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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 화

Author: 설원
겁에 질린 도사는 반찬만 바닥에 내려놓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하며 도망쳤다.

‘사형 말이 다 사실이었어! 이렇게 위험한 곳이었을 줄이야!’

내원 사람들은 허둥지둥 도망치는 그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 중 시위 파풍가 작은 소리로 한 남자에게 물었다.

“왕야, 저 도사를 제거할까요?”

피 묻은 하얀 색 옷을 입은 남자가 정원 중앙에 서 있었는데, 훤칠한 키에 검은 머리를 폭포처럼 드리운 아름다운 사내였다. 미간에 붉은 점이 있는 사내는 마치 그림을 찢고 나온 사람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웠다.

부처처럼 온화한 상을 가진 외모였지만 그의 손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장검을 들고 있어서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가 바로 양나라 황제의 다섯 번째 아들 숙왕 단용시였다.

고귀한 친왕의 신분과 어울리지 않게 그는 스스로 원해서 대리사경 직책을 떠맡았었다. 심지어는 냉철하고 잔인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금릉성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조정의 관료들도 가장 어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단용시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던지고 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괜한 불란을 만들지 말거라. 네가 직접 가서 청양자(青阳子)에게 전해. 오늘 밤 우리가 청송산 별채에서 사건 하나를 처리했을 뿐이라고.”

“예, 왕야.”

정원에는 아직 죽지 않은 자가 남아 있었다.

단용시는 심복 추우를 시켜 그자의 손발을 자르게 했고, 심지어는 문밖에 있는 큰 소나무에까지 매달았다.

“죽이지는 말고. 감히 날 자극하다니! 저놈의 주인에게 날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줘야겠어.”

추우가 서둘러 답했다.

“예!”

문밖에서는 처참한 비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남자는 안으로 들어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갈하게 몸을 씻었다.

시음을 마친 반찬들이 식탁에 올려지자 단용시는 식탁에 마주앉아 수저를 들었다. 하지만 못 보던 고구마 반찬들이 추가된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청송관이 곧 문을 닫을 처지가 됐나?”

그가 알기로 죽원에 사는 배씨 노부인은 매년 청송관에 대량의 은화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삼십 년이 지나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이곳 청송관은 금릉성에서 가장 큰 도관이 되었다.

이런 곳에서 감히 하찮은 고구마 반찬을 상에 올리다니!

단용시가 젓가락도 대지 않자 파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밤 고구마 반찬이 맛있게 됐나 보네요. 그러지 않고서야 그 도사들이 어찌 감히 왕야의 밥상에 이런 걸 올리겠어요. 한번 맛은 보시죠?”

단용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수저를 들었다.

반찬을 들어 입에 삼키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도관에 주방장이라도 바뀌었나? 가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거라.”

“예!”

잠시 후, 돌아온 파풍이 아뢰었다.

“왕야, 오늘의 고구마 반찬은 2품 표기대장군 이조정의 딸이 한 거랍니다.”

단용시는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하나하나 빼먹지 않고 세세히 맛을 보았다.

파풍은 그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단용시는 이씨 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

다만 오늘 산 아래가 너무 시끄러웠고 그 여인이 소란의 주인공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배씨 노부인의 얼굴을 봐서 딱히 죄를 묻지는 않았다.

이경낙은 하루를 더 기다렸지만 여전히 할머니에게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녀 또한 비록 실망이 컸지만 강요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할머니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저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최악의 경우 혼자 돌아가게 되더라도 절대 그들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경낙은 내일 하산할 생각으로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때 취아가 들어와 이씨 가문에서 또 사람이 왔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각천이 친히 왔다고 했다.

“아가씨, 너무 잘됐어요. 아마 큰 공자께서도 지난 번 일은 너무했다고 생각해서 직접 데리러 왔나 봐요.”

‘이각천이?’

전생에는 이경주의 죽음 때문에 죽어라 그녀를 증오하며, 그녀가 이경주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비난했었다. 심지어 이경낙이 실수로 이경주가 쓰던 찻잔을 깨뜨렸을 때 바로 그녀를 마구간 옆 오두막에 던져버리까지 했었다.

‘결국 전생의 난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지.’

이렇게 잔인한 오라버니가 진심으로 여동생을 데려가려고 온 것은 아닐게 분명했다.

‘또 소란이 일겠네.’

이경낙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을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나서자마자 이각천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쳤다.

그는 말에 탄 채로 여동생을 가소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라한 행색에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이경낙을 보자 이각천의 눈빛은 점점 혐오로 변해갔다.

“네가 유초아야?”

이경낙은 아직 장군부에 돌아가지 않았고 가문에서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지 않았기에 여전히 산에 납치당한 유초아였다.

이경낙은 냉랭한 눈빛으로 이각천을 마주보았다.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이각천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지 주제에 감히 나를 똑바로 쳐다봐?!’

그러자 취아가 격앙된 얼굴로 이경낙에게 귀띔했다.

“아가씨, 이분이 큰 공자세요. 아가씨의 친오라버니요.”

물론 이경낙은 한눈에 이각천을 알아보았다. 그녀의 오라버니이자 그녀가 뼛속 깊이 증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경낙은 이번 생에는 기필코 저 인간의 짐승 같은 본색을 가슴 깊이 기억할 것이라 다짐했다.

그래야 전생의 치욕과 고통을 잊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경낙은 대충 예를 행하는 척하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라버니.”

이각천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혐오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난 네 오라비가 아니야. 난 너처럼 추하고 투박한 동생 둔 적 없어. 명심해. 내 동생은 경주뿐이야!”

이경낙은 담담히 답했다.

“예, 큰 공자.”

그녀가 원하던 바였다.

반면 이각천은 담담한 그녀의 태도에 말문이 막혔다.

대체 정말 어리석은 걸까? 아니면 관심을 끌려고 무심한 척하는 것일까?

전혀 무관심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어리석고 영약한 년이구나!’

이경낙을 향한 그의 혐오감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참으로 무례하구나! 데려오라고 보낸 하인들에게 매질을 해서 관청에 보내버리다니! 내가 다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낯이 뜨거웠다! 이 나라의 소장군인 내가 심산까지 직접 오게 만들다니! 이제 만족하겠어?”

이경낙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 번에 온 사람들이 정녕 큰 공자의 사람들이었나요? 그런데 데리러 오라고 보냈으면서 묶어서 끌고 오라고 시켰단 말인가요?”

이각천이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안 그러면 널 데리러 가마까지 보낼 줄 알았어?!”

그는 말할수록 화가 치미는지 점점 언성을 높였다.

“유초아, 분명 금릉성 근처까지 왔으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부모님을 기다리게 만들고! 경주는 너 때문에 괜히 죄책감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있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거야?”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너 같이 악랄한 불효녀를 데리러 내가 왔으니 나한텐 산적이라고 모함하지 않겠지! 여봐라, 저것을 당장 밧줄로 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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