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지금 어때요? 어떤 상황이죠?”서다희가 계속 물었다.박민정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서 비서님, 제가 드려야 하는 질문이 아닌가요?”“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랑 남준 씨 이혼했으니 참견하지 말라면서요.”박민정은 계속 덧붙였다.서다희가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도 모두 유남준의 ‘지시’의 따른 것이었다.일단 바보가 되면 박민정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고 신신당부했었으니 말이다.그러나 최근 들어 서다희는 유남준이 결코 잘 지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조사에 따르면 유남준은 유남우에게 갇혀 행동도 제한받고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다고 했었다.서다희는 그런 유남준을 구해내고 싶었지만, 저택의 보안 시스템이 너무 삼엄했다.박민정에 대한 유남우의 마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서다희 역시 잘 알고 있기에 도움을 청하려고 이렇게 연락한 길이었다.“사모님, 전에 대표님께서 왜 그렇게 애를 쓰셨는지 대충 알고 계시죠?”“실은 전에 검사받으면서 머릿속에 유리 파편이 시각 신경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 유리 파편만 제거하면 시력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기억을 잃을 일도 없고 위험한 상황에 놓일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었어요.”서다희는 천천히 설명했다.“대표님께서 수술 전에 미리 이혼한 이유도 바로 수술에 실패할까 봐 그런 거였어요.”“그동안 살아오면서 미움을 산 사람이 한 둘이가 아니라면서 자기한테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 사람들이 사모님과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고 했었어요.”“만약 그 전에 이혼해서 아이들 양육권까지 사모님에게 주면 유씨 가문 사람들도 한을 품은 사람들도 사모님과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고 했었어요.”“그리고 저랑 인우 도련님께 사모님과 아이들을 지키라고 거듭 당부하셨고요.”서다희는 그전까지 유남준의 요구에 따라서 일하려고 했었다.하지만 지금 서다희는 자기가 지금껏 따라온 유남준이 조금이라도 저 편안
박민정의 말을 듣고 난 고영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필경 먼저 이혼하자고 제기한 사람도 자기 아들 유남준이니 말이다.박윤우와 박세찬 그리고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모두 싫다고 한 유남준인데, 직접 가서 돌봐주겠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고영란은 폭력 경향이 있는 현재의 유남준의 떠올리면서 걱정했다.“민정아, 지금 우리 남준이 지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폭력 경향까지 있어. 저택의 도우미도 집사도 남준이한테 안 맞아 본 사람이 없을 정도야. 네가 가서 남준이가 또다시 때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박민정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 고영란이다.“어머님, 저 남준 씨랑 부부로 살아온 세월도 있잖아요. 그런 건 전혀 두렵지 않아요. 만약 깨어나서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돌보라고 할게요. 이렇게 하면 걱정이 좀 줄어드시겠어요?”박민정은 간절하게 부탁했다.하도 진심이 느껴져서 고영란은 더 이상 거절할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근데 네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어. 할아버님께서 경은이한테 남준이 돌보라고 보냈거든. 한 달 뒤에 두 사람 식도 올려주겠다고 이미 약속까지 하셨어.”박민정은 그제야 이틀 전 추경은이 득의양양했던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러나 추경은이 좋아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유남준인데, 순순히 결혼할까?얼굴에 상처까지 있는 걸 보아 유남준에게 맞은 게 분명한데, 순순히 결혼할까?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겠다고 하면 그건 정말로 사랑하는 것으로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어머님, 만약 남준 씨에 대한 경은 씨의 마음이 진짜라면 두 사람 결혼하는데 저 아무런 의견도 없어요.”“하지만 아직 결혼한 건 아니잖아요. 남준 씨 전처로서도 아이들의 엄마로서도 제가 가서 돌보는 게 마땅하다고 봐요.”‘역시나 민정이는 너그러운 여자야.’박민정은 지금 단지 유남준이 보고 싶고 직접 가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뿐이다.자기에 대한 유남준의 사랑이 얼마나 짙었는지 점점 더 깊게 느껴지고 있으니 말이다.그리고
