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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화

작가: 설원
이경주가 살아 있었다니!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당한 모진 일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각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해? 무슨 오해? 윤왕 전하께서 널 구해주고 그동안 돌봐주시지 않았으면 우리가 어찌 널 다시 만날 수 있었겠어? 원래 걔가 잘못한 거야! 걔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오지만 않았어도 네가 그런….”

“됐어! 그만들 해!”

그러자 이씨 가문의 가주인 위무 대장군이 나서서 장남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 다시 들출 거 없다. 경주가 돌아온 건 잘된 일이니, 다시는 과거 얘기를 꺼내지 말자꾸나. 가서 경낙이 데려오거라. 언니가 보고 싶어 한다고.”

이씨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이경주를 적장녀로 인정했다.

그녀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 이경낙의 죄도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바로 그때, 이경낙을 부르러 갔던 시종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크… 큰일 났어요! 둘째 아가씨가… 둘째 아가씨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 다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큰딸을 품에 안고 있던 이 부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마님, 애들이 금방 확인했는데… 글쎄 둘째 아가씨가 숨을 안 쉬고 있다네요!”

시종은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속으로는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재수 없는 것! 하필 죽어도 이렇게 기쁜 날에 죽을 건 뭐람?’

이 부인이 멍하니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있자, 이각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히 경주도 아닌 것이 경주 따라 자살 연극을 벌여? 그런다고 우리가 마음 아파할 것 같았나 보지? 걘 그럴 자격도 없는 애야! 경주 돌아온 걸 알고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고 죽은 척하는 거겠지!”

“그러니깐요! 아버지, 어머니! 신경 쓸 거 없어요!”

“감히 죽은 척을 해? 여봐라! 그년 거적대기로 감아서 밖에 내다 버려!”

이 부인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우리 보라고 죽은 척하는 걸까? 그런 거라면 정말 너무하잖니!”

이 부인과 장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버르장머리 없는 것! 감히 이런 짓을 꾸며?”

이경주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언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네요. 저를 너무 탓하지 마세요. 사실 저는 그때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이경주가 눈물을 글썽이자 사람들은 그녀를 다독이기에 급급했다.

“경주야,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로 우릴 놀래키지 않으면 된다!”

이경주를 마주할 때 이각천은 이경낙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부드럽고 자상한 큰오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장위마저도 기쁜 마음을 안고 장군부의 대문을 두드렸다. 이씨 가문 모두가 이경주의 귀환으로 기쁨에 겨워 이경낙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이경낙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보내진 시종은 화풀이하듯이 굳어가기 시작하는 이경낙의 시신을 발로 걷어찼다.

“모두가 큰아가씨께서 돌아오셨다고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난 이 따위 것의 시신이나 수습하고 있다니! 에잇, 재수 없어!”

이경낙은 거적대기에 싸여진 채로 눈밭에 버려졌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끊임없이 내리는 눈과 사람들이 희희낙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경주는 소중한 보물처럼 아끼면서 친딸인 자신은 쓰레기처럼 눈밭에 버리다니.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경주의 자살 연극으로 그녀는 죽기 전에도 비난과 홀대를 받았다.

죽었는데도 한번을 돌아봐 주지 않았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멀쩡히 살아서 세상을 살아갔을 텐데 존재하지도 않는 가족의 정을 바란 것이 잘못이었을까.

눈보라가 휘몰아치면서 이경낙의 혼백은 바람 따라 흩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달리는 마차 안이었다.

이경낙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두 쌍의 눈을 마주하고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다름아닌 장 어멈과 취아였다!

이경낙은 자신의 상태를 훑어본 후, 몰래 허벅지를 꼬집었다.

선명한 통증이 전해지자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그녀의 이상함을 느낀 장 어멈이 관심조로 물었다.

이경낙이 비록 침착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긴 했지만, 속은 이미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내가 회귀하다니!

그녀가 이씨 가문에 발을 들이기 직전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경주는 아직 자살극을 벌이기 전이고 이씨 가문의 사람들도 그녀를 뼛속 깊이 증오하기 전이었다.

이번 생은 절대 전생처럼 비참하게 살다가 허무하게 갈 수는 없었다.

혈연의 정 같은 것은 모두 개나 줘버리고, 더 이상 허황된 것들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전생의 이경낙은 누구에게도 잘못을 한 적 없었고, 오히려 그녀에게 잘못한 사람들은 이씨 가문 사람들, 이경주, 그리고 악귀 같은 이경주의 진짜 친족들이었다.

