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 기분이 안 좋으세요?”차에 탄 뒤 진루안은 운전에 전념했다. 그러나 차 안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조경은 한눈에 진루안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진루안은 조경을 쳐다보고는 말없이 계속 차를 몰았다.이를 본 조경은 계속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만 사부가 갑자기 이렇게 변한 게 두 사람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 느꼈다. 한 사람은 고성용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방금 만난 전광림이다.그리고 결국 진루안에게 있어서 고성용은 익숙하기 때문에, 전광림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느꼈다. 얼마전 전해강이 죽은 사실은 조경도 알고 있었다. 또한 전광림과 전해강의 부자 관계인 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방금 전에 사부가 전광림의 집에 간 후 심기가 좋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전광림은 스승에게 체면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임페리얼의 4대 호법 수장을 맡지 않겠다고 사직을 제기했을 거야.’‘이런 가능성밖에 없어.’ 조경은 지금 대단히 정확하게 분석하였지만 더 이상 말을 하시 못했고, 계속 진루안을 따라 동강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세 시간 후, 차는 동강시로 돌아왔다. 조경을 마영관으로 데려다 준 진루안은 더 머무르지 않고 리버파크 별장으로 돌아갔다.차를 주차장에 주차한 진루안은, 집에 들어간 뒤 바로 재떨이를 들고 베란다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자욱한 연기 속에서 진루안의 얼굴도 갈수록 무거워졌다.‘전광림이 더 이상 4대 호법의 수장 중임을 맡지 않는다면, 임페리얼 전체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생길 거야. 만약 이 변화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임페리얼 내부의 여론이 동요하는 걸 피할 수 없어.’‘임페리얼이 철통 같다고 여겨선 안 돼. 여태까지 철통 같은 기구는 없었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서로 다른 생각과 이익에서의 갈등이 있었어.’‘4대 호법의 수장 자리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이 설레는 사람도 많겠지.’‘일단 한 사람이 승진한 뒤에는
신경을 많이 쓴 걸 보자, 진루안의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영원히 아무도 내 마음속 고생을 알 수 없을 거야. 할아버지와 사부님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이 세상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소위 깊은 공감이란 연민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해.’‘태자에 대항할 때 받은 압력이 얼마나 많았어?’‘차홍양을 죽였을 때, 압력은 어땠지?’‘각국의 암살과 귀찮은 일에 직면했을 때 압력은?’그러나 진루안은 이런 압력을 하소연할 곳이 없다. 묵묵히 마음속에 쌓아 둘 수밖에 없고 자신만이 내부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어. 그 사람들은 모두 나를 비웃기 때문이야.’‘할아버지와 스승님 같은 가까운 사람들도 마음을 좀 넓게 가지라고 위로할 뿐,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없어.’‘서경아는 달라. 늘 부드럽고 소리 없이 나를 도와주었어. 마음속의 답답함과 근심을 해소할 수 있게 하고, 봄바람을 쐬는 듯한 따스함을 주었지.’‘이게 바로 여자와 남자의 차이야. 이게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야.’“모두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인데 맛있는지 모르겠어요.”입을 오므리고 웃으면서 서경아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서경아는 밥을 거의 하지 않지만,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빠서 시간이 없을 뿐이다.이전에 진루안이 없을 때는 대부분 배달을 시키는 방식을 선택해서 저녁을 먹었다.가끔은 그냥 저녁도 먹지 않고 회사에서 잤다.이제 진루안이 옆에 있으니, 이 비싸고 화려하고 별장이 비로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셈이다.서경아가 진루안에게 채소를 집어주자 진루안의 마음이 찡했다.“경아씨, 우리 결혼하자!”진루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서경아의 손이 멈칫하면서 젓가락이 약간 떨렸다. 고개를 들어 진루안의 더없이 순수한 눈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진루안에게 고기를 집어주면서, 서경아가 웃으며 물었다.“오늘 어떻게 그 일을 언급하는 거예요?”“승낙하는 거예요?” 서경아의 질문에
