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했다.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들 이상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더니 잠시 후 누군가 참지 못하고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 회장님, 머리가 아프신 건 아니죠? 회장님이 이명준의 손을 부러뜨린 후에 그가 회장님께 책임을 묻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순순히 대리권 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갖다 줄 거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하 회장님, 바보세요? 아니면 우리를 다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이 대표님이 회장님을 고소하지 않고 몇 통의 변호사 서신을 보낸다면 고맙겠지만 이건 완전 불가능한 일이에요. 머리가 이상해진 거죠?”김정준은 과장된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 기억이 났네요. 오늘 유람선에 탔을 때 우리 하 회장님이 이 대표님에게 오늘 오후 2시까지 대리권 계약서를 우리 왕씨그룹으로 가지고 오라고 경고했어요!”“만약 하지 못하면 자기가 직접 관을 사가지고 와야 할 거라고요!”“우리 집행 회장님이 오만하고 제멋대로 횡포를 부린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나 김정준이 대구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 무슨 세자 도련님을 만나본 적이 없었겠어요?”“이렇게 재주도 없는 놈이 허세를 부리면서 제멋대로 구는 사람은 정말 처음 만나봤어요!”사람들은 김정준의 말을 듣고 아침의 장면을 떠올리며 하현을 비웃었다. 이 놈이 세 살짜리 아이 다루듯 하는 건가? 이명준의 손을 부러뜨리고 제 시간에 계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협박을 하다니?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몇몇 아름다운 임원들은 지금 모두 팔짱을 끼고 경멸하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털도 다 자라지 않은 이 녀석은 위아래 입은 옷을 다 합쳐도 20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꼴을 하고 감히 뻐기다니?이것은 그야말로 병이다. 왕화천은 이때도 빙그레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가늘고 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마신 후 담담하게 말했다. “하 도령, 나는 네가 혼자서도 여러 명과 싸울 만큼 솜씨가 좋다는 걸 알고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이명준 대표가 어떤 신분이야? 무슨 지위냐고? 그가 어떻게 우리 왕씨그룹 입구에서 무릎을 꿇을 수가 있어?”“그는 하현에게 손이 부러뜨려졌잖아. 변호사 서신 몇 통 보내지 않은 것 만으로도 이미 우리 체면을 세워준 거 아니었어? 그가 우리 회사 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고? 무슨 웃기는 소리야?”“안내원, 너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이 대표가 하현한테 회사 정문에서 무릎 꿇고 그에게 사과하라고 한 거 아니야?”그곳에 있던 임원과 주주들을 모두 조용해졌다가 잠시 후 다시 떠들썩 하더니 의견이 분분했다. 왕화천 조차도 순간 안내 데스크 아가씨가 너무 급해서 잘못 말한 것이라고 반응을 했다. 이때 한 무리의 시선이 안내 데스크 아가씨에게 쏠리며 그녀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대표님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이 말을 듣고 다들 흠칫 놀랐다. 망했다. 이건 군대를 일으켜 죄를 물으러 온 것이다!김정준은 더 펄쩍 뛰며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비, 경비원 어디 있어!”“기억해. 절대 왕주아와 하현 두 사람 도망 못 가게 해!”“이따가 이 두 사람은 이 대표님에게 해명을 해야 해!”한 무리의 임원들과 주주들은 전부 우르르 그룹 로비로 몰려갔다. 급히 달려온 경비원 몇 명은 경계하는 얼굴로 하현과 왕주아를 노려보며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두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왕주아의 작은 손을 끌고 그룹 로비로 갔다. 딱 봐도 이때 로비 한복판에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중국사람들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이 중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했다. 더구나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중국 사람들은 하얀색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젊은 여인들은 그림 같은 미모에
