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동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화는 최근에 확실히 많이 변했다고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싸움질도 못 해서 기생오라비에 팻남이라고 놀림을 받았었다. 그런데 요즘 온종일 군대에 가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천화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국외 전장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류혜진이 절대 승낙할리 없었다. 국외 전장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 때문에 류혜진은 자신의 보물인 아들 천화를 어떤 위험한 곳에도 보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화야 밥 먹어.” 류혜진의 모습이 저택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는 호숫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설전룡을 보고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당신이 왜 또 여기 있어요? 요즘 우리 천화가 하루 종일 군대에 가겠다고 조르는데, 그것도 당신이 부추긴 거 아니에요?” 류혜진은 설전룡에게 별로 호감이 없었다. 설전룡은 시도 때도 없이 몰래 들어와 천화와 함께 무술을 연마했다. 그 후로 예전에는 그렇게 착한 아들이었던 천화가 지난번에 사람을 때려서 사고까지 쳤다. 그녀는 저택을 지키는 호아병단 병사들에게 몇 차례 말을 해두기도 했었다. 류혜진은 병사들에게 설전룡을 저택으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설전룡이 매번 저택 안으로 몰래 들어왔고, 그때마다 류혜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모님, 국수 하셨어요? 이모가 만든 국수가 아주 맛있는데 저도 좀 주세요.” 설전룡이 낯을 붉히며 말했다. “코가 무슨 개코야? 이런 건 또 왜 잘 맡는데? 그래도 당신 거는 없어.” 류혜진은 고개를 돌려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곧 천화가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가 국수 두 그릇을 가져 나왔다. 저택 안에서는 류혜진의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사부님, 드세요.” “역시 제자가 의리가 있구나.” 설전룡은 국수를 받아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천화도 그 옆에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같이 국수를 먹었다. 다른 사람 눈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사무실로 들어왔다. 10여 명 정도였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기품이 넘쳐흘렀다. 그들 뒤로 또 몇몇의 사람들이 따라 나타났다. 모두 경호원 아니면 비서, 혹은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비즈니스맨이었다. “천원용이 누구야? 우리가 태성쇼핑센터를 인수하고 싶은데?” 선두에 선 젊은이가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들을 휙 둘러보았다. 사람을 깔보는 눈빛과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천원용은 소름이 돋으며 쳐들어온 젊은이들이 모두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가 앞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바로 천원용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Z시 육씨 가문, 육문재!” 방금 선두에 서서 말한 젊은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관리 사무실의 사람들은 모두 놀란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Z시는 H시 남쪽에 있었고 두 도시는 바로 붙어있어서 모두 Z시 육씨 가문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Z시 육씨 가문도 역시 명문가였다. 유서가 깊고 뿌리가 튼튼해 J시의 제씨 가문 못지않았다. ‘지금 그 Z시 육씨 가문이 우리 태성쇼핑센터를 인수하겠다고?’ 천원용은 감히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고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재 도련님 안녕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태성쇼핑센터는 이미 항난그룹에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항난그룹의 수 사장님과 계약을 쳬결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육문재는 수소야를 쳐다보았다. “도련님 안녕하세요. 맞아요. 저희 항난그룹이 태성쇼핑센터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수소야가 조용히 말했다. “아직 계약서를 쓰고 있는 거라면 아직 안 팔렸다는 거 아니야?” 육문재는 수소야를 무시하고 천원용만을 쳐다보았다.명문가의 도련님이 거만하게 서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바라보자 천원용은 큰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천원용은 동혁을 떠올리며 애써 입을 열었다. “문재 도련님, 정말 죄송해요...” “잠깐, 우리 Z시 육씨 가문으로는 아직 결정하기 어려운가 보네.” 육문재가 천원용의 말을 끊고
