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교외.한 폐창고 안.정민아와 그녀의 비서는 묶인 채 구석에 던져졌다.그들은 오늘 로열 가든 그룹에 가는 길에 갑자기 납치되었다. 지금까지도 무슨 일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오정범이 배치한 사람들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오정범이 두 사람의 납치 소식을 아는지도 지금은 모른다. 창고 밖에는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딱 봐도 전쟁터에서 구르다 온 군인이었다.그는 보드카를 마시며 간간히 머리를 돌려 정민아와 그녀의 비서를 쳐다보았다. “저 두 사람 다 괜찮네. 그런데 지금 당장 손을 댈 수 없으니 아까울 뿐이야. 그렇지 않다면 당장 맛볼 수 있을 텐데.”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집사는 그의 상사이자 두목이었다. 집사 앞에서 그는 집사의 말을 잘 들었다.그 말을 훔쳐 들은 정민아는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 그녀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면 도망칠 기회가 있는 셈이다.이때 문밖에서 또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남자들이 들어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더러운 시선으로 정민아와 비서를 훑어보았다. 마치 침을 흘리는 늑대 같은 표정이었다.“형님, 예전부터 한국의 여자들은 예쁘장하고 귀여운 맛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쪽의 여자들과는 또 다른 맛이 아니겠습니까. 먼저 좀 갖고 놀면 안 됩니까?”키가 조금 작은 백인이 입맛을 다시며 변태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러자 두목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갑게 얘기했다.“집사님의 명령을 잊지 말아라. 오늘 일이 끝나기 전에 이 두 여자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대신 일이 끝나면 이들을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키 작은 백인은 활짝 웃으며 얘기했다.“형님, 제가 듣기로는 이 여자가 바로 김세자가 숨겨둔 애인이라면서요? 김세자는 경기도의 1인자잖아요! 그런 놈의 여자를 갖고 논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제 생각에 지금이 아니면 이런 여자들이랑 놀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습니
성남체육관, 시간은 1분 1초 흘러가고 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10분이 지났다.임재훈은 이미 링 위에 서 있었다.김예훈이 막 올라가려는데, 그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김예훈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켰고 사진 한 장을 보았다.사진 속에는 정민아와 그녀의 비서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방에 묶여있는 모습이 있었다.김예훈의 안색은 순간 지극히 어두워졌고 일종의 섬뜩한 살기가 얼굴에 번졌다.원래 링 위에서 항상 여유롭고 천하무적의 자세를 취하던 임재훈도 갑자기 주변 온도가 낮아진 것 같아 참지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이때 집사가 천천히 걸어오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김예훈 씨, 이번에 우리 어르신과 싸우는데, 부디 최선을 다해 한국의 면모를 보여주길 바랍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자리에서 떠났다.김예훈의 눈가는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협박, 이건 분명한 협박이다.문자가 도착하자마자 집사가 다가왔다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암시했다.집사는 그가 져주기를 바랐고 그것도 모자라 ‘당당하게’ 패배하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민아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김예훈은 정민아가 어떻게 상대방에게 넘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는 감히 이것이 가짜 소식이라는 것에 배팅할 수 없었다.리카 제국의 임씨 가문의 행동이 얼마나 뻔뻔한지는 이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숨을 크게 들이쉬고 김예훈은 천천히 링 위로 올라갔다.이 과정에서 다행히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는 조금씩 수그러들었다.“리카 제국의 임씨 가문이라, 한판 대결일 뿐인데 내 아내를 가지고 나를 협박하다니, 아니, 그들이 원래 협박하고 싶었던 사람은 김세자이겠지... 승리를 위해 무슨 수든지 다 쓸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승리를 원하면, 내가 당신들에게 주면 그만이지만, 당신들의 그 잘난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이 이 일로 인해 닥칠 나쁜 결과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김예훈이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의 표정은
이 한 방은 구름처럼 가벼웠다.매우 느린 속도로 김예훈의 가슴 복부 쪽을 직통으로 쳤다.힘이라...아니, 이건 전혀 힘이 없었다.임재훈은 절대 고수라고 말할 수 없었고 그저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일반인일 뿐이었다!그러나 정민아의 상태를 떠올리니, 김예훈은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척했고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났다.이 장면은 완전히 관객석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사람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다.“나왔다! 나왔어!”“이것이 바로 임재훈 어르신의 ‘삼단공법’중 첫 번째 기술이야!”“이 데릴사위는 첫 번째 기술마저 막지 못하면서 어떻게 임재훈 어르신을 상대하려고!”“이 온실 속에 화초 같으니라고. 임재훈 어르신의 대단함을 충분히 느꼈겠지? 그가 나중에 또 어떻게 나대는지 똑똑히 지켜보겠어.”“이번에 우리 한국을 대표해서 출전했는데 이 일이 밖으로 알려지기라도 하면, 큰 조롱거리가 될 텐데 너무 창피하네요!”대중들의 분분한 의론 속에서 임재훈이 소리쳤다.“하!”김예훈이 또다시 뒤로 물러섰고 이번에는 링 밖에까지 밀려 나갔는데, 한 방이 제대로 먹힌 듯 똑바로 서 있지 못했다.심판이 바로 다가와 카운터를 세기 시작했다. 10초 후, ‘반격할 힘이 없는’ 김예훈은 패배하고 말았다.임재훈 어르신은 흡족한 얼굴로 자신의 발밑에 있는 김예훈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젊은 양반아, 난 널 충분히 봐줬는데도 이렇게 졌다니, 너무 날 원망하지는 마. 가서 김세자한테 전해. 겁나면 바로 말해도 된다고. 이런 시답지 않은 핑계를 대지 말고.”김예훈은 냉랭하게 임재훈을 바라보았다.“다음에 다른 사람과 맞붙었을 때, 오늘만큼의 운이 따라주길 바라네요.”임재훈은 코웃음을 쳤다.