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지금 김정준은 왕주아와 하현을 쓸어내면 대리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있었다. 이 순간 전에 적개심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임원들도 하현과 왕주아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적의로 가득 찼다. 어쨌든 돈 때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화천은 이 장면을 보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는 김정준에게 앉으라고 눈짓을 한 후 기침을 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일이 명확해 질 거야.”“주아야, 솔직히 말해서 네가 회장직에 취임한 첫 날이니 나는 아버지로서 네 편이 돼야 해.”“근데 넌 정말 너무 미성숙하다. 실망스러워.”“이렇게 중요한 사업에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하다니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를 못하네.” “네 능력으로는 회장이라는 직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걸 확신하게 됐어.”“정말 실망스럽다!”“앞으로는 이사회와 주주 대표들을 어렵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왕주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는 왕화천이 자신을 강제로 사직시키기 위해 이런 말들을 내뱉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사업을 위해서 자신이 중국 사람에게 몸이라도 바쳐야 한다는 건가?원래 회장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왕화천의 인정을 받아내 왕씨 집안에서 떳떳하게 살고 싶은 작은 희망이 있었다.하지만 오늘 이 모습을 보고 왕주아는 아주 확실해졌다. 아버지의 눈에 자신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었다. 도구가 어떤 결말을 맺게 되든 자신의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대리권을 위해 자신을 중국 사람에게 보내고,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에 앉기 위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 앞으로 필요할 경우 그는 분명 자신의 목숨을 이익이 되는 것과 바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왕주아는 비웃어야 할 사람이 자신인지,
조용했다.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들 이상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더니 잠시 후 누군가 참지 못하고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 회장님, 머리가 아프신 건 아니죠? 회장님이 이명준의 손을 부러뜨린 후에 그가 회장님께 책임을 묻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순순히 대리권 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갖다 줄 거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하 회장님, 바보세요? 아니면 우리를 다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이 대표님이 회장님을 고소하지 않고 몇 통의 변호사 서신을 보낸다면 고맙겠지만 이건 완전 불가능한 일이에요. 머리가 이상해진 거죠?”김정준은 과장된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 기억이 났네요. 오늘 유람선에 탔을 때 우리 하 회장님이 이 대표님에게 오늘 오후 2시까지 대리권 계약서를 우리 왕씨그룹으로 가지고 오라고 경고했어요!”“만약 하지 못하면 자기가 직접 관을 사가지고 와야 할 거라고요!”“우리 집행 회장님이 오만하고 제멋대로 횡포를 부린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나 김정준이 대구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 무슨 세자 도련님을 만나본 적이 없었겠어요?”“이렇게 재주도 없는 놈이 허세를 부리면서 제멋대로 구는 사람은 정말 처음 만나봤어요!”사람들은 김정준의 말을 듣고 아침의 장면을 떠올리며 하현을 비웃었다. 이 놈이 세 살짜리 아이 다루듯 하는 건가? 이명준의 손을 부러뜨리고 제 시간에 계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협박을 하다니?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몇몇 아름다운 임원들은 지금 모두 팔짱을 끼고 경멸하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털도 다 자라지 않은 이 녀석은 위아래 입은 옷을 다 합쳐도 20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꼴을 하고 감히 뻐기다니?이것은 그야말로 병이다. 왕화천은 이때도 빙그레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가늘고 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마신 후 담담하게 말했다. “하 도령, 나는 네가 혼자서도 여러 명과 싸울 만큼 솜씨가 좋다는 걸 알고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이명준 대표가 어떤 신분이야? 무슨 지위냐고? 그가 어떻게 우리 왕씨그룹 입구에서 무릎을 꿇을 수가 있어?”“그는 하현에게 손이 부러뜨려졌잖아. 변호사 서신 몇 통 보내지 않은 것 만으로도 이미 우리 체면을 세워준 거 아니었어? 그가 우리 회사 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고? 무슨 웃기는 소리야?”“안내원, 너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이 대표가 하현한테 회사 정문에서 무릎 꿇고 그에게 사과하라고 한 거 아니야?”그곳에 있던 임원과 주주들을 모두 조용해졌다가 잠시 후 다시 떠들썩 하더니 의견이 분분했다. 왕화천 조차도 순간 안내 데스크 아가씨가 너무 급해서 잘못 말한 것이라고 반응을 했다. 이때 한 무리의 시선이 안내 데스크 아가씨에게 쏠리며 그녀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대표님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이 말을 듣고 다들 흠칫 놀랐다. 