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방재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대학 시절 학교에서 풍채가 좋고 점잖았던 곽영호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그녀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숨을 깊이 들이쉬고 나서야 방재인은 비로소 곽영호의 뺨을 한 대 갈기고 싶은 충동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화소붕을 쳐다보며 말했다.“화소붕, 내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들이 당신 창고에 몰래 들어갔다고 해도 그건 단지 물건 상태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을 뿐 다른 생각은 전혀 없었을 거예요!”“당신이 그들을 도둑으로 생각했다고 해도 당신이 직접 그들을 처벌할 권리는 없어요!”“그건 경찰에 맡길 일이라구요!”“그리고 화소붕, 잘 들어요. 여기가 도성이어서 당신들이 무법천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온 나라 안의 주민은 모두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구요. 모든 법은 모든 주민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거구요.”“직원들을 풀어주지 않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어요.”방재인은 정말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직원들은 모두 그녀의 지시를 받고 일을 했을 뿐이다.만약 그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그 희생을 감내해야 할지 그녀로서는 눈앞이 캄캄했다.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주위를 살피다가 마침내 그 금발 여인에게 시선이 갔다.그의 실력으로 눈앞에 있는 수십 명 정도 해결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그의 곁에는 방재인이 있었다.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녀가 다칠 수도 있는 것이다.“나한테 지금 감히 법을 운운하는 거야?”“도성의 법에 대해 당신 무슨 오해가 있는 거 아니야?”화소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성 이곳은 내가 법이야. 아직도 못 알아들었어?”“난 당연히 지금이라도 당신들 직원 모두를 바다에 처박을 수 있어. 자자, 이리 와서 차나 마셔!”“차 한 잔 마시면 당신 직원들 풀어 줄게!”곽영호는 그 말
”정말 재미있군! 방재인, 정말 다시 봤어!”“여자도 남자한테 뒤지지 않는다 어쩐다 하는 말, 나 원래 안 믿었거든!”“방재인, 당신을 보니 이제 믿을 수 있을 것 같아!”화소붕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그의 눈빛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눈앞에 둔 사자같이 음흉한 기운이 가득했다.순간 화소붕이 손짓을 하자 커다란 화면에 나타난 거대한 철장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뚫린 바닥으로 보이는 검푸른 바다가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 넘실대고 있었다.철장 속에 갇힌 직원들은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방재인은 그 광경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화소붕,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요!”“이 나쁜 놈!”화소붕은 따라 놓은 술을 마시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방재인, 음식은 함부로 먹어도 되지만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지.”“사람을 풀어주겠다고 했잖아. 내가 실언을 한 거야?”“그래서 지금 당신 직원들 풀어주려고 하잖아.”“그렇지만 그들을 그냥 풀어주겠다고는 약속하지 않았잖아, 안 그래?”“사실 양심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봐. 이 사람들이 내 창고에 함부로 들어와서 자기들 멋대로 하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풀어줄 수 있겠어?”“이제 좀 정신이 들어?”방재인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 나쁜 놈! 화소붕, 이 버러지 같은 놈!”화소붕은 유유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철부지 아가씨, 계속해 봐. 당신이 계속 큰소리로 욕을 하면 할수록 난 더 흥분할 거야!”“참, 한 가지만 더 말해 둘게.”“지금이 딱 밀물 때야. 시간상으로 따지면 한두 시간이면 물이 가득 밀려와서 그 철장을 완전히 집어삼킬 거야.”“저 사람들 죽지나 않으려나 모르겠어, 응?”“아이구, 난 저 사람들 죽이고 싶지 않아. 내가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매달아 놓은 건 그냥 따끔한 가르침을 주고 싶었을 뿐이야.”“하지만 귀염둥이 아가씨한테 저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을 했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당신 정체를 말해 봐! 당신 뭐야!”“나한테는 무쇠도 깨뜨릴 만큼 강력한 퇴역 군인 50명이 있어. 그중에 한 명은 전쟁의 신과도 같은 존재였어!”“그들은 우리 화 씨 집안에서 거금을 들어 초빙해 온 우리 집안 전직 군사들이야!”“당신 실력도 못지않더군. 인정해.”“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죽도록 싸워 봤자 이 사람들을 이길 순 없어!”“이제 당신한테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화소붕은 말을 이으며 왼쪽 다리를 탁자 위에 툭 얹었다.“첫째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두 손으로 비는 거야. 그러면 방재인의 체면을 봐서 내가 당신에게 살 길을 내어 주겠어!”