예훈이 고개를 돌려 김서하에게 물었다.“사모님, 정말로 저와 함께 비를 구경하면서 드라이브하려고 오신 건 아니죠? 저는 사모님과 함께 비 구경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그러니 이제 솔직하게 말씀하시죠.”김서하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김예훈 씨가 우리 넷째 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서요. 그리고 그 대가로 조건을 걸었다고 들었어요.”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모님, 역시 소식이 빠르시네요. 저의 조건이 무엇인지 아시는 것 같은데요. 그건 바로 김현민을 양자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거였어요.”김예훈의 말에 들은 김서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아주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실제로 그 조건 때문에 김현민은 정정당당하게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가 될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그야말로 사람을 죽이고 마음마저 짓밟는 격이다.“김예훈 씨, 잘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안동 김씨 가문의 일에 간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김서하가 계속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현재 권력 교체의 중요한 시기예요. 외부 사람들에게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내부적으로 엄청 치열하거든요. 아무리 진주·밀양 두 도시의 거물이라 할지언정 안동 김씨 가문의 싸움에 끼어들면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혼자서 거기에 끼어들겠다는 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김서하는 말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았다.그녀의 오른쪽 다리의 치맛자락이 살짝 흩날리더니 보는 사람이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김서하의 적나라한 유혹
“내가 김예훈을 설득해 볼게. 그런데 계속해서 제멋대로 행동하면 죽여버릴 수밖에.”김서하는 어떻게든 김현민을 수장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비록 큰 피해를 준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양보하기만 한다면 진주·밀양 용전을 내놓을 마음도 있었다....시즌 호텔.하늘에서는 가랑비가 쏟아졌고, 호텔 전체가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토요타 프라도에서 내려 호텔 로비로 들어가려던 김예훈 뒤로 갑자기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곧이어 그의 앞에 페라리 488 한대가 멈춰 섰다.창문이 내려가면서 백옥과도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샤넬 드레스를 입고 구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요정 같은 얼굴이 보이자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상대는 바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서하였다.갑작스러운 등장이 놀랍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김병욱이 이 큰일을 꾸민 걸 보면 무조건 박연서가 10년 전 사건을 재조사하려는 것을 김현민에게 알려줬을 것이고, 이 타이밍에 김서하가 찾아온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것은 싸우러 총이나 칼을 들고 온 것이 아니라 홀몸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김예훈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의외였다.김서하도 의문스러운 그의 표정을 감지했는지 핸들을 잡고 창가에 기대어 김예훈을 향해 피식 웃었다.“김예훈 씨, 저랑 대화 좀 나눌까요? 비 오는 날 고속도로 풍경이 꽤 볼만한데 한번 보실래요?”침착하고 여유로운 표정, 무심하면서도 약간의 유혹이 담겨있는 말투였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이 둘이 꽤 괜찮은 사이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이순간 김예훈은 두 손을 창문에 갖다 대면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사모님,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저희 둘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가요? 그것도 깊은 원한이 있는 그런 관계 말이에요. 언제부터 저희가 비 오는 날 같이 드라이브하는 사이가 된 거죠? 말도 안 되잖아요.”김예훈은 그녀의 손에서 진주·밀양 용전을 빼앗아 왔는데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