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가 가득 서린 방호철의 얼굴을 본 사쿠라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방호철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방 도련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봐요. 이렇게 중요한 물건인 줄도 모르고... 사과를 드리는 의미에서 그 20조 원은 저희 미야모토 그룹에서 배상하도록 하겠습니다.”사쿠라는 눈가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20만 원도 아니고 20조 원이었으니 말이다.미야모토 그룹은 비록 일본에서 잘나가는 그룹이라 하지만 갑자기 20조 원을 내놓기엔 무리였다.하지만 방호철과 계속 손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고 이 순간만큼은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냥 지나간 일로 해.”사쿠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호철은 안정을 취해보려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지금은 일단 두 번째 목표에 신경 쓰자고.”부산 버뮤다에 별로 관심 없는 방호철과는 달리 지금까지 부산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했던 야마자키파와 야마모토 그룹한테는 아주 중요한 땅이었다.일본인은 부산 중심 지역인 이 땅의 경매에 참여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방호철한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부산 버뮤다를 손에 넣고 싶었다.방호철을 통해 렴가로 이 땅을 손에 넣어야만 야마자키파와 야마모토 그룹의 이익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돈은 잘 준비했나?”방호철이 팔짱을 끼면서 묻자 사쿠라가 살며시 말했다.“보증금 2조 원 외에도 20조 원을 준비했으니 낙찰받는 데는 큰 문제 없을 것입니다. 하은혜 씨도 이 땅을 원하는 것 같던데 쓸 수 있는 자금이 고작 10조 원이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경매에 참여할 자격도 없고요. 그러니까 이 땅은 저희 것이 틀림없습니다.”자신만만한 사쿠라의 표정에 방호철이 냉랭하게 말했다.“잘 준비되었으면 됐어. 이번엔 실수하지 말고. 이번 경매가 끝나면 김예훈을 죽여버리고 은혜 씨를 내 여자로 만들 거야. 내가 눈여겨본 여자는 아무도 뺏어가지 못해!”사쿠라가 피식 웃었다.“방 도련님, 걱
방호철과 사쿠라가 한마디씩 주고받을 때 김예훈이 손에 쥐고 있던 은행카드를 만지작거렸다.이때 오정범이 말했다.“김 도련님, 왜 불로장생약을 주기로 한 거예요? 도련님 말씀대로 정말 좋은 물건이라면 저희가 간직해도 되는 거잖아요.”김예훈이 오정범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불로장생약이 존재한다는 거 정말 믿어?”멈칫한 오정범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그러자 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만약에 이 세상에 정말 불로장생약이 존재한다면 저 강아지가 처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육지의 신이 되겠지. 말로만 신비로웠지. 사실은 수은이야. 온도계에 있는 수은 알지? 예전에는 기술이 부족해 수은이 결국 검은색으로 변했던 거야.”오점범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김 대표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거짓말일 리는 없겠지.’방호철이 만약 20조 원으로 수은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몰랐다.김예훈과 오정범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경매가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혹할만한 보물이 보이지 않았다.드디어 마지막 경매품이 나타나고, 아리따운 경매사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경매품을 소개해 주었다.“부산 버뮤다 중심 지역인 H 번지는 천 평이나 되는 곳이고, 현재 부산 앞바다에서 유일하게 비어있는 공지입니다. 이 땅은 20년 전 진주 갑부의 소유였지만 그동안 개발되지 않은 탓에 기관에 넘겨지면서 경매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동영상을 통해 사람들은 부산 버뮤다에 자리 잡은 가장 중심 지역인 이 땅이 일단 개발되기만 하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알게 되었다.평범한 오피스텔을 건축한다고 해도 그 가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얼마나 많은 재벌과 그룹에서 이 땅을 노렸는지 몰라도 매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상류사회 인사들이 동영상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지 몰랐다. 돈 없는 사람들도 갖고 싶은 욕심이 들끓고 있었다. 이 땅을 손에 넣기만 하면 부산 상류사회에 입성하는 거
