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재미있군! 방재인, 정말 다시 봤어!”“여자도 남자한테 뒤지지 않는다 어쩐다 하는 말, 나 원래 안 믿었거든!”“방재인, 당신을 보니 이제 믿을 수 있을 것 같아!”화소붕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그의 눈빛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눈앞에 둔 사자같이 음흉한 기운이 가득했다.순간 화소붕이 손짓을 하자 커다란 화면에 나타난 거대한 철장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뚫린 바닥으로 보이는 검푸른 바다가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 넘실대고 있었다.철장 속에 갇힌 직원들은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방재인은 그 광경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화소붕,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요!”“이 나쁜 놈!”화소붕은 따라 놓은 술을 마시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방재인, 음식은 함부로 먹어도 되지만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지.”“사람을 풀어주겠다고 했잖아. 내가 실언을 한 거야?”“그래서 지금 당신 직원들 풀어주려고 하잖아.”“그렇지만 그들을 그냥 풀어주겠다고는 약속하지 않았잖아, 안 그래?”“사실 양심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봐. 이 사람들이 내 창고에 함부로 들어와서 자기들 멋대로 하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풀어줄 수 있겠어?”“이제 좀 정신이 들어?”방재인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 나쁜 놈! 화소붕, 이 버러지 같은 놈!”화소붕은 유유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철부지 아가씨, 계속해 봐. 당신이 계속 큰소리로 욕을 하면 할수록 난 더 흥분할 거야!”“참, 한 가지만 더 말해 둘게.”“지금이 딱 밀물 때야. 시간상으로 따지면 한두 시간이면 물이 가득 밀려와서 그 철장을 완전히 집어삼킬 거야.”“저 사람들 죽지나 않으려나 모르겠어, 응?”“아이구, 난 저 사람들 죽이고 싶지 않아. 내가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매달아 놓은 건 그냥 따끔한 가르침을 주고 싶었을 뿐이야.”“하지만 귀염둥이 아가씨한테 저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을 했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당신 정체를 말해 봐! 당신 뭐야!”“나한테는 무쇠도 깨뜨릴 만큼 강력한 퇴역 군인 50명이 있어. 그중에 한 명은 전쟁의 신과도 같은 존재였어!”“그들은 우리 화 씨 집안에서 거금을 들어 초빙해 온 우리 집안 전직 군사들이야!”“당신 실력도 못지않더군. 인정해.”“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죽도록 싸워 봤자 이 사람들을 이길 순 없어!”“이제 당신한테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화소붕은 말을 이으며 왼쪽 다리를 탁자 위에 툭 얹었다.“첫째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두 손으로 비는 거야. 그러면 방재인의 체면을 봐서 내가 당신에게 살 길을 내어 주겠어!”“둘째 당신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꽃병에 꽂아두고 7박 8일 동안 울부짖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바다로 던져 물고기밥이 되게 하는 거야!”“당신이 선택해!”하현이 입을 떼기도 전에 금발의 여자가 입술을 들썩이며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하려고 그래요?”“그냥 나한테 맡겨요. 내가 이 사람 살을 가지고 가지런히 회를 떠서 버려 줄 테니까. 우리 도성에서 당신한테 미움을 사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톡톡히 보여줄게요.”금발의 여자는 화소붕이 인정하는 능력자이자 그의 가장 측근 부하였다.하현이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을 본 여자는 일찌감치 하현에게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하현을 한 방에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하현은 담담한 시선을 들어 올려 금발의 여자에게 던졌다.여자는 몸매가 유려하고 미모도 굉장했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건 상당한 전투 실력인 것 같았다.방재인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화소붕, 당장 우리 사람들을 풀어주세요!”“귀염둥이 아가씨, 왜 또 내 말을 안 듣는 거야?”“당신 직원들이 빨리 죽길 바라는 모양이군!”화소붕은 빙그레 웃으며 누군가에게 또 손짓을 했다.그러자 큰 화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철장이 1미터 더 내려갔다
곽영호의 방탕한 웃음 속에 안나의 묵직한 발바닥은 땅을 힘껏 딛으며 포탄처럼 앞으로 튀어나와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하현 오빠, 조심해요!”“펑!”하현은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옆에 있던 술병을 가차 없이 집어던졌다.하현의 움직임을 본 안나는 오른손을 흔들었다.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었고 채찍은 사정없이 휘몰아쳐 술병을 산산조각 내었다.주위에 있던 외국인 경호원들은 무의식중에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쳤다.안나가 폭발하면 그 전력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퍽!”그 순간 하현은 오른발을 들어 안나가 있는 쪽으로 탁자를 걷어찼다.안나가 다시 손쓰는 틈을 타 그는 번개처럼 곧장 화소붕의 뒤로 다가왔고 어느새 화소붕의 목에 칼이 걸려 있었다.화소붕의 얼굴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하현의 몸놀림이 그렇게 빠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손쓸 틈 없이 자신의 목숨이 그의 손끝에 달리게 되었다.하현은 칼끝을 화소붕의 목에 겨눈 채 그대로 앞으로 나서며 경호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누구라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이 화소붕의 목숨은 바로 끝장날 테니까 알아서들 해!”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왼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화소붕의 머리에 내리쳤다.술병이 깨지며 요란이 소리를 내었다.“아!”처량한 비명이 터져 나오자 경호원들이 모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방재인은 겨우겨우 몸을 이끌고 하현의 곁으로 가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뭐하는 거야! 감히 화소붕의 목에 칼을 대다니. 지금 죽고 싶어서 그래?!”안나는 이 모습을 보고 분노가 극에 달했다.자신의 코앞에서 화소붕이 하현의 손아귀에 잡힐 줄은 몰랐다.그녀로서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퍽!”하현은 또 술병을 화소붕의 머리에 내리쳤다.결국 화소붕은 정신을 잃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앞에 나서지 마. 내 말 명심해. 안 그러면 바로 칼을 그어버릴 테니까.”“당신들의 도련님 목숨은 비길