정민기는 사람을 미행하는 것을 잘한다. 박민정은 차를 타고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누가 쫓아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박민정이 저택에 도착해서야 정민기는 비로소 그녀가 유남준을 만나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박윤우는 불안했다. “엄마한테 다른 가정이라도 생긴 건가?”그는 엄마에게 이런 저택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옆자리에 앉은 정민기가 말했다. “무슨 오해가 있을 거야.”그는 어린 윤우한테 사실대로 말해도 되는지 몰랐다. “돌아가자.”“안 돼요. 저는 안 갈 거예요.”박윤우는 정민기의 팔을 덥석 껴안았다. “아저씨, 우리 엄마한테 저 말고 다른 아기가 생긴 거 아니에요?”정민기가 말했다.“그럴 리가. 허튼 생각 하지 마.”박윤우는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럼 엄마한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나요?”그는 지금 박민정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박윤우는 말없이 이곳의 주소를 박예찬한테 보냈다.박민정이 저택에 들어간 후, 박윤우는 박민정을 볼 수가 없었다. “윤우야, 먼저 돌아가자. 시간이 늦었어. 내일 학교도 가야 하잖아.”정민기는 그에게 물었다.박윤우는 박민정이 나쁜 사람한테 속을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그녀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네.”먼저 돌아가서 형이랑 물어봐 여기가 도대체 누구의 저택인지 알려고 했다. 집에 돌아온 박윤우는 서둘러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었다.박예찬도 즉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박민정이 저택에 들어오자 집사가 바로 방을 마련해 주었다. 유남우가 박민정이 임신했으니 절대 다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집사는 그녀를 유남준과 가장 멀게 떨어져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그러자 추경은이 위층에서 내려오면서 싸늘한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박민정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 얼굴의 상처는 더 많아졌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제가 오면 안 돼요?”박민정이 되물었다.“할아버님과 이모님께서는 이미 저보고 사촌 오빠
“이미 너무 늦었으니 안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집사가 박민정을 막았다.박민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요?”“그냥 민정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입니다.”집사가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유남준의 방을 향해 갔다.집사는 유남준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널찍한 침실 안에서 유남준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조용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박민정은 문을 닫고 나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유남준.”그의 이름을 불렀다.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박민정은 옆 침대에 앉아 그의 이불을 조금 아래로 당기고 유남준을 보았다.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몽둥이로 때린 것 같았는데 멍이 파래서 보기만 해도 아팠다. 박민정은 주위를 둘러보며 의약 상자를 찾고는 유남준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녀가 모르는 것은 다른 방에 카메라가 있고 유남준이 있는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남준의 몸은 너무 더러웠다. 박민정은 가까스로 그를 깨끗하게 닦아주었다.그녀는 저택의 도우미가 일부러 유남준을 씻겨주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씻겨주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유남준의 몸을 깨끗이 닦은 후, 박민정은 깨끗한 옷을 찾아 갈아입혀 주었고 깨끗한 이불 커버를 씌워주었다.추경은이 나와서 박민정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런 걸 해도 소용없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더러워질 거예요.”추경은은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박민정은 추경은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유남준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아마도 그녀는 단순히 강한 자를 우러러보는 사람이어서 강한 유남준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고가 난 후의 유남준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경은 씨, 얘기 좀 해요.”박민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추경은은 뭔가 이상해했다. 박민정은 나가서 문을 살짝 닫았다.“난 당신이