제자리에 얼어붙은 사람들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저 자식 집안에 금고를 숨겨둔 거야? 아니면 집에서 현금을 찍어내고 있는 거야!’‘바로 20조 원을 부른다고? 무슨 20만 원인 줄 아나 봐.’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김예훈의 뺨을 때리고 싶은지 몰랐다.‘왜 저렇게 건방진 거지?’하은혜는 이들과 다르게 멈칫할 뿐 미소를 지었다.김예훈이 분위기를 지켜보다 나설 줄 알았는데 한방에 큰 가격을 부를 줄 몰랐다.차분함을 지키던 방호철과 사쿠라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이들이 김예훈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처음부터 20조 원을 부른 건 너무하긴 했었다.“김예훈!”그제야 정신 차린 사쿠라가 대뜸 소리쳤다.만약 격식을 차리는 장소가 아니었다면 바로 김예훈에게 덮쳐 갈가리 찢어 죽였을지도 모른다.여경매사는 자신이 받을 보너스 생각에 황홀하기만 했다.“김 도련님께서 정말 20조 원을 부르신 거 맞습니까?”심지어 잘 못 들었다고 의심할 정도였다.‘어떻게 나에게 꿈같은 일이? 하루아침에 횡재하겠네!’“20조 원에 이 땅을 사겠습니다.”김예훈은 건들건들 다리를 떨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방호철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방 도련님께서는 아무리 그래도 서울 4대 도련님이신데 돈도 많으시면서 저랑 한판 붙어보시죠? 룰은 아까대로. 2조 원씩만 추가하기엔 식상하잖아요. 방 도련님께서 400억 원을 부르신다면 제가 600억 원을 부를게요. 어때요?”“너...”처음으로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체면이 깎인 방호철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더니 김예훈을 주시하면서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우리가 정말 이 땅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정말 웃겨!”사쿠라는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한쪽에 내팽개치고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고작 10조 원짜리 땅을 20조 원에 산다고? 밑지는 장사를 누가 해! 우리가 미쳤다고 따라서 사겠어?”20조 원을 주고 부산 버뮤다 땅을 사
김예훈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방호철을 잠시 쳐다보고는 고개돌려 경매사한테 말했다.“방 도련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시잖아요. 저랑 뺏을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이제 망치를 두드리시죠?”경매사는 잠깐 당황하더니 다시 정신을 차리면서 흥분한 표정으로 망치를 두드렸다.“부산 버뮤다 H 번지, 김 도련님께서 20조 원을 부르셨습니다! 20조 원입니다. 20조 원 더 없으십니까?”땅땅!“그러면 부산 버뮤다 H 번지는 김 도련님의 소유가 되겠습니다!”다음 순간,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비록 김예훈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몰랐지만 방호철과 맞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름을 날릴 정도였다.몇몇 부잣집 딸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면 김예훈과 말을 섞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김예훈이 죽기 전 그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정중앙에 앉아있던 방호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흐뭇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젊은이가 아주 마음에 드네. 지금까지 나랑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네가 처음이었어! 그런데 이 경매장을 나간 순간부터 후회하게 될 거야.”방호철은 뒤돌아 사쿠라 등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그가 출입문을 나서려는 순간, 김예훈이 웃으면서 말했다.“방 도련님, 제가 후회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방 도련님께서는 무조건 후회할 것 같은데요? 20조 원에 수은을 사 갔다는 일이 방씨 가문의 족보에 기록되면 얼마나 우습겠어요.”멈칫한 방호철이 고개를 홱 돌렸다.“김예훈, 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입니다.”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했다.“불로장생약은 사실 수은인데 방 도련님께는 이런 상식도 없으신가요?”빠직!방호철의 손에 쥐고 있던 검은색 알약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손바닥에서 저질 수은이 뚝뚝 떨어지자 방호철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김예훈은 하은혜 등을 데리고 경매장을 벗어나면서 방호철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축하드립니다, 방 도련님. 복수
