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을 노려보던 류혜진은 갑자기 주방으로 달려들어가 식칼을 들고 뛰쳐나왔다!“아직도 그딴 바보 같은 말을 해! 너 같은 바보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진씨 집안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거야!”“오늘 내가 너를 찔러 죽이고 말겠어!”말이 떨어지자 류혜진은 손에 든 식칼을 던졌다.“엄마! 왜 이래!”세화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진창하도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다. 류혜진이 식칼을 던질 줄은 몰랐다.식칼이 ‘휙’ 소리를 내며 다가왔지만 동혁은 두려운 기색 없이 살짝 옆으로 돌아섰다. 식칼이 문 입구에 ‘쿵’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어이구!’문밖에서 한바탕 비명이 들려왔다.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주태진이 온 것을 보았다.“태진아?! 어떻게 온 거야!”류혜진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그를 맞이했다.주태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진씨 집안에서 쫓겨났다고 들었어요. 위로해 드리려고 선물을 좀 가지고 왔어요.”가문에서 쫓겨났다는 말에 분위기는 조용하게 변했다.“태진아…… 그게…….”류혜진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난처했지만, 주태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안심하세요. 우리 아버지가 황 갑부와 친분이 좀 있어요. 제가 모두 동혁의 잘못이고, 이 집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해 달라고 했어요.”“그러면 진씨 집안에서는 자연히 여러분을 탓하지 않을 거예요.”“진짜?”류혜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좀 믿기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주태진은 오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하지만 그 전에 동혁이 얼른 세화와 이혼해야 해요.”“그건 확실해, 우리는 진작에 저 쓰레기를 쫓아내려고 했어.”류혜진은 주태진의 생각을 잘 알기에 웃음을 떠올렸고, 그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갔다.“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와, 세화야, 빨리 가서 차 한 잔 타라.”동혁과 이혼해야만 진씨 집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세화는 자기도 모르게 처량하게 웃었다.그녀는 할 수 없이 주방에 들어가 차를 끓였다.
수란 아파트단지.세화는 오늘 모처럼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치장했다.그러나 여전히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였다.“동혁 씨, 치장이 끝났으니 우리 출발해요!”세화는 웃는 얼굴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동혁이 호화로운 생일상을 주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기만 하면 그녀는 만족했다.동혁도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뻗어 세화의 작은 손을 잡으려 했지만, 류혜진에게 맞아 툭하고 떨어졌다.그녀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가득했다.“너 정말 이 바보와 포장마차 국수나 먹으려는 거야!”“태진이 쪽에서 5성급 호텔까지 다 준비해 놨어. 한 테이블에 2백만 원이나 한대.”말이 떨어지자마자 입구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류혜진이 얼굴을 펴며 재촉했다.“틀림없이 태진이가 도착했을 거야, 세화야, 빨리 가자.”아래층에 내려 가자, 아니나 다를까 흰색 양복에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을 든 주태진이 그의 마세라티 옆에 서 있었다.세화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왔다.“세화야, 생일 축하해. 이건 너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야.”말하면서 손에 든 주얼리 상자를 열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태진아, 이게…….”세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난처해했다.“아이고, 이건 태진이가 너한테 청혼하는 거야! 이 계집애가 빨리 받아들이지 않고…….”류혜진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세화를 밀고 앞으로 걸어갔다.“어머니, 제가 준비한 생일잔치에 아직 가지도 않았어요. 이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요.”동혁은 손을 뻗어 세화를 붙잡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래도 이 바보 같은 놈이? 갈 때까지 가 보자는 거지…….”류혜진은 화가 나서 되려 웃었고, 주태진은 더욱 거들떠보지도 않는 얼굴로 말했다.“좋아, 먼저 네가 준비한 생일잔치에 가 보지.”주태진은 이미 더 이상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내 차는 네 사람만 탈 수 있는데, 네가 어떻게 같이 가? 설마 공유 자전거를 타는 건 아니겠지?”“괜찮아, 동혁 씨하고 나는 택시를 타고 가면 돼.
