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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 화

작가: 설원
그러자 배 노부인은 놀라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노인은 순진한 이경낙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나랑 같이 장군부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야, 난 이곳 청송관에서 삼십 년을 생활했다. 속세의 분쟁에서 진작에 손을 뗀지 오래란 말이다!”

이경낙은 결연한 눈으로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머니는 억울하시지도 않으세요? 과거 등씨의 얕은 수작으로 할머니께선 아들에게 미움 받고 부군에게 냉대받았습니다. 이씨 가문의 모두가 할머니를 저버린 셈이지요.”

“할머니께선 목숨 걸고 전장에 나가서 공을 세우고 부군을 구하셨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명예와 재부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고요.”

“반면 할머니는 속세의 분쟁이 싫어서 친족과 혈연을 끊고 스스로 떠나 편벽하고 좁은 이곳에 오셔서 외롭게 늙어가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원래 할머니께 속했던 것들인데 왜 남들이 다 차지하고 있죠? 할머니께서 버리셨다고 해도 지금 장군부의 부와 명예는 오로지 할머님의 것입니다. 이씨 가문의 모든 대권은 할머니가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할머니께선 필요 없다고 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정녕 할머니께서 바라는 것이 맞나요?”

말을 마친 이경낙은 진지한 눈으로 배 노부인을 바라보았다.

배 노부인도 말없이 조용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경낙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쯤 할머니는 자신을 산에서 데리고 나온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다.

만약 할머니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여전히 수동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장군부로 돌아가도 의지할 곳이 없고 권력도 돈도 없으니 결국 홀대당할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배 노부인이 말이 없자 이경낙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할머니, 제가 선을 넘었다는 것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거예요. 저는 기댈 곳 하나 없어요. 이 상태로 장군부에 돌아간다면 결국 홀대받는 처지를 면치 못할 거예요.”

배 노부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진중히 물었다.

“네 오라비와는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그렇다 쳐도 아직 친부모는 뵙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리 단언하느냐?”

그러자 이경낙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할머니, 제가 비록 산속에서 자라 세상물정에 어둡지만 바보는 아니에요.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유씨 가문의 핏줄을 정식으로 입양하셨다고 들었어요.”

“대외적으로는 과거 쌍둥이 딸을 낳았는데 제가 병약하게 태어난 탓에 강남으로 보내져서 요양했다고 공표했죠. 그러다가 이제 건강이 좋아져서 다시 귀경했고요. 그렇다는 건 아버지 어머니께선 이경주를 내치지 않고 유씨 가문에도 죄를 묻지 않겠다는 입장일거예요. 오히려 이경주가 세간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까 봐 염려하여 진실을 감추고 여전히 이경주를 이씨 가문의 적장녀라고 인정한 것이죠.”

“제 오라버니도 저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으면서 도망자 취급만 하는데, 제가 장군부에 어떻게 기대를 가질 수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이경주를 싸고 도는데 제가 돌아간들 그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까요?”

“16년을 옆에 두고 길러온 딸을 이리도 편애하는 사람들인데 중도에 갑자기 나타난 저에게 정을 주려 하겠어요?”

“할머니, 그리고 그 사람들은 혈연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과거에 할머니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마음을 준 사람만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과연 제가 열 수 있을까요? 적어도 당분간은 힘들 것 같애요.”

배 노부인의 표정이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과거의 그녀도 아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처음엔 부군과는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국엔 그도 쉽게 부인인 자신을 버리지 않았는가.

그런 노부인은 이경낙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생각은 해보겠다. 일단 돌아가거라.”

이경낙이 돌아간 후, 노부인은 장 어멈을 따로 불러 물었다.

“저 아이는 장군부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던데 혹시 어멈이 말해줬어?”

장 어멈이 답했다.

“소인은 그저 대략적으로 말해줬을 뿐입니다. 왜 그러세요, 노부인? 아가씨가 겁을 많이 먹었나 보네요. 큰 공자께서도 참 너무하셨어요.”

노부인은 자신의 옆에서 수십 년을 일한 어멈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자넨 그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순진해 빠졌군. 어린 계집한테 놀아나기나 하고 말이야.”

노부인이 보기에, 이경낙은 장 어멈이 말한순진무구하고 순박한 소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영리하고 굉장히 계산적인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쾌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앞에서 솔직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어멈, 만약에 말이야… 내가 이제 와서 금릉 장군부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장 어멈은 경악한 얼굴로 입을 떡하니 벌렸다.

노부인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상황이 참 재밌게 흘러가는군.’

그렇게 다음 날, 이경낙은 노부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으니 초조해졌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평소 하던대로 한 시진 동안 글씨 연습을 한 후, 텃밭으로 나갔다.

도사들이 고구마를 캐고 있자, 이경낙도 다가가서 도왔다. 도사들은 손발에 흙을 잔뜩 묻히고 활짝 웃는 그녀를 보고 놀리듯 웃어댔지만 소탈한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경낙은 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창송산에 계신 귀인에게로 화제를 자연스럽게 돌렸다.

그러자 능풍자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쉿! 그분은 건들지 않는 게 좋아. 자칫 실수했다가 목이 날아갈 수도 있어.”

말을 하며 그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이경낙은 긴장이라도 한듯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장 어멈도 그렇고 도사들도 그렇고 창송산에 계신 분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경낙은 지금의 자신이 감히 염탐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궁금증을 접어두기로 했다.

그녀는 손에 든 고구마를 흔들며 말했다.

“도사님들, 오늘 고구마 요리 어때요?”

이경낙은 일곱 살 때 산기슭에 사는 한 관원의 집에 팔려가서 주방에서 2년 동안 허드렛일을 하며 지낸 적 있었다.

그게 그녀의 삶 중에서 그나마 재밌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관료가 사고를 쳐서 잡혀가면서 그녀는 다시 유씨네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경낙은 요리에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주방에서 일하며 꽤 많은 요리를 보고 배웠기에 고구마를 어떻게 조리하면 맛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주방에서 고구마 반찬 몇 가지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고구마 튀김, 군고구마, 고구마 무침, 고구마 야채탕 등등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반찬들을 보며 능풍자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경낙은 반찬들을 조금씩 덜어 죽원으로 일부 보내고 남은 것들은 도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날 밤, 창송산 별채에도 신선한 고구마 반찬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반찬을 가지고 방문한 도사는 부주의로 바닥에 흥건히 남은 핏자국과 쓰러진 시신을 보고는 이내 화들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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