“그 입 좀 다물어 주시죠? 당신에게 물어본 거 아니니까.” 육문재는 수소야를 힐끗 쳐다보며 매우 거만하게 말했다. 그는 다시 천원용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 한번 묻지. 우리에게 팔 거야?” “천 사장님, 겁낼 거 없어요. 저 사람들은 감히 사장님을 어쩌지 못할 거예요.” 수소야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원용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팔겠습니다!” 어제 동혁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 나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도련님들께서 이렇게 높이 평가해 주시니, 정말 저희 태성쇼핑센터와 저 천원용의 영광입니다.” 천원용의 말에 몇 명의 젊은이들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는 별 반응이 없었다. 마치 천원용의 태도가 당연하다는 것처럼 굴었다. 수소야는 천원용이 이렇게 망설임 없이 말을 바꿀 줄은 몰랐다. 그녀는 약간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천 사장님, 이렇게 사업을 하시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얘기가 다 끝났고 그래서 계약까지 체결하려고 했는데, 지금 사장님이 그것을 번복해 쇼핑센터를 저들에게 팔겠다니요.” 수소야는 완전 속은 기분이 들었다. 전에는 천원용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수 사장님, 비즈니스에서 개인적인 감정은 섞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정식 계약을 아직 안 한 이상, 내가 태성쇼핑센터를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게 뭐가 문제입니까?”천원용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아까 사장님이 이 선생님께 태성쇼핑센터를 인수해서 급한 불이 꺼졌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신 건 다 거짓인가요?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꾼다고요?” 수소야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는 3대 가문이 망해서 그런 거지요. 전 저를 조력해 주실 분을 찾고 있었는데 이 선생님이 괜찮은 것 같았고요.” 천원용은 냉소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많은 도련님들이 저를 찾지 않았습니까? 제가 당연히 도련님들의 체면을 생각해 드려야지요.”
수소야를 위협했던 젊은이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콧방귀를 뀌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제설희를 차지하려는 경쟁자였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당연히 좋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단지 제설희가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함께 쳐들와 동혁에게 화풀이를 하려 했다. 수소야는 돌아갔다. 그녀 뒤에서 육문재 등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와서 너무 힘 빼는 거 아니야? 혼자서도 충분히 그 이동혁을 밟을 수 있잖아.” “설희보고 오라고 해. 그놈이 감히 우리 앞에서도 설희의 뺨을 때릴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감히 그럴 수 없을 걸? 내가 그놈 정체를 알아봤는데, 이류 가문의 데릴사위야. 전에 신분을 위장하고 허세를 부려 항난그룹을 다시 재건했데. 뭐 그런 면에서는 인재라고도 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와 비교하기는 쫌...” 천원용은 육문재 등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옆에서 시중을 들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동혁이 진씨 가문의 그 데릴사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놈은 속임수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뜻밖에도 최원우까지 속인 거였어.’ 천원용이 재빨리 말했다. “도련님들, 제 생각에는 이동혁은 그놈이 감히 여길 못 올 것 같은데요? 차라리 제가 도련님들의 말씀을 실어서 여론 공세로 몰아붙일까요?” 천원용은 어제 자신이 동혁 앞에서 굽실거리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내가 이동혁, 네놈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주마.’ “아주 똑똑한데? 그럼 천 사장 말대로 해.” 육문재는 천원용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빠르게. 육문재 등의 말들이 천원용에 의해 H시의 여러 가문들로 보내졌다.어제 제설희가 동혁에게 뺨을 맞은 일. 금방 하룻밤사이에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명문가 도련님들뿐만 아니라 도지사 가문의 도련님도 오셨으니, 세화의 그 바보 남편은 이번에 끝장이군.” “제