장원 입구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다.모두의 시선이 동혁과 세화에게 집중되었다.‘세화의 생일연회?’‘그날 천룡투자그룹 회장은…….’‘그게…… 동혁이란 말이야?’진씨 가족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화란은 더 빙빙 도는 것 같았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황, 황 회장님, 잘못 아신 거 아닙니까…….”화란은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다. ‘동혁이 어떻게 천룡투자그룹 회장일 수 있어!’“닥쳐!”황지강은 손바닥으로 화란의 얼굴을 때렸다. 오랫동안 위에서 군림하던 기세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화란이 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황지강은 다시 세화에게 공손하게 말했다.“미스 진, 장원으로 가시죠.”“저는…….”세화는 긴장하고 막막해서 거기에 서서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바로 이때, 황금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천천히 장원 안에서 빠져나왔다. 황지강은 롤스로이스 앞으로 가서 직접 동혁과 세화 두 사람을 위해 차 문을 열었다.마치 시중을 드는 듯한 이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잠깐만요.”동혁은 몸을 돌려 화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목에 건 목걸이, 내 아내에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만장의 눈빛이 화란을 향한 채 예의 주시했다.“이…… 동혁,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이것은 세한씨가 내게 준 생일 선물이야!”화란의 허탈한 대답이었다.이때 동혁의 뒤를 따르던 이향군이 앞으로 나가더니, 또 다시 화란의 따귀를 호되게 갈겼다.“무모하고 멍청한 것 같으니!”“여신의 마음은, 세화 아가씨의 생일 선물이야!”“왜 네가 착용하고 있는 거지?”화란은 퉁퉁 부은 뺨을 가린 채 온몸을 떨었다.사람들 앞에서 연속으로 뺨을 두 대나 맞았는데, 이런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만나겠는가? 또 어떻게 H시의 이름난 규수가 될 수 있겠는가?그러나 그를 때린 한 명은 H시의 최고 갑부인 황지강, 다른 한 명은 보석 재벌인 이향군이라서 전혀
세화의 물음에 동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축하 선물 명단이 올라왔다.“H시 시정부의 하세량님이 조선시대 미인도 한 부를 선물했습니다…….”“소씨 가문, 오씨 가문, 정씨 가문 등 일류 가문의 가주들께서 각각 축의금 10억을 보내셨습니다…….”“고진강 국장님, 임보검 은행장님, 이향군 회장님…….”연회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보고 다시 아연실색했다.정계와 재계, 흑백의 두 세력이 모두 모여 있었다.H시의 중요한 거물이란 거물들은 모두 값비싼 선물을 준비해서 얼굴을 내밀었다!큰 소리로 호명하는 일을 맡은 표범이 침을 삼켰다. 그가 여태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호탕한 축하 선물들을 본적이 없었다.축하선물 목록을 듣고 있던 진한영은 부러워 마지 않아 했다. 화란의 질투가 드디어 폭발했다.‘이 선물들을 진씨 집안에 보내면 얼마나 좋아.’“건축자재협회 주씨 가문의 주태진 님이 2억 상당의 비취 팔찌를 선물하셨습니다.”이름을 부르던 표범은 주태진의 핼쑥한 안색을 보고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어허, 이거 미스 진이 나한테서 빚을 받아 가실 때 도와주었던 주태진 도련님 아닌가? 별고 없으시지요…….”주태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원래 주씨 가문에서는 회장 부인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그게 세화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가문의 사명을 짊어진 이상, 주태진도 염치 불구하고 보낼 수밖에 없었다.“표범…… 표범 형님, 다 오해입니다…….”“오해? 내가 오해했다고, X발!”표범이 갑자기 발을 들어 곧장 주태진의 몸을 걷어찼다!주태진은 배를 가린 채 온몸을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있었지만, 눈은 오히려 핏발이 섰다.“표범, 천룡투자그룹이 네 뒤에 있다고 아무 말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우리 아버지가 건축자재협회 회장이라는 것을 잊지 마. H시에서 누가 감히 우리 아버지 체면을 세워주지 않겠어!”“주태진, 너 정말 위세가 당당한 걸…….”이때 동혁의 눈빛은 주태진에게 떨어졌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제가 바로 천룡투자그룹의 회장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류혜진은 귀까지 빨개져서 동혁의 팔을 한사코 잡고서 놓으려 하지 않았다.천룡투자그룹 회장이 그녀의 사위라면, 그럼 그녀는 H시에서 가장 높으신 귀부인이 되는 게 아닌가?!‘나중에 예전의 절친들과 만날 때 얼마나 체면이 설까?’이전에 그녀를 무시했던 옛 절친들이, 이제는 아마 모두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고 할 것이다.진 노인은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축하 선물을 보고, 흥분을 억누를 수 없어 술잔을 들고 다가가서 말했다.“세화야, 우리 진성그룹은 지금 자금 운행에 문제가 좀 있어.