김예훈이 타고 있던 차량이 고속도로를 타고 포레스트 1호 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주차장 입구에 도착할 무렵, 운전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조수석에 앉아있던 공진해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김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경찰서 사람들이 포레스트 별장을 포위해 버렸습니다. 잠시 다른 곳에서 머무를까요? 아니면...”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경찰차와 들락거리는 경찰을 쳐다보았다.누가 봐도 포레스트 별장에 큰일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김예훈은 이 상황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방 도련님께서 당황하기 시작했네. 뭐, 그래도 대단하긴 해. 반 시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진작에 계획했던 일인지, 경매장을 벗어나서야 계획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인정해 줄 만해!”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하은혜는 그의 표정을 보고 농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멈칫하고 말았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봐서는 방호철의 짓이 분명했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목적을 몰랐다.하은혜는 한참 동안 생각해 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김 대표님, 법을 따지는 시대에 방호철 씨가 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진 못할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누명을 씌우는 게 얼마나 큰 죄인데요. 그리고 국제 대도시인 부산에서는 국제적 이미지를 조심해야 하잖아요. 잘못했다간 기관에서 관여할지도 몰라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가끔은 욱해서 자기도 모르게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저지를 때도 있죠. 오늘 방 도련님께서 20조 원을 들여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잖아요. 그러면 방씨 가문이든 일본이든 꼭 따지려고 하겠죠. 가슴이 아주 답답할텐데 저를 가만히 뒀다가 저녁에 잠도 안 올걸요? 제가 부산 사람이 아니라서 저만 괴롭히려고 할 거예요. 하씨 가문이든 심씨 가문이든 가문의 체면을 봐서라도 은혜 씨를 감히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랬다간 명문가 간의 큰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방호철 씨가
앞장선 한 경찰이 김예훈더러 차에서 내리라면서 뒷좌석 문을 두드렸다.김예훈은 차에서 내리면서 일부러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저희는 법을 지키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무슨 일로 이러시는 거죠?”앞장선 한 경찰이 사진 한 장을 꺼내 김예훈과 대조해 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데려가!”김예훈의 무언의 눈빛에 하은혜는 차에서 내리려다 말았다. 이어 김예훈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사람을 체포하는데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저를 막무가내로 데려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권력을 남용했다는 기사가 터지면 어떡하려고요.”김예훈의 표정이 너무나도 평온해서인지 경찰은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 씨 맞죠?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몰라서 물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했다.“저는 늘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경찰분들이 출동할 정도로 무슨 큰 죄를 저질렀는지 정말 모르겠네요.”앞장선 경찰의 손짓하나에 누군가 조심스레 사진 한 장을 건넸다.“잘 봤어요?”경찰이 냉랭하게 말했다.김예훈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사진 속에는 목매달고 죽은 시체 하나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다름아닌 후지와라 미유였다.“이 사람 알죠?”경찰이 냉랭하게 물었다.“일본 인플루언서이신 후지와라 미유 씨는 오늘 아침 포레스트 11호 별장에서 쓸쓸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김예훈은 또 어깨를 으쓱거렸다.“제가 후지와라 미유 씨를 아는 건 사실입니다. 어젯밤 조씨 가문의 파티에 함께 참석했었죠. 그런데 이분의 죽음이 왜 저랑 연관 있다는 거죠?”경찰이 차갑게 말했다.“사망자 지인분을 통해 어젯밤 김예훈 씨가 후지와라 미유 씨를 유명 플랫폼과 부산 연예계에서 영구 제명시키겠다고 협박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유명 플랫폼과 혜성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자, 충분히 그럴 만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김예훈이 흥미진진해하면서 물었다.“저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다고
