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저를 죽일 수 없어요.” 동혁은 뒷짐을 지고 서있었고, 선도일의 말은 동혁의 마음에 조금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했다. 선도일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말은 나도 여러 번 들었는데, 매번 그 말을 했던 사람은 다 죽었어.” 동혁이 갑자기 좌우 담을 보고 표정을 찡그렸다. 선도일의 얼굴도 동혁과 거의 같았다. 고개를 돌린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한쪽에 10명씩,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누가 먼저 저 놈들을 처리하는지요? 만약 당신이 지면 그대로 돌아가세요!” 동혁은 선도일은 죽일 마음이 없었다. ‘이 사람에게 이런 실력 있으니 분명 장 회장님의 최측근일 거야.’ ‘내가 장 회장님을 죽이지 않은 이상 회장님 주변 사람들을 죽여 원수를 맺을 필요가 없어.’ 물론 그것도 상대방의 눈치가 빨라 얌전히 물러나야 가능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혁은 자신을 찾아온 킬러가 장해조 본인이라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네 놈처럼 자신만만한 젊은이를 본 지 오래야.” 선도일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네 놈이 먼저 움직여라.” 찌익! 동혁은 옷을 찢어 두 눈을 가리며 말했다. “저는 저보다 어른을 항상 공경해서요.” 선도일은 눈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냉소했다. “그래, 네 놈 두고 보면 알겠지.” 선도일은 말을 마치면서 먼저 출발해 바로 담으로 돌진한 다음, 밑을 따라 왼쪽 담장으로 향했는데 그 속도가 귀신같이 빨랐다. 동혁은 웃으며 반대 방향인 오른쪽 담장을 향해 갔다. 왼쪽 담장. 저격수의 리더가 총을 꺼내 들고 입가의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세종 형님의 분부다. 운동장에 있는 두 사람을 모두 사살해. 당장!”철컥! 철컥! 열 개의 총구를 동시에 담장 밖으로 내밀고 선도일과 동혁이 있던 곳을 향해 조준했다. “어, 어디 갔지?” 한 저격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쉭! 안쪽 담장 밑, 저격수 리더 쪽에서 선도일이 솟아올라왔다. 선도일은 상승 중 손에 있던 단검을 휘둘렀고 저격수 리더의 머리가 목에서 분
“당신은 형님을 죽은 게 염동철의 짓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강오그룹 내부자의 짓이라고 생각합니까?” 동혁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은 오히려 선동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강오그룹에 아직 내부자가 있다는 뜻인가요?” “전 어제 장 회장님과 차를 마실 때 회장님이 중독됐다는 사실을 알려드렸어요.”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매우 오래된 독으로 천기라고 합니다. 천기독은 독약과 독인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독약은 중독자의 체내에 장기간 잠복하면서 길게는 3년, 짧게는 반년, 점차 경맥을 망가뜨리지만 몸이 점점 허약해진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강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리고 독인과 독약이 만나면 중독자는 바로 즉사합니다.” 장해조가 언제 천기독에 중독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에 천기독에 중독된 사람이 언제 죽는지는 독을 넣은 사람이 결정할 수 있었다. “장 회장님이 죽은 그때에는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회장님에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회장님에게 독인을 사용했다는 것은 곧 강오그룹 내부자의 짓이라는 말이에요.” 동혁의 말이 끝나자 선도일은 눈에서 살의를 드러냈다. “그 내부자를 찾아내어 형님의 원수를 갚겠소!” 이 말을 한 후 선도일은 바로 담아래로 뛰어내려 사라졌다. 동혁은 그대로 시선을 돌리고 휴대폰을 꺼내 조동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신 치우라고 하세요.” 곧 양쪽 담벼락의 시체들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이번에도 조동래가 직접 사람을 이끌고 와서 시커먼 시신들을 수습했다. 조동래는 눈으로 현우상 목이 매끄럽게 잘린 것을 확인하고는 수많은 살인사건을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선도일, 역시 20년 전에 H시를 주름잡던 킬러야!” 하지만 조동래의 눈에는 그런 선도일을 손을 쓰지도 않고 자진해서 물러나게 한 동혁이 더욱 대단했다.조동래는 경외의 눈을 하고 동혁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선생님, 현우상의 시체는