망했다. 이건 군대를 일으켜 죄를 물으러 온 것이다!김정준은 더 펄쩍 뛰며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비, 경비원 어디 있어!”“기억해. 절대 왕주아와 하현 두 사람 도망 못 가게 해!”“이따가 이 두 사람은 이 대표님에게 해명을 해야 해!”한 무리의 임원들과 주주들은 전부 우르르 그룹 로비로 몰려갔다. 급히 달려온 경비원 몇 명은 경계하는 얼굴로 하현과 왕주아를 노려보며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두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왕주아의 작은 손을 끌고 그룹 로비로 갔다. 딱 봐도 이때 로비 한복판에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중국사람들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이 중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했다. 더구나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중국 사람들은 하얀색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젊은 여인들은 그림 같은 미모에
하현은 김정준을 상대하는 것이 귀찮았다. 담담한 기색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을 쳐다보았다. 중국 상성재벌 극동 지역 대표, 이은지.“이 대표님이 오셨는데 왕 아무개가 먼저 마중을 나오지 않다니!”왕화천은 이은지를 분명 알고 있었다. 이때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온화한 얼굴로 반기며 나왔다.그의 곁에는 그룹의 몇몇 핵심 임원들도 따라나오며 인사를 했다. 이은지라는 사람에 대해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지난 달 대하 대표 이대성이 해임 되었다. 그를 대신해 강력한 지위를 얻은 사람은 바로 극동지역 대표 이은지였다. 쉽게 말해 이은지는 상성재벌 내부에서 권세가 이대성 보다 더 무거웠다!지위도 이대성보다 몇 배나 더 높은지 모른다. 이런 큰 인물이 왕씨그룹 같은 작은 곳에 나타나다니, 왕화천 조차도 약간 총애를 받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왕화천을 놀라고 기쁘게 했지만, 마음속에는 한 줄기 불안한 마음이 감돌았다. “왕 이사장님, 예의가 바르시네요.”이은지는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 이은지가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왕 이사장님은 개의치 말아주세요.”말을 마치고 이은지는 몸을 옆으로 돌려 하현이 있는 쪽을 향해 인사를 했다. 하현이 아무렇게나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이은지는 몸을 바로 세웠다. 하지만 그녀의 일련의 동작은 왕화천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이은지가 자신에게 이렇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왕화천은 살짝 어리둥절해 하더니 곧 알아차렸다. 아마도 자신이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에 오를 것이란 소문이 돌자 이은지가 자신에게 이렇게 예의를 갖추게 된 것 같다. 이 생각에 미치자 왕화천도 거리낌 없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 대표님, 별말씀을요. 우리 두 집안은 전에도 협력한 적이 있잖아요. 앞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겁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시다니 왕씨그룹의 영광입니다.” “참, 이 대표님이 오늘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네요?”“
김정준과 사람들의 놀라고 무서워하는 시선 속에 이명준은 왕주아가 있는 곳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왕 회장님, 제가 눈이 있었는데도 태산을 몰라봤습니다!”“오늘 이 모든 건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제발 살려주세요!”곧 ‘쿵쿵쿵’ 머리를 박으며 절을 하는 소리와 함께 이명준는 머리가 깨져 피를 흘렸다. 얼굴은 핏물로 범벅이 됐지만 감히 닦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은지는 이 모습을 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왕주아를 보며 해명을 했다. “이명준은 저희 이씨 집안의 방계고, 제 심복인 셈입니다.”“그래서 제가 그에게 대구 대표를 임명했던 겁니다.”“원래 저는 그에게 협력 상대를 잘 선택해서 대구에서 상성재벌의 이미지와 이익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가 공적인 이름을 빌어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고 힘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아침에 왕 회장님에게 상스런 말을 퍼부은 것뿐 아니라 하 회장님을 건드리려고 했다니 간이 너무 컸네요!”“이런 일은 우리 상성재벌 내부에서는 절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이런 일이 발생한 건 다 제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성의를 표하기 위해 오늘 상성재벌을 대표해 사과 드립니다.”“이명준에게 어떻게 벌을 내리고 싶으시든 저 이은지는 전부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이 말을 꺼내자 모두들 어리둥절해 했다. 상성재벌 내부의 규정이 이렇게 엄격하고, 이은지 대표가 상과 벌이 분명한 주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가 예쁜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런 기백은 대구의 세자 도련님들 못지 않았다. 관건은 많은 사람들 눈에 이미 하현과 왕주아는 죽은 목숨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기사회생을 하게 될 줄이야?이게 도대체 얼마나 개똥 운인가!?왕화천도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대표님, 말씀이 좀 심하신 거 같네요.”“이명준 대표님은 젊으니 어느 정도 패기