“둘째 당신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꽃병에 꽂아두고 7박 8일 동안 울부짖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바다로 던져 물고기밥이 되게 하는 거야!”“당신이 선택해!”하현이 입을 떼기도 전에 금발의 여자가 입술을 들썩이며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하려고 그래요?”“그냥 나한테 맡겨요. 내가 이 사람 살을 가지고 가지런히 회를 떠서 버려 줄 테니까. 우리 도성에서 당신한테 미움을 사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톡톡히 보여줄게요.”금발의 여자는 화소붕이 인정하는 능력자이자 그의 가장 측근 부하였다.하현이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을 본 여자는 일찌감치 하현에게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하현을 한 방에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하현은 담담한 시선을 들어 올려 금발의 여자에게 던졌다.여자는 몸매가 유려하고 미모도 굉장했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건 상당한 전투 실력인 것 같았다.방재인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화소붕, 당장 우리 사람들을 풀어주세요!”“귀염둥이 아가씨, 왜 또 내 말을 안 듣는 거야?”“당신 직원들이 빨리 죽길 바라는 모양이군!”화소붕은 빙그레 웃으며 누군가에게 또 손짓을 했다.그러자 큰 화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철장이 1미터 더 내려갔다
곽영호의 방탕한 웃음 속에 안나의 묵직한 발바닥은 땅을 힘껏 딛으며 포탄처럼 앞으로 튀어나와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하현 오빠, 조심해요!”“펑!”하현은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옆에 있던 술병을 가차 없이 집어던졌다.하현의 움직임을 본 안나는 오른손을 흔들었다.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었고 채찍은 사정없이 휘몰아쳐 술병을 산산조각 내었다.주위에 있던 외국인 경호원들은 무의식중에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쳤다.안나가 폭발하면 그 전력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퍽!”그 순간 하현은 오른발을 들어 안나가 있는 쪽으로 탁자를 걷어찼다.안나가 다시 손쓰는 틈을 타 그는 번개처럼 곧장 화소붕의 뒤로 다가왔고 어느새 화소붕의 목에 칼이 걸려 있었다.화소붕의 얼굴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하현의 몸놀림이 그렇게 빠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손쓸 틈 없이 자신의 목숨이 그의 손끝에 달리게 되었다.하현은 칼끝을 화소붕의 목에 겨눈 채 그대로 앞으로 나서며 경호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누구라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이 화소붕의 목숨은 바로 끝장날 테니까 알아서들 해!”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왼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화소붕의 머리에 내리쳤다.술병이 깨지며 요란이 소리를 내었다.“아!”처량한 비명이 터져 나오자 경호원들이 모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방재인은 겨우겨우 몸을 이끌고 하현의 곁으로 가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뭐하는 거야! 감히 화소붕의 목에 칼을 대다니. 지금 죽고 싶어서 그래?!”안나는 이 모습을 보고 분노가 극에 달했다.자신의 코앞에서 화소붕이 하현의 손아귀에 잡힐 줄은 몰랐다.그녀로서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퍽!”하현은 또 술병을 화소붕의 머리에 내리쳤다.결국 화소붕은 정신을 잃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앞에 나서지 마. 내 말 명심해. 안 그러면 바로 칼을 그어버릴 테니까.”“당신들의 도련님 목숨은 비길
화소붕의 신분으로는 도성에서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었다.그는 도성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안 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그런 자신이 하현에게 이렇게 휘둘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이렇게 고개를 숙일 화소붕이 아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이, 당신 정말 대단하군!”“도성에서 감히 우리 사람들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날 감히 납치했으니 말이야.”“이렇게 능력이 출중하다니, 당신 이름이나 알고 싶군그래!”하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하현.”“하현?”화소붕의 얼굴에 희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분명 처음 듣는 이름이다.어디서 이런 인사가 툭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하지만 하현, 그 이름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는 데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화소붕은 원망과 독기 가득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내 기억하지!”“당신의 정체가 뭔지 내가 알아내지 못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알아내기만 한다면!”“퍽!”하현은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 다시 화소붕의 머리에 내리쳤다.“날 협박하는 거야?”