화소붕의 신분으로는 도성에서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었다.그는 도성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안 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그런 자신이 하현에게 이렇게 휘둘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이렇게 고개를 숙일 화소붕이 아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이, 당신 정말 대단하군!”“도성에서 감히 우리 사람들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날 감히 납치했으니 말이야.”“이렇게 능력이 출중하다니, 당신 이름이나 알고 싶군그래!”하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하현.”“하현?”화소붕의 얼굴에 희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분명 처음 듣는 이름이다.어디서 이런 인사가 툭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하지만 하현, 그 이름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는 데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화소붕은 원망과 독기 가득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내 기억하지!”“당신의 정체가 뭔지 내가 알아내지 못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알아내기만 한다면!”“퍽!”하현은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 다시 화소붕의 머리에 내리쳤다.“날 협박하는 거야?”“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누군가 날 협박하게 놔두는 거. 어디 다시 한번 더 협박해 보시지?”“너, 이…”화소붕은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피범벅이었지만 끝까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 도대체 누군지 내가 반드시 알아낼 테니까!”“그럴 필요 없어. 내가 직접 알려줄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바로 그때 입구 쪽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이어 군중을 뚫고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난 최 씨 가문의 최문성이에요. 화소붕, 당신이 마음에 잘 새겨 두었으면 좋겠군요.”남자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수십 명이 늠름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기껏해야 스무 살 좀 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얼굴에는 아직 앳된 기운이 서려 있었다.최문성의 출현에 화소붕은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장내에
안나 일행은 최문성의 등장으로 뒤로 물러섰다.장내 분위기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긴장감만이 팽팽하게 감돌고 있었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하현과 방재인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자, 화소붕.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사람들을 풀어주고 이곳으로 데려와.”“그 사람들 다치게 할 생각은 이제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 그들 중 하나라도 다치기라도 한다면 내가 당신 손을 절단 낼 테니까.”하현은 엄중한 목소리로 화소붕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화소붕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당신이 최 씨 집안 귀빈이라니 내가 최문성 체면을 봐서 오늘 밤 당신과 방재인을 괴롭히지 않겠어.”“하지만 나더러 사람을 풀어주라고? 꿈 깨!”“어디 재주가 있으면 날 찔러 죽여 봐!”“내가 눈썹 하나 까딱이라도 한다면 지나가는 개한테 형님, 형님 하겠어!”“하지만 당신 명심해. 내가 죽으면 당신은 절대 살아서 이 도성을 나갈 수 없어!”“우리 도성 화 씨 가문을 뭘로 보고 그러는 거야!”“감히 날 죽이려고 해? 최 씨 가문이 아니라 천왕 태자가 와도 당신을 지켜줄 사람은 없을 거야!”화소붕은 자포자기하는 상태로 치달아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하면 당신들 도성 화 씨 집안도 도성에서만 힘깨나 쓰는 집안이잖아. 내가 원한다면 없애버리는 것쯤 어렵지 않아.”하현의 말이 울려 퍼지자 장내는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도성에서 이런 허풍을 떨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가?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띤 안나는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당장 집어치워! 당신 지금 화소붕을 붙잡았다고 감히 어디서 그따위 입을 놀리는 거야!”“능력이 있으면 화소붕을 풀어주고 나랑 한 판 붙어. 내 한 손이면 당신을 바로 죽일 수 있어!”그녀가 보기에 하현은 실력도 없으면서 허풍만 요란하게 떠는 사람처럼 보였고 언제라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사장의 직원이 창고에 간 이유는 방 사장이 당신한테 보낸 새 차를 20년도 더 된 오래된 차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에요.”“변명할 필요 없어요. 내가 이미 세관에 가서 당시 방 사장님이 보낸 찻잎 입국 기록을 추적했어요.”“또한 당신이 어디서 그 오래된 묵은 차들을 구입했는지 그 판매자를 이미 찾아서 체포했어요. 언제든지 당신과 함께 대질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마지막으로 당신이 그 새 차를 어디에 숨겼는지도 알고 있어요.”“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이 일의 전모를 밝혀 당신 화 씨 집안의 체면을 구겨드릴 수 있단 말이죠.”“그러니까, 화소붕. 난 지금 당신과 상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한테 통보하러 왔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사람들을 모두 풀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계약서에 따라 잔금도 모두 지불해야만 해요. 한 푼도 빠뜨리지 말고 전부 다!”“지금 말씀해 보세요. 