“이런 데릴사위 따위가 감히 내가 이긴 원인을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지껄여?”이 말을 듣고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임재훈 어르신께서 관대하게 처리해 주신 거 안 보여?”“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지금 너는 황천길을 걷고 있었을 거야!”“지금 젊은이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김예훈을 철저히 나락에 떨어지게 만들겠다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물론 라벤더 재단 등 사람들이 필두로 나섰다.김예훈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김세자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같았기에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원했다.“김예훈, 내가 기회를 한번 주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 잘못을 인정할 기회를 말이야.”임재훈은 냉철하게 말했다.이것은 그가 원했던 결과이다.이 미쳐 날뛰는 데릴사위가 며칠 전 감히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을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게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다지?지금 임재훈이 해야 할 일은 이 쓸모없는 사람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다.“어르신,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김예훈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하은혜와 송준이 눈을 마주치고는 재빨리 따라갔다.체육관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렸다.많은 사람이 보기에 CY그룹이 이번에 실패하여 기가 꺾인 채 돌아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임재훈과 리카 제국의 임씨 가문은 그들에 의해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높이까지 추켜세워졌다.“도대체 총사령관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임재훈 어르신이 그 두 개의 기술만으로 그를 이겼다고요?”체육관 한 곳에서 양정국의 얼굴이 한없이 못나졌다.“큰일 날 것 같네요.”왕태호의 얼굴도 흉하기 짝이 없었다.그들은 김예훈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장면이 얼마나 기괴한지를 알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렉서스 한 대가 오자 김예훈은 신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 두 사람과 함께 차에 올랐다.차에 오른 후에야 하은혜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총사령관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어떻게 패배할 수 있어요?”김예훈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민아한테 일이 생겼어. 임재훈한테 잡혔어.”이 말을 들은 하은혜와 송준 두 사람은 모두 움찔했고, 마침내 오늘 이 괴상한 광경이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정민아가 임재훈 어르신의 손에 넘어갔기에 대
왜 정민아인지도 이해가 되었다.왜냐면 성남 임씨 가문 사람들은 정민아를 김세자가 은밀하게 만나는 여자인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결국 링에서 당한 사람은 김예훈이었다.집사가 정민아를 이용해서 김예훈을 협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문제는 단순히 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였다면 지금쯤 리카 제국의 임씨 가문이 이미 정민아를 풀어줬어야 했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정민아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대표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손을 쓴 사람은 누구입니까?”오정범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지금 경기도는 모두 그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정민아를 납치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권력과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다.“얼핏 보면 리카 제국의 임씨 가문 사람인 것 같지만 그쪽에서는 일을 빈틈없이 할 테니, 이번에 손을 쓴 사람은 리카 제국의 임씨 가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동생들한테 최근에 해외에서 온 일당이 있는지 더 알아보라고 해.”김예훈이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재훈,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리카 제국의 임씨 가문도 반드시 멸망하게 할 것이다.하지만 이것은 지금 당장 할 일이 아니었고 정민아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는 가장 중요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이미 성남을 떠날 수 있는 모든 길을 봉쇄했습니다. 반드시 형수님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오정범도 침울하게 입을 열었다.바로 이때 김예훈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정민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김예훈은 순간 움찔했고 잠시 후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눌렀다.“당장 200억 준비해!”상대의 목소리는 일부러 음성변조가 된 목소리였다.“그래, 어떻게 거래할 건데? 돈은 문제없지만 그녀의 안전은 보장해야 할 거야.”김예훈이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쳇, 당신 남편이 당신과 얘기하고 싶대, 빨리!”“예훈아,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전화 맞은편에서 정민아의