“일어나요. 게으름뱅이 아가씨, 빨리 일어나요. 오늘 또 혼인신고를 하러 가야 돼.” 침대에 앉은 진루안은 이불을 덮어쓴 서경아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아, 안 일어날래요, 피곤해...”“어젯밤에 당신은 나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어.”서경아는 진루안에게 원망하듯이 불평하지만 말투와 표정은 이전보다 몇 배나 부드러워졌다. 이전에는 여장부, 사나운 여자 대표였다. 지금의 서경아는 마치 진루안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와 같았다.‘역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육체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야 해.’진루안은 서경아의 이불을 잡아당겼다.“자, 혼인신고를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자요.”“오늘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회사에 가면 되겠지요?”진루안은 서경아에게 옷을 입으라고 재촉했다. 서경아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해가 중천에 떠서 이미 아침 9시였다.서경아는 난생 처음 이렇게 늦게 일어났을 것이다.“아아아, 귀찮아 죽겠어.” 서경아는 주먹을 쥔 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이 어젯밤의 전쟁이 격렬했음을 보여주었다.진루안은 서경아의 긴 머리를 세심하게 걷어 올리고 머리를 빗겨 주었다.처음에는 하품을 하던 서경아도 점차 진루안이 이렇게 숙련되게 머리를 빗겨주는 모습을 보자 문득 마음속에 경계심이 들기 시작했다. 예리한 눈빛으로 진루안을 쳐다보며 물었다.“당신은 어떻게 여자의 머리를 빗겨줄 줄 알아요?”진루안은 등골이 서늘해졌고 서경아의 날카로운 눈빛은 더욱 무서웠다.여태까지 없었던 이런 날카로운 눈빛은, 지금 결혼 후 호랑이처럼 매서워진 서경아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사부님이 가르쳐 줬어!”진루안은 사실대로 말했다. 이것은 확실히 예전에 백무소가 가르쳐준 기술이다. 궐주를 잘하기 위해선 반드시 더욱 많은 기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크게는 조정과 강호를 장악할 수 있고, 작게는 머리를 빗기고 심지어 바느질도 할 수 있어야 했다.이것들을 모두 해내야 했다.
“이따가 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아버님께 서씨 가문에 가겠다고 말해요.” 진루안은 서경아에게 말하면서 호칭도 바뀌었다. 어쨌든 서호성은 서경아의 친아버지이다. 자신이 아버님이라고 부르면 서호성의 체면을 세워주는 셈이다.‘서호성이 예전에 자기 아내를 어떻게 했는지는 잠시 접어두겠어.’‘두 번째 기회를 주었을 때, 잘 잡을 수 있을지는 서호성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어.’“응, 내가 아빠에게 얘기할게요.” 서경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진루안의 태도가 의외라서 놀랐다.물론 진루안도 모두 자신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기에, 이 모든 것에 대해 매우 감격했다.서경아는 전화를 하지 않고 초코톡을 보냈다.초코톡은 채팅과 문자 전송 전문 앱으로 용국의 한 인터넷기업에서 연구 개발했다. 지금은 이미 시장에서 아주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진루안은 차를 몰고 동강시의 민생국 입구로 왔다.이때의 민생국 입구는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혼인신고는 혼자 가서 해도 되지만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뜻 깊은 절차기에 서경아와 함께 하고 싶어서 같이 온 것이다.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유난히 언뜻 봐도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진루안과 서경아는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마스크를 썼다.두 사람 다 혼인신고를 하면서 연예계 스타들처럼 뉴스에 나오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걸 원치 않았다.자신들 같은 사람들에게 그런 실시간 검색어와 뉴스는 오히려 영광이 아니라 모욕인 셈이다.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가까스로 군중의 앞으로 비집고 들어갔다.진루안은 별도 처리하기 위해서 민생국의 대신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런 기회를 사용해서 자신의 개인일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기왕에 부부가 되는 것이니, 좀 겸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 성취감도 더 크게 된다.그러나 진루안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차량은 여전히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민생국의 한 7급대신이 롤스로이스 스웹테일을 살펴보면서 볼수록 익숙하다고 느꼈다.결국 이 차가 진
