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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거스른 여전사
죽음을 거스른 여전사
작가: 설원

0001 화

작가: 설원
“추워… 너무 추워… 제발 부탁이니 이불 하나만 다오… 이불 하나면 돼….”

폭설이 내리던 어느 밤, 마구간 옆 오두막에서 눈보다 창백하게 질린 한 여인이 제대로 먹지도 못해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몸을 하고 바깥에 있는 시종들에게 계속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퉤! 자기 주제에 무슨 이불을 달래?”

하지만 구경 나온 몇몇 시종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만 터뜨릴 뿐이었다.

“저 여자 좀 봐. 장군부의 귀한 핏줄이면 뭐해? 아무리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해도 어떻게 16년 동안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쌓아온 정을 이길 수 있겠어?”

“어휴, 큰아가씨만 불쌍하지… 저 천한 것이 저택으로 돌아오던 날에… 유서 한 장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으니….”

“심지어는 자신을 불태우는 방식으로 사라지셨으니…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얼마나 불안했으면 그런 방식으로 우리 모두를 버리고 떠나실 생각을 하셨을까.”

과거 얘기를 떠올리자, 시종들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는지 한 늙은 시종이 갑자기 몽둥이를 집어들더니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시종이 서둘러 말렸다.

“그래도 장군가 핏줄인데 그러다 진짜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하, 죽으면 죽었지! 나리랑 마님, 큰공자까지 누가 쟬 연민이라도 할 것 같아서 그래? 저년은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큰아가씨께서 떠나던 날에 쟤도 같이 땅에 묻어버렸어야 했다고! 불쌍한 우리 아가씨….”

“그거야 그렇지요. 큰아가씨께서 그렇게 돌아가신 후로 마님도 종일 눈물로 하루를 보내시고 나리께선 한숨만 쉬시니… 그 성격 좋던 큰공자마저도 요즘 자주 화를 내시잖아요. 이 모든 게 다… 저년이 자기가 진짜 이집 딸이라고 나타난 후부터예요!”

결국 그들은 이경낙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저 악취가 풍기는 똥통을 그녀가 있는 오두막 안에 집어던지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불이라도 구걸하려고 문 앞까지 기어갔던 이경낙은 똥물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창밖에서는 큼지막한 눈이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마구간에서 말들이 여물을 먹는 소리도 잦아들면서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 찾아왔다.

이경낙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옆에 있는 볏짚을 잡아당겨 가까스로 대충 몸을 가렸다.

이틀 전, 실수로 이경주가 생전에 아끼던 찻잔 하나를 깨뜨렸다가 친오라비인 이각천에게 귀뺨까지 맞았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이 참에 예의법도를 제대로 가르친다며 그녀를 악취가 풍기는 이곳 마구간 옆 오두막에 가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어젯밤부터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 추워서 견딜 수 없어져, 고작 이불 하나 구걸했던 게 다였지만 시종들은 이경주의 죽음을 모두 그녀의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욕하고 괴롭히기 바빴다.

그러자 이경낙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는데, 그저 웃음만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이씨 가문의 진짜 혈통은 자신인데… 아버지 어머니의 친딸이고 오라버니의 친동생인 자신인데… 왜 그들에게는 이경주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16년 전, 산파는 몰래 자신의 손녀와 이경낙을 바꿔치기하고 진짜 이집 딸인 이경낙을 산 속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이경낙은 온갖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시종처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된 잠도 자지 못하며, 매일 그들 가족을 섬기며 살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나날은 그녀의 진짜 신분이 밝혀진 후, 이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오면서 끝이 났다.

이씨 가문은 산파의 황당한 행위에 대해 죄를 묻지 않았지만, 이경낙은 부푼 기대를 안고 금릉성으로 입성했다.

그렇게 그녀가 부모님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던 찰나, 저택 안쪽에서 엄청난 비명소리가 들렸다.

“큰일 났어요! 큰아가씨가 불을 지르고 자결했어요!”

이경주는 유서 한장만 남기고 방에 불을 질렀다. 유서에는 자신의 죄가 너무 깊어 가문의 모두에게 볼 낯이 없다고 썼다. 원래대로라면 이 자리의 진짜 주인이 돌아왔으니 물러나야 마땅하나, 부모님과 오라버니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쉽고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떠난다는 말도 남겼다.

이경주의 방이 불타면서 저택에 있는 안방 십여 채도 같이 불에 타버렸다.

이경낙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폐허가 된 저택과 시신을 마주했다. 그녀가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분노에 이성을 잃은 이각천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다 너 때문이다! 네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경주가 이런 선택을 했을 리 없어! 대체 왜 너만 살아 있는 것이야?!”

그녀의 부모님은 날뛰는 이각천을 이경낙에게서 서둘러 떼어놓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착잡함, 망설임, 고통, 그리고 슬픔....

