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받았다.“이 선생님, 우리 은행 카드가 맞습니까? 어째서 이런 블랙카드를 본 적이 없지요?”일을 처리한 화란과 방세한이 나가다가 직원의 말을 듣고는, 동혁의 손에 있는 은행카드를 힐끗 보았다.“하하, 이동혁 저 병신, 가짜 카드로 업무를 봐. 웃겨 죽겠어!”화란이 웃자, 방세한도 경멸하며 오 과장에게 말했다.“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빨리 저 X끼를 쫓아내요!”“아이고, 네,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오과장의 눈빛이 그 검은 카드에 떨어지자, 말을 뚝 그쳤다.그녀는 안색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앞으로 나가 동혁의 손에서 검은 카드를 빼앗았다.“김미경 씨, 지켜보고 있어. 내가 올라가서 지점장님의 지시를 듣고 올게!”오 과장은 카드를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층으로 뛰어서 올라갔다.화란이 다가왔다.“세화야, 가짜 카드로 은행을 속이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 너희 둘은 정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거야!”세화는 놀라서, 얼굴이 파래지고 손발이 차가워졌다.화란은 아직도 그곳에서 고소해하고 있다.“자, 이제는 밥을 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 국가가 너희들 먹을 것을 관리해 줄 거야!”말이 떨어지자마자 오 과장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안경 쓴 중년 남자가 뒤따랐는데, 바로 지점의 유 지점장이었다.세화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유 지점장님, 그 가짜 카드는 우리가 잘못 꺼낸 것입니다. 우리는 가란은행에서 카드를 만들었는데…….”“가짜 카드? 누가 이걸 가짜 카드라고 했습니까?”유 지점장은 손에 든 블랙카드를 들고 엄숙하게 말했다.“이것은 우리 가란은행이 가장 존귀한 고객에게 발급하는 지존블랙카드입니다. 지금까지 한 장만 발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좌대월액은 200억입니다!”‘뭐야!’‘지존블랙카드?’‘당좌 대월액이 200억?’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평범한 옷을 입은 이 젊은이가 가란은행의 가장 존귀한 고객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동혁을 노려보던 류혜진은 갑자기 주방으로 달려들어가 식칼을 들고 뛰쳐나왔다!“아직도 그딴 바보 같은 말을 해! 너 같은 바보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진씨 집안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거야!”“오늘 내가 너를 찔러 죽이고 말겠어!”말이 떨어지자 류혜진은 손에 든 식칼을 던졌다.“엄마! 왜 이래!”세화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진창하도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다. 류혜진이 식칼을 던질 줄은 몰랐다.식칼이 ‘휙’ 소리를 내며 다가왔지만 동혁은 두려운 기색 없이 살짝 옆으로 돌아섰다. 식칼이 문 입구에 ‘쿵’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어이구!’문밖에서 한바탕 비명이 들려왔다.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주태진이 온 것을 보았다.“태진아?! 어떻게 온 거야!”류혜진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그를 맞이했다.주태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진씨 집안에서 쫓겨났다고 들었어요. 위로해 드리려고 선물을 좀 가지고 왔어요.”가문에서 쫓겨났다는 말에 분위기는 조용하게 변했다.“태진아…… 그게…….”류혜진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난처했지만, 주태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안심하세요. 우리 아버지가 황 갑부와 친분이 좀 있어요. 제가 모두 동혁의 잘못이고, 이 집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해 달라고 했어요.”“그러면 진씨 집안에서는 자연히 여러분을 탓하지 않을 거예요.”“진짜?”류혜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좀 믿기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주태진은 오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하지만 그 전에 동혁이 얼른 세화와 이혼해야 해요.”“그건 확실해, 우리는 진작에 저 쓰레기를 쫓아내려고 했어.”류혜진은 주태진의 생각을 잘 알기에 웃음을 떠올렸고, 그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갔다.“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와, 세화야, 빨리 가서 차 한 잔 타라.”동혁과 이혼해야만 진씨 집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세화는 자기도 모르게 처량하게 웃었다.그녀는 할 수 없이 주방에 들어가 차를 끓였다.