“이동혁 씨, 다들 지금 H시에 와서 당신을 보겠다고 난리야. 이제 당신은 죽었다고!” 현수는 기쁜 듯이 말했다. 현소와 천화는 이 말을 듣고 초조하여 울상을 지었다. 현수의 말을 듣고 그 둘은 모두 깜짝 놀랐다. “형부, 이제 어떡해요? 하필 지금 세화 언니가 큰 이모부를 모시고 약을 바꾸러 병원에 갔는데. 제가 지금 연락해서 오라고 할게요. 함께 방법을 찾아보면 나을 거예요.” 현소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세화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언니까지 놀라게 할 필요 없어.” 동혁이 현소를 막았다. 사실 동혁은 이미 수소야의 전화를 받아서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원래 육문재 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이 태성쇼핑센터를 사겠다면 그냥 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외부에서 이미 소문이 퍼졌다. ‘보아하니 내가 태성쇼핑센터에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내가 태성쇼핑센터로 가서 그 도련님들을 만나봐야겠어.” 동혁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흥, 태연한 척 연기하기는. 세화 누나가 알까 봐 겁나겠지. 자기가 이렇게 큰 일을 저질렀다는 걸 누나가 알면 이혼하려고 할 테니까. 내가 보기에 분명 그 도련님들한테 가서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하려는 것이 틀림없어.” 현수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천화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현수, 너 또 감히 그 싼 입을 놀리지? 아주 내가 너를 때려서 얼굴을 묵사발을 만들어 줄까?” “천화야, 나야말로 지금 너하고 따질 시간이 없어. 태성쇼핑센터로 가서 이동혁이 무릎을 꿇고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모습을 꼭 지켜볼 거야.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세화 누나에게 보여줘야지!” 현수는 몸을 돌려 바로 도망갔다. “천화야, 우리도 태성쇼핑센터로 가보자.” 동혁이 걱정된 현소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래, 정 안 되면 내 페라리 488을 그들에게 줘서 배상하면 되지.” 천화도 안심할 수 없어서 바로 쫓아갔다. 태성쇼핑센터 입구. 동혁이 도착하자마자 천원용이
“매형, 절대 말을 듣지 마세요. 그러다 죽을 거예요.” 천화의 말을 듣고 현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싫다고요? 싫다면 여기 서서 뭐 하게요. 그냥 집에 가서 죽기를 기다리세요.” 천원용은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태성쇼핑센터 안으로 들어와서 안에 있는 여러 도련님들을 만나겠다면 3시간 동안 가만히 서서 아이스크림을 배 터질 때까지 먹으면 돼요.” 천화와 현소는 더욱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렀다. 둘은 동혁이 틀림없이 상대의 무리한 요구에 응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제설희의 십여 명의 추종자들.’ ‘한 명 한 명의 출신이 모두 명문가야.’ ‘매형도 분명 이번에 큰 소란을 피운 것을 알고 있어.’ ‘그렇다면 도련님들을 만나 순순히 굴복하고 사과하려 할 거야.’ “뭘 멍하니 있나요? 드세요. 여기 커다란 냉동고가 선생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천원용은 손수 아이스크림을 들고 동혁에게 건네주었다. “천원용 사장, 어젯밤에 내 앞에서 굽실거릴 때는 지금과 같은 태도가 아니었죠?” 동혁은 아이스크림을 받지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천원용을 쳐다보았다. 동혁의 말에 천원용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어젯밤의 장면을 떠올리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뜻밖에도 쓸모없는 데릴사위라고 불리는 동혁 앞에서 아첨하며 굽신거렸다. 천원용은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하고 동혁을 증오했다. “어젯밤은 어젯밤이고, 지금은 지금이죠.” 천원용은 동혁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안에 계신 십여 명의 도련님들이 이미 저의 조력자가 되기로 약속했어요. 그러니 앞으로 H시에서 누가 감히 저를 우습게 볼까요? 아무도 감히 나를 모욕할 수 없을 겁니다.” “이동혁, 당신! 항난그룹이 당신을 돕고, 아내인 진 회장이 당신 뒤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 따위는 내 발로 손쉽게 밟아 죽일 수 있으니까.” 천원용은 지금 동혁을 깔보고 있었다.명문가 도련님 10여 명을 조력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원용은 이 순간 전에 없
3대 가문이 몰락한 후. 3대 가문의 가주들은 예전에 발을 한 번만 굴러도 H시를 떨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자신들의 위치에서 내려와야 했다. 불과 며칠 못 본 그 사이에 그들은 열 살이나 더 먹은 것 같은 몰골이다. 기력도 예전 같지 않아 보였고 약간 위축되어 있었다. 동혁 앞에 선 그들은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동혁이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3대 가문의 가주 여러분, 일처리를 잘했던데? 당신들의 모든 재산을 공공 자산으로 헌납하라 했는데 아직 이렇게 남겨두다니.” 풀썩! 천정윤 등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옆에 있는 천화 등 세 사람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3대 가문이 왜 매형을 이렇게 무서워하지?’ “이 선생,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고의로 선생님을 속이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진성그룹과 항난그룹의 선례처럼 저희 3대 가문도 언젠가 패가망신하면 같은 결과를 맞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미 1년 전부터 태성쇼핑센터 주식을 저희가 위탁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진성그룹은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모두 분할되었다. 항난그룹은 아예 해체됐다. 그 모든 일을 3대 가문이 관여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속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 3대 가문 가주들은 일련의 자본을 따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통제 가능한 일부 사업을 전체에서 따로 떼어냈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날 모든 사업이 해체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성쇼핑센터도 떼어낸 사업 중 하나였다. “당신들은 계획을 아주 잘 세웠다고 생각했겠어. 이전 진성그룹처럼 분할되더라도 암암리에 통제하고 있던 사업이 다시 부를 가져다줄 것이고, 심지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야.”동혁이 냉소했다. “그래서 결과가 어때?” 천정윤 등의 마음은 씁쓸했다. 결국 주인이 죽자 기르던 개가 대신 주인이 되었다. 천원용은 원래 3대 가문이 키우던 개였다. 그런데 3대 가문 세력
“예전같이 너희들이 다른 사람들 위에 서는 일은 꿈도 꾸지 마.” 동혁이 말했다. “태성쇼핑센터 인수나 도와. 그러면 너희들이 평범한 삶은 살게 해 줄 테니. 일어나.” 3대 가문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후에 다시 생활이 나아질지는 그들의 후손들이 스스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선생님의 크나큰 은혜에 감사합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천정윤 등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지금의 그들에겐 지상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 “천 사장, 이동혁이 아이스크림을 먹던가요?” 천원용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육문재가 웃으며 물었다. 뒤이어 도착한 제설희와 유준기 등 10여 명의 도련님들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에어컨 바람 쐬면서 시원하게 맛을 즐기고 있다. 반면 동혁은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야 했다. 한쪽은 즐기면서 먹고 다른 한쪽은 고통스럽게 먹는 것이다. “아주 잘 먹고 있을 겁니다. 그놈이 여길 들어와서 여러 도련님들께 용서를 빌어야 하니 얌전히 잘 먹어야죠.” 천원용이 굽실거리며 말했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 중 그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은 없었다. “냉동고 전체 아이스크림을 막는 모습이라. 그 장면 정말 멋있지 않아?” 유준기는 악랄한 표정을 지었다. 동혁을 3시간 동안 햇볕아래 서있게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아이디어였다. 육문재가 웃으며 말했다. “됐어. 정말 냉동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게 할 필요는 없잖아. 죽지는 않아도 올라오기도 전에 망가지면 우리가 어떻게 계속 놀려주겠어?” “하하하, 그래 맞아. 그놈이 감히 설희를 때려서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그놈을 그냥 놔둘 수는 없어.” 다른 도련님들도 모두 찬성했다. “그럼 우리 나가서 구경하자. 그놈이 어떻게 그 많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는지 보자고.” 안아린이 팔짱을
우대평은 이미 동혁에게 맞아서 정신이 혼미했다.소파에 멍하니 앉은 채 동혁의 손바닥이 매번 뺨을 때려도 그저 가만히 있었다.“이동혁, 그만해! 또 때리면, 회장님은 너한테 산 채로 맞아서 죽을 거야!”나건성의 두려움과 공포가 섞인 고함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저 쓰레기는 자기 은사가 맞고 있는데도, 감히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멀리 숨어 있네.’ 방금 동혁에게 뺨을 맞았기에, 나건성은 동혁의 손이 얼마나 매운지 깨달았다.‘이미 60세가 다 된 우대평이 얼마나 맞고 견딜 수 있을까?’동혁은 당연히 자신의 힘을 당연히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비록 우대평의 얼굴이 아릴 정도로 아팠지만, 그렇다고 맞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우대평이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데다가, 이제는 동혁도 화가 많이 풀렸기에 때리던 손을 멈췄다.털썩!동혁이 손을 멈추자 우대평은 곧장 바닥으로 쓰러졌다.원래 동혁이 백핸드로 끊임없이 때리면서 우대평의 몸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대평은 일찌감치 쓰러졌을 것이다.동혁이 더는 손을 대지 않는 걸 본 뒤에야 우시연과 나건성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리고 땅바닥에 엎어진 채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우대평을 일으켜 세웠다.“큰아버지, 괜찮으세요? 제발 죽지 마세요, 흑흑...”“회장님 제발 버티세요. 제가 바로 구급차를 부를게요!”우시연과 나건성은 우대평의 늙은 몸을 끊임없이 흔들었다.한쪽에 서서 냉담하게 방관하던 동혁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담담하게 말했다.“이 뻔뻔한 늙은이, 너도 사람을 볼 면목이 없을 때가 있어?”“또 죽은 척하면서 나한테 누명을 덮어씌우려는 거지? 내가 두 대만 더 때려봐야겠어!”“어?”우시연과 나건성은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무슨 소리야, 우대평이 진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죽은 척하는 거야?’그런데 영혼이 없는 산송장처럼 보였던 눈꺼풀이 떨리더니, 우대평이 갑자기 눈을 떴다.우대평은 감히 더 이상 엄살을 부리지 못했다.“아아! 이 개자