하현은 김정준을 상대하는 것이 귀찮았다. 담담한 기색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을 쳐다보았다. 중국 상성재벌 극동 지역 대표, 이은지.“이 대표님이 오셨는데 왕 아무개가 먼저 마중을 나오지 않다니!”왕화천은 이은지를 분명 알고 있었다. 이때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온화한 얼굴로 반기며 나왔다.그의 곁에는 그룹의 몇몇 핵심 임원들도 따라나오며 인사를 했다. 이은지라는 사람에 대해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지난 달 대하 대표 이대성이 해임 되었다. 그를 대신해 강력한 지위를 얻은 사람은 바로 극동지역 대표 이은지였다. 쉽게 말해 이은지는 상성재벌 내부에서 권세가 이대성 보다 더 무거웠다!지위도 이대성보다 몇 배나 더 높은지 모른다. 이런 큰 인물이 왕씨그룹 같은 작은 곳에 나타나다니, 왕화천 조차도 약간 총애를 받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왕화천을 놀라고 기쁘게 했지만, 마음속에는 한 줄기 불안한 마음이 감돌았다. “왕 이사장님, 예의가 바르시네요.”이은지는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 이은지가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왕 이사장님은 개의치 말아주세요.”말을 마치고 이은지는 몸을 옆으로 돌려 하현이 있는 쪽을 향해 인사를 했다. 하현이 아무렇게나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이은지는 몸을 바로 세웠다. 하지만 그녀의 일련의 동작은 왕화천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이은지가 자신에게 이렇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왕화천은 살짝 어리둥절해 하더니 곧 알아차렸다. 아마도 자신이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에 오를 것이란 소문이 돌자 이은지가 자신에게 이렇게 예의를 갖추게 된 것 같다. 이 생각에 미치자 왕화천도 거리낌 없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 대표님, 별말씀을요. 우리 두 집안은 전에도 협력한 적이 있잖아요. 앞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겁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시다니 왕씨그룹의 영광입니다.” “참, 이 대표님이 오늘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네요?”“
김정준과 사람들의 놀라고 무서워하는 시선 속에 이명준은 왕주아가 있는 곳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왕 회장님, 제가 눈이 있었는데도 태산을 몰라봤습니다!”“오늘 이 모든 건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제발 살려주세요!”곧 ‘쿵쿵쿵’ 머리를 박으며 절을 하는 소리와 함께 이명준는 머리가 깨져 피를 흘렸다. 얼굴은 핏물로 범벅이 됐지만 감히 닦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은지는 이 모습을 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왕주아를 보며 해명을 했다. “이명준은 저희 이씨 집안의 방계고, 제 심복인 셈입니다.”“그래서 제가 그에게 대구 대표를 임명했던 겁니다.”“원래 저는 그에게 협력 상대를 잘 선택해서 대구에서 상성재벌의 이미지와 이익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가 공적인 이름을 빌어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고 힘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아침에 왕 회장님에게 상스런 말을 퍼부은 것뿐 아니라 하 회장님을 건드리려고 했다니 간이 너무 컸네요!”“이런 일은 우리 상성재벌 내부에서는 절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이런 일이 발생한 건 다 제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성의를 표하기 위해 오늘 상성재벌을 대표해 사과 드립니다.”“이명준에게 어떻게 벌을 내리고 싶으시든 저 이은지는 전부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이 말을 꺼내자 모두들 어리둥절해 했다. 상성재벌 내부의 규정이 이렇게 엄격하고, 이은지 대표가 상과 벌이 분명한 주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가 예쁜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런 기백은 대구의 세자 도련님들 못지 않았다. 관건은 많은 사람들 눈에 이미 하현과 왕주아는 죽은 목숨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기사회생을 하게 될 줄이야?이게 도대체 얼마나 개똥 운인가!?왕화천도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대표님, 말씀이 좀 심하신 거 같네요.”“이명준 대표님은 젊으니 어느 정도 패기
왕주아는 왕화천을 무시한 채 자기도 모르게 하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비록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은지가 사람들을 데리고 사과를 하러 올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하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하현 만이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자, 그만 박으세요. 바닥이 부서지면 당신이 배상할 거예요?”이명준은 머리를 백 번 박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빙그레 웃으며 이명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아침에 너한테 말한 거 기억하지?”“내가 뭐라고 했지?”이명준은 눈꺼풀을 극렬하게 떨며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오후 2시 대리권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고……”“그럼 계약서는?”