“형님, 이제 염동철의 부하 중 제 일인자인 현우상이 죽었으니 염동철은 이빨 빠진 호랑이나 마찬가지예요.” “저와 용구가 학수 등을 데리고 가서 바로 그 늙은이를 죽여버릴까요?” 김대이는 허리를 굽히고 동혁의 곁에 서서 뻔뻔스럽게 물었다. 옆에 서있는 박용구의 눈에도 기대감이 떠올랐다. 하루 만에 H시 암흑가의 구도가 급변했다. 장해조가 죽었다. 염동철도 한 팔을 잃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 김대이와 박용구 두 사람은 마치 생선 냄새를 맡은 고양이처럼 자신들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 기회를 틈타 장해조와 염동철, 기존 암흑가의 두 은둔 고수 대신 자신들이 새로운 암흑가의 두 은둔 고수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두 사람은 동혁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만약 동혁의 지지가 없었다면 염동철도 장해조도 이미 손짓 한 번에 김대이와 박용구의 조직을 없애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염동철이 동혁에게 미움을 사서 죽음을 자초했다. 동혁도 김대이와 박용구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너희들이 학수 등을 데리고 블루산장으로 한 번 가봐.” “염동철이 순순히 말을 들으면 살려주고,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들이 마음대로 해.” “예, 형님!” 김대이와 박용구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현우상의 시체를 가지고 신나게 떠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초라하게 되돌아왔다. “형님, 저희의 무능을 용서하세요!” 김대이와 박용구는 창백한 얼굴로 동혁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이 모습을 보고 동혁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이 이 두 사람에 의해 망쳐졌다는 것을 알았다. “말해봐, 어떻게 된 거야?” 동혁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는 않았다. “형님, 저희가 염동철 그 개X식의 함정에 걸렸어요.”김대이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다. 김대이와 박용구가 블루산장에 도착한 후 김학수 등 노병 6명에게 쳐들어가게 했다. 염동철의 부하들은 고수들이 많았지만 이미 죽은 현우
선도일이 블루산장에 쳐들 왔다는 소식에 염동철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김대이와 박용구 같은 두 바보같이 선도일을 다루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부하들을 버리고 백세종과 함께 블루산장을 탈출했다. 그렇게 염동철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덕분에 김대이와 박용구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허둥지둥 블루산장을 나온 그들은 가장 먼저 돌아와 동혁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염동철이 자신의 입으로 장해조를 독살했다고 고백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뜻밖의 흥미가 생겼다. “그러니까 천기독을 염동철이 만들었다는 말이지?” 천기독은 일반 약사가 제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오래된 독은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일부 오래된 의약가문에서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왔다. 그래서 세상에서 천기독을 제조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손에 꼽았다. 동혁도 자신을 키워준 늙은 스승의 입에서 천기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염동철이 천기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 내력이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대이와 박용구가 그런 상대방의 손에 당했으니 억울한 일은 아니었다. “일어나.” 동혁이 손짓을 했다. 김대이와 박용구는 서로를 쳐다보면서도 감히 일어서지는 못했다. “형님, 이번에 저희가 너무 무능하게 일을 처리했어요. 돌아가면 암흑가 형제들을 동원해서 전 지역을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염동철 그 늙은 개X식을 찾아내겠습니다!” “맞아요, 형님. 저희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두 사람은 일을 잘못 처리해 동혁이 자신들에게 실망했다고 생각하고 무릎을 꿇은 채 열심히 소리쳤다. 지금 그 두 사람은 동혁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심장과 폐라도 꺼내지 못해 한스러울 따름이다. “내가 일어나라고 했잖아!” 동혁은 차갑게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두 사람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전전긍긍하며 바닥에서 일어섰다. “염동철의 일은 그냥 내버려 둬. 너희는 그의 적수가 못