동혁의 말을 듣고 우대평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우대평!H시에서 가장 오래 된 기업가이자 1세대 갑부! H시의 많은 기업가들의 존경을 받는 H시상공회의소 회장!‘동혁 씨가 아무리 간이 배밖에 나왔다 해도, 우대평에게 손을 대겠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다니!’“동혁 씨, 하지 마...”세화가 동혁을 막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동혁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틀림없이 큰 파문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기에.‘지금 여론이 이미 동혁 씨한테 온통 욕설을 퍼붓고 있는데, 또 일을 저지르면 큰일이야!’“괜찮아, 여보, 그저 아무 능력도 없는데, 늙은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는 걸 좋아하는 늙은이일 뿐이야. 때리면 때리는 거지.”동혁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세화를 안심시키면서, 우대평을 향해 계속 다가갔다.그때 갑자기 나건성이 달려들어 우대평의 앞을 가로막았다.“이동혁, 네 주제를 똑똑히 파악해! 네가 뭔데 감히 회장님에게 손을 대겠다는 거야!”“네가 회장님에게 폭언을 하고 불경한 짓을 한다면, 너는 더 이상 H시에서 설 곳이 없어!”나건성은 동혁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성난 목소리로 질책했다.“말 다 했어? 말 다 했으면 꺼져.”동혁은 나건성을 힐끗 보고는 손을 들어 따귀를 때렸다.‘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나건성은 줄곧 성가시게 굴었지.’동혁은 줄곧 상대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또 앞으로 달려 나와서 난리를 치자, 동혁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아...”피를 토하며 날아간 나건성이 땅바닥에 떨어졌다.이제 동혁은 아무 장애물도 없이 우대평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우대평은 무의식 중에 손에 든 찻잔을 움켜쥐었다.그러나 동혁의 앞에서 비겁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었다.우뚝 솟은 산처럼 굳건한 모습은 그래도 꽤나 기백이 있어 보였다.심지어 동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찻잔을 들고서, 우대평이 무심코 말했다.“어린 놈이 감히 내게 손
“이동혁, 어서 무릎을 꿇고 시연 양에게 사과하고, 회장님에게 사과해. 어쩌면 회장님의 용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이 말을 들은 세화가 바로 나건성을 노려보았다.‘나도 맞았는데 왜 동혁 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는 거야?’동혁은 나건성을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우 회장, 이것도 당신의 뜻이야?”“당연하지.”동혁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자, 우대평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옆에 있던 찻잔을 들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일을 잘못했는데, 또 다른 사람의 용서를 얻으려면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해.”“하지만 무릎을 꿇고 시연이에게 사과하는 건 네가 방금 뺨을 때린 것에 대한 대가일 뿐이야.”“내가 너를 용서할지 말지는 너의 후속 태도와 표현에 달려 있지.”짧디짧은 2분 간의 접촉에서 우대평은 동혁이 오만불손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냈다.그래서 이 기회를 빌어서 동혁의 성질을 고치고 길들일 생각이었다.‘그러면 나중에는 내가 시킨 대로 성실하게 리성투자회사와 천용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겠지.’‘그러면 오한민이 내게 신세를 지게 되는 거야.’“잘못했다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동혁이 냉담하게 말했다.“우 회장, 당신 수하가 당신은 정직하고 덕망이 높다고 하던데, 그럼 내가 오히려 우 회장에게 묻고 싶은데.”“내 아내가 우시연에게 뺨을 맞았을 때 당신은 뭘 하고 있었지?”“이 H시 상공회의소의 당당한 회장이 나와서 막을 수 있었을 텐데?”“그리고 저 우시연은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지만, 내 아내는 두 그룹의 회장이야.” “나는 저 여자가 무슨 백이 있길래 내 아내의 뺨을 때렸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누구의 힘을 믿는 거야!”“우시연이 맞으니까, 그제서야 튀어나와서 신분과 경력으로 사람을 억누르겠다고?”“그게 바로 정직하고 덕망이 높다는 거야?”동혁은 냉혹하고 매서운 말투로 연거푸 질문했다.동혁이 결국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자, 우시연이 갑자기 불쾌한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개X 끼, 내가 네 마누라를 때렸는데