이경낙은 그제야 그들이 자신을 데려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이경낙은 이경주의 죽음에 속죄하며 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잘못을 전부 그녀의 탓으로 돌렸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안채와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진 곳에 있는 방 하나를 내주었는데,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저택의 시종들마저도 그녀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뒤에서는 재앙덩어리에 악마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그녀를 바라봐주지 않았다.

반면, 어머니는 가끔 그녀를 보러오긴 했지만 올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만 했다.

“우리 경주… 불쌍한 내 아이… 어미가 미안하구나.. 어미는 네가 너무 보고 싶구나….”

이경낙은 최선을 다해 모두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어머니에게 문안을 빼놓지 않았고 어머니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팔다리를 주물러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별일 없으면 자꾸 나타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녀가 정성 들여 만든 요리는 개먹이로 버려지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이경낙이 포기를 하지 않자 그런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니? 뭘 해도 우리 경주는 돌아오지 않을 텐데!”

매일 눈물로 날을 보내던 어머니는 끝내는 눈병에 걸리고 말았다.

의원은 친족의 피로 약을 담가 달여서 먹으면 낫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경낙은 주저없이 칼을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지나가다가 들은 말로는, 이각천은 역겹다며 그 약을 모두 개먹이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시종이 그래도 마님 병을 낫게 하는 약이 아니냐고 말리자 이각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걔 같은 멍청이나 믿는 소리지! 딱 보면 돌팔이가 사기 치는 말 같은데, 그걸 어떻게 믿어? 무슨 눈병에 사람 피가 들어가?”

이경낙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의 피가 쫙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황급히 자리를 뜨려던 그녀는 이각천에게 덜미를 잡혀 버렸다.

그녀는 울며 이각천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나요…? 우린 남매잖아요!”

그러자 이각천이 우악스럽게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는,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노려보며 포효했다.

“닥쳐! 날 오라비라고 부르지도 말아! 내 동생은 경주 하나뿐이니까!”

“너 같이 천한 것은 내 동생이 될 수 없어! 아버지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실 거야! 차라리 네가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으면 청주도 그렇게 가지 않았겠지!”

“왜 모른 척하고 살지 않았을까? 왜 굳이 널 데려오려 했을까!”

“여봐라! 이경낙은 품행이 단정치 못하여 웃어른께 말대꾸를 한 바, 끌고 사당으로 가서 무릎 꿇리고 반성하게 하도록! 내 허락 없이는 일어서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하거라!”

그렇게 시종들에게 끌려간 이경낙은 사당에서 물 한 방울, 쌀 한 톨 먹지 못하고 삼일이나 갇히고 말았다.

조금 피로하여 자세가 흐트러지면 등에 가혹한 채찍질이 이어졌다.

그녀가 완전히 기절한 뒤에야 매질을 멈추고 어둡고 습한 오두막 안에 버려졌다.

이경낙은 자신이 이대로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충의 후작가 셋째 공자이자 금방 과거 급제한 탐화랑인 장위가 왔다. 그는 이경낙이 태중에 있을 시 장씨 가문 노부인께서 점찍은 그녀의 약혼자이자, 어릴 때부터 이경주와 함께 자란 사내였다.

소싯적부터 함께 지내며 정을 쌓아온 둘이었지만 이경낙이 돌아오면서 혼사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이경주는 이미 죽은 몸이었기에, 장위 역시 이씨 가문 사람들처럼 이경낙을 증오하는 인물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녀를 구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어리둥절해하는 이경낙에게 장위가 싸늘하게 말했다.

“걱정 마. 평생 혼인하지 않더라도 너랑 혼인할 일은 없으니까! 경주의 목숨 값, 살면서 천천히 갚도록 해. 이대로 죽기엔 너무 쉽잖아?”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경낙은 갑자기 자신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자마자 이경주와 바꿔치기 당해서 산속에 버려졌으니 내가 죽으면 모두가 비로소 마음 편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난 대체 뭘 잘못한 거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족의 정을 바란 것이 그리 큰 잘못이었을까?

이경주의 죽음에 그녀 역시 처음엔 죄책감을 안고 최선을 다해 가족들을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와 모욕뿐이었다.

그녀야말로 진짜 그들의 딸이고 여동생이었고 약혼녀인데 말이다.

심지어 그녀는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일을 저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이 원해서 돌아왔는데 이경주가 죽으면서 천고의 죄인이 되어 버렸다.

창밖에서 여전히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는 가운데, 이경낙은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점점 굳어가는 자신의 시신을 바라보며 영혼이 이미 몸에서 빠져나왔다는 현실을 직감했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그녀의 영혼은 오두막을 떠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안채로 다가갔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집안 안팎으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경낙이 돌아온 후로 처음 있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꽃처럼 어여쁜 한 여인이 사람들 틈에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어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랑 오라버니도요!”

“참, 청낙이는 어디 있나요?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모든 게 오해였다고 전해야겠어요!”

이경낙은 순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경주가 돌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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