“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누군가 날 협박하게 놔두는 거. 어디 다시 한번 더 협박해 보시지?”“너, 이…”화소붕은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피범벅이었지만 끝까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 도대체 누군지 내가 반드시 알아낼 테니까!”“그럴 필요 없어. 내가 직접 알려줄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바로 그때 입구 쪽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이어 군중을 뚫고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난 최 씨 가문의 최문성이에요. 화소붕, 당신이 마음에 잘 새겨 두었으면 좋겠군요.”남자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수십 명이 늠름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기껏해야 스무 살 좀 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얼굴에는 아직 앳된 기운이 서려 있었다.최문성의 출현에 화소붕은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장내에
안나 일행은 최문성의 등장으로 뒤로 물러섰다.장내 분위기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긴장감만이 팽팽하게 감돌고 있었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하현과 방재인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자, 화소붕.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사람들을 풀어주고 이곳으로 데려와.”“그 사람들 다치게 할 생각은 이제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 그들 중 하나라도 다치기라도 한다면 내가 당신 손을 절단 낼 테니까.”하현은 엄중한 목소리로 화소붕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화소붕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당신이 최 씨 집안 귀빈이라니 내가 최문성 체면을 봐서 오늘 밤 당신과 방재인을 괴롭히지 않겠어.”“하지만 나더러 사람을 풀어주라고? 꿈 깨!”“어디 재주가 있으면 날 찔러 죽여 봐!”“내가 눈썹 하나 까딱이라도 한다면 지나가는 개한테 형님, 형님 하겠어!”“하지만 당신 명심해. 내가 죽으면 당신은 절대 살아서 이 도성을 나갈 수 없어!”“우리 도성 화 씨 가문을 뭘로 보고 그러는 거야!”“감히 날 죽이려고 해? 최 씨 가문이 아니라 천왕 태자가 와도 당신을 지켜줄 사람은 없을 거야!”화소붕은 자포자기하는 상태로 치달아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하면 당신들 도성 화 씨 집안도 도성에서만 힘깨나 쓰는 집안이잖아. 내가 원한다면 없애버리는 것쯤 어렵지 않아.”하현의 말이 울려 퍼지자 장내는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도성에서 이런 허풍을 떨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가?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띤 안나는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당장 집어치워! 당신 지금 화소붕을 붙잡았다고 감히 어디서 그따위 입을 놀리는 거야!”“능력이 있으면 화소붕을 풀어주고 나랑 한 판 붙어. 내 한 손이면 당신을 바로 죽일 수 있어!”그녀가 보기에 하현은 실력도 없으면서 허풍만 요란하게 떠는 사람처럼 보였고 언제라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사장의 직원이 창고에 간 이유는 방 사장이 당신한테 보낸 새 차를 20년도 더 된 오래된 차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에요.”“변명할 필요 없어요. 내가 이미 세관에 가서 당시 방 사장님이 보낸 찻잎 입국 기록을 추적했어요.”“또한 당신이 어디서 그 오래된 묵은 차들을 구입했는지 그 판매자를 이미 찾아서 체포했어요. 언제든지 당신과 함께 대질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마지막으로 당신이 그 새 차를 어디에 숨겼는지도 알고 있어요.”“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이 일의 전모를 밝혀 당신 화 씨 집안의 체면을 구겨드릴 수 있단 말이죠.”“그러니까, 화소붕. 난 지금 당신과 상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한테 통보하러 왔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사람들을 모두 풀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계약서에 따라 잔금도 모두 지불해야만 해요. 한 푼도 빠뜨리지 말고 전부 다!”“지금 말씀해 보세요. 사람들을 풀어줄 거예요, 말 거예요? 돈은요? 지금 줄 거예요, 안 줄 거예요?”최문성은 두 손을 뒷짐진 채 엄중한 자세로 말했다.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추상같이 무겁게 떨어져 화소붕의 머릿속을 얼얼하게 만들었다.화소붕은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자신이 한 일을 최문성이 다 꿰뚫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그리고 최문성의 당당한 자태를 보니 그의 손아귀에는 아미 모든 증거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화소붕은 이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최문성이 하현에게 이렇게 깍듯하게 대할 줄도 몰랐다.뒤에서 그를 든든하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돈까지 받아주려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이런 사실을 되뇌자 화소붕의 불쾌함은 극에 달했다.지금까지 누구한테 이렇게 굴욕적으로 당한 적은 없었다.아무리 성질이 거칠고 제멋대로에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화소붕이지만 그도 알 건 안다.최 씨 가문이 비록 최고의 가문은 아니지만 도성에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관청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화소붕은 눈을