왕주아는 왕화천을 무시한 채 자기도 모르게 하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비록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은지가 사람들을 데리고 사과를 하러 올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하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하현 만이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자, 그만 박으세요. 바닥이 부서지면 당신이 배상할 거예요?”이명준은 머리를 백 번 박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빙그레 웃으며 이명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아침에 너한테 말한 거 기억하지?”“내가 뭐라고 했지?”이명준은 눈꺼풀을 극렬하게 떨며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오후 2시 대리권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고……”“그럼 계약서는?”하현은 웃으며 말했다. “계약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이명준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하 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하현은 일어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은지 아가씨 체면을 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줄게.”“또 다른 손, 스스로 잘라 버려.”“그리고 나서 또 다시 나를 건드렸다간 자발적으로 관에 들어가도록 해.”이명준은 얼굴색이 ‘쓱’하고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하 회장님의 자비에 감사 드립니다. 하 회장님, 봐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왕 아가씨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제 어머니처럼 효도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이명준은 왼손을 바닥에 내리치더니 ‘털컥’하는 소리가 들렸고 왼손은 부러졌다. 하지만 이명준은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 채 왼손을 매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 장면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하나같이 떨게 만들었다. 눈꺼풀이 끊임없이 떨렸다. 어떤 일은 직접 보는 것과 소문으로 듣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이 임원들과 주주들은 하현과
다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명준이 재빠르게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김정준입니다!”“오늘 점심 때 그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왕 회장님을 잡아 먹으라고 꼬드겼습니다!”“게다가 지금 왕 회장님의 자리가 불안정하니 우리 상성재벌 대구 대리권을 따내지 못하면 쫓겨날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이걸 가지고 그녀를 손에 넣게 되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했습니다!”“저도 원래 충동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근데 김정준이 자꾸 저를 부추기면서 왕 회장님은 아직 처녀라 만약 먹을 수만 있다면 한 평생의 복이라고 했습니다.”“제가 한 순간 참지 못하고 그만……”여기까지 말하고 이명준은 쿵쿵쿵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하 회장님, 왕 회장님, 이 대표님, 저는 짐승입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하지만 이 일의 장본인을 놓아줘서는 안됩니다!”이명준의 말을 듣고 하현은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왕주아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왕화천은 이미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명준 대표님, 음식은 아무거나 먹을 수 있지만 말은 절대 함부로 하시면 안됩니다.”“증거를 가지고 말씀을 하셔야죠!”“증거가 없으면 우리 왕씨그룹의 임원들을 모욕한 게 되는 겁니다. 상성재벌이 돈과 권세가 있다고 해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김정준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이명준 대표님! 저와 친하지도 않잖아요. 제가 어떻게 대표님께 이런 전화를 할 수 있겠어요?”“제발 착한 사람에게 누명 씌우지 마세요!”“제가 오늘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대표님을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고 한 거지 다른 의미는 없었어요!”이명준은 차갑게 말했다. “김정준, 내가 깜빡하고 말하지 못한 게 있어.”“내가 대구에 온 후로 알게 된 게 사람은 항상 한 수를 남겨둬야 한다는 거였어. 그래서 내 통화내용은 다 녹음이 되어 있어.”“증거는 내 핸드폰에 있어.”말을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그를 처음 만난 듯 왕화천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닌 발가락으로 생각하더라도 김정준 사건의 배후에는 왕화천이나 김애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화천이 이렇게 단호하게 김정준을 때려 죽인 것으로 이미 문제를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하현 조차도 왕화천의 잔인함과 과감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효웅의 기풍이다!지금 이 순간 하현 조차도 그의 잘못을 가려 낼 수가 없었다.어쨌든 딸을 사랑한 아버지가 진실을 알고 난 후 죄를 지은 장본인을 죽인 것은 이해 할 만했다. 이명준은 이 광경을 보고 온몸이 오싹해졌다. 