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장 어멈이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아가씨, 그게… 진심인가요? 하지만 전에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장군과 마님부터 뵙고 싶다고 했잖아요?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죠?”이경낙은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친부모를 뵙기에 급급했다.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으니 의심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이경낙이 짧은 한숨을 내뱉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실 아까 오면서 꿈을 꾸었답니다. 꿈에 백발 어르신이 나오셔서 저를 엄청 혼내더라구요. 은혜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면서요. 제가 신분을 회복하고 본가로 돌아갈 수
이에 충격을 받은 배씨는 결국 홧김에 아들의 귀뺨을 내리쳤다.돌아온 노장군은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배씨를 나무랐다.“어린애의 철없는 말 갖고 대체 왜 그래? 그동안 등씨가 조정이를 정성들여 보살핀 건 사실이잖아. 그러니 아이가 등씨를 더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배씨는 잔뜩 실망한 눈으로 부군을 바라보았다. 마치 목에 벌레를 삼킨 것처럼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2년 전, 그녀는 전장에서 노장군을 구하려다가 복부에 심각한 자상을 입고 다시는 회임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기에, 이조정이 가문의 유일한 적장자가 된 것이었다
이경낙은 손님방에 머물고 있었다. 비록 외부인의 침입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소리를 지르면 주변의 도사들이 다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잠시 후, 손님방 근처에 어린 도사들이 몰려왔다.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장군부 하인들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서로 눈치를 보며 동작을 급히 멈추었다.“청송관에서 시퍼런 대낮에 대놓고 사람을 잡아가려 하다니. 나와 우리 청송관 도인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니오?”흰 수염을 길게 드리운 한 도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위엄 있게 물었다.그는 어린 도사들의 사숙 능풍자로, 이경낙과는 채소밭을
그녀의 결단력과 확고한 의지는 장 어멈마저 놀라게 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어린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처음 산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는 오랜 기간 학대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어딘가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었는데, 그랬던 아이가 점점 자신의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장 어멈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쩜 뭔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먼저 저것들을 심문해 보죠!”장 어멈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따끔한 곤장 맛을 본 하인들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들은 장군부 가주의
그러자 배 노부인은 놀라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지금 뭐라고 했느냐?”노인은 순진한 이경낙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나랑 같이 장군부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야, 난 이곳 청송관에서 삼십 년을 생활했다. 속세의 분쟁에서 진작에 손을 뗀지 오래란 말이다!”이경낙은 결연한 눈으로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할머니는 억울하시지도 않으세요? 과거 등씨의 얕은 수작으로 할머니께선 아들에게 미움 받고 부군에게 냉대받았습니다. 이씨 가문의 모두가 할머니를 저버린 셈이지요.”“할머니께선 목숨 걸고 전장에 나가서 공을 세우고 부군을 구하
겁에 질린 도사는 반찬만 바닥에 내려놓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하며 도망쳤다.‘사형 말이 다 사실이었어! 이렇게 위험한 곳이었을 줄이야!’내원 사람들은 허둥지둥 도망치는 그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그 중 시위 파풍가 작은 소리로 한 남자에게 물었다. “왕야, 저 도사를 제거할까요?”피 묻은 하얀 색 옷을 입은 남자가 정원 중앙에 서 있었는데, 훤칠한 키에 검은 머리를 폭포처럼 드리운 아름다운 사내였다. 미간에 붉은 점이 있는 사내는 마치 그림을 찢고 나온 사람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웠다.부처처럼 온화한 상을 가진 외모였지
이각천이 데리고 온 하인들에게 손짓하며 명령했다.그러자 그의 등 뒤로 기골이 장대하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 하인들이 밧줄을 들고 이경낙에게 다가왔다.취아는 겁에 질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떨기만 했다.이경낙은 넋이 나간 취아를 끌고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큰 공자, 할머니께서 이곳 청송관에 계십니다. 당장 멈추시는 게 좋을 거예요!”이각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벌레 보듯이 이경낙을 쳐다보며 말했다.“할머니? 할머니께서 가족사에 관심을 끊으신 게 언제인데.”“그날 일은 나도 들었어. 네가 할머니 신변의 어멈을 꼬드겨서 집에서
이씨 가문의 시종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숨소리도 함부로 내지 못했다.이각천은 불쾌한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오자마자 할머니께 문안드리러 가지 않은 것은 할머니의 휴식을 방해하기 싫어서였지, 소란을 일으키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할머니, 저는 유초아를 데리고 집에 가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 애가 여기서 계속 할머니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배 노부인은 이각천의 말을 끊고 호통쳤다.“누가 유초아야? 저 아이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다. 유씨 가