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좀 나눠줄 수 있겠니? 집안을 위해 공헌할 수 있겠어?”이 말을 듣자 류혜진은 시큰둥했다.“아버님, 저는 우리가 이미 진씨 가문에서 쫓겨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우리가 가문에 무슨 공헌을 해야 합니까?”진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그건 농담이야. 우리는 한 가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내일! 내일 내가 너희의 성대한 복귀식을 거행해 주마.”동혁이 말했다.“할아버지, 세화의 회사가 아직 화란의 손에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요?”“돌려 줄게! 내일 청풍공사를 세화에게 돌려주겠어.”“가문의 후계자는요?”“그것도 당연히 세화가 되어야지. 앞으로 세화가 진성그룹을 접수해서 관리할 거야.”진 노인은 계속 멋쩍게 웃었다.이 말을 들은 진한강의 가족은 안절부절못했다. 젓가락을 쥔 화란의 손이 떨렸다.“천룡투자그룹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바로 이때 기개가 남다른 사람들이 당당하게 들어왔다.짙은 화장을 한 첫 여자가 나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하늘저택 단지, 백억 원 상당의 스카이뷰 저택 한 채…….”“약간의 보석 장신구입니다…….”고급 액세서리를 하나씩 들고 오는 것을 보며, 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모두 부러워하며 세화를 바라보았다.“세화 아가씨, 이것은 당신의 선물입니다. 생일을 축하드립니다…….”리더인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음 순간 얼
“마케팅 책임자 말이, 이동혁을 전혀 모른답니다.”‘서……설마 동혁이 회장을 사칭하고 있다는 말이야?’류혜진은 가슴이 떨리고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상실감을 느꼈다.세화는 동혁이 왜 회장을 사칭했는지 몰라서, 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축하 선물은 확실히 진세화 씨 것이 맞습니다.”“구체적으로 어떤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이것들은 모두 회장님이 보내신 축하선물이 확실합니다. 진세화 아가씨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마음속으로 질투가 더욱 심해졌다.‘세화를 발 밑에 밟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회장이 그녀에게 반했어.’‘하지만 이렇게 보니, 동혁 이 인간 머리에는 잘난 척하는 걸로 꽉 차 있는 거야.’서경하는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동혁을 훑어보았다.동혁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천룡투자그룹을 수하들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다. 그룹 직원들이 그를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세화는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동혁 씨,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예요?”동혁은 몸을 돌려 세화에게 설명했다.“여보, 당신은 나를 믿어요. 내가 정말 회장이에요.”“됐어요!”세화는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동혁 씨,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당신이 정말 회장이라면, 나는 정말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곰곰이 생각해 보니, 만약 동혁이 천룡투자그룹 회장이라면, 누가 그를 집 앞에 던졌을까?세화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동혁은 몰래 한숨을 쉬며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그래, 사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임무를 수행하면서 회장을 구한 적이 있어. 그래서 이번에 나에게 은혜를 갚는 거야.”세화는 그제야 깨달았다.“그렇구나.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큰 생일파티를 열고 그 은혜를 다 갚은 셈이야?”동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장님처럼 큰 인물은, 앞으로 방해하지 말아요. 안 그러면, 당신이 좋고 나쁨을 모르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만약 그를 화나게 하면 문제가 커질 거예요.”동
말을 마친 서경하는 축하 선물만 남긴 채 급히 떠났다.사람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생일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비록 이동혁이 회장은 아니지만, 회장을 알고 있으니 다리를 놓아줄 수도 있겠지!’그래서, 세화 일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끊임없이 아부를 받았다.류혜진과 진창하는 흥분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여러 해가 지나고, 그들 일가는 마침내 진씨 집안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게 되었다.진한영은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세화야, 회장이 동혁에게 신세를 졌다니까 회장에게 말해서 진씨 가문에 투자를 좀 하게 해 주렴.”