이때 그는 이은지가 왜 하현이 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라고 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하현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지금 그의 최후는 김정준과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물들의 게임 속에서 그 같은 사람은 결국 언제라도 버려질 수 있는 바둑알일 뿐이었다. “짝짝짝______”이은지가 갑자기 가볍게 손뼉을 치자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왕 이사님은 역시 기분파시네요. 놀라워요.”“왕 이사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우리 상성재벌이 사과하는 의미로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왕화천의 안색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가 비바람에 익숙하다고 해도 지금은 조금 움찔했다. 이은지가 손짓을 하자 그녀의 비서가 계약서 세 부를 가져왔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모두 서명을 했다. 이은지는 계약서를 들고 곧장 왕주아 앞으로 가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왕 회장님, 이건 우리 상성재벌 대구 대리권 계약서입니다.”“서명하시고 도장만 찍으시면 오늘부터 대구 대리권은 회장님 것이 될 겁니다!”“그리고 이번 일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 이 대리권의 계약 대상은 회장님입니다!”“그러니 앞으로 회장님이 직접 회사를 차리셔도 되고 왕씨그룹에 권한을 위임하셔도 되고 모두 회장님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이……어떻게 이렇게 좋은……”왕주아는 멍하니 계약서를
이런 생각이 스치자 하현은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두며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파고들지 않기로 결정했다.그리고 싱긋 웃으며 돌아서서 설은아의 방에서 나갔다.하현의 행동을 보고 설은아는 내심 못마땅한 듯 조용히 콧방귀를 뀌었다.남자가 너무 마음이 약한 거 아닌가 하고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던 것이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김 씨 가문의 일을 좀 더 조사해 보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나가기도 전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하현은 핸드폰을 힐끔 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하현,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하지 않으면 연락 안 할 셈이었어?”전화기 맞은편에서 간민효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간민효?”하현은 간민효가 이런 이른 시간에 자신에게 전화할 줄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했다.“아직도 간민효야? 그냥 성 떼고 이름 불러!”간민효의 목소리에는 살짝 비트는 어조가 실려 있었다.“아, 민효.”하현는 간민효의 성화에 응하며 말했다.“아침 일찍부터 웬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하현은 간민효 같은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아침 일찍 전화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침 일찍 차라도 한잔하자고 전화할 리 만무했다.“사실 공항에서부터 당신한테 관심이 많았어.”“그래서 사람을 보내 당신을 좀 살펴보라고 했지.”간민효는 자신의 행동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어쨌든 누군가가 날 상대하려고 당신을 보낸 거라면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미리 말하지 않은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 사과할게.”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해해.”기내에서 C4 총기도 발견되었으니 간민효 입장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고 찝찝한 일이었을 것이다.간민효가 사람을 보내 자신을 미행하고 조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래서 요 며칠 동안 당신이 한 일을 난 거의 다 알고 있어.”“그래서?”하현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시선을 올리며 물었다.“친한 어른이 한 분 계신데 한 달 전부터
설은아는 김나나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김나나, 난 네 오빠랑 일면식도 없고 얼굴도 몰라.”“그러니까 그만해.”김나나는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우리 오빠는 훌륭한 사람이야. 우리 김 씨 가문 어른인 김준영의 심복이기도 해!”“금정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우리 오빠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인 줄 알아?”“난 네가 내 절친이니까 너한테 기회를 주려던 것뿐이야. 우리 오빠 같은 격조 높은 인물을 너한테 주는 거야!”“남들한텐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고!”김나나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설은아, 너 절대 지금의 행복에 젖어 살지 마!”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베개에 기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김나나, 이제 그만해. 나 내일 할 일 있어서 그만 자야겠어.”설은아는 김나나와 더 이상 이런 얘기로 왈가왈부하기 싫은 것이 분명했다.“그래, 잘 자.”화면 속 김나나는 빙긋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하지만 설은아, 난 우리 오빠한테 큰소리쳤단 말이야!”“너와 전 남편이 3년 동안 함께 했지만 한 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그러니 너 절대 엉뚱한 짓 하지 마!”