“오늘부터 작아가 네 옆에 있을 거다. 네가 하는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저 아이가 나한테 보고할 것이야. 넌 감시할 사람이 필요해!”이경낙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겉으로는 아닌척하며 답했다.“예, 할머니.”“이제 자세히 말해보거라. 대체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서 장군부를 나갔다 온 게냐?”이경낙은 고개를 들고 노부인을 바라보다가, 결국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돈을 좀 벌려고 밖에 나갔어요. 전에 큰 공자께서 저에게 준 진주를 팔았거든요.”“너… 그게 다 돈을 위해서였다고?”배씨 노부인은 이해
이경낙은 쌓여가는 피로와 배고픔에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다.그 일이 있는 후 그녀는 한 달 불경을 읊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이각천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다.“천한 목숨이 질기기도 하네.”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친오라버니가 진심으로 자신이 죽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동생 이경주를 기리기 위해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아쉽게도 이경낙은 그후로도 꽤 오래 살았다.하지만 모두를 농간하고 돌아온 이경주를 그들이 보듬는 사이 이경낙은 외롭게 숨을 거둘수 밖에 없었다. ‘
대장장이가 손바닥을 쫙 펴자 이경낙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다섯 냥? 그렇게나 많이…?’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대장이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오십 냥을 생각하고 계신데 가격이 마음에 안 들면 좀 더 상의해 볼 수도 있소.”‘뭐? 오십 냥?’과거 유씨네 집에 살 때 다섯 냥이면 일가족이 일년을 살 수 있는 돈이었지만, 그녀는 단 며칠 사이에 벌써 거의 백 냥이나 벌어들였다.그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기에 흔쾌히 동의했다.이경낙은 도면을 건넨 뒤에 두툼한 은화주머니를 받고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대장장이는 도면을
말을 마치자마 그녀는 뒷짐을 지고 자리를 벗어났다. 장씨 가문 시종들이 찾으러 왔을 때 장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물통 옆에 주저앉아 있었고, 그의 머릿속에는 크고 반짝이던 검은 눈동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날 무능한 자식이라고 욕해?’장위는 지금처럼 수치심을 느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한편, 시장으로 나온 이경낙은 몇 바퀴 둘러보다가 가장 작은 대장간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주인장, 이걸 좀 만들고 싶은데 가능하겠어요?”이경낙은 옷섶에서 도면 한 장을 꺼내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 대장장이에게 건넸다.웃통을 벗어제낀 대
“너, 가서 술 좀 사와! 그리고 나머지는 다 너 가지고!”돈을 준다는데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하물며 이건 돈이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격이었다.이경낙은 재빨리 돈주머니를 챙기고는 웃으며 말했다.“예, 나리. 잠시만 기다리시죠.”이경낙은 재빨리 가서 가장 독한 술 두 단지를 샀다.마시기만 하면 목구멍이 타들어갈 것 같고 정신을 잃게 만드는 술이었다.이경낙이 술을 들고 돌아왔을 때, 장위는 물통을 끌어안고 구토하고 있었다.그녀는 다가가서 술단지만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를 뜨려는데 장위가 그녀를 붙잡았다.“사람이 어떻게
듣기로 이경낙이 아직 구씨의 뱃속에 있을 때 충의 후작가의 부인이자 구씨의 친한 친구인 마님이 이 장군부의 창창한 미래를 보고 직접 태어난 아이가 여아라면 자신의 셋째 아들과 혼인시키자고 약조했다고 했다.이경낙은 전생에서 집에 돌아온지 한 달 후에야 이경주가 죽고 혼사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 장위는 죽기 살기로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다고 들었다.그런 불만을 공부에 쏟았는지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드디어 혼사를 스스로 결정할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경주를 정말 사랑하나 보네. 술 마시고
연지 가게 앞에 도착한 이경낙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이 진주도 받나요?”그리 큰 가게는 아니지만 진주는 필요해 보였다.장 어멈은 이런 진주는 갈아서 화장품으로 만들어도 하등품이라는 말을 했다.하지만 장 어멈은 노부인 신변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이라 좋은 것만 보고 살았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금릉성의 모든 여인들 모두 상등 진주가루를 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니 품질 안 좋은 진주라도 분명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역시 아니나 다를까 가게 주인장은 진주가 있다는 말에 바로 사겠다고 답
장 어멈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노부인, 설근환이랑 서리고는 여인의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값비싼 물건인데 방향재에서 하나에 최소 은화 이백 냥이랍니다. 얼마나 사주시려고요?”노부인이 말했다.“걔 얼굴 거뭇거뭇한 거 좀 봐.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열 통은 써야 하지 않겠어?”장 어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노부인은 꽤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돈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도 이렇게까지 큰돈을 써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정말 낙이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장 어멈은 속으로 생각했다.사실
배 노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거지한테 인심을 베풀어도 이것보단 낫겠어요!”장 어멈이 옆에서 투덜거렸다.배 노부인은 콧방귀를 뀌고는 가져온 물건들을 전부 바닥에 패대기쳤다.“정말 어리석기를! 장군부가 그렇게 가난해? 제 배 아파 낳은 자식한테! 십여 년을 보살펴 주지도 못했으면서 고작 이딴 거나 보내고 창피한 줄도 몰라!”배 노부인은 사람을 시켜 버리라고 했지만 이경낙이 서둘러 말렸다.“저는 전혀 창피하지 않아요. 이것들은 제가 봤던 것 중에 제일 좋은 물건이니 저한테 주세요.”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유씨네와 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