“많은 것은 필요 없고, 한 1,2백억 정도만 되면 틀림없이 부담이 많이 줄어들 거야.”“할아버지…… 그게…….”세화는 좀 난처했다.“왜? 싫어? 진씨 가족이면서 이런 일도 도와주고 싶지 않아?” 진 영감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할아버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번 생일에 별장까지 선물해서 아무리 큰 은혜라도 이미 다 갚은 거예요. 다시 투자하라고 하면 회장은 내가 바보인 줄 알 거예요.”진 영감이 낡은 기술을 다시 시전하는 것을 보고, 동혁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투자는 물론 할 수 있어. 하지만 세화에게 투자하는 것이지, 진씨 집안에는 한 푼도 줄 수 없어.’동혁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많은 손님들이 그 말을 듣고는 흥미가 급감하여 자기들끼리 교류하기 시작했다.“흥! 쓸모없는 물건 같으니, 생일을 위해 그 정도 인심을 썼는데, 투자로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이왕 이렇게 된 이상, ‘하늘의 저택’ 그 별장은 나에게 넘겨라.”진한영이 늙은 얼굴을 완전히 끌어내렸다.“이 할아버지에게 효도해. 우리 집안이 이사하게!”화란과 태휘도 두 눈이 번쩍 뜨였다.진씨 가족들이 잇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저택’에 누가 눈독을 들이지 않겠는가?세화 일가의 안색이 모두 좋지 않았다. 어르신의 이런 모습이 너무 보기 싫은 것이다.동혁은 진 노인을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잊지 마세요. 이 별장은 회장이
“이 선생님, 천룡투자그룹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부인이 믿기는 확실히 어려울 겁니다. 그게 정상이지요…….”“차라리 이렇게 하지요. 건축자재협회가 해체되었는데 그 이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회사를 구성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이 회장 직을 맡는 것이 어떻습니까.”“비록 이 선생의 신분하고 어울리지는 않지만, 공적인 지위가 있으면 많은 것을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동혁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천룡투자그룹이 출자하고, 앞의 이사들이 참여하도록 하지요. 이 새로운 회사는 천룡투자그룹이 지배하는 구조로 하고, 성세그룹이라고 하겠습니다!”황지강은 듣자마자 크게 기뻐했다. 이렇게 되면 원래 건축자재협회의 구성원들은 천룡투자그룹의 덕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동혁은 황지강을 보며 말했다.“저는 이름만 걸어 놓고, 황 선생님이 사장 자리를 맡아 주시면 어떻겠습니까?”“제가 바라던 바입니다!”황지강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생일파티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건축자재협회를 탈퇴한 이사들이 참여한 성세그룹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그리고 천룡투자그룹은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성세그룹을 설립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일단 설립되면, H시의 거대한 세력이 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그리고 더욱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것은 회장이 베일에 싸인 젊은이고, H시의 최고 갑부 황지강이 사장직을 맡는다는 소식이었다.일시에 이 젊은 회장의 신분이 수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저녁에 세화는 하정훈의 전화를 받았다.그러나 약속장소는 주택건설국의 청사가 아니었다.하정훈 개인의 비즈니스 클럽이었다.플래티넘 클럽 2층의 한 룸이다.하정훈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하나씩 보고 있다.동영상의 내용은 상당히 강렬했다.그 안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자신과 다른 여러 여자들이었다.장소는 모두 이 방이었다.이 동영상들은 모두 그가 이전에 다른 여자들과 함께 찍은 걸작들이다.이때 그가 감상
“지성이가 이렇게 잘 준비했다니 그럼 난 안심해도 되겠어. 너희들 안전에 주의하고 아저씨는 먼저 갈게. 동혁이 넌 현소하고 친구들을 잘 돌봐.” 장영도는 마지막으로 동혁을 노려보고는 동혁이 뭐라 하기 전에 재빨리 차를 몰고 떠났다. ‘군부로 복귀하면 바로 윗분들을 찾아 사법부 사람에게 말 좀 잘해달라고 해야겠어. 앞으로 저 이동혁 같은 나쁜 놈은 상대하지도 말아야지.’ 날이 저물자 하지성이 말했다. “우리 먼저 체크인하고 짐 풀고서 밥 먹자.” “어, 이게 누구야? 우리 현소 후배도 태백산장에 놀러 온 거야?” 일행이 로비 밖으로 나오자마자 맞은편에서 젊은이 몇 명이 다가왔다. 모두 허세 가득한 모습으로 태백산장 직원이 뒤에서 그들의 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현소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만으로 가득한 얼굴의 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현소를 주시했다. “아, 반석 선배님.” 당황한 현소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녀의 시선은 의식적으로 동혁을 찾았는데 그가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는 것이 기억났다. 