수란 아파트단지.세화는 오늘 모처럼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치장했다.그러나 여전히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였다.“동혁 씨, 치장이 끝났으니 우리 출발해요!”세화는 웃는 얼굴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동혁이 호화로운 생일상을 주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기만 하면 그녀는 만족했다.동혁도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뻗어 세화의 작은 손을 잡으려 했지만, 류혜진에게 맞아 툭하고 떨어졌다.그녀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가득했다.“너 정말 이 바보와 포장마차 국수나 먹으려는 거야!”“태진이 쪽에서 5성급 호텔까지 다 준비해 놨어. 한 테이블에 2백만 원이나 한대.”말이 떨어지자마자 입구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류혜진이 얼굴을 펴며 재촉했다.“틀림없이 태진이가 도착했을 거야, 세화야, 빨리 가자.”아래층에 내려 가자, 아니나 다를까 흰색 양복에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을 든 주태진이 그의 마세라티 옆에 서 있었다.세화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왔다.“세화야, 생일 축하해. 이건 너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야.”말하면서 손에 든 주얼리 상자를 열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태진아, 이게…….”세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난처해했다.“아이고, 이건 태진이가 너한테 청혼하는 거야! 이 계집애가 빨리 받아들이지 않고…….”류혜진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세화를 밀고 앞으로 걸어갔다.“어머니, 제가 준비한 생일잔치에 아직 가지도 않았어요. 이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요.”동혁은 손을 뻗어 세화를 붙잡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래도 이 바보 같은 놈이? 갈 때까지 가 보자는 거지…….”류혜진은 화가 나서 되려 웃었고, 주태진은 더욱 거들떠보지도 않는 얼굴로 말했다.“좋아, 먼저 네가 준비한 생일잔치에 가 보지.”주태진은 이미 더 이상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내 차는 네 사람만 탈 수 있는데, 네가 어떻게 같이 가? 설마 공유 자전거를 타는 건 아니겠지?”“괜찮아, 동혁 씨하고 나는 택시를 타고 가면 돼.
장원 입구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다.모두의 시선이 동혁과 세화에게 집중되었다.‘세화의 생일연회?’‘그날 천룡투자그룹 회장은…….’‘그게…… 동혁이란 말이야?’진씨 가족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화란은 더 빙빙 도는 것 같았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황, 황 회장님, 잘못 아신 거 아닙니까…….”화란은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다. ‘동혁이 어떻게 천룡투자그룹 회장일 수 있어!’“닥쳐!”황지강은 손바닥으로 화란의 얼굴을 때렸다. 오랫동안 위에서 군림하던 기세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화란이 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황지강은 다시 세화에게 공손하게 말했다.“미스 진, 장원으로 가시죠.”“저는…….”세화는 긴장하고 막막해서 거기에 서서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바로 이때, 황금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천천히 장원 안에서 빠져나왔다. 황지강은 롤스로이스 앞으로 가서 직접 동혁과 세화 두 사람을 위해 차 문을 열었다.마치 시중을 드는 듯한 이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잠깐만요.”동혁은 몸을 돌려 화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목에 건 목걸이, 내 아내에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만장의 눈빛이 화란을 향한 채 예의 주시했다.“이…… 동혁,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이것은 세한씨가 내게 준 생일 선물이야!”화란의 허탈한 대답이었다.이때 동혁의 뒤를 따르던 이향군이 앞으로 나가더니, 또 다시 화란의 따귀를 호되게 갈겼다.“무모하고 멍청한 것 같으니!”“여신의 마음은, 세화 아가씨의 생일 선물이야!”“왜 네가 착용하고 있는 거지?”화란은 퉁퉁 부은 뺨을 가린 채 온몸을 떨었다.사람들 앞에서 연속으로 뺨을 두 대나 맞았는데, 이런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만나겠는가? 또 어떻게 H시의 이름난 규수가 될 수 있겠는가?그러나 그를 때린 한 명은 H시의 최고 갑부인 황지강, 다른 한 명은 보석 재벌인 이향군이라서 전혀