앞장서던 경찰은 이러한 상황에서 김예훈이 절대적인 평정심을 유지할지 몰랐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짓했다.“길 비켜! 다른 사람은 지나갈 수 있게!”오정범은 김예훈의 눈빛을 받고 차를 주차장에 주차했다.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과격한 몸싸움 대신 아무렇지 않게 경찰차에 올라탔다.부릉부릉.그렇게 몇 대의 경찰차가 김예훈을 데리고 이곳을 신속히 떠났다.포레스트 별장에는 여전히 많은 경찰들이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다....오후 3시.부산 제1 경찰서.진윤하와 최산하는 주차를 마치자마자 하은혜 등이 로비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이 밖에도 어젯밤 조씨 가문의 파티에 참석했던 조인국, 조효임, 이미연 등도 있었다.진윤하와 최산하는 멈칫도 잠깐, 하은혜의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은혜 씨, 김 도련님께서 무슨 일로 체포되셨어요?”김예훈이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에 진윤하와 최산하가 당황한 모습이었다.천하의 김예훈이 이런 대우를 받다니.“어떻게 된 일이긴.”하은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연이 먼저 비아냥거렸다.“김예훈이 어젯밤 파티에서 모든 사람한테 유명 플랫폼과 연예계에서 후지와라 미유 씨를 영구 제명시키겠다고 선포했는데 결국 오늘 아침에 자살을 해버렸네? 직접적인 살해는 아니지만 김예훈 때문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 이에 책임을 져야지!”이미연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어쩌다 별장 하나를 사게 되었는데 후지와라 미유의 죽음 때문에 값이 내려가게 되었으니 말이다.더군다나 경찰이 현장까지 막아버렸으니, 별장의 가치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이미연은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후지와라 미유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경찰한테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듣고 나서 김예훈의 멱을 따서 죽이고 싶었다.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김예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조효임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예훈 방에 있는 욕실에서 후지와라 미유 씨의 머리카락도 발견되었다잖아. 경찰
조인국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서서히 고개를 흔들었다.“그럴 리가 없어! 예훈이 얘는 허세를 부리긴 좋아해도 심성이 착한 아이야! 절대 후지와라 미유 씨한테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어!”옆에 있던 하은혜가 한숨을 내쉬었다.“이 부분은 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어젯밤 후지와라 미유 씨가 김 대표님 방에 왔던 것은 자기 방 욕실 샤워기가 고장 나서 잠깐 샤워하려고 왔을 뿐이에요. 이미 진술도 마쳤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욕실 샤워기가 고장 나요? 어떻게 그런 핑계를 댈 수 있어요?”이미연은 한껏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은혜 씨는 아무리 신분 높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지만 사회적 경험이 너무 부족한 것 같네요. 저희가 새로 구매한 별장에 있는 가구들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요. 입주 첫날에 샤워기가 고장 날 리가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우연히 있을 수 있죠? 이 말을 저도 못 믿겠는데 경찰분께서는 믿어주실까요? 누구를 무슨 바보인 줄 아나.”하은혜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의 상황과 사건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의 진술을 봤을 때 김예훈에게는 불리한 상황이었다.사람들이 하는 진술은 모조리 다 똑같았다.김예훈과 후지와라 미유 사이에 충돌이 있어 김예훈이 그 자리에서 후지와라 미유를 영구 제명시키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범행동기와 증인도 있으니 증거는 조금만 더 찾으면 되었다.살인죄는 성립되지 않을지 몰라도 외국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죄는 뒤집어쓸 것이 뻔했다.중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높았고, 외교와 관련된 일이라 아무리 힘 있는 사람이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이러한 상황에서 10년형은 그나마 작은 처벌이었다.감옥에 십몇 년 들어간다는 건 인생이 끝장나는 거나 다름없었다.이런저런 생각에 하은혜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져 왔다.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의 힘을 빌려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김예훈의 명령이라면서 오정범이 말렸다.이번 일은 심씨 가문과 하씨 가문에서 절대 간섭해서는 안 되었다.쌍방이 자신의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