“그렇지 않으면 우리 오빠가 네 전 남편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말을 마친 김나나는 ‘뚝’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설은아는 언짢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이 입을 열었다.“김나나는 뭐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 왜 이렇게 거만한 거야?”설은아는 하현이 묻는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김 씨 가문의 출신인 김나나는 예전에 대구에 있을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그때 그런대로 사이가 괜찮았어.”“하현, 나나가 좀 거침없는 성격이라 그런 말을 한 거야. 그러니 나나가 한 말, 마음에 두지 마.”“그리고 나나가 자기 오빠에 대해 한 말도 신경 쓰지 마. 난 전혀 본 적도 없는 사람이야!”말을 마친 설은아는 문득 자신이 왜 하현에게 이
하현은 그 여자를 알지 못해서 살짝 의아해하며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설은아는 금정에 온 이후로 아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어찌 보면 사업상 많은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어머, 설은아. 지금 너 뒤에 있는 사람이 설마 그 소문으로만 듣던 네 남편은 아니겠지?”전화기 건너편에 있던 여자는 하현의 모습을 눈치채고는 갑자기 싫은 티를 팍팍 내었다.“그런 남자를 아직도 방에 들이는 거야?”설은아는 하현을 힐끗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김나나,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와 재결합한다고.”“설은아! 너 정말 진심이야? 아니면 농담하는 거야?”화면 속 김나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남자 정말 아니잖아! 그건 금정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야! 그렇게 어렵게 이혼했는데 왜 갑자기 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거야?”“무엇보다 너 내가 한 말 잊었어?”“널 우리 오빠한테 소개해 주려고 한다는 말 잊었냐고?!”“우리 오빠는 김 씨 가문 거물이야!”“너와 우리 오빠가 함께 한다면 완전히 강대강의 연합이라고!”말을 하는 김나나의 얼굴에는 꼭 두 사람을 연결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설은아가 금정 김 씨 가문 사람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이 여자는 설은아를 김 씨 가문 사람과 연결시켜주려고 했다.자신에게 짓밟힌 김탁우를 떠올리자 하현은 이 모든 것이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하지만 잠시 후 설은아가 하는 말을 듣고 하현의 미간이 다시 한번 살짝 일그러졌다.“내 기억이 맞다면 네 오빠가 김탁우 맞지?”“어? 내가 듣기로는 그가 항성에서 누군가와 이미 약혼했다던데.”“어떤 것들이 그딴 쓸데없는 말을 퍼뜨리는 거야?”김나나는 하현을 향해 시위라도 벌이는 양 소리를 높였다.“설은아, 너 소식이 좀 늦구나!”“우리 오빠가 항성에 있을 때 남영 여자가 우리 오빠한테 첫눈에 반한 건 사실이야.”“하지만 어떤 남자가 달려
왕인걸의 말은 이의진을 탓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더 깊은 뜻이 있었다.순간 이의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왕 사장님이 안 물어보셨잖아요?”“물어봤으면 진작에 알려줬을 거예요.”“그리고 하현과 밥을 먹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씀만 하세요. 내가 왕 사장님을 도와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죠!”말을 마치며 이의진은 자신이 하현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듯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그러나 이의진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자신의 오빠가 최희정을 압박하기만 한다면 데릴사위인 하현이 절대 최희정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의진의 말에 왕인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좋아, 좋아! 내일 내 사무실로 와.”이의진은 눈에는 점점 더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자신의 앞날에 환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다.이 씨 가족들도 모두 감격에 겨운 얼굴로 서 있었다.마음속으로는 역시 이의진이 인재는 인재라며 감탄해 마지않고 있었고 훗날 자신들의 뒤를 확실히 봐줄 인물이라고까지 여겼다.이러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밖에!“이의진,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의진을 앞에 두고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고 그의 한마디에 그녀의 환상 같은 꿈이 일순 깨져버렸다.“왕인걸, 당신도 성인인데 왜 그렇게 쉽게 속는 거야? 옳고 그름이 분간이 안 되는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 알겠어!”왕인걸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하현을 배웅했고 이어 몸을 돌려 이의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이의진은 낭패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 상황은 전적으로 그녀가 자초한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몇 마디 하지 않았더라면 하현이 그녀의 면전에서 체면을 뭉개는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체면이 뭉개지는 하현의 말에도 이 관계를 이용하여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는