박민정은 살며시 문틈 안을 들여다보았다. 유남준은 아직 침대에 누워 눈을 뜨지 못했다.그가 깨어나지 않은 걸 보아 방금은 악몽을 꾼 것일 것이다.박민정은 그제야 안심하고 들어가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그를 놀려댔다. “당신이 지금 이 꼴이 되었는데도 예쁜 여자가 앞다투어 당신한테 시집가려고 하네요? 참 좋은 팔자네요.”그리고 그녀는 시간이 늦은 것을 보고 방으로 돌아가 쉬려고 했다.갑자기 유남준이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박민정은 깜짝 놀랐다. 유남준이 잠에서 깬 줄 알고 대뜸 그를 불렀다. “남준 씨.”하지만 유남준은 다시 손을 놓았다.박민정은 실망해서 그의 손을 이불속으로 놓아주었다. “내일 또 보러올게요.”박민정은 방에 돌아가서 잤다.유난히 어두컴컴한 새벽녘이었다. 박민정은 잠귀가 밝아서 누군가 방에 들어온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그녀는 눈을 뜨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아무도 없었다.“꿈인가?”박민정이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추경은의 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남준 오빠, 날 죽이지 마!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늘 죽음을 입에 달고 사는 추경은도 죽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이 소리에 놀란 박민정은 벌떡 일어나 나갔는데 유남준이 추경은의 문을 힘껏 걷어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추경은은 안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여기요.”저택에는 24시간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고 유남준이 나가지 않았으니 그들은 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방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엄청 났다. 유남준이 몸이 허약하지 않았더라면 이 문은 이미 깨졌을 것이다.박민정도 이런 유남준을 보고 놀라 했다.쿵!문이 깨졌다.추경은은 물건을 집어 들고 유남준한테 내던졌다. 지난번에 꼬집힌 일 때문에 이번에 그녀는 칼을 들었다.그녀의 손에 든 칼을 보고 박민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경은 씨, 뭐 하려는 거예요?”“보면 몰라요? 이건 정당방위에요!”추경
추경은은 역시 입을 다물었다.고영란이 자기가 유남준을 다치게 하는 것을 보면 결혼은커녕 집에서 쫓겨날 게 뻔하다.박민정도 그녀와 쓸데없는 얘기를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조심하세요. 다음에는 뺨 한 대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은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다음 날 아침, 박민정이 일어났을 때 유남준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의사가 와서 그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도련님의 외상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다만 손상된 뇌 신경은 평생 고치기 힘들 것입니다. 의사가 말했다.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전에는 눈만 안 보였는데 지금은 바보로 됐다.비록 그는 한때 하늘이 내려주신 아이인 것처럼 운이 좋았지만 지금의 그의 삶은 너무 고달팠다.집사가 의사를 배웅하러 가고 방 안에는 박민정과 유남준 두 사람만 남았다. 박민정이 출근하려고 하는데 유남준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녀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유남준은 갑자기 힘을 주어 그녀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 안아줘.”그는 어린 애처럼 말했다.박민정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준 씨, 나 기억해요? 나 민정이에요.”유남준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그냥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집에 가고 싶은데 데려다줄 수 있어?”박민정은 코끝이 찡했다. “집이요? 어디요?”그녀는 유남준이 생각하는 집이 유씨 가문의 저택인지 아니면 그들이 함께 사는 두원 별장인지 몰랐다.유남준은 그녀를 꼭 껴안고 말했다. “아파.”박민정은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어디가 아픈데요? 내가 약 발라줄까요?”박민정이 너무 다정해서인지 유남준은 모처럼 그녀의 말을 잘 들었다. 그는 조용히 있으면서 박민정보고 약을 발라 달라고 했다.그의 몸에 난 새로운 상처는 모두 별장의 보디가드가 한 짓이다.박민정은 그것이 보디가드의 뜻인지 유남우의 뜻인지 몰랐다.저택의 도우미들은 유남준이 순순히 약을 바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그들은 사석
상황을 알게 된 유남우는 집사들에게 유남준을 잘 감시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유남준이 박민정과 같이 있을 때 말이다. “민정 씨는 큰 도련님이 산책하러 나가게 하라고 했어요.”집사가 말했다.유남우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택의 문을 나서지 않는 한 산책하러 나가게 해.”지금은 박민정이 수시로 유남준을 돌봐서 허락하는 것이다. 유남우는 박민정한테 좋게 보이고 싶었다.“네.”...곧 월말이 다가온다. 이번 달 호산 그룹에서 매출이 제일 낮은 팀은 해고될 것이다. 마케팅 5팀의 실적은 좋았지만 아쉽게도 장부에 문제가 좀 생겼다. 고위층이나 주주들에게 알려지면 상황이 꽤 복잡해질 것이다.그때가 돼서 해고당하는 건 당연히 장부에 문제가 있는 5팀일 것이다. 박민정은 이미 사람을 시켜 이 일을 조사하라고 했다. 최근에 누가 최현아 혹은 마케팅 1팀과 다녔는지 찾아내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박민정도 그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하필이면 이때 어린이집 엄마 단톡방에서 회식하자는 메시지가 떴다. “회장님, 오랜만에 회식할까요? 