세화의 물음에 동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축하 선물 명단이 올라왔다.“H시 시정부의 하세량님이 조선시대 미인도 한 부를 선물했습니다…….”“소씨 가문, 오씨 가문, 정씨 가문 등 일류 가문의 가주들께서 각각 축의금 10억을 보내셨습니다…….”“고진강 국장님, 임보검 은행장님, 이향군 회장님…….”연회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보고 다시 아연실색했다.정계와 재계, 흑백의 두 세력이 모두 모여 있었다.H시의 중요한 거물이란 거물들은 모두 값비싼 선물을 준비해서 얼굴을 내밀었다!큰 소리로 호명하는 일을 맡은 표범이 침을 삼켰다. 그가 여태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호탕한 축하 선물들을 본적이 없었다.축하선물 목록을 듣고 있던 진한영은 부러워 마지 않아 했다. 화란의 질투가 드디어 폭발했다.‘이 선물들을 진씨 집안에 보내면 얼마나 좋아.’“건축자재협회 주씨 가문의 주태진 님이 2억 상당의 비취 팔찌를 선물하셨습니다.”이름을 부르던 표범은 주태진의 핼쑥한 안색을 보고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어허, 이거 미스 진이 나한테서 빚을 받아 가실 때 도와주었던 주태진 도련님 아닌가? 별고 없으시지요…….”주태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원래 주씨 가문에서는 회장 부인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그게 세화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가문의 사명을 짊어진 이상, 주태진도 염치 불구하고 보낼 수밖에 없었다.“표범…… 표범 형님, 다 오해입니다…….”“오해? 내가 오해했다고, X발!”표범이 갑자기 발을 들어 곧장 주태진의 몸을 걷어찼다!주태진은 배를 가린 채 온몸을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있었지만, 눈은 오히려 핏발이 섰다.“표범, 천룡투자그룹이 네 뒤에 있다고 아무 말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우리 아버지가 건축자재협회 회장이라는 것을 잊지 마. H시에서 누가 감히 우리 아버지 체면을 세워주지 않겠어!”“주태진, 너 정말 위세가 당당한 걸…….”이때 동혁의 눈빛은 주태진에게 떨어졌
동혁이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제가 바로 천룡투자그룹의 회장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류혜진은 귀까지 빨개져서 동혁의 팔을 한사코 잡고서 놓으려 하지 않았다.천룡투자그룹 회장이 그녀의 사위라면, 그럼 그녀는 H시에서 가장 높으신 귀부인이 되는 게 아닌가?!‘나중에 예전의 절친들과 만날 때 얼마나 체면이 설까?’이전에 그녀를 무시했던 옛 절친들이, 이제는 아마 모두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고 할 것이다.진 노인은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축하 선물을 보고, 흥분을 억누를 수 없어 술잔을 들고 다가가서 말했다.“세화야, 우리 진성그룹은 지금 자금 운행에 문제가 좀 있어.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좀 나눠줄 수 있겠니? 집안을 위해 공헌할 수 있겠어?”이 말을 듣자 류혜진은 시큰둥했다.“아버님, 저는 우리가 이미 진씨 가문에서 쫓겨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우리가 가문에 무슨 공헌을 해야 합니까?”진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그건 농담이야. 우리는 한 가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내일! 내일 내가 너희의 성대한 복귀식을 거행해 주마.”동혁이 말했다.“할아버지, 세화의 회사가 아직 화란의 손에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요?”“돌려 줄게! 내일 청풍공사를 세화에게 돌려주겠어.”“가문의 후계자는요?”“그것도 당연히 세화가 되어야지. 앞으로 세화가 진성그룹을 접수해서 관리할 거야.”진 노인은 계속 멋쩍게 웃었다.이 말을 들은 진한강의 가족은 안절부절못했다. 젓가락을 쥔 화란의 손이 떨렸다.“천룡투자그룹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바로 이때 기개가 남다른 사람들이 당당하게 들어왔다.짙은 화장을 한 첫 여자가 나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하늘저택 단지, 백억 원 상당의 스카이뷰 저택 한 채…….”“약간의 보석 장신구입니다…….”고급 액세서리를 하나씩 들고 오는 것을 보며, 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모두 부러워하며 세화를 바라보았다.“세화 아가씨, 이것은 당신의 선물입니다. 생일을 축하드립니다…….”리더인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음 순간 얼
“마케팅 책임자 말이, 이동혁을 전혀 모른답니다.”‘서……설마 동혁이 회장을 사칭하고 있다는 말이야?’류혜진은 가슴이 떨리고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상실감을 느꼈다.세화는 동혁이 왜 회장을 사칭했는지 몰라서, 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축하 선물은 확실히 진세화 씨 것이 맞습니다.”“구체적으로 어떤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이것들은 모두 회장님이 보내신 축하선물이 확실합니다. 진세화 아가씨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마음속으로 질투가 더욱 심해졌다.‘세화를 발 밑에 밟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회장이 그녀에게 반했어.’‘하지만 이렇게 보니, 동혁 이 인간 머리에는 잘난 척하는 걸로 꽉 차 있는 거야.’서경하는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동혁을 훑어보았다.동혁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천룡투자그룹을 수하들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다. 그룹 직원들이 그를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세화는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동혁 씨,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예요?”