화소붕은 괴로운 듯 목을 움켜쥐며 일어섰고 얼굴에는 잔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이 일로 그들은 손해를 보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만회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게다가 지금 최문성이 하현을 도와주고 있다면 다음에는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직원들이 얼굴을 맞고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하현은 차갑게 말했다.“어디 한번 다시 건드려 보시지?”“퍽!”옆에 있던 최문성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안나는 직원들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내가 이 사람들을 건드리면 뭐 어떻게 하려구? 내가 내 발로 이 사람들 찼어.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할 수 있어?”“쉭ㅡ"안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현이 한 걸음 내디뎌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퍽!”안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뭔가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쓰려고 했지만 하현의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손쓸 틈이 없었다.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의 한 방에 안나는 사정없이 휘청거리고 있었다.이 모습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하현의 힘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현은 기세를 몰아 안나에게 뺨을 한 대 더 갈겼다.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그녀는 이탈리아 군대의 왕이자 화소붕의 최고 강한 부하였다!안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하현을 바라보면서 왼손은 허리춤의 총기를 향해 뻗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손이 총기에 닿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그녀의 단전을 발로 세게 후려쳤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안나의 몸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힘이 모조리 빠져버렸다.“어떻게 해 줄까?”하현은 오른발을 안나의 얼굴에 얹혀 조금씩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내가 당신을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널 죽일 수도 있어!”“퍽ㅡ"하현은 발로 안나를 걷어찼고 그녀는 벽에 부딪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사람들은 풀어줬고 그럼 이제 돈은?”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
이 말을 듣고 하현은 돌아서서 형나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집에서 볼 때보다 밖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이 훨씬 성숙하고 듬직했기 때문이다.비록 아직 철없이 밀어붙이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럴 때는 노련한 기질이 더해져 함부로 나서지 않고 슬쩍 뒤로 빠지는 것이다.하현은 잠시 지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없어. 여기서 잠깐 봐 봐”“보고 나서 바로 가게 물색하러 가 봐야 해.”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버럭 소리를 지를 뻔했다.지금 자신이 얼마나 우아하게 참고 있는데 그게 할 소린가?그러나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온유하고 정숙한 척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며 했다.눈먼 장님에게 아무리 눈빛을 보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형나운은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천천히 자신의 코트를 벗고 하현이 보는 앞에서 앞 단추 두 개를 풀었다.그녀는 자신의 심장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오늘 아침 무술을 연마할 때 여기가 답답해져서 죽을 뻔했어요.”“한번 봐 보세요.”말을 하면서 형나운은 은근슬쩍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단추 풀지 않아도 돼.”“그러다가 험상궂은 당신 경호원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래?”“왜요? 무서워요?”형나운은 놀리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도 두려울 때가 있어요?”“내가 지금 누가 날 추행한다고 소리 지르면 내 경호원들이 쫓아와 당신을 쫓아내기라도 할까 봐요?”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도대체 나한테 봐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옷 입어.”“딱 3초 줄게. 내 말대로 하지 않고 계속 이런 식이면 난 그냥 갈 거야!”하현이 약간 화가 난 것을 보고 형나운은 비로소 다소곳해졌다.“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난 정말 이 거추장스러운 외투는 안 입고 싶은데요. 이