아이들 얘기 좀 해요.”학부모 위원회의 회장인 박민정은 다른 엄마들과 수시로 연락해야 했다.박민정이 답장했다. “그러죠.”그녀는 일찍 퇴근해서 학부모 위원회의 엄마들과 회식을 했다.최현아도 왔다.위원회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유씨 가문의 며느리이기 때문에 그녀의 비위를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도한 엄마와 손연서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원 엄마는 박민정의 라인에 붙겠다고 마음먹었다. 박민정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하려고 그녀한테 최현아에 대한 추잡한 사연도 몰래 전했다.그런 일까지 박민정에게 알렸으니 지원 엄마는 평생 최현아와 화해할 수 없을 것이다.“지훈 엄마, 우리 애가 요즘에 맨날 지훈이랑 놀고 있대요.”그중 한 사람이 박민정과 유남준이 이혼한 것을 알고 최현아의 편을 들었다.최현아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지훈이는 친구가 많아요. 공
도한 엄마도 집에 있는 아이가 생각나서 일어났다. “저도 돌아가서 아이를 봐야겠어요.”셋이 함께 떠나려 하는 것을 본 지원 엄마는 잠시 망설였는데 자리를 뜨지 않았다.세 사람이 자리를 떠나자 또 몇 명의 엄마들이 떠났다.나머지는 대부분 최현아한테 아첨하려는 사람들이다.이것을 최현아도 알고 있었다. “우리 성혁 씨도 곧 호산 그룹 본사로 들어갈 거예요.”“정말요? 무슨 일을 하는데요?”한 사람이 물었다.최현아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낮은 자리는 아닐 거예요.”“그럼 정말 축하할 일이네요. 도련님께서 본사로 돌아가면…”한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한편 지원 엄마는 여기서 일어난 일을 하나씩 적어서 박민정한테 말했다. 지원 엄마는 박민정이 유남준과 이혼했다 하더라도 최현아보다 못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그녀는 다시 박민정과 친구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이번엔 자신의 안목이 절대 틀림없을 거라고 믿었다. 박민정과 손연서는 밖으로 나가서 먼저 도한 엄마를 배웅했다.그리고 박민정은 손연서와 함께 택시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민정 씨, 제가 최근에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우씨 가문 큰 도련님과 이혼했다는 거 사실이에요?”박민정은 숨김없이 말했다. “네, 이혼했어요.”“어떻게 된 거예요? 예찬이랑 윤우가 있잖아요? 게다가 임신 중이잖아요?”손연서는 믿기지 않는 듯했다.손연서는 박민정이 왜 임신했는데도 일을 하는지 의아해했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유남준도 그리 좋은 남자가 아니라고, 세상에는 애초부터 좋은 남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너무 길어요. 나중에 시간 될 때 천천히 얘기해요.”유남준이 지금 그렇게 됐다는 것을 손연서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두 사람은 지금 꽤 친하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말하지 않았다.“그래요.”손연서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사업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날 찾아요. 나도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손씨 가문의 사업 중 대부분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손연서
박민정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했다.심각한 정신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해외 대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지?그녀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는 기분이었다.“민정아, 무슨 생각해?”유남우가 차에 올라탄 그녀를 보고 조용히 묻자 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에요.”유남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박민정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며 물었다.“혹시 저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거 없어요?”이 말에 유남우의 목젖이 떨렸다.“민정아, 날 믿어줘. 내가 너를 해칠 리 없잖아.”박민정도 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그가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요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정말 기억이 흐릿해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죠?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아요. 그리고 정숙 아줌마에 대해서도...”유남우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기억이 안 나면 그냥 잊어버려.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마.”그는 다시 박민정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박민정은 이번에도 피했다.유남우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1년 넘게 쌓아온 노력이 허물어질까 봐 두려웠다.