동혁은 몸을 돌려 세화에게 설명했다.“여보, 당신은 나를 믿어요. 내가 정말 회장이에요.”“됐어요!”세화는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동혁 씨,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당신이 정말 회장이라면, 나는 정말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곰곰이 생각해 보니, 만약 동혁이 천룡투자그룹 회장이라면, 누가 그를 집 앞에 던졌을까?세화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동혁은 몰래 한숨을 쉬며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그래, 사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임무를 수행하면서 회장을 구한 적이 있어. 그래서 이번에 나에게 은혜를 갚는 거야.”세화는 그제야 깨달았다.“그렇구나.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큰 생일파티를 열고 그 은혜를 다 갚은 셈이야?”동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장님처럼 큰 인물은, 앞으로 방해하지 말아요. 안 그러면, 당신이 좋고 나쁨을 모르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만약 그를 화나게 하면 문제가 커질 거예요.”동
말을 마친 서경하는 축하 선물만 남긴 채 급히 떠났다.사람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생일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비록 이동혁이 회장은 아니지만, 회장을 알고 있으니 다리를 놓아줄 수도 있겠지!’그래서, 세화 일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끊임없이 아부를 받았다.류혜진과 진창하는 흥분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여러 해가 지나고, 그들 일가는 마침내 진씨 집안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게 되었다.진한영은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세화야, 회장이 동혁에게 신세를 졌다니까 회장에게 말해서 진씨 가문에 투자를 좀 하게 해 주렴.”“많은 것은 필요 없고, 한 1,2백억 정도만 되면 틀림없이 부담이 많이 줄어들 거야.”“할아버지…… 그게…….”세화는 좀 난처했다.“왜? 싫어? 진씨 가족이면서 이런 일도 도와주고 싶지 않아?” 진 영감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할아버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번 생일에 별장까지 선물해서 아무리 큰 은혜라도 이미 다 갚은 거예요. 다시 투자하라고 하면 회장은 내가 바보인 줄 알 거예요.”진 영감이 낡은 기술을 다시 시전하는 것을 보고, 동혁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투자는 물론 할 수 있어. 하지만 세화에게 투자하는 것이지, 진씨 집안에는 한 푼도 줄 수 없어.’동혁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많은 손님들이 그 말을 듣고는 흥미가 급감하여 자기들끼리 교류하기 시작했다.“흥! 쓸모없는 물건 같으니, 생일을 위해 그 정도 인심을 썼는데, 투자로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이왕 이렇게 된 이상, ‘하늘의 저택’ 그 별장은 나에게 넘겨라.”진한영이 늙은 얼굴을 완전히 끌어내렸다.“이 할아버지에게 효도해. 우리 집안이 이사하게!”화란과 태휘도 두 눈이 번쩍 뜨였다.진씨 가족들이 잇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저택’에 누가 눈독을 들이지 않겠는가?세화 일가의 안색이 모두 좋지 않았다. 어르신의 이런 모습이 너무 보기 싫은 것이다.동혁은 진 노인을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잊지 마세요. 이 별장은 회장이
“이 사장님, 준비됐나요? 그럼 시작하죠.” 주다정은 프로였고 감독의 사인이 있자 바로 녹화 모드로 들어갔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원화투자회사의 이동혁 사장님을 모셨습니다. 이 사장님 여러분에게 자기소개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혁입니다...” 동혁은 아무도 없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텔레비전 시청자를 위한 제스처였다. 주다정이 이어서 말했다. “저희는 상식적으로 주요 대기업의 전문 경영인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매우 까다롭고 또 상당한 실무 경험도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님의 이력을 살펴보니 보기 드문 점이 하나 발견됐어요.” “원화투자회사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관련 업종에 종사한 경력이 없다는 겁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이 사장님은 그전까지 진씨 가문의 데릴사위였는데, 맞나요?” 주다정은 동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그래서 전 이 사장님이 어떻게 처갓집에 기대 살다가 갑자기 대형 투자회사의 사장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실례지만, 그런 사적인 질문은 이번 인터뷰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나요?” 동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동혁은 주다정이 나쁜 짓을 할 줄은 알았지만, 고약하게도 상대방이 본 녹화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이력을 언급할 줄 몰랐다. 