사람들을 풀어줄 거예요, 말 거예요? 돈은요? 지금 줄 거예요, 안 줄 거예요?”최문성은 두 손을 뒷짐진 채 엄중한 자세로 말했다.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추상같이 무겁게 떨어져 화소붕의 머릿속을 얼얼하게 만들었다.화소붕은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자신이 한 일을 최문성이 다 꿰뚫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그리고 최문성의 당당한 자태를 보니 그의 손아귀에는 아미 모든 증거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화소붕은 이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최문성이 하현에게 이렇게 깍듯하게 대할 줄도 몰랐다.뒤에서 그를 든든하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돈까지 받아주려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이런 사실을 되뇌자 화소붕의 불쾌함은 극에 달했다.지금까지 누구한테 이렇게 굴욕적으로 당한 적은 없었다.아무리 성질이 거칠고 제멋대로에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화소붕이지만 그도 알 건 안다.최 씨 가문이 비록 최고의 가문은 아니지만 도성에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관청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화소붕은 눈을
화소붕은 괴로운 듯 목을 움켜쥐며 일어섰고 얼굴에는 잔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이 일로 그들은 손해를 보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만회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게다가 지금 최문성이 하현을 도와주고 있다면 다음에는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직원들이 얼굴을 맞고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하현은 차갑게 말했다.“어디 한번 다시 건드려 보시지?”“퍽!”옆에 있던 최문성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안나는 직원들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내가 이 사람들을 건드리면 뭐 어떻게 하려구? 내가 내 발로 이 사람들 찼어.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할 수 있어?”“쉭ㅡ"안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현이 한 걸음 내디뎌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퍽!”안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뭔가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쓰려고 했지만 하현의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손쓸 틈이 없었다.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의 한 방에 안나는 사정없이 휘청거리고 있었다.이 모습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하현의 힘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현은 기세를 몰아 안나에게 뺨을 한 대 더 갈겼다.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그녀는 이탈리아 군대의 왕이자 화소붕의 최고 강한 부하였다!안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하현을 바라보면서 왼손은 허리춤의 총기를 향해 뻗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손이 총기에 닿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그녀의 단전을 발로 세게 후려쳤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안나의 몸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힘이 모조리 빠져버렸다.“어떻게 해 줄까?”하현은 오른발을 안나의 얼굴에 얹혀 조금씩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내가 당신을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널 죽일 수도 있어!”“퍽ㅡ"하현은 발로 안나를 걷어찼고 그녀는 벽에 부딪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사람들은 풀어줬고 그럼 이제 돈은?”
최문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네, 결과 나왔습니다.”말을 하면서 그는 핸드폰을 꺼내 하현에게 몇 가지 자료를 전달했다.“대장님, 출입국관리소와 도성의 몇몇 관계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이 사람들 모두 도성 사람들이 아니었어요.”“그들은 항성과 홍성이었어요.”“항성? 홍성?”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그들의 배후는 항성 이 씨 집안이야? 아니면 곽 씨 집안이야?”“둘 다 아닙니다. 하지만 홍성 사람들은 강호의 의리 따위 중시하지 않는 작자들입니다.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하죠.”“천계 조이팰리스에서 대장님을 저격한 사람에 관해 제가 사람을 보내 몇 가지 알아봤는데요. 여우 가면 하나와 버려진 총 외에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물론 여우 가면과 총도 도성 경찰서에 보내 검사를 해 봤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찾더라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라는 걸 상대가 알고 버린 것 같습니다.”“여우 가면?”하현은 미간에 희미한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그거 어디 있어? 나한테 좀 보내달라고 해 봐. 내가 좀 봐야겠어.”최문성은 재빨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밀봉된 상자를 보내왔다.하현은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여우 가면을 본 순간 흠칫 놀랐다.상자를 열자마자 은은하고 그윽한 향내가 콧등을 감싸며 사정없이 코를 자극했다....하현은 최문성에게 방재인 일행의 안전을 부탁한 후 그 자리를 떠났다.최희정이 납치된 것과 저격수를 추적하는 일은 모두 최문성에게 맡겼다.화소붕은 하현에게 있어 더 이상 위협거리가 되지 않았다.화소붕이 만약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도리를 깨친 사람이었다면 서로 다툼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하현은 만약 화소붕이 다른 생각을 먹고 있다면 도성 화 씨 가문이 얼마나 썩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그때 가서 완전히 싹을 잘라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송산 빌리지로 다시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