“시연아!”조카딸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자,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우대평이 놀라 울부짖었다.그리고 탁자를 치고 일어나서 찢어질 듯한 시선으로 동혁을 노려보았다.“어디서 온 나쁜 놈이 감히 우리 H시 상공회의소에서 건방지게 굴어!”“여보, 아파?”동혁은 우대평을 보지도 않은 채 세화의 손을 잡고 애틋한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볼을 만지면서 바닥에 뻗은 우시연을 본 세화는, 맞은 얼굴이 덜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동혁이 자신을 무시하자, 화가 난 우대평은 이를 악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여보? 이 나쁜 새끼, 바로 진세화의 폐물 데릴사위 남편 이동혁이야?”“늙은이, 너는 또 뭐야?”동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우대평을 바라보았다.우대평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우시연을 부축하던 나건성이 바로 고함을 쳤다.“건방지게! 이 분은 우리 H시상공회의소의 우 회장님이셔! 감히 회장님에게 불경을 저지르다니!”“우 회장이라, 당신이 우대평이야?”우시연을 힐끗 본 동혁이 큰 소리로 물었다.“저 천한 년도 성이 우씨던데, 당신 사생아야?”“이동혁, 너 건방지게!”분노한 나건성이 고함을 쳤다.“시연 양은 우리 회장님의 조카딸이야! 정직하고 덕망이 높으신 우리 회장님을 네가 이렇게 중상모략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빨리 회장님께 잘못을 빌지 못해!”“아, 내가 착각한 모양이네.”동혁은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던 우대평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자신의 신분을 알았으니 동혁이 복종할 걸로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동혁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저 천한 년이 무지막지하게 날뛰면서 설치길래, 나는 집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걸로 생각했지. 바깥에 대놓고 내놓을 수 없는 사생라서 그런 줄 알았지.”“누가 가르친 모양이네... 그런데 어떻게 저따위로 가르쳤지?”동혁의 조롱하는 눈빛이 우대평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떨어졌다.“피식!”세화는 바로 웃음이 나왔지만 얼른 입을 막았다.우시연에게 맞은 뺨이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옳고 그름을 견지할 뿐입니다.”“이 세상을 비록 흑백 논리로 구분할 수 없다고 해도, 때로는 무조건 옳거나 틀린 경우도 있으니까요!”세화는 변함없이 우대평을 존중했지만 그 말투는 단호했다.우대평은 마치 발작할 듯한 기세로 코웃음을 쳤다.바로 그때, 안경을 쓴 여자가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뛰어들었다.“큰아버지, 제 화를 좀 풀어주세요!”“큰아버지, 그 이동혁이라는 폐물 데릴사위가 얼마나 날뛰는지 아세요?” “제가 그자를 자원봉사자에서 제명했을 때, 그 인간이 뜻밖에도 저를 위협했어요. 오늘이 제가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로 있는 마지막 날이 될 거라고요!”“그 인간은 큰아버지를 정말 우습게 여기는 거예요. 정말 화가 나 미치겠어요!”여자는 세화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우대평의 앞에 와서 눈노를 쏟아냈다.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앞서 동혁을 자원봉사자 명단에서 제명했던 우시연이다.스타공익재단은 H시상공회의소가 출자해서 설립한 재단으로, 당연히 큰아버지 우대평 덕분에 우시연이 책임자가 될 수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우대평의 눈에서 노기를 드러냈다.“이동혁이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제가 큰아버지를 왜 속이겠어요! 그렇게 많은 자원봉사자 앞에서 저를 아주 우습게 여겼어요.” “큰아버지가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이 분노를 해소할 수 없을 거예요!”우대평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소연하던 우시연은, 문득 고개를 돌려 세화를 보고는 잠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어, 저 사람은 누구에요, 큰아버지?”세화를 처음 봤지만 우시연의 마음속에서는 질투가 일었다.‘이 여자 너무 예쁜데.’ 세화의 온몸에 넘치는 자신감과, 속세를 벗어난 듯한 고귀한 기질에 우시연은 열등감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시연아, 저 여자는 바로 그 폐물 이동혁의 아내이자 혜성그룹의 회장인 진세화 씨야.”나건성이 마치 환심이라도 사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우시연이 줄곧 큰아버지 우대평의 총애를 받고 있기에