주다정이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이 사장님께서 잘 모르셔서 그런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기업 자체보다는 창업자의 창업 경력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마명성, 왕일심 사장 같은 분들처럼 말이에요.” “지금 보니 이 사장님이 그 자리에 오르신 과정이 그 두 분보다 훨씬 더 전설적이고 보시는 분들에게 더 격려적일 것 같습니다.” “이러면 아마 홍보 효과도 더 클 겁니다.” 뒤에 있던 나연채와 스태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은 주다정을 쳐다보았는데, 상대방이 제시한 이유에는 빈틈이 없었다. “좋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확실히 진씨 가문의 데릴사위입니다.” “제가 원화투자회
주다정의 말에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모두 이상한 표정으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인터뷰하러 오신 분이 대단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쓸모없는 데릴사위였어?’ 한동안 모두는 동혁을 약간 경멸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정 씨, 그래도 저희 프로가 이 방송국의 메인인데, 원화투자회사가 데릴사위 따위를 보내서 인터뷰에 응하게 한 것은 너무 무례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차라리 다른 사람 보고 인터뷰하라고 할까요? 평범한 직원이라도 데릴사위 사장보다 낫겠어요.” 직원 몇 명이 연이어 말했다. 그들은 주다정이 동혁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연스럽게 그녀를 거들었다. 나연채가 동혁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동혁과 주다정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이 설사 동혁이 데릴사위라는 것을 알았더라도 이렇게 대놓고 다른 사람 앞에서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다정의 태도가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다정 씨, 이 사장님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이분은 우리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입니다.” “게다가 저희 장 부사장님께서 앞으로 회사의 얼굴로 홍보하는 일을 모두 사장님께 맡기셨습니다.” 주다정은 나연채가 장가연의 비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동혁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는 어젯밤 대니얼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역시 이동혁은 인맥으로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그저 이름뿐이야.’ 동혁에게 복수해서 망하게 만들 계획이 순식간에 주다정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주다정이 웃으며 말했다. “나 실장님의 말씀이 맞아요. 이 사장님은 아내 집에 기대 사는 데릴사위가 맞아요.” “하지만 원화투자회사는 자금이 풍부하니 앞으로 H시에 기여를 많이 하는 회사가 될 거예요.” “당연히 인터뷰는 해야 하고, 인터뷰할 사람도 바꿀 필요 없어요.” 나연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아무런 사고 없이 부사장의 지시를 완수하고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날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주다정의
“전 시청 옆 호텔에 있어요. 이리로 와 주시겠어요? ” 동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피스룩을 입은 젊은 여자가 차를 몰고 도착했다. 동혁은 임창호, 조동래 등과 헤어지고 장가연의 비서를 만났다. “성함이 뭐죠? 제가 회사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네, 제 이름은 나연채예요. 강오그룹 본사에서 부사장님과 함께 왔습니다.” 나연채는 마치 그녀가 강오그룹에서 파견돼서 한 단계 높은 신분인 것처럼 거만한 말투로 대답했다. 동혁의 옅은 술 냄새를 맡자 나연채는 불만스러워 은근히 입을 삐죽거렸다. ‘역시 낙하산으로 사장에 앉은 사람답네. 점심시간에 시청에 와서 고위 공무원들과 술이나 마시며 연줄을 만들려고 하다니.’ 아까 전 동혁과 임창호 등이 헤어질 때 그녀는 한눈에 그들의 신분을 알아봤다. 동혁의 대외적인 신분은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었기 때문에 나연채는 동혁과 고위 공무원의 만남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동혁이 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이 신분을 이용해 사방으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사람을 그녀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봐왔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갈까요?” 동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잠시 쉬었다. 그는 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 없었기에 나연채에게 데리러 오라고 한 것이었다. “이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곧 H시 방송국에 도착했고 나연채는 차에서 내린 후 아무 말 없이 앞서 걸어갔다. 그녀는 동혁이 뒤따라오든 말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나연채는 동혁을 데리고 익숙하게 방송국 9층의 스튜디오로 갔다. 안에는 이미 많은 제작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지적이고 예쁜 여자가 대본을 들고 앉아 있는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을 수정해 주고 있었다. 동혁은 그 여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어젯밤에 본 적이 있었고, 동혁이 뺨도 때렸었다. ‘그 막돼먹은 개 같은 주다정이잖아?’ 나연채가 주다정에게 다가갔다. “다정 씨, 안녕