조기천은 선도일이 손으로 단검을 살짝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쩌면 다음 순간 선도일이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순간 뒷골이 오싹해 왔다. 조기천은 재빨리 부인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형님. 오해십니다. 형님과 제가 회장님을 모신 세월이 얼마입니까? 제가 얼마나 회장님께 충성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결탁하여 회장님께 해를 가할 수 있습니까?” “흥, 하긴 넌 내부자가 되고 싶어도 그럴 배짱도 없고 머리도 없지.” 선도일은 콧방귀를 뀌며 단검을 뽑지 않고 조기천을 무시했다. 조기천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선도일의 말을 듣고 난처해했다. 그의 말에 상처를 받기보다는 심한 모욕을 느꼈다. ‘형님은 그냥 내가 맘에 안 드시는 것 같군.’ “네, 형님 말이 맞아요, 맞아! 하하!” 조기천은 화가 났지만 웃었고, 감히 선도일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선도일은 조기천에게서 눈을 돌려 무덤덤하고 무정한 눈빛으로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천천히 살피며 말했다. “강오맹에 내부자가 있어. 아주 확실해!”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놈들이 몇 명이든 다 잡아내서 죽여버릴 거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선도일은 시선을 돌려 장해조의 시체가 담긴 관을 손을 만지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 그는 일부러 여러 사람들 앞에서 크게 경고를 날려 혹시 자리에 있을지 모르는 내부자를 놀라게 했다. 뒤에서 나천일의 말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마음속에 켕기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나서서 죄를 청하세요. 괜히 우리에게 잡힐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요. 내부자의 말로가 어떤지 다 알고 있잖아요!” 말을 마친 나천일은 장해조의 관 앞으로 가서 공손하게 향을 올렸다. “아버지, 맹세코 강오그룹 내부자를 잡아내 아버지의 복수를 할게요. 그전까지는 결코 강오그룹을 맡지 않겠습니다!” 나천일은 지금 강오그룹의 권력을 장악했고, 그룹의 모든 일은 그가 관리하고 있었다. 사석에서는 이
“그래, 고마워.” 세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천기는 바로 자신의 차를 몰고 왔는데, N도 번호판의 마이바흐였다. 그가 직접 내려서 세화에게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세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뒷자리에 앉으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조수석에 앉았다. 마이바흐는 빠르게 저택을 떠났다. 호숫가의 버드나무 뒤. 동혁은 마이바흐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방금 세화와 백천기가 문 앞에서 있을 때부터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이 선생님, 백천기의 아버지는 N도 군부 부지휘관입니다. 오늘 선생님이 구치소에 끌려간 후, 백천기가 아버지를 통해 강오그룹에 말을 전해 진씨 가문에 대한 복수를 멈추게 했습니다.” 조동래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보고했다. “백천기, 넌 우리 집 일에 참견할 권한이 없어!” 동혁이 차갑게 말했다. 백천기의 마음은 점심에 난정호텔 룸에 있을 때 이미 다 드러났다. 동혁은 세화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혁은 지금 화가 너무도 났다. “갑시다.” 동혁은 약간 의기소침해하며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바로 그때 앞 호숫가에서 한 일행이 걸어왔다. 저녁을 먹고 호수를 산책하러 나온 진창하 부부, 그리고 세화의 이모 류혜연 가족이다. ‘장현수와 장현도도 있는데 천화는 어디 갔지?’ “이동혁, 네가 왜 여기 있어? 풀려난 거야?” 모두가 동혁을 보고 놀랐다. 이때 장현도는 동혁의 뒤에 경찰복을 입은 조동래가 뒤따르는 것을 보고 손뼉을 쳤다. “아, 알겠어요! 뉴스에서 범죄자를 잡으면, 경찰이 범죄자와 함께 범죄현장에 다시 와서 범행과정을 살피잖아요.” 류혜진이 이 말을 듣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조 경감님, 저희 집은 범죄 현장이 아니에요. 이 범죄자는 강오그룹으로 데려가야죠!” “류 여사님, 이 선생님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아주 억울하게...” 조동래는 당연히 동혁을 변호
“결혼을 되돌리긴 무슨?” “동혁이 넌 우리 집을 이 꼴로 만들고도 아직 부족해?” “네가 우리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이후로 우리 집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입이 있으면 한번 말해봐!” “넌 불행을 몰고 다니는 놈이야! 네 놈이 화근인데 무슨 결혼을 회복하겠다고, 네게 그럴 낯짝이나 있어? 썩 꺼져!” 류혜진은 동혁을 그저 증오하며 쳐다보았다. 조동래가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달려들어 동혁의 뺨을 몇 대 때였을 것이다. “경감님, 가시죠.” 동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 옆집인 설전룡의 저택으로 잠시 가려고 했다. 어쨌든 세화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동혁은 절대 세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빨리 꺼져버려, 다시는 하늘 거울 저택에 발을 들여놓지 마!” 류혜진은 여전히 화가 나 동혁의 뒷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여보, 그만해.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동혁이가 당신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어제 나쁜 놈들이 당신과 천화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했을 때도 동혁이가 도와줬잖아.” “내가 보기에 동혁이는 남에게 속아서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거 같아.” 