“억울합니다. 정말 너무너무 억울합니다!”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주 우렁찬 함성이 민생국 청사에 전해졌고, 모든 사람들이 이 함성을 똑똑히 들었다.진루안과 서경아도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군중들의 뒤쪽에서 대형버스 한 대가 오고 있었다. 대형버스 위에는 족히 1미터 남짓한 흰색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위에는 붉은색으로 크게 ‘억울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그리고 대형 버스 앞에서는 확성기가 끊임없이 이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이렇게 갑작스러운 장면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진루안조차도 지금 이 시대에 뜻밖에도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무슨 일이에요?” 서경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태까지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말없이 계속 그 대형버스를 바라보면서 변화를 지켜보았다.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이 안에 반드시 사연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고, 정말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냥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욌어? 이게 도대체 어떤 억울한 사정이기에 민생국과 관계가 결부될 수가 있지?’대형 버스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몇 미터 떨어져서 청사 입구에 멈춰 섰다. 대형버스가 멈추자 차문이 열렸다. 처음으로 차문에서 나온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으로, 회백색의 양복을 입었지만 눈에는 슬픈 기색이 가득했다.노인이 내려온 후, 연이어 차에서 7, 80세의 노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내렸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두 사람은 두 명의 간병인이 들고 내려왔다.이 사람들은 모두 나이가 든 노인들이다. 가장 젊은 사람도 60대가 넘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80대에 이르렀다. 이들의 옷차림은 아주 낡아서, 한눈에도 이 사람들의 생활 여건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또 무슨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러 온 거야?’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진루안은 단지
지금 이천의는 진루안이 온 것에 대해서 조금도 환영하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루안이 지금 사라져야 민생국에 좋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물론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당장 사람들을 보내서 저 늙다리들을 돌려보내.”“오늘만 버티면 무슨 핑계든 잘 댈 수 있어.”이천의는 젊은 대신에게 분부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천의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젊은 대신의 눈에서 음울한 빛이 재차 반짝였다.“부정하게 돈을 챙기면서도 우리 몫은 없었지. 지금 일이 생겼는데 우리가 네 뒤치다꺼리를 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설마 그렇게 쉽게 되겠어?”“이천의, 탓하려면 네가 독식한 걸 탓해. 우리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젊은 대신은 냉소를 연발하더니, 다른 사무실로 가서 동료들을 모두 소집한 뒤 한바탕 음모를 꾸몄다. 모두 음산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계략은 이렇게 갖추어졌다.바깥의 대형버스 주변은 모두 이 노인들로 가득했다. 휠체어를 탄 두 노인은 게다가 입가에 침까지 흘려서 간병인이 수시로 닦아줘야 했다.‘이런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도대체 어떤 억울한 사정이 있는 걸까?’사람들이 이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물론 예전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도 있는 건 분명했다.그래서 지금도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저 사람들은 모두 방산 양로원의 그 독신 노인들이야.”“원장 방선비가 며칠 전에 치안을 어지럽히고 대신을 구타했다고 해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어. 결국 이 독신 노인들 모두가 그 원장을 대신해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거야.”“이 일로 이 노인들이 매일 여기에 와서 이미 일주일이 넘게 소란을 피웠어. 다만 오늘의 행동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왜 억울한 일이 생긴 거야? 이 안에 무슨 오해가 있는 거 아니야?”누군가 궁금해서 물었다.진루안도 이쪽에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고 있었다. ‘이런 일을 알고 싶으면, 반드시 여러 방면에서 정보를 들어야만 기본적인