하현은 웃으며 말했다. “계약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이명준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하 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하현은 일어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은지 아가씨 체면을 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줄게.”“또 다른 손, 스스로 잘라 버려.”“그리고 나서 또 다시 나를 건드렸다간 자발적으로 관에 들어가도록 해.”이명준은 얼굴색이 ‘쓱’하고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하 회장님의 자비에 감사 드립니다. 하 회장님, 봐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왕 아가씨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제 어머니처럼 효도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이명준은 왼손을 바닥에 내리치더니 ‘털컥’하는 소리가 들렸고 왼손은 부러졌다. 하지만 이명준은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 채 왼손을 매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 장면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하나같이 떨게 만들었다. 눈꺼풀이 끊임없이 떨렸다. 어떤 일은 직접 보는 것과 소문으로 듣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이 임원들과 주주들은 하현과
다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명준이 재빠르게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김정준입니다!”“오늘 점심 때 그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왕 회장님을 잡아 먹으라고 꼬드겼습니다!”“게다가 지금 왕 회장님의 자리가 불안정하니 우리 상성재벌 대구 대리권을 따내지 못하면 쫓겨날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이걸 가지고 그녀를 손에 넣게 되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했습니다!”“저도 원래 충동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근데 김정준이 자꾸 저를 부추기면서 왕 회장님은 아직 처녀라 만약 먹을 수만 있다면 한 평생의 복이라고 했습니다.”“제가 한 순간 참지 못하고 그만……”여기까지 말하고 이명준은 쿵쿵쿵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하 회장님, 왕 회장님, 이 대표님, 저는 짐승입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하지만 이 일의 장본인을 놓아줘서는 안됩니다!”이명준의 말을 듣고 하현은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왕주아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왕화천은 이미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명준 대표님, 음식은 아무거나 먹을 수 있지만 말은 절대 함부로 하시면 안됩니다.”“증거를 가지고 말씀을 하셔야죠!”“증거가 없으면 우리 왕씨그룹의 임원들을 모욕한 게 되는 겁니다. 상성재벌이 돈과 권세가 있다고 해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김정준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이명준 대표님! 저와 친하지도 않잖아요. 제가 어떻게 대표님께 이런 전화를 할 수 있겠어요?”“제발 착한 사람에게 누명 씌우지 마세요!”“제가 오늘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대표님을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고 한 거지 다른 의미는 없었어요!”이명준은 차갑게 말했다. “김정준, 내가 깜빡하고 말하지 못한 게 있어.”“내가 대구에 온 후로 알게 된 게 사람은 항상 한 수를 남겨둬야 한다는 거였어. 그래서 내 통화내용은 다 녹음이 되어 있어.”“증거는 내 핸드폰에 있어.”말을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그를 처음 만난 듯 왕화천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닌 발가락으로 생각하더라도 김정준 사건의 배후에는 왕화천이나 김애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화천이 이렇게 단호하게 김정준을 때려 죽인 것으로 이미 문제를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하현 조차도 왕화천의 잔인함과 과감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효웅의 기풍이다!지금 이 순간 하현 조차도 그의 잘못을 가려 낼 수가 없었다.어쨌든 딸을 사랑한 아버지가 진실을 알고 난 후 죄를 지은 장본인을 죽인 것은 이해 할 만했다. 이명준은 이 광경을 보고 온몸이 오싹해졌다. 이때 그는 이은지가 왜 하현이 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라고 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하현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지금 그의 최후는 김정준과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물들의 게임 속에서 그 같은 사람은 결국 언제라도 버려질 수 있는 바둑알일 뿐이었다. “짝짝짝______”이은지가 갑자기 가볍게 손뼉을 치자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왕 이사님은 역시 기분파시네요. 놀라워요.”