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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 화

Author: 설원
그녀의 결단력과 확고한 의지는 장 어멈마저 놀라게 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어린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산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는 오랜 기간 학대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어딘가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었는데, 그랬던 아이가 점점 자신의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장 어멈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쩜 뭔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먼저 저것들을 심문해 보죠!”

장 어멈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따끔한 곤장 맛을 본 하인들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장군부 가주의 명을 받들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둘째 아가씨를 모시러 온 게 맞았다.

다만 오기 전 큰 공자가 따로 그들을 불러 둘째 아가씨는 예의법도 모르는 아이니 친절하게 굴 필요 없이 따끔한 맛을 보여주라며, 말을 안 들으면 묶어서 끌고 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그들이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이유가 모두 이곳에 있었다.

이경낙은 이 말을 전해듣자마자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 제 오라버니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그녀는 속으론 알면서도 겉으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장 어멈은 더욱 그녀가 안쓰러웠다.

‘큰 공자도 참 지독하지! 어찌 친동생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와, 장 어멈이 사람을 시켜 나가보라고 했다.

잠시 후 돌아온 하인이 아뢰었다.

“어멈, 창송산에 계신 귀인께서 사람을 보내셨네요. 저희 쪽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수련에 방해가 된다고 시끄러운 일을 빨리 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안 그러면 직접 나서신다고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하인의 얼굴을 보자, 이경낙은 잠시 의혹에 잠겼다.

창송산에 귀인이 살고 있다고?

누군데 할머니의 사람들마저도 이리 눈치를 보는 것일까?

이경낙이 청송관에 온지도 꽤 시일이 지났지만 그녀는 항상 조용히 보냈고 어디 다니면서 사고 친 적도 없었다.

그녀는 창송산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장 어멈이 다리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귀한 분이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네. 당장 돌아가서 당장 처리할 테니 수련을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전하거라.”

하인이 급하게 자리를 뜨자 장 어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장군부 하인들에게 호통쳤다.

“이것들이 입만 열면 거짓말이구나! 큰 공자께서 그런 말을 하셨을 리 없지 않느냐! 감히 장군부의 명성에 오물을 뿌리려 들어? 팻말을 내놓지도 못하는 것들이 귀한 분을 납치까지 하려 했으니 이게 산적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여봐라! 이것들을 당장 관청으로 끌고 가거라!”

“예!”

건장한 사내들이 달려들어 용서를 구걸하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끌고 나갔다.

드디어 도관에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자 이경낙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장 어멈에게 물었다.

“어멈, 어쩌면 저들은… 진짜로 장군부 사람을 사칭한 자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 어멈은 안쓰러운 얼굴로 이경낙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가씨도 사실은 아시잖아요. 만약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요? 큰 공자께서 아가씨께 큰 실수를 저질렀고 아가씨는 저들을 관청에 신고했으니 이제 큰 공자와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고 볼 수 있지요. 겁나지는 않으세요?”

‘이각천과 사이가 틀어진다고?’

이경낙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전생의 그녀는 그에게 잘못을 한 적이 없는데도 그는 이유없이 자신을 혐오하며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었다.

그런 자와 사이가 틀어진다고 해서 아쉬울 것 하나 없지만, 그녀는 겉으로는 쓴웃음을 짓는척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겁날 것도 없는 법이죠.”

그 말에 장 어멈이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가 가진 게 없다고 누가 그래요? 가시죠. 노부인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이경낙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께서 드디어 저를 만나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장 어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소인이 아가씨께 거짓말을 전하겠습니까? 어서 따라오시죠.”

이경낙은 다급히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그녀는 비록 투박한 재질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머리에는 장신구 하나 없이 간단하게 하나로 땋아 옆으로 드리웠는데, 머리결도 거칠고 피부도 투박해 보였다.

장시간 밖에서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 아래 고된 일을 하다 보니 체력만 좋을 뿐, 어여쁜 아가씨의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두 눈망울만큼은 맑고 생기가 넘쳤다.

그녀가 장군부의 하등 시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누가 이 소녀를 장군부의 적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배 노부인은 자신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를 보곤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빠른 장 어멈은 재빨리 방 안에 있는 시종들을 물렸다.

둘만 남게 되자 배 노부인은 그제야 이경낙에게 물었다.

“이제 말해 보거라. 왜 굳이 나를 만나겠다고 한 것이냐?”

이경낙은 노부인을 바라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할머니가 이렇게 젊은 모습일 줄은 뜻밖이었다. 그녀가 상상했던 백발의 노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었지만 노부인의 얼굴에는 주름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흰 머릳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과거에 창을 들고 전장에 나섰던 여걸의 풍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이런 분이셨다니.’

이경낙은 저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전과는 다른 경외심을 느꼈다.

이분이 바로 한때 양나라에 이름을 알렸던 여장군이구나!

‘이씨 가문의 며느리로 많이 아까운 분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노부인이 또 물었다.

“왜 날 그리 빤히 쳐다보느냐?”

배 노부인은 자신의 질문 대신에 빤히 쳐다보는 이경낙의 시선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내가 너무 늙어서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생각에 잠기까지 했다.

그러자 이경낙이 말했다.

“할머니께선 참 비범한 기질을 갖고 계세요. 너무 존경스러워서 그만 넋을 잃고 보고 말았네요.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들은 노부인은 잠시 당황하다가 큰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존경스럽다고? 하하하! 참으로 웃긴 아이로구나.”

배 노부인은 배를 잡고 웃으면서도 속이 쓰렸다.

그녀와 아들 사이의 악연을 손녀에게까지 이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랬기에 이 장군 부부가 어린 이각천과 이경주를 데리고 도관에 문안을 왔을 시, 아들 며느리는 보지 않아도 이각천 남매는 만나주었다.

이각천은 그나마 예의를 차렸지만 이경주에게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어린 아이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알을 굴리며 여기저기 훔쳐보기 바빴고 웃어른이 앞에 있는데도 가만히 서 있지를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순수해야 할 눈에도 온갖 가식과 욕심이 가득했다고 했다.

노부인과 이각천 앞에서는 그리도 겁 많은 토끼처럼 굴더니 그들을 배웅한 하인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밖에 나가자마자 노부인이 애지중지 키우는 고양이를 걷어차더란다.

노부인은 참으로 가식적인 애라고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빠졌다.

하는 행동거지도 왕년의 등씨와 닮은 점이 참 많았다.

불행히도 이씨 가문 남자들은 이런 수법에 굉장히 약했다.

그래서 배 노부인은 그 후로 더 이상 이경주를 만나지 않았다. 노부인이 이경주를 보려고 하지 않자, 이각천도 발걸음이 서서히 뜸해졌다.

이각천도 아버지인 이 장군처럼 노부인에게 형식적인 예의만 행했을 뿐, 딱히 정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여동생을 만나주지 않는 할머니에게 불만을 표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노부인은 그 뒤로 이씨 가문의 누구도 만나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는데 역시나 이경주는 이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었다.

노부인은 그제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불편감이 이해가 갔다.

반면 악인에게 끌려가 온갖 학대를 받고 자란 이경낙은 왠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

안 만나준다는데도 여태 가지 않고 버틴 것만 해도 그 마음이 갸륵했다. 기고만장한 장군부 하인들을 마주했을 때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관청에 신고까지 한 걸 보면 불의 앞에선 친오라버니와의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어리석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간사해서 그런건지 몰라도 재미는 있네.’

하지만 이런 노부인의 생각을 알리 없는 이경낙은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속을 모두 읽힌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을 말하기로 하고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는 할머니께서 저와 함께 하산하시어 금릉 장군부로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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