보다 못해 휠체어에 앉은 진창하가 말했다. 류혜진은 어제 일을 떠올리며 머쓱해했다. 그녀는 여전히 화가 나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까 누가 장 회장님을 죽이라고 했어? 그런 일을 하기 전에 우리 가족 생각은 왜 안 하냐고!” “어쨌든 난 늘 세화를 저 놈과 헤어지게 하고 싶었어! 마침 이번 기회에 결혼도 잘 정리했고, 세화도 아무 말없잖아.” 류혜연은 이 말을 듣고 반색을 하며 재빨리 말했다. “언니 말이 맞아요. 그리고 천기가 세화에게 푹 빠진 걸 보세요.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그 둘이 함께 할 수만 있다면 평판 나쁜 살인범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요?” “아이고, 나도 천기와 세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세화가 한 번 결혼했었던 것 때문에 그 집에서 받아주지 않을 까봐 걱정이야.” 류혜진은 한숨을 쉬었는데 백천기의 집안을 생각하니 열등감을 느꼈
세화는 천미의 얼굴을 쳐다보며 불안해했다. 그녀는 천미가 지금 막 아버지를 여의고 동혁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말 때문에 언니가 더 화날 수 도 있어.’ 세화는 가장 좋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밝혀서 동혁이 정말 누명을 썼는지 아닌지 분명히 확인하고도 싶었다. 걱정과는 달리 천미는 화를 내지 않고 세화를 쳐다보며 물었다. “조사 끝에 정말 이동혁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면?” 세화는 이를 가볍게 물고 말했다. “그럼 나도 순순히 받아들일 거야. 동혁 씨도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해.” “좋아, 그럼 우리가 한번 알아보자.” 천미의 말은 세화를 의외로 놀라게 했는데, 천미가 이렇게 흔쾌히 자신의 제안을 승낙할 줄은 몰랐다. “사실 나도 상황이 좀 진정되고 나니 아버지의 죽음이 좀 수상한 거 같았어.” 천미는 담담하게 설명하며 선글라스를 다시 쓰고 차를 몰고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미가 세화를 태운 차는 고속도로 입구에 도착했다. 세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언니,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세화는 천미를 절대적인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미가 자신을 H시에서 데리고 나가려는 것에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둘의 능력으로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기 힘들지 않겠어? R시에 가서 우리를 도와 조사할 사람을 찾으려고.” R시는 H시 동쪽 옆에 있는 도시이다. 천미가 말한 그 사람의 이름은 백효성, R시 암흑가 정보상이다. 이 사람은 수완이 매우 뛰어나 암흑가 정보망을 구축해 N도의 각 도시 상황을 상세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N도 전역의 암흑가에서 그는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N도 전체에서 그가 입수할 수 없는 정보가 없을 정도였다. 위로는 명문가의 사적인 비밀, 아래로는 상인들 간의 소식까지 그가 원하기만 하면 모두 쉽게 알 수 있었다.한 시간도 안 돼 둘은 고속도로에서 내려 R시 시내로 들어섰다. 곧 그들은 분주하게 돌아가는 한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내 말이 틀렸어? 이게 다 저 이동혁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누나는 괜히 엮인 거고. 그런데도 계속 이동혁 편을 들겠다는 거야?” 현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동혁을 쏘아보았다. “이 찌질한 놈이 어떻게 했는지 봐봐. 그저 뒤에 숨어서 끽소리도 못하고 있잖아.” “누나는 이런 인간을 그렇게 감싸주고 싶어?” 현소와 현수 남매가 말다툼을 벌이자 지켜보던 배경문 등이 또 한바탕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주 쇼를 해라. 처남은 매형을 넘긴다고 하고 그 누나는 형부를 감싸고.” “그런데 저 형부라는 인간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맞는구먼.” “하하, 저 데릴사위 놈이 겁에 질려서 그런 거겠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혁을 또 비아냥거렸다. “그만, 입 닥쳐.” 왕범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람들의 말을 멈추게 하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현소를 응시했다. “봤지? 이런 인간이 바로 네가 그렇게 보호하고 싶은 형부야. 놈에 비하면 나 왕범현이 훨씬 남자답지 않아?” “내가 다시 네게 내 정식 여자친구가 될 기회를 줄게. 그러면 앞으로 H시에서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하하하.” 왕범현은 거만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도 이런 심리적 설득으로 많은 순진한 여자들을 사로잡았었다. 현소는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꿈 깨요. 난 죽어도 당신의 여자친구는 되지 않을 거니까.” 왕범현은 웃음소리를 뚝 그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할 수 없네. 네가 정말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릴 수 있는지 한번 봐주지.” 왕범현이 바로 현소에게 다가갔다. 현수가 재차 말리려 했다. “스승님, 이 제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꺼져!” 왕범현은 발로 현수를 차서 바닥에 쓰러뜨렸고 현수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현소야, 날 받아줘. 네게 오늘 좋은 밤을 약속할게. 하하하.” 다음 순간 왕범현이 현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려고 했