“정민아, 너의 그 데릴남편이 그렇게 많은 돈으로 너를 구하러 올 것 같아?”정민아를 향해 정지용이 입을 열었다.정민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칭칭 감은 붕대로 자신의 표정과 억양을 감추고 있는 정지용을 쳐다보았다.하지만 방금 김예훈에 대한 그의 태도는 정민아에게 너무 많은 허점을 보여주었다.그러자 정민아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정지용, 넌 그 200억 못 받아.”정민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을 듣자 의기양양하던 정지용은 갑자기 몸을 떨더니 벌떡 일어섰다.“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어. 난 이미 네가 누군지 짐작했거든, 네가 인정 안 해도 뭐 어쩌겠어? 그리고 김예훈이 너의 정체를 과연 짐작할 수 없을까? 정지용, 넌 너무 자신만만해!”정지용의 안색은 1초에 한 번씩 변했다. 잠시 후 심호흡을 하고는 자신의 얼굴에 감긴 붕대를 풀어 헤쳤다.그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생김새는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정민아에게 다가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내 신분을 알았으면 뭐요? 내가 200억만 가지면 이 넓은 땅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어요. 그리고 김예훈한테 직접 돈을 보내라고 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이 형님들이 김예훈 앞에서 누나를 겁탈할 거니까! 누나는 누나한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어요?”정민아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지만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정지용, 모든 걸 다 완벽하게 생각하지 마. 네가 그 돈을 받았을 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정민아는 지금 김예훈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하고 있었는데, 만약 진짜 그 사람이라면, 정지용이 지금 하는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었다.정지용이 웃었다. 돈을 받기만 하면 목숨을 부지할 방법은 수만 가지나 된다.정민아는 설마 김예훈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설마 김예훈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인가?그러자 정지용은 얼굴의 흉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도 이제 거짓말하는 법을 배웠는데 내가 믿을 것 같아요? 그래
정민택이 사는 곳은 달동네였고 아들까지 곁에 없어 동네 양아치들에게 종종 괴롭힘을 당했다.이때 문이 다른 사람에 의해 걷어차이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양아치들이 또 찾아왔다고 생각했다.들어온 사람이 김예훈인 것을 똑똑히 보았을 때, 정민택의 얼굴에는 분노가 일었고 김예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여긴 왜 왔어!?”정민택의 관점에서 보면, 만약 김예훈, 이 데릴사위가 정씨 집안에서 계속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들 정씨 집안은 지금 파산하지 않았을 것이다.김예훈이 바로 정씨 가문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김예훈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정민택에게 다가가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 아들 지금 어디에 있어.”정민택은 냉소를 띠었다.“김예훈, 너 지금 되게 건방지다? 정민아가 무슨 이사장이 된 이후로 넌 눈에 뵈는 게 없지? 잊지 마, 난 어쨌든 네 윗사람이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날뛰는 건데. 너 이거 지금 불효야!”김예훈은 냉랭하게 말했다.“내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지 마. 다시 한번 물을게, 정지용 어디 있어!?”정민택은 분통이 터졌다. 여자 덕을 보면서 사는 멍청이가 지금 그의 앞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니!그냥 이사장일 뿐이잖아? 아니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도 여자 덕을 볼 수 있다고?정지용은 그렇게 능력이 있는데도 이런 쓰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향으로 떠났는데, 하늘은 정말 불공평하다!“몰라, 내가 안다고 해도 왜 말해야 하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정씨 집안 일에 참견하지?”정민택은 대답할 뜻이 없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김예훈은 정민택의 목에 손을 갖다 대고는 그대로 들어 올리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마지막으로 묻는다고 했어. 정지용 어디에 있냐고! 말 안하면 목을 졸라버릴 거야!”김예훈의 눈빛을 보고 정민택은 마침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이럴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김예훈은 정말 자신을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내려놔!”김예훈은 정민택을 내려
성남 국제공항,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다.그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걸을 때, 마치 눈빛 하나로 사람에게 끝없는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것만 같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세를 가지고 있다.정지용이 그를 봤더라면 덜덜 떨었을 것이다.부산 견씨 가문 뒷산 금지구역에 계시는 장관이자 정지용과 정가을의 스승 견무이기 때문이다.뒷산 금지구역에 버려진 뒤 정지용과 정가을 두 사람은 이분에게 밤낮으로 시달렸다.정지용이 이번에 나온 것도 그의 명령 때문이었다.견무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정지용을 위해서가 아니었다.그는 정민아를 위해 왔다.정씨 가문은 몰락했지만 정민아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으니 부산 견씨 가문으로서는 그 영문을 밝혀내야 했다.이런 최상위 가문에게는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하위 가문의 출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정민아가 아무리 성공해도 부산 견씨 가문의 눈에는 그저 하인일 뿐이었다.성남 공항 입구에 이르자 견무는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내 그 못난 제자가 이번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너를 위해 이 스승이 리카 제국 임씨 가문에까지 연락했는데. 만약 네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의 목숨을 지킬 수 없을 것이야.”...김예훈은 정지용의 휴대폰 번호를 얻은 뒤 용병들이 사용하는 수법으로 위치를 알아냈다.이어 혼자 차를 몰고 갔다.일찌감치 버려진 공장 건물이었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떠돌이와 양아치들이 몰려있었다.이곳은 무법 지대라고 할 수 있다.김예훈이 도착했을 때, 공장 입구의 몇몇 양아치들의 시선은 그에게로 쏠렸다.몇 사람이 건들건들 걸어와서는 김예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어이 형님, 우리 구역에 와서 주차하시면 돈을 내셔야 합니다.”“얼만데.”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김예훈이 이렇게 순순히 따라주는 것을 보고 이 몇 사람은 얼굴에 모두 웃음을 띠었다.하는 일 없는 놈들은 이런 공갈 협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형님, 형님 차는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