이번 생에는 그들이 자신에게 했던 것들을 모두 되돌려 줄 것이다!

장 어멈과 취아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이경낙은 눈물을 머금고 밝게 웃었다.

이경낙은 다시금 두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장 어멈은 이씨 가문 노부인이자 이경낙의 할머니를 모시는 사람이고, 취아는 어머니의 시종이었다.

전생에 이경낙의 진짜 신분을 알아내고 장 어멈을 시켜 장군부에 사실을 알리게 한 사람도 바로 그녀의 할머니였다.

그 사실에 당연히 장군부는 발칵 뒤집혔었지만 증인 물증 모두 눈앞에 있기에 믿고 싶지 않아도 믿어야 했다.

모두가 상심했지만 노부인은 장군부의 혈통이 밖에서 방랑하는 건 볼 수 없다면서 장 어멈을 장군부에 보내 이 일을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했다.

이경낙의 어머니이자 장군 부인 구씨는 시종 취아를 보내 장 어멈과 함께 이경낙을 데려오게 했다. 취아를 제외하고도 이씨 가문에서는 마부와 남자 시종도 같이 산으로 보냈다.

전생에 장 엄멈과 취아는 줄곧 이경낙을 우호적으로 대했다.

하지만 이씨 가문에 돌아간 후로 이경주가 죽은 후로 이경낙은 모두의 눈엣가시가 되면서 나중에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아마 장 어멈은 도관으로 돌아갔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경낙은 이씨 저택에서 한동안 지낸 후에야 자신의 할머니는 도관에서 수련 중이며 거의 속세에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취아는 그녀가 저택에 돌아온 후로 한참 찾았지만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랬던 두 사람을 다시 보게 되자 이경낙은 감개무량했다.

두 사람은 이씨 가문과 연관된 사람들 중에 그나마 그녀에게 잘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회귀한 시점이 참 괜찮은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경낙이 이씨 저택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이경주의 자살극을 막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할 기회와 시간이 있었다.

“어멈, 지금 어디쯤이죠?”

이경낙이 가림막을 걷고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맑은 공기를 길게 들이마시며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생의 그녀가 불행하게 살다가 처참한 죽음을 당한 이유가 그만큼 나약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전생의 나는 참 바보 같았지. 그런 허무맹랑한 것들을 바라다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이경낙은 창가에서 시선을 돌려 전방을 주시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자 장 어멈이 말했다.

“금릉성과는 50리 정도 떨어진 지점까지 온 것 같네요. 하지만 오늘은 날이 저물고 있으니, 성문이 닫히기 전까지 성에 당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마부와 상의해 봤는데 오늘 밤은 객잔에서 잠시 머물고 내일 아침 일찍 단장하고 성에 진입하는 것이 어떨까요?”

이경낙은 고개를 들고 장 어멈과 시선을 마주했다. 장 어멈도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상대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그녀는 친부모와 오라버니를 빨리 뵙고 싶은 마음에 어멈의 제안을 거절하고 속력을 내서 성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장 어멈의 말대로 그들은 그날 저녁 성에 진입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어 그들은 성 밖의 벌판에서 하루를 묵을 수밖에 없었다.

연세가 든 장 어멈에게는 험난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그녀는 이경낙을 저택으로 데려간 후에 어리석은 이경낙을 홀로 저택에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생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부끄러울 정도였다.

이경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장 어멈에게 말했다.

“어멈, 급할 거 없어요. 여기서 청송관이랑은 얼마나 멀죠?”

청송관은 이경낙의 할머니가 수련 중인 곳이었다.

지난 생의 그녀는 이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이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편에 서줄 사람은 아마도 그녀일 뿐일 것이다.

오는 길에 장 어멈은 여러 번 그녀를 시험했는데 아마 노부인의 명을 받고 그녀의 인품을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전생의 그녀는 산에서 자라 어리석긴 했지만, 특유의 순박한 기질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 생에도 이런 기질을 살려 노부인에게 접근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어차피 이씨 가문에 지금 돌아가도 이경낙은 고립적인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은 기댈 곳 하나 없으니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한 후에 돌아가기로 했다.

마음 속으로 결심을 내린 후, 이경낙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어멈에게 말했다.

“어멈,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머니 먼저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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