현수린의 말을 들은 현소의 작은 얼굴이 분노로 붉게 상기되었다. 그녀는 왕범현이 정말 그런 음흉한 속셈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까 형부를 괴롭히고 그 기회에 나를 자기와 잠자리하게 하겠다고? 그런 천한 여자들이나 하는 일을 내게 하라고 하는 거야?’ “흥, 그런 징그러운 일을 어떻게 해요?” 현소는 현수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 당신 같이 싸구려가 아니에요. 목적을 위해서 쉽게 남자와 잠자리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요.” 현소의 말은 현수린을 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수린의 화장을 한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고하게 순결을 고집하다니, 그럼 네 형부 팔다리가 부러지는 수밖에 더 있겠어?” 현수린이 비웃으며 말했다. “겉으로는 자기 형부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이익이 걸리니까 역시 뒤로 물러나는 군.” 현수린만큼 말주변이 좋지 않은 현소는 전혀 그녀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동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형부!” 현소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저 여자 말은 신경 쓸 거 없어. 넌 형부인 나를 생각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동혁은 현소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를 생각해 준다는 핑계로 자신의 깨끗한 몸을 가져다가 망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그리고 누군가가 널 그렇게 만들고 싶은 이유는 그 사람의 몸이 이미 더러워졌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까지 끌어들여 자신처럼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 “한마디로 저 여자는 단지 너를 질투해서 그러는 거야.” “응응, 형부 말이 맞아요.”현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 안심했다. 동혁은 현수린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동혁의 말을 들은 그녀는 화가 나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현수린이 고개를 돌려 왕범현에게 소리쳤다. “범현이 오빠, 저 인간들에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할 필요 없잖아요? 그냥 바로 손을 봐주세요. 그리고 현소, 저년도 그저 순
“아래층에서 술을 마신다고? 알았어.” 오반석이 몇 마디를 하고서 전화를 끊고 왕범현에게 말했다. “아래층에서 친구 몇 명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좀 내려가야 할거 같아.” “왕 사장이 나 대신에 고생 좀 해줘. 나중에 이번 일은 내가 후하게 갚아줄게.” 말을 마친 오반석은 동혁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왕 사장의 솜씨를 본 적이 있지. 역시 용비무술학교 교장 왕용비의 아들답게 깡패 몇 명을 상대하는 게 아주 우스웠어.’ ‘이동혁, 저놈이 상대가 될 리 없지.’ “범현이 형, 빨리 손 좀 봐줘요. 일단 저 데릴사위 놈 무릎부터 꿇려 놓고 보자고요.” “맞아요. 저흰 아까부터 저 쓸모없는 인간이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어요.” 오반석이 떠나자 배경문, 현수린 등은 소란을 피우며 왕범현이 동혁을 패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을 냈다. “하하, 급할 거 없어.” 왕범현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한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놈 하나 처리하는 건, 아무 때나 상관없어. 어쨌든 저놈은 도망갈 수도 없으니까.” 전혀 아무렇지 않은 말투는 마치 동혁을 도마 위의 도살 직전의 생선과 고기로 여기는 것 같았다. 순간 모두들 멍해졌다. ‘범현이 형은 이동혁을 지금 처리하지 않고 또 뭘 하고 싶은 거지?’ “난 그전에 다른 얘기를 좀 하고 싶거든.” 왕범현은 실실 웃으며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현소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현소야, 방금 반석 도련님의 말을 너도 들었지? 나보고 네 형부를 혼내 주라네.” “그럼, 넌 뭐라 하고 싶은 말 없어?” 방금 동혁이 모든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때 오직 현소만이 동혁을 지키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눈여겨본 왕범현은 현소가 마음속에서 동혁을 의지하는 게 매우 클거라고 생각했다. 왕범현은 보자마자 현소에게 반했고 청순하고 매력적인 그녀를 차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제멋대로 날뛰는 데만 익숙해서 여자에게 구애하는 방법을 쓸 줄 몰랐다. 그저 마