동혁이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르자 장가연은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동혁을 더욱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다. “자, 오늘 회의는 여기입니다. 이만 끝내겠습니다.” 장가연은 손뼉을 치며 동혁이 할 말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바로 회의의 끝을 알렸다. ‘뭐야? 자기가 무슨 위안투자회사의 사장이야?’ 장가연이 떠나자마자 자리에 있던 임원들이 동혁을 둘러쌌다. “이 사장님, 저 천일환, 앞으로 회사에서 사장님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르겠습니다. 사장님의 결정에 절대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맞습니다. 이 사장님. 저희 모두 사장님의 지시만을 들을 겁니다. 장 부사장이 사장님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 같던데, 저희는 그녀의 지시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다퉈 동혁에게 충성을 표했다. 바로 어제 일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은 방금 전 동혁이 장가연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고 바로 장가연 쪽으로 갈 마음이 없었다. “그만하세요.” 동혁이 갑자기 소리치며 사람들의 말을 막았다. 임원들은 의아해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 우리가 이 사장님께 충성하겠다고 했잖아.’ ‘기뻐해야 할 이 사장님이, 왜 갑자기 화를 내시지?’ “지금 파벌을 만들러 회사에 온 겁니까? 아님 일하러 온 겁니까?” “이곳은 투자회사입니다. 여러분들의 유일한 가치 증명은 여러분이 우리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지금 이리 몰려와서 뭐 하겠다는 건가요? 다들 할 일 하세요.” 동혁은 냉정하게 손을 흔들고 바로 회의실을 떠났다. 그의 진짜 신분으로 보면 회사 내 정치는 사실 그에게 아주 사소로운 일 일뿐이었다. 동혁의 눈에 장가연의 편견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고 우습게 보였다. ‘그 여자가 원칙을 해치지 않는 한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어. 일만 착실하게 잘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난 아무 간섭도 하지 않을 거야.’ “역시 이 사장님은 도량이 크신 분이야. 이
“좋아요. 그럼 오한민에게 맡기죠.” 이심은 독기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한민의 아들도 이동혁에게 두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지금쯤 오한민도 우리보다 그 잡종을 더 죽이고 싶을 거예요.” ... 동혁은 자신이 잠시 시장 대행하겠다고 했지만, 그 일로 그가 도지사 곽원산의 사람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덕분에 이씨 가문은 감히 직접 나서지 못했다. 다음날 원화투자회사에 도착한 동혁은 회의를 위해 회의실로 가야 했다. “무슨 일로 회의를 하는 거죠?” 동혁은 회의실로 도착해 송소빈을 불러 물었다. 송소빈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장님, 어제 회사를 떠나시고 나서 심천미 사장님이 오셨는데 이 사장님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꾸짖으시면서 자신의 부하 직원을 이곳 부사장으로 보내시겠다고 하셨어요.” “그 부사장님이 이미 도착했고, 오늘 회의도 그분이 소집한 겁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 오피스룩을 입은 예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 한 명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여자는 들어와서 회의실 안 모든 사람을 힐끗 둘러보고는 자신감 있게 소개했다. “제 소개를 할게요. 제 이름은 장가연입니다. 오늘부터 정식으로 원화투자회사의 부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짝짝짝- 사람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났다. 어제 동혁은 서진만을 처리하면서 이미 회사에서 그의 위신을 세웠다. 많은 사람들은 장가연이 들어와서 동혁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 것을 보고, 동혁에 대한 그녀의 존중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박수로 그녀를 환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가연은 표정이 조금 안 좋아졌다. “전 원화투자회사에 오기 전 강오그룹 본사에서 심 사장님의 비서를 맡았었습니다.” 짝짝짝- 그 순간 박수 소리가 좀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장가연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의 능력에 의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안색이 더 안 좋아져서 갑자기 물었다 “이 사장님은 오셨나요?” 회의실의 임원들은 눈살을 찌푸렸는