나건성은 세화에게 전혀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압적인 태도가 계속 이어지자, 곧 세화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우대평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세화가 말했다.“회장님, 상공회의소에 끼친 손실에 대해서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우대평은 가만히 앉은 채 가타부타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다.나건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회장님, 이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사과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지금 리성투자회사에서는 당신의 남편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당신의 남편은 무법천지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타공익재단을 통해서 원화투자회사로 연락하여 사과하라고 했습니다만 당신의 남편은 거절하고 항난그룹을 찾았습니다.”“더군다나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허, 정말 우리 H시상공회의소를 안중에도 두지 않다니.”“당신의 남편은 회원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 해도, 진 회장 당신은 다릅니다.” “당신은 우리 H시 상공회의소의 정식 회원입니다. 솔선수범해서 회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이 말에 세화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H시상공회의소 회원이 확실하기에.앞서 H시상공회의소에서 찾아와서 입회 서류를 작성하게 했다.원래 세화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즈니스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늘 온갖 협회와 단체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입회 서류 한 장 때문에 H시상공회의소에서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H시상공회의소에서 제게 뭘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세화는 염치불구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나건성이 간단하게 대답했다.“아주 간단합니다. 남편분이 천용훈 씨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도록 진 회장님이 나서서 얘기하시면 됩니다!”세화가 우대평을 힐끗 쳐다봤지만, 우대평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무표정한 얼굴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진 회장님, 이런 작은 일에 뭘 망설입니까? 되든 안 되든 말을 해야지요!”
‘사해상공회의소의 욕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S시 재계의 거두가 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또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다른 도시들의 상공회의소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그러나 이것은 동혁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그래, 알았어.”전화를 끊은 동혁은 바로 선우설리가 보낸 주소로 달려갔다.H시상공회의소의 사무실은 다이너스티호텔에 있다.6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업무뿐만 아니라 접대와 회의에도 편리했다.세화는 동혁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다.직원의 안내로 회장실로 오자, 검은색 가죽 소파에는 우대평 회장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후배 진세화가 우 회장님을 뵙습니다.”앞으로 나온 세화가 공손하게 후배로서의 예를 취했다. 이 덕망이 높은 선배에 대해서 세화는 줄곧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60이 다 된 우대평의 귀밑머리는 벌써 반백인 상태였다.우대평이 허허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진 회장,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나는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입니다.” “두 회사를 지휘하는 진 회장에 비하면, 그저 좀 일찍 태어난 정도의 경력밖에 없어요.”“그리고 그 당시 내가 창업을 시작했을 때, 진씨 가문에서는 할머님이 이미 진성그룹을 세우셨지요.”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 분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은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을 세워 이름을 날렸고, 거부가 되기도 했어요.”“그런데 지금의 진성그룹은, 아이고,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대평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파에 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세화는 진성그룹의 지금 모습을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도 한숨을 내쉬었다.‘그 당시 진성그룹이 할머니 수중에 있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지금은 전혀 존재감이 없어.’세화 일가를 제외하고는 진씨 가문 사람들 모두 성을 바꿔서, 조상마저 잊었다는 오명을 쓴 채 웃음거리로 전락했다.그러나 세화는 최근 제씨 집안에서, 할머니 제원화로 빚어진 각종 문제들을 청산하고 있는 것