현소에게 말을 건 젊은이는 바로 오한민의 아들인 오반석이었다. 그는 예전에 현소와 같은 학교였는데 한 학년이 더 높았고 현소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현소는 예쁘고 노래와 춤에 능해서 학교에서 개최하는 문예종합공연에 자주 참가했었고 학교를 대표하여 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유명해져서 오반석의 주의를 끌었다. 오반석은 이씨 가문을 위해 일하는 자신의 아버지 오한민을 믿고 평소에 학교에서 엄청 위세를 부리고 다녔다. 항상 뒤로 사람들을 거느리며 다녔고 게다가 외부의 깡패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서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오반석은 항상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학교 앞에서 현소를 막아섰다. 그래서 힘없는 현소는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다행히 오반석이 대학에 간 후로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현소야, 체크인하고 저녁에 같이 놀자. 우리는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을 거야. 네 친구들 다 와도
하지성은 매우 예의 있게 말했다. 그러나 말투에서 동혁에 대한 무시가 느껴졌다. 장영도에게 담배 두 갑을 사다 주라고 하면서도 심부름을 하는 동혁을 위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성이 너 지금 뭐하는거야? 집에서 대우받더니 밖에서도 도련님 노릇을 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더운데 우리 형부는 덥지 않겠어? 음료수 마시고 싶으면 직접 사와.” 현소는 불쾌해하며 가장 먼저 동혁 편을 들었다. 하지성은 재벌 2세였고 집안이 꽤 부자라서 현소는 그가 도련님 노릇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성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안색이 좀 안 좋아졌다. 그는 현소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H시에 와서 현소와 함께 태백산장에 놀러 가자고 한 것도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현소가 동혁을 감싸며 하지성에게 가차 없이 화를 내자 하지성의 마음속에는 동혁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에 서진솔이 재빨리 말했다. “아이, 현소야 왜 그래? 지성이는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너무 뭐라 하지 마.” “그래 맞아. 우리는 이미 모두 차에 탔고 매형이 아직 타지 않아서 지성이가 그냥 편하게 매형에게 사 오라고 한 거야.” 주현영과 나호영도 모두 하지성을 거들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했다. 현소는 툴툴거리며 하지성을 노려보았지만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괜찮아, 마침 나도 담배 사러 가야 했는데, 가는 김에 물도 사 올게.” 동혁은 아이들과 따지기 귀찮아서 4만 원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왜 다 물이지? 난 콜라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동혁이 생수 한통을 사가지고 돌아왔을 때 서진솔이 작은 소리로 불평했다. 현소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았다. “진솔이, 너 콜라 마시고 싶으면 직접 사 와서 마셔.” 서진솔 등 몇 사람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혁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이런 사소한 심부름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그러니 집에서 매일 장모님께 야단맞지.’ 동혁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부, 안녕하세요.” “매형, 안녕하세요.” 주현영 등은 모두 현소를 따라 동혁을 형부나 매형이라고 불렀는데 태도가 아주 자유분방하면서 건성이었다. 심지어 이상한 눈빛으로 동혁을 훑어보기도 했다. 전에 현소이가 막 H시에 왔을 때 이들은 현소가 데릴사위인 자기의 형부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이후 몇 차례 연락을 하면서 동혁에 대한 현소의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는 걸 알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처음 동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동혁을 좀 얕잡아 봤다. 서진솔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형부가 운전기사로 오셨나 봐요. 감사해요. 잘 좀 부탁할게요.” “매형, 차비와 유류비는 저희가 내겠습니다.” 남학생인 하지성이 말했다. ‘저 사람이 그 데릴사위지? 현소의 사촌 언니 집에서 무시를 당하며 산다고 하던데? 장모님은 툭하면 욕설을 퍼붓고 말이야.’ 예전에 주현영은 현소와 영상 통화를 할 때 뒤쪽에서 갑자기 류혜진이 동혁을 집에서 놀고먹는다며 쫓아내겠다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현영은 이 일을 친구들에게 말했고 온라인에서 크게 떠들썩했었다. 친구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데릴사위는 정말 비참하다. 