그러나 왕인걸은 이 씨 가족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무시했다.그 대신 왕인걸은 재빨리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히 입을 열었다.“하현!”하현?!왕인걸의 목소리는 존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대도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진의 부모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이의진의 집안 친척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뭐야, 이게?하현?하 씨 성을 가진 데릴사위가 정말 이렇게나 능력이 있다는 얘긴가?이의진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왕 사장님, 지금 누굴 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은 데릴사위일 뿐이에요!”왕인걸은 이의진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현을 향해 굽신거리며 말했다.“하현, 아! 형수님도 와 계셨군요!”“이곳에서 두 분을 만나다니 제 생의 영광입니다!”“정말 오늘은 대운이 열린 날인가 봐요!”“만나서 영광입니다.”“너무 반가워요!”왕인걸은 흥분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왕인걸과 하현이 아는 사이란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왕인걸이 반가워서 잔뜩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이의진은 입을 떡 벌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하현이 자신의 직속상관, 그것도 왕인걸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설은아는 왕인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의상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 왕 사장님, 안녕하세요.”그러나 하현은 심드렁한 눈빛으로 왕인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아내를 탐하려고 했던 자에게 한 손만 부러뜨리고 놓아준 것만 해도 하현은 많이 봐준 셈이었다.“하현, 지난번엔 내가 많이 잘못했어. 두 사람이 돌아간 뒤 간민효한테 아주 호되게 혼났어!”“나도 내 잘못을 깊이 깨닫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어!”하현의 냉담한 표정에서 초조함을 느낀 왕인걸은 마음이 떨려 허리까지 구부리며 안절부
”장청 캐피털은 사채업으로 시작한 회사야. 결코 깨끗한 회사가 아니라구!”“고명원도 사실 깨끗하지 않아!”“그런 더러운 인물과 호형호제하는 게 뭐가 그리 잘났어?”“지금은 옛날이 아니야!”“깨끗하게 돈을 벌어야 오래가지!”“고명원 같은 사람이 언제까지 기고만장하게 살 수 있겠어?”이의진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한껏 교만하고 오만한 자세를 보였다.“시대가 변했어. 더러운 방법으로 얻은 영광은 결코 오래갈 수 없어. 결국 우리처럼 큰 회사가 정도를 걷고 있는 거지!”“맞아. 가문을 빛내려면 큰 회사에 들어가야 해!”이영산은 자신의 모친과 여동생이 자신을 위해서 하현을 마구 헐뜯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여전히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이참에 다 같이 퍼부어 하현을 짓밟고 싶었지만 그는 그런 마음을 억눌렀다.“정도를 걸어야지! 정정당당하게!”이의진은 하현에게 훈계하듯 말했다.“당신이 내가 이룬 성과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이룬다면 설 씨 집안에서 당신한테 한 번 더 데릴사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줄지도 몰라!”여기까지 말한 이의진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룸 바깥 복도를 보았더니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보였다.그들은 당당하게 얼굴을 든 채 값나가는 명품 옷으로 온몸을 치장한 모습이었다.제일 앞에 선 사람은 더욱 건들거리는 표정으로 들어왔고 내딛는 발걸음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이의진은 하현을 몰아붙이다 말고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문 앞까지 달려왔다.“왕 사장님, 안녕하세요!”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왕인걸이었다.왕인걸은 여전히 지방시에서 맞춤한 옷을 입고 있어서 부티가 팍팍 풍겼고 이루 말할 데 없는 강인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다만 머리와 얼굴에 칭칭 감은 거즈가 그를 약간 바보스럽게 보이게 할 뿐이었다.이의진이 왕 사장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의진의 부모는 하나같이 얼른 일어나 자신들도 모르게 일어나서 맞이했다.“왕 사장님. 여기서
이 광경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넋이 빠지는 듯했다.왜?왜 고 사장이 데릴사위인 하현한테 사과를 해야 하지?설마 다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이 씨 가족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건 말건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됐습니다. 별일 아닌 일입니다. 이대로 없던 일로 하시죠.”“그렇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고명원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 하현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하현,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겠습니까?”“나중에 여쭤볼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아무렇게나 티슈를 꺼내 번호를 적은 뒤 그의 앞에 내놓았다.“고맙습니다.”고명원은 보물이라도 얻은 듯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은 뒤 이 씨 가족들을 냉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실례 많았습니다. 내가 식사를 방해한 것도 있고 하니 오늘 이 식사는 내가 계산하겠습니다.”몇몇 장청 캐피털 핵심 간부들도 모두 겁에 질려 굽실거리며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냉담하게 말했다.