‘여기서 모든 걸 망칠 순 없어.’“전에 네가 꽃밭을 보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래서 내가 비행기 표를 준비했어. 게다가 꽃으로 가득한 저택도 한 채 샀는데 정말 아름다워.”그는 비행기 표를 꺼내 박민정에게 내밀었다.박민정이 표를 들여다보니 출발 시간은 오늘 새벽이었다.“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난다고요?”유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여기 환경이 네 회복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의사도 그랬잖아. 치료를 조금만 더 받으면 기억이 돌아올 거라고. 그때는 더 이상 과거를 물어볼 필요도 없을 거야.”박민정이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부여잡았다.“어쩌다가 교통사고로 기억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자, 피곤할 텐데 이제 좀 쉬어.”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자마자
또 부부라니?박민정의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혹시 이 남자, 머리가 좀 이상한 거 아니야?’“저기요, 혹시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닌가요? 제가 어떻게 당신의 아내일 수 있어요?”그녀의 말에 유남준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깊이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엔 떠날 기색이 없었다.“우린 단순히 결혼한 사이가 아니야. 아이만 네 명이나 있잖아. 이 모든 걸 잊어버린 거야?”‘결혼에, 아이가 넷이라니!’박민정의 얼굴에 더욱 큰 충격이 스쳤다.“유남준 씨, 농담하지 마세요. 저한테 애가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유남준은 그녀의 이런 반응에 마음이 저려왔다.“유남우가 대체 너한테 뭘 한 거야? 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데?”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폰을 들어 증거를 보여주겠다는 듯 전화를 걸었다.“지금 바로 윤우와 예찬이에게 전화해 볼게. 직접 보고 나서도 믿기 어려우면 그때 말해.”영상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화면 속 아이가 소리쳤다.“나쁜 아빠, 왜 전화했어요?”유남준이 먼저 전화를 걸어온 건 처음이라 여덟 살의 박윤우는 놀라움과 의아함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보이는 박민정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엄마! 엄마! 엄마, 진짜 엄마에요? 나 꿈꾸고 있는 거 아니죠? 정말 엄마 맞아요?”아이가 흥분해서 소리치자 박민정의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웠다.“네가... 내 아들이라고?”박윤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엄마, 무슨 말이에요? 전 당연히 엄마 아들이죠. 설마 절 잊은 건 아니죠? 아니면 장난치는 거예요?”박민정의 눈앞에 나타난 이 귀여운 소년은 그녀의 상상을 넘어섰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듯 유남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분명 당신이 꾸민 일이죠, 그렇죠?”그러나 화면 속 박윤우는 계속 울먹였다.“엄마, 왜 그래요? 아픈 거예요? 나쁜 아빠, 엄마 얼른 데려와요. 저랑 형, 동생들도 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유남준은 다급한 박윤우를 진정시키며 말했다.“알겠으니까
“월급 정산하고 당장 꺼져요!” 제임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네...”그 직원은 이렇게 쉽게 직장을 잃을 줄은 몰랐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며 고개를 숙였다.주영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고 잠시 후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변명했다.“사장님, 정말로 박민정이 먼저 손을 댔습니다!”제임스는 더욱 분노하며 소리쳤다.“주 비서가 여기 버젓이 서 있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지금 당장 사모님께 사과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를 적으로 돌리는 셈입니다.”주영리는 눈가가 붉어졌지만 제임스를 적으로 돌릴 자신은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박민정에게 사과하는 일이 너무 억울하고 치욕스러웠다.박민정도 유남준이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의 가벼운 한마디가 사장까지 움직이게 하다니,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주영리는 어쩔 수 없이 박민정을 향해 다가가 말했다.“죄송합니다, 유 사모님. 다 제 잘못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박민정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병원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가 떠 있었는데 물컵 안에서 약물의 잔여물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박민정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로 다 해결된다면 경찰은 왜 필요하겠어요?”