형나운의 말을 듣고 우다금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정말로 하현이 자신의 딸을 뒷문으로 들여보냈을 줄은 몰랐다.그러니까 하현이 없었다면 자신의 딸은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얘기다.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우다금은 갑자기 난처한 듯 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하지만 우소희는 하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깔보던 데릴사위의 도움을 받았다니!그걸 인정한다면 앞으로 설은아의 집에 가서 어떻게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어제 설은아 앞에서 얼마나 큰소리 떵떵 치고 나왔는데 이렇게 단번에 고개를 숙일 수 있겠는가?이런 생각이 스치자 우소희는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채 기세를 꺾지 않았다.“형 대표님, 인사팀 팀장님이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이 회사가 사람의 외모나 능력을 중시했기 때문 아니겠어요?”“데릴사위가 뒷문으로 들여보냈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우소희는 나름 상류사회에서 놀던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섞어가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몇몇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 경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이없어했다.그들은 우소희가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우소희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형나운, 이 사람이 데릴사위인 내 도움은 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 그럼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줘!”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홀연히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형나운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무 팀장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지시했다.“하현이 그렇게 말했으니 분부대로 해. 우소희 씨가 그렇게 능력이 출중하다고 자신하니 공정하게 원칙에 따라 채용하도록 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줘야지.”“누가 청탁을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어. 스스로의 능력이 가장 중요해.”형나운의 말을 듣고 무 팀장은 곧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우소희 씨. 스스로 능력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말했다.“선생님, 여기는 형 씨 가문 그룹입니다. 무엇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기업이죠.”“만약 당신이 여기서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운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이때 몇몇 경비원도 냉담한 표정으로 걸어왔다.하현은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힐끔 보며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2분 남았어요.”우소희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현, 그만해요. 센 척 좀 그만해요!”“당신이 그런다고 누가 내려올 줄 알아요?”“잘 들어요. 당신이 설령 간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해도, 혹은 김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할지라도 이럴 자격은 없어요. 알겠어요?”우다금도 하현을 한심스러운 듯 노려보며 냉소를 연발했다.“하현, 우리 앞에서 허풍 떠는 짓 그만해!”“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그래? 어?”“여기 대표님이 내려와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묻힐 곳도 없이 이승을 떠돌 거야!”“내가 한마디 충고할게.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썩 꺼져! 얼른!”“그리고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대표님한테 나쁜 인상을 주게 생겼다고!”“우리 딸은 앞으로 연봉 이억을 받을 인재야!”“당신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우다금은 하현이 자신들을 등에 업고 뭔가 이득을 볼 심산으로 여기 왔다고 확신했다.그런 목적이 들통났으니 이판사판으로 사람을 불러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데릴사위놈이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꼴이라니!고약한 놈!죽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1분 전.”하현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개의치 않았다.“내가 당신이라면 벌써 전화를 걸었을 거예요.”“일이 잘못된다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당신이 형나운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갈 텐데?”하현이 기세 좋게 몰아붙이자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잠시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하현, 이제 그만해. 충분히 했잖아!”