“이제 좀 꺼져 주시죠!”하현은 말을 툭 내뱉으며 마치 고명원을 그의 부하처럼 대했다.이 광경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설은아는 이를 보고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현, 다음에 제가 식사 대접 제대로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말을 마치며 고명원은 직원에게 가더니 마오타이 몇 병을 테이블로 보내라고 지시했다.그의 공손한 자세에 장내는 순식간에 충격에 빠졌다.이영산의 부모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방금 하현에게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퍼부으며 공사장에서 벽돌이나 나르라고 모욕했던 그들이었다.그러나 순식간에 하현이 장청 캐피털 고명원이 떠받드는 인물이 될 줄은 몰랐다.고명원이 공손히 차를 따르던 모습은 그들에게 직접 얼굴을 두들겨 맞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몰고 왔다.이영산은 더욱 마음이 착잡하고 복잡했다.그
이의진도 눈살을 찌푸리며 거들었다.“하현, 내 말 잘 들어! 지금 당장 사과해!”“그리고 무릎 꿇어!”“그렇지 않으면 공사장에서 벽돌 나를 생각은 하지도 마!”“당신은 그냥 굶어 죽어!”하현은 이 씨 남매가 하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오만방자한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3분, 고명원에게 어서 와서 차를 따르라고 해.”“나 하현이 말했다고 전해.”“어서 어서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을 넘길 시엔 차를 따르는 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야.”이영산을 비롯한 이 씨 가족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얼굴빛이 새까맣게 변했다.하현이 이렇게 고명원을 도발하는 것은 그들을 불구덩이로 집어넣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이놈이 이 씨 가족들을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야! 당신이 뭔데? 감히 고 사장님을 오라 마라, 차를 따르라 마라 하는 거야?”장발의 사내는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사는 게 지겨워?”장발의 사내는 여차하면 하현을 밟아 죽일 듯 눈을 부라렸다.그때 온몸에 거즈를 두른 남자가 뒤에서 들어왔다.알고 보니 소항 회관에서 하현과 충돌한 그 남자였다.남자는 하현의 얼굴을 똑똑히 본 순간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 서린 눈빛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그는 장발의 사내에게 얼른 귓속말로 속삭였다.소항 회관에서 그는 하현에게 단번에 걷어차였다.고성양의 손발은 부러졌다.엄도훈은 하현 앞에서 나라님 모시듯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이로 미루어 보아 하현의 신분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장발의 사내는 남자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그의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났다.“하현! 당신은 이제 죽었어!”이영산은 하현을 가리키며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의 최후를 한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따가 일이 생기면 당신 혼자 다 책임져! 절대 우리 끌어들이지 마!”이 씨 가족의 친척들도 모두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
장리나는 이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하현, 얼른 형님께 감사하다고 해야지!”“형님이 아니었으면 어디 가서 그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겠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다 혓바닥 깨물까 봐 겁도 안 나?”“하 씨! 당신 나한테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당신 정말...”장리나는 하현에게 조롱이 가득 담긴 말을 퍼부으려고 했다.그런데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발로 문을 차고 들어왔다.차를 마시고 있던 하현은 들고 있던 찻잔을 든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이어 러닝셔츠를 입은 남자 몇 명이 들이닥쳤다.그들 앞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는 긴 머리의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씨 가족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모두 꺼져! 이 룸은 우리가 접수한다!”이영산은 오늘 아침 마침내 인생의 절정을 맞이했는데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술기운을 내뿜으며 테이블을 세게 쳤다.“무슨 소리야? 우리 아직 다 못 먹었다구!”“우리 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이 여기서 밥을 먹을 건데 당신들 감히 이런 식으로 굴 거야?”시가를 물고 있던 남자는 무심한 듯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고명원?고명원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영산은 술이 확 깨는 듯했다.방금까지의 원망과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무례하다고 느끼던 이 씨 가족들도 장청 캐피털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겁을 먹었다.고명원은 어쨌든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게 어떻게...”이영산은 말할 수 없이 난감한 표정이었다.그는 얼굴을 돌려 주변 친척들을 몇 번이나 쳐다본 뒤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거의 다들 드셨죠?”“고 사장님이 이렇게 내 사업을 챙겨주시고 수백억짜리 프로젝트도 맡겨주셨는데 이 룸을 원하셨다니 드려야죠!”“다