3대 가문이 무너지자 H시는 순식간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 세력들이 H시로 와서 한몫을 챙기려 했다. 하세량은 꽤 능력이 있는 시장이었지만 그동안 외부 세력들에 대처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이씨 가문이 이천성을 풀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만 봐도 지금까지 명문가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동혁이 시장 대행을 맡기로 하자 하세량은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하든 우리 H시에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시장님, 저는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시장의 일상적인 업무까지는 제가 좀 번거로울 수 있어요. 꼭 필요할 때만 제가 나설 겁니다.” 이때 동혁이 하세량에게 요구조건을 말했다. 그는 매일 시청에 앉아서 여러 공문서를 처리하며 바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 선생님,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아랫사람에게 잘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아마 웬만한 일로는 절대 귀찮게 하지 않을 겁니다.] 하세량은 가슴을 치며 약속했다. 곧 H시 시청은 도시의 시장인 하세량이 고급 연수에 참석하는 일로 H시의 전반적인 업무를 이씨 대리인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했다고 발표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N도 이씨 가문도 가장 빨리 이 소식을 들었다. 쨍그랑!N도 이씨 가문 본가에서 가주인 이연은 화가 나 자신이 좋아하는 찻잔을 산산조각 냈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 이를 갈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세량 이 개X식, 알고 보니 곽 도지사의 사람이 됐다고 우리 이씨 가문의 요구를 묵살한 것이었어.” “어쩐지 그놈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 했어. 앞으로 연수에 다녀오면 곧 승진을 할 거고, 그럼 우리 이씨 가문은 안중에도 없겠지.”그러나 이연이 아무리 욕을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씨 가문이 아무리 명문가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감히 하세량을 건드릴 수 없었다. 하세량을 건드는 것은 도지사인 곽원산을 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세량이 승진까지 하
류혜진은 동혁을 붙잡고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 동혁은 변명하기 귀찮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천미가 새로운 부사장을 원화투자회사에 파견해 네가 회사 일에 잘 적응하게 도울 거라고 했어.” 류혜진은 동혁을 노려보며 독기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동혁이, 너 내 말 똑바로 들었어?” “예.” 동혁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는 회사 일이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만약 새로 온 부사장이 능력 있고 이전의 그 서진만처럼 나를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뭐 아무 상관없지.’ 류혜진이 몸을 돌려 떠나자 세화가 동혁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충고했다. “동혁 씨,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을 잘 배워, 알겠지?” “당신이 회사에서 실적을 내면 엄마도 더는 동혁 씨를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을 거야.” “알았어. 여보 말 잘 기억할게.” 동혁은 웃으며 세화를 껴안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난 샤워하러 갈게.” 세화는 동혁을 째려보더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동혁도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려는데 갑자기 하세량에게 전화가 왔다. “시장님, 무슨 일이죠?” 동혁이 전화를 받아 물었다. 하세량이 말했다. [이 선생님, 이천성은 사람을 시켜 이미 N도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듣자 하니, 리성투자회사 부사장 오한민의 아들 오반석도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던데요?] “아, 제가 그러라고 했어요.” 동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하세량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오늘 밤에 오한민 아들 오반석의 다리가 부러졌는데 뒤이어 이천성의 다리도 부러졌어.’ ‘그런데 두 사건 모두 이 선생과 관련이 있는 거라고?’ ‘대체 이 선생과 이씨 가문은 왜 이렇게 자꾸 부딪히는 거지?’ “시장님, 뭐 또 다른 할 말이 있나요?” 동혁이 물었다. 하세량은 생각을 거두며 말했다. [이 선생님, 도청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가 이번에 마지막 모집 인원으로 보름간의 고급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거 좋은 일이잖아요. 축하드려요.