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주영리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휴대폰을 들어 신고 전화를 걸었다.제임스는 조금 의아했다. 이런 싸움 문제는 경찰을 부르는 것보다 내부에서 해결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박민정이 그쪽을 향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어제 밤 회사 동료가 제게 약을 탄 음료를 건네고 저를 어떤 남자의 방으로 보냈어요. 여기에 관련 CCTV 영상과 병원의 감정서가 있습니다.”이 말을 들은 직원들은 웅성거리며 속닥이기 시작했다.“세상에... 어제 밤 민정 씨가 자발적으로 최 사장을 따라간 줄 알았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니?”“주 비서가 이런 짓까지 하다니
“지금 이게 무슨 짓들이에요? 주 비서, 왜 먼저 손을 댄 겁니까?” 제임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질책하자 주영리는 억울한 표정으로 먼저 변명했다.“사장님, 먼저 손을 댄 건 박민정이에요. 저는 단지 방어를 했을 뿐입니다.”제임스는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어서 손부터 놔요!”주영리는 마지못해 박민정을 풀어주면서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위협했다.“오늘은 운이 좋았네. 두고 봐, 회사에 계속 있는 한 내 손에서 벗어나진 못할 거야.”박민정은 주영리와 다른 여자가 잡아당겨 흐트러진 옷을 정리한 뒤, 자리에 앉았다.‘병원에서 감정 결과만 나오면 누가 회사를 떠날지 뻔히 알겠지.’방금 두 여자를 상대한 탓에 박민정의 손과 얼굴에는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상처를 처리하며 사장과 유남준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한편, 주영리는 키 크고 잘생긴 유남준을 보고 자연스레 다가갔다.“사장님, 이분은 누구신가요?”제임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남준은 주영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박민정에게 걸어갔다.박민정의 얼굴과 손에 난 상처를 보자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그 여자 말고 또 누가 너한테 손댔어?”박민정은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 사이 주영리가 다가왔다.“아, 유 대표님이시군요! 방금은 오해였어요. 근데 박민정 씨 그렇게 무고하지 않아요. 방금 제 뺨을 두 대나 때렸어요.”주영리는 유남준을 보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이렇게 잘생기고 돈도 많은 남자라니. 좀 더 얘기 나눠봐야겠어.’그러나 유남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누구를 때리든 무슨 문제가 됩니까?”아내?주영리는 멍해졌다.박민정도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언제 이 사람 아내가 됐지? 난 남우 오빠 여자
주영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멀지 않은 곳에서 최 사장이 거대한 트럭에 치여 십 미터나 튕겨 나간 것이다. 그의 상태를 보니 살아남는다고 해도 불구가 될 게 뻔했다.주영리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밖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신을 차린 주영리는 생각했다.‘최 사장이 이런 일을 당했으니 이제 협력이 취소될 일은 없겠지.’불안과 안도의 감정을 동시에 품고 그녀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주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동료들은 그녀를 둘러싸며 묻기 시작했는데 저마다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주영리가 회사에서 쫓겨날 거라고 믿고 그녀의 자리와 권력을 탐내는 듯한 눈빛이었다.이 회사에 진정한 우정 따위는 없었다. 모두가 경쟁자일 뿐, 주영리가 쫓겨나면 비서 자리는 새로운 사람이 차지할 터였다.얼굴이 창백해진 주영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아까 최 사장님이 나가다가... 트럭에 치였어요.”“뭐라고요?”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박민정 역시 믿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그렇게 사고를 당했다니.잠시 후, 아래층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몇몇 직원들은 구경하려고 달려 나갔고 돌아온 이들은 안타까워하며 수군거렸다.“진짜 크게 당했어. 이미 손쓸 방법도 없대. 세상에, 이렇게 될 줄이야.”그 중 한 사람이 박민정을 향해 말했다.“박 비서, 그래도 마음은 좀 쓰이겠네.”박민정이 냉소적으로 대꾸했다.“마음 쓸 이유가 없어요. 최 사장님과 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요.”“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직원들은 이 말을 듣고 비웃기 시작했다.“참, 사람 너무 냉정하다. 오늘 아침까지 그 사람 차 타고 출근하더니 이제 와서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발뺌해?”“그래도 한때 서로 좋았을 텐데 이렇게 단칼에 끝내는 것도 참 매정하네.”그들의 말은 점점 더 독설로 변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들의 조롱에 신경 쓰지 않았다.그때 주영리가 박민정 앞으로 다가왔다.“최