“왕 이사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우리 상성재벌이 사과하는 의미로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왕화천의 안색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가 비바람에 익숙하다고 해도 지금은 조금 움찔했다. 이은지가 손짓을 하자 그녀의 비서가 계약서 세 부를 가져왔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모두 서명을 했다. 이은지는 계약서를 들고 곧장 왕주아 앞으로 가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왕 회장님, 이건 우리 상성재벌 대구 대리권 계약서입니다.”“서명하시고 도장만 찍으시면 오늘부터 대구 대리권은 회장님 것이 될 겁니다!”“그리고 이번 일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 이 대리권의 계약 대상은 회장님입니다!”“그러니 앞으로 회장님이 직접 회사를 차리셔도 되고 왕씨그룹에 권한을 위임하셔도 되고 모두 회장님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이……어떻게 이렇게 좋은……”왕주아는 멍하니 계약서를
“무슨 뜻이야!?”왕화천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왕 이사장님, 귀하신 몸이라 바쁘셔서 저와 내기하신 걸 잊으신 거 같네요.”“그럼 제가 여기서 한 마디 귀띔해 드릴 필요가 있겠네요.”“당신과 내가 약속한대로 오늘 주아가 상성재벌의 대구 대리권 계약을 맺는다면.”“그럼 당신은 자리에서 물러나 양보해야 돼요!”“왕 이사장님, 아, 지금 계속 당신을 이사장이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겠네요.”“왕 선생님, 다행히 제가 기억력이 좋아 제때에 깨우쳐 드렸네요.”“그렇지 않았으면 비즈니스 계에서 당신이 신용을 잃을 뻔했어요.”“어쨌든 당신은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를 준비하는 사람이잖아요.”“그런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신뢰를 잃어서는 안되잖아요. 그렇죠?”이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몇몇 아름다운 여자 임원들은 작은 입을 가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놈이 퇴위를 강요하고 있네!그가 여유로운 얼굴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구절절 왕화천의 약점을 찔렀다. 왕화천의 얼굴색은 순간 검게 변했고 하현은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좋아. 대단한 하현!”“대단한 집행 회장!”왕화천은 안색이 변하더니 결국 자신의 가슴에 있던 사원증을 바닥에 내려놓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약속한 대로 나는 이사장 직을 사임할게.”“하지만 왕주아의 승진은 이사회의 뜻에 달려 있어.”하현은 빙그레 웃으며 장내를 한 바퀴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요. 제가 보기에 이사회 분들이 다 여기 계시고, 주주회 대표도 계시니 여기서 결정을 내립시다.”“왕주아가 이사장을 겸임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왕주아가 이사장을 겸임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서 있어 주세요.”“너______”왕화천은 안색은 더없이 어두워졌다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
”생화학 무기?”이것을 보자마자 엄도훈은 숨을 헐떡이며 꿈틀거리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당신들이 미국과 한통속이 되어 이렇게 역겨운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그러나 당신들이 이런 물건을 들이댄다고 해서 내가 눈 하나 깜빡할 줄 알아?”“당신들이 내 몸을 갈기갈기 찢고 뼈를 가루로 만든다고 해도 난 절대 두희랑을 배신하지 않을 거야!”“어서 단번에 날 죽여!”“그렇지 않으면 당신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내가 살아 돌아간다면 당신들 하나하나 갈기갈기 찢어 버릴 테니까!”“오호! 그 당찬 기개 정말 마음에 들어!”요염한 눈매의 여자가 메이크업 파우치를 닫고 나서 주사기를 꺼내 집게손가락으로 툭툭 털었다.“다만 그런 당찬 기개도 우리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어.”“당신은 이게 뭔지 잘 알 거야. 우리가 이걸 당신 몸에 넣기만 하면 1분 안에 아무리 기개가 강철 같은 사람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게 될 거야!”“그렇게 되면 당신은 우리 말에 절대 복종하게 될 거야!”이 말을 듣고 엄도훈의 안색이 크게 일그러졌고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이 바닥에 오랫동안 굴러먹은 그는 분명 주사기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임에 틀림없다.미국인들이 개발한 생화학 무기는 사람을 해치는 가장 사악한 술법인 묘강고술의 특성과도 깊이 결합되었다.일단 몸에 들어가면 사람이 절대 자신의 의지력으로 살아갈 수 없고 완전히 통제력을 잃게 된다.순간 엄도훈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뻔뻔스러운 놈들!”요염한 여인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여섯 은둔가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 두희랑을 죽이게 된다면 서남 천문채의 금정 지부는 수장이 없는 꼴이 돼.”“우리가 조금 비열하고 뻔뻔스럽다고 해서 그게 뭐 어때서?”엄도훈은 치를 떨며 내뱉었다.“그 당시 당신들을 내쫓은 사람은 금정 간 씨 가문 간민효였어!”“당신들은 사람도 아니야!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야! 지금 와서 두희랑에게 그 분풀이를 하려고 하다니!