동혁은 류성중 때문에 정말 분노했다. 오늘 저녁 연회에서 상대방은 거듭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만약 류성중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동혁은 진작에 손바닥으로 뺨을 날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세화의 외삼촌이라 동혁은 더는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류성중이 류혜진을 류씨 가문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들먹이며 세화를 협박해 이혼하라고 했다. 이건 동혁에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동혁은 분노하여 표정을 굳히고 류성중을 향해 걸어갔다. “동혁 씨.” 동혁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가로젓는 세화는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동혁이 과격한 행동을 해서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했다. 동혁을 붙잡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류성중을 바라보았다. 세화는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말했다. “외삼촌, 삼촌이야 말로 자기가 뭐든 할 수 있는 줄 착각하지 마세요.” “저와 동혁 씨의 결혼은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어요. 그건 우리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예요.” 세화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이 말을 하고 세화는 동혁을 데리고 그대로 떠났다. 류성중은 그 자리에 서서 분노 한 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오늘 사람들 앞에서 세화와 동혁에 의해 큰 망신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기며 오히려 오늘 밤 동혁과 세화 두 사람이 거듭 자신을 도발했다고 생각했다. “내 동의 없이 혜진 누나가 류씨 가문에 돌아올 생각 하지 마.”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류성중의 말투는 차갑기만 했다. 동혁과 세화는 류성중의 말을 듣지 못했고 설사 듣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둘은 하원종을 쫓아 곧장 그와 함께 하늘 거울 저택으로 돌아왔다.하원종은 이미 고령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이 많았는지 지칠 대로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하원종에게 극진한 류혜진은 직접 그를 부축하여 위층 침실로 모시고 올라갔다. 하지만 위층에서 내려오자마자 웃고 있던 류혜진의 얼굴이 먹구름 가득하게 바뀌었다. “세화야, 너하
류성중의 말을 듣고 하원종은 즉시 불만스러워했다.‘의료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나를 불러 놓고 문제는 그냥 내버려두고 다른 사람을 치료하러 가자고?’‘게다가 류성중 부이사장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면 분명 환자는 아주 부자겠구만.’하원종은 이런 인맥을 이용하는 환자를 가장 싫어했다.그러나 병을 고치고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 여긴 그는 참을성 있게 물었다.“무슨 환자죠?”“하 선생님, 외삼촌이 말한 그 환자는 아마 이천기일 겁니다. 아, 이제 이천성까지 추가해야 했군요.”동혁은 옆에서 냉정하게 말했다.그는 이씨 가문이 이렇게 오래도록 하원종을 데려가려 시도할 줄 몰랐다. 이씨 가문은 온갖 수단을 써서 하원종이 이천기의 다리를 치료하게 하려고 했다.동혁은 류성중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혹시 모르시겠지만, 그 이천기의 다리도 제가 부러뜨린 겁니다.”“그러니 그만 돌아가세요. 하 선생님은 절대로 이씨 가문에 가서 그놈들의 다리를 치료하지 않을 거니까요.”류성중은 멍해졌다.이천기의 다리가 다른 사람에 의해 부러져 폐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N도 상류층 사이에 이미 널리 퍼졌다.그런데 류성중은 그 범인이 동혁일 줄은 몰랐다.“동혁이 넌 닥치고 있어. 여기서 네놈은 말할 자격이 없으니까. 너 같이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놈이 하 선생님의 생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야?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지 말고, 저리 꺼져라.”정신을 차린 류성중은 동혁에게 독설을 퍼부은 다음 웃으며 하원종을 바라보았다. “하 선생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선생님께서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시기에 병자를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고요.”그 때.지금껏 조용하던 하원종이 갑자기 화약통에 불을 붙인 것처럼 폭발하며 소리쳤다.“동혁이 말이 맞아요. 난 다친 이유가 명확한 환자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이씨 가문 사람들이 다친 건 다 자업자득이에요. 나보고 그놈들의 다리를 고쳐주라고 하다니, 꿈 깨라고 전하세요.”“난 이 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