하지성이 동혁에게 차비와 기름값을 지불하겠다고 한 것에 악의는 전혀 없었다. 그는 단지 동혁을 동정했고, 그건 다른 세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동혁에게는 더 상처였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것보다 동정하는 게 더 큰 상처일 때가 있다. 동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희들은 모두 현소의 좋은 친구들이면서 내 동생 같은 얘들인데 어떻게 너희에게 돈을 받아?” 이 말에 주현영 등은 동혁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하지성이 말했다. “태백산에 72번 길이 아주 험하다고 들었어요. 피곤하실 텐데 거기다 저희 때문에 일도 못하시잖아요. 그러니 비용은 저희가 부담해야죠.” 나머지 셋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정말 괜찮다니까.”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운전하는 것도
장영도는 잠시 화를 참기로 하고 얌전히 차를 몰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때 세화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동혁과 현소가 짐을 싸서 외출하려는 것을 보고 그녀는 궁금해하며 물었다. “동혁 씨, 현소하고 어디 가?” “현소의 친구들 몇 명이 왔는데 나보고 태백산에 같이 놀러 가자고 해서.” 동혁은 아이들 몇 명과 노는 것에 흥미가 없었고 그래서 세화를 초대했다. “여보도 같이 가자. 우리 지난번에 그곳에서 지낼 때 못다 한 일도 있잖아.” 동혁이 윙크를 하며 말하자 세화의 예쁜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지난번에 세화는 태백산장에 갔을 때 화란이 약을 먹여서 밤새도록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서둘러 태백산을 내려왔다. 세화는 비록 하룻밤 동혁과 호텔에서 묵은 적은 있었지만 항상 태백산장 같은 분위기 있는 곳이 그리웠다. “난 못 가.” 세화는 동혁을 노려보더니 둘만 알아듣게 조용히 말했다. “밤에 푹 쉬어야 해. 내일 중요한 파트너와 회의가 있거든.” “할 수 없지.” 동혁은 쑥스러운 듯 코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에 그는 세화와 호텔에 묵었었다. 그는 계속 참아오다 드디어 기회를 만나 세화와 한밤중까지 침대에서 불타는 밤을 보냈다. 그 결과 다음날 세화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동혁은 세화가 그일 때문에 자신과 태백산에 가기 싫어하는 거 같아서 조금 머쓱해졌다. 세화가 말했다. “잘됐어. 마침 중요한 협력업체가 오늘 밤 태백산장에 묵을 예정이니 동혁 씨가 신경 좀 써줘.” “알았어. 그쪽 대표가 누구야?” 동혁은 놀면서 세화의 일을 도울 수 있었기에 매우 행복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화가 대답했다. “천용훈이라는 인플루언서야. 이번에 태백산장 홍보대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어. 그러니 당연히 그전에 태백산장이 어떤지 알아야 하잖아.” 예전 태백산장은 3대 가문의 손에 있을 때는 무관심으로 거의 황폐화에 가까웠었다. 각종 부대시설이 부족해 오는 손님 또한 턱없이 적었다. 세화와 최원우를 돕는 전문
“운전 경력이 수십 년 된 베테랑 운전기사라고?” 류혜연은 얼떨떨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집안에는 이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 밖에서 기사라도 불렀나?’ 류혜연은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구만. 이 집에서 우리 가족이 지내니까, 돈이 아까워 내게 생활비를 달라고 하던 사람이, 지금은 돈 낭비를 해서 대리운전기사를 불렀어?” 류혜연이 생각하기에 동혁은 자기 체면을 차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돈을 주고 대리운전기사를 부를지언정 딸의 운전기사 노릇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 “대리운전기사요? 뭐, 이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동혁은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다. 류혜연이 또다시 류혜진에게 고자질했다. “언니, 잘난 사위 좀 봐. 자기도 생활비는 안 내면서 체면 좀 세우겠다고 돈을 헤프게 쓰네.” 류혜연은 동혁에게 화가 너무 났다. 그녀는 오늘 동혁에게 현소의 운전기사를 꼭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동혁아, 빨리 대리기사 부른 거 취소해.” 류혜진이 동혁을 꼬집었다.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돈은 안 썼어요. 이 대리운전기사는 돈이 필요 없거든요.” “돈이 필요 없다고? 지금 누굴 속이려고 그래?” 류혜연은 투덜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문 앞에서 헐떡이며 뛰어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여보, 집에는 또 왜 왔어? 오늘 근무하는 날이잖아. 또 괜히 사법부 사람들에게 붙잡혀 가서 반성문을 쓰려고 그래?”바로 세화의 이모부인 장영도였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고 땀을 닦으면서 숨을 헐떡였다. “내가 사법부의 그 개X식들에게 붙잡혀서 이틀 동안 운전병으로 일하는 징계를 받았어.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여기로 와서 VIP를 태백산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VIP는? 우리 집에 오셨어?” “VIP라고? 우리 집에 VIP는 안 왔는데?” 류혜연이 류혜진 등에게 물어보니 그런 사실이