박민정은 물컵을 챙긴 뒤 보안실로 향해 CCTV 영상을 확인했다.그녀는 경비에게 적지 않은 돈을 건넸고 곧바로 어제 퇴근 후의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영상 속에서 주영리가 자신의 물컵에 뭔가를 넣는 모습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좋아, 아주 좋아.’증거는 충분했다.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박민정은 일부러 화장실에 간 척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물컵 속 남은 물을 감식 의뢰하기 위해서였다.컵에 남아 있는 물에 약물이 들어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했으니까.병원을 다녀오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회사 내에서는 이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생겼다.“보란 듯이 대놓고 결근이네. 뭐, 이제는 최 사장님 같은 백이 있으니까 다 무시하나 봐. 화장실 간다더니 한 시간은 넘게 있었을걸?”질투 어린 목소리가 사방에서 속삭였지만 박민정은 이런 말을 신경 쓸 리 없었다.한편, 주영리는 책상 한쪽에 앉아 있었지만 마냥 긴장을 풀지 못했다.직속 상사인 제임스가 아까 말하기를, 곧 최 사장님이 회사를 방문한다고 했고 게다가 이번에는 자신을 직접 찾겠다고도 했다.주영리는 두려움에 휩싸였다.설마 최 사장이 박민정의 말을 듣고 그녀의 편을 들어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건 아닐까?그녀는 불안에 휩싸여 일조차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결국, 최 사장이 들어왔다.그러나 그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주 비서, 당장 이리 와!”최 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주영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휴게실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불안한 마음에 손이 떨렸다.밖에서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모두 최 사장이 박민정을 위해 직접 나선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험담하던 사람들도 입을 꾹 다물었다.박민정 역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비웃었다.‘참 간사하네.’휴게실.최 사장은 들어오자마자 주영리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너, 네가 어제 나를 죽일 뻔한 거 알아?”주영리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최 사장님, 무슨 말씀이
주영리는 우유를 마시며 비웃듯 고개를 끄덕였다.“참나, 그때 밥 먹을 때는 얼마나 고상한 척하던데. 뒤에서는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네요.”옆에 있던 동료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그렇게 말하지 마요. 어쩌면 이제 최 사모님이 됐을지도 모르잖아요. 괜히 건드렸다가 큰일 난다고요.”주영리는 조롱하듯 덧붙였다.“흥, 그 여자가 사모님 자리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예쁜 여자는 넘쳐나는데 고작 그런 애가? 겁낼 거 없어요.”다른 여직원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맞아요. 겨우 그런 걸로 뭐가 무섭다고. 하!”주영리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그때 누군가 외쳤다.“어? 저거 봐, 한정판 벤틀리잖아! 혹시 회사에 또 대형 고객이 온 거야?”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그 차로 향했다.그리고 곧이어 그 차에서 내리는 박민정을 보고는 다들 말을 잃었다.주영리는 한순간 멍해졌지만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봤죠? 저거 분명 최 사장님 차일 거예요.”곁에 있던 동료가 주영리를 치켜세우듯 말했다.“주 비서님, 진짜 대단하네요.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어요. 저 여자 진짜 못됐네요.”박민정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있는 주영리를 발견했다.그녀는 손을 꽉 쥐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주영리는 원래 박민정이 자신에게 보복할까 봐 걱정했지만 지금 박민정이 고급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같은 부류라고 착각했다.뻔뻔하게도 주영리는 박민정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민정 씨, 어제 재미있었어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맙다고요?”박민정의 손이 번개처럼 빠르게 올라가더니 주영리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팍! 소리가 울리며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주영리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파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날 쳤어요? 내가 아니었으면 오늘 민정 씨가 그 고급 차 타고 출근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천한 주제에 겉으로만 고상한 척하려고?”주변 동료들이 이 장면을 지켜