회사 입구를 나온 하현은 아우디 A8 안으로 들어가 나박하에게 시동을 걸라고 손짓을 했다.나박하는 방금 그 장면을 목격했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지금 하현은 나박하의 눈앞에서 흉악한 발톱을 드러낸 셈이었다.이를 통해 나박하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하현이 결코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가 아니라는 것,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시동을 건 후 나박하는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하현, 어디로 갈까요?”“엄도훈과 자금산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어요?”“그를 만나야죠.”“만나서 확실하게 얘기해야죠. 그가 이천억을 받아온다면 우린 한 푼도 가지지 않을 거라고.”“이천억. 그들 신사 상인 연합회가 십 년 동안 보호비를 걷어도 이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아마 그는 열심히 돈을 받아오려고 할 거예요.”하현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김탁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김탁우의 천성으로 봐서 그는 절대 이 돈을 갚지 않을 것이다.더군다나 오늘 금정 간 씨 가문 간소민이 함께 있었으니 김탁우는 이 사람 앞에서 절대 체면을 구길 수 없을 것이다.김준영을 몰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남 천문채을 공범으로 만들어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것이다.여섯 은둔가 중 두 씨 가문이 이 일을 가장 좋아할 것이다.30분 후 나박하의 차는 짓다 말아 흉가가 된 별장 근처에 멈춰 섰다.이곳은 그들이 엄도훈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하현은 이 기회를 틈타 엄도훈 뒤에 있는 서남 천문채 수장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눈앞을 보니 엄도훈의 차 이외에도 여러 대의 지프가 나타나 있었다.이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엄도훈의 개조된 차량을 들이받았고 현장에는 칼자국과 탄환 자국이 흩어져 있었다.짐작컨대 이곳에서 방금 치열한 혈투가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차 문을 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박하, 차를 구석으로 몰아요. 시동 끌지
”게다가 당신은 방금 모든 것이 공평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이제 와서 좋은 말할 때 그만하라는 거야?”“내가 오늘 고의로 이런 문제를 일으켰더라도 분명히 해야 해!”“어제 김탁우가 내 집복당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상대가 놀자고 하는데 놀아 줘야지!”“지면 인정하고 혼쭐이 나야지.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하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간소민은 기세를 수그리며 말했다.“하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김탁우는 점잖고 교양 있는 사람이야. 당신이 말한 그런 사람이 아니야!”김탁우도 차갑게 얼굴이 가라앉았다.속으로 짚이는 데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발설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하현, 함부로 남을 헐뜯지 마! 증거 있어?!”김나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이처럼 기세 좋게 대드는 것을 보고 아직 이홍파 측이 하현에게 손을 쓰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있을 대역전극을 볼 기대로 차올랐던 것이다.하지만 이홍파는 이미 하현에게 손을 썼을 뿐만 아니라 무참히 짓밟힌 후였다.의기양양하게 하현을 찾아갔지만 결국 하현은 아무 일 없이 끝났고 오히려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은 단번에 고개를 숙였다.“김탁우, 함부로 남을 헐뜯는 사람인지 아닌지,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야.”“지금 이런 얘기하는 게 의미가 있어?”하현은 당당한 얼굴로 김탁우를 바라보았다.“설은아의 체면을 봐서 특별히 천억에 합의해 주는 거야. 내일 밤 어두워지기 전에 수표를 가져와야 할 거야.”하현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밀어붙이자 간소민은 버럭 화를 냈다.“하 씨!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당신이 금정에서 이렇게 함부로 날뛰는 건 우리 간 씨 가문 여자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잖아!”“내 말 똑똑히 들어! 이 일은 여기서 끝내야 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내가 간민