“하하하.” 오반석은 아무 거리낌 없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오한민이 이씨 가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 뒤부터 오반석의 마음속에는 이씨 가문에 대한 경외감이 줄어들었다. 그는 한때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던 동혁을 모욕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하.”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배경문은 경멸의 눈초리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발톱 빠진 호랑이 신세라는 거잖아요. 이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신분이 없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죠.” “어쩐지 그러니 처갓집에 기대서 사는 데릴사위 신세가 됐지.”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빈정대며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동혁에게 한바탕 모욕을 주고 나니 속이 한결 시원해진 오반석은 그제야 용건이 생각났다. 그는 혼자 술을 잔에 따른 후 천천히 말했다. “이동혁, 오늘 내가 널 만나러 온 건, 사실 우리 아버지 대신 경고를 하려는 거야.” “전에 아버지는 이씨 가문을 대신해서 네놈에게 이천성을 N도로 돌려보내고 무릎 꿇고 사죄할 3일의 시간을 주었어.” “내일이 그 마지막 날인데 아직 아무런 조처도 없는 걸 보니 한번 호되게 당하고 싶은 건가?” 여기까지 말한 오반석은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혁을 응시하며 압박했다. “아니면 우리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건가?” 다른 사람들도 오반석이 오늘 밤 동혁을 만나러 온 목적을 알게 되었다. 순식간에 동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동정으로 변했다. ‘명문가 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도련님이 이제는 이씨 가문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요구까지 받다니, 너무 비참하게 만드는 거 아니야?’ 현소도 이제야 이 일을 알게 되었고 그녀조차 동혁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왜 대답이 없지? 뭐라 말 좀 하지 그래?” 동혁이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말없는 것을 보고 오반석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동혁은 편안한 자세로 바꾸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 대신 잘 대답
이 말을 들은 오반석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순간 자신이 동혁의 앞에서 겁을 먹었음을 깨닫자 오반석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예전에 태백산장에서 동혁에게 하루에 두 번 맞은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고통이었다. 지금 동혁이 그 일을 면전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오반석의 체면이 또다시 구겨졌다. 왕범현은 이런 오반석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아, 반석 도련님이 저 데릴사위 놈에게 한번 당한 적이 있었구먼.’ ‘어쩐지 내가 도련님에게 이동혁과 무슨 원한이 있냐고 물었을 때, 대충 얼버무리며 그냥 이동혁을 혼내주라고 하더라니.’ 웃음은 그저 웃음일 뿐 왕범현은 이때 자신이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동혁이라고 했나? 죽고 싶지 않으면 자리를 보며 까불어야지.” 왕범현은 고개를 들고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석 도련님의 아버지는 리성투자회사의 부사장이야. 네놈처럼 처갓집에 기대서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가 모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당장 반석 도련님께 사과해.” “우와.” 왕범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탄성을 질렀다. 모두 오반석의 신분 배경을 듣고 놀란 것이었다 최근 3대 가문이 몰락하면서 리성투자회사가 H시에 진출해 수많은 사업들을 벌였다. 리성투자회사에서 투자한 회사는 많은 H시 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엄청난 자본의 회사인 만큼 H시의 시장 하세량조차도 눈치를 살피며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때문에 리성투자회사 부사장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치였다. “이야, 리성투자회사의 반석 도련님을 다 보네.” “오늘 반석 도련님과 이렇게 만나 술을 마시게 돼 영광이에요.” 그러자 배경문 등이 앞을 다투어 오반석에게 아부했다.여자들은 눈을 모두 초롱초롱하게 뜨고 오반석을 쳐다보았다. 여자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현수린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도련님, 아마 H시에 오