유남우의 온화한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그래? 정말 우연이네.”그는 여태껏 박민정을 잘 감춰왔지만 예상치 못한 우연으로 두 사람이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이게 유남준에게 행운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어쨌든 형의 겉모습에 속아선 안 돼. 그리고 회사에서 누군가 너를 노리고 있다면 진작에 나에게 말했어야지.”유남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박민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뭐든 오빠한테 의지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도 제힘으로 해내고 싶어요.”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남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전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제발 그대로 둘 수 없어요? 회사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주영리가 감히 자신을 함부로 대하다니, 그녀는 반드시 주영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부탁이에요.” 박민정은 손을 뻗어 유남우의 팔을 붙잡았다.“제발, 도와줘요. 네?”박민정의 간절한 애원이었지만 유남우는 난감한 얼굴로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안 돼. 난 네가 걱정돼서 안심할 수가 없어.”박민정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하지만 저는 이 일이 정말 필요해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왜 꼭 떠나야 하는 거예요? 그냥 오빠 형 문제잖아요. 그걸 가지고 저를 강요할 순 없잖아요?”유남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그만하자. 알겠어. 회사 문제는 정리할 시간을 줄게. 하지만 그 뒤엔 같이 떠날 거야.”박민정의 눈빛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지난 1년간 그녀는 모든 걸 유남우에게 맞춰왔다.그를 사랑했으니까.하지만 겨우 이 작은 부탁조차 들어주지 않다니.박민정이 말을 잃고 침묵하자 유남우는 그녀가 화가 난 것을 눈치채고 달래듯 말했다.“화내지 마. 다른 곳으로 가도 네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게.”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이 원래는 그를 무시하려 했지만 기침 소리에 마음이 약해졌다.“왜 이렇게 심하게 기침해요? 혹시 병이 재발한 거 아니에요?”유남우는 그
박민정은 처음으로 유남우에게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유남우를 부축하며 유남준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저기요, 형이라는 사람은 원래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빠가 몸이 약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어떻게 오빠를 때릴 수 있어요? 게다가 외부인이 있는 자리에서 체면 하나 세워주지 않고요.”박민정은 이렇게 지나치게 차가운 형을 본 적이 없었다.그녀의 꾸짖음에 유남준은 마치 목이 막힌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오빠, 우리 그냥 가요.”박민정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남우에게 말했다.“그래.”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유남준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순간적으로 막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예전에 자신만을 사랑하던 그녀가 이제는 다른 남자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한편 최 사장의 정보를 모두 조사한 서다희는 돌아오는 길에 사모님과 대표님이 함께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그는 막 부르려던 찰나, 대표님이 방에서 지친 모습으로 나오는 걸 보고 멈췄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서다희는 한 걸음씩 유남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어젯밤 그 뚱뚱한 남자에 대해 알아냈습니다. 성은 최씨라고 하더군요. 본토에서 활동하는 무역상입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남준이 고개를 들었다.“뭐 해야 할지는 알겠지?”“네.” 서다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사람을 붙여서 민정이와 유남우를 따라가게 해.”“유... 유남우 도련님이요?”서다희는 놀랐고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아까 대표님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 동생이었다.하지만 박민정이 왜 유남우와 함께 떠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더는 묻지 않고 명령을 받고 자리를 떠났다.박민정은 유남우와 함께 돌아오는 길 내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많이 아프죠?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었다.그러나 유남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