우시연은 믿는 구석이 있기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스타공익재단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어서, 우시연이 자원봉사자로 뽑지 않겠다고 하면 자원봉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좋은 일을 하는데 너희 동의가 필요하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자원봉사자들은 모두 분개했고, 몇몇 여성 자원봉사자들은 곧 울음이 터질 듯했다.그들 모두 대학생으로 현실은 어둡고 오싹하기만 했다.“나를 제명하겠다는 거지? 내가 가면 되겠네.”바로 그때 불쑥 말을 내뱉은 동혁이 레드 재킷을 벗으면서 그 여학생들을 위로했다.“모두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돼요. 우리가 자원봉사를 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걱정 말아요, 나중에 내가 모두를 위해서 공정한 도리를 되찾아 줄 테니까요. “모두가 열심히 땀을 흘렸는데 또 눈물까지 흘리게 할 수는 없지요!”수위 변동이 긴급했기에, 동혁은 이 일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떠나게 되거나 구조가 지체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그래서 잠시 화를 참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레드 재킷을 우시연의 옆에 있는 직원에게 던진 동혁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우시연,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 맞지? 기억해 두겠어.”“내가 한마디 충고하지. 내가 간 후에 너는 절대 이 자원봉사자들을 난처하게 해선 안 돼. 자신의 앞날이 걸린 문제니까 잘 생각해.”“오늘이 네가 스타공익재단 책임자를 맡은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야!”말을 마친 동혁은 돌아서서 바로 가버렸다.“흥, 항난그룹 회장 아주 대단해?”“우리 큰아버지 우대평에 비하면 너는 X도 아니야! 발톱의 때도 안 되는 주제에!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동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우시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조롱했다.동혁은 상대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밤을 새운 데다가 또 반나절 동안 구조에 참여했기에, 피곤해서 좀 쉴 생각이었다.그러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장모가 동혁을 붙잡고 면전에서 퍼부어댔다.“이동혁, 이 나쁜 놈! 괜찮다고 해놓고서 왜 또 그 천용훈
장가연의 말을 듣자, 동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장가연과 H시상공회의소는 리성투자회사의 흉악한 속셈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어.’‘소위 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건 말짱 헛소리야.’‘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리성투자회사에서 소송을 한다 해도 절대 이길 수 없어.’‘만약 내가 압력에 못 이겨서 정말로 사과를 한다면, 평생 그 누명을 안고 가야 해.’‘더군다나 상대방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한 건, 나를 마음껏 모욕하겠다는 수작에 지나지 않아.’동혁은 확신했다.‘일단 내가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사건이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시작되는 거야!’“투자회사의 뜻? 장가연 씨, 당신이 투자회사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사장인 내가 잠시 떠나 있을 뿐입니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장가연이 자신의 사과를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상 동혁도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때로는 양보할수록 더 욕심을 내는 법이지.’[이동혁, 당신!]동혁의 태도가 이렇게 강경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장가연은 화를 참지 못하고 식식거렸다.“어차피 나는 절대 사과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요. 나는 또 구조 작업에 가야 합니다.”동혁도 장가연이 화가 나든 말든 전화를 끊어버렸다.“당신이 이동혁 씨입니까?”몇 분 후 동혁 등 구조대원들은 계속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갑자기 레드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바로 동혁을 찾으며 다가왔다. 기세등등한 태도에 눈빛도 곱지 않았다.“내가 바로 이동혁입니다. 왜요?”동혁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다.선두에 선 젊은 여자가 안경을 고쳐 세우고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나는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 우시연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우리 자원봉사자 명단에서 제명되었음을 알립니다!”이 말을 듣고 멍해진 주변의 구조대원들이 곧 우시연을 에워쌌다.“왜 이동혁 씨를 제명하는 겁니까?” “이동혁 씨는 우리 자원봉사자들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데요!” “더럽고 피곤한 것도 전혀 마다하지 않았어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