“싫은데요.” 동혁은 류혜연의 태도를 보고 너무 기가 막혔다. ‘우리 집에 눌러사는 손님이면서 뭐 이리 당당하지?’ ‘이리저리 내 트집이나 잡고, 마치 내가 무슨 자기 하인인 줄 알아?’ “동혁이, 너 그게 무슨 태도야?” 그러자 류혜연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아직 투자회사 사장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위세 부리는 거야?” “능력이 없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세화의 절친이 아니었다면 넌 여전히 항난그룹에서 운전기사로 일했을 거야.” 동혁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한마디만 말했는데 류혜연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아냥거렸다. 동혁이 류혜연을 보고 말했다. “이모님, 항난그룹에서 운전을 하면 월급이라도 있죠. 가족들에게 운전을 해준다고 저에게 무슨 이득이 있죠?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죄송해요.” 동혁은 자신이 항난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의 선입견은 무서운 법이다. ‘어차피 내가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류혜연은 화가 나서 표정을 찡그리며 동혁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 동혁이, 너 지금 가족을 위해 운전을 해줄 때에도 돈을 달라는 거야? 아주 돈귀신이 들었구나!” “친형제라도 계산은 분명히 해야죠. 이모님 가족들이 우리 집에 살면서 집세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 가스, 식비도 내지 않잖아요.” 동혁은 류혜연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류혜연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발을 구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언니, 언니가 아주 훌륭한 사위를 뒀네. 우리한테 전기, 가스 값을 달래. 좀 있으면 우리를 쫓아내겠어!” 류혜진은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동혁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동혁이 너 아주 간이 부었구나? 네가 집에서 놀고먹을 때 내가 언제 너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있어? 감히 내 여동생 가족에게 생활비를 요구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너 아주 길바닥에 쫓겨나봐야 정신을 차릴래?” 류혜진이 동혁에게 욕설을 퍼붓자 류혜연은 득의양양하게 팔
리성투자회사. 부사장실. 정장 차림의 오한민이 가죽 소파에 앉아 고급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오반석이 들어왔다. 오반석은 20대 초반으로 얼굴에는 거만함이 가득했다. “아버지, 쓸모없는 데릴사위 놈에게 왜 사흘이나 주셨어요?” 오반석이 오한민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아 고급 담배를 뽑아 물자 오한민의 여비서가 알아서 다가와 불을 붙여주었다. “제가 보기엔 하루면 충분해요. 제가 직접 몇 사람 데리고 가서 조금 겁만 줘도 될걸요? 불복하면 면전에서 그놈의 아내를 좀 괴롭혀주면 저항을 포기하겠죠.” 오한민이 말을 듣고 표정을 굳혔다. “괜히 일 키우지 마.” “제가 틀렸어요?” 오반석이 다시 말했다. “이씨 가문에서 사흘의 시간을 허락했어요. 그럼 우리는 이씨 가문을 도와 되도록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좋잖아요.” 오반석이 철이 들 때부터 오한민은 이씨 가문의 일을 했다. 그 덕분에 오반석은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이천성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의 심부름을 해왔다. “네놈이 뭘 아는데?” 오한민은 오반석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이씨 가문이 준 사흘을 활용해서 이참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만약 이천성이 지금 풀려난다면 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단 말이야.” 대화 도중 오한민은 바로 조금 전에 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소식이 생각났다. 동혁이 곧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을 맡게 된다는 것이었다. 오한민은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원화투자회사를 손에 넣을 필요성을 느꼈다. “아버지, 천성 도련님이 구치소에서 화장실 바닥을 닦고 있어요. 빨리 꺼내주지 않고 뭐 하려고요?”오반석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맙소사, 설마 아버지 이씨 가문을 떠나 독립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오반석의 눈에는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아버지가 원래 이렇게 배짱이 있었나?’ “아버지, 미쳤어요?” 오한민은 오반석을 노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씨 가문을 위해 난 오랫동안 많은 일을 했어.