“범현 오빠가 제때에 손을 써서 이 쓸모없는 인간의 음모대로 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그래, 모두 범현 형에게 감사해야 해. 오빠가 아니었다면 저 데릴사위가 방금 미친 듯이 저 형님을 도발했으니 오늘 누군가는 반쯤 죽었을 거야.” 모두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동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깎아내렸다. 심지어 동혁이 아까 판명철 등을 제지해 그들을 구한 것조차도 동혁이 보복을 노리고 판명철을 도발한 것이라며 음모라고까지 했다. “형부, 이 언니오빠들 좀 봐요. 아주 열받아 죽겠어요.” 배경문 등의 뻔뻔스러움에 현소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고, 큰 눈에 눈물이 맺혀 촉촉하게 변했다. 동혁이 현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현소야,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일일이 화낼 필요 없어.” “약자는 보통 남을 깎아내려야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니까.” “저런 착각 속 인간들은 현실에서 언제나 패배자로 살 수밖에 없어.” “그저 파리 몇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린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해 버려.” “굳이 말을 섞어서 너까지 저런 인간들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지 말고.” 동혁의 말을 듣고 현소는 마음을 다잡았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들어 동혁을 우러러보며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닥치기 전에 잠잠한 것과 같았다. 배경문 등은 분노하여 폭발했다. “와, 저 아내집에 얹혀 살며 공짜밥이나 얻어먹는 쓸모없는 놈이, 다들 무시하는 개보다 못한 데릴사위 주제에 지금 누굴 가리켜 그딴 헛소리야?” “가소로워서. 데릴사위 놈이 자기가 정말 패배자인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패배자라니.” “가서 거울보고 자기 주제파악이나 해. 우리랑 말도 섞을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처갓집에서 미움받는 데릴사위에게 멸시를 당한 배경문 등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린 배경문 등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듣기 싫은 말로 동혁을 욕했다. 현소는 동혁 대신 상
현수는 동혁이 항상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빈정거렸다. 하지만 동혁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방금 전 동혁이 외면하고 방관하면서 다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덕분에 판명철 일당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판명철 등은 본래 왕범현이 자신들을 발로 차면서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그냥 참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암흑가에서 산전수전을 겪었기 때문에 급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비록 왕범현은 실력이 좋긴 하지만 일단 판명철 등이 그를 건드리기로 마음먹는다면 마지막 결말은 서로 몸에 피를 뒤집어쓰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젊고 생기발랄한 왕범현이 그 사실을 알 턱은 없었다. 그가 방금 판명철 등에게 아무런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고 손을 썼기 때문은 그 자신은 무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하, 현수 말이 맞아.” 현수의 말에 배경문 현수린 등도 냉소하며 동혁을 쳐다봤다. “방금 이 데릴사위가 자기가 무슨 두목인 척 저 판명철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니까.” “어쩐지 아까 겁 없이 나서더라니, 그게 다 범현 형님이 곧 나서실 줄 예상하고 그런 거였고만.” 한 무리의 남녀들이 모두 동혁을 향해 빈정거렸다. 방금 그들은 모두 판명철 등에게 당해 뺨을 맞았지만 동혁과 현소 남매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왕범현의 사람들이 매우 창피함을 느꼈다. 어쨌든 현수는 그들과 같은 편이었고 현소는 왕범현이 좋아하는 여자여서 뭐라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동혁에게 모든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 나름 구겨진 자존심을 찾을 수 있었다. 조금 화가 난 동혁의 눈빛이 다소 냉랭하게 변했다. 하지만 동혁은 그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저런 철부지들을 상대한다고 굳이 내가 나서서 힘 뺄 필요는 없지.’ 그러나 동혁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수록 왕범현의 제자 무리는 점점 더 흥분해 말했다. 동혁을 비하할 뿐만 아니라, 그 기회를 이용해 왕범현에게 아부했다. 현소는 그들의 말을