“서민들은 허허, 그저 대세를 따르면 돼.”남자의 말을 꺼내자, 주위의 사람들은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진루안의 표정은 오히려 좀 어색했다. ‘이 사람들이 이야기한 큰 인물은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나를 말하는 것이겠지?’‘그러나 그래도 이 남자가 한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확실히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순수하게 정의를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단지 추세에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해.’“당신 말이 맞아요, 맞아!”“일심전력으로 백성을 위하는 큰 인물이 어디에 있겠어요. 모두 꿍궁이가 있을 뿐이지요!”진루안은 개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남자의 말에 찬성했다.남자는 씩 웃으며 진루안을 두드렸다.“젊은 친구가 여기는 왜 왔어요?”“하하, 혼인신고 하려고요!”진루안은 크게 웃으며 뒤에 있는 서경아를 가리켰다.남자는 마스크를 쓴 서경아를 보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아도 미녀라는 것을 알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대단해, 젊은 친구가 정말 우리 남자들 체면을 세워줬네.”“이 일은 정말 억울한 사정인가요?” 진루안은 웃으며 계속 물어보면서 남자에게 바로 담배를 권했다.남자가 하하 웃으면서 담배를 받자, 진루안은 불을 붙여 주었다.마침 이 장면을 본 민생대신 이천의는 기겁을 했다.‘진 선생님이 뜻밖에 다른 사람에게 담배를 권했어. 게다가 상대방은 여전히 평범한 서민인데, 이게...’‘누가 이걸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물론 자신이 지금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라, 소란을 피우는 그 늙은이들이다.‘지금 진루안이 이렇게 계속 물어보면, 조만간 이유를 물어볼 거야.’그래서 진루안이 남자에게 담배 불을 붙여주고 물어보려고 할 때. 바로 진루안에게 달려갔다.“진 선생님, 정말 진 선생님이십니까?”이천의는 일부러 큰 소리로 외치면서, 흥분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진루안을 바라보았다.이 외치는 소리가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방금 담배를 한 모금 피운 남자는 이천의를 본 후 안색이 크게 변했다. ‘이천의가 민생
“진 선생님...” 놀라서 온몸을 떨던 이천의는 두려워하며 진루안을 바라보았다. ‘왜 진 선생님이 지금 갑자기 화를 냈는지 모르겠어.’진루안은 대형버스 옆에 서 있는 7, 80세 노인 40여 명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붉은색 페인트로 억울하다고 크게 쓴 흰색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지금 이곳에서 알랑거리며 자신에게 아부하는 이 민생국의 민생대신을 쳐다보았다. 단지 이런 첫인상만으로도 이 민생대신이 극히 실패한 인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연히 가슴속의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국민들은 이미 이 지경이 되었지만, 이 민생대신은 결국 조금도 관심을 가질 뜻이 없이 사태가 계속 발전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어. 우선 이 사람의 생각은 정상이 아니야.’“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봐?”앞의 이 장면을 가리킨 진루안이 예리한 눈빛으로 이천의를 주시하면서 물었다.이 질문을 받은 이천의는 머리가 띵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진루안이 과연 이 일에 관심을 가지자, 초조하고 답답해졌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은 분노였다.이천의는 지금 이 늙다리들을 모두 죽여서 조용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지금 진루안이 물어본 이상 대답하지 않을 수 없어. 대답하지 않았다가 진 선생님이 탓하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어.’“진 선생님, 이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건물로 들어가시지요. 제가 상황을 모두 알려 드리겠습니다.”이천의는 진루안을 향해 말했다. 얼굴에는 아첨하는 미소가 가득했다.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진루안은 이의의 말을 듣자,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필요 없어, 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말해.”“마침 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 마주해 봐. 나는 당연히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있어.”“그리고 민생대신인 네가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대치한들 뭐가 두렵겠어?”진루안은 당연히 이천의의 말대로 청사에 가서 상세히 얘기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