“하지만 외부에서는 곽 도지사가 지금 하세량을 매우 아껴서 앞으로 위로 올라갈 수 있게 고급 연수기회를 줬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하 시장의 기세가 아주 강해서 지금 우리가 그에게 보복하려 한다면 그건 도지사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도 있어. 방법이 너무 없군.” 이씨 가문 본가 거실, 이연이 골치 아픈 듯이 말했다. ‘이씨 가문의 사람의 영향력으로 하동해가 시장이 되었고 하마터면 하세량을 죽일 뻔까지 했어.’ ‘그러니 지금 그의 복수는 명분이 있어.’ ‘게다가 천성이가 도지사에게 선물을 준 것도 사실인 데다 바로 현행범으로 잡혔으니 더더욱 문제고.’ “형님,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하세량이 이동혁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지 않았습니까? 그럼 이동혁, 그 개X식에게 직접 구치소에 가서 천성이를 풀어주라고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하 시장이 천성이를 놓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이심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래, 하 시장을 어찌할 수 없다면, 이동혁을 이용하면 되는 거야.” 이연은 웃으며 노현식을 바라보았다. “오 이사를 시켜서 이동혁에게 말을 전하라고 해. 3일의 시간을 줄 테니 직접 가서 천성이를 데려와 공손히 이씨 가문으로 돌려보내라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지게 될 거라고 말이야.” 오한민은 리성투자회사의 최고 경영자로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이씨 가문을 위해 다년간 일하며 이연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오한민은 N도 재계에서 아주 유명한 투자자이다. 리성투자회사는 이천기, 이천성 형제가 차례로 사장을 맡았지만 이들은 계약서에 사인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투자회사의 다른 구체적인 업무는 모두 우한민이 책임지고 있었다. “천성이를 이씨 가문으로 돌려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천성이가 도지사에게 선물을 준 것도 모두 이동혁 때문이니 그놈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 이심이 한마디 꺼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천성이 지금 겪는 나쁜 일들을 모두 동혁의 탓으로 돌렸다.그러자 이연 역시 분노하며 맞장구를 쳤다.
쾅! 이연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더니 벌떡 일어섰다. “우리 이씨 가문이 H시를 떠난 지 고작 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나 이연의 아들을 쳐? 아주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그의 두 눈은 분노의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고 말투는 아주 살벌했다. 노현식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회장님, 천성 도련님이 맞았을 뿐 아니라 또...” “그리고 또?” 분노한 이연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차가워졌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걸레로 화장실을 닦게 했답니다. 바닥에 오줌 한 방울 떨어진 것 없이 반질반질하게 닦으라고요.” “도련님께서는 울면서 바닥을 닦았고 식사도 안 드셨습니다.” 이천성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다. 금지옥엽이라 한 번도 고생을 한 적이 없었다. 이연은 자신의 막내아들이 구치소에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미어졌다. “회장님, 부디 천성 도련님을 꼭 구해시고 복수를 해주셔야 합니다.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우리 이씨 가문 전체의 명예가 손상됩니다.” 노현식은 눈시울을 붉히고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이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한 이연의 심복으로 밖에서도 각종 거물들의 아첨을 받았다. 그래서 만약 이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이 된다면 그 역시 함께 체면을 구기게 되어 있었다. 이연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심아, 당장 하세량한테 전화해서 오늘 밤 당장 천성이를 돌려보내라고 해라. 구치소에 있는 그 깡패 놈들도 처리하고.” 이심은 두말없이 즉시 전화를 하러 나갔다. 그는 이천성이 당한 일로 이연이 자신에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웠다. 잠시 후 이심은 좋지 않은 안색으로 다시 들어왔다. “형님, 하세량이 풀어줄 수 없다고 하는데요? 이동혁이 풀어주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구치소의 일은 대체 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이동혁, 그놈이 천성이를 골탕 먹이라고 시켰다고 했습니다.” “그 개X식이?”이연은 화가 나서 책상을 걷어차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성질을 부렸다. “애당초 내가 너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