”비슷한 물건들이 항성과 도성 경매장에서 대략 이천억에 팔렸어!”“나도 방금 형 씨 가문에서 이천억에 샀어.”“봐. 여기 가격표가 있잖아?!”하현은 비닐봉지를 열어 바닥에 파편을 쏟으며 영수증을 한 장 꺼냈다.“내 아내한테 결혼기념일 선물로 주려고 산 거였어!”“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잘 봐!”“당신 차에 부딪혀 완전히 부서졌어!”“이천억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인데 당신들이 이천만 원을 준다고 해서 이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지금 나 놀리는 거야?”“물론 당신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 그렇다면 감정 요청을 해 봐! 그럼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어!”이천억?!김 씨 남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가 이내 파랗게 질려 버렸다.두 경찰도 어안이 벙벙한 채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하현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이 일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가?하현은 확실히 정당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로교통법이었다.하현은 골동품 도자기 영수증도 가지고 있었다.완벽했다.간단히 말해서 이 사건의 모든 증거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하현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긴 했지만 두 경찰은 반발할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방금까지 의기양양해하던 간소민은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굳어졌다.하현이 너무 터무니없는 말을 쏟아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천억이라니!김탁우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액수였다!만약 김탁우가 죽는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저희는 사고의 책임 소지만 밟힐 수 있습니다. 그 후 어떻게 처리할지는 양측이 서로 협의해야 합니다!”“협의가 안 되면 법정에서 해결하시면 됩니다!”두 경찰은 골치 아픈 일에 엮일까 봐 얼른 책임 소지를 밝힌 책임 인정서만 발급하고 줄행랑을 쳤다.이것은 도저히 자신들이 건드릴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김탁
”김탁우. 미안하지만 이번 사고를 전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책임은 당신한테 있습니다.”김탁우가 백일몽을 꾸고 있을 때 대머리 경찰이 현장을 자세히 살핀 후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도로법에 따라 당신은 하현에게 모든 손해 배상을 해야 합니다.”김탁우의 득의양양한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분명 생각지도 못한 결과임에 틀림없었다.그는 하현이 경찰서 사람들과 내통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경찰들은 순찰 중 무작위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전혀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가 쓸데없는 말을 내뱉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더욱 곤란해질 것이 뻔했다.순간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갔다.별 볼 일 없는 사람 한 명 짓밟는 일이 이렇게 번거로울 줄은 몰랐다.“아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잘 들어요! 이 일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요!”김나나는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 사람은 그저 무책임한 인간일 뿐이에요. 여기저기 사기나 치고 다니는 인간이라고요! 경찰이라면 이런 사람을 잡아가서 취조를 해야지 우리한테 책임을 전가하다니요?”“당신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아니면 머리가 아주 나쁜 거예요?”김나나가 강경한 얼굴로 몰아붙이자 경찰은 침착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횡단보도에선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로교통법입니다.”“불복한다면 소송을 하십시오.”“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전적으로 당신들 잘못입니다!”김나나는 이를 악물고 버럭 소리쳤다.“우리가 지나가는데 갑자기 나타났으니 당연히 이 사람 책임이죠!”경찰은 점잖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우리가 CCTV를 확인했는데 사고 당시 차를 몰던 김탁우가 옆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했어요.”“그래서 당신들 잘못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건 어딜 가도 바뀌지 않아요.”또 다른 경찰이 영상을 꺼내 김 씨 남매에게 보여 주었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