박용구와 김대이의 처지는 암흑가 사람들에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J시 쌍살과 같은 야인에게 당하고도 목숨을 건졌다면 모두 조상의 은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왕범현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는 젊은 세대는 달랐다. 그에게 김대이는 그저 한 명의 늙은이 일뿐이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이 쌍살의 눈에 들었다면 거꾸로 쌍살을 반죽음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판명철은 왕범현의 말을 듣고 더 이상의 대꾸를 포기했다. ‘끝이야. 김 회장님도 왕범현, 이 자식을 어찌할 수 없을 거야. 골드스타필드가 오늘 이놈에 의해 발칵 뒤집히게 생겼어.’ “경문아, 이리 와봐.” 왕범현은 배경문을 곁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사나운 눈빛으로 판명철과 그 부하들을 훑어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방금 누가 네게 손을 댔는지 전부 다 가리켜봐. 내가 그놈들을 모두 무릎 꿇려서 너희에게 머리 머리 숙여 사과하게 하고 너희들이 당한 만큼 마음껏 뺨을 때리게 해 줄 테니까.” 이 말을 듣고 현수린 등은 미친 듯이 기뻐했다. ‘방금 맞아서 너무 분했는데, 이렇게 복수할 수 있게 되다니. 원수 같은 놈들을 때려주면 아주 통쾌할 거야.’ “스승님, 저 깡패 놈들 모두 손을 댔어요.” 배경문은 맞은편 깡패들을 가리키며 신이 나서 말했다. 왕범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판명철의 부하들을 째려보았다. “아직도 멍하니 뭐 하고 있어? 내 말 못 들었어?” 깡패들은 모두 자존심이 생명이라 도저히 바닥에 무릎 꿇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뺨 맞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왕범현의 정체를 알고 다소 꺼려하며 감히 어찌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이 모욕을 당하자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젠장, 모두 덤벼.” 깡패들이 모두 주먹을 쥐고 왕범현에게 돌진했다. 왕범현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가소로운 것들.” 말과 함께 과감하게 맞받아치며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왕범현은 역시 왕용비의 아들다웠다. “퍽퍽” 하는 몇 번의 둔탁한 소리와 몇 번의 비명이 들려
“범현 형님 오셨군요.” 판명철은 왕범현을 알고 있었는지 인사를 하며 물었다. “여기 몇이 형님 제자예요?” “아주 건방지던데요? 특히 저기 배경문이라고 하는 놈은 다짜고짜 내 뺨을 때려서 제가 가만둘 수가 없었어요.” 배경문은 왕범현이 판명철의 배경 때문에 자신을 다시 한번 때릴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재빨리 다가가 억울해하며 설명했다. “형님, 그게요. 현수가 자기 누나인 현소를 데려왔는데 저 형님이 오자마자 현소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해서 저희는 현소가 형님이 마음에 들어 할 여자라 막다가 충돌하게...” 왕범현은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있는 현소를 힐끗 보고는 갑자기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10대 때부터 유흥가를 배회했고 지금까지 본 미녀는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유흥가에 있는 여자들은 많이 봐서 싫증이 났다. 하지만 청순하고 귀여운 현소를 보고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왕범현의 시선이 이어서 동혁에게로 향했다. “반석 도련님, 저놈이 바로 도련님이 말한 그놈이죠?” 배경문은 거만하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왕범현이 동혁을 아는 것을 보고 바로 동혁이라는 사람이 그저 단순한 데릴사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저놈이야.” 오반석은 음흉한 눈빛으로 동혁의 몸을 한 바퀴 훑어보더니 약간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급할 거 없어. 먼저 네 일부터 처리하고 다음에 저놈을 혼내주면 돼.” 말을 마치고 오반석은 바로 옆 좌석에 앉아 구경하는 자세를 취했다. “알겠어요.” 왕범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테이블 위의 맥주 한 병을 집어 들어 판명철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퍽!” 예고 없이 들이닥친 습격에 판명철은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술병이 그의 이마에 세게 부딪혀 바로 깨져버렸다. 판명철은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네놈이 형님 대접을 해줬더니, 감히 날 쳐? 죽고 싶나 보구나? ” 얼굴에 온통 뒤덮인 핏물과 술 때문에 판명철이 유난히 흉악해 보였다. 그러나 왕범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