우다금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서더니 하현에게 달려왔다.“당신 여기 뭐 하러 왔어? 어?”“설마 당신 장모가 우릴 미행이라도 하라고 시켰어?”“떠도는 소문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당신 처가는 이제 파산이야!”“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우리 덕을 보려고 하는 거지!”우다금은 최희정 일가에 대한 미움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았다.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자기 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으니까 사위를 대동해 뭐라도 덕을 보려고 치근덕거리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썩 꺼져! 꺼지라고!”우다금은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자처럼 포효했다.“어쨌든 형 씨 가문 그룹에서 너 같은 놈을 경비로 부를 일은 없어!”“형 씨 가문 그룹이 어떤 곳인지나 알아?”“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으면 발도 들이지 못할 그룹이야!”“모두가 우리 딸처럼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하현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우다금의 억지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하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우소희는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말했다.“하 씨! 들었어?”“이곳은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빨리 꺼져! 안 꺼져?!”“어서 꺼지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사람을 안다는 걸 무 팀장님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품위가 완전히 떨어진다고!”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현을 밀치려고 했다.하현의 존재가 그녀들에게는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가 형 씨 가문 그룹에서 어떻게 잘생긴 갑부들을 낚을 수 있겠는가?하현이 한 발짝 물러서며 우소희의 손을 피했다.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러워서였다.그는 소위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과는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감히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우소희는 자존심이 확 상했다.뭔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두 모녀를 본 하현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예정대로라면 우소희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 보고를 하러 올라갔을 텐데 왜 로비에 이렇게 있는 것인가?결국 하현은 우다금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거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인사팀 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우소희 엄마, 우다금입니다.”“아, 맞아요. 맞아요. 바로 오늘 출근하려던 우소희예요! 좋은 연봉으로 입사하게 된 우소희요!”“사실은 어제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느라 우리 딸이 술을 너무 먹어서 오늘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쨌든 우리 소희는 인재잖아요!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주시면 어떨까 해서요.”하현은 어이가 없었다.정말로 가지가지 하는 진상 모녀였다.어렵게 형 씨 가문 그룹에 취직을 시켜줬더니 지각을 해?그러고도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우리 딸이 여기 입사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데 가지는 않을 거예요.”우다금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우리가 여기 로비에 있는데 팀장님이 좀 내려와서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아, 그리고 점심은 너무 오버할 필요없이 고위층 몇 명과 자리를 마련해서 인사시켜 주면 됩니다.”“참고로 우리 딸은 82년산 라피트만 마셔요. 피부가 상할까 봐 고급술만 마시죠.”“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친 우다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뒤 우소희를 쳐다보았다.“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도 아니잖아?”“우리 딸 같은 출중한 인재를 모셔가는 형 씨 가문 그룹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네가 이 회사에 오지 않는다면 형 씨 가문 그룹은 석 달도 안 되어서 문을 닫을 거야!”“아마 무 팀장이 곧 내려와서 우릴 맞이할 거야.”우다금의 말에 프런트 데스크의 예쁜 직원과 잘생긴 경비원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
한바탕 휘몰아치고 맞이한 밤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했다.최희정은 가끔 이를 악물었다가 화가 나서 헐떡거렸다가 도저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찌감치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민효와 풍수관 일을 상의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형나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기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맞고 싶어?”하현의 말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서운 기운을 감지한 형나운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있어요?”하현은 무심하게 내뱉었다.“시간 없어. 가게를 보러 가야 해. 바빠.”“당신이 원하는 가게, 나한테 없을 것 같아요?”형나운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내가 삼백 개는 더 보여줄 수 있어요.”“아니야. 필요없어. 내가 찾을 수 있어.”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할 말 없으면 끊어.”“아,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이 어제 나한테 부탁한 일 다 처리해 줬는데 이제 와서 입 싹 닦을 거예요?”형나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형나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말했다.“나의 주인님, 지금 하녀를 도와줄 시간이 좀 있을까요?”“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 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지